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競合州의 트럼프 승리 점친 건 事前투표와 州內 카운티의 票心을 읽지 못했기 때문
⊙ 바이든은 코로나19 사태로 SNS 위주 운동, 트럼프는 대규모 옥외 유세… ‘트럼프의 인기가 더 높다’는 錯視 현상 일으켜
⊙ 美 대선 부정선거 증거라고 국내에 유포되는 정보들은 음모론·가짜뉴스가 많아
⊙ 끼리끼리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울림방 현상 때문에 음모론 확산… 한국까지 그에 휩쓸려
우원재
1990년생. 호주 퀸즐랜드대학 졸업(정치학·언론학 전공) / 《미디어펜》 뉴미디어 팀장, 자유한국당 부대변인·뉴미디어 TF 단장 역임 / 現 리버티타임즈 대표, 유튜브 ‘호밀밭의 우원재’ 운영
⊙ 바이든은 코로나19 사태로 SNS 위주 운동, 트럼프는 대규모 옥외 유세… ‘트럼프의 인기가 더 높다’는 錯視 현상 일으켜
⊙ 美 대선 부정선거 증거라고 국내에 유포되는 정보들은 음모론·가짜뉴스가 많아
⊙ 끼리끼리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울림방 현상 때문에 음모론 확산… 한국까지 그에 휩쓸려
우원재
1990년생. 호주 퀸즐랜드대학 졸업(정치학·언론학 전공) / 《미디어펜》 뉴미디어 팀장, 자유한국당 부대변인·뉴미디어 TF 단장 역임 / 現 리버티타임즈 대표, 유튜브 ‘호밀밭의 우원재’ 운영
- 지난 11월 8일 美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성난 지지자가 조 바이든 당선 축하 군중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시각 11월 7일 밤. 언론에서 일제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7500만 표 가까이를 받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조 바이든은 모든 개표가 끝나면 선거인단 300석 이상을 가져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大選) 이후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까지 이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미국 시각 11월 3일 밤. 개표 초반 상황. 외려 미국 여론보다 한국에서 더 큰 난리가 났다. 주요 경합주(競合州)들이 몰려 있는 러스트벨트(Rust Belt)에서 트럼프가 이기고 있는 모습이 연출되면서다. 이는 2016년 대선, 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는 트럼프의 짜릿한 역전극(逆戰劇)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들은 물론이고, 주요 언론과 전문가 대다수가 바이든의 무난한 승리를 예측하던 상황. 물론 한국 주류(主流) 언론들 역시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바이든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다.
반면 대다수 정치 유튜브들을 비롯해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을 점쳤다. ‘바이든 당선을 이야기하는 자료들은 좌편향된 미국 주류 사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그 주장의 골자였다. 특히 언론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자리 잡은 국내 우파(右派) 진영의 경우 이런 유튜브발(發) 예측들을 맹신(盲信)하며, 상당수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했고, 또 기원했다. 심지어는 “트럼프 재선(再選)을 100% 확신한다”는 사람들도 다수(多數)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표를 시작하니 정말 트럼프가 이기고 있는 거다. 그것도 제법 큰 차이로 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축포(祝砲)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것 봐라. 역시 언론의 말은 전부 가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바이든 당선을 예측한 이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유튜버들은 일찌감치 트럼프 재선을 확실시하며 자신들의 혜안(慧眼)을 자랑했다. 심지어 몇몇 언론조차 이런 논조에 동참하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한다. 그 시각,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시각 기준 심야. 사람들이 잠이 들 무렵, 슬슬 경합주가 하나둘 뒤집히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줄 알았던 곳들에서 바이든이 빠른 속도로 추격을 하나 싶더니, 이내 바이든 우세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이든 역전극이 벌어진 이유
섣불리 트럼프 당선을 확신한 한국 여론이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은 바로 카운티(county)들이었다. 미국 대선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州·state)별 개표 상황만 볼 게 아니라, 주 안에 있는 카운티들의 개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개표는 카운티들이 각각 하고, 따로 보고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라는 건 사실상 하나하나가 나라다. 대한민국 국토보다 훨씬 큰 주들이 다수 있을 정도다. 이러니 한 주 안에도 여러 도시가 있고, 또 도심지와 외곽 지역으로 나뉜다. 따라서 카운티에 따라 표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이 있는 반면, 저소득층이 밀집된 곳이 있고, 성향·직업·학력·인종 등 기준에 따라 표심(票心)이 세분화될 수 있다.
바이든이 가장 먼저 뒤집은 경합주는 위스콘신이었다. 위스콘신 개표 상황이 81%였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트럼프가 4%p를 앞서고 있었다. 주내(州內) 카운티들의 상황을 모르는 대다수 한국인이 트럼프의 경합주 압승을 예측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 내 전문가들은 아직 바이든의 표 가운데 상당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강력한 텃밭인 밀워키, 민주당 우세 경향을 보여온 그린베이 등의 카운티에서 아직 사전(事前)투표 개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개표를 시작하며, 역전극이 이루어진 것이다.
위스콘신을 시작으로 경합주들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미시간은 디트로이트 등의 인구 고밀집 민주당 지역에서 사전투표들이 집계되며 빠른 속도로 뒤집혔다. 사전투표의 4분의 3 이상이 바이든 표라고 분석되었던 펜실베이니아 역시 개표 후반 우편투표가 집계되기 시작하면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추월하게 된다.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딥사우스(Deep South)의 조지아마저 민주당 강세 지역 풀턴 카운티와 드칼브 카운티 등의 표가 집계되며 바이든이 역전극을 이루어낸다. 네바다·애리조나마저 넘어가자, 이제야 사람들은 바이든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섣불리 트럼프의 승리를 확신했던 국내 여론은 충격에 빠진다. 사전투표의 표심과 카운티들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운동 차이
그렇다면 본(本)투표와 사전투표의 표심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이번 미국 대선은 여러모로 이례적(異例的)인 선거다. 코로나19 사태에 의해 사전투표가 대폭 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성향에 따라 본투표의 표심과 사전투표의 표심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계(政界)를 휩쓴 코로나19 사태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온 음모론에 대한 맥락을 짚어야 한다.
바이든 캠프는 이번 선거 시즌 내내 캠페인을 대폭 축소해 진행했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19로 유독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 최악 수준의 상황으로서 국민 건강의 위협은 물론 심각한 경제 위기까지 맞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선거 유세 등이 코로나19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캠페인 활동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캠프는 자원봉사자들이 집마다 방문해 후보와 공약에 대해 소개하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방식의 운동을 포기함은 물론, 유세(rally) 현장에서는 한정된 인원만 입장을 허용하고, 바닥에 원을 그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집했다.
국내 유튜브 채널들은 이런 유세 현장 모습을 트럼프의 열광적인 유세 현장 모습과 비교하며, 바이든이 인기가 없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의 일환이었다. 바이든은 전통적인 캠페인을 최소화하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반면 트럼프 캠프는 아주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주요 경합주 곳곳에서 거대한 유세를 실시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종교 집회에 나가지 못해 불만이 쌓인 이들을 끌어내고자, 종교 집회의 성격도 섞었다. 문제는 이렇게 거대한 인파가 모인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열광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이 상당수 미국 국민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지지 진영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가짜뉴스와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화당 진영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지식인층은 자유와 권리라는 측면에서 코로나19 관련 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격리, 셧다운 정책 등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적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는 단순히 코로나19가 ‘민주당 진영에서 만든 가짜뉴스’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 실제로 마스크 쓰는 것을 거부하고, ‘Covid is a hoax(코로나는 가짜다)’라 주장하며 방역정책을 철폐하라는 시위를 하는 이들이 언론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류 언론에 의해 과학과 무지(無知)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자료들이 쏟아진다.
本투표 vs. 事前투표
이런 맥락 속에서 민주당 진영은 반복적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해왔다. 미국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인프라 시설이 부족한 곳이 많아, 당일 본투표에 참석하기 위해 수어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많다. 민주당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사전투표 참여를 강조해왔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은 당일 본투표로 집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주장해온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민주당이 우편투표를 이용해 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라며 경고해왔다. 이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맞설 때 그가 했던 주장과 동일하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트럼프 측은 이미 선거 몇 주 전부터 주요 경합주에서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를 줄이기 위해 각종 소송을 걸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의해 주 정부들이 사전투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우체국의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의 측근을 책임자 자리에 앉히고, 고속분류기 등을 없애는 등의 방해전략도 펼쳤다.
하지만 주 정부 법원들은 트럼프 측의 요청을 기각했다. 부정선거를 입증할 만한 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애당초 우편투표를 비롯한 부재자(不在者) 투표는 이미 1860년대부터 시행되어오던 제도이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 측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법원들은 우편투표 유효 인정 시기를 연장해주는 결정까지 내린다. 펜실베이니아 법원의 경우 선거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6일까지만 표가 도착하면 유효표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네바다 법원의 경우 11월 3일이 지나기 전에 우편도장이 찍힌 우편투표는 11월 10일까지 인정해주겠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정부의 우체국 방해 때문에 유권자가 절차에 따라 우편투표에 참여하더라도 송달(送達)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유권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까닭에 주요 경합주들의 개표가 지연되게 되었고, 선거일 당일 자정이 지났을 때 당선자를 알 수 있었던 2016년과 달리 이번 선거의 결과 예측이 지연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우편투표에 불복(不服)을 시사하며 법정공방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선거 몇 달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들고나온 것이 트럼프의 전략적 계산이라고 평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접근이다. 경합주에서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율을 낮춰 본인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와 선거 패배 시 불복의 단서를 남겨두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런 부정선거론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수준의 선거 불신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극성 지지자들이 투표함을 지키겠답시고 소총을 들고 완전무장을 하고서 투표소로 나와 논란을 일으킨 연유다.
이러한 맥락에 의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당일 본투표를, 바이든 지지자들은 사전투표를 선택한 것이다.
트럼프의 早期 승리 선언
선거 개표 중반,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선언했다. 본인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부정선거로 바이든 측이 승리를 훔치려 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 이 조기(早期) 승리 선언 해프닝도 앞서 설명한 맥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승리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아직 수천만에 달하는 국민의 표가 집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전투표 표들이 채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치상 트럼프가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본투표에서 충분히 차이를 벌리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트럼프가 불리한 상황이라고 평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본인의 승리를 선언했고, 부정선거로 인해 본인의 승리가 갈취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그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한 말이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 평론가들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평했다. 그들은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국민의 표는 반드시 모두 집계되어야 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트럼프의 조기 승리 선언은 계획된 것이었다. 이미 선거 며칠 전 트럼프가 본인이 경합주에서 앞서고 있는 타이밍에 조기 승리 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행동은 경합주에서 사전투표가 개표되며 상황이 변하기 전에 선수를 침으로써 부정선거라는 키워드를 사람들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트럼프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직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소리친다. “이 선거는 불법이자 조작이었다!”고.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이미 선거 이전 주 법원들에 의해 부정선거와 관련한 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敗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선거 자체를 뒤집기 위해 다시 싸움을 거는 것이다.
트럼프가 현재 기대하고 있는 것은 연방대법원으로 보인다. 최근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이후 그 자리를 우(右)성향 배넷 대법관이 채웠다. 선거 이후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민주당 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서둘러 절차를 밟았다. 대통령에게 후보자 임명 권한이 있고, 공화당이 다수당(多數黨)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上院)에서 인준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배넷 대법관이 연방대법원에 입성하면서 현재 연방대법원은 우성향 대법관 6명과 좌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관은 사임·탄핵·사망 등의 경우에만 물러나는 종신직(終身職)이기에 이들은 임기 4년, 연임(連任) 시 8년간 재직하는 대통령보다 미국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훨씬 큰 역할을 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트럼프는 이런 우성향 절대우위 대법원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편투표, 부정선거와 관련된 논란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 자신에게 승산(勝算)이 있다고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내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정선거 주장으로 선거 결과 전체를 뒤집기에는 법적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기 승리 선언을 비롯한 트럼프의 꼼수는 이미 언론에 의해 들통 난 상황이다.
조심스러운 공화당 지도부
과연 트럼프는 부정선거론으로 판세를 뒤엎을 수 있을까. 수많은 변수가 존재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이를 100%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를 제외한 공화당 진영의 분위기는 엿볼 수 있다.
패색(敗色)이 짙어진 후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자, 공화당 지도부는 이에 최대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11월 첫째 주 내내 침묵을 지켰다. 그나마 관련 발언을 한 것이 “모든 합법적(legal) 표는 집계되어야 한다”였다.
이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처음 개표를 멈추라고 주장했던 트럼프에 반하는 말임과 동시에, 불법표에 의해 부정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돕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기도 하다.
13년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미치 매코널과,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케빈 매카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전부 중립적인 태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처음 조기 승리 선언을 한 기자회견 자리에는 펜스가 있었다. 그런데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 트럼프가 부정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할 때에는 그 곁에 펜스가 없었다. 펜스는 다른 일로 바빴다고 해명했지만, 부정선거와 관련해 공화당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아주 원론적이고 중의적(重義的)인 표현만 내놓을 뿐, 직접적으로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지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들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장을 표명한 건 긴 주말이 지나고 11월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트럼프는 주말 내내 골프를 치며 트위터로 부정선거 이야기를 해왔고, 공화당 지도부 역시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피해온 상황. 마침내 공화당이 어떤 입장을 밝힐지 모두가 주목했다. 유감스럽게도 또 원론적인 반응이었다. 미치 매코널은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100% 그의 권리”라면서 “모든 건 절차에 따라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의 부정선거론에는 적극 동의하지 않으면서, 현재 트럼프가 법적으로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각 주의 선거법은 상황에 따라 재검표 요청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매코널이 말한 트럼프의 ‘권리’는 현재 ▲조지아(득표율 격차 0.5%p 이하의 경우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49.5 대 트럼프 49.3) ▲네바다(격차 관계없이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50.2 대 트럼프 47.5) ▲위스콘신(격차 1%p 이하의 경우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49.6 대 트럼프 48.9) 등으로 보인다. 즉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적 절차 안에서 트럼프에게 권리가 있으니, 이를 존중하자는 거다. 주말 내내 얼마나 많은 논의가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공화당의 딜레마
이들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 사실상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 시점에,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트럼프와 함께 판을 뒤집어엎을지, 아니면 결과에 승복하고 물러설지.
어느 쪽이든 리스크가 있다. 선거 결과가 나왔음에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부터 근거 없이 주장해왔던 ‘부정선거’를 외치며 불복을 선언한 건 미국 민주주의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도박이다. 반면 트럼프로부터 완전히 선을 긋자니, 극성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총이 따갑다.
공화당이 부정선거론에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의 아들들이 나서서 “도대체 공화당은 왜 대통령을 돕지 않는 거냐”며 공개적으로 따지고 나섰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행보를 비판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공격하고 있고, 향후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공화당의 원론적인 입장은 이 딜레마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재검표 이후에도 트럼프는 계속 부정선거를 외칠 가능성이 높다. 재검표로 선거구의 승패가 뒤바뀐 경우는 미국 역사상 극히 드물다. 게다가 설령 뒤집히는 주들이 있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재검표한 모든 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재검표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거다.
게다가 현재 트럼프 측은 단순히 재검표만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선거 자체가 조작되었다는 입장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은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한다. 트럼프를 비판할지, 트럼프와 함께 부정선거를 주장할지.
물론 공화당 내 트럼프를 돕는 인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부정선거론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자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거액의 부정선거 법률지원금을 기부한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 등이 있다. 트럼프 곁을 지키며 판을 엎어보려고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음모론의 실상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미국 정계의 중심 화제가 되면서, 우리나라 온라인에는 부정선거의 증거라며 수많은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중 상당수가 조작된 거짓 정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위스콘신 선거 개표 그래프에서 갑자기 바이든 표가 급증했다는 주장이 크게 히트를 쳤다. 실제로 그래프를 보면 바이든의 그래프 곡선이 갑자기 수직으로 상승하는 구간이 있다. 그런데 이는 밀워키 카운티에서 부재자 투표를 개표한 후 그 집계 수치들을 한 번에 전달하고, 그 데이터를 한 번에 입력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무언가 조작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프를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의 곡선 역시 상승하는데, 사전투표에서 바이든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바이든만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관계자들은 물론 선관위에서도 확인한 사안이다.
미시간 개표 중 바이든에게 12만8000표가 갑자기 추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시아와시 카운티에서 데이터를 입력하다 실수가 생긴 것으로, 바이든에게 1만5371표를 입력하려다 실수로 끝에 0을 하나 붙이며 생긴 문제였다. 해당 실수는 곧바로 바로잡혔고, 수정 이후 바이든 측 표 13만8339표가 깎였다. 이 주장은 미국의 한 트위터 이용자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현재 해당 게시자는 사과한 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실제 득표수가 등록 유권자보다 많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트위터에서 시작되어 퍼진 도표다. 하지만 선관위 자료를 살펴보면 도표 속 해당 수치들은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현재 온라인에는 각종 음모론·루머·가짜뉴스들이 확산되고 있다. 비밀 워터마크가 있었다는 주장부터, 버려진 표들이 발견되었다는 주장까지….
이런 수많은 악성 정보에 대항하기 위해 현재 미국의 팩트체크 기관들은 수많은 팩트체크 자료와 검증 자료들을 배포하고 있다.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거짓 정보들이 공유될 때마다 주의 안내를 띄워주고 있다. 해당 주의 안내에는 팩트체크 링크가 포함되어 있다.
음모론을 배양하는 울림방 현상
문제는 한국이다. 이런 팩트체크 정보들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기에, 주의 안내를 띄워준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내용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유튜버들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거짓 정보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심각한 정보 편향에 빠져들고 있다.
‘에코체임버(echo chamber)’, 이른바 울림방 현상. 소셜미디어에서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만을 보여줌으로써 확증편향(確證偏向)이 강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 속에서 더더욱 강화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온라인상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혹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채널 등이 전달하는 정보를 맹신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정보만이 반복적으로 전달됨으로써 울림방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울림방은 사람들을 실제 여론과 현실로부터 유리시킨다. 자신의 생각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좁은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극단화(極端化)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울림방은 음모론을 배양하는 역할을 한다. 울림방 그 자체가 대안(代案)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이 트럼프의 재선을 확신했던 이유기도 하다. 바이든 당선을 예측하는 수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과 대치되는 이러한 자료들은 모두 조작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이 울림방 속 목소리들에 의해 생긴 편향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울림방은 이제 미국에서 출발한 수많은 거짓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유튜버들이다. 현재 미국 대선 부정선거론과 관련된 모습을 보며, 강한 위화감(違和感)을 느낀다. 미국 사회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한국 내 특정 집단들이 부정선거론을 추종하고 있다.
음모론적 思考
음모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확신이다.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이성적(理性的) 사고(思考)다. 한편 음모론적 사고는 결론을 정해둔 다음 현실을 거기에 끼워 맞춰 근거들을 만든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확신이 그 사고체계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법적으로 후보 간 격차가 1% 이내의 선거구에서는 후보의 요청이 있을 시 재검표를 하게 되어 있다. 부정선거가 사실이건 아니건 경합주 지역들에서 재검표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재검표를 해서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해도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미 현실 속 수많은 방증을 거부한 것처럼, 이 재검표마저 조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음모론이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전 세계적 이벤트라지만, 남의 나라 선거에 의해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혼란, 그리고 선동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미국 사상 최초로 벌어지고 있는 이 해프닝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이런 구렁텅이 안으로 빠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大選) 이후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까지 이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미국 시각 11월 3일 밤. 개표 초반 상황. 외려 미국 여론보다 한국에서 더 큰 난리가 났다. 주요 경합주(競合州)들이 몰려 있는 러스트벨트(Rust Belt)에서 트럼프가 이기고 있는 모습이 연출되면서다. 이는 2016년 대선, 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는 트럼프의 짜릿한 역전극(逆戰劇)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들은 물론이고, 주요 언론과 전문가 대다수가 바이든의 무난한 승리를 예측하던 상황. 물론 한국 주류(主流) 언론들 역시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바이든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다.
반면 대다수 정치 유튜브들을 비롯해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을 점쳤다. ‘바이든 당선을 이야기하는 자료들은 좌편향된 미국 주류 사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그 주장의 골자였다. 특히 언론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자리 잡은 국내 우파(右派) 진영의 경우 이런 유튜브발(發) 예측들을 맹신(盲信)하며, 상당수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했고, 또 기원했다. 심지어는 “트럼프 재선(再選)을 100% 확신한다”는 사람들도 다수(多數)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표를 시작하니 정말 트럼프가 이기고 있는 거다. 그것도 제법 큰 차이로 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축포(祝砲)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것 봐라. 역시 언론의 말은 전부 가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바이든 당선을 예측한 이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유튜버들은 일찌감치 트럼프 재선을 확실시하며 자신들의 혜안(慧眼)을 자랑했다. 심지어 몇몇 언론조차 이런 논조에 동참하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한다. 그 시각,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시각 기준 심야. 사람들이 잠이 들 무렵, 슬슬 경합주가 하나둘 뒤집히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줄 알았던 곳들에서 바이든이 빠른 속도로 추격을 하나 싶더니, 이내 바이든 우세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이든 역전극이 벌어진 이유
섣불리 트럼프 당선을 확신한 한국 여론이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은 바로 카운티(county)들이었다. 미국 대선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州·state)별 개표 상황만 볼 게 아니라, 주 안에 있는 카운티들의 개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개표는 카운티들이 각각 하고, 따로 보고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라는 건 사실상 하나하나가 나라다. 대한민국 국토보다 훨씬 큰 주들이 다수 있을 정도다. 이러니 한 주 안에도 여러 도시가 있고, 또 도심지와 외곽 지역으로 나뉜다. 따라서 카운티에 따라 표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이 있는 반면, 저소득층이 밀집된 곳이 있고, 성향·직업·학력·인종 등 기준에 따라 표심(票心)이 세분화될 수 있다.
바이든이 가장 먼저 뒤집은 경합주는 위스콘신이었다. 위스콘신 개표 상황이 81%였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트럼프가 4%p를 앞서고 있었다. 주내(州內) 카운티들의 상황을 모르는 대다수 한국인이 트럼프의 경합주 압승을 예측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 내 전문가들은 아직 바이든의 표 가운데 상당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강력한 텃밭인 밀워키, 민주당 우세 경향을 보여온 그린베이 등의 카운티에서 아직 사전(事前)투표 개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개표를 시작하며, 역전극이 이루어진 것이다.
위스콘신을 시작으로 경합주들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미시간은 디트로이트 등의 인구 고밀집 민주당 지역에서 사전투표들이 집계되며 빠른 속도로 뒤집혔다. 사전투표의 4분의 3 이상이 바이든 표라고 분석되었던 펜실베이니아 역시 개표 후반 우편투표가 집계되기 시작하면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추월하게 된다.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딥사우스(Deep South)의 조지아마저 민주당 강세 지역 풀턴 카운티와 드칼브 카운티 등의 표가 집계되며 바이든이 역전극을 이루어낸다. 네바다·애리조나마저 넘어가자, 이제야 사람들은 바이든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섣불리 트럼프의 승리를 확신했던 국내 여론은 충격에 빠진다. 사전투표의 표심과 카운티들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운동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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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美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올랜도 샌퍼드 국제공항에서 지지자들에게 마스크를 던져주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의 유세장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무시됐다. 사진=AP/뉴시스 |
바이든 캠프는 이번 선거 시즌 내내 캠페인을 대폭 축소해 진행했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19로 유독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 최악 수준의 상황으로서 국민 건강의 위협은 물론 심각한 경제 위기까지 맞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선거 유세 등이 코로나19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캠페인 활동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캠프는 자원봉사자들이 집마다 방문해 후보와 공약에 대해 소개하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방식의 운동을 포기함은 물론, 유세(rally) 현장에서는 한정된 인원만 입장을 허용하고, 바닥에 원을 그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집했다.
국내 유튜브 채널들은 이런 유세 현장 모습을 트럼프의 열광적인 유세 현장 모습과 비교하며, 바이든이 인기가 없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의 일환이었다. 바이든은 전통적인 캠페인을 최소화하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반면 트럼프 캠프는 아주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주요 경합주 곳곳에서 거대한 유세를 실시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종교 집회에 나가지 못해 불만이 쌓인 이들을 끌어내고자, 종교 집회의 성격도 섞었다. 문제는 이렇게 거대한 인파가 모인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열광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이 상당수 미국 국민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지지 진영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가짜뉴스와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화당 진영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지식인층은 자유와 권리라는 측면에서 코로나19 관련 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격리, 셧다운 정책 등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적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는 단순히 코로나19가 ‘민주당 진영에서 만든 가짜뉴스’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 실제로 마스크 쓰는 것을 거부하고, ‘Covid is a hoax(코로나는 가짜다)’라 주장하며 방역정책을 철폐하라는 시위를 하는 이들이 언론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류 언론에 의해 과학과 무지(無知)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자료들이 쏟아진다.
本투표 vs. 事前투표
이런 맥락 속에서 민주당 진영은 반복적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해왔다. 미국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인프라 시설이 부족한 곳이 많아, 당일 본투표에 참석하기 위해 수어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많다. 민주당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사전투표 참여를 강조해왔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은 당일 본투표로 집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주장해온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민주당이 우편투표를 이용해 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라며 경고해왔다. 이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맞설 때 그가 했던 주장과 동일하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트럼프 측은 이미 선거 몇 주 전부터 주요 경합주에서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를 줄이기 위해 각종 소송을 걸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의해 주 정부들이 사전투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우체국의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의 측근을 책임자 자리에 앉히고, 고속분류기 등을 없애는 등의 방해전략도 펼쳤다.
하지만 주 정부 법원들은 트럼프 측의 요청을 기각했다. 부정선거를 입증할 만한 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애당초 우편투표를 비롯한 부재자(不在者) 투표는 이미 1860년대부터 시행되어오던 제도이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 측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법원들은 우편투표 유효 인정 시기를 연장해주는 결정까지 내린다. 펜실베이니아 법원의 경우 선거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6일까지만 표가 도착하면 유효표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네바다 법원의 경우 11월 3일이 지나기 전에 우편도장이 찍힌 우편투표는 11월 10일까지 인정해주겠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정부의 우체국 방해 때문에 유권자가 절차에 따라 우편투표에 참여하더라도 송달(送達)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유권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까닭에 주요 경합주들의 개표가 지연되게 되었고, 선거일 당일 자정이 지났을 때 당선자를 알 수 있었던 2016년과 달리 이번 선거의 결과 예측이 지연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우편투표에 불복(不服)을 시사하며 법정공방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선거 몇 달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들고나온 것이 트럼프의 전략적 계산이라고 평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접근이다. 경합주에서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율을 낮춰 본인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와 선거 패배 시 불복의 단서를 남겨두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런 부정선거론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수준의 선거 불신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극성 지지자들이 투표함을 지키겠답시고 소총을 들고 완전무장을 하고서 투표소로 나와 논란을 일으킨 연유다.
이러한 맥락에 의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당일 본투표를, 바이든 지지자들은 사전투표를 선택한 것이다.
선거 개표 중반,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선언했다. 본인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부정선거로 바이든 측이 승리를 훔치려 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 이 조기(早期) 승리 선언 해프닝도 앞서 설명한 맥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승리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아직 수천만에 달하는 국민의 표가 집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전투표 표들이 채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치상 트럼프가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본투표에서 충분히 차이를 벌리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트럼프가 불리한 상황이라고 평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본인의 승리를 선언했고, 부정선거로 인해 본인의 승리가 갈취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그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한 말이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 평론가들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평했다. 그들은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국민의 표는 반드시 모두 집계되어야 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트럼프의 조기 승리 선언은 계획된 것이었다. 이미 선거 며칠 전 트럼프가 본인이 경합주에서 앞서고 있는 타이밍에 조기 승리 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행동은 경합주에서 사전투표가 개표되며 상황이 변하기 전에 선수를 침으로써 부정선거라는 키워드를 사람들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트럼프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직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소리친다. “이 선거는 불법이자 조작이었다!”고.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이미 선거 이전 주 법원들에 의해 부정선거와 관련한 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敗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선거 자체를 뒤집기 위해 다시 싸움을 거는 것이다.
트럼프가 현재 기대하고 있는 것은 연방대법원으로 보인다. 최근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이후 그 자리를 우(右)성향 배넷 대법관이 채웠다. 선거 이후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민주당 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서둘러 절차를 밟았다. 대통령에게 후보자 임명 권한이 있고, 공화당이 다수당(多數黨)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上院)에서 인준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배넷 대법관이 연방대법원에 입성하면서 현재 연방대법원은 우성향 대법관 6명과 좌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관은 사임·탄핵·사망 등의 경우에만 물러나는 종신직(終身職)이기에 이들은 임기 4년, 연임(連任) 시 8년간 재직하는 대통령보다 미국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훨씬 큰 역할을 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트럼프는 이런 우성향 절대우위 대법원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편투표, 부정선거와 관련된 논란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 자신에게 승산(勝算)이 있다고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내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정선거 주장으로 선거 결과 전체를 뒤집기에는 법적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기 승리 선언을 비롯한 트럼프의 꼼수는 이미 언론에 의해 들통 난 상황이다.
조심스러운 공화당 지도부
과연 트럼프는 부정선거론으로 판세를 뒤엎을 수 있을까. 수많은 변수가 존재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이를 100%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를 제외한 공화당 진영의 분위기는 엿볼 수 있다.
패색(敗色)이 짙어진 후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자, 공화당 지도부는 이에 최대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11월 첫째 주 내내 침묵을 지켰다. 그나마 관련 발언을 한 것이 “모든 합법적(legal) 표는 집계되어야 한다”였다.
이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처음 개표를 멈추라고 주장했던 트럼프에 반하는 말임과 동시에, 불법표에 의해 부정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돕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기도 하다.
13년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미치 매코널과,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케빈 매카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전부 중립적인 태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처음 조기 승리 선언을 한 기자회견 자리에는 펜스가 있었다. 그런데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 트럼프가 부정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할 때에는 그 곁에 펜스가 없었다. 펜스는 다른 일로 바빴다고 해명했지만, 부정선거와 관련해 공화당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아주 원론적이고 중의적(重義的)인 표현만 내놓을 뿐, 직접적으로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지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들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장을 표명한 건 긴 주말이 지나고 11월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트럼프는 주말 내내 골프를 치며 트위터로 부정선거 이야기를 해왔고, 공화당 지도부 역시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피해온 상황. 마침내 공화당이 어떤 입장을 밝힐지 모두가 주목했다. 유감스럽게도 또 원론적인 반응이었다. 미치 매코널은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100% 그의 권리”라면서 “모든 건 절차에 따라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의 부정선거론에는 적극 동의하지 않으면서, 현재 트럼프가 법적으로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각 주의 선거법은 상황에 따라 재검표 요청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매코널이 말한 트럼프의 ‘권리’는 현재 ▲조지아(득표율 격차 0.5%p 이하의 경우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49.5 대 트럼프 49.3) ▲네바다(격차 관계없이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50.2 대 트럼프 47.5) ▲위스콘신(격차 1%p 이하의 경우 재검표 요청 가능. 바이든 49.6 대 트럼프 48.9) 등으로 보인다. 즉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적 절차 안에서 트럼프에게 권리가 있으니, 이를 존중하자는 거다. 주말 내내 얼마나 많은 논의가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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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뉴욕시장이자 트럼프의 변호인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트럼프를 굳건하게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공화당 인사 중 하나이다. 사진=AP/뉴시스 |
어느 쪽이든 리스크가 있다. 선거 결과가 나왔음에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부터 근거 없이 주장해왔던 ‘부정선거’를 외치며 불복을 선언한 건 미국 민주주의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도박이다. 반면 트럼프로부터 완전히 선을 긋자니, 극성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총이 따갑다.
공화당이 부정선거론에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의 아들들이 나서서 “도대체 공화당은 왜 대통령을 돕지 않는 거냐”며 공개적으로 따지고 나섰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행보를 비판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공격하고 있고, 향후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공화당의 원론적인 입장은 이 딜레마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재검표 이후에도 트럼프는 계속 부정선거를 외칠 가능성이 높다. 재검표로 선거구의 승패가 뒤바뀐 경우는 미국 역사상 극히 드물다. 게다가 설령 뒤집히는 주들이 있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재검표한 모든 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재검표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거다.
게다가 현재 트럼프 측은 단순히 재검표만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선거 자체가 조작되었다는 입장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은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한다. 트럼프를 비판할지, 트럼프와 함께 부정선거를 주장할지.
물론 공화당 내 트럼프를 돕는 인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부정선거론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자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거액의 부정선거 법률지원금을 기부한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 등이 있다. 트럼프 곁을 지키며 판을 엎어보려고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음모론의 실상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미국 정계의 중심 화제가 되면서, 우리나라 온라인에는 부정선거의 증거라며 수많은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중 상당수가 조작된 거짓 정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위스콘신 선거 개표 그래프에서 갑자기 바이든 표가 급증했다는 주장이 크게 히트를 쳤다. 실제로 그래프를 보면 바이든의 그래프 곡선이 갑자기 수직으로 상승하는 구간이 있다. 그런데 이는 밀워키 카운티에서 부재자 투표를 개표한 후 그 집계 수치들을 한 번에 전달하고, 그 데이터를 한 번에 입력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무언가 조작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프를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의 곡선 역시 상승하는데, 사전투표에서 바이든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바이든만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관계자들은 물론 선관위에서도 확인한 사안이다.
미시간 개표 중 바이든에게 12만8000표가 갑자기 추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시아와시 카운티에서 데이터를 입력하다 실수가 생긴 것으로, 바이든에게 1만5371표를 입력하려다 실수로 끝에 0을 하나 붙이며 생긴 문제였다. 해당 실수는 곧바로 바로잡혔고, 수정 이후 바이든 측 표 13만8339표가 깎였다. 이 주장은 미국의 한 트위터 이용자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현재 해당 게시자는 사과한 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실제 득표수가 등록 유권자보다 많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트위터에서 시작되어 퍼진 도표다. 하지만 선관위 자료를 살펴보면 도표 속 해당 수치들은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현재 온라인에는 각종 음모론·루머·가짜뉴스들이 확산되고 있다. 비밀 워터마크가 있었다는 주장부터, 버려진 표들이 발견되었다는 주장까지….
이런 수많은 악성 정보에 대항하기 위해 현재 미국의 팩트체크 기관들은 수많은 팩트체크 자료와 검증 자료들을 배포하고 있다.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거짓 정보들이 공유될 때마다 주의 안내를 띄워주고 있다. 해당 주의 안내에는 팩트체크 링크가 포함되어 있다.
음모론을 배양하는 울림방 현상
문제는 한국이다. 이런 팩트체크 정보들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기에, 주의 안내를 띄워준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내용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유튜버들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거짓 정보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심각한 정보 편향에 빠져들고 있다.
‘에코체임버(echo chamber)’, 이른바 울림방 현상. 소셜미디어에서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만을 보여줌으로써 확증편향(確證偏向)이 강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 속에서 더더욱 강화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온라인상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혹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채널 등이 전달하는 정보를 맹신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정보만이 반복적으로 전달됨으로써 울림방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울림방은 사람들을 실제 여론과 현실로부터 유리시킨다. 자신의 생각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좁은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극단화(極端化)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울림방은 음모론을 배양하는 역할을 한다. 울림방 그 자체가 대안(代案)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이 트럼프의 재선을 확신했던 이유기도 하다. 바이든 당선을 예측하는 수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과 대치되는 이러한 자료들은 모두 조작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이 울림방 속 목소리들에 의해 생긴 편향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울림방은 이제 미국에서 출발한 수많은 거짓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유튜버들이다. 현재 미국 대선 부정선거론과 관련된 모습을 보며, 강한 위화감(違和感)을 느낀다. 미국 사회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한국 내 특정 집단들이 부정선거론을 추종하고 있다.
음모론적 思考
음모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확신이다.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이성적(理性的) 사고(思考)다. 한편 음모론적 사고는 결론을 정해둔 다음 현실을 거기에 끼워 맞춰 근거들을 만든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확신이 그 사고체계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법적으로 후보 간 격차가 1% 이내의 선거구에서는 후보의 요청이 있을 시 재검표를 하게 되어 있다. 부정선거가 사실이건 아니건 경합주 지역들에서 재검표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재검표를 해서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해도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미 현실 속 수많은 방증을 거부한 것처럼, 이 재검표마저 조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음모론이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전 세계적 이벤트라지만, 남의 나라 선거에 의해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혼란, 그리고 선동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미국 사상 최초로 벌어지고 있는 이 해프닝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이런 구렁텅이 안으로 빠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