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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궁금하다

헌정회 원로회의 신임 의장 장경순

“국가보훈처가 재향군인회 정상화 가로막아”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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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때마다 돈 쓰는 풍토 없애지 못하면 향군鄕軍은 가망성 없어
⊙ “향군과 헌정회가 나라 지탱하는 양대 축”
⊙ 헌정회원도 이유 없이 회의 불참하면 제명시키겠다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양대 단체가 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약칭 향군(鄕軍)과 대한민국 헌정회, 약칭 헌정회다. 향군은 육해공군 예비역과 보충역 혹은 제2국민역으로 소집돼 복무를 마친 사람들을 회원으로 한다. 현재 회원 수는 850여만명이며 사망자를 포함한 가입자 수는 1400여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헌정회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으로, 올 4월 현재 가입자 수는 홈페이지에 2794명으로 나와 있다. 군과 입법부 원로(元老)들의 모임인 이들 양대 단체가 최근 호랑이 같은 노(老)장군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올해 94세인 장경순(張坰淳) 전 국회부의장이다. 장 전 부의장은 올 3월 30일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됐다.
 
  향군은 조남풍(趙南豊) 직전 회장이 지난해 3월부터 4월까지 대의원 200여 명에게 ‘표’를 부탁한다며 10억원을 돌리고 향군이 운영하는 수익사업의 사업권을 사업가 조모씨에게 넘겨주는 대신 선거자금 17억원 등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내홍에 휩싸인 후 주인 잃은 배처럼 좌초하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올 4월 15일 향군 시·도 회장단이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린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박용옥(朴庸玉) 회장직무대행 등 부회장단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했다. 그러자 향군은 “일부 세력이 불법적인 폭거를 저질렀다”며 “가담 정도가 심한 회원들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강력히 징계하겠다”고 밝혀 ‘내분’ 단계로 접어들었다.
 
  향군회장의 기소에 따른 지도부 공백과 내분은 그로부터 1주일 뒤인 4월 22일 검찰이 차기 향군회장에 출마한 후보 세 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자료 등을 확보해 ‘점입가경(漸入佳境)’의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4월 28일 박용옥 향군회장 직무대행이 자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뉴스를 접하며 장경순 신임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을 떠올렸다. 그는 올 1월 26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향군회장에 출마하겠다”며 “내가 이 나이에 까마득한 후배들과 표대결을 해 보겠다는 것은 향군이 더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썩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돈 쓰고 본전 뽑으려는 게 관행처럼 돼
 
  — 향군 사태가 왜 이 지경에 이른 겁니까.
 
  “실명(實名)을 밝힐 수는 없지만 A씨가 회장을 할 때부터 돈선거가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회장들은 전부 돈을 써서 회장이 된 겁니다. 대의원들에게 봉투를 돌렸으니 그 다음엔 어떻게 하겠어요?”
 
  — 어떻게 합니까.
 
  “본전을 뽑아야겠지요. 본전을 어떻게 뽑습니까. 향군이 운영하는 수익사업의 운영권을 업자들에게 넘겨주는 대신 뒷돈을 받는 거지요. 조남풍 전 회장이 바로 그런 혐의 때문에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게 아니겠어요?”
 
  — 그렇다면 그 뿌리인 A 전 회장부터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왜 조남풍 전 회장만….
 
  “다들 쉬쉬하고 있어서 그런 거지요. 아마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면 다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겁니다.”
 
  — 지난 1월 말 저에게 향군회장에 출마하신다고 했는데 왜 안 했습니까.
 
  “다 포기했어요. 제 힘으로는 되지 않을 거 같고…. 전 손을 뗄 테니 알아서들 해 보라고 했습니다.”
 
  — 장 회장께서 생각하는 해법은 뭡니까.
 
  “선거를 하는 한 돈봉투가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제가 조남풍 전 회장 사태가 나고 나서 추대제로 하자고 했어요. 추대제로 가장 깨끗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임무를 맡기면 향군이 정화(淨化)될 수 있는데 다들 무슨 욕심 때문인지 제 말을 안 듣더군요.”
 
 
  김희상 장군 비대위원장 추천했지만 보훈처가 묵묵부답
 
1969년 7월 29일 영빈관을 나서고 있는 국회부의장 시절의 장경순(왼쪽).
  — 감독관청이 국가보훈처 아닌가요.
 
  “향군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국가보훈처 책임도 큽니다. 전 처음에 지도부 공백 상태인 향군 지도부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바꾸고 비상대책위원장에 김희상(金熙相) 장군을 추대했어요. 한사코 거절하는 그를 만나 말했지요. ‘당신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준다면 내가 당신 밑에서 비대위원을 하겠다’고. 한참 선배인 내가 자기 밑에서 일하겠다고 하니 그때는 거절을 못하더구먼요.”
 
  — 그런데 왜 비상대책위원회가 아직도 생기지 않은 겁니까.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만나 이런 제 의견을 전달했지요. 무슨 꿍꿍이인지 답을 안 하더니 올 1월 26일에 보훈처 차장이 포함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하더군요. 이게 뭡니까, 보훈처 차장을 비대위원에 포함시킨 것은 보훈처가 향군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 아니겠어요? 이번에 향군이 엉망이 된 데는 보훈처 책임이 분명히 큽니다. 특히 박승춘 처장! 그 사람뿐 아니라 향군의 장군 가운데는 비겁한 인물이 많아요.”
 
  — 누굽니까.
 
  “B씨, 그 사람은 예전에 대사를 지낼 때 위기 상황에서 홀로 도망친 사람입니다만 제가 크게 도와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장관을 지낸 C씨. 그들에게 ‘향군을 재건시키려면 깨끗한 인물을 추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향군 회의에서 지지 발언을 해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정작 회의 때 둘 다 꽁무니를 뺐더구먼.”
 
  — 최근 향군은 내분에 소송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향군뿐 아니라 헌정회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1993년 김주인 회장이 재출마했는데 신도환(辛道煥), 안동준씨가 나와 삼파전이 벌어졌지요. 김주인은 81표, 신도환이 52표, 안동준이 25표를 얻었는데 신도환이가 선거부정이라며 김 회장을 고소했지요.”
 
  — 그래서 어떻게 푸셨습니까.
 
  “신도환이는 내가 일본 유학할 때 같은 하숙방을 쓰던 사이였어요. 메이지대학 다닐 때 일본 대표에까지 뽑힐 뻔한 유도의 달인입니다. 그에게 달려가 그랬지요. ‘천하의 신도환이가 좀팽이처럼 고소를 해? 헌정회장 해서 술이 생겨, 밥이 생겨?’라고요.”
 
  — 신도환 선생도 성격이 꽤 다혈질이신데.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요절이 났겠지. 난 한발짝 더 나갔어요. ‘너, 예전에 3·15부정선거했다가 사형구형 받고 징역까지 살았잖아. 그런 친구가 김주인이한테 삿대질할 주제나 돼?’라고.”
 
  — 뭐라던가요.
 
  “껄껄 웃고 말더군. 그 다음 날로 고소도 취하했고. 향군 문제도 사실은 이렇게 풀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들을 정리해 본다. 장경순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은 육사 7기 특별반 출신으로 1948년 10월 소위로 임관했다. 검찰에 기소된 조남풍 전 회장(78·예비역 대장)은 육사 18기, 박용옥 전 회장 직대(74·예비역 중장)는 육사 21기이며 박승춘 국가보훈처장(69·예비역 중장)은 육사 27기로 가장 후배다.
 
 
  원로들이 버텨야 위기도 이겨내는데 지금은 부패가 만연
 
  — 앞서 장 의장께서는 향군과 헌정회가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양축(兩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원로입니다. 원로들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나라가 위기를 맞아도 버틸 수 있는데 부정부패가 너무 만연해 있어요. 이러면 대통령이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잘할 수가 없어요. 옛날 중국 얘기 좀 해 드릴까?”
 
  — 중국 얘기요?
 
  “내가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그리고 유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고향 김제에 있는 일본경찰들이 날 강제징용하려고 가짜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선친께서 위독하시다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고향엘 가 보니 아버지가 멀쩡하신 거예요. 황급히 달려온 절 보고 ‘이 미련한 녀석아’라고 하시더군요.”
 
  — 그래도 위독하다는 편지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농간에 빠져 끌려간 데가 일본군 제60사단 중지(中支)파견군이었습니다. 소주(蘇州·쑤저우)에 본부가 있었지요. 거기서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의 팔로군과 장개석(蔣介石·장제스)의 국부군을 비교해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 어떻게 다르던가요.
 
  “중국의 부잣집 침실은 미닫이문을 열면 침대가 나오는 구조입니다. 국부군은 민폐를 많이 끼쳤어요. 잘사는 집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주인을 내쫓았지요. 팔로군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주민들의 집 마루에도 올라가지 않았어요. 민심이 어찌 되겠습니까.”
 
  — 당시 군사력은 국부군이 압도적이었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부군은 미군이 준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첨단 무기도 민심(民心)을 이길 순 없어요.”
 
  — 장개석 총통이 훗날 후회했지요.
 
  “그렇게 대만으로 쫓겨간 뒤에야 국부군의 부정부패를 장 총통이 알게 됐습니다. 조사를 시켜 보니 부정부패의 중심에 둘째 며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 유명한 일화입니다.
 
  “수사관을 보내니 둘째 며느리 집에서 값비싼 보석이 가득한 상자가 나왔습니다. 장 총통이 며느리를 불러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살려면 네가 죽어야 하고 네가 살려면 나라가 죽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오늘이 너와 마지막 식사인가 보다. 이 안에 선물이 있으니 집에 돌아가서 열어 보거라’라고요.”
 
 
 
장개석 총통의 사례 돌아봐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교육처장 시절의 장경순.
  —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었습니까.
 
  “상자 속에는 권총이 한 자루 들어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그 총으로 자결을 했지요. 그 일이 있고서야 대만 관리들의 기강이 섰습니다. 기강이 서고야 전 국민의 역량이 하나로 결집됐지요. 오늘의 잘사는 대만은 그런 결단 속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 향군의 차기 지도부 선출에는 이제 관심이 없습니까.
 
  “내가 할 일이 태산 같은데 한사코 싫다는 사람들한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지 않겠어요?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큰 위기를 맞고 있는데.”
 
  — 북한의 핵실험 말씀입니까.
 
  “내가 보여줄 책이 있어요. 비매품으로 나온 건데 러시아에 해박한 이춘근씨가 쓴 《흥망의 갈림길에 서다》라는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몇 차례나 읽고 감명을 받아 청와대에 전화를 했어요, 박근혜 대통령께 전달하려고.”
 
  — 전화를 받던가요.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전화 연결이 됐어요. 제가 가져다 주겠다고 하니 현 수석이 사람을 보냈더군요. 지난번에 북한이 도발했을 때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며 강력히 대응한 걸로 보아 분명히 읽으신 거 같아요. 고맙다는 인사도 전해 왔고.”
 
  —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엔군 사령관이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이 핵우산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핵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인데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한국이 더 이상 중국과 밀월관계를 맺었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는 경고지요.”
 
  — 우리 입장에선 중국을 경원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요.
 
  “지금 미국은 중국을 누르려 하고 있어요. 그 선두에 일본이 서 있고 인도·호주도 같은 편입니다. 심지어 필리핀까지도. 우리만 아직 중국에 미련을 두고 있는데 정말 주의 깊게 국제 정세를 살펴야 할 시점입니다.”
 
  — 향군과 헌정회에 새로운 바람을 넣으실 복안이라도.
 
  “향군에는 제가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일궈 놓은 새마을금고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싶어요.”
 
  — 새마을금고라니요.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배경에는 새마을금고가 있습니다. 새마을금고는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때도 끄떡없었어요. 지금이야 직원들이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전 향군 회원들에게 회비를 전부 받으려 합니다. 그걸 새마을금고 식으로 운영해 수익을 내고 그 돈으로 지금 유명무실해진 향토예비군의 전력을 강화시켜야지요. 국방, 그게 향군의 의무 아니겠어요?”
 
  — 향토예비군은 지금도 있지 않습니까.
 
  “있으면 뭐해요. 아무런 무기도 없고 유명무실해졌는데.”
 
 
  유명무실화한 예비군 전력 키워야
 
  — 왜 갑자기 향토예비군 전력 강화를….
 
  “예전에 김신조가 서른한 명을 끌고 청와대를 치겠다고 내려왔지요. 얼마나 자기들의 특수부대를 믿었으면 서른한 명으로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겠어요. 지금은 북한에 그런 특수부대원만 20만명이 넘습니다. 그들이 우리 원자력발전소, 유류저장소 같은 곳을 습격하면 아마 순식간에 난리가 날 겁니다. 그걸 지킬 수 있는 것은 향토예비군밖에 없어요.”
 
  — 헌정회는 조금 사정이 다르지요.
 
  “헌정회는 국회의원들 모임이라 조금 다른데 거기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예요.”
 
  — 뭐가 그리….
 
  “고 이철승씨가 원로회의 의장 시절, 내가 한번은 회의에 나가 보니 49명이 나와야 할 자리에 16명뿐이더군. 온갖 핑계를 다 대요. 그래서 내가 한마디했지. 여기 와서 점심이나 먹고 헤어진다면 이게 무슨 놈의 원로회의냐고. 난 앞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3회 이상 회의에 안 나오면 헌정회에서 제명시켜 버릴 겁니다.”
 
  장경순 의장은 유성(柔聖)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10대 때부터 유도를 연마한 그는 일본 최고의 도장이라는 강도관(講道館)에서 당대의 유도사범 미후네 규조와 도쿠 산보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렇게 단련된 유도실력으로 걸핏하면 권총을 뽑아 드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패대기친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5·16 거사 당일에는 출동을 주저하는 공수부대원들을 독려했고 그 공로로 농림부장관과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장 의장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후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내놓은 일체의 공직 제의를 마다하고 제주도로 아내와 함께 낙향해 주군(主君)과의 의리를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다시 서울로 온 것은 아내의 뇌일혈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회복되지 않은 장 의장의 부인은 치매까지 겹쳐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 호랑이처럼 향군과 헌정회를 질타하던 노 장군의 목소리가 이 부분에서 젖어들었다. “아내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고, 나도 실버타운에 있는데….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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