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사람

다섯 자녀 키우는 판사와 바이올리니스트가 전하는 다섯 배의 행복

글 : 이근미  월간조선 객원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우리나라 2094만 가구(1인 가구 포함)의 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숫자는 2.46명, 가임여성 한 명당 합계 출산율은 1.2명이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임신과 육아로 인한 사회활동 단절, 과도한 자녀교육비 순이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두 여성을 만났다. 교육열이 뜨거운 서울 서초구에서 최소한의 사교육을 시키는 신한미 판사와 경상남도 밀양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뛰놀게 하는 백현경 바이올리니스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섯 아이가 삶의 에너지원이며 행복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申韓美 판사
⊙ 44세.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 전주지법, 의정부지법, 서울중앙지법, 서울가정법원 판사 역임. 現 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

白賢景 바이올리니스트
⊙ 36세. 부산대 음악학과 졸업.
⊙ 스위스 바젤국립음악대학 연주학·즉흥연주학 석사 수료.
⊙ 現 창원대 음대 외래교수, 부산교육대 실기 겸임교수, 아이온예술공연 대표 겸 예술감독.
  서울 서초구에서 3남 2녀 키우는 신한미 판사
  “부모의 관심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유치원생까지 다섯 아이를 둔 신한미 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음악과 미술을 잘 못해서 꿈을 못 이루었다”며 생글생글 웃었다. 딱딱한 표정으로 법률적 용어를 툭툭 던질 거라는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섯 아이 덕분에 행복이 다섯 배라는 신 판사는 28세부터 10년간 ‘아들 딸 아들 딸 아들’ 순서로 자녀를 출산해 ‘자판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모(고1), 지우(중2), 예모(초6), 지예(초2), 윤모(7세)와 함께 외출을 하면 눈길을 한 몸에 받는다.
 
  “셋째까지는 다둥이라고 생각하는데 넷째부터는 ‘엄마가 혼자 다 낳았느냐’고 물어요. 그런데 오히려 다섯을 다 데리고 나가면 아예 안 물어요. 으레 결합 가정이거나 입양했거나 친척 애들이겠거니 생각하는 거죠.”
 
  1995년 고시촌 스터디모임에서 만난 강인구(姜仁求·47) 변호사와 신한미 판사는 3년 만에 사법시험에 동시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9기생 시절 결혼했다. 연수원에서는 마지막 시험 때 임신한 그녀를 화장실에서 가까운 시험장에 배치하고, 교실 뒤편에 누울 수 있는 벤치를 마련해 주는 등 배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 판사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었던 건 시어머니와 동료 판사들의 도움이 컸다. 연고가 전혀 없는 지방에서 근무할 때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도맡아 길러주었고, 동료 판사들은 영장업무를 위한 야간 당직을 대신 해주거나 출산휴가 중 재판에 대신 들어가 주기도 했다.
 
 
  “아이가 둘이었다면 심심했을 것”
 
  남편이 4대(代) 독자(獨子)인 데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5대 독자여서 아이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섯까지 낳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섯째는 ‘정말 우연히’ 생겼어요. 출산휴가 10개월을 마치고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섯째를 가졌을 때 미안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 시작하는 프로젝트 마무리를 내가 못 한다는 얘기를 차마 꺼내기 힘들더라고요.”
 
  막내는 세 번 아프고 낳았을 정도로 그야말로 ‘다산(多産) 체질’이지만 체력이 달려 그만 낳기로 했단다. 그럼에도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아쉬운 마음이 많다고 한다.
 
  다섯 아이에게 모유(母乳)를 먹인 신한미 판사는 ‘2010년 모유수유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위의 아이들은 지방근무도 있었고 젖몸살도 나고 해서 많이 못 먹였지만 넷째랑 막내는 오래 먹였어요. 막내는 17개월이나 먹였습니다. 60개월을 수유하면 유방암이 예방된다고 해요. 우리의 어머니 세대는 그게 가능했죠. 저는 60개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수유를 했어요. 혈액에서 모유가 생성되기 때문에 지방분해효과가 뛰어나요. 모유 수유할 때 음식을 조금만 조절하면 살이 쑥쑥 빠져 일부러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어요.”
 
  신 판사는 아이 다섯을 낳은 40대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동안에다 날씬하다.
 
  자녀가 둘만 되어도 힘들다고 하는데 실제로 신 판사도 둘째까지는 정신없이 키웠다고 한다.
 
  “셋째부터는 아이 키우는 노하우가 생겨서 어렵지 않았어요. 첫째 때는 안는 것부터 미숙하거든요. 위의 아이들이 크면서 아래 아이들과 잘 놀아주어 육아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아래로 내려올수록 교육에 관한 시행착오도 줄었다.
 
  “애가 한둘이면 이것저것 다 시킬 수 있겠지만 애가 많으면 경제적인 면도 고려해야 하니 선별할 수밖에 없어요. 수영과 피아노는 초등학교 때까지, 영어와 수학은 중학교 때까지 학원에 보내는 정도죠. 하지만 이것도 아이가 원하면 가르쳤어요. 고등학생인 큰아이가 기특하게도 학원에 안 가고 혼자 해보겠다 하여 사교육비(私敎育費) 부담이 훨씬 줄었네요.”
 
  아이가 둘이었다면 ‘되게 심심했을 거 같다’고 한다.
 
  “지금 큰 애가 고등학생이고 둘째가 중학생인데, 만약 얘들 둘밖에 없었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어요. 인생이 재미없었을 거예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
 
  올 2월 대전가정법원으로 근무지를 옮긴 신 판사는 주말마다 서울 서초구의 집으로 돌아온다.
 
  “제가 집에 오면 넷째와 막내가 달려나와 반겨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요. 일곱 살짜리 막내는 작은 밥상에 꽃 장식을 해서 자기가 탄 커피를 차려서 내와요. 예쁨 받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막내를 보면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실감해요.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정말 커요.”
 
  아이들도 형제 많은 걸 좋아하고, 주변의 부러움도 산다고 전한다.
 
  “셋째가 학교에서 ‘나는 형 누나 여동생 남동생 다 있다’고 하자 다들 ‘거짓말’이라고 했대요. 나중에 진짜라는 걸 안 친구들이 셋째를 다 부러워해요. 막내 낳기 전에 큰애는 애가 넷인 데도 가족캠프에서 ‘다섯째가 태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아이들끼리 잘 어울리고 사랑하며 지내지요.”
 
  큰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해 아이들을 더욱 세심하게 돌보게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동생하고 방을 쓰는 게 싫었는지 투정을 부리더군요. 요즘 큰애 대우하느라 방 하나를 배정해 줬어요. 어릴 때부터 동생들이 레고 부수고, 뭐든 나눠야 하니 불만이 많았죠.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부모의 사랑이 분산된다고 생각하여 불평할 때도 있었어요. 큰애가 자기 교복이 작은 것도 모른다고 툴툴거린 일도 있었어요.”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중요한 게 공평성이라는 것을 깨달아 부부가 사랑을 똑같이 베풀려고 노력한다.
 
  “큰아들이 사춘기를 지내면서 오히려 감사를 표한 적도 있어요. 우리 집에 아이가 적었으면 엄마가 간섭을 심하게 했을 거라며 자유로운 게 좋다는 거예요. 애들은 소소하게 간섭하는 것보다 웬만하면 슬쩍 넘어가는 걸 좋아해요.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니 오히려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 동생들도 잘 돌보더군요.”
 
  아이들이 많으니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한다.
 
  “우리 집에는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어요. 최근에 셋째가 친구들이 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에 연루되었어요. 소년보호재판을 하는 제가 학교에 가서 그 아이 부모님께 사과편지에 각서까지 썼어요. 어느 집 아이들이나 완벽하지 않아요.”
 
  요즘 물려 입는 게 자연스러워져서 아이들 옷값은 별로 들지 않는단다. 아이가 다섯이면 시간이 전혀 없을 거 같은데 실제는 아이 한둘 있는 사람들보다 여유롭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잘 놀아서 그래요.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애가 다섯인 제가 시간이 제일 많아요. 첫째,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힘들었죠. 세월이 지나고 애들이 더 많아졌는데 더 여유가 생기네요. 둘째가 장녀 역할을 톡톡히 해요. 제가 좀 늦는 날은 동생들 씻겨서 재우고 그러더군요. 넷째 딸이 언니를 잘 따르니 따로 손이 가지 않는 데다 막내도 이제 말귀가 통해서 좋아요.”
 
 
  넉넉한 출산휴가와 안전한 어린이집 필요
 
  다섯을 출산한 신한미 판사에게 출산율을 높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질문했다. 일단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돌봐주셨어요. 시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신 뒤에는 좋은 도우미를 만났고, 무엇보다 남편이 배려를 잘 해주어 힘들지 않았어요. 아이들 유치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은 남편이 도맡아서 했어요. 제가 주말에 일할 때면 아이들을 모두 찜질방에 데려가서 놀고 밥 먹이고 그랬죠. 남편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어요.”
 
  출산휴가를 넉넉히 주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 판사는 넷째부터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을 좀 더 사용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면 아기와 시간을 길게 가졌다고 한다. ‘비상이 걸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비책’을 묻자 신 판사는 어려울 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육아휴직 기간 1년이 보장되어야 하고, 휴가가 끝나면 바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안전한 어린이집이 마련되어야 해요. 가격이 너무 높지 않으면서 나라에서 관리하는 믿을 수 있는 곳이어야겠죠. 아동학대 하는 어린이집 기사를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아이가 백일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데 엄마들이 마음 약해서 보통 2년 정도 지난 뒤에 보냅니다. 저는 1년 만에 보냈어요. 엄마가 아이를 1년간 키우게 해준다면, 좋은 어린이집이 있다면, 분명히 아이를 더 낳을 겁니다.”
 
  신 판사는 둘째 낳았을 때 생긴 ‘법원어린이집’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자녀를 낳은 후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계속하면 사교육도 줄어들 거라고 신 판사는 예측했다.
 
  “출산휴가가 짧고,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결국 회사를 그만두면 자녀 교육에 올인할 수밖에 없죠. 일까지 접었으니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두 아이에게 너무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가니 셋째 아이를 낳기 힘들어지는 거죠. 셋째 자녀부터 현실적인 지원을 해주면 출산율이 높아질 거라고 봅니다.”
 
 
  “아이 많이 낳는 건 경제력과 비례”
 
다섯 자녀를 둔 신한미 판사와 남편 강인구 변호사. (사진=신한미 제공)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 혜택이 다른데 신 판사는 넷째 낳고 처음으로 서울 서초구에서 출산장려금 1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를 서너 명 낳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아이를 많이 낳는 건 경제력과 비례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 다각도로 지원을 하면 아이 낳는 분들이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요즘 자녀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신 판사는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부모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사춘기 때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가출하고, 집 밖에 나가면 돈이 필요하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범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비행을 저질러도 부모가 인내하며 사랑을 베풀면 아이는 돌아옵니다. 하지만 부모가 삶에 지치면 아이를 품을 수가 없어요. 부모가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자녀 양육에 미숙하거나 지적장애가 있어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경우, 편부와 편모가 일 때문에 집을 오래 비우는 경우 등 부득이하게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걱정이라고 한다.
 
  “아이가 재판받을 때 오지 않는 부모도 있어요. 비행을 저지른 아이가 다시 나쁜 길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따뜻한 가정 같은 곳이 필요해요. 최근 소년보호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합심하여 사법형 그룹홈이나 청소년회복센터를 입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대전가정법원에서는 멘토와 청소년이 장기간 도보여행을 하면서 대화하는 ‘길 위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부모의 사랑이 중요하죠.”
 
 
  “소년보호재판 하는 데 도움”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아이들 가운데 큰아들과 둘째 딸 또래가 많아요. 우리 애들이 몇 살이다, 비슷한 나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부모들이 마음을 열어요. 우리 애들 또래를 만나면 심리를 잘 파악할 수 있고 대화도 잘 됩니다. 이혼 당사자들에게 애들 키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생각해서 한 번 더 생각하라. 피치 못해 이혼한다면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좀 더 배려하라’고 얘기합니다.”
 
  특히 가사재판 할 때 다섯 아이를 키운 노하우를 살려 현실감 있는 얘기를 하면 조정이 잘 된다고 한다.
 
  “우리 셋째랑 나이가 같은데 우리 아이는 이랬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엄마가 키우는 게 도움이 될 거다,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거죠.”
 
  이혼한 부모들이 면접 교섭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양육수첩’도 만들었다.
 
  “이혼한 부모들은 현실적으로 대화하기 힘들잖아요. 아이를 돌보는 쪽이 자녀에 관한 얘기, 주의할 사항 등을 양육수첩에 적어 면접 교섭하는 쪽에게 전해주도록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 선생님이 수첩에 이런저런 얘기 써주는 것에 착안해 만든 겁니다.”
 
  다섯 명의 자녀에게 특별히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벌써 첫째와 둘째가 아빠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남편이 경제학을 전공한 행정고시 출신으로 통상산업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다가 변호사가 되었는데 첫째는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해요. 둘째는 엄마처럼 비행청소년을 돕고 싶지만 판사는 힘들 것 같다며 변호사가 되어 도울 거라고 하더군요.”
 
  신 판사는 남편과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두자’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아이들한테 사회적으로 도움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만 얘기합니다. 가끔 제가 아이들에게 간섭하려고 하면 남편이 막아요. 양육 때문에 남편과 싸운 적은 없어요.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잘 안 싸워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었고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이해를 많이 하죠.”
 
  소년보호재판을 하는 신한미 판사는 다섯 자녀 얘기를 하는 틈틈이 사춘기를 앓는 청소년들을 떠올렸다. 신 판사는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꿈을 키운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했다.
 

  경남 밀양시에서 4남 1녀 키우는 백현경 바이올리니스트
  “창의성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경상남도 밀양에 사는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씨는 한 달의 반 이상을 외지에서 활동한다. 초청 연주를 위해 분주하게 이동하다 보니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데, 실제 인터뷰도 경기도 파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화장기 없던 맑은 얼굴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연주회를 위한 입체적인 얼굴로 서서히 변모했다. 시(詩)낭송회 즉흥연주를 위한 능숙한 분장이 연주회 이력을 짐작게 했다.
 
  시낭송회 장소에 도착해 타이트한 빨간 스커트와 예쁜 고름이 달린 한복 저고리로 갈아입은 그녀의 모습은 고혹적이었다. 긴 머리에 늘씬한 몸매, 그 누구도 ‘다섯 아이의 엄마’라는 걸 짐작하기 힘든 자태였다. 시낭송회가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 그녀가 자녀를 여럿 두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대단한 바이올린 실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소녀시절 ‘러브레터를 1000통 보내고 싶은 사람,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주고 싶은 사람, 멀리 있어도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람, 존경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꿈이 정말로 이루어졌고 4남 1녀를 출산했다. 남편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는지라 육아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지만 그녀는 아이들 때문에 공부나 연주활동을 못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만삭 때도 무대에 선 그녀는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고작 3일에서 2주만 쉴 정도로 체력도 정신력도 강하다.
 
 
  “아이 엄마인 장학사가 추천서 써줘”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몰아닥친 IMF 위기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닌 그녀는 유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학과 사무실에 붙어 있던 ‘스위스 정부초청 장학생 선발 공고’ 안내문을 발견, 까다로운 선발절차를 통과했다. 2002년에 생활비 지원, 언어연수 제공, 학비 전액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 아래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7년 동안 유럽 최초로 즉흥연주학을 도입한 바젤국립음악대학에서 마음껏 음악공부를 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이미 엄마였던 그녀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덕을 아이에게 돌렸다.
 
  “첫해는 혼자 갔기 때문에 아이가 많이 보고 싶었죠. 1년 후 장학금 연장신청을 하면서 담당 장학사님과 친해졌어요. 원칙상 학생은 가족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는데 아이 엄마인 장학사님이 추천서를 써주어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죠. 외롭고 낯선 타국에서 아이가 의지가 되었어요. 바젤신포니에타 단원으로 유럽 공연을 다닐 때 항상 아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오케스트라 사무단장님과 쉬는 파트의 단원들이 함께 놀아주곤 했죠.”
 
  재학시절 스위스,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크고 작은 오케스트라 협연과 독주회를 활발히 가졌고 2003년부터 스위스 바젤신포니에타 정단원으로 세계 거장들의 지휘 아래 수많은 곡을 연주했다.
 
  백현경씨는 정통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국내 유일의 즉흥연주가이다.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과 즉흥연주는 준비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예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든든해요. 하지만 즉흥연주는 달라요. 즉흥연주는 집중력이 중요하죠. 얼마나 몰입되어 있느냐에 따라 관객을 나의 공간으로 끌어당길 수 있어요. 연주할 장소의 사진을 미리 받아보고 그날 공연의 흐름을 파악합니다. 오늘 시낭송회를 위해서 시를 미리 다 받아서 읽었어요. 연주 순간 이미지를 상상하는 거죠. 현장에서는 순발력을 발휘해야 해요.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멘탈 연습이 중요합니다.”
 
  어떤 연주든 긴장감이 크지만 그날 공연을 잘 마쳤을 때 좋은 에너지로 돌아오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시낭송회 때 출연자가 무대에 서서 시를 읽기 시작하자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서서히 연주를 시작했다. 즉흥연주는 그 순간 작곡하여 연주하는 것이니 모든 곡이 최초로 공개되는 셈이다. 백현경씨는 “연주가마다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그녀의 연주는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분위기 전체를 감쌌다. 재즈나 월드뮤직의 즉흥연주는 기본적인 멜로디가 있지만 백현경씨의 즉흥연주는 무(無)에서 출발한다. 백현경씨는 ‘가장 근본적인 예술의 영역이며 원시 형태로 돌아간 상황’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스위스에서 밀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씨가 자녀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백현경 제공)
  그녀는 2007년 스위스에서 돌아왔다.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공부와 연주를 병행하느라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귀국을 권했다. 밀양시 단장면에서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고 있던 어머니의 “밀양이 바젤만큼 아름다운 곳이니 돌아오라”는 말에 결심한 것이다.
 
  2009년에 밀양시 음악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아이온 예술공연을 설립하여 밀양시민으로 자리를 잡았다. 점점 영역이 넓어지면서 국내외로 바쁘게 뛰는 그녀가 집을 비울 때는 친정 부모가 다섯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미국 워싱턴 한미문화예술제 초청공연, 시드니 한-호 정경포럼 특별공연, 프랑스 기타리스트 제레미 쥬브와의 듀오 전국순회공연, 제14차 경주세계한상대회, 합포만 현대음악제, 아이온 예술공연 정기공연, 백현경 바이올린 독주회 등 숨 가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개인공연 일정의 절반 정도는 재능기부라고 한다. 다섯 자녀 돌보기에도 바쁜 그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봉사하는 이유를 “먼 미래에 내 자녀들이 받을 복을 미리 쌓아두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녀의 활동에 감동한 팬들이 결성한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 후원회’의 지지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다섯 자녀와의 생활비가 꽤 많이 드는 데다 이동경비와 공연 준비도 만만찮아 저축은 전혀 못 해요. 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공연 후원금이 들어와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 여유롭지는 않아도 매달 어떻게든 꾸려가고 있어요.”
 
  생활비보다도 다섯 아이의 교육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예상 밖의 말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돈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올해 첫째 아들이 항공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교육부와 국방부에서 지원하는 학교여서 기숙사비와 학기별 자격증 수업비 정도만 내면 됩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죠. 동생들에게도 본이 될 거라고 믿어요. 우리 부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빨리 하는 것이 아이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가고 싶다면 경제적 독립을 한 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私교육 대신 뛰놀게 한다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과연 대학 진학만이 답일까요?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죠.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는 전문가와 기술자의 시대가 될 겁니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취직이 어려워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30, 40세대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결혼도 선택사항일 뿐이죠.”
 
  집집마다 아이들 학원 보내느라 허리가 휜다지만 백현경씨는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아이들이 매우 다양한 상상을 하고 역할 놀이를 하면서 깔깔대며 웃기도 하고 때로 싸우고 합니다. 다시 사과하고 협상하며 자기들끼리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이 잘하는 걸 발견해서 지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교육의 근본은 가족 간의 진심 어린 사랑’이라고 답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자존감을 심어준다고 생각해요. 뿌리가 단단하면 일찍부터 스스로 개척해 나갈 힘이 생기겠죠. 그러면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미 있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이른 나이의 결혼과 출산을 했지만 유학을 다녀왔고 현재 예술가로 살고 있어요. 제가 가진 단단한 믿음의 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처음에는 부모님도 그녀의 자유로운 교육방법을 불안해했지만 지금은 지지해 준다고 한다. 백현경씨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진리(고1), 한리(초4), 원리(초2), 훈리(6세), 태리(4세)가 개성과 창의,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로 자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신협중앙회 여성조선 공동 주최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