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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콩나물 주교, 콩나물 공장장 金成洙 성공회 주교

“잘난 사람만 사는 세상 꼴이 이게 뭐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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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
늙고 나서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김성수 주교는…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학교 초대 교장. 2000년 인천 강화도에 장애인 재활 돕는 ‘우리마을’ 설립
⊙ 발달장애인 90명과 콩나물 재배하고 전자부품 조립하며 자립 터전 닦아
⊙ 장애인 양로원·요양원 건립 계획… “누가 50억원만 주면 탁탁 만들 수 있을 텐데”
⊙ “선거 때면 표 얻으러 정치인들 많이 오죠. 근데 아무 소용이 없어. 되고 나면 그만이야”
⊙ “노회찬 죽음 안타까워. 刑 다 치르고 ‘이렇게 나는 부활한 사람’이라 세상에 보여줬더라면…”
⊙ “정말이야.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죄를 짓는데…. 욕도 하고”

金成洙
1930년 6월 출생. 연세대 신학과 수료, 단국대 정치과·성공회 성 미카엘신학원 졸업, 영국 킹알프레도대 특수교육과 수료, 연세대 명예신학 박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성공회 초대 관구장(대주교), 성공회대 총장, 푸르메재단 이사장 역임
사진=조현호
  ‘콩나물 주교’ ‘콩나물 촌장’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인천 강화도를 찾았다. 대한성공회 김성수(金成洙·88) 주교는 ‘콩나물 공장장’이다. 콩나물을 판 돈으로 지적장애인과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 수가 조금씩 늘더니 지금은 90명. 이 90명의 직업 재활을 돕는 ‘우리마을’은 김 주교가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땅(강화 온수리의 선산 2000평) 위에 설립됐다. “선친께 물려받은 것이니 내 것이 아니다”라는 소박한 이유였다.
 
  그렇게 세워진 ‘우리마을’은 벌써 20년이 돼 간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데 콩나물 주교는 여전히 콩나물과 씨름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을 피웠던, 그리고 6·10 국민대회의 서막을 열었던 인물임을 기억할까.
 
  지난 8월 7일 강화도 SK 와이번스 2군 야구장 옆 길상공설운동장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콩나물 공장이 보이고, 콩나물 주교의 얼굴도 보였다.
 
  이대성 ‘우리마을’ 원장 신부: “주교님. 오늘 찾아오기로 했던 (강화) 경찰서장님은요, 오늘 못 오신다고 전화가 왔어요. 인천경찰청장님이 바뀌어서 청에서 (일선 서장을) 다 소환을 했나 봐요, 갑자기. 그래서 죄송하다고 전화가 막 왔습니다.”
 
  김성수 주교: “오늘 못 온다고?”
 
  이대성 원장 신부: “네….”
 
  김 주교: “높은 사람이 오라면 가야지.”
 
  이 신부: “나중에 다시 날짜 잡는답니다.”
 
  김 주교: “안 와도 그만이고….”
 
  이 신부: “《월간조선》 기자가 왔습니다.”
 
  ― 건강하게 보이십니다.
 
  김 주교의 말이다.
 
  “겉으로만…. 내일모레면 나이 구십인데 심장, 전립선, 신경통… 하루에 알약을 15개나 먹어요. 독한 약을 먹으니 위장 조심하라는데 아니, 약을 먹어라 해놓고 위장 조심하라니…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 약 드시면 잘 드셔야 합니다.
 
  “체중 안 늘리려고 소식(小食)하는데, 소식하니까 목소리가 작아지고 기운도 자꾸 없어지고…. 많이 먹으면 체중이 늘고 혈압과 당(糖)이 오르고….
 
  나는 남 말 잘 듣는데 사람들이 걸어야 한다고 해서 걸었어요. 어… 걷는데 (무릎이) 뜨끔뜨끔하고 아프잖아. 옛날에 운동(학창시절, 농구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을 좀 했으니 그까짓 것 곧 낫겠지, 했는데 자꾸 아파. 주사 맞고 약 먹어도 변동이 없어. 그런데 지팡이 짚고 다니니까 걷는 게 이상해졌어요, 아주. 지팡이 놔두고 옛날처럼 걷는데 아파가지고…(웃음). 건강이 그래요.
 
  100세 사는 것 다 좋은데, 밥을 멕여(먹여)주고 대소변 가려주고… 그거는 난….”
 
 
  “발달장애인하고 건강한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게 그야말로 ‘우리’ 아닙니까”
 
인천시 강화군 길상로 242-28번지 ‘우리마을’ 입구다.
  ‘우리마을’은 대한성공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이다. 일종의 근로사업장. ‘시몬의 집’으로 부른다. 시몬은 김성수 주교의 세례명. 일할 수 있는 작업장과 프로그램실, 기숙사, 콩나물사업장도 있다. 인근의 ‘요셉의 집’(공동생활가정), 마리아 주간보호센터, ‘요한의 집’(거주시설) 등이 ‘우리’를 이루고 있다.
 
  ― ‘우리마을’은 공동체를 강조하시는 주교님의 철학이 담긴 곳 같아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 베드로학교라는 것을 만들어 교장을 했어요. 1974년이지 아마? 그런데 첫 졸업식 날, 이 녀석들이 졸업장을 받으러 안 와. 내일부터 학교 안 나와도 된다는 걸 아니까. 발달장애인 아이들이 알 것은 다 알아요.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졸업식인데 안 나오니 난리가 난 거지. 그때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근로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들이) 졸업 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자. 그래서 아버지가 준 고향 이 땅을… 아버지가 거저 준 거니까 거저 내놔야지, 뭐. 그래가지고, 이름을 뭘로 할 거냐 고민을 했지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이잖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우리 아버지’에 높고 낮고 얼굴이 까맣고 하얗고 구별이 없어요. 평등하지. 발달장애인하고 건강한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게 그야말로 ‘우리’ 아닙니까.
 
  하느님의 종들 ‘우리’… 어쨌든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여럿이서 그런 이름을 정했는데 ‘주교님이 우리마을이라고 하자셔서 정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건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다 같이 맹근(만든) 말이지.”
 
 
  “‘하느님이 양로원을 만들어라!’ 하셔서 …”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 돌담길에서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와 공동체 형제들.
  ― ‘우리마을’ 시작이 2000년도인가요.
 
  “그렇지. 20년이 다 돼 가. 이제 늙었어요. 허허허. 여기 일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서른여섯이야.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쉰일곱이고. 가만히 생각하니 노후대책을 하나도 안 해놨어. ‘발달장애인도 노인이 되면 일반 노인들과 함께 살면 되잖아’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특수학교를 왜 만들고 왜 했어? 이 양반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우리마을’이 목적하는 게… 하느님이 명령하시기를… 양로원을 만들어라! 하셔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 그러면 쉰일곱 되셨다는 분은 성 베드로학교 출신인가요.
 
  1974년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에서 설립한 성 베드로학교는 정신지체아 특수학교다. 성공회대 내에 설립되어 이듬해 개교식이 열렸다. 1985년에 중학교 6학급이, 그리고 1988년에 고교 6학급이 마련됐다. 학교 교훈은 ‘서로 믿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자’다. 초대 교장이 김성수 주교. 지금은 명예교장이다.
 
  김 주교의 말이다.
 
  “아, 쉰넷 된 이가 베드로학교 출신이고, 쉰일곱 그 양반은 강화도 출신이야.”
 
  ― 그렇군요. 베드로학교 1기 졸업생 나이가 54세군요.
 
  “그럼. 나하고 같이 늙어가. 그 녀석은 나보다 더 머리가 벗어졌어.”
 
  ― 초등부터 양로원까지 장애인의 전 생애주기를 커버하시려는 거군요.
 
  “유치원은 내 집사람이 만들었는데 의정부에 있고. 교단은 작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안심하고 눈감게 하려고 해요. 그 부모들이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잖아. 안타까운 얘기지. 그런데 발달장애인들은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일반인보다 노인화 현상이 빨리 와서 요양원이 필요해. ‘(정부에다) 요양원을 만들겠다’고 하니 공무원들이 ‘법에 없는데요’라고 해요. 공무원들이 그렇잖아. ‘뭘 도와드릴까요’ 해야지 ‘왜 오셨어요’라고 한단 말이에요. 법이 없다? ‘법을 만들어서 하겠습니다’ 이래야 정부지.”
 
  김 주교에게 “지금 법적 문제가 걸려 있나요?”라고 물으니 법 얘기는 안 하고 이렇게 말했다.
 
  “(양로원) 설계를 했는데 내 마음에 안 들어. 그러고 위원회는 다 결성됐고 짧으면 3년, 길면 5년이 걸리지 않을까? 그런데 내일이래도 누가 50억원만 주면 탁탁 만들 수 있을 텐데… 하하하.”
 
  ― (기부를 기다린다고 기사를) 쓰겠습니다.
 
  “땅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거기(에)다 지으면 되는 거고. 원장 신부님이 그래요. ‘주교님, 50억 너무 많아요. 30억만 있어도 돼요’라고.”
 
  ― 장애를 지닌 아이의 부모들이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이 필요 없는 것, 쓸데없는 것은 안 만드셨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아요? 그런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지. 더 단단히 기르고, 더 깊이 길러서 세상을 이겨 가도록 길러야지.
 
  그리고 하느님을 원망하면 끝도 없고 한도 없지 뭐.”
 
 
  “‘우리마을’은 대소변 가릴 줄 알면 돼”
 
김성수 주교와 ‘우리마을’ 공동체 형제들이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 ‘우리마을’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장애등급이 있어야 하나요.
 
  “난 그런 말 싫어해요. 사람에게 어떻게 1등급, 2등급, 3등급, 등급을 매겨. 군처럼 일등병, 이등병, 삼등병이라면 모를까. ‘우리마을’은 대소변 가릴 줄 알면 돼.”
 
  ― 대기자가 많나요.
 
  “많지는 않고. 그만두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지.”
 
  ‘우리마을’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여러 사업을 해왔다. 양계장도 하고 전자부품 조립도 하고 제과·제빵 일도 해보았다. 돈 된다는 버섯도 키워보고 상추도 심어보고 꽃도 심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양계장은 하다가 수지가 안 맞아서…. 우리 친구들이 단순한 일만 해. 한번은 양계장에 갔더니 병아리들이 삐악삐악해.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보이는 달걀만 가지고 온 거야. 암탉이 달걀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 우리는 ‘화살’이라고 불러. 가는 것은 잘 가. 가다가 돌아서 올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게 교육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런데 단순한 게 얼마나 좋아요. 우리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 그냥 중상모략하고… 남 안되는 것만 말하고… 그런 세상이 빨리 없어져야지.”
 
 
  “이건 천사야. 이게 하느님이지. 이게”
 
  ― 콩나물 판로는 어떤가요.
 
  “시금치도 허(하)고 버섯도 허고 꽃도 기르고… 20년간 여러 가지 했어요. 이게 자본을 댈 수가 있어야지. 상추를 수경재배를 했는데 참 맛있고 좋아요. 시설까지 다 갖춰서… 상추가 자라면 이파리가 나오잖아요. 그걸 이쁘게(예쁘게) 따야지 상품이 되는데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안 돼. 그럼 내다 팔 수 없잖아.
 
  그러던 중에 콩나물을 길러보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재배한 콩나물을 팔려고 강화도 식당을 다 돌아다니고…. (주민들이) 사는 것도 한 봉지, 두 봉지씩 사지, 몇백 봉지, 몇천 봉지 사나요?
 
  ‘아이쿱’이라고 여성조합이 있어서 우리 콩나물을 사주기 시작했고, ‘풀무원’이 어디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어. 그 사람들이 ‘우리마을’에 와서 콩나물 재배시설을 둘러보니까 낡았거든? ‘바꾸셔야 됩니다.’ 돈이 있어야지. ‘기곗값이 얼마입니까.’ ‘2억5000만원 듭니다.’ ‘돈이 없다’니까, ‘1억을 우리가 무상으로 주고, 1억5000만원은 돈이 생기는 대로 갚으십시오’.
 
  이건 천사야. 이게 하느님이지, 이게.
 
  그것뿐이 아니에요. 원장 신부가 콩을 사러 전라도, 제주도까지 돌아다녔어요. 농사꾼도 아닌데 콩을 볼 줄 아나요? 풀무원이 딱하게 봤던지 ‘우리가 쓰는 콩을 당신들한테 줄 테니 이 콩으로 재배해서 우리한테 납품하시오! 우리가 팔아주고 돈은 당신들한테 주겠소’ 그러더라고.”
 
  ― 좋은 기업이네요.
 
  “그래서 콩나물 공장에 스무 명 좀 넘게 일하는데 그중에 한 5~6명은 봉급으로 120만원을 받잖아요.
 
  여기 다니던 아이 하나가 스무대여섯 살 먹었는데 어디서 들었던지 첫 월급 받아가지고 엄마·아빠 속옷을 사드렸어.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고 온 동네가 효녀 났다고…. 그렇게 ‘우리’가 사는 거지 뭐.
 
 
  “하느님이 차별하신 게 아니라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다 만들어 놓은 이유지”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일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마을’이 있는 게 사회에 조금 공헌하는 것이에요. 혼자서 아무리 애쓰면 뭐해. 옆에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니까. 그래서 자꾸 ‘우리’라는 말이 나오는 거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에이~ 볼 것도 없고’ 이런 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 그래도 장애인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1970년대 성 베드로학교를 만들 때만 해도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가둬놓고 내놓지도 않았어. 엄마들도 아이가 다니는 장애인 학교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도 서로 학부형인데도 시치미를 뚝 떼고 ‘볼일 있어 왔다’고 둘러댔지. 근데 요즘 엄마는 너무 용감해서 조금만 불만이 있어도 청와대에 편지 쓰고….”
 
  김성수 주교는 ‘우리마을’을 처음 지을 때 장애인을 ‘수용·보호 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4인 가족실’ 운영체제로 설계했다. 삶의 질을 고려한 것이었다. 김 주교는 소규모 생활시설을 지향한 이유를 묻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돈이) 없어서 그랬지. 있었으면 크게 만들지…. 대가족 제도는 잘 되면 좋지만, 자식들이 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거든. 얼마 전에 원장 신부님이 영국을 다녀왔는데요, 그룹 홈에서 장애 학생들이 단체생활을 하는데 한 그룹에 아이들이 4명이에요. 한 가정같이….
 
  원장 신부님이 ‘4명 학생을 몇 분 선생님이 관리하느냐’고 물었더니 ‘스무 명’이라고 했대요. 그게 문화 차이고, 나라가 강하고 약한 차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장애 아이들이) 화장실을 가더라도 다 같이, 점심으로 ‘자장면 먹자’고 하면 싫어도 다 따라가야 해. 영국은 (교사가) 스무 명쯤 되니까 점심 먹으러 가자 할 때 한 아이가 ‘난 안 가. 다른 거 먹으러 갈 거야’라고 고집을 피워도 가능한 거지. 이게, 이게 국가지. 그리고… ‘우리’지. 하느님이 차별하신 게 아니라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다 만들어 놓은 이유지. 괴로운 사람, 소외된 사람과 같이 살아야지 나만 잘났다고 사는 게 이 세상이 아니질 않나요?
 
  그런데 잘난 사람만 사는 이 세상 꼴이 이게 뭐야? 아픔을 같이 알아야 세상 사는 기쁨을 알 것 같아.”
 
  ‘우리마을’이 만드는 강화도 콩나물은 국산 무농약 원두를 사용한다. 청정 지하암반수(지하 150m)로 기른다. 현재 풀무원을 비롯해 iCOOP생협, 두레생협, 행복중심생협, 코닝정밀소재 등에 납품하고 있다. 2017년 농산물우수관리(GAP)경진대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최고다!”
 
‘우리마을’의 주요 시설이다. 위쪽 사진은 콩나물 공장. 아래는 사무실과 휴게실, 식당이 연결된 돌담길 나무 통로다. 건축가 조경수가 설계했는데 건축학과 학생들의 순례 코스라고 한다.
  인터뷰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정오가 됐다. 김 주교가 “밥이나 먹자”고 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김 주교는 장애인들과 똑같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뒤에 선 이가 김 주교의 어깨를 주물렀다. 기자가 보기에 약간 세게 주물렀는데 그것도 여러 차례, 그러나 김 주교는 연신 “아이, 시원하다”고 했다. 식판을 앞에 두고 김 주교가 일어서서 “밥해준 선생님한테~”라고 외치자 장애인들은 일동 “고맙습니다” 하고 답했다. 또,
 
  김 주교: “하느님~”
 
  일동: “감사합니다.”
 
  김 주교: “우리는~”
 
  일동: “최고다!”
 
  모두가 함께하는 식사기도였다. 밥을 먹는데 한 여성이 물컵에 물을 가득 채워 김 주교와 원장 신부, 기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장애인 여성: “(김 주교와) 베드로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이대성 원장 신부: “같이 다녔지. 그런데 선배가 아니라 학교를 만드셨어요. 그땐 특수학교가 없던 시절이에요. 지금부터 45년 전이에요. 그때 주교님이 그 학교를 만드셨어요. 그 학교 나온 친구들 중에 이곳에 온 친구들이 꽤 있어요.”
 
  그때 한 남성이 식탁 앞으로 다가와 “우리 카페에 오세요. 과자와 빵이 맛있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김 주교가 “이 자식아! 너, 콩나물 파는 얘기를 해야지”라며 농담조로 꾸짖었다.
 
  이 원장 신부가 기자에게 이렇게 부연설명을 했다.
 
  “이 친구는 원래 콩나물 공장에서 일해요. 외부 손님이 오면 콩나물 선전을 했어요. 맛있다고. 이 친구는 ‘우리마을’ 말고 강화에 있는 다른 장애인 시설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그 시설에서 카페를 하나 만들었나 봐요. 그다음부터 콩나물 맛있다는 얘기는 안 하고 자꾸 그 카페 선전만 해요. 하하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인터뷰를 하러 사무실로 향하는데 많은 ‘우리’가 김 주교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모든 ‘우리’ 사이에 스스럼이 없었다. 김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의 부인)가 ‘우리마을’에 왔어요. 대개 악수하고 그러잖아요. 한 녀석이 ‘이희호 여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사람들이 바보다, 천치다 하지만 절대 아냐. 자기가 알아야 할 것은 꼭 기억한다고. 또 어떤 녀석은 ‘나, 김민기 좋아해’ 그래요. (기자에게) 김민기가 만든 노래가 뭐죠?”
 
  ― 아침이슬.
 
  “맞아. ‘나, 아침이슬 할 줄 알아.’ 여기에 악단들이 오고 그래요. 색소폰 부는 그룹도 오고, 신나면 나가서 춤도 추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지. 그런 사람들 매일 와달라 할 수도 없고….”
 
  ― 자원봉사자는 많이 찾아오나요.
 
  “봉사자들이 오면, ‘우리마을’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요. 그분들이 보기에 딱하고 도와주고 싶으니까, (응석을) 다 받아주고 떠나면 저 녀석들이 오랫동안 만들어 놓은 생활규율을 한꺼번에 깨버리는 거야.
 
  그리고 한두 번 와보고 ‘에이 가서 할 일도 없고…’ 그런다고. 그냥 계속해서 찾아와 한 식구가 되는 게 봉사자인데 아직 거기까지 못 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봉사자는 필요한 거지. 자꾸 찾아와서 방이 깨끗해도 걸레질도 해주고, 선생님들 쉬라고 하고 아이들하고 같이 놀아주고 그래야지.”
 
  ―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표 얻으러 안 옵니까. 다들 유권자들인데….
 
  “아휴~ 많이 오죠. 근데 아무 소용이 없어. 여섯 사람이 입후보했다고 칩시다. 다들 ‘도와드리죠’ 그래요. 그러다 다섯 사람은 떨어지고, 한 사람이 됐어. 되고 나면 그만이야.(웃음)
 
  난 그래서 우리 대통령(문재인)이 공약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이야. 되고 나니까 일이 너무 많고 재정적으로도 그러니까….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얼굴 내밀고 ‘내가 이렇게 공약했는데 어려운 게 뭐다…’고 얘기하는 게 소통이지, ‘문제없습니다’ 한다고 됩니까.”
 
  ― 복지공약은 돈하고 관련돼 있잖아요. 경제가 어려우니까….
 
  “어려운 것을 알고 공무원이 됐으면 헤쳐나가야 되고… 특히 국회의원들, 왜 그렇게 돈을 많이 받아요. 빨간 카펫은 왜 깔아놓고…. 다 심부름꾼인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설가 이광수의 《사랑》인가에서 ‘내가 농촌에 가서 생활하고 싶다. 그들과 같이 자고 먹고 싶다’는 걸 읽고 시도했는지 모르지만… 기왕에 갔으면 조금 더 험한 데로 가면 좋을 뻔했어. 그 동네에서 옥탑방 있는 곳은 괜찮은 곳이거든. 참, 정치가 어렵죠. 다들 생각이 다르니….”
 
  박원순 시장이 서울 강북 어느 옥탑방에서 한 달간 체험을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런 옥탑방 ‘살이’를 두고 일부는 “서민 코스프레”라는 견해도 있고 “이런 쇼는 백번이라도 괜찮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늙었지만 예쁜 여자를 보면 마음에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2016년 5월 19일, 인천시 강화도 길상면에 위치한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마을’에서 촌장 김성수 성공회 주교와 콩나물을 재배하는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콩나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조선DB
  ― 깨끗한 진보 정치인으로 알려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의 죽음을 ‘고난받은 의인’으로 표현하기도 하던데, 하지만 죽음의 선택을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양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고, 재판을 받고 다시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울부짖었다면 어땠을까요. 죽음을 택한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지 않았을까요? 걱정이 되는 것은 젊은 아이들이 ‘어려우면 죽으면 돼’ 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니까. 형(刑)을 치르고 다시 살아서 ‘아! 이렇게 나는 부활한 사람’이라고 세상에 보여줬더라면 그게 더 멋있고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서도….
 
  근데, 왜 돈 준 사람은 아무 말도 안 시키지? 돈 준 사람도 혼을 내야 돼요. 그렇게 착한 사람한테 왜 돈을 갖다 줘. 옳고 바르게 살다가도 돈이 오면 아이코! 할 수가 있지. 아주 아쉬우면…. 또 주위 사람들은 그 양반이 돈 받았다는 걸 몰랐을까?”
 
  ― 가까운 사람은 알았지 않았을까요? 가족이나….
 
  “그럼 말렸어야지. ‘당장 갖다 주라’고. 우리가 다 책임이 있는 거지. 우리가 왜 그 양반이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돕지 않고, 목숨 끊어지니까 찾아가서 안됐다고 하고. 그 정열로 남 돕는 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주교님, 자살을 택하지 않고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하면, 그 죄는 사라지나요.
 
  “아이~, 죄는 사라지지 않겠지, 그야.”
 
  ― 하느님 보시기에 참작은 하시겠죠. 노회찬 같은 분은 신앙인이 아닌데 하늘에 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고해성사가 있는 교단… 고해를 하면 보속을 받는 거고, 신부님께 고해를 안 해도 진정으로 하느님께 죄를 회개하면 부활의 요건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교회가 착한 사람만 오는 게 아니라 죄인도 오는 곳 아니에요? 그런데 교리상으로는 ‘착한 일로는 부족하다, 하느님의 아들딸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하느님의 아들딸이 안 돼서 지옥에 가는 사람? 연옥에 오래 있겠지. 정말 개인적인 말인데, 성공회가 영세 공부를 시키잖아요. 영세를 주고, 견진도 주고…. 그런데 (신자들이) 인천에서 이곳까지 온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가까운 예배당도 좋고, 천주교 성당도 좋고 가라’고…,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하느님이 결정하실 일이니까, 인간이 결정해 놓은 것은 위헌의 요소도 있는 게 아닌가요?”
 
  ― 주교님, 울부짖고 용서를 비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럼…. 나도 죄가 얼마나 많은데.”
 
  ― 주교님, 왜 그러십니까.
 
  “정말이야.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죄를 짓는데…. 욕도 하고.”
 
  ― 아이고, 저희는 그럼….
 
  “내가 늙었지만 예쁜 여자를 보면 마음에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면(안 들면) 죽은 사람 아닌가? 울부짖고 회개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거야. 그럼…. 어렵지. 어떤 때는 친구끼리 고해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 주교님은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하시나요.
 
  “이제는 뭐 은퇴해 가지고 다 없어졌어.”
 
  남성혐오 사이트인 ‘워마드’(Womad)가 천주교의 성체를 훼손, 한국 사회를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천주교 주교들은 “모든 신자가 이 불미스런 일에 대해 보속(補贖) 행위가 필요하다”고 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천주교에 대한 혐오라기보다 낙태에 반대하는 천주교 교리에 대한 반발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가톨릭은 낙태에 엄격하게 반대한다. 강간에 의한 강제 임신의 경우도 낙태 반대는 마찬가지다.
 
  ― 교회는 낙태 문제를 좀 더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낙태… 허(하)면 안 되지 생명체인데. 내가 처음 영국에 갔을 때예요. 예쁜 엄마들이 공원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길래 ‘남편도 같이 나와서 놀지, 남편은 어디 갔어?’라고 물으니 ‘남편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아무 남자하고 자고 아기를 낳았지만 엄마이고 모성애 때문에 키우는 거야. 성년이 된 아이가 아버지를 찾게 되고 그때 가정불화가 생기는 거야. 그게 40년 전 영국인데 오늘 우리나라에도 그런 현상이 많이 일어나잖아.
 
  그러니까 강간에 의해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갖는 동안, 낙태를 하려고 마음먹는 엄마가 몇 명이나 돼요? 10명 중 다섯 명이 안 되지?”
 
  ― 잘 모르겠습니다.
 
  “나쁜 놈 탓에 아이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 아기의 반은 엄마의 유전을 받은 거잖아. 그 반은 엄마의 책임이 아이를 기르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아이를 낳은 엄마가 도저히 기를 수 없다면 정부에서 하는 탁아소에서 맡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교회에 그런 시설이 있다면 맡아도 되겠지.
 
  그런데 법이 너무 약하다고 할까. 강간범은… 성직자가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는데, 종신형을 내린다든가,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 혼이 나는구나’ 해야지, 모르면 그냥 넘어가고 알면 몇 년 살다가 나오고… 그러면 안 돼! 엄마에게 주는 고통을 생각하면, 그 고통은 남자 하나가 당할 도리가 없는 것이거든. 하지만 아이는 생명체이기에 (낙태는) 타살이지. 그 엄마는 세상 떠날 때까지 그 아이 생각을 할 거예요. 고통스럽게.”
 
  ― 성경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남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느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느님을 때로 ‘내 어머니’라고 불러도 됩니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거든. 그럼, 어머니라고 해서 그 아버지가 달라지나요? 어머니라고 해도 그 아버지는 그 어머니지. 그죠?
 
  그래요.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이에게 ‘그럼, 어머니라고 불러 봐’라고 하는 것도 싸움을 피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굳이 그것을 신학적으로 따지지 말고, 그렇게 부르고 싶은 사람은 불러….”
 
  ― 실제로 하느님 아버지를 하느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정말? 그건 고집이고 자기 과시지. 그런다고 그런 여인의 생활이 뭐가 달라질까. 말 한마디를 가지고 실랑이하는 사람들이 행함이 없더라고.”
 
 
  “나같이 무식한 사람한테는 보수, 진보를 재교육시켜 주면 좋겠어”
 
  ― 6·13지방선거 때 민심의 방향을 보면 놀라워요.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이런 쏠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보수의 붕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보수의 붕괴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붕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 모두는 아니겠지만, 투표권자인 국민을 너무 가볍게 본 증거가 아닌가. 국민이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했다는 게 무서운 것 아닌가요? 안 되겠어, 안 되겠어 하는 생각이 여기저기 많아지는 것만큼 무서운 민주주의가 어딨나요. 이런 경험을 소중히 여겨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 질 때면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 아예 선거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인가요.
 
  “그럼. 질 것을 알면서 뻔히 나가서 돈 쓰고… 그게 무슨 짓들이야 글쎄.”
 
  ― 반대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인의 책임이 막중해진 것 같아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어. 뭐가 진보인지… 진보가 색달라야 할 텐데… 다르지 않고… 보수하고 차이가 많이 나야 할 텐데, 내가 정치 공부를 많이 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 느끼지 못한다 말야. 생활이 옛날 습관대로 살아서 보수라는 걸까, 젊은 시절 노동조합 만드는 데를 따라다녀서 진보일까? 나같이 무식한 사람한테는 보수, 진보를 재교육시켜 주면 좋겠어.”
 
  ―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의 민주주의와 지금 정치인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때 꿈꾸셨던 민주주의의 갈증과 지금은 어떤가요.
 
  “내가 젊었을 때는 지금처럼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 않았나요?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독재에 짓눌려 과연 바뀔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 요새 민주주의는 유모차 끌고 나오잖아요. 구석구석에 있던 국민이 동참하는 게 달라진 모습 아닌가.
 
 
  “‘소경과 같이 살 방법이 뭡니까’ 하고 물어야지”
 

  근데 정치하는 사람들 모두 교인들 아닌가. 그 교인들이 뭐를 했나. 진보와 보수를 위해 기도를 얼마나 했나요? 하느님께 지혜를 청한 뒤 보수·진보 정치인들이 목욕탕 같은 곳에 가서 벌거벗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 아닌가. 기도는 실천인데, 하느님 이름을 빌리는 것인데 하느님을 욕되게 했지….”
 
  신약성경 요한복음 9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수께서 길을 가다가 눈먼 소경을 만났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기자는 김 주교에게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김 주교는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이 직접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고, 여러 사람을 통해 변화시키는 방법도 있지. 요즘 세상의 ‘복지(福祉)’가 장애인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질문하지 말고, ‘그런 사람(소경)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라고 물어야지.”
 
  ― 어쩌면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우리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해석하면 고맙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선친이 땅이라도 물려줘서 이렇게 시작했지 아니면 엄두도 못 냈겠지. 또 내가 신부일 때 선임 주교(대한성공회 초대 서울교구장 이천환 주교)께서 ‘발달장애인 교육을 해보라’고 지시했기에 한 거지, 내가 ‘어딨소’ 하며 찾아가서 한 것은 아니니까.”
 
  ― 어쩌면 신의 뜻에 의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 있겠지요.
 
  “그럼, 그럼. 하느님 말씀을 통해 나한테 오니 하는 거지…. 양로원 지으려는 것도 하느님이 명령해서 짓는 거지, 내가 필요해서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 직접 신이 주교님께 명령을 하십니까.
 
  “글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하느님이 명령을 하시는구나, 해서 ‘네!’라고 답하는 것이 ‘착한 종’이지, ‘아니오!’ 하고 도망가는 것은 요나가 고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내가 갈 데가 어딨어?
 
  하느님 소리를 몇 번 들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 누구를 통해 들릴 수도 있는 것이고, 묵상 중에 (하느님) 소리는 못 들어도 성령의 은총으로 상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 꼭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들었나요?’라고 묻는 것은 너무 바리새인(규율에 집착하는 율법학자) 같지 않나요? 하하하.”
 
  구약성서 끝의 소(小)예언서에 나오는 ‘요나’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니느웨)로 가서 그곳 주민들을 회개시키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시리아인들을 용서받게 하기가 싫었다. 도망친 요나의 배가 폭풍을 만나 가라앉았을 때,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 사흘이 지나자 고래는 요나를 마른 땅에 토해냈고, 요나는 신의 명에 따라 니네베로 갔다는 이야기다.
 
  ― 북한에도 숨어 있는 신앙인이 있을까요? 분단된 지 68년이 지났는데 6·25 이전에 신앙이 있었던 분들은 여전히 신앙을 지키고 있을까요? 북한 선교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두꺼운 아스팔트를 뚫고 잡초가 자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잖아요. 하느님 말씀은 한번 뿌리가 내리면 잡초처럼 올라온다고 봅니다. 내가 신학교 시절, 원장 신부님이 그 말씀을 하셨는데 오래 기억에 남아요. 신앙은 어려운 곳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하셨어요.
 
  신앙을 막으려 아무리 높은 벽을 쳐도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가 자라나듯 언젠가는 터져요. 터지는 날은 하느님밖에 모르고, 우리는 터지도록 노력을 해야지.
 
  이북의 성실한 신앙인과 남한의 성실한 신앙인 중 어떤 사람이 잘났느냐고 하면, 난 이북의 교인이 더 잘났다고 봐. 그 억압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찬송하며 밖으로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은 못해도 그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느님을 외치는 남쪽 사람과 비교하면 월등하지 않을까?”
 
  ―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숨어 있던 신자가 나타날까요.
 
  “그럼!”
 
 
  “늙고 나서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11월 30일 서울 종로 서울YMCA에서 열린 제8회 민세상 시상식 모습이다. 앞줄 왼쪽부터 이세중 변호사, 강지원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수상자인 김성수 성공회 주교와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공재광 평택시장. 뒷줄 왼쪽부터 김태익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향순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민세 손자인 안영운·안영진·안영돈씨.
  ― 어린 아이들이 “하느님은 어떻게 생기셨어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
 
  “어떤 답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네요. 이런 얘기가 기억나네요. 미국에는 교회가 대체로 언덕에 있어 계단을 많이 올라가잖아요. 이 교회를 50년간 다닌 사람이 있었는데 아주 추운 겨울이었어요.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팔짱을 껴 주는 분이 있어 편하게 내려왔나 봐요. 이 흑인 여성의 팔짱을 껴 준 사람은 교회 신부님이었어요. 이 여성이 ‘교회를 십수 년 다녔는데 오늘에야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 같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라고 말했대요.
 
  하느님이 남자라도 좋고 여자라도 좋은데, 자애스런 행동이나 상대에게 기쁨을 줄 때 하느님이 계실 것이고 그게 하느님이 아닐까요? 도시락을 못 싸 온 친구와 함께 밥을 나눠 먹어봐요. 그럼 서로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 기쁜 마음이 예수님이지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조그만 교회예요. 내 몸이 하느님의 몸이지요.”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일어서려는데 김성수 주교가 이 말은 꼭 넣어달라는 당부를 했다. 작년 11월 《조선일보》가 제정한 ‘민세(民世·안재홍)상’을 수상했을 때 한 말이었다. 김 주교는 그 날짜 신문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 늙고 나서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주교의 말이다.
 
  “(이 글은) 원래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에 있는 한 주교의 묘비명에 적힌 문장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꼭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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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9-04)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9
이것만큼은 잘쓰셨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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