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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대선(大選)

문재인 傳奇 (3/4)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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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가.
꼭 그런 것도 아냐”
- 문재인


⊙ 부모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 흥남철수 때 월남해 경남 거제에서 출생
⊙ 어렸을 적부터 가난에 진저리, “모멸감과 반항심 생겼고 세상의 불공평 느껴”
⊙ 고3 때부터 술·담배, 별명은 ‘문제아(問題兒)’
⊙ 대학 시절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읽고 큰 감화, 운동권의 길로
⊙ 대학 3학년 때 첫 시위 주도, 4학년 때 시위 주모자로 구속
⊙ 석방 후 강제 징집… 타의(他意)로 공수부대 가. 당시 상관이 전두환·장세동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동원… 미루나무 자르지는 않고 외곽 경비
⊙ 1980년 ‘서울의 봄’ 때 경찰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소식 들어
⊙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하고도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 탈락… 노무현과 만나
⊙ 부산 미 문화원 점거, 부산 상공회의소 점거자 변론 등 시국 사건 도맡아
⊙ 釜民協·國本·民辯 등 재야단체 설립 초창기 멤버
⊙ “동의대 사건 주모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고 해서 순직 경찰관에게
    모욕이 되는 것은 아냐”
⊙ “반기문은 관운(官運) 타고난 사람… 유엔사무총장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덕”
⊙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대통령제에 맞지 않아”
⊙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찰에 분리 귀속…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만들어야”
⊙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조건 미국 먼저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이제 극복해야”
⊙ 민정수석 2번 하면서 “제일 아쉬운 건 국가보안법 폐지 못 한 일”
⊙ 민정수석 재임 시 통진당 이석기 이유 없이 2차례 사면받아
⊙ “대북 경제제재 풀고 개성공단 재가동해야…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서 결정”
⊙ 조갑제 “문재인의 노선을 요약하면 친북(親北), 친중(親中), 반미(反美), 반일(反日),
    반한(反韓), 반법(反法)”
1988년 총선에 출마한 노무현 변호사는 “노무현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선됐다.
  31. 노무현과의 만남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 길목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나를 변호사가 되게 한 그 모든 과정이, 결국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운명적 수순처럼 느껴진다.”
 
  “나와 노 변호사를 연결시켜 준 건, 내 사법고시 동기이자 후임 민정수석을 하기도 한 박정규였다. 그 과정과 인연이 묘하다. 박정규는 사시에 늦게 합격했다. 우리 동기들 가운데 나이가 몇 번째로 많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수원 마치면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옛날 김해 장유암에서 노 변호사와 고시공부를 함께했던 인연이 있었다. 당시 먼저 고시에 붙어 판사를 마치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노 변호사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은 터였다. 노 변호사는 연수원을 마치고 합류할 박정규를 위해 자신의 사무실에 방과 책상까지 모두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려오기로 한 박정규가 검사로 임용된 것이다. 노 변호사가 준비했던 계획이 시작도 하기 전에 허사가 됐다. 그러니 박정규는 노 변호사에게 미안해하다가 마침 내가 변호사를 하게 되자 자기 대신 나를 소개한 것이었다. 한번 만나보라고 해 노 변호사를 찾아갔다. 나는 그때까지 노 변호사를 전혀 몰랐다. 생판 초면이었다.”
 
 
  32. 첫 대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학창 시절 데모하다 제적당하고 구속됐던 얘기, 그 때문에 판사 임용이 안 된 얘기…. 노 변호사는 자신이 변론했던 ‘부림사건’ 경험을 얘기하면서 그런 일로 판사 임용이 안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함께 분노해 주었다. 그리고 당신의 꿈을 얘기했다. 인권변호사로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었고 깨끗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했다. 특히 ‘깨끗한 변호사’는 해보니 마음처럼 쉽지가 않더라고 고백했다.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따뜻한 마음이 와 닿았다. 그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무실을 둘러봤다. 정말이지 나는 몸만 들어가도 될 정도로 준비가 돼 있었다.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에서 내 변호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33. 선배와 친구
 
  “노 변호사는 나를 편하게 대해줬다. 그분은 나를 ‘친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표현에는 사연이 있다. 대선을 치르던 2002년 나는 부산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았다.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에서 노 후보가 후보연설에 그 표현을 쓰셨다. ‘사람은 친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선대본부장이라는 체질에 맞지 않는 직책을 맡아준 후배에게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나이도 여섯 살 차이가 나고 고시도 5년 위면 대선배다. 그런데 그 말씀 덕분에 나는 지금도 과분하게 ‘노무현의 친구’라는 호칭을 듣고 있다.”
 
 
  34. 인권변호사, 운동권 변호사
 
변호사 시절의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1년에 두 번 사무실 전 직원이 가족 동반 야유회를 가곤 했다.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열심히 변론했다. 차츰 우리는 부산 지역 노동인권 변론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됐다. 부산 지역뿐 아니라 그때까지 인권변호사가 없었던 인근의 울산, 창원, 거제 지역 사건까지 맡게 됐다. 부산과 서울의 학생운동 조직이 함께 기획한 부산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부산상공회의소 점거 농성 같은 사건도 맡았다.”
 
  “부산 재야를 이끈 분이 송기인 신부님과 작고하고 지금은 안 계신 부산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님이었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은 연로하셨지만 늘 우리를 격려해 주고 중요할 때엔 직접 나서주기도 했던 정신적 지주였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1984년 무렵부터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와 인권 단체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석방된 부림사건 멤버들이 주로 실무 역할을 맡았다. 1984년에 처음 복원된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가 공해문제연구소 부산지부였다. 공해문제연구소는 정호경 신부님이 이사장을 맡았고 최열씨가 실무 일을 꾸렸다. 부산에선 그 이름만 빌렸을 뿐 실제로 그쪽과 연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주화운동을 직접 표방하기가 두려웠던 시기라 에둘러 반공해 단체를 표방한 것이다. 물론 부산의 재야인사들이 거의 다 모인 단체였다. 송기인 신부님이 대표를 맡았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발기인으로 참여를 했다. 정식 출범할 땐 노 변호사도 함께 참여했다. 같이 이사직을 맡았다.”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약칭 부민협)가 설립됐다. 서울의 민통련과 같은 성격이었다. 부산의 모든 재야를 망라하는 조직이었다.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체를 마련한 것이다. 후에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도 부민협이 중심이 됐다. 부민협 대표도 송기인 신부님이 맡아주셨다. 탄압을 각오해야 했던 시기여서 3·1운동 식으로 33명이 비장하게 대표 발기인으로 나섰다. 나는 노 변호사와 처음부터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나중엔 상임위원도 맡았다. 노 변호사는 노동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나는 민생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그것으로 둘 다 재야운동에 깊숙이 발을 내디뎠다. 노 변호사나 나나 개신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만들어진 부산NCC인권위원회에도 인권위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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