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하는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박정희는 ‘경제의 정치화’ 막았던 지도자”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던 것은 잘하는 마을에 상을 주었기 때문… 못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지금과 반대”
⊙ “박정희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효과적일 것”
⊙ 100주년 앞두고 기념관 리모델링, 박정희총서 간행, 학술행사 등 준비 중

좌승희
1947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위원,
한국경제연구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기개발연구원장·이사장 역임,
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공공정책리더십학과 석좌교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
《신(新) 국부론》 《진화를 넘어 차별화로》 《좌승희 박사의 대한민국 성공 경제학》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 저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서부운전면허시험장 쪽으로 향하다 보면 커다란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물이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이하 박정희기념관)이다. 태극기를 내건 이유는, 개관한 지 4년 반이 넘었는데도 이곳이 박정희기념관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으로 향하는 마포18번 마을버스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행’이라는 안내 표지가 없었다. 이런 사정들은 있는 듯, 없는 듯한 기념관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되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는 데도 곡절이 많았다. 기념관이 생기게 된 것은 1999년 5월 13일, 대구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DJ) 당시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관계 인사들에게 기념사업 지원을 약속하면서부터였다. 이는 DJ와 박정희 대통령의 화해로 비쳐지면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사단법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초대 회장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발족하자, 많은 국민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성금을 냈다. 하지만 이듬해 2·18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기념사업에 대한 DJ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은 기념관을 짓기 위해 내놓았던 국고보조금을 환수했다가 기념사업회와의 행정소송에서 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2월 21일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2013년 6월에는 기념사업회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하 재단)으로 바뀌었다. 이후 김기춘, 손병두 이사장에 이어 금년 5월 좌승희(左承喜) 현 이사장이 취임했다.
 
  재단은 지금 큰일을 하나 앞두고 있다. 내년 2017년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인 것이다. 《월간조선》은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을 맞아 박정희재단과 《월간조선》 독자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매달 한 번씩 ‘박정희시민강좌(가칭)’를 개최하고, 이를 지면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8월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기념관에서 좌승희(左承喜) 이사장을 만났다.
 
 
  “그 과(過)가 없었다면, 공(功)도 없었다”
 
  — 경제도 어렵고 한데, 내년에 100주년 기념사업을 한다고 하면, ‘국민들은 살기 어려운데,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한다’는 소리가 나올까 걱정입니다.
 
  “기념사업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 재단에서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남다른 성과를 낸 분이니만큼,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서 우리가 선양할 것은 선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그의 잘못을 따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 과(過)라는 것이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잖습니까?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분의 과는 국가발전과 민족웅비를 위해 필요하다는 대아적(大我的)인 관점에서 일을 하다가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그 과가 없었다면 공도 없었습니다.”
 
  — 요새처럼 경제도 어렵고, 성장동력은 보이지 않고, 국제정세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이래서 유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여야 간에는 국가경제 운영 패러다임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해서 빨리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가장 유력한 야당 주자였던 김대중 후보는 ‘대중경제론’을 내세웠습니다. 제목은 그럴듯하지만 내용을 보면 요즘 얘기하는 경제민주화, 결국은 나누어 먹자는 얘기 아닙니까? 국가산업 발전과 국민정신에는 치명적인 얘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면 과연 나라경제가 제대로 되겠느냐 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 그래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사실 아니냐는 반론도 많습니다.
 
  “후진국들을 보면 알잖아요. 경제발전 없이 민주주의부터 시도한 나라 중에서 제대로 발전한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생각으로 했을 것입니다. 유신 같은 경우,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중화학공업 건설도 선언한 마당에, 제대로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려면 ‘다시 한번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봅니다.”
 
 
  “박정희 리더십은 보편적인 것”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살펴보고 있다.
  — 경제민주화를 비판하시는데, 지금 ‘경제민주화’는 대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망했지만,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를 만나서 지금 자본주의가 다 사회주의화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미 그렇고, 미국도 오바마 정권 이후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경제운영에서 사회주의, 나누어 먹자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어요,”
 
  —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하다가 경제민주화 얘기로 흘렀네요.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그분이 ‘경제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왜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 오늘날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통일을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북한경제가 파탄이 난 지금 상황에서 통일이 되면 큰일 납니다. 먼저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서 북한을 1인당 국민소득 5000~1만 달러 수준으로 높여 놓아야 합니다. 그 이전에 통일을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남한의 좌파세력과 북한의 2300만 동포가 합쳐지면, 통일한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어요. 북한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험은 여전히 유용할 것입니다.”
 
  — 1960년대라는 시대에 당시의 국제 정치·경제 상황 속에서 가능했던 산업화정책이 지금 북한에 적용 가능할까요.
 
  “구체적인 산업정책의 내용은 다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전 세계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걸 북한에도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 그게 뭡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세상에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리가 작용한다, 노력하는 자가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경제학의 기본입니다.”
 
 
  경제의 정치화 vs. 정치의 경제화
 
  — 누구나 아는 너무 단순한 얘기 아닌가요.
 
  “문제는 그 단순한 걸 정치인들은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전국의 마을을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로 구분했어요. 그리고 가장 잘하고 있는 자립마을에 우선적으로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자조마을을 지원하고, 기초마을은 아예 지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자조마을은 자립마을로 올라서서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기초마을도 자조마을, 자립마을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못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지금과는 반대였습니다.”
 
  좌 이사장은 “1960년대 재건국민운동 등과는 달리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면서, “이게 새마을운동의 요체이고,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에 새마을운동을 수출한다고 하는 새마을운동본부나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도 이걸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전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두 남의 탓만 하고, 노력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희한한 종(種)으로 바뀌었어요.”
 
  —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그런 리더십은 21세기 후기산업사회 한국에는 맞지 않는다, 박 대통령을 이제 그만 ‘역사 속의 인물’로 보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권위주의적·독재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을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독재를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지구상에 독재를 했던 나라가 하나둘인가요? 하지만 그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잖아요? 박 대통령의 성공 원인이 진정 어디에 있었는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요? 뭔가 달라졌는데요? 나눠 먹기 하는 시대니까 세상이 달라진 건가요? 이건 사회주의예요.”
 
  — 사회주의라고 하는 건 지나친 얘기 아닌가요.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결과를 향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본주의입니다. 사유재산권 인정해서 돈 벌게 해 놓고 나중에 가서 ‘다 나눠라’, ‘열심히 안 한 사람에게 더 줘라’라고 하면, 그게 사회주의지 자본주의입니까?”
 
 
  “박정희 전문도서관 지향”
 
  좌승희 이사장은 “지금 전 세계가 저성장 양극화의 늪에 빠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은 지금 전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평등추구 정책, 사회주의적 정책은 ‘경제의 정치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를 압도하고 시장을 통해 열심히 일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려내는 차별화를 허용하는 경제정책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경제화’입니다.”
 
  얘기를 박정희기념관으로 돌리기에 앞서 박정희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고등학교 때 제1회 5·16장학금(지금의 정수장학금)을 받은 것하고, 대학 시절에 정영사(正英舍·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으로 세운 서울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대통령을 한번 뵌 것이 개인적인 인연의 전부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인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이름에는 ‘기념’과 ‘도서관’ 사이에 가운뎃점이 찍혀 있다. 기념관+도서관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된 것은 건립 당시 기념관 건립 반대세력을 의식해서 도서관 기능도 갖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념관은 2013년 2월 개관했지만, 도서관 기능은 이제 정비 중이다. 이를 두고 이 지역 야당 국회의원이나 시(市)의원, 재야단체 회원, 언론들이 계속 이의를 제기해 왔다.
 
  — 도서관 기능을 언제 갖추느냐고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도서관 기능을 갖춰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 전문도서관입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희귀자료들을 소장하고,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도서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수험생 공부방을 생각하는데 그런 도서관과는 다릅니다.”
 
 
  “6개월~1년 후 달라진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기념관은 서울시 공원용지 위에 설립되었다. 때문에 기념관을 10년간 운영한 후에는 서울시에 기부체납하게 되어 있다. 손병두 전 이사장 시절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이 서울시에 땅을 매입하겠다는 뜻을 표했었다.
 
  — 기부체납이나 부지매입 문제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전임 이사장 때, 기부체납하겠다, 혹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는데, 서울시에서 아직 답이 없습니다.”
 
  — 서울시가 기부체납을 받으면, 시장의 이념에 따라 ‘박정희기념관은 문 닫고 나가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 전임 이사장 시절 추진하던 기념관 부지 매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닌가 봐요.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내 주신 피 같은 성금을 가지고 땅을 사고파는 건, 우리에게나 서울시 모두에게 떳떳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돈을 가지고 재단을 발전시키고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을 선양하는 데 쓰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다른 어떤 대통령들보다 혁혁하지만, 기념관의 전시·운영은 김대중기념관이나 노무현기념관보다 못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기념관을 짓는 데 치중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데, 6개월~1년쯤 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 기념관에 박정희 대통령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물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상대로 전시물을 기증받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시 기능도 중요하지만, 박 대통령의 정신과 업적을 학문적으로 잘 정리해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접근법은 너무 아카데믹한 거 아닌가요. 박정희 시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정서적인 접근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박정희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늘어날수록 ‘독재자’니 ‘친일파’니, 그 시절의 경제발전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등 잘못된 것이었다느니 하는 선동이 더 잘 먹혀 들어갈 겁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박정희 시대를 당시의 경험만 가지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5·16, 유신, 한국적 산업혁명 같은 것들은 충분한 설명 없이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냉철하게 규명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없어도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분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길러내야 합니다.”
 
  —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인터넷과 SNS 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젊은 세대를 위한 박정희 잡지 같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10월 중 ‘유신’ 학술심포지엄 개최 예정
 
말년에 추수 현장을 돌아보는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신상필벌의 원칙을 체화한 국가운영의 리더였다.
  좌승희 이사장의 구상은 이미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박정희재단은 지난 6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돌 기념 제1차 학술심포지엄 -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를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기조연설을 했다. 이어 3부로 나뉘어 진행된 심포지엄에서는 ‘박정희의 산업혁명 - 세계 최고수준의 동반성장’ ‘집권 18년의 박정희 - 혁명가인가, 정치가인가’ ‘박정희의 부국강병책’ 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10월 중에는 ‘10월 유신’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심포지엄을 가질 예정이다. 내년에도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한 다양한 학술행사들을 개최하려 하고 있다.
 
  또 재단은 각계 연구자들로 구성된 박정희연구회(회장 유석춘 연세대 교수), 청년·대학생들이 만든 청년박정희연구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1~2회씩 주제를 정해 놓고 세미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나온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박정희총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취나 성취들을 답사하는 ‘박정희투어’ 등도 모색하고 있다. 좌 이사장은 “《월간조선》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박정희시민강좌(가칭)’와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보다 알기 쉽게,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파하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은 누구였는지, 왜 우리가 지금 그를 기억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고도, 포퓰리스트라고도, 독재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전해 내려온 신상필벌의 원칙을 체화(體化)한 국가운영의 리더였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국가운영에서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인재는 인재답게 대접해야 인재가 나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리더십의 실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가발전을 위해 올바른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기억해야, 위기극복의 리더십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신협중앙회 여성조선 공동 주최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