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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書架 ⑦ 시대의 이야기꾼, 동양학자 趙龍憲

“흙수저도 좋은 팔자 있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사진 : 조준우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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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 12년째 연재
⊙ “노무현 대통령 태몽은 백마, MB 태몽은 하늘의 달, 태몽으로 대권 잡았다”
⊙ “부자들일수록 풍수에 민감, 평창동은 잘되거나 망하는 터”

趙龍憲
⊙ 55세.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同大 불교학과 석·박사 졸업. 前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휴휴명당》 《방외지사 열전》 등 저술.
  염소는 본래 야생동물이다. 수천년 전에 가축이 됐다. 지금도 야생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산악 지대를 좋아하고,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수컷은 평소에 혼자 지내다 짝짓기철이 되면 암컷 무리에 합류한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를 만나러 전라북도 익산으로 가는 길. 덜컥 걱정이 됐다. 조용헌이 누구인가. 지금까지 낸 책이 서른 권, 매주 월요일이면 《조선일보》에 칼럼 〈조용헌 살롱〉을 실은 지 벌써 12년이다. 인터뷰며 기행 기사를 각종 매체에 싣기도 한 전문 글쟁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구문만 주고받다 올 수 있겠다 싶었다. 화수분처럼 몇십 년간 문장을 쏟아 낸 그의 서재가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아파트 1층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서자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책상들이었다. 거실 가운데엔 앉은뱅이 책상이 두 개, 창가에는 의자가 딸려 있는 비교적 널따란 책상이 있다. 그 옆에는 서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트북을 올려 놓은 높은 책상이 있다. 책상만 총 4개다.
 
 
  2006년 죽을 운 때문에 집 바꿔
 
  ‘얼굴을 보는 관상, 그 집의 형태를 보는 가상이 있는데, 서상(書相)이라는 것도 있다.’ 그의 칼럼 중 일부다. 조 박사 자신의 서재라면 어떨까.
 
  분야도, 장정도 다양한 책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정연하지 않았지만 너저분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특이한 건 서가에서 책상물림의 느낌이 없다는 것. 그가 이메일 아이디로 쓰고 있는 ‘염소(goat)’가 풀을 뜯을 법한 야생 숲처럼 느껴졌다. 집은 특이하게 지하 1층이 딸린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딱 네 집만 그런 구조란다. 모두 합쳐 100평 남짓 되는 공간 곳곳에 책장이 들어서 있다. 작고한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의 서고도 복층 구조였다.
 
  책의 구성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명리학이나 동양철학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서나 인문지리서 등 인문학 도서가 많다. 문학작품은 없는가 싶었는데 지하 1층 책장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로마인 이야기》 《혼불》 《토지》 등 역사서에 가까운 문학작품이 많다. 《신조협려》 등 무협소설도 끼여 있다. 그가 오갔을 지적 편력이 엿보인다. 책장 앞에는 덤벨이 놓여 있다.
 
  —운동을 자주 하시나 봐요.
 
  “덤벨과 책은 보완관계입니다. 책만 보면 근력이 떨어져서 안 돼요. 일본 작가 하루키는 마라톤을 한다지요. 틈틈이 근육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서가 몇 권인가요.
 
  “1만 권 정도 있습니다. 필요 없는 책은 한 번씩 정리하지요. 이 집으로 이사올 때도 3000여 권 정리했습니다.”
 
  —명당에 관해 많이 쓰셨지요. 이 집도 풍수를 보고 골랐나요.
 
  “전에는 학교 앞에서 살았습니다. 2006년이었어요. 그때 몸이 아팠습니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때 사주팔자를 연구해 보니 제가 2006년쯤에 죽을 운이었어요. 그때는 ‘아, 틀림없이 교통사고로 죽는 거다’ 해서 운전을 아예 안 배웠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아니라 심장으로 온 거예요. 심근경색. ‘아, 자동차가 아니고 심장이었구나. 내가 잘못 짚었구나.’ 그때 아는 도사가 와서 보더니 이러는 거예요. ‘데려가려고 저승사자가 집에 와 있다.’ 빨리 번지 수를 바꿔야겠다, 그래야 염라대왕이 헷갈리지 않겠나, 생각했지요. 운이 안좋을 때는 번지 수를 바꿔야 합니다. 택시를 타고 택시 기사에게 ‘분양 안 된 아파트가 어딨나’ 하고 물었더니 이 집을 알려주는 겁니다. 집이 커서 분양이 안 됐다는 거예요. 와 보니 복층이에요. 안 그래도 책이 많아서 보통 아파트 1채로는 공간이 부족한 판에 잘됐다 싶었지요. 그래서 이사왔어요. 택시 기사가 골라 준 셈이지요.”
 
 
  산책 1시간 하면 생각 정리돼
 
거실 한쪽에 쌓아 놓은 책. 역사서와 철학서가 많다.
  그는 2004년부터 12년째 기명 칼럼 〈조용헌 살롱〉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000회를 돌파했다. 외부 필자가 10년 넘게 《조선일보》에 연재한 걸로는 두 번째 기록이다. 일제시대에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을 10년 넘게 연재한 적이 있다. 중간에 건강이 안좋아서 쉬기도 하고, 유치장에 들어가서 중단되기도 하였다. 벽초의 글 이후로 〈조용헌 살롱〉이 기록을 세운 셈이다.
 
  —이렇게 오래 쓸 줄 알았나요.
 
  “몰랐습니다. 1년 쓰면 밑천이 다 떨어질 줄 알았어요. 그때는 일주일에 세 번 썼지요. 일년이면 150편 아닙니까. 밑천 떨어지면 바로 간판 내리자고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하루에도 서너 개가 생각이 나요. 3년 동안은 머리에서 불꽃이 튀더라고. 3년이 넘어가니까 서서히 부담이 오는 거예요. 밤안개처럼 알 수 없는 압박감. 최고의 스트레스는 칼럼 주제를 잡는 거였습니다. 과연 이게 칼럼거리가 될까, 독자들에게 읽을 만한 거리로 받아들여질까 하는 의심이 있었지요. 이 의심이 저를 괴롭히던군요. 자기 고민이 스트레스로 왔어요. 6~7년을 넘어가니까 의심이 없어집디다.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이 들어오니까 통계도 낼 수 있고, 비로소 확신이 들더군요.
 
  칼럼은 네 가지 경로로 나옵니다. 첫째는 독서입니다. 아무래도 자료를 봐야 합니다. 둘째는 현장 답사입니다. 책에서 안 나타난 부분이 현장에 가면 보이는 수가 있어요. 특히 풍수는 현장 답사가 필수적입니다. 현장의 산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기감을 느껴야 하지요. 셋째, 전문가와의 토론입니다. 토론을 통해서 여과를 합니다. 옥석을 가려내야 하고 시각을 다양화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사색입니다. 사색은 걸으면서 하는 게 좋습니다. 대략 하루에 1시간 반 정도는 걷습니다. 시간 나면 걷지요. 1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생각이 정리됩니다. 정리된다는 것은 기승전결이 떠오른다는 말입니다.
 
  글을 장기적으로 쓰려면 받드시 걸어야 합니다. 누워서 하는 생각, 책상에 앉아서 하는 생각, 걸으면서 하는 생각의 결이 각기 다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 가장 균형 잡히고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소요학파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요가 뭡니까? 걷는 일 아닙니까.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도 철학자들이 걸었던 길이 있고, 이걸 벤치마킹해서 일본의 교토에 ‘철학의 길’이 있습니다. 교토학파의 사색은 2.5km 거리인 ‘철학의 길’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기승전결을 머릿속에서 짜서 집에 들어온 후 술을 한잔 합니다. 취하면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헌 살롱〉 한 편 쓰는 데 평균 40분이 걸립니다. 40분 만에 쫙 쓰는 거죠.”
 
  —첫 문장을 고심하는 편입니까.
 
  “첫 문장에서 강한 흥미를 유발해야 합니다. 서론을 쓰면 안 돼요. 잽이 아닌 라이트, 훅을 날려야 합니다. 선동렬 감독이 선수 시절, 쉬는 시간에 라커룸에서 항상 공을 만지고 있었다지요. 저는 항상 스토리를 생각해요. 칼럼을 쓸 때 커브, 포크볼, 직구 등등 여러 가지 구질을 구사해야 합니다. 독자가 예상 못하게 반전도 갖춰야지요.”
 
  —칼럼에 대한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몰랐던 걸 지적받을 때 놀랍니다. 이런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충청도 논산에 명재선생 고택이 6·25 때 폭격을 안 당했다. 그 동네 사람 중에 누가 미군부대에 있어서 미군 조종사한테 얘기해서 폭격을 안 당했단다.’ 현지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후손들이 연락을 해 왔어요. 폭격을 막은 게 미군 부대에 있는 누가 아니라 공군의 박희동 장군이었던 겁니다. 박 장군이 일제 시대에 단기 조종사로 가미카제 훈련을 받았어요. 버마 전투에도 참전했는데, 6·25 때는 미군과 함께 참전한 겁니다. 진해에서 작전회의할 때 여긴 폭격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프로가 되려면 ‘깔딱고개’ 넘어야
 
칼럼 〈조용헌 살롱〉을 쓸 때는 서서 작업한다.
  —명리학을 공부했는데, 이렇게 살게 될 줄 스스로 알았나요.
 
  “몰랐지요. 어렸을 때 어디 가서 사주를 보면 붓으로 먹고산다고 했어요. 전생을 보시는 분한테는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쇠로 된 철필 3자루를 가지고 이번 생으로 넘어왔다. 이게 닳을 때까지 써야 한다.’ 학교 선생 하려나 보다 했는데, 전업 문필가가 됐지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는 안 하는 듯합니다.
 
  “안 합니다. 저는 이미 미디어를 통해 제 생각을 계속 노출하고 있습니다. 누드모델처럼 옷 벗고 있는 것 아닙니까. 뭐 하러 SNS에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쓸 필요가 있습니까. 생각이라는 건 드립커피처럼 한 방울씩 떨어집니다. 한두 방울 떨어질 때마다 트위터로 날리면 언제 그게 고이겠습니까. 문명의 진보가 문제 되는 게 그런 점입니다. 생각이 고이질 않아요. 사고의 깊이가 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중압감이 있어야 됩니다. 재미로 쓰는 글은 늘지 않아요. 의무감으로 쓰는 글이어야 합니다. 마감일 지키려면 강박을 느끼지요. 트위터에 다섯 줄 쓰면서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시를 쓰듯이 어떤 핵심적인 걸 압축시킨 글을 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피, 땀, 눈물을 흘려 봐야 게송(偈頌·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이 나오고 하이쿠(俳句·일본 고유의 짧은 시 형태)가 나오는 겁니다. 처절한 밑바닥과 고독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생각이 나오는 거지,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 생각입니다. 결국 문제는 관점을 갖는 겁니다. 자기가 이 세상과 맨몸으로 부딪쳐 봐야 하는 겁니다. 맨몸으로 부딪쳐야 피, 땀, 눈물이 나옵니다. 설악산의 봉정암 넘어갈 때 있는 깔딱고개 아시죠?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깔딱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30여 권의 저서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어떤 책입니까.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가 제일 많이 팔렸습니다. 30만 부 팔렸지요. 《사주명리학》이 20만 부, 《방외지사》가 15만 부 나갔습니다.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는 그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은퇴하신 교장선생님들 정도 보시지 않을까 했어요. 한국의 보수가 내놓을 만한 이념이 뭔가, 라는 당시의 고민과 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수의 철학, 보수의 정당성 그런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이런 건 진보나 좌파 쪽에서 항의하기 힘든 주제 아닙니까.”
 
  —명문가의 조건은 뭡니까.
 
  “전국구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옛날에는 큰 학자였지만 이제는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도 될 수 있습니다. 후손들도 평판을 좋게 받아야 합니다. 도덕적인 부분이지요. 사회에 기여도 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아서 어쩌자는 겁니까. 명문가가 되려면 그 집안이 적어도 100년간 그런 흐름을 유지해야 합니다. 당대 반짝했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후손들이 부담스럽게 살았습니다. 평판을 유지해야 해서 마음대로 행보를 못했지요. 저기 돈이 뻔히 보이는데 평판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보통사람들은 재벌가를 명문가라고 생각하지만 100프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재벌가도 망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돈이 꼭 도덕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도덕적이면 돈을 못 벌 수도 있는 겁니다. 또 명문가가 반드시 도덕적이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7 대 3으로 봅니다. 3할의 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3할만 부각해서 비판하면 살아날 사람이 없습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흠잡기가 시작되면, 가장 수비적이고 방어적인 사람이 대표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무능할 수 있어요.”
 
  책상 부근에는 《한겨레》 등 신문과 《월간조선》 《주간조선》 등 잡지가 놓여 있었다. 몇 종의 신문을 보는지 물었다.
 
  “종이로는 5개 신문을 봅니다. 조중동과 함께 한겨레, 경향신문을 봅니다. 신문, 잡지 보는 게 취미입니다. 다른 취미가 없어요. 술도 안 마시고, 골프도 안 치고, 운전도 못하고. 그저 글 읽고 여행 다니는 게 취미의 다입니다. 공부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돌아보는 것, 즉 ‘독만권서 행만리’가 진짜 공부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고수들과 토론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 보면서. 대학 가서 수업 듣는 건 풀빵 찍는 거 아닌가 합니다. 기성복 만드는 대중교육이지요.”
 
 
  “교보 신용호 회장은 귀신”
 
지하 서고 한쪽에는 덤벨이 놓여 있다. 조 박사는 책을 읽는 틈틈이 근력 운동을 한다고 한다.
  —사람은 얼마나 만납니까.
 
  “저는 ‘매설가(賣說家)’입니다. 이야기가 있고, 콘텐츠가 있는 사람과 얘기하는 게 취미생활입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요. 사채업자도 만나고, 건달도 만나고.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콘텐츠가 많지, 그쪽에서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경우엔 별 콘텐츠가 없습니다. 민원성 만남이 많지요. 재벌 2세가 그게 문제입니다. 다 그쪽에서 만나자고 해서 만나는 겁니다. 자기가 만나고 싶어서 쫓아가면서 만나 봐야 합니다. 그쪽에서 아쉬워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만 만나면 내공이 안 쌓입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굽니까.
 
  “교보그룹 창업자 신용호 회장입니다. 2000년에 인터뷰를 했어요. 재벌 회장이라는 사람을 그때 처음 만났습니다. 이럴 때는 장소도 점괘입니다. 그쪽에서 정하는 거니까. 호텔에서 만난다고 해도 어느 호텔이냐에 따라 다른 겁니다. 취향도 드러나고. 교보빌딩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만났습니다. 30분 얘기를 해 보니까, 귀신이에요. 모든 분야를 다 알아요. 고수예요. 연세로 봐도 아버님 같은 연배셨어요.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드라이브를 이쪽에서 걸 수가 없겠더라고. 그런데 그분이 지배인을 부르더니 팁을 주더군요. 얼마 주는지 주시해 보니 300만원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지요. ‘회장님, 저도 한 장 주시죠.’ 그랬더니 바로 천만 원짜리를 꺼내시더군요.”
 
  —건달들도 만나 보셨다고요.
 
  “두목급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시야가 3배는 넓습니다. 물리적인 시야, 작전을 보는 시야. 경우의 수도 훨씬 많이 봅디다. 머리 회전이 굉장히 빠른 거죠. 저는 UFC를 좋아합니다.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피가 튀는 걸 어떻게 속이겠습니까. 삶은 피가 튀는 겁니다. 정치도 그렇잖아요. 배지를 달면 글래디에이터가 되는 겁니다. 칼과 방패를 지급받는 게 배지라고 생각해요.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검투사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한구와 김무성, 안철수와 김종인, 문재인. 이들의 결투에 매일 열광하고 환호하고 있잖아요.”
 
  —대선주자들도 차례로 만나 글을 썼는데 인상 깊은 정치인이 없었나요.
 
  “대선주자 인터뷰는 재미가 없습니다. 속 얘기를 잘 안 해요. 홍보성 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얘기 그만하라고 윽박지를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네네네 하면서 받아 적기만 하겠습니까. 남경필 경기지사를 인터뷰하려고 5시간을 빼 달라고 했더니 그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안하겠다고 했습니다. 대권주자 인터뷰를 해 보니 안 좋게 쓰면 척지고, 좋게 쓰면 독자들한테 예의가 아니더라고요. 좋은 얘기만 써 주려고 만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유력한 대선주자를 누구로 보시나요.
 
  “아직 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큰 인물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시스템이 갖춰지니까, 다혈질로 통 크게 굴 수 있는 사람은 시스템에 다 걸러집니다. 시스템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꼼꼼하고 자잘한 사람들입니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 일을 안 벌리면 되거든요. 조심하고, 돈도 안 먹고, 일도 안 하고, 매사 조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니까 맥이 없습니다. 물론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소음인(少陰人)의 시대라고 말한 겁니다.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이 다 그런 종류의 정치인입니다. 소음인은 고시 패스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회는 고시 패스를 해야 인재 아닙니까.”
 
 
  봉하마을 사저 개축 신중했어야
 
  —역대 대통령도 다 만나셨지요. 글에 대통령들 태몽도 언급했던데요.
 
  “YS부터 MB까지 다 만났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못 만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태몽은 봉하마을에 가서 노건평씨한테 물어봤습니다. 백마가 달려왔답니다. 대통령 되기 전에도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집에 금계(金鷄)가 날아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노 대통령의 사주엔 화(火)가 많습니다. 주작의 기운인 셈인데, 주작이 날아 들어온 것이지요.
 
  MB의 태몽도 물어봤지요. 달이 동네 뒤로 떠서 동네가 환해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름을 ‘명박(明博)’으로 지었다는 겁니다. 그 태몽으로 대권 잡은 겁니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 삶이 어두웠잖습니까.
 
  “백마는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타는 것이지요. 전쟁터에서 지뢰밭을 통과하는 말이었더라는 말입니다. 봉하마을에 사저를 개축하면서 불도저로 터를 망가뜨렸어요. 제가 아는 풍수 고단자가 건드리지 말라고, 건물의 방향도 바위를 보지 않게 하라고 그쪽에 얘기를 넣었어요. 바위가 살기거든. 그런 건 피하거든요. 현대 건축가들은 조망이 좋다고 얘기하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이 죽어야 알겠습니까. 풍수는 농담 따먹기가 아닙니다.
 
  평창동을 보세요. 평창동은 터가 셉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모 아니면 돕니다. 잘되거나 망하는 것이지요. 1970년대 집을 지을 때만 해도 미신이라고 했어요. 30년 살아 보니 검증이 된 겁니다. 망해서 나온 사람이 많습니다. 이젠 평창동에 쉽게 안 들어갑니다. 평창동 집값이 생각보다 안 비싸요. 부자들일수록 풍수에 민감합니다. 두뇌를 혹사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좋습니다. 조훈현, 김수현(드라마 작가) 등 예술가에겐 맞습니다. 아티스트라는 게 반 무속인 아닙니까. 갑자기 생각나는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것 아닌가요. 평창동에 예술가만 350명 이상이 산다고 하더군요.”
 
  노 대통령의 불행한 사고 직후,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건축가 정기용씨는 《한겨레》에 이런 글을 실었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 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
 
  —진짜 도인이 있나요.
 
  “도인도 많고 샤먼(shaman, 무당)도 많습니다. 일반인은 샤먼을 도인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도인은 담백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평상심이지요. 샤먼들은 초능력이 있습니다. 샤먼이 갖추고 있는 3대 능력으로 예언, 치료, 언변이 있어요. 이런 걸 사리사욕을 위해 쓰면 샤먼이 되고 공익을 위해 쓰면 도인이 됩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의 차이이지요. 저도 도사가 되고 싶어서 2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 한 20년 도인들을 만났습니다. 40대 후반 무렵에 깨달았지요. ‘아, 나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이지, 도인은 못 되는구나.’ 도사 되려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다녀서 그게 콘텐츠가 됐습니다. 안국선원의 수불 스님 같은 분은 도인입니다. 도덕적으로 큰 하자가 없고, 도력도 있고, 영적인 힘도 가지고 있고, 사회에 적당히 기여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방외지사》에서 ‘돌팔이와 진팔이(진짜)’ 얘기를 하셨는데 돌팔이가 진팔이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피, 땀, 눈물 세 가지 액체를 바가지로 흘려야 합니다. 공짜란 없어요. 가짜와 진짜로 나누는 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둑도 9급, 8급이 있는 것처럼 급수가 올라가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엔 미숙한 사람은 있지만 가짜는 없습디다.”
 
  —《방외지사》 쓰실 때와 관점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돌팔이를 경멸했지. 이제 보니 내가 돌팔이라는 걸 알았거든. 나 자신에게 관용적으로 하려니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관용적으로 해야 될 거 아닙니까. 내가 돌팔이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집니까?”
 
  —사주를 볼 때 트렌드도 같이 읽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현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개인주의적인 시대정신도 있고, 또 하나는 공개념인 것 같아요. 해방 이후 너무 사익 추구에 집중해 왔어요. 공익에 대한 관념이 해체된 것 아닌가 하는 공개념에 대한 희구가 있다고 봅니다. 양반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공적인 마인드가 있는 사람입니다. 주변 공동체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이게 선비고, 군자인데 이런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가 갈가리 찢어졌어요.”
 
  —소위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요.
 
  “흙수저에도 좋은 팔자가 있습니다. 꼭 부잣집에서만 금수저 팔자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역대 큰 인물을 보면 조실부모하고 인생 파탄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보세요. 조실부모 수준 아닌가요. 예수를 보세요. 사람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게 정상적인 출생입니까. 공자를 보세요. 공자 어머니는 무당이었어요. 아버지는 70살이고. 그게 금수저 태생입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는, 양친이 다 살아서 해로했으면 대통령 못 됐습니다. 부잣집에 시집가서 잘살고 있겠지요. 6·25 이후에 한국에서 부모가 다 총 맞고 돌아가신 분은 아마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할 거예요. 총 맞아 죽기도 쉬운 게 아니거든요. 교통사고나 암으로 죽지, 총 맞아서 어떻게 죽습니까.
 
  금수저의 길이 곧 MBA의 길입니다. 금융가에서 고액 연봉을 받고 월가(Wall Street)로 갑니다. 그중 30~40%는 사기에 연루돼서 감방 행이에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한국사회가 1950년에 토지개혁을 해서 부자들 땅 다 뺏은 거 아닙니까. 66년이 흐르니 한국사회에 계급적인 장벽이 생긴 겁니다. 사회에 동맥경화가 왔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되면 고혈압, 당뇨, 뇌졸중, 심장마비가 옵니다. 성인병이 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습니까.
 
  “일상을 평화롭게 되는대로 살려고 합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은 건 없습니다. 버킷 리스트 같은 건 다 사람을 현혹하는 말입니다. 한때는 도를 깨치려는 도그마에 시달렸었지요. 그걸로 제 자신을 두드려 팼습니다. 어느 순간 포기했어요. 도가 특별한 건가. 담백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예수는 도에 통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조용헌이 추천하는 책

 

  황제내경과 생명과학
  남회근/부키
  “생명의 본질과 작동원리를 의학과 별자리까지 다 포괄해서 밝힌 책이다. 남회근 선생을 사상적인 선배로 생각한다. 나보다 고수다.”
 
  한국철학사
  전호근/메멘토
  “우리나라 학자가 원효에서부터 장일순까지 전시대를 통괄해서 자신의 관점으로 쓴 철학사다. 우리나라는 철학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건 우리 선배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한국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시 수입만 하면 소비자가 되지 않나. 우리도 생산자를 해야지. 우리도 역사가 5000년이라는데 우리는 철학이 없는 족속인가? 머리가 비었나?”
 
  한국분단사연구
  신복룡/한울아카데미
  “신복룡 교수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한국사회의 금기인 김구 문제, 이승만, 박헌영, 여순반란 등을 심층적으로 서술했다. 근래 관심 있는 게 대구폭동이나 여수반란, 이런 사건이다. 아직도 금기인데 잘 건드렸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사계절
  “한민족의 뿌리는 결국 중앙아시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장하준의 경제학강의
  장하준/부키
  “환율이라든가 금융이 전세계적으로 얽혀 있지 않나. 무기 다음엔 금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금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학설사를 일목요연하게 개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왜구와 고려·일본 관계사
  이영/혜안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지역의 섬사람들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가 자주 출몰했다. 일본 학자들은 왜구에 조선 사람도 섞여 있었다고 주장한다. 일본 측의 주장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장자강의
  남회근/마하연
  “장자는 동양 리버럴리스트의 바이블이다. 아나키즘과도 맞닿아 있다. 남회근 선생의 해석본이 맘에 든다.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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