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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伊시칠리아에서 바라본 법의 확립과 대한민국의 내일

‘우리끼리’ 거부하고 마피아와 싸운 검사 조반니 팔코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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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팔코네, 마피아 범죄 수사하다 1992년 폭탄 테러로 암살당해
⊙ 윤 대통령, ‘패거리 카르텔 척결’ 강조… 각론은 정치인 한동훈의 책무 될 것
⊙ 작년 12월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 불법 정치 자금 수사… 자민당 의원 절반 연루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팔코네 벽화는 시칠리아 어디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할 때’라는 문구가 항상 함께한다. 사진=유민호
  2024년 신년 한국에 필요한, 한국인이 지향해야 할 원칙과 가치는 무엇일까? 빨리, 많이, 크게를 넘어선, 목적으로서의 세계관은 무엇일까? 여러 논의가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을 듯하다.
 
  ‘법(法)의 확립’은 필자가 생각하는 원칙 가치로서의 대한민국의 첫 출발점이다. 법의 확립은 이미 20세기 이전에 끝낸 서방 근대화, 민주주의의 흔적이기도 하다. 과거사로 밀려난,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잊고 지내는 것이 법의 확립이다. 그러나 2024년 한국을 보면 너무도 절실하다. 법이 한순간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인간과 세력들이 넘친다. 법 앞에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법 자체를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불온한 공기가 넘실댄다. 1억원짜리 개(犬)복제도 이뤄지고, 1만 달러짜리 명품가방이 넘치는, 평화와 번영의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아예 내로남불 법을 통해 혁명 전야 카오스 세상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국민소득 5만 달러나 G8이 된다 해도 법의 확립이 없다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법이 느슨하다는 것은, 사회 통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통상, 법은 수단으로써 활용된다. 그러나 2024년 한국에서의 법의 위상을 보면, 수단을 넘어선 목적으로 받들어야만 할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법을 우습게 보는 인간과 세력도 문제지만, 느리고 이념 편향적인 재판, 나아가 물러터진 솜방망이 법 집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법과 관련된 모든 것이 수단 차원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느껴질 정도로 신성하고 절박하다.
 
 
  타임 캡슐 팔레르모
 
  2023년 크리스마스 직전 이탈리아에 ‘잠시’ 들렀다. 20여 년 친구의 아버지가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하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남자의 삶을 바다에 비유해 풀어나갔다.
 
  “프랑스는 바다를 여성명사로 받아들이면서, 바다=여성으로 해석한다. 정신 나간 멍청한 생각이다. 시칠리아에서 바다는 남성명사다. 따라서 바다=남성이다. 태풍, 폭우, 쓰나미가 밀려와도 남성이라면 친구로 받아들일 것이다. 바다는 연인이 아니라 친구다.”
 
  장례식은 친구의 집이 있는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거행됐다. 때 마침 연말 한정 최저가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인도 뭄바이에 머물던 중, 일사천리로 결정해 왕복 6일 일정으로 시칠리아를 다녀왔다.
 
  장례 예배는 팔레르모 한복판 산 도미니크 교회(Church of Saint Dominic)에서 치러졌다. 장례와 묘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 이탈리아다.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며 교회와 관할 커뮤니티를 통해 미리 대비한다고 한다. 일찍 준비한 덕분인지, 예배에 참석한 가족들을 봐도 슬픔의 그림자가 거의 없다.
 

  시칠리아에 머무는 동안 팔레르모와 주변 산보에 나섰다. 팔레르모는 진짜 이탈리아의 모습을 간직한 거대한 문화유산이다. 19세기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타임 슬립(Time Slip) 무대다.
 
  글로벌 시대의 결과이지만, 이탈리아 대부분은 사실상 ‘플라스틱 도시’로 변했다. 일단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극히 드물다. 제대로 된 이탈리아 요리를 즐기려면 돈도 들지만,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나가야만 한다. 젊은 이탈리아인들조차 와인을 멀리하고 케밥과 태국 요리에 열광하는 시대다.
 
  육지에서 떨어진 시칠리아는 이 같은 추락에서 벗어나 있다. 음식도 그대로이고, 가격도 적당하다. 로컬 와인이 한 잔이 아닌 한 병에 1유로(1450원)다. 관광객이 몰리는 팔레르모 중심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100년 전, 아니 500년 전 시칠리아 얼굴과 멋 그리고 맛을 만날 수 있다.
 
 
  ‘聖人’이 된 검사
 
팔레르모의 조반니 팔코네 무덤은 반마피아 운동의 출발점이다. 유럽 전역에서 찾는 순례객들로 붐빈다.
  시칠리아라고 하면 마피아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칠리아 전체를 통틀어 마피아의 총본부 같은 곳이 팔레르모다. 장례식이 끝난 뒤 친구와 식사를 하던 중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 장례식이 치러진 산 도미니크 교회는 반(反)마피아 운동의 성지(聖地)다. 마피아에 반대하고, 마피아와의 검은 관계를 끊으려는 사람이라면 일단 산 도미니크부터 들른다.”
 
  친구의 설명과 함께 귀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들렸다. 이탈리아, 아니 세계를 대표하는 법의 화신(化神),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1939~1992년)란 인물이다. 산 도미니크 안에 팔코네 묘지가 있다고 한다.
 
  마피아에 관심이 있다면 조반니 팔코네란 이름을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졌는데, 마피아 담당 검사로 팔레르모 최대 마약조직을 수사하던 중 암살당한 이탈리아공화국의 영웅이다.
 
  팔코네는 원래 팔레르모 출신으로, 팔레르모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로마에서 마피아 전담 검사로 발탁돼 일하던 1992년 5월 23일, 고향 팔레르모에서 암살된다. 초(超)고성능 원격폭탄에 의한 자동차 폭발 테러였다. 흔적도 없이 통째로 날아갈 당시, 팔코네 부인과 검찰 직원 3명도 동시에 사라졌다. 팔레르모에서 열린 팔코네의 장례식은 국장(國葬) 수준이었다고 한다.
 
  팔코네의 비극은 자동차 테러 57일 뒤인 1992년 7월 19일 재현된다. 팔코네의 동료인 마피아 전담 검사 파올로 볼세리노(Paolo Borsellino)가 팔레르모의 어머니 집에 머물던 중 자동차 폭발 테러로 살해된 것이다. 검찰 직원 4명도 함께 숨진다. 팔레르모 출신 볼세리노는 팔코네의 친구이자 검찰 동료이기도 했다.
 
  두 사건의 주범은 나중에 체포되어 종신형에 처해진 마피아 두목 리나(Riina)였다. 그는 무려 400kg의 폭약을 사건 현장에 설치해 원격 조작으로 살해했다고 한다. 한순간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 엄청난 테러로, 당시 지진이 난 걸로 오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거의 ‘성인(聖人)’으로 추앙된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풀이시 신부는 바티칸 가톨릭이 인정한, 마피아에 암살된 최초의 성직자다. 시칠리아에는 복자(福者) 풀이시의 이름을 딴 어린이가 많다.
  식사를 마치고 즉시 교회로 향했다. 산 도미니크 안으로 들어가자 팔코네의 무덤이 보였다. 장례식 때는 놓쳤지만, 정문으로 들어가 성당 오른쪽 중간 지점이 팔코네의 무덤이다. 이미 10여 명의 순례객들이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작은 편지 수십여 통이 팔코네의 대리석 묘비 위에 놓여 있었다. 순례객들이 직접 써서 남긴 편지로, 팔코네를 기리고 존경하는 내용들이었다.
 
  겨울철 교회는 차갑고도 쓸쓸하다. 하얀 대리석이 내뿜는 냉기(冷氣)와 함께, 귀적(鬼籍)에 오른 사람들의 싸늘한 영혼이 표류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팔코네의 무덤 주변은 설명할 수 없는 온기로 채워진 듯하다.
 
  순례객들은 조문(弔問) 이후, 약속이나 한 듯 무덤 정반대 편 채플 쪽으로 이동했다. 궁금해서 따라가 봤다. 팔코네 정반대 편 채플을 지키는 무덤의 주인공은 주세페 풀이시(Giuseppe Puglisi)라는 이름의 교회 신부였다. 1937년 팔레르모에서 태어난 그도 가톨릭 교회가 성인으로 추앙한 인물이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풀이시는 교회 보수공사를 핑계로 돈을 뜯으려던 동네 마피아의 요구를 시종일관 거절했다고 한다. 마피아 암살범이 나타난 것은 팔코네 암살 사건 16개월 뒤인 1993년 9월 15일이다. 풀이시가 죽은 날은 그의 57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2012년 베네딕토 교황은 ‘순교자’로 선언하고 복자(福者)품에 올렸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을 겨누는 암살범에게 던진 풀이시의 마지막 말이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지금 검사 전성시대다. 2024년 한국 정치의 중심에는 검사가 서 있다. 대통령부터 검사 출신이다. 4월 총선에는 검사 출신 후보자들의 출정(出征)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물론 검사, 교사, 의사, 변호사,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정치에 나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볼 때 검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들이 넘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검찰독재’니 ‘검찰공화국’이니 하는 말들이 들린다. 필자는 ‘정치독재’ ‘정치공화국’이란 말로 대응하고 싶다. 2024년 현재 군(軍) 장성 출신이 선거에 나선다고 해서 ‘군인독재’ ‘군인공화국’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검사든 군인이든, 판단은 국민 개개인이 하면 된다.
 
  검사 출신 후보들을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몰아가는 데 올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에는 ‘검찰독재에 맞서 싸운다’는 식의 뭔가 비장한 결의까지 비친다. 눈물도 등장하고, 머리도 깎고, 단식도 한다. 부조리 희극 같기도 하고, 정신 나간 사람들의 집단망상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검찰수사 현장=비장한 코스프레 무대’로 정착된 듯하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검찰수사를 보면 뭔가 꽉 막혀 있다. 사법부의 대응도 지지부진하고 애매하다. 이 와중에 야당은 ‘검찰공화국’ ‘검찰독재’를 외치면서 ‘우리끼리 불체포 특권 보장’에 혈안이 된 상태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야당 국회의원들은 검찰수사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에 머물 것 같다. 한국 정치에서 검사 시대 출현은 이 같은 부조리 코미디의 결과일 듯하다.
 
 
  직업적 차원의 순교
 
마피아에 의해 희생된 이를 기리는 벽화는 시칠리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팔레르모 경찰은 마피아와의 싸움에서 최대의 피해자이다.
  필자는 팔코네의 죽음이 마피아의 보복 테러인 동시에, 종교적·윤리적 나아가 ‘직업적’ 차원의 순교(殉敎)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이전의 마피아 관련 상황을 안다면, 검사 팔코네의 죽음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검찰에 대한 마피아의 테러는 팔코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팔코네가 손을 대기 무려 30여 년 전인 1960년대부터 시칠리아 마피아의 악명(惡名)은 하늘을 찔렀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까지 마피아 세력권이었다.
 
  1960년대 초 이탈리아 정부는 의회 내에 마피아 소탕본부를 만들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 당시 중심인물은 검사 세자레 테라노바(Cesare Terranova)였다. 테라노바는 수사 도중 온갖 협박과 위협에 직면한다. 마피아만이 아닌, 마피아와 연계된 정치가로부터의 비난과 간섭도 일상적이었다. 결국 그는 1979년 9월 암살된다. 의회가 세운 특별검사가 마피아 손에 사라진 것이다. 테라노바를 돕던 경찰 수장(首長)도 암살된다.
 
  마피아는 이후 자신들을 수사하던 정치인·언론인·경찰 모두에게 협박편지를 보낸다. 손을 떼고 입을 다물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마피아에 의해 사라진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가 세계적 히트를 친 1972년은 실제로 마피아의 테러와 위협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와는 달리 마피아의 실체는 잔인 그 자체였다. 과거 조직원의 입을 막기 위해 자식을 인질로 잡은 뒤, 극산성(極酸性) 화학제품으로 아예 녹여서 살해하는 악행(惡行)도 서슴지 않는다. 마피아에게 암살되거나 희생된 최대의 피해자는 법 집행자, 즉 경찰·검사·판사였다.
 
  팔레르모 외곽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수십 명의 경찰관 얼굴이 도로변 한 벽에 그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경찰만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여성이나 펜을 든 남성, 10세 전후 어린이도 있었다. 모두 마피아에 저항하다 희생된 팔레르모 사람들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당장 행동할 때’
 
  마피아의 암살극은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잔인하게 암살한다. 시칠리아가 한때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탓인지 참수(斬首)도 자행한다. 팔코네와 볼세리노에 대한 자동차 폭발 테러는 수많은 암살극의 일부일 뿐, 새삼스러운 비극이 아니었다. 암살 이전부터 팔코네는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팔레르모 출신이기에 주변 지인(知人)을 통한 협박과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팔코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가 나서서 직접 행해야만 하는 책무(責務)라고 생각, 결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죽음을 상대로 한, 목숨을 건 직업적 차원의 순교인 근거다.
 
  팔레르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동안 팔코네와 볼세리노 모습의 벽화를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팔코네 벽화의 경우 ‘지금이야말로 당장 행동할 때(e tempo di andare avanti)’라는 메시지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마피아를 겁내지 말고, 추방 척결에 당장 나서자’는 얘기다.
 
  팔코네와 수많은 희생자 덕분이겠지만, 21세기 팔레르모 마피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100% 근절되지는 않았지만, 거리에서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트리는 식의 테러는 사라졌다. 그러나 팔레르모 출신인 필자의 친구는 다른 입장이다.
 
  “총 대신 양복을 입은 합법적 조직일 뿐, 마피아 뿌리는 아직 그대로다.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마피아 문화가 시칠리아에 상존하는 한, 팔코네 암살 사건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패거리 카르텔’ 척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조선DB
  윤석열 대통령이 행한 1월 1일 신년사 내용을 살펴봤다. 필자의 친구가 말한 ‘마피아 문화’ 개념이 연설문 속에 들어 있다. ‘패거리 카르텔 척결’이 키워드다.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이다. 적극 응원, 지지한다. ‘패거리 카르텔’은 시칠리아 현지에서 본 마피아 문화로 연결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끼리’는 시칠리아 마피아를 하나로 묶는 출발점이다. 시칠리아는 섬이다. 역사상 13개에 달하는 민족·국가·종교가 번갈아가면서 통치한 땅이기 때문에, 현지인의 ‘우리끼리’ 의식이 아주 강하다.
 
  마피아가 이탈리아 역사에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이다. 1871년 가리발디 장군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 이후, 사회주의 농민운동이 시칠리아에 불어닥친다. 대지주들에 의해 봉건적으로 운영되던 시칠리아 경제가 무산(無産) 농민 손에 넘어갈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같은 혁명 전야(前夜)의 상황에 나타난 것이 대지주를 중심으로 한 시칠리아 권력자들의 반(反)사회주의 운동이다. 이들은 총칼로 무장한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어 사회주의적 움직임에 대항한다. 바로 마피아다. 마피아는 사회주의 농민운동을 외부 사주(使嗾)에 의한 시칠리아 침략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일종의 독립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사회주의 농민운동을 막아낸 셈이다.
 
  마피아는 1930년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조차 적(敵)으로 규정한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면, ‘우리끼리’를 내세우면서 대항한다. 지연(地緣)·혈연(血緣)에 기초한 ‘우리끼리’는 시칠리아 마피아 연대(連帶)의 기반이자 대의명분(大義名分)이다.
 
  ‘우리끼리’ 조직이 그러하듯, 일단 마피아에 들어갈 경우 자신과 가족들의 생활도 보장된다. 그러나 마피아 철칙(鐵則)에 의해, 조직에서 손을 떼는 순간 본인과 가족에게 잔인한 보복이 밀려온다. 윤 대통령이 말한 패거리 카르텔 개념에 어울리는 최적의 본보기가 바로 팔레르모 마피아다.
 
  검사 출신 1973년생 정치 신인 한동훈이 등장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타이틀과 함께 등장한 그는 정치 무대에서의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야당 주류인 586 운동권 세력과의 전면전(全面戰)을 선언한 셈이다.
 
  필자는 한동훈의 정치관이나 정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젊다는 점, 공군 군필(軍畢)에다 20여 년간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는 점에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일단 평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하나의 기대를 한동훈에게 걸어본다. 원칙과 가치로서의 ‘법의 확립’이다. 앞서 말했듯이 21세기 서방 선진국에서의 법의 확립은 수단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2024년 한국에서는 원칙과 가치로서, 국가 운영의 목적에 해당될 만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한 이상,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떤 식의 해결방안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패거리 카르텔 척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척결에 나설지에 대한 각론(各論)은 없다.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척결을 위한 각론은 한동훈에게 맡겨진 책무가 될 것이다. 물론 패거리 카르텔만이 아닌, 한동훈 내부와 주변의 우리끼리 카르텔도 척결의 대상이다. 원래 자신의 가족부터 처단한 뒤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장수(將帥)의 도리다.
 
  마피아 척결에 나섰던 팔코네가 그랬던 것처럼 협박과 위협, 나아가 달콤한 유혹이 따라올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 드리워질 수도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새해 일본 정치판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100여 명이 달라붙어 24시간 수사 중이다. 수만 엔짜리 파티권을 악용한 대규모 조직적 회계조작이었다고 한다.
 
  불법이 밝혀질 경우 검찰이 기소에 들어가면, 관련 정치인들의 정치생명도 끝날 전망이다. 현재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은,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8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다. 큰 액수에 관련된 정치가부터 구속되고 있지만, 앞으로 자민당 자체가 사라질 정도의 정치적 대참사로 번질 전망이다.
 
  파티권을 악용한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다. 대략 1년 통틀어 국회의원 1인당 평균 100만 엔(한화 910만원) 미만이다. 많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국 국회의원이 본다면 코웃음을 칠 수준이다. 한국 정치 무대에서는 정치적 문제가 되려면 적어도 억(億) 단위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액수가 클수록 법의 심판에서 자유롭고 큰소리치는 곳이 한국 정치판이다.
 

  21세기 일본에서는 100만 엔이 아니라 10만 엔 단위의 불법이 드러나도 정치 무대에서 퇴장된다. 기소 여부와 무관하게, 10만 엔 단위 불법이라도 유권자들이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도쿄지검 특수부를 향해 ‘검찰독재, 검찰공화국’이라 비난하는 자민당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전부 숨을 죽인 채 특수부에 대한 전면 협조만을 다짐하고 있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법 앞의 평등, 법의 권위’를 한국에서도 체감(體感)해보고 싶다. 이것이 필자는 물론 한국인 대부분이 정치인 한동훈에게 거는 최소한의 기대와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끼리’를 거부한 팔코네
 
  마피아 척결은 팔코네만이 아닌, 법질서 관련 선배들이 쌓아 올린 희생의 결과다. 뜨거운 피가 시칠리아 전역을 붉게 물들였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필자의 친구는 “최소한 팔코네 같은 순교자 10명이 더 나와야 마피아 완전 척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순교자의 희생이 법치 확립의 전제조건인 셈이다. 팔코네는 이탈리아만이 아닌 서방 모두의 법 수호의 영웅으로도 통한다.
 
  그러나 필자는 영웅 이전에, 팔코네가 시칠리아 출신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끼리’가 일상화된 팔레르모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친구이자 친척이다. 대충 봐주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암살도 없고, 명예와 돈도 보장되는 고향에서의 편안한 삶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팔코네는 가장 가까운 ‘우리끼리’를 상대로 한 마피아 척결에 목숨을 바쳤다. 예수가 유다를 단죄하는 마음이었을까?
 
  법의 확립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시칠리아를 찾아보길 권한다. 영화 속 폼 나는 마피아 두목이 아니라, 폭탄 테러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법의 화신’들을 팔레르모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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