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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학교현장

‘제2의 교복’ 된 노스페이스 패딩점퍼

가격·색깔이 학생간 힘의 서열 나타내기도

글 : 장재진  월간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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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 노스페이스 점퍼 없으면 친구들과 동질감 느끼기 어려울 정도
⊙ 옷 색깔에 따라 아이들 위계질서 가늠하는 것도 가능

취재멘토 : 河周希月刊朝鮮 기자
  “노스페이스 점퍼가 갖고 싶어서요.” 또래 중학생을 골목으로 끌고 가 빈병으로 위협하고 폭행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박모(15) 군의 범행 동기다. 지난 1월 6일 부산진경찰서는 길을 가던 중학생을 폭행해 노스페이스 패딩점퍼를 빼앗은 중학생 5명을 입건했다. 사건을 맡은 여상근 형사는 “요새 학생들은 노스페이스를 입어야 친구들 사이에서 창피하지 않은 모양인데, 가해자들은 고가의 점퍼를 살 형편이 안되니까 이런 일을 벌인 것 같다”고 했다.
 
  10대 사이에서 ‘제2의 교복’으로 통하는 노스페이스 점퍼는 학생들 사이에서 ‘노스 패딩’ ‘노패’ 등으로도 불린다. 그 인기는 작년 12월 18일에도 확인됐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등장한 ‘노스페이스 계급’이 그것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자 인터넷에 급속도로 유포된 한 장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중고생이 주로 입는 노스페이스 패딩점퍼(이하 노스 패딩)가 가격에 따라 구분돼 있었다. 25만원짜리는 가장 하급(下級)이라는 의미에서 속칭 ‘찌질이’로, 가장 비싼 70만원 제품은 ‘대장’ 등급으로 분류되는 식이었다. 50만원대부터는 학생이 부모님의 등골을 빼 먹을 만큼 고가라는 뜻에서 ‘등골브레이커’라는 명칭이 부여돼 있다.
 
  이 제품을 판매하는 (주)골드윈코리아는 작년 6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800억원이던 것이 2007년에는 3200억원으로, 다시 4년이 지난 2011년에는 6000억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신장률 25%다.
 
 
  빨간색이 최고 등급
 
  이 유행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골드윈코리아 홍보실 관계자는 “2000년대 초부터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노스 패딩을 선호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서울 소재 중학교 2학년생 네 명을 만났다.
 
  기자가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는 친구가 한 반에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자 “반 이상”이라고 이들 학생은 답했다. 중학교 한 개 반은 30명 내외인데 그중 20명이 노스 패딩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2벌 이상 가지고 날짜별로 돌려서 입는 학생도 5명가량 됐다.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 중에서도 학생들이 유독 노스페이스 패딩점퍼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옷이 따뜻한 것도 있는데 친구들이 다 입으니까요. 소속감 같아요. 전부 입고 있는데 자기만 안 입고 있으면 뒤처지는 거 잖아요.” 한 학생의 말이다.
 
  노스페이스 계급 사진을 본 적 있느냐고 묻자 네 명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스페이스 계급 사진을 보고 기분이 어땠나요.
 
  박=기분이 좀 나빴어요. 내가 가진 게 제일 밑에 있는 급이었거든요.
 
  김=맞아. 내 것도 가장 하급이더라.
 
  ―70만원짜리 패딩점퍼를 입는 친구도 있나요.
 
  최=저는 못 본 것 같아요. 간혹 50만원짜리를 입는 친구는 있어요. 대부분은 25만원짜리를 입고 그 이상의 옷을 입는 친구는 잘 안 보이죠.
 
  ―색깔로도 계급이 나뉜다는데, 무슨 뜻인가요.
 
  박=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이런 게 있어요. 밝아서 튀는 색깔의 패딩은 반에서 힘 좀 쓰거나 잘 노는 친구들이 입어요. 대부분의 학생은 검정이나 남색을 많이 입는 편이고요.
 
  ―평범한 친구가 튀는 색깔의 옷을 사면 어떻게 되나요.
 
  최=뺏기기도 해요. 완전히 뺏는 것은 아니고 평범한 애가 밝은 색 패딩을 입고 오면 일진(교실에서 싸움 잘하는 학생)이 와서는 가져가요. 학교 안에서는 걔네들이 입다가 하교 시간에 다시 돌려주는 식이죠.
 
  박=분위기라는 게 있어서 평범한 애들은 스스로 눈치를 보고 애초에 밝은 색 패딩점퍼를 안 사요.
 
  ―그렇다면 밝은 색깔을 입는 친구들은 평범한 친구들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박=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튀는 색 중에서도 붉은색이 최고급인 거 같아요. 가장 강렬하고 튀는 색이니까 반에서 제일 힘 센 친구가 입어요.
 
  최=일진 중에서도 잘나가는 친구일수록 독특한 색을 입어요. 제 주변에는 연두색을 입는 친구도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경우죠.
 
  네 명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이들 학생의 반에는 네 종류의 서열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일진 그룹’으로 자유롭게 색깔을 고를 수 있는 이들, 그 밑엔 비교적 반에서 영향력 있는 무리가 있다. 이들도 외투 색깔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세 번째는 일진 그룹과 어쩔 수 없이 친해서 ‘셔틀 계급’으로 묶인 힘없는 학생들이다. ‘셔틀’이란 일진들의 심부름을 해 줘야 하는 처지의 학생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끝으로는 대부분 학생이 속한 평범한 집단이 있다. 상위 두 계급은 밝은 색 패딩을 입을 수 있지만, 셔틀 계급과 평범한 학생은 어두운 색 패딩점퍼를 ‘눈치껏’ 입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중학생이 브랜드나 서열 더 따져
 
  노스페이스 계급 현상은 대학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생 사이에서는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앙대 청소년학과 임영식(林英植) 교수는 “중학생은 초기 청소년기에 해당하는데 친구의 행동이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중요한 준거가 된다”며 “이러한 동조현상은 초기 청소년기에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연령이 높아지면서는 감소하기 때문에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게서 노스 패딩의 선호나 계급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이은희(李銀姬) 교수는 “초등학생과 비교하면 중학생은 내면에 불안감이 조금씩 생기는 나이인데, 그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 바로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방법이 외모의 인정으로,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옷은 다른 물건보다 가장 눈에 띄고 민감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노스페이스가 학생들 사이에서 ‘교복 위의 교복’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마케팅 전략의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골드윈코리아에 문의하자 “따로 10대를 겨냥해 마케팅 전략을 세운 것은 없다”며 “우리도 10대가 왜 그렇게 노스 패딩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다른 중학생을 만나 취재하던 중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는 응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2009년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젊은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고 2011년에는 10대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인 ‘빅뱅’과 탤런트 이연희를 발탁했다. 경쟁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주의 문화의 소산
 
  인기 아이돌 그룹이 10대 노스페이스 선호 현상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광고 모델이 패션 제품에서 가지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청소년일 때는 영향력이 제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成瓔信) 교수의 말이다.
 
  노스페이스는 본래 미국 브랜드다. 미국 현지 상황은 어떨까.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 한인 유학생은 “미국 학생들도 밖에서 운동할 때는 노스페이스 운동복을 입는 경우가 있지만 한국처럼 다수의 학생이 교실에서 무리지어 패딩점퍼를 입거나 하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스 패딩의 인기가 한국의 예외적인 경우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 이유를 성영신 교수는 문화권 차이로 설명했다.
 
  “특정 브랜드를 추종하는 현상은 한국, 중국, 일본의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동양문화의 특성은 집단주의 문화인데, 바로 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보다 집단 유행 현상이 덜한 것이지요. 특히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가 밀집돼 있고 정보기술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관심이 더 많고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노스페이스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노스페이스 계급이 논란이 된 이후에도 매장 방문객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만난 취재원들도 “앞으로도 노스페이스는 유행할 것 같다”고 밝혀 10대의 노스 패딩 선호 현상은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미래의 기둥을 길러 내는 학교 현장. 그곳에서 벌어지는 비교육적 행태가 유감이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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