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치연합, 기존 진보정당들은 상위 10%의 노동자 대변하는 ‘꼰대 레프트’”
⊙ “대기업 노동자들이 殘業·特勤만 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충분히 생길 것”
⊙ “노동개혁에서는 朴槿惠 정권이 새정연·민노총보다 개혁적”
周大煥
⊙ 61세.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 민청학련, 부마민주화운동,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사건 등으로 구속. 마산·서울·인천 등에서 노동운동.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서 활동.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민노당 정책위 위원장 역임. 現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저서: 《좌파논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 《진보정치의 논리》 등.
취재지원 : 문지은 月刊朝鮮 인턴기자
⊙ “대기업 노동자들이 殘業·特勤만 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충분히 생길 것”
⊙ “노동개혁에서는 朴槿惠 정권이 새정연·민노총보다 개혁적”
周大煥
⊙ 61세.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 민청학련, 부마민주화운동,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사건 등으로 구속. 마산·서울·인천 등에서 노동운동.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서 활동.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민노당 정책위 위원장 역임. 現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저서: 《좌파논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 《진보정치의 논리》 등.
취재지원 : 문지은 月刊朝鮮 인턴기자
“사랑하는 우리나라는 70년 전 오늘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되고, 67년 전 오늘 전(前)근대적 신분질서의 잔재를 일소(一掃)하고 농지를 농민의 소유로 돌리는 수천 년 오랜 염원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임을 약속하며, 자유와 평등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건국되었다.” 지난 8월 15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린 서울 동숭동 흥사단 대강당에 창당발기취지문이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참으로 극적인 반전(反轉)의 연속이었다.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막다른 골목, 절망의 순간에도 새로운 길을 내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여기까지 왔다.”
“북한 김씨 일가 독재체제의 참담한 실패로 가시권에 들어온 민족통일의 과제는 오롯이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세습자본주의’라고 질타하면서, ‘임금·연금·세금을 공평하게’를 외치고, 평등과 연대(連帶)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사민당의 좌파적 색깔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눈에 들어온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사를 긍정하면서 북한체제를 ‘김씨 일가 독재체제’라고 분명하게 규정지은 대목들이었다.
취지문 곳곳에서 한 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주대환(周大煥·61)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1970년대 중반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세 차례 구속되었고 이후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서 활동해 온 노동운동가, 2004년 6월 당내(黨內) 다수파(多數派)인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주사파)계를 꺾고 민주노동당 정책위 위원장에 당선되었지만 2008년 종북(從北) 논란이 벌어지자 당을 박차고 나온 인물, 이후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새로운 좌파(左派) 운동의 진로를 모색해 온 ‘사회민주주의 전도사’… .
이날 그는 창당발기인대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김명기 전 정의당 고양지역위원장, 김위홍 전 사회보험노조 위원장과 함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를 만나 지금 창당을 준비 중인 사회민주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인기없었던 이유
과거 우리나라에 사민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정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6년 5월에는 여운홍(呂運弘·여운형의 동생)이, 그리고 1985년 3월에는 1970년대에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낸 김철(金哲)씨 등이 ‘사회민주당’을 만들었지만, 헌정사(憲政史)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여러 차례 좌파 정당 건설을 추진했고, 결국은 창당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당명(黨名)에 ‘민중’이니 ‘진보’니 ‘노동’이니 하는 말을 내세웠다.
주대환 위원장도 “이전에도 꼼꼼히 찾아보면 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썼던 정당이 있겠지만, 1987년 이후에는 사회민주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정당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이전에 있었던 ‘혁신(革新)정당’은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이념 정당이라기보다는 남북한 관계에서 북진(北進)통일·무력(武力)통일 대신 평화통일이나 중립화 통일을 주장하는 정당이라는 의미가 강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학자들도 한국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사민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얘기합니다. 흔히들 그 이유를 분단 상황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권의 혁명주의, 관념적 과격성에서 찾아왔습니다. 분단체제 아래서 대중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면 친공(親共) 내지 친북(親北)으로 생각해서 외면했고, 운동권 내부에서는 개량주의(改良主義)라고 해서 외면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동안 한국 사회가 평등한 사회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평등가치를 그리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농지개혁 아래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로 출발했습니다. 지니계수 등을 봐도, 우리나라는 1997년 IMF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아주 평등한 나라에 속했어요. 대한민국이 평등한 나라였기 때문에 평등을 주된 가치로 내세우는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성장할 수 없었다고 저는 봅니다.”
“기존 진영 구도가 무너지고 있다”
—그럼 지금 사민당을 창당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평등구조가 많이 망가지고 있다는 인식의 소산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평등과 기회의 땅이었던 대한민국이 어느덧 세습자본주의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자산은 상위 1%에 집중되고, 전체 소득의 45%가 상위 10%에게 몰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낡은 진보’는 상위 10%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어요. 이제 ‘진짜 좌파’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그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바로 거기에 자본주의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을 추진했었죠. 그때도 사회민주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까.
“그때도 영국 노동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중당과 합당하면서 한국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잠시 보류했지만, 총선 후에는 당명을 다시 정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국제적인 브랜드, 영국 노동당의 계보임을 분명히 하는 정당을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민중당이 의석을 얻지 못해 등록 말소되는 바람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도 그런 생각이었습니까.
“앞에 붙은 ‘민주’는 조선노동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조선노동당의 시대는 가고, 한국노동당의 시대가 왔다’, 그런 생각이었죠.”
하지만 주대환 위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은 SD(Social Demo-cracy·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주의)와 NL(민족해방·주사파)들의 정당이었고, 나중에는 NL의 정당으로 둔갑했다. 2008년 민노당을 나온 그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열심히 사회민주주의를 세일즈했지만, 별다른 세(勢)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 사민당에 참여하는 분들은 다 사회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으로 뜻을 모았습니까.
“한국노동당, 민주노동당을 할 때는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정리가 되었어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고요.”
—솔직히 그동안 사회민주주의연대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갑자기 그런 질적(質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런 질적 변화가 아직은 없지만 곧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비를 해야죠.”
—그런 변화의 가능성이 보입니까.
“곧 586이 되는 486세대와는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요. 정의당 대표 후보로 나섰던 조성주씨,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혁신위원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진영 대결 구도를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진영 대결 구도가 무너지고 있어요. 그게 우리가 보는 큰 변화입니다.”
“486 독점에 균열 생기기 시작”
—하지만 조성주씨는 당 대표 경선에서 결국 패배했고,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이동학 혁신위원도 번번이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동학이나 조성주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한 세대가, 기성세대, 특히 야권에서 독식하고 있는 486세대를 극복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의당 같은 경우, 재작년에 당명을 사민당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48%가 거기에 찬성했어요. 그런 게 다 변화의 징조입니다. 그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486세대의 기득권이 그렇게 쉽게 깨질까요? 앞으로 20년은 더 해먹겠다고 할걸요.
“자연수명도 늘어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보면, 486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강한 기성세대가 되어 그 밑의 20~30대를 억누르고 있는 양상입니다. 그럴수록 20~30대의 반항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486세대에 치어 빛을 보지 못했던, 긴급조치세대, 즉 75, 76학번들, 천정배(千正培·국회의원), 조희연(曺喜昖·서울시 교육감), 김부겸(金富謙·전 국회의원), 이종걸(李鍾杰·새정연 원내대표), 유승민(劉承旼·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486세대보다 더 건강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거는 조금 다른 문제고, 중요한 것은 정치권에서 아래 위로 486 독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죠.”
—사민당은 기존의 녹색당, 정의당, 노동당 같은 좌파 정당이나 새정연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가 볼 때 그들은 모두 ‘꼰대 레프트’입니다. 그들은 임금피크제도 노동시장 개혁도 반대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게 되는 노동자가 과연 전체 노동자 가운데 몇 퍼센트나 됩니까? 그들은 상위 10% 안에 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꼰대 레프트’입니다.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만 해도 우리는 벌써 그들과 다르죠.”
“임금 격차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카스트 생겨”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원내(院內) 진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노총 등 노조(勞組)의 조직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위 10%의 조직 노동자들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사민당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네. 금방 쉽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운동보다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부터 하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이라고요?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은 그냥 ‘우리 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달라’는 운동이었습니다. 노조는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노조였어요. 그래서 민노총·전교조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급속하게 임금이 올라갔습니다. 이제 노동자 내부에서도 임금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어요.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 노동자는 9700만원, 사내(社內) 하청 노동자는 5000만원, 제1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3800만원, 제2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2400만원 하는 식으로 차이가 납니다. 제2차 하청업체 노동자와 기아자동차 노조 소속 노동자 간에는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임금 수준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카스트가 생겼어요.
그런데도 민노총이나 전교조는 이런 현실을 몰라요. 예를 들면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당신이 상위 10%’라고 하면 그걸 인정하지 않아요. 여전히 자기들이 노동자고, 약자(弱者)고, 소수자(少數者)고, 그래서 자기들은 약자인 서민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저는 평등가치를 실천하는 진정한 노동운동, 비정규직·중소 하청업체·중소기업 노동자 등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민당은 그런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보다 임금 격차 해소에 관심”
스웨덴·독일 등에서 사민당은 복지국가 건설의 선봉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민당의 창당발기취지문을 보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조절을 지향한다”고 주장하지만, ‘복지국가’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의아스러웠다. 조금 조심스럽게 “사민당이 내세우는 가장 큰 상품은 역시 복지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복지가 아닙니다. 복지는 2차 분배입니다. 우리는 복지보다는 1차 분배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1차 분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말한 임금 격차,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죠. 그다음에는 연금 격차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임금(賃金)·연금(年金)·세금(稅金), 3금(三金)을 공평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여기서 복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연금 정도라고 할까요?”
사민당의 정책안(案)인 〈대한민국에 드리는 사회민주당의 제안〉을 보면, 사민당은 임금과 관련해,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중 임금차별금지법, 비정규직제한법 등은 야당이나 좌파에서 늘 주장해 오던 것들이니 새로울 것이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민당이 임금피크제 도입, 노동시장 유연안전제도 시행 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제안에서는 “고임 노동자들은 강력한 노조를 이용해 더 많은 임금과 더 긴 정년을 관철해 왔다. 이런 구조가 청년 일자리를 줄였고 출산율도 떨어뜨렸다”면서 ‘55세 이상의 임금을 동결하고, 나이를 더 먹을수록 임금을 90%, 80%, 70%, 60%, 50%로 점차 축소하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금 노동운동은 ‘나만 잘살자는 운동’”
또 이 제안은 비정규직제한법 도입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기 용이하게 하여 더 많은 채용을 유도하고, 동시에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에게는 2년 이상 충분한 실업급여를 지급하여 해고의 불안을 줄이는’ 노동시장 유연안전제도(Flexicurity) 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대환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으로 볼 때, 아직은 일자리가 부족한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소수(少數)가 너무 독점(獨占)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잔업(殘業), 특근(特勤)만 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충분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에서는 임금이 줄어든다면서 임금피크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이 그걸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노동자들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이라는 게 너무 물질주의적이고 단기적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회사 다닐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배어 있어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이 나라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요. 가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아내와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했지? 우리가 생각하던 노동운동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하는 탄식을 하곤 합니다. 노동운동이 평등가치를 실현하자는 운동, 모두가 더불어 잘살자는 운동이 아니라 ‘나만 잘살자’는 운동이 되어버렸어요.”
—노동운동이 묘하게 변질되어 버렸군요.
“변질된 게 아닙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원래 그랬어요. 한국 사회는 농지개혁 이후 전 국민이 거의 비슷한 출발선상에서 비슷한 자산과 기회를 가지고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챙기고, 자기 자식을 자기가 책임지는 사회가 된 거죠. 그런 환경 속에서 노조도 자기부터 챙기는 노동운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1970년대 이후 학출(學出·대학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등장해 노조를 만들고 사회주의를 전파(傳播)하고, 파업 때면 노동자들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노동가(勞動歌)를 불렀죠.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을 사회주의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은 허구(虛構)였습니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수백 명의 열사(烈士)가 나왔지만, 그들 중에서 전태일(全泰壹)을 제외하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위해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임금 격차는 어떻게 줄입니까.
“동일노동 동일임금(同一勞動 同一賃金) 원칙을 법제화해야죠. 하는 일이 같으면, 작은 공장에서 일하건 큰 공장에서 일하건,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자동차 부품업체라고 하더라도, 회사의 능력에 따라 법으로 정한 임금을 줄 수 있는 곳도 있고, 그럴 수 없는 곳도 있을 텐데, 그걸 법으로 강제한단 말입니까.
“전국 규모의 경영자단체와 노동조합이 합의해서 정한 수준의 임금을 주지 못하는 회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개성공단으로 가든지, 문을 닫아야겠죠. 제조업의 경우, 사실 망해야 하는 회사인데, 억지로 문을 열고 있는 곳도 많잖아요.”
“스웨덴 사민당은 구조조정했다”
—그럼 한계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것입니까.
“(조금 뜸을 들이다가) 네. 1930~40년대 스웨덴의 사민당은 그렇게 했어요. 물론 그로 인한 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당시 사민당 정권은 국민의 막강한 지지를 배경으로 해서 스웨덴이 필요로 하던 산업 구조조정을 무섭게 추진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제도를 완성했지만….”
—그럼 사민당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노동자들에게 그걸 감수해야 한다고 설득할 겁니까.
“그런 걸 주장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뭐 하려고 당을 새로 만듭니까? 새정연도 있고, 정의당도 있고, 노동당도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사민당을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사민당의 주장을 보면,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박근혜 정권이 오히려 개혁적인 것 같아요. 거기에 저항하는 민노총,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서 함께 반대하는 야당이 더 반(反)개혁적이죠. 야당에서도 이동학 혁신위원 같은 젊은이들은 ‘노동개혁 찬성한다’고 하잖아요? 우리에게 기회가 되면 우리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면서, 20~3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민당은 집권도 하기 전에 독일 사민당 정권이 했던 것 같은 하르츠 개혁(독일 사민당 출신 슈뢰더 정권이 2002년 마련한 사회경제체제 개혁안. 폴크스바겐 이사 출신인 피터 하르츠가 위원장을 맡았다—기자 주)을 하겠다는 것 같네요.
“우리가 기존의 야권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외치는 얘기를 언젠가는 야권의 주류가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뉴 레프트(New Left)’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금은 국민연금으로 통합해야”
〈대한민국에 드리는 사회민주당의 제안〉의 두 번째 주장은 연금개혁이다. 사민당은 이 제안에서 “연금 삭감에만 주력하는 정부·여당의 정책방향, 불평등한 특수직역연금제도(공무원·사학연금 등) ‘사수’만을 주장하거나 무책임한 소득대체율 인상만을 주장하는 구(舊)진보 진영의 주장 역시 반대한다”고 밝혔다. 주대환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폐지하고 국민연금 하나로 통합해 연금의 형평성을 제고하되, 기초연금은 두 배로 늘려 사각(死角)지대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노후(老後)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연금도 좋고, 노후 보장도 좋은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은 천상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야당에서는 법인세(法人稅) 인상이나 부유세(富裕稅) 신설 등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 내에서도 증세(增稅)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에 드리는 사회민주당의 제안〉에서도 현재 약 100조원 규모인 법인세·소득세를 10% 올려 10조원의 세수를 확보하면 ‘기초연금 두 배’ 정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세금을 올려서 복지 하자는 주장 아닌가요.
“저는 법인세를 올리는 것보다는 우선 개인소득세를 인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면세점 이하인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최상위 소득자, 지금으로 치면 1억5000만~2억원 이상의 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최고구간을 하나 더 만들어서 45%(지방세까지 포함하면 50~55%) 정도의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자산세(資産稅)’ 신설도 주장했다.
“지금도 종합부동산세가 있지만, 슈퍼 리치(Super rich)들의 경우,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대개 금융자산으로 많이 갖고 있지요. 종합부동산세는 자산에서 부동산이 70~80%에 달하는 중산층(中産層)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부동산, 금융자산 등 순(純)자산의 총액을 계산해서 부과하는 자산세를 신설하자고 주장합니다. 일종의 부유세가 되겠지요.”
“사민당은 사상운동”
얘기를 나누다 보니, 주대환 위원장은 여전히 현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상가 내지 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총선에서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1~2% 정도에 그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의당·노동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민주주의라는 대안(代案) 이념을 제시했던 사민당이 진보 진영의 구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면 적어도 그들보다는 많은 표를 얻어야 하겠지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한 10년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제게 ‘사민당이 뭐냐’고 묻기에 ‘세속적인 의미의 정당운동은 아직 아니다. 하나의 사상운동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차라리 새정연에 들어가서 당내에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파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당을 사민당으로 개조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정당에 들어가서 한두 개의 의석을 확보하는 걸로는 우리의 뜻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의원을 보세요. 뭔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더니만,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요즘 1930년대 이후 미국의 정치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공황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종전에 보수적이고 지역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진보적인 전국정당으로 변신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던 공화당은 보수정당이 되었고요.
그런 대격변이 한국에서도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당에 들어가거나 의석을 얻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당분간 꼿꼿하게 우리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주장을 선명하게 펼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로변으로 이사 가자”
—어떤 사람들이 사민당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존의 진보정당들처럼 이념적으로 새정연의 왼쪽에 좌표를 설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사민당도 다른 군소(群小) 진보정당들처럼 한정된 좌파층을 상대로 하다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새누리당의 왼쪽, 새정연의 오른쪽에 우리의 좌표를 설정하려 합니다. 북한체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서 복지와 개혁을 주장하자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복지에 대한 바람이 있고, 마땅히 진보 진영을 해야 할 것 같은 저학력, 저소득, 노년층 노동자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단 상황 아래서 북한 문제, 안보 문제를 중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민당은 북한이나 안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평등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을 우리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자에게는 아주 생소한 얘기가 아니었다. 주대환 위원장과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해온 홍기표(洪奇杓) 사회민주당 창단준비모임 정책팀장이 이미 여러 자리에서 “강경한 대북(對北) 입장을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라면 새누리당의 ‘반북(反北) 마케팅’ 독점을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주대환 위원장은 “우리는 다른 진보정당들에 ‘이제 뒷골목에서 한정된 손님들을 상대로 하는 라면장사, 깍두기장사 그만 하고 큰 대로변으로 이사를 가자’고 권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우리 쪽으로 이사를 온다면 함께하겠지만, 우리가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스탈린주의체제가 다 그랬지만, 북한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도달한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체제입니다. 인권이나 현대 민주주의의 요소들, 즉 3권 분립, 다당제(多黨制),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것들을 다 부정하고 있잖아요? 이건 근대 이전으로 후퇴한 것이죠. 아니, 이씨 조선이 망한 후 다시 김씨 조선이 들어선 것이죠.”
“북한 주민들은 小作農만도 못 해”
—북한은 왜 저 지경이 되었을까요.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중국과의 국경이 저렇게 열려 있는데, 미국이 무슨 수로 북한을 봉쇄합니까?
북한의 실패는 북한 주민들이 ‘근대인(近代人)’이 되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집단농장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시키면 일하고 안 시키면 안 하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이건 조선시대 소작농(小作農)들만도 못 한 겁니다. 소작농들만 해도 자기가 경영해서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냈잖아요? 지금 북한 주민들은 조선시대로 치면 노비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농지개혁 이후 각자도생해 온 대한민국 국민들과는 정반대죠. 그래서 북한이 발전하지 못한 겁니다.”
—북한인권법에는 찬성하나요?
“우리는 사민당 준비모임을 할 때부터 북한인권법에 찬성해 왔어요.”
—지금까지 얘기한 역사·북한·노동 등에 관한 인식에 대해, 사민당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도 정말 동의하고 있습니까.
“개개인이 전부 다 한 글자 한 글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큰 틀에서는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는 벌써 ‘올드 레프트(Old Left)’들의 비난에 마음이 흔들려서 ‘몇 자 수정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올드 레프트’들이 뭐라고 비판을 합니까.
“‘뉴라이트(New Right)’와 같다는 거죠. ‘뉴라이트’라고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보 진영이나 야권에서는 ‘뉴라이트’라고 하면 친일파(親日派)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야권의 주류(主流)가 아직 민족주의 사관(史觀)에 사로잡혀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민족주의 사관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건 뉴라이트다’라면서 아예 상종 못 할, ‘보수(保守)의 간첩’ 정도로 보는 거죠.”
“NL이 김일성系라면, PD는 박헌영系”
아닌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성공한 역사로 본다든지, 북한 독재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그의 역사관은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과 흡사하다. 그는 “야권 쪽에 있는 친구들이 요즘 역사해석과 관련해 나보고 ‘뉴라이트’라고 하면서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모시려는 움직임에 찬성하느냐’고 물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s’가 빠졌다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국부(Founding fathers)’라고 하면 조지 워싱턴뿐 아니라,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등 여러 명을 얘기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 대통령뿐 아니라 김성수(金性洙), 신익희(申翼熙), 조봉암 선생 정도는 ‘국부’로 기렸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은 각각 미국, 국내 우파, 중국, 국내 좌파를 대표하는 분들로 건국에 참여해 나름대로 역할을 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창당발기인대회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발기인대회에 이인호(李仁浩) KBS이사장께서 축하화환을 보내주었고,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명예교수도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하 의원 보기 싫다고 나가버린 사람도 있었고, ‘이인호 이사장이 보내온 화환은 사양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화환을 보내주면 그게 나쁜 거냐, 우리 하는 일을 축하해 준다고 보내오는 걸 사양할 거야 없지 않느냐’고 달랬습니다.”
—과거 민노당이나 통합진보당은 PD와 NL이 함께 만든 정당이었지만, 결국 NL이 당을 장악했습니다. 사민당에도 NL이 침투해 당을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을까요?
“역사관이 워낙 달라서 주사파(主思派)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흔히 NL만 나쁜 걸로 생각하는데 - 이런 소리 하면 저보고 나쁜 놈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 PD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PD는 NL처럼 북한 김일성 체제에 충성하지 않는다 정도지, 대한민국을 보는 역사관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NL이 북로당(김일성계)이라면 PD는 남로당(박헌영계)이라는 정도죠. 동거(同居)가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비슷해야 하는 거죠.
통합진보당에서 경기동부연합·울산연합(NL계열)과는 당을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NL계열인) 인천연합이 나왔지만, 그러면서도 인천연합은 (PD계열인) 노회찬(魯會燦)·심상정(沈相奵)씨와 당을 같이했습니다. 정의당을 사민당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48%밖에 표를 얻지 못한 것도, 뒤집어서 보면 인천연합이 5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등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자유주의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자본주의를 긍정합니다. 사회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공유(共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야말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뤘을 때 얼마나 폭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는 자기 재산이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농지개혁을 한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유산자(有産者), 중산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조자립(自助自立)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된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달리 자부심과 평등의식이 강한 것도 자기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자기 자식을 먹여 살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등이 잘 조화를 이룬 나라였습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이 계속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존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요즘 보면 젊은 애들은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아버지가 약간 부족하다 해도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거든요.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이가 어릴 적 친구인데, 아버지가 동네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어요. 참 가난했지요. 아마 아버지가 한전(韓電)에 다녔던 우리 집이 더 잘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자기가 성실하게 열심히 하니까 장관까지 올라갔잖아요? 그런데 지금 박재완이 아들과 우리 아들이 사는 세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한 대(代)를 더 내려가서 손자 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신분이나 계급 비슷한 것이 생길 것 같아요.”
이야기 끝에 주 위원장은 탄식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이렇게 빨리,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어요. 도대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 시절인지도 몰랐고…. 너무 몰랐어.”
“위대한 중산층의 나라를 꿈꾼다”
—어떤 세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습니까.
“1950~60년대 미국처럼 위대한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주대환 위원장의 말에 모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은 증세를 통해 복지제도를 확충하자든지, 어린이집 교사, 간호사, 각종 복지 관련 도우미 등 공공(公共) 부문 일자리들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 등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만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긍정적이고, 북한 독재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며,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세력이 지금의 야당이나 좌파 세력들을 대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뉴 레프트’ 세력이 성장하면, 그에 따라 한국의 보수 세력도 긴장하면서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건강한 보수 세력’과 ‘건강한 좌파 세력’이 서로 선의(善意)의 경쟁을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것이 남들이 ‘자유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기자가 아직은 미미한 사회민주당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참으로 극적인 반전(反轉)의 연속이었다.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막다른 골목, 절망의 순간에도 새로운 길을 내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여기까지 왔다.”
“북한 김씨 일가 독재체제의 참담한 실패로 가시권에 들어온 민족통일의 과제는 오롯이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세습자본주의’라고 질타하면서, ‘임금·연금·세금을 공평하게’를 외치고, 평등과 연대(連帶)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사민당의 좌파적 색깔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눈에 들어온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사를 긍정하면서 북한체제를 ‘김씨 일가 독재체제’라고 분명하게 규정지은 대목들이었다.
취지문 곳곳에서 한 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주대환(周大煥·61)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1970년대 중반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세 차례 구속되었고 이후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서 활동해 온 노동운동가, 2004년 6월 당내(黨內) 다수파(多數派)인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주사파)계를 꺾고 민주노동당 정책위 위원장에 당선되었지만 2008년 종북(從北) 논란이 벌어지자 당을 박차고 나온 인물, 이후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새로운 좌파(左派) 운동의 진로를 모색해 온 ‘사회민주주의 전도사’… .
이날 그는 창당발기인대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김명기 전 정의당 고양지역위원장, 김위홍 전 사회보험노조 위원장과 함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를 만나 지금 창당을 준비 중인 사회민주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인기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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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서울 흥사단 대강당에서 열린 사회민주당 창당발기인대회. 앞줄 맨 왼쪽부터 박범진 전 의원,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 김명기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주섭일 전 《중앙일보》 논설실장, 주대환 위원장,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
주대환 위원장도 “이전에도 꼼꼼히 찾아보면 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썼던 정당이 있겠지만, 1987년 이후에는 사회민주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정당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이전에 있었던 ‘혁신(革新)정당’은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이념 정당이라기보다는 남북한 관계에서 북진(北進)통일·무력(武力)통일 대신 평화통일이나 중립화 통일을 주장하는 정당이라는 의미가 강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학자들도 한국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사민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얘기합니다. 흔히들 그 이유를 분단 상황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권의 혁명주의, 관념적 과격성에서 찾아왔습니다. 분단체제 아래서 대중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면 친공(親共) 내지 친북(親北)으로 생각해서 외면했고, 운동권 내부에서는 개량주의(改良主義)라고 해서 외면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동안 한국 사회가 평등한 사회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평등가치를 그리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농지개혁 아래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로 출발했습니다. 지니계수 등을 봐도, 우리나라는 1997년 IMF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아주 평등한 나라에 속했어요. 대한민국이 평등한 나라였기 때문에 평등을 주된 가치로 내세우는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성장할 수 없었다고 저는 봅니다.”
“기존 진영 구도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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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1일 여야5당 정책위의장 회의에 참석한 주대환 의장(맨 오른쪽). 오른쪽부터 주대환, 원혜영(열린우리당), 맹형규(한나라당), 김낙성(자민련), 김효석(민주당) 의장. |
“그렇습니다. 평등과 기회의 땅이었던 대한민국이 어느덧 세습자본주의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자산은 상위 1%에 집중되고, 전체 소득의 45%가 상위 10%에게 몰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낡은 진보’는 상위 10%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어요. 이제 ‘진짜 좌파’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그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바로 거기에 자본주의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을 추진했었죠. 그때도 사회민주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까.
“그때도 영국 노동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중당과 합당하면서 한국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잠시 보류했지만, 총선 후에는 당명을 다시 정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국제적인 브랜드, 영국 노동당의 계보임을 분명히 하는 정당을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민중당이 의석을 얻지 못해 등록 말소되는 바람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도 그런 생각이었습니까.
“앞에 붙은 ‘민주’는 조선노동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조선노동당의 시대는 가고, 한국노동당의 시대가 왔다’, 그런 생각이었죠.”
하지만 주대환 위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은 SD(Social Demo-cracy·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주의)와 NL(민족해방·주사파)들의 정당이었고, 나중에는 NL의 정당으로 둔갑했다. 2008년 민노당을 나온 그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열심히 사회민주주의를 세일즈했지만, 별다른 세(勢)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 사민당에 참여하는 분들은 다 사회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으로 뜻을 모았습니까.
“한국노동당, 민주노동당을 할 때는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정리가 되었어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고요.”
—솔직히 그동안 사회민주주의연대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갑자기 그런 질적(質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런 질적 변화가 아직은 없지만 곧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비를 해야죠.”
—그런 변화의 가능성이 보입니까.
“곧 586이 되는 486세대와는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요. 정의당 대표 후보로 나섰던 조성주씨,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혁신위원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진영 대결 구도를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진영 대결 구도가 무너지고 있어요. 그게 우리가 보는 큰 변화입니다.”
“486 독점에 균열 생기기 시작”
—하지만 조성주씨는 당 대표 경선에서 결국 패배했고,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이동학 혁신위원도 번번이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동학이나 조성주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한 세대가, 기성세대, 특히 야권에서 독식하고 있는 486세대를 극복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의당 같은 경우, 재작년에 당명을 사민당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48%가 거기에 찬성했어요. 그런 게 다 변화의 징조입니다. 그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486세대의 기득권이 그렇게 쉽게 깨질까요? 앞으로 20년은 더 해먹겠다고 할걸요.
“자연수명도 늘어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보면, 486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강한 기성세대가 되어 그 밑의 20~30대를 억누르고 있는 양상입니다. 그럴수록 20~30대의 반항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486세대에 치어 빛을 보지 못했던, 긴급조치세대, 즉 75, 76학번들, 천정배(千正培·국회의원), 조희연(曺喜昖·서울시 교육감), 김부겸(金富謙·전 국회의원), 이종걸(李鍾杰·새정연 원내대표), 유승민(劉承旼·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486세대보다 더 건강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거는 조금 다른 문제고, 중요한 것은 정치권에서 아래 위로 486 독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죠.”
—사민당은 기존의 녹색당, 정의당, 노동당 같은 좌파 정당이나 새정연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가 볼 때 그들은 모두 ‘꼰대 레프트’입니다. 그들은 임금피크제도 노동시장 개혁도 반대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게 되는 노동자가 과연 전체 노동자 가운데 몇 퍼센트나 됩니까? 그들은 상위 10% 안에 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꼰대 레프트’입니다.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만 해도 우리는 벌써 그들과 다르죠.”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원내(院內) 진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노총 등 노조(勞組)의 조직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위 10%의 조직 노동자들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사민당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네. 금방 쉽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운동보다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부터 하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이라고요?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은 그냥 ‘우리 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달라’는 운동이었습니다. 노조는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노조였어요. 그래서 민노총·전교조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급속하게 임금이 올라갔습니다. 이제 노동자 내부에서도 임금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어요.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 노동자는 9700만원, 사내(社內) 하청 노동자는 5000만원, 제1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3800만원, 제2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2400만원 하는 식으로 차이가 납니다. 제2차 하청업체 노동자와 기아자동차 노조 소속 노동자 간에는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임금 수준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카스트가 생겼어요.
그런데도 민노총이나 전교조는 이런 현실을 몰라요. 예를 들면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당신이 상위 10%’라고 하면 그걸 인정하지 않아요. 여전히 자기들이 노동자고, 약자(弱者)고, 소수자(少數者)고, 그래서 자기들은 약자인 서민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저는 평등가치를 실천하는 진정한 노동운동, 비정규직·중소 하청업체·중소기업 노동자 등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민당은 그런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보다 임금 격차 해소에 관심”
스웨덴·독일 등에서 사민당은 복지국가 건설의 선봉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민당의 창당발기취지문을 보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조절을 지향한다”고 주장하지만, ‘복지국가’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의아스러웠다. 조금 조심스럽게 “사민당이 내세우는 가장 큰 상품은 역시 복지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복지가 아닙니다. 복지는 2차 분배입니다. 우리는 복지보다는 1차 분배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1차 분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말한 임금 격차,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죠. 그다음에는 연금 격차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임금(賃金)·연금(年金)·세금(稅金), 3금(三金)을 공평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여기서 복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연금 정도라고 할까요?”
사민당의 정책안(案)인 〈대한민국에 드리는 사회민주당의 제안〉을 보면, 사민당은 임금과 관련해,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중 임금차별금지법, 비정규직제한법 등은 야당이나 좌파에서 늘 주장해 오던 것들이니 새로울 것이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민당이 임금피크제 도입, 노동시장 유연안전제도 시행 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제안에서는 “고임 노동자들은 강력한 노조를 이용해 더 많은 임금과 더 긴 정년을 관철해 왔다. 이런 구조가 청년 일자리를 줄였고 출산율도 떨어뜨렸다”면서 ‘55세 이상의 임금을 동결하고, 나이를 더 먹을수록 임금을 90%, 80%, 70%, 60%, 50%로 점차 축소하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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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위원장은 “현재의 노조는 상위 10%만을 대변한다”고 비판한다. 사진은 2014년 11월 27일 파업출정식을 하는 현대중공업 노조원들. |
이와 관련해 주대환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으로 볼 때, 아직은 일자리가 부족한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소수(少數)가 너무 독점(獨占)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잔업(殘業), 특근(特勤)만 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충분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에서는 임금이 줄어든다면서 임금피크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이 그걸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노동자들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이라는 게 너무 물질주의적이고 단기적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회사 다닐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배어 있어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이 나라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요. 가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아내와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했지? 우리가 생각하던 노동운동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하는 탄식을 하곤 합니다. 노동운동이 평등가치를 실현하자는 운동, 모두가 더불어 잘살자는 운동이 아니라 ‘나만 잘살자’는 운동이 되어버렸어요.”
—노동운동이 묘하게 변질되어 버렸군요.
“변질된 게 아닙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원래 그랬어요. 한국 사회는 농지개혁 이후 전 국민이 거의 비슷한 출발선상에서 비슷한 자산과 기회를 가지고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챙기고, 자기 자식을 자기가 책임지는 사회가 된 거죠. 그런 환경 속에서 노조도 자기부터 챙기는 노동운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1970년대 이후 학출(學出·대학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등장해 노조를 만들고 사회주의를 전파(傳播)하고, 파업 때면 노동자들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노동가(勞動歌)를 불렀죠.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을 사회주의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은 허구(虛構)였습니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수백 명의 열사(烈士)가 나왔지만, 그들 중에서 전태일(全泰壹)을 제외하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위해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임금 격차는 어떻게 줄입니까.
“동일노동 동일임금(同一勞動 同一賃金) 원칙을 법제화해야죠. 하는 일이 같으면, 작은 공장에서 일하건 큰 공장에서 일하건,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자동차 부품업체라고 하더라도, 회사의 능력에 따라 법으로 정한 임금을 줄 수 있는 곳도 있고, 그럴 수 없는 곳도 있을 텐데, 그걸 법으로 강제한단 말입니까.
“전국 규모의 경영자단체와 노동조합이 합의해서 정한 수준의 임금을 주지 못하는 회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개성공단으로 가든지, 문을 닫아야겠죠. 제조업의 경우, 사실 망해야 하는 회사인데, 억지로 문을 열고 있는 곳도 많잖아요.”
“스웨덴 사민당은 구조조정했다”
—그럼 한계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것입니까.
“(조금 뜸을 들이다가) 네. 1930~40년대 스웨덴의 사민당은 그렇게 했어요. 물론 그로 인한 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당시 사민당 정권은 국민의 막강한 지지를 배경으로 해서 스웨덴이 필요로 하던 산업 구조조정을 무섭게 추진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제도를 완성했지만….”
—그럼 사민당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노동자들에게 그걸 감수해야 한다고 설득할 겁니까.
“그런 걸 주장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뭐 하려고 당을 새로 만듭니까? 새정연도 있고, 정의당도 있고, 노동당도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사민당을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사민당의 주장을 보면,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박근혜 정권이 오히려 개혁적인 것 같아요. 거기에 저항하는 민노총,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서 함께 반대하는 야당이 더 반(反)개혁적이죠. 야당에서도 이동학 혁신위원 같은 젊은이들은 ‘노동개혁 찬성한다’고 하잖아요? 우리에게 기회가 되면 우리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면서, 20~3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민당은 집권도 하기 전에 독일 사민당 정권이 했던 것 같은 하르츠 개혁(독일 사민당 출신 슈뢰더 정권이 2002년 마련한 사회경제체제 개혁안. 폴크스바겐 이사 출신인 피터 하르츠가 위원장을 맡았다—기자 주)을 하겠다는 것 같네요.
“우리가 기존의 야권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외치는 얘기를 언젠가는 야권의 주류가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뉴 레프트(New Left)’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금은 국민연금으로 통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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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이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민당은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기초연금도 좋고, 노후 보장도 좋은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은 천상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야당에서는 법인세(法人稅) 인상이나 부유세(富裕稅) 신설 등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 내에서도 증세(增稅)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에 드리는 사회민주당의 제안〉에서도 현재 약 100조원 규모인 법인세·소득세를 10% 올려 10조원의 세수를 확보하면 ‘기초연금 두 배’ 정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세금을 올려서 복지 하자는 주장 아닌가요.
“저는 법인세를 올리는 것보다는 우선 개인소득세를 인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면세점 이하인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최상위 소득자, 지금으로 치면 1억5000만~2억원 이상의 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최고구간을 하나 더 만들어서 45%(지방세까지 포함하면 50~55%) 정도의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자산세(資産稅)’ 신설도 주장했다.
“지금도 종합부동산세가 있지만, 슈퍼 리치(Super rich)들의 경우,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대개 금융자산으로 많이 갖고 있지요. 종합부동산세는 자산에서 부동산이 70~80%에 달하는 중산층(中産層)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부동산, 금융자산 등 순(純)자산의 총액을 계산해서 부과하는 자산세를 신설하자고 주장합니다. 일종의 부유세가 되겠지요.”
“사민당은 사상운동”
얘기를 나누다 보니, 주대환 위원장은 여전히 현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상가 내지 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총선에서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1~2% 정도에 그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의당·노동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민주주의라는 대안(代案) 이념을 제시했던 사민당이 진보 진영의 구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면 적어도 그들보다는 많은 표를 얻어야 하겠지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한 10년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제게 ‘사민당이 뭐냐’고 묻기에 ‘세속적인 의미의 정당운동은 아직 아니다. 하나의 사상운동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차라리 새정연에 들어가서 당내에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파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당을 사민당으로 개조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정당에 들어가서 한두 개의 의석을 확보하는 걸로는 우리의 뜻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의원을 보세요. 뭔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더니만,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요즘 1930년대 이후 미국의 정치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공황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종전에 보수적이고 지역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진보적인 전국정당으로 변신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던 공화당은 보수정당이 되었고요.
그런 대격변이 한국에서도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당에 들어가거나 의석을 얻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당분간 꼿꼿하게 우리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주장을 선명하게 펼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로변으로 이사 가자”
—어떤 사람들이 사민당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존의 진보정당들처럼 이념적으로 새정연의 왼쪽에 좌표를 설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사민당도 다른 군소(群小) 진보정당들처럼 한정된 좌파층을 상대로 하다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새누리당의 왼쪽, 새정연의 오른쪽에 우리의 좌표를 설정하려 합니다. 북한체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서 복지와 개혁을 주장하자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복지에 대한 바람이 있고, 마땅히 진보 진영을 해야 할 것 같은 저학력, 저소득, 노년층 노동자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단 상황 아래서 북한 문제, 안보 문제를 중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민당은 북한이나 안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평등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을 우리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자에게는 아주 생소한 얘기가 아니었다. 주대환 위원장과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해온 홍기표(洪奇杓) 사회민주당 창단준비모임 정책팀장이 이미 여러 자리에서 “강경한 대북(對北) 입장을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라면 새누리당의 ‘반북(反北) 마케팅’ 독점을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주대환 위원장은 “우리는 다른 진보정당들에 ‘이제 뒷골목에서 한정된 손님들을 상대로 하는 라면장사, 깍두기장사 그만 하고 큰 대로변으로 이사를 가자’고 권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우리 쪽으로 이사를 온다면 함께하겠지만, 우리가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스탈린주의체제가 다 그랬지만, 북한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도달한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체제입니다. 인권이나 현대 민주주의의 요소들, 즉 3권 분립, 다당제(多黨制),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것들을 다 부정하고 있잖아요? 이건 근대 이전으로 후퇴한 것이죠. 아니, 이씨 조선이 망한 후 다시 김씨 조선이 들어선 것이죠.”
“북한 주민들은 小作農만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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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위원장은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을 높이 평가한다. 사진은 농지개혁법 공포를 알린 1949년 6월 22일자 《조선일보》. |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중국과의 국경이 저렇게 열려 있는데, 미국이 무슨 수로 북한을 봉쇄합니까?
북한의 실패는 북한 주민들이 ‘근대인(近代人)’이 되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집단농장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시키면 일하고 안 시키면 안 하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이건 조선시대 소작농(小作農)들만도 못 한 겁니다. 소작농들만 해도 자기가 경영해서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냈잖아요? 지금 북한 주민들은 조선시대로 치면 노비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농지개혁 이후 각자도생해 온 대한민국 국민들과는 정반대죠. 그래서 북한이 발전하지 못한 겁니다.”
—북한인권법에는 찬성하나요?
“우리는 사민당 준비모임을 할 때부터 북한인권법에 찬성해 왔어요.”
—지금까지 얘기한 역사·북한·노동 등에 관한 인식에 대해, 사민당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도 정말 동의하고 있습니까.
“개개인이 전부 다 한 글자 한 글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큰 틀에서는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는 벌써 ‘올드 레프트(Old Left)’들의 비난에 마음이 흔들려서 ‘몇 자 수정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올드 레프트’들이 뭐라고 비판을 합니까.
“‘뉴라이트(New Right)’와 같다는 거죠. ‘뉴라이트’라고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보 진영이나 야권에서는 ‘뉴라이트’라고 하면 친일파(親日派)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야권의 주류(主流)가 아직 민족주의 사관(史觀)에 사로잡혀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민족주의 사관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건 뉴라이트다’라면서 아예 상종 못 할, ‘보수(保守)의 간첩’ 정도로 보는 거죠.”
“NL이 김일성系라면, PD는 박헌영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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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3일 민노당 임시전당대회장 앞에서는 일심회 간첩사건 처리를 두고 PD계열(왼쪽)과 NL(오른쪽) 계열이 심하게 대립했다. |
“그때마다 나는 ‘s’가 빠졌다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국부(Founding fathers)’라고 하면 조지 워싱턴뿐 아니라,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등 여러 명을 얘기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 대통령뿐 아니라 김성수(金性洙), 신익희(申翼熙), 조봉암 선생 정도는 ‘국부’로 기렸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은 각각 미국, 국내 우파, 중국, 국내 좌파를 대표하는 분들로 건국에 참여해 나름대로 역할을 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창당발기인대회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발기인대회에 이인호(李仁浩) KBS이사장께서 축하화환을 보내주었고,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명예교수도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하 의원 보기 싫다고 나가버린 사람도 있었고, ‘이인호 이사장이 보내온 화환은 사양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화환을 보내주면 그게 나쁜 거냐, 우리 하는 일을 축하해 준다고 보내오는 걸 사양할 거야 없지 않느냐’고 달랬습니다.”
—과거 민노당이나 통합진보당은 PD와 NL이 함께 만든 정당이었지만, 결국 NL이 당을 장악했습니다. 사민당에도 NL이 침투해 당을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을까요?
“역사관이 워낙 달라서 주사파(主思派)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흔히 NL만 나쁜 걸로 생각하는데 - 이런 소리 하면 저보고 나쁜 놈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 PD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PD는 NL처럼 북한 김일성 체제에 충성하지 않는다 정도지, 대한민국을 보는 역사관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NL이 북로당(김일성계)이라면 PD는 남로당(박헌영계)이라는 정도죠. 동거(同居)가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비슷해야 하는 거죠.
통합진보당에서 경기동부연합·울산연합(NL계열)과는 당을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NL계열인) 인천연합이 나왔지만, 그러면서도 인천연합은 (PD계열인) 노회찬(魯會燦)·심상정(沈相奵)씨와 당을 같이했습니다. 정의당을 사민당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48%밖에 표를 얻지 못한 것도, 뒤집어서 보면 인천연합이 5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등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자유주의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자본주의를 긍정합니다. 사회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공유(共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야말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뤘을 때 얼마나 폭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는 자기 재산이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농지개혁을 한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유산자(有産者), 중산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조자립(自助自立)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된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달리 자부심과 평등의식이 강한 것도 자기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자기 자식을 먹여 살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등이 잘 조화를 이룬 나라였습니다.”
주대환 위원장은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이 계속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존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요즘 보면 젊은 애들은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아버지가 약간 부족하다 해도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거든요.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이가 어릴 적 친구인데, 아버지가 동네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어요. 참 가난했지요. 아마 아버지가 한전(韓電)에 다녔던 우리 집이 더 잘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자기가 성실하게 열심히 하니까 장관까지 올라갔잖아요? 그런데 지금 박재완이 아들과 우리 아들이 사는 세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한 대(代)를 더 내려가서 손자 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신분이나 계급 비슷한 것이 생길 것 같아요.”
이야기 끝에 주 위원장은 탄식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이렇게 빨리,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어요. 도대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 시절인지도 몰랐고…. 너무 몰랐어.”
“위대한 중산층의 나라를 꿈꾼다”
—어떤 세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습니까.
“1950~60년대 미국처럼 위대한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주대환 위원장의 말에 모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은 증세를 통해 복지제도를 확충하자든지, 어린이집 교사, 간호사, 각종 복지 관련 도우미 등 공공(公共) 부문 일자리들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 등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만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긍정적이고, 북한 독재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며,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세력이 지금의 야당이나 좌파 세력들을 대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뉴 레프트’ 세력이 성장하면, 그에 따라 한국의 보수 세력도 긴장하면서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건강한 보수 세력’과 ‘건강한 좌파 세력’이 서로 선의(善意)의 경쟁을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것이 남들이 ‘자유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기자가 아직은 미미한 사회민주당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