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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美中격돌

美中 武力충돌 가능성

新冷戰? 熱戰 가능성도 배제 못해

글 :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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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蘇 견제 위해 중국의 유엔 가입, 베트남 공산화 등 용인
⊙ 美, 中이 아예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전략 수립
⊙ 美蘇 냉전 당시보다 군사력 압도적, 代理戰 불가능, 중국 편 없어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미국은 지난 5월 28일 알레이버크급 미사일 구출함 머스탱함을 남중국해에 진입시켰다. 사진=미 해군
  2020년 전반기는 세계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의 황당한 시기였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최초 발병한 폐렴균이 반 년 동안 세계 인구 약 42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 시민은 1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우한폐렴’이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편견을 지닌 말이라면서 대신 ‘코로나바이러스19’(이하 코로나19)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지만, 중국의 행동에 분노하는 일부 사람들은 ‘우한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중국에 적대적인 용어인 ‘중국 공산당 바이러스(CCP-Virus)’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질병이 창궐하기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를 둘러싼 세계와 중국의 갈등은 세계와 중국, 특히 미국과 중국의 일전(一戰)마저 불러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1945년 이래 약 45년간 지속되었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비유해 ‘냉전(冷戰・Cold War)’ ‘신냉전(New Cold War)’ 혹은 ‘냉전 No.2(Cold War II)’ 등의 용어를 사용해 묘사하는 사람들이 최근 부쩍 늘어났다.
 
  필자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냉전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학자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하건대 냉전이라는 용어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냉전은 ‘차가운 전쟁’이라는 말인데 전쟁이 어떻게 차가울 수 있다는 말인가? 냉전이란 단어는 마치 ‘검은 태양’ ‘둥근 네모’와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공장과 시장
 
  모든 전쟁은 뜨거운 것이다. 전쟁을 색으로 표시한다면 뜨거운 색인 붉은색이어야만 한다. 한때 당대 최고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진짜 전쟁은 하지 못한 채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말재간이 탁월한 월터 리프먼이라는 기자가 이를 묘사하기 위해 만든 용어가 냉전, 즉 ‘차가운 전쟁’이었다. 누구나 다 쓰는 말이 되다 보니 이상하지 않게 들리는 말이 되고 말았지만 ‘전쟁’이란 단어 앞에 형용사를 붙이려면 ‘뜨거운’이란 형용사만이 타당할 것이다.
 
  강대국이란 본시 ‘전쟁을 잘하는 나라’를 지칭하는 말인데, 냉전 시대 동안 강대국들은 결코 자기들끼리 직접 전쟁을 하지는 않았다. 역사상 나타난 전쟁의 빈도(頻度)를 살펴보면 강대국들의 전쟁 빈도가 냉전 시대처럼 낮은 시절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냉전사의 권위자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냉전 시대를 ‘장기적인 평화의 시대(Long Peace)’라고 불렀다.
 
  냉전이 끝나고 한 10년 동안 미국은 널널한 세월을 즐겼다. 그러나 2001년 테러 공격을 받아 테러와 싸우느라 정신없던 차에 다시 공룡처럼 막강해진 중국을 맞이했다. 겨우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듯했는데 테러리스트보다 훨씬 골치 아픈 중국이라는 위협에 당면하게 되었다. 미국의 상당수, 아마 다수의 학자들은 중국과 미국은 싸울 일이 없는 나라라고 믿었다. 중국은 공장이고 미국은 시장인데 공장과 시장이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혹 중국이 미국과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잘사는 중국은 미국과 같은 부류의 나라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아무리 미국과 생각이 달라도 결국 그들은 미국이 벌이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미중(美中) 신냉전이라는 말은 웬 말인가? 기대한 바처럼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필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중 관계가 냉전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열전(熱戰·Hot War)의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美, 蘇 견제 위해 中과 손잡아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오랫동안의 내전(內戰) 끝에 중원(中原)을 모두 장악,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PRC)을 건국했다. 미국의 후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고 부패했던, 그러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한다고 했던 장제스(蔣介石)는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퇴(敗退)해, 대만으로 도망쳐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ROC)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영토 규모로 보나 인구 규모로 보나, 대만이 중국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만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인정했다. 중국(중공)은 건국 후 20년 이상 유엔에 가입조차 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소련의 편에 서서 참전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중국과 소련을 ‘그놈이 그놈’이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교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미중 양국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국이 되어버렸다.
 
  역사적·지정학적으로 미국이 태평양의 적국으로 생각한 나라는 일본이지 중국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던 19세기 중엽 이후 약 100년간, 중국이 마오쩌둥에 의해 공산주의로 천하 통일을 이룩할 무렵까지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은 중국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이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형제국가라 말하면서도 서로 미사일까지 쏘아대면서 영토 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본 미국은 대적(大敵)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려는 전략을 펼친다. 키신저, 닉슨 등 탁월한 현실주의 전략가들은 중국을 소련과 결별시키는 한편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중국을 국제연합(유엔·UN)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국에 준 것도 사실은 미국이 한 일이었다. 또한 미국은 중국이 소련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베트남의 공산통일을 허락했다. 남쪽 국경지대가 안전해야 중국이 북쪽에서 소련과 열심히 싸워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련을 패망시키기 위해 중국을 활용해야 하는 미국이,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을 방치하는 것은 국제정치사의 상궤(常軌)를 그리 벗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강대국 정치에서 약소국은 장기판의 졸(卒)만도 못한 경우가 많았다.
 
 
  글로벌리스트의 시대
 
  미국 사람들은 소련과 달리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 속으로 들어올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변신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래서 중국의 국민총생산액(GDP)이 일본을 앞서는 것을 보았을 때도 미국은 놀라거나 우려하지 않았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냥 꼴통 같은 인간으로 치부되었다. 냉전이 끝난 세계에서 이처럼 생각하는 경우 혹은 사람들에게는 ‘냉전적 사고(思考)방식’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은 뭔가 모자라는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에는 국제정치의 본질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글로벌리스트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를 추종하는 정치가들과 기업은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패권 시대 첫 번째 대통령인 42대 빌 클린턴은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43대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44대 버락 오바마 등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모두 글로벌리스트라고 분류될 수 있는 정치가였다. 이들이 있는 한 중국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글로벌리스트 관점에서 보면 어느 나라가 돈을 더 많이 벌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 만사를 국경을 초월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투정을 부리는 일은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世界化)의 논리는 속으로부터 곪고 있던 병을 치유하는 데는 실패했다. ‘자동차 품질이 문제지 그게 미제(美製)면 어떻고 일제(日製)면 어떠냐?’ ‘월급만 잘 받으면 되지 당신의 사장이 미국 사람이면 어떻고 중국 사람이면 어떠냐?’라는 일면 강압적인 질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곪아 터지기 시작했다.
 
  일제 자동차를 타는 것은 즐거운 일인데 그러다 보니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 도시요 미국 번영의 상징이던 디트로이트가 폐허가 되고 있었다. 모든 생필품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놓은 미국은, 미국 회사가 만든 마스크와 각종 의약품을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오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미국 국기와 미국 올림픽 대표단이 올림픽 개회식에서 입는 유니폼마저 중국제여야 하는가?’라는 자조적(自嘲的) 한탄도 나왔다. 그래도 글로벌리스트들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것이라 둘러댔다. 그들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글로벌리즘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트럼프에게 거의 20여 년 만에 백악관을 빼앗기고 말았다.
 
 
 
‘和平起’라는 허구

 
중국은 러시아에서 구입한 랴오둥함 외에 자체 제작한 첫 번째 항공모함 산둥함까지 진수하면서 ‘힘의 投射’가 가능해졌다. 사진=신화/뉴시스
  중국이 빛의 속도로 경제력이 성장하는 동안, 중국 개혁의 선구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자신의 후배 정치가들에게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더라도 미국이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평화적으로 일어나야 하며(和平起·화평굴기), 칼을 보이지 않게 칼집에 잘 넣고 있으라고 했다(韜光養晦·도광양회). 중국인들이 아무리 서구적인 국제정치 관점과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해도 국가의 대전략(大戰略·grand strategy)이 다른 나라를 속이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손자병법》이 물론 세계 최고의 병법서(兵法書)이고, 또 전쟁터에서 속임수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속임수’가 국제전략 차원에서도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은 서구적 전략 개념과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서구적 전략사상을 이어받은 미국의 국제전략가들은 한 국가가 평화적으로 굴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한 나라의 국력이 급격히 팽창하는 것은 당연히 국제체제의 안정(stability)을 파괴하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안정이 파괴된 국제체제는 전쟁이 빈발하게 된다는 것이 서구적인 국제질서관의 본질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의 교훈을 잘 지키지도 못했다. 중국이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시점인 1985년 무렵부터 2010년에 이르는 동안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연(年)평균 10%에 이르는 것이었지만 중국의 군사력 증강 속도는 경제발전 속도를 훨씬 초과하는 16% 정도였다.
 
  중국은 이 기간에 육군 병력은 대폭 감축했지만 해군과 공군은 대폭 증강시켰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이 기간에 중국의 군사력이 날씬해졌지만 훨씬 잔인해졌다(Leaner but Meaner)”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과거와 달리 힘의 투사(power projection)가 가능한 군사력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중국이 힘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지구 전체에 도달할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지역적인 수준의 능력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6월 4일 서해 진입한 美 스텔스 구축함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도전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냉전이 끝난 후 미국의 해군은 큰 바다 한복판에서 적의 대함대를 격멸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던 100년 동안의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미국의 해군 전략은 과거 ‘바다 위에서(on the sea)’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의 해군 전략은 ‘바다로부터(from the sea)’로 바뀌었다. 미국은 1994년 더 구체적인 해군 전략인 《바다로부터의 공격(Forward from the sea)》이라는 제목의 해군 전략 보고서를 간행했다. 냉전이 끝난 후 소련이 아니라 중국을 상대하게 된 미국은 중국을 아예 바다로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한다는 해군 전략을 수립해두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 해군은 대해(大海)에서가 아니라 연안(沿岸)에서 전투하는 데 유리한 군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위 연안전투함(Littoral Combat Ship·LCS)이라는 군함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군함의 특징은 작지만 빠르고 날렵하며 적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해군 최정예 전투함이지만 너무 비싸서 지금까지 단 3척밖에 건조하지 못한 줌월트(Zumwalt)급(級) 구축함은 기왕의 대형 구축함보다 거의 두 배 정도 되는 1만5000t급이지만 적의 레이더에는 낚싯배 수준의 배로 나타날 정도로 대단한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전문가의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6월 4일,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날로서 중국 공산당 정부가 신경이 대단히 예민해 있던 바로 그날, 줌월트급 구축함이 서해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미국 구축함은 대만 앞바다를 항진(航進)해서 중국의 비위를 최대한으로 긁었다.
 
  필자는 앞에서 미중 패권(覇權) 갈등이 미소 냉전처럼 평화적으로 끝날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소 냉전 기간 중에 두 나라의 군사력이 진짜 싸움을 벌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 조종사들이 참전해 미국의 전투기들과 교전(交戰)을 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도 소련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소련 사람이 아닌 것처럼 미국을 속이기 위해 한국어(북한말)로 교신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심했다. 그래서 결국 미국은 총을 쏘지 않은 채 평화적인 방법으로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의 승자가 되었다.
 
  중국과의 싸움도 그렇게 끝날까? 미중 패권경쟁이 미소 냉전처럼 종결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美中, 代理戰 불가능

 
  우선 현재의 중국은 냉전 시대 소련만큼 군사력이 막강하지 못하다. 소련과 미국은 사실 누구든 전쟁을 벌이면 둘 다 죽는 형국이었다. 소련의 군사력은 미국 군사력보다 강하다고 평가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을 도무지 군사력으로 건드릴 수 없었다. 물론 소련도 미국을 건드릴 수 없었다. 즉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억제 상태가 형성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미국과 소련의 전쟁억제 상태를 ‘MAD’라고 표현했다. 상호확실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즉 둘은 싸우면 다 확실히 파멸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싸우지 않았다. 아니 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군사력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둘째, 미국과 소련은 최악의 경우 대리전쟁(代理戰爭)을 치렀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이 미소 대리전쟁의 대표적 사례들이었다. 소련과 미국은 각각 자기 편을 지원했지만 그 싸움도 절대로 미국과 소련의 직접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유의했다. 대리전쟁들에서 미국과 소련은 전력(全力)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 대리전이 미국과 소련의 직접 대결로 비화(飛火)하는 일은 무조건 자제했다. 대리전쟁들이 다 제한전쟁(limited war)으로 끝난 이유가 여기 있다. 미국과 소련이 으르렁거리던 시절 대리전쟁은 양국이 직접 맞부딪히는 일을 막아주는 안전장치로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대리해서 싸워줄 수 있는 나라들은 없다. 그래서 미중 갈등은 직접적인 무력(武力)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중국 편이 없다
 
  셋째, 미국과 소련의 싸움은 국제사회에서 확실한 편 가르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싸움이었다. 전선(戰線)이 분명했다는 말이다. 어느 나라는 미국 편, 어느 나라는 소련 편이라는 구분이 비교적 확실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의 싸움은 즉각 두 진영 사이의 세계대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자제했고 양국의 갈등은 냉전 이상으로 비화할 수 없었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진영의 싸움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중국을 편들어서 전쟁을 함께 해줄 수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중국을 극도로 분노하게 만드는, 중국에 인접한 바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행해지는 미국 주도의 해군 작전에는 영국·프랑스·인도·일본·호주 군함들도 끼어 있다. 중국 편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전쟁을 벌일 나라가 없다는 사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해 군사력 사용을 좀 더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현재 초(超)과학적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냉전 시대 미국이 보유했던 무기와 소련이 보유했던 무기 사이의 질적(質的) 격차보다 현재 미국의 무기와 중국의 무기 사이에서 나타나는 질적 격차가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반드시 열전으로 비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라는 《손자병법》을 잘 알고 있으며, 미국 역시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추천 도서도 《손자병법》이다.
 
 
  먼저 경제전쟁에서 승패 결정 날 수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없었던 특징이 하나 있다. 두 나라 경제가 상당히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군사력을 사용하는 수준에 이르기 전 경제전쟁을 통해 미중 대결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력이 약한 중국이 불리할 것이지만 경제력의 불리(不利)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이 미국에 대해 군사력으로 도발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논리를 종합할 때,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이 세계대전급의 대전쟁으로 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미중 대결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대결로 비화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양국 간 무력충돌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미국의 선제(先制)공격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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