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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배우 김홍파

“〈내부자들〉 촬영이 끝났을 땐 몸져 누웠고, 〈암살〉 후엔 넋이 나갔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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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시절, 20대는 투쟁, 30대는 전쟁, 40대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 “연기를 하다 보면 무당처럼 (정신이)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느껴”
⊙ “악역은 악인처럼 느끼고 생각해야. 내 안에 촬영 끝날 때까지 악인과 살아야”
⊙ “배우로서 ‘나’의 존재를 철저히 죽이고 극중 인물로 ‘나’를 온전히 채워야”
⊙ “배우가 뭐냐고?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사람 ….”
  어디선가 본 듯한 알쏭달쏭한 얼굴,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한 내면을 가졌을 것만 같은 배우가 김홍파(金弘波·55·본명 金弘載)다. 이 미스터리한 배우는 악역이든 문제적 인물이든 사실적인 연기로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한다. 요즘 가장 ‘핫’한 조연이라고 할까.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2011)에선 조폭과 연결된 안기부 엄 실장으로,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선 위선적인 주진철 경찰청장, 〈내부자들〉(2015)에선 비열한 자본가 오현수 회장으로 분(扮)했다. 권력유착형 악역 전문 배우로 관객의 원성이 자자하더니 〈대호〉(2015)에선 인간미 가득한 약재상, 관객 1200만명이 본 〈암살〉(2015)에선 김구 역을 맡아 강직한 위인의 풍모를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조연의 한계 때문인지 ‘천의 얼굴’이라 부르기엔 아직은 낯설다. 감춰진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김홍파의 연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정점을 찍고 무르익을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배우로서 내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4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김홍파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부패한 자본가 오현수 회장 역을 맡았다.
  그와 만나기 전 〈내부자들〉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오현수 회장(김홍파)은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이 쓴 칼럼(미래자동차 비정규직 농성확대 누굴 위한 싸움인가?)을 소리 내어 읽는다. 오현수가 바로 미래자동차 회장이다.
 
  칼럼의 한 대목(종북 세력을 등에 업고 국가산업과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을 소리 내어 읽더니 오 회장의 입에서 욕설이 나온다.
 
  “이 빨갱이 새끼들.”
 
  이강희 논설실장이 낮은 소리로 말한다.
 
  “너무 괘념치 마시고 좀 기다려 보시죠.”
 
  오 회장 “뭔 소리고?”
 
  이강희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 하러 개·돼지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오 “하하하하. 그래 어찌됐건. 참 좋은 일이다. 언론사하고 기업이 마케팅 파트너십 맺는다는 것. 이봐, 앞으로도 좋은 글 고대하고 있을게.”
 
  이 “예.”
 
  이때 국회의원 장필우(이경영)가 등장한다.
 
  오 “비정규직 법안 어찌 됐노.”
 
  장필우 “이 장필우가 목숨 걸고 막고 있습니다. 이번 회기에 넝마가 될 겁니다.”
 
  이강희가 끼어들며 이렇게 추임새를 넣는다. “너덜너덜하게.”
 
  오 회장은 “우리 그라면 한잔 해뿔까”라며 크게 웃는다.
 
  〈내부자들〉에서 오 회장은 돈을 위해 권력과 언론을 주무르는 악인이다. 악의 화신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랄까. 선악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부자들〉을 찍고 앓아누워”
 
영화 〈암살〉에서 김구로 열연한 김홍파.
  약속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도착한 김홍파는 악의 화신과 전혀 거리가 멀었다. 말투 속에 부산 사투리가 묻어났다. 그러고 보니 영화 〈대호〉의 약재상이나 〈내부자들〉의 오 회장은 똑같이 경상도 방언을 쓴다. 드라마 〈38사기동대〉에서 다단계 기업 회장인 방필규 역시 사투리 억양이 살아 있다.
 
  그는 “〈내부자들〉을 찍고 사나흘을 앓아누웠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부자들〉 촬영이 끝났을 땐 몸져 누웠고, 〈암살〉 후엔 넋이 나갔습니다. 오 회장은 워낙 외향부터 강한 인물이다 보니, (소화하기에) 힘이 부쳤나 봐요.
 
  〈내부자들〉 대본을 봤을 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상납 같은 건 뉴스에서나 봤지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이런 것 찍어도 되나 싶었죠. 저나 백윤식, 이경영씨 모두 한 컷이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욕을 했어요.”
 
  그는 “촬영 내내 김홍파를 지우고 오 회장으로 숨 쉬고 생각하며 움직였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 서면 김홍파는 지워지고 오 회장만 남겨둬야 해요. ‘나’를 지울 수 있을 때까지 지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그 사람인 ‘척’만 하게 돼요. 배우는 자신을 보여선(드러내선) 안 됩니다. 온전히 극중 인물로 살아야 해요. 그게 배우의 삶입니다.”
 
  — 그래도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배우의 개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나요.
 
  “배우로서 ‘나’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극중 인물의 삶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런 연기법을 터득하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이 대목에서 기자는 뜨악했다. 그리고 ‘20년’이라니, ‘자신만의 연기법’이라니 ….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배우로서 ‘나’의 존재를 철저히 죽이고 극중 인물로 ‘나’를 온전히 채우는 것이죠. 징그럽게까지 드러내야 관객이 그 연기에 공감해요. 그러나 촬영이 끝나면 혼이 싹 빠져나갑니다. 사지가 축 늘어져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 풀어서 설명하자면.
 
  “극중 오 회장을 연기할 때, 이 문제적 인물의 성격이나 삶의 목표가 뭔지를 들여다보고, 그가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아가는지를 봅니다. 그 숨을 찾으면 제 숨은 안 쉬고 그 사람의 숨을 쉬려고 하죠.”
 
  — 숨이 뭔가요.
 
  “살아가는 힘, 삶의 가치관이자 목표죠. 혹은 그 사람을 지탱하는 생명줄이죠. 성격이 급한 이는 숨을 빨리 쉬고, 느린 사람은 숨을 천천히 쉬고 …. 자기 안에서 몸을 유지하는 독특한 방식이 바로 숨입니다. 〈내부자들〉의 극중 오 회장은 굉장히 천천히 숨을 쉬죠. 속(내면)에 힘이 강한 인물입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주진철은 호흡이 빠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 외에 주변 생각은 아예 안 하는 인물이죠. 〈암살〉의 김구는 숨이 빨라요. 하지만 빠른데 (숨을) 잡고 눌러요. 속내를 못 드러내고 자기를 확 누르는 거죠.”
 
  〈암살〉에서 김구(김홍파)는 밀정의 의심을 받는 염석진(이정재)을 두고 고뇌하는 장면이 있다. 김구는 “염석진이 상해에서 사사키를 만나면 확실한 밀정이다. 확실한 밀정이면 그때 죽이라”고 지시한다. 극중 염석진은 김구의 신임이 두터운 임정 경무국 대장. 그러나 일제 밀정으로 암약하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그리고 암살을 지시하는 김구의 심사는 복잡하다. 선과 악, 믿음과 불신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속 깊이 억누른다고 할까.
 
  김홍파는 김구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리려 틀니를 꼈다. 매일의 촬영이 끝나도 항상 끼고 살았다. 어느 날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속에 김구가 보이더란다.
 
  “연기를 할 때는 신나고 좋지만 촬영이 끝나면 기력이 확 떨어집니다. 며칠씩 앓아누워요. 극중 인물로 분(扮)하려면 평소보다 에너지를 몇 배나 더 써야 하니까요.”
 
 
  빙의 연기법?
 
  — 마치 극중 인물의 영혼을 배우 몸으로 불러들인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른바 ‘빙의 연기법’아닌가요.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무당처럼 (정신이)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느껴요. 어찌 보면 무서운 것이죠. 김구로 분할 때 그런 느낌이었는데, 뭔가가 쑥 들어온다고 할까. 영화사 관계자나 감독, 배우들이 저더러 ‘이상한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해요. 그러니까 …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뭔가를 하고 있는 ….
 
  이런 연기는 극중 인물의 삶을 진실되게, 사실대로 표현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표현하려면 일상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살아야 해요. 또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요.”
 
  — 그럼 ‘나’는 누군가요. ‘김홍파’는 누구입니까.
 
  “굉장히 다혈질입니다. 20대 김홍파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죠. 불같은 성격으론 배우가 안 되겠다 싶어 저를 고치기 시작했어요. 20년간 저를 버렸더니 어느 날 새로운 김홍파가 만들어진 것이죠.”
 
  김홍파의 연기는 ‘2인자의 미학’으로 알려진 배우 정진각의 연기와 닮아 있는지 모른다. ‘튀지 않으면서 작품 전체의 중량감을 높여 주는 배우’랄까.
 
  “주로 조연으로 출연하지만 주연이나 조연, 단역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극중 인물의 삶 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삶을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하느냐가 조연의 삶이죠.
 
  주인공이야 극중 드러낼 기회가 많지만 조연은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표현하잖아요. 응축미가 조연 연기의 아름다움이죠. 조연은 극중 등장하는 순간부터 눈빛이든 걸음걸이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합니다. 짧은 시간 내 어필하지 못하면 게임 끝이에요.”
 
  — 주로 권력유착형 악역에 출연한 경우가 많은데 악역은 어떻게 연기하나요.
 
  “마치 ‘나’와 극중 악인이 함께 숨 쉬듯 악인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눈빛도 악하게 응시하죠. 보통 영화 한 편 촬영하는 데 6개월이 걸리는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
 
  — 어떤 악역을 맡고 싶나요.
 
  “인간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다 있잖아요. 그걸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요. 피해자면서 가해자며 집에선 다정한 가장이나 밖에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발버둥치는 … 그런 아버지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요. 삶이 고단하고 처절하기도 한 ….”
 
 
  부산 사투리와 연극판
 
  배우 김홍파는 1962년생이다. 부산에서 태어났다. 배우가 되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스무 살이 넘어 상경, 대학로 연극판 주변을 기웃거렸다. 어머니는 법대 진학을 바랐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꿈이었다. 지독하게 고집을 부렸다.
 
  “상경해 어느 극단에 갔더니 부산 사투리를 쓴다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어요. 그때가 21살 때였어요. 당시엔 사투리를 쓰면 배우가 될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속으로 두고 보자고 했죠. 언젠가 (사투리가)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래도 연극판에서 살아남으려 표준어 발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2외국어 공부하듯 국어 교과서를 또박또박 읽었다.
 
  “한 5년간 가족들을 아예 안 만났습니다. 무모하달 수 있지만 가족과 만나면 사투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올해로 서울 온 지 35년이 됐는데 지금 이 정도가 됐어요. 감독들이 제 고향이 부산인지 모르고 캐스팅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가 사투리를 너무 잘 쓰니까 놀라며 고향을 물으면 그제야 부산이라 합니다. 하하.”
 
  — 요즘도 연극판에서 사투리를 쓰면 망신을 당하나요.
 
  “꾸미거나 과장된 표현을 쓰지 않고 리얼하게 표현하는 시대가 되면서 사투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안석환 배우가 ‘목포 사투리’로 열연한 〈남자충동〉의 초연을 본 일이 있어요. 이젠 감독이나 작가도 배우가 쓰는 사투리를 생각하고 대본을 써요. 드라마 〈38사기동대〉를 찍을 때, 감독이 ‘사투리를 쓰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투리보다 표준어로 말하고 그 위에 사투리 악센트를 살짝 입히겠다’고 했어요.
 
  극중 방필규는 지방에서 상경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성공하려 애쓴 인물인데, 젊은 시절 저처럼 사투리를 버리려 애쓰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표준어에다 사투리 악센트를 입혔더니 방필규의 캐릭터가 나왔어요.”
 
  〈38사기동대〉에서 방필규는 다단계 기업의 회장으로 검은돈의 실체 최철우의 오른팔로 등장하는 악인이다. 방필규의 섬뜩한 대사 몇 문장을 소개하면 이렇다.
 
  “지 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것 맞제?”(7화)
 
  “더 크기 전에 쥑이라.”(8화)
 
  방필규의 언어는 사투리와 표준어의 경계선이라 해야 할까. 표준어 쓰는 악인보다 사투리 쓰는 악인이 더 고약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극단 목화 시절
 
  김홍파는 20대를 무명배우로 보내다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부모 몰래 밀항을 해서 일본으로 건너갈 생각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일본은 왜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연극문화가 발전해 있잖아요.”
 
  — 현해탄 건넜나요.
 
  “(부모님께) 잡혀서 못 갔어요. 부모 몰래 이 극단 저 극단 숨어 다녔으니 어디 제대로 연기를 배울 수 있었어야지요.”
 
  그 무렵 그는 혼자서 ‘해프닝 극’ 같은 걸 연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스크린 도어가 열리자 마자 도둑이 되어 쫓기듯 달리는 겁니다. 주위 사람이나 환경을 의식하며 말이죠. 그러다 경찰이 사이렌을 켜고 달려온 적도 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스물여덟 때 어머니와 담판을 지었죠. 당시 1년 과정인 ‘공연예술아카데미’라는 연극학교가 생겼는데 선생님이 좋았어요. 오태석, 김상만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거든요. 합격을 하면 배우의 길을 걷고, 떨어지면 법대에 진학하기로 약속했어요.”
 
  다행히 김홍파는 공연예술아카데미에 합격했고 정식 연기수업을 받게 된다. 그리고 수료 후 극단 목화를 찾아갔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극단 목화는 연출가 오태석의 손때가 묻은 곳이다. 대부분이 서울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배우 박영규·김학철·한명구·김병옥·김응수·손병호·유해진·성지루·박희순 등이 목화를 거쳐 갔다.
 
  김홍파는 사흘간 극단 사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무릎은 왜요.
 
  “무작정이죠. 목화에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나흘째 되던 날 저를 받아주었어요. 그래서 1992년 겨울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올려진 연극 〈백마강 달밤에〉로 데뷔할 수 있었죠. 어머니가 오셔서 제 연기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렇게나 배우가 꿈인 아들을 무대 위에서 처음 보셨던 겁니다.”
 
  배우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신문배달, 세차 아르바이트, 햄버거 가게 주방장 등 생계를 잇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신문배달과 노가다는 30대 말까지 계속했다”고 한다. 고시원 총무 생활도 6년 반 했다.
 
  “극단 목화는 전쟁터였어요. ‘삶의 투쟁’ 정도가 아니었어요. 단원 간 (감정이) 엉킨 게 너무 많고 애증관계가 복잡했어요. 어쩌면 오태석과 극단 목화가 연극계에서 차지하는 힘이 너무 큰 탓이었는지 몰라요.
 
  저는 자신에게 엄청나게 잔인하게 살았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어요. 40대 중반쯤에는 죽을 생각도 했어요. 소주 한잔하며 하소연할 여력이 없었고 단단하게 자신을 누르며 살았습니다.”
 
  — 왜 그렇게 힘이 드신 거죠.
 
  “나름 어느 위치에 (연기가) 도달했는데 더는 할 게 없어 보였고, 갈 곳도 없이 느껴졌어요. 제 연기의 색깔이 달라서인지 감독들이 굳이 저를 캐스팅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좋은 배우는 좋은 인생을 사는 사람”
 
배우 김홍파와 어머니 김영란, 아들 김상우군.
  김홍파의 연기를 처음 인정한 이가 영화 〈베스트셀러〉(2010)의 이정호 감독이다. 그는 “이 감독을 못 만났다면 세상 밖으로 못 나왔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 이 감독은 김홍파의 어떤 면을 주목했나요.
 
  “제 연기법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뭔가 저 사람은 다르다, 신선하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이후 다른 감독들도 저를 다시 보게 됐는데 흔히 ‘배우 김홍파와 극중 김홍파는 매치가 안 된다. 과연 저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금해했다고 해요. 하하하.”
 
  김홍파는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고스톱 살인〉(2013)과 〈악인은 살아있다〉(2014)는 사실상 주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제 삶의 20대는 투쟁이었고, 30대는 전쟁, 40대는 깨달음의 시간이었어요. 〈더 테러 라이브〉 〈암살〉 〈내부자들〉이 흥행하면서 사람들이 배우 김홍파를 인정하게 됐는데 어찌 보면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배우로 살아갈 20년 동안 제 연기를 더 발전시키고 관객의 마음도 지치지 않게 만들고 싶어요. 다작 출연은 안 하려 해요. 하고 싶은 작품은 많지만 저를 아끼려고 합니다.”
 
  — 김홍파 … 이름이 좀 특이하네요.
 
  “본명은 김홍재(金弘載)입니다. 대학 은사께서 클 홍(弘), 물결 파(波) ‘홍파’라는 예명을 지어 주셨는데, 배우의 시작과 함께 김홍파가 제 이름이 됐어요. 세상 시련과 역경·파도가 밀려와도 이겨 낸다는 의미, 세상 사람들에게 큰 득이 되는 파도로 돌려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는 “훗날 배우 양성소를 세워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배우가 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사람이라고 ….”
 
  — 그럼 ‘좋은 배우’는 어떤 사람입니까.
 
  “인생이 좋아야 합니다. 또 좋은 인성을 지녀야 해요. 더러 인성이 더러워도 연기가 좋으면 박수를 받을 순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삶이) 개판이 되더군요. 인성이 나쁘면 자기의 길(연기)을 올곧게 끌고 가지 못해요.”
 
  — ‘좋은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겁니까.
 
  “하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죠. 욕망과 욕심이 결국 슬픔을 주고 불행을 준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제 부족함을 알고 (부족함을) 메우려 노력할 수 있는 삶 … 그게 잘 사는 인생, 아닐까요?”⊙
 
김홍파의 ‘숨 쉬는’ 기법
 
  “해맑아져야 연기가 보인다”
 

  김홍파는 실감나게 연기하려면 극중 인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일상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도 극중 인물과 똑같이 호흡하고, 숨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사실 (극중 인물과 똑같이) 숨을 안 쉬면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인 척’을 하게 되고 꾸미게 된다. 꾸민다는 것은 극중 인물에 꼭 맞는 숨을 안 쉰다는 의미다. 그럼 연기도 안 되고 배우 자신도 힘이 든다. 배우는 ‘내’가 아닌 ‘저 사람’이 돼야 한다. 온전히 ‘저 사람’이 되려 터질 듯 머리가 아팠는데 우연히 해답을 찾았다. 놀이터에서 역할극을 하며 노는 아이를 보다가 깨달았다. 아이들처럼 욕심을 버리고 해맑아져야 ‘저 사람’이 될 수 있다. 연기의 화두는 놀이터다. 촬영 현장이 놀이터다. 책(대본) 속 세상이 놀이터다. 놀이터에 와서 재밌게 놀다 가는 것, 자신의 욕심이나 감정, 생각이 전혀 개입이 안 된 상태다. 책 속 세상과 극중 인물의 삶, 그 안에 있는 스토리가 전부다. 김홍파가 지닌 복잡한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욕심, 생각을 아예 지워 버리면 극중 세상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려면 나 자신이 해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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