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3000t급 重잠수함, 한화오션만 원천 설계 능력 확보
⊙ 우리 해군 운용 잠수함 24척 중 17척 수주
⊙ 군함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 디젤잠수함 시장(폴란드, 캐나다 등), 향후 60조원 이상 추정
⊙ 잠수함 1척당 100여 개 협력업체에 4000억원 이상 경제 유발 효과
⊙ “10년, 20년 뒤에는 회사 규모 3~8배가량 커져 있을 것”
⊙ 우리 해군 운용 잠수함 24척 중 17척 수주
⊙ 군함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 디젤잠수함 시장(폴란드, 캐나다 등), 향후 60조원 이상 추정
⊙ 잠수함 1척당 100여 개 협력업체에 4000억원 이상 경제 유발 효과
⊙ “10년, 20년 뒤에는 회사 규모 3~8배가량 커져 있을 것”
- 2018년 9월 14일 한국 독자 기술로 만든 3000t급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이 열렸다. 사진=한화오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露粱海戰, 경남 남해·1598년)을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해 12월 개봉됐다. 임진왜란을 끝나게 한 노량해전은 충무공의 마지막 23번째 전투이자 그가 숨을 거둔 전투이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을까. 1592년 경남 거제 옥포만(玉浦灣) 일대에서 벌어진 옥포해전이 그 출발이다. 충무공의 첫 승전지인 옥포에는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을 이끄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옥포조선소)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구미 전자공업단지, 포항 철강산업단지, 여수 석유화학단지 등 국가산업단지가 그렇게 생겨났다.
박정희가 택한 造船 최적지 거제
충무공의 첫 승전을 기념하기 위함일까. 왜 국토 남동쪽 끝, 구불구불한 섬에 조선소를 지었을까. 1971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거제 저도(豬島) 별장에 갔다가 거제 옥포 일대를 둘러보고는 배를 만들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거제가 조선업에는 최적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옥포만 일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에는 태풍을 막아주고 수심도 깊어 대형 선박을 만드는 데도 적합하다고 봤다.
당시 정부는 거제도에 조선소 3곳을 세우려 했으나 현대는 울산을 택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담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3년)에 따라 국영(國營)인 대한조선공사(1978년 대우그룹 인수)는 1973년 10월 옥포항 일대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1981년 옥포조선소(옥포 국가산업단지)가 준공됐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하기 위해 부산에서 출발해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들어갔다. 거제도(382k㎡)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1845k㎡) 다음으로 큰 섬이다. 굴곡진 도형(島形) 때문에 면적은 제주도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해안선(거제 443km, 제주 253km)은 한국의 섬 중에서 가장 길다.
거제사업장은 거제도에서 3시 방향, 장승포항 뒤편에 있다. 해안선을 따라 옥포대첩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왼편으로 바다 위에 큰 배가 떠 있었다. 조선소를 상징하는 골리앗 크레인도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거제를 찾았을 땐 노란색을 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화의 상징인 주황빛 오렌지색을 칠한 채 육중한 쇳덩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주황색이 주는 산뜻함 때문인지 3년 전보다 분위기도 밝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옥포대첩로를 따라 조선소 밖을 반바퀴 돌아 정문을 통해 ‘야드(yard)’로 진입했다. 조선소 일대를 모두 야드라고 부른다. 야드로 향하는 길목 초입에는 ‘신용과 의리’가 각인된 표지석이 서 있었다. 신용과 의리는 한화그룹의 정신이다. 대중의 기억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이 익숙할 테지만 ‘신용과 의리’를 접하는 순간 거제사업장이 한화그룹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도에서 옥포조선소(거제사업장)를 찾으면 옥포 국가산업단지라는 명칭과 함께 ‘ㄷ’자로 조선소가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의도 1.67배 면적(약 495만㎡)으로 축구장 686개를 합친 크기다. 수심은 25~30m인데 배를 만들고, 또 내보내는 데도 최적이다.
12년 만에 선박 수주 세계 1등
조선소 구성원들이 직책과 직무는 달라도 모두 같은 유니폼에 안전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역사를 한데 정리한 전시관으로 향했다. 대한조선공사(1973~1978), 대우조선공업(1978~1994), 대우중공업(1994~2000), 대우조선공업(2000~2001), 대우조선해양(2002~2023.05.22)을 거쳐 한화오션(2023.05.23~)으로 이르는 역사가 정리돼 있었다.
한화오션은 조선소 운용 12년 만인 1993년 상선 분야 선박 수주 세계 1위를 달성했다. 2019년 세계 최고, 두께 2.1m의 북극 빙하를 뚫고 운항하는 쇄빙 LNG선 15척을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2020년 4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컨테이너 운반선도 만들었다. 6m 길이 컨테이너 2만4000개를 한 번에 나를 수 있다. 2021년에는 브라질 최대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수주했다. 계약 금액은 약 1조948억원이었다. 지금은 조선업 호황을 맞아 3년 치 물량을 벌써 수주해놓았다. 호황 덕분에 ‘저가 수주’가 아닌 ‘골라서’ 수주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민간 선박뿐만 아니라 특수선(군함) 분야에서도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옥포대첩 승전 400주년인 1992년 대한민국 최초로 전투 잠수함인 장보고급(배수량 1200t) 잠수함 2번함인 이천함 건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보유한 잠수함 24척 중 17척을 수주했다.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수출해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국이자 잠수함 건조 기술 도입국으로는 세계 최초로 잠수함 수출에 성공한 기록을 세웠다.
전시관 왼편에는 세계 최고의 조선 건조 실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기술교육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각종 기술(용접, 도장 등) 교육과 실습이 이뤄진다. 배를 만드는 데 용접과 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이다.
스마트 야드
한화오션은 ‘스마트 야드(smart yard)’를 구현하기 위해 중앙연구원 산하 디지털솔루션연구센터와 생산혁신연구센터를 통해 용접과 도장 직무 등을 중심으로 자동화·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해 고위험 공정에는 로봇 등을 활용해 근로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고품질 선박 제작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예전에는 여러 명이 해야 할 작업을 이제는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 혼자서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안전교육센터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사고 상황을 미리 체험, 실제 벌어질 각종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드넓은 야드는 한눈에 봐도 작업 효율을 극대화시켜줄 것만 같았다. 야드에는 블록(block), 모듈(module)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연상케 하는 모듈에는 용접할 때 참고했을 듯한 흰색 글자와 숫자가 어지러이 적혀 있었다. 이 모듈을 용접하고 여기에 각종 내부 장치를 달아 도장한 뒤 물에 띄우면 전 세계를 누비는 상선이 된다.
한화오션은 IoT를 기반으로 일련의 공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덕분에 선박을 약속한 시기에 인도하고 있다.
거제사업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옥포만을 바라보고 오른편은 해양플랜트, 나머지 구역에선 상선과 특수선이 건조된다. 야드에는 ‘119’와 같은 ‘2119’도 있었다. 각종 재난에 신속하게 우선 대응하기 위한 자체 소방서였다.
‘트랜스포터’라고 부르는 대형 이동 트럭이 블록을 싣고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탄 신호수들이 앞뒤로 각각 2명씩 붙어 트랜스포터를 인도했다. 근로자들은 드넓은 야드를 자전거나 한화의 상징인 오렌지색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출퇴근 때가 되면 자전거를 탄 근로자들로 가득 찬다. 다른 조선소와는 달리 거제사업장은 안전을 위해 야드 내 오토바이 주행을 금지하고 있다. 차량도 시속 30km 이내로만 달려야 한다.
각종 블록을 조립해 배가 외형을 갖추면 안벽(岸壁·quay wall)으로 이동한다. 이쯤 되면 공정의 60~70%를 마친 상태다. 안벽에서 도장을 덧칠하고 내부 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공정이 진척된 배의 선수(船首), 선미(船尾)에는 선명(船名)이 페인트로 적혀 있었는데 ‘함부르크(Hamburg)’ ‘부산(BUSAN)’처럼 익숙한 항구 도시 이름을 넣거나 선사(船社)의 명칭을 따 배 이름을 짓는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초대형 독

거제사업장에는 골리앗 크레인 4기와 3600t을 들어 올리는 해상 크레인 2기가 설치돼 있다. 900t을 들어 올리는 골리앗 크레인(높이 103m, 자체 무게 5500t)이 설치된 거제사업장 1독(선박건조장). 약 7만㎡의 넓이로 5층 높이 건물 826채(84㎡ 기준)가 들어가는 면적이다. 한때 가장 큰 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었다. 이곳에선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과 원유 운반선 등 대형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 중이었다. 주위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타워크레인 10여 대가 둘러싸 함께 작업 중이었다. 대각선 2독에서도 분주하게 조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야드에 자리한 크레인 수는 총 747대였다.
거제사업장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만여 명이 야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일하고 있었다. 구내식당만 곳곳에 26개로 하루 소비되는 쌀만 217포, 4.3t이다.
상선 건조 구역을 지나 특수선 건조 구역으로 들어갔다. 연간 잠수함 3척, 수상함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보안 시설이라 출입이 까다로웠다.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았지만 현장에서 다시 한 번 출입 절차를 확인하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한화오션이 만드는 군함만을 따로 전시해놓은 공간도 있었다. K-방산에 관심이 있는 해외 인사들이 찾아 한화오션의 기술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잠수함에 실제 설치되는 배터리부터 한화오션이 그간 만든 함정의 모형은 물론 수출형 모델도 볼 수 있다.

한화오션은 2011년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 이외에도 방글라데시 호위함(1998년), 말레이시아 훈련함 2척(2010년), 영국 군수지원함 4척(2013년), 노르웨이 군수지원함(2013년), 태국 호위함(2013년) 등을 수출했다.
특수선은 모두 커다란 시설물에 가려진 채 건조되고 있었다. 밀폐 작업을 하는 이유는 보안 유지뿐만 아니라 날씨의 영향 없이 공정을 일정하게 유지해 고품질 함정을 적시에 인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특히나 잠수함은 고난도 건조 기술이 필요하다. 수상함과는 달리 협소하고 한정된 공간(선체)에 수많은 파이프와 전선, 무장체계 등이 복잡하게 설치되기 때문이다. 작은 장비 하나만 바뀌어도 관련 시스템 설계를 연쇄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또한 수중 작전 환경에서 승조원 안전 등을 고려한 수밀성이 확보된 압력선체 건조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특수선 건조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 작업자들의 경력은 대체로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3척 모두 수주
특수선 3공장에선 잠수함 건조가 한창이었다. 3공장에서 작업 중인 잠수함은 ‘도산 안창호’급 배치(Batch)-II 1·2번함이었다. ‘배치’는 같은 등급으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을 말한다. 배치-I(3척, 1~3번함)→배치-II(3척, 1~3번함)→배치-III(3척 예정)으로 갈수록 성능 개량이 이뤄진다. 한화오션은 도산 안창호급 배치-I 2척[도산 안창호(1번함)·안무함(2번함), 척당 약 1조원]과 배치-II 3척을 수주해 역량을 입증했다.
우리 해군은 전투용 잠수함으로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209급(장보고급, 1200t, 9척), 214급(손원일급, 1800t, 9척), 도산 안창호급(3600t, 9척 도입 예정, 6척 계약)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209·214급은 독일 잠수함 제조사인 TKMS(구 독일 HDW)에서 잠수함 설계·건조 기술을 이전받아 만들었다. 잠수함 설계 모델명이 ‘type 209’ ‘type 214’여서 그 이름이 붙었다. 209·214급은 실전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209급을 장보고급, 214급을 손원일급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선도함(1번함)의 이름을 따 함정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209급 잠수함의 1번함이 장보고함(SS-061), 214급 잠수함의 선도함이 손원일함(SS-072)이기 때문이다. 통상 함정은 같은 종류(배치)를 여러(3~6) 척 생산해 운용한다. 우리 해군이 도입 중인 3000t급 잠수함은 선도함인 도산 안창호함의 이름을 따 도산 안창호급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도산 안창호함(SS-083)은 2021년 실전 배치됐다.
손원일급부터는 AIP(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가 탑재돼 잠항 시간이 늘었다. 우리 잠수함은 수중에서 디젤엔진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해 평소 미리 충전한 전지로 잠항해야 했다. 하지만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인해 재충전을 위해 수면 가까이에서 스노클을 해야 했고, 이는 잠수함에 있어 적에게 노출되는 가장 취약한 시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AIP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 수중에서 추가 산소 공급 없이 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 더 오랫동안 잠항할 수 있게 해준다.
세계 8번째 3000t급 이상 잠수함 독자 개발
우리나라는 AIP 탑재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통해 잠수함 독자 설계·건조 기술을 보유한 12번째 국가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3000t급 이상 잠수함을 독자 개발한 나라가 됐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설계부터 진수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 2번함인 ‘안무(SS-85)’함은 2018년 4월 건조해 2020년 11월 진수됐다. 2023년 4월 해군에 인도돼 올해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도산 안창호함 내부는 기존 잠수함(209·214급)보다 커진 덕분에 침대 또한 승조원 수에 맞게 설치돼 있다. 장보고급과 손원일급은 침대 수가 승조원 수의 3분의 2에 불과해 승조원들이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잠수함은 동일 성능이라면 크기가 작을수록 생존에 유리하기에 되도록 선체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함에는 최신 소나(음파탐지기)가 장착돼 생존성 또한 향상됐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도산 안창호급 배치-II는 배치-I과는 완전히 다른,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잠수함”이라며 “길이와 무장, 연료전지체계, 말굽형 소나, 관통형 공격잠망경, 디젤엔진 기종 변경, 보조추진기 추가 및 리튬전지 체계 적용 등으로 작전 성능과 잠항 시간이 더욱 진일보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치-II를 통해 완벽한 잠수함 모델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캐나다, 폴란드, 필리핀 등 세계 시장 선진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보고-III급 배치-II(이하 배치-II)는 배치-I보다 크기와 배수량이 커지고 무장 능력도 강화됐다. 배치-I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으며 국산화율은 76.8%다. 납축전지를 사용해 잠항 시간은 100시간가량 된다. 하지만 배치-II는 SLBM은 물론이고 국산화율도 80%에 이르며 납축전지가 아닌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잠항 시간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소나도 개량돼 수중 작전 능력·탐지 능력도 개선됐다.
잠수함 절단해 내·외부 정비
특수선 구역에서 한창 건조 중인 장보고-III급 배치-II는 기다란 원통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무를 썰어놓은 듯 토막이 나 있었다. 잠수함 건조는 용도에 따라 ‘섹션(section)’을 나눠 제작해 특수용접을 거쳐 하나로 연결한다. 모듈을 조립해 하나의 배를 만들 듯 잠수함은 섹션을 이어붙여 잠수함 형태를 갖춰 나간다. 이 때문에 고난도 용접 기술이 필요하다. 배치-II는 임무별로 7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원형 모양의 넓지 않은 섹션에 각종 장비와 배관, 전선을 설치해야 한다.
공장 한편에는 온전한 잠수함 형태를 갖춘 비교적 작은 잠수함도 있었다. 209급 6번함 정운함(SS-067)이었다. 잠수함은 일정 기간(약 6년 6개월)마다 잠수함을 절단해 모든 구조물을 뜯어내고 내·외부를 정비한다.
정운함은 앞서 10년 전인 2013년 9월 창정비를 위해 이곳을 찾았었다. 당시에도 선체 정비, 축전지 교체, 추진전동기 분해 정비 등 총 1905건을 정비한 뒤 약 두 달간 최대작전심도 시험 등 총 85개 항목을 시험해 최종 성능을 확인했다. 창정비에는 모두 14개월이 걸렸다.
한화오션은 경쟁사는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방산, 세계 최정상급 K-방산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유상증자(약 1조5000억원)를 했는데 이 중 42%를 방산(특수선) 분야에 활용할 계획이다.
超격차 防産
한화오션의 특수선사업을 관리하는 김규백 상무를 만나 한화오션의 경쟁력과 미래, 차기 K-방산 수출 품목인 잠수함에 대해 물었다.
— 초격차 방산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선 건조 시설을 확충할 예정입니다. 잠수함은 기존 4척에서 최다 7척(신조 4척, 창정비 3척), 수상함은 4척(기존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내 조립 공장도 신축해 건조 기간도 단축하고 함정의 품질도 높일 계획입니다.”
— 경쟁사와 비교할 때 한화오션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장보고·손원일·도산 안창호급)을 모두 건조한 경험이 있습니다. 24척 중 17척을 만들었죠. 한국이 독자 개발하고 설계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의 원천 설계 기술도 오직 한화오션만 갖고 있습니다.”
— 경쟁사도 도산 안창호급 배치-I 3번함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원천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입니다.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을 응용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오션이 배치-II 3척을 모두 수주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천 기술 덕분에 수출용 잠수함을 만들 때도 한화오션은 해당 국가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응용 설계를 할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잠수함 설계 원천 기술을 확보했나요.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독일에서 처음 장보고급(209급) 잠수함(1번 장보고함)을 들여올 때 당시 저희 회사는 대규모 인력을 독일로 파견했습니다. 당시로는 쉽지 않은 굉장한 투자였죠. 이후 독일이 제공한 209급 잠수함 도면을 바탕으로 2~9번함을 거제사업장에서 만들었습니다. 214급(손원일급) 잠수함도 독일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면허 생산 방식으로 건조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설계와 기술 전수 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설계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독일 이외에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잠수함 선진국에도 인력을 파견해 기술을 분석하고 역량을 키웠습니다.”
— 특수선 설계, 계약, 건조, 진수까지 일련의 기간이 얼마나 소요됩니까.
“함정의 크기, 탑재 장비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순히 수상함과 잠수함을 구분해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수주한 최신예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잠수함 3번함은 계약 후 약 90개월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선도함은 설계 기간이 추가돼 후속함보다 기간이 늘어납니다.”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 한화오션의 특수선 분야 연구 개발 인력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약 400명입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채용할 계획입니다.”
— 2011년에는 잠수함 기술 이전국으로는 최초로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독일과 경쟁해 이겼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모델은 기존 209급을 한화오션 연구개발진이 대폭 개량해 수정 설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도산 안창호급 독자 개발에도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 폴란드에서는 3000t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폴란드 요구 조건을 충족하나요.
“대부분 충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디젤잠수함으로는 세계 최장 잠항 기록이 있습니다.”
— 수출 계약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상용화, 보편화된 기술과 최첨단 핵심 기술을 구분해 협상 과정에서부터 협의하기 때문입니다. 계약 단계에서 양국의 상호 이익과 기술 보안을 동시에 고려해 기술 보호 대상을 정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등의 잠수함 수주 경쟁에서 가장 강한 경쟁자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입니다. 폴란드는 무장 체계와 금융 지원 패키지를 잘 마련한 업체를, 캐나다는 절충교역 이행 계획을 잘 준비한 업체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실사단이 지난해 거제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한화오션의 건조 역량과 잠수함 성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우리 해군의 30년 무사고 운용 노하우가 반영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폴란드, 캐나다뿐 아니라 서방 선진 해군도 경쟁력 있는 잠수함으로 인정합니다.”
— 한화오션뿐 아니라 국내 방산 업체와의 벨류체인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궁금합니다.
“70여 국내 기자재 업체를 비롯해 전문 협력 업체 100여 곳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1척을 건조하면 국내 기자재 업체에 4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집행되는 경제 유발 효과가 있습니다.”
— 특수선 건조 이외에도 창정비 분야(MRO)에서 한화오션이 거둔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
“잠수함 창정비 25척, 성능 개량 6척을 했습니다. 수상함 분야에서는 한국형 구축함(KDX-I, 3200t급) 3척의 성능을 개량했습니다.”
— 앞으로는 무인잠수함도 등장할 듯합니다.
“한화오션은 2022년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해군 함정설계기술처와 함께 전투용 UUV(무인잠수정) 개념 설계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초대형급 무인잠수정에 적용할 다목적 모듈형 무인잠수정용 에너지원 과제를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개발 중입니다. 한화오션은 대한민국의 ‘Navy Sea GHOST’ 목표에 맞춰 해상 유무인 복합체계의 전력화를 위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 진출”
— 10년, 20년 뒤의 한화오션은 어떤 모습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회사 규모도 3~8배가량 커져 있을 겁니다. 글로벌 안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첨단 기술과 함께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해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에도 진출할 것입니다. ‘초격차 방산’ 솔루션을 확보하고 해외 함정 사업을 선도하는 방산 ‘최강자’로 자리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서 만든 잠수함을 세계 방산 시장에 내놓기 위해 지난해 해외사업단을 신설했다. 2023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 참석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에게 한화오션이 독자 개발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직접 설명하며 그 우수성을 자랑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정부의 수출 금융 지원과 여러 산업체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 K-방산 수출의 다음 주자는 잠수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을까. 1592년 경남 거제 옥포만(玉浦灣) 일대에서 벌어진 옥포해전이 그 출발이다. 충무공의 첫 승전지인 옥포에는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을 이끄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옥포조선소)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구미 전자공업단지, 포항 철강산업단지, 여수 석유화학단지 등 국가산업단지가 그렇게 생겨났다.
박정희가 택한 造船 최적지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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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
당시 정부는 거제도에 조선소 3곳을 세우려 했으나 현대는 울산을 택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담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3년)에 따라 국영(國營)인 대한조선공사(1978년 대우그룹 인수)는 1973년 10월 옥포항 일대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1981년 옥포조선소(옥포 국가산업단지)가 준공됐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하기 위해 부산에서 출발해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들어갔다. 거제도(382k㎡)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1845k㎡) 다음으로 큰 섬이다. 굴곡진 도형(島形) 때문에 면적은 제주도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해안선(거제 443km, 제주 253km)은 한국의 섬 중에서 가장 길다.
거제사업장은 거제도에서 3시 방향, 장승포항 뒤편에 있다. 해안선을 따라 옥포대첩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왼편으로 바다 위에 큰 배가 떠 있었다. 조선소를 상징하는 골리앗 크레인도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거제를 찾았을 땐 노란색을 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화의 상징인 주황빛 오렌지색을 칠한 채 육중한 쇳덩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주황색이 주는 산뜻함 때문인지 3년 전보다 분위기도 밝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옥포대첩로를 따라 조선소 밖을 반바퀴 돌아 정문을 통해 ‘야드(yard)’로 진입했다. 조선소 일대를 모두 야드라고 부른다. 야드로 향하는 길목 초입에는 ‘신용과 의리’가 각인된 표지석이 서 있었다. 신용과 의리는 한화그룹의 정신이다. 대중의 기억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이 익숙할 테지만 ‘신용과 의리’를 접하는 순간 거제사업장이 한화그룹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도에서 옥포조선소(거제사업장)를 찾으면 옥포 국가산업단지라는 명칭과 함께 ‘ㄷ’자로 조선소가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의도 1.67배 면적(약 495만㎡)으로 축구장 686개를 합친 크기다. 수심은 25~30m인데 배를 만들고, 또 내보내는 데도 최적이다.
12년 만에 선박 수주 세계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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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잠수함인 209급 이천함. 사진=한화오션 |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역사를 한데 정리한 전시관으로 향했다. 대한조선공사(1973~1978), 대우조선공업(1978~1994), 대우중공업(1994~2000), 대우조선공업(2000~2001), 대우조선해양(2002~2023.05.22)을 거쳐 한화오션(2023.05.23~)으로 이르는 역사가 정리돼 있었다.
한화오션은 조선소 운용 12년 만인 1993년 상선 분야 선박 수주 세계 1위를 달성했다. 2019년 세계 최고, 두께 2.1m의 북극 빙하를 뚫고 운항하는 쇄빙 LNG선 15척을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2020년 4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컨테이너 운반선도 만들었다. 6m 길이 컨테이너 2만4000개를 한 번에 나를 수 있다. 2021년에는 브라질 최대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수주했다. 계약 금액은 약 1조948억원이었다. 지금은 조선업 호황을 맞아 3년 치 물량을 벌써 수주해놓았다. 호황 덕분에 ‘저가 수주’가 아닌 ‘골라서’ 수주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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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은 한국 해군이 보유한 24척 잠수함 중 17척을 수주했다. |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수출해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국이자 잠수함 건조 기술 도입국으로는 세계 최초로 잠수함 수출에 성공한 기록을 세웠다.
전시관 왼편에는 세계 최고의 조선 건조 실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기술교육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각종 기술(용접, 도장 등) 교육과 실습이 이뤄진다. 배를 만드는 데 용접과 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이다.
스마트 야드
한화오션은 ‘스마트 야드(smart yard)’를 구현하기 위해 중앙연구원 산하 디지털솔루션연구센터와 생산혁신연구센터를 통해 용접과 도장 직무 등을 중심으로 자동화·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해 고위험 공정에는 로봇 등을 활용해 근로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고품질 선박 제작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예전에는 여러 명이 해야 할 작업을 이제는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 혼자서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안전교육센터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사고 상황을 미리 체험, 실제 벌어질 각종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드넓은 야드는 한눈에 봐도 작업 효율을 극대화시켜줄 것만 같았다. 야드에는 블록(block), 모듈(module)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연상케 하는 모듈에는 용접할 때 참고했을 듯한 흰색 글자와 숫자가 어지러이 적혀 있었다. 이 모듈을 용접하고 여기에 각종 내부 장치를 달아 도장한 뒤 물에 띄우면 전 세계를 누비는 상선이 된다.
한화오션은 IoT를 기반으로 일련의 공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덕분에 선박을 약속한 시기에 인도하고 있다.
거제사업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옥포만을 바라보고 오른편은 해양플랜트, 나머지 구역에선 상선과 특수선이 건조된다. 야드에는 ‘119’와 같은 ‘2119’도 있었다. 각종 재난에 신속하게 우선 대응하기 위한 자체 소방서였다.
‘트랜스포터’라고 부르는 대형 이동 트럭이 블록을 싣고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탄 신호수들이 앞뒤로 각각 2명씩 붙어 트랜스포터를 인도했다. 근로자들은 드넓은 야드를 자전거나 한화의 상징인 오렌지색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출퇴근 때가 되면 자전거를 탄 근로자들로 가득 찬다. 다른 조선소와는 달리 거제사업장은 안전을 위해 야드 내 오토바이 주행을 금지하고 있다. 차량도 시속 30km 이내로만 달려야 한다.
각종 블록을 조립해 배가 외형을 갖추면 안벽(岸壁·quay wall)으로 이동한다. 이쯤 되면 공정의 60~70%를 마친 상태다. 안벽에서 도장을 덧칠하고 내부 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공정이 진척된 배의 선수(船首), 선미(船尾)에는 선명(船名)이 페인트로 적혀 있었는데 ‘함부르크(Hamburg)’ ‘부산(BUSAN)’처럼 익숙한 항구 도시 이름을 넣거나 선사(船社)의 명칭을 따 배 이름을 짓는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초대형 독

거제사업장에는 골리앗 크레인 4기와 3600t을 들어 올리는 해상 크레인 2기가 설치돼 있다. 900t을 들어 올리는 골리앗 크레인(높이 103m, 자체 무게 5500t)이 설치된 거제사업장 1독(선박건조장). 약 7만㎡의 넓이로 5층 높이 건물 826채(84㎡ 기준)가 들어가는 면적이다. 한때 가장 큰 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었다. 이곳에선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과 원유 운반선 등 대형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 중이었다. 주위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타워크레인 10여 대가 둘러싸 함께 작업 중이었다. 대각선 2독에서도 분주하게 조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야드에 자리한 크레인 수는 총 747대였다.
거제사업장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만여 명이 야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일하고 있었다. 구내식당만 곳곳에 26개로 하루 소비되는 쌀만 217포, 4.3t이다.
상선 건조 구역을 지나 특수선 건조 구역으로 들어갔다. 연간 잠수함 3척, 수상함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보안 시설이라 출입이 까다로웠다.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았지만 현장에서 다시 한 번 출입 절차를 확인하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한화오션이 만드는 군함만을 따로 전시해놓은 공간도 있었다. K-방산에 관심이 있는 해외 인사들이 찾아 한화오션의 기술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잠수함에 실제 설치되는 배터리부터 한화오션이 그간 만든 함정의 모형은 물론 수출형 모델도 볼 수 있다.

한화오션은 2011년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 이외에도 방글라데시 호위함(1998년), 말레이시아 훈련함 2척(2010년), 영국 군수지원함 4척(2013년), 노르웨이 군수지원함(2013년), 태국 호위함(2013년) 등을 수출했다.
특수선은 모두 커다란 시설물에 가려진 채 건조되고 있었다. 밀폐 작업을 하는 이유는 보안 유지뿐만 아니라 날씨의 영향 없이 공정을 일정하게 유지해 고품질 함정을 적시에 인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특히나 잠수함은 고난도 건조 기술이 필요하다. 수상함과는 달리 협소하고 한정된 공간(선체)에 수많은 파이프와 전선, 무장체계 등이 복잡하게 설치되기 때문이다. 작은 장비 하나만 바뀌어도 관련 시스템 설계를 연쇄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또한 수중 작전 환경에서 승조원 안전 등을 고려한 수밀성이 확보된 압력선체 건조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특수선 건조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 작업자들의 경력은 대체로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3척 모두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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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기술 인력이 독일 현지에서 잠수함 건조 기술을 배우던 시절 모습. 사진=한화오션 |
우리 해군은 전투용 잠수함으로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209급(장보고급, 1200t, 9척), 214급(손원일급, 1800t, 9척), 도산 안창호급(3600t, 9척 도입 예정, 6척 계약)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209·214급은 독일 잠수함 제조사인 TKMS(구 독일 HDW)에서 잠수함 설계·건조 기술을 이전받아 만들었다. 잠수함 설계 모델명이 ‘type 209’ ‘type 214’여서 그 이름이 붙었다. 209·214급은 실전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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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기술자들이 독일에서 기술 전수를 받던 당시 모습. |
손원일급부터는 AIP(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가 탑재돼 잠항 시간이 늘었다. 우리 잠수함은 수중에서 디젤엔진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해 평소 미리 충전한 전지로 잠항해야 했다. 하지만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인해 재충전을 위해 수면 가까이에서 스노클을 해야 했고, 이는 잠수함에 있어 적에게 노출되는 가장 취약한 시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AIP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 수중에서 추가 산소 공급 없이 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 더 오랫동안 잠항할 수 있게 해준다.
세계 8번째 3000t급 이상 잠수함 독자 개발
우리나라는 AIP 탑재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통해 잠수함 독자 설계·건조 기술을 보유한 12번째 국가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3000t급 이상 잠수함을 독자 개발한 나라가 됐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설계부터 진수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 2번함인 ‘안무(SS-85)’함은 2018년 4월 건조해 2020년 11월 진수됐다. 2023년 4월 해군에 인도돼 올해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도산 안창호함 내부는 기존 잠수함(209·214급)보다 커진 덕분에 침대 또한 승조원 수에 맞게 설치돼 있다. 장보고급과 손원일급은 침대 수가 승조원 수의 3분의 2에 불과해 승조원들이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잠수함은 동일 성능이라면 크기가 작을수록 생존에 유리하기에 되도록 선체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함에는 최신 소나(음파탐지기)가 장착돼 생존성 또한 향상됐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도산 안창호급 배치-II는 배치-I과는 완전히 다른,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잠수함”이라며 “길이와 무장, 연료전지체계, 말굽형 소나, 관통형 공격잠망경, 디젤엔진 기종 변경, 보조추진기 추가 및 리튬전지 체계 적용 등으로 작전 성능과 잠항 시간이 더욱 진일보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치-II를 통해 완벽한 잠수함 모델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캐나다, 폴란드, 필리핀 등 세계 시장 선진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보고-III급 배치-II(이하 배치-II)는 배치-I보다 크기와 배수량이 커지고 무장 능력도 강화됐다. 배치-I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으며 국산화율은 76.8%다. 납축전지를 사용해 잠항 시간은 100시간가량 된다. 하지만 배치-II는 SLBM은 물론이고 국산화율도 80%에 이르며 납축전지가 아닌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잠항 시간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소나도 개량돼 수중 작전 능력·탐지 능력도 개선됐다.
잠수함 절단해 내·외부 정비
특수선 구역에서 한창 건조 중인 장보고-III급 배치-II는 기다란 원통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무를 썰어놓은 듯 토막이 나 있었다. 잠수함 건조는 용도에 따라 ‘섹션(section)’을 나눠 제작해 특수용접을 거쳐 하나로 연결한다. 모듈을 조립해 하나의 배를 만들 듯 잠수함은 섹션을 이어붙여 잠수함 형태를 갖춰 나간다. 이 때문에 고난도 용접 기술이 필요하다. 배치-II는 임무별로 7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원형 모양의 넓지 않은 섹션에 각종 장비와 배관, 전선을 설치해야 한다.
공장 한편에는 온전한 잠수함 형태를 갖춘 비교적 작은 잠수함도 있었다. 209급 6번함 정운함(SS-067)이었다. 잠수함은 일정 기간(약 6년 6개월)마다 잠수함을 절단해 모든 구조물을 뜯어내고 내·외부를 정비한다.
정운함은 앞서 10년 전인 2013년 9월 창정비를 위해 이곳을 찾았었다. 당시에도 선체 정비, 축전지 교체, 추진전동기 분해 정비 등 총 1905건을 정비한 뒤 약 두 달간 최대작전심도 시험 등 총 85개 항목을 시험해 최종 성능을 확인했다. 창정비에는 모두 14개월이 걸렸다.
한화오션은 경쟁사는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방산, 세계 최정상급 K-방산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유상증자(약 1조5000억원)를 했는데 이 중 42%를 방산(특수선) 분야에 활용할 계획이다.
超격차 防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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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특수선사업부 특수선사업관리담당 김규백 상무 |
— 초격차 방산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선 건조 시설을 확충할 예정입니다. 잠수함은 기존 4척에서 최다 7척(신조 4척, 창정비 3척), 수상함은 4척(기존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내 조립 공장도 신축해 건조 기간도 단축하고 함정의 품질도 높일 계획입니다.”
— 경쟁사와 비교할 때 한화오션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장보고·손원일·도산 안창호급)을 모두 건조한 경험이 있습니다. 24척 중 17척을 만들었죠. 한국이 독자 개발하고 설계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의 원천 설계 기술도 오직 한화오션만 갖고 있습니다.”
— 경쟁사도 도산 안창호급 배치-I 3번함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원천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입니다.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을 응용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오션이 배치-II 3척을 모두 수주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천 기술 덕분에 수출용 잠수함을 만들 때도 한화오션은 해당 국가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응용 설계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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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기술자들은 독일에서 기술 습득에 노력해 잠수함 설계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독일에서 처음 장보고급(209급) 잠수함(1번 장보고함)을 들여올 때 당시 저희 회사는 대규모 인력을 독일로 파견했습니다. 당시로는 쉽지 않은 굉장한 투자였죠. 이후 독일이 제공한 209급 잠수함 도면을 바탕으로 2~9번함을 거제사업장에서 만들었습니다. 214급(손원일급) 잠수함도 독일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면허 생산 방식으로 건조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설계와 기술 전수 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설계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독일 이외에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잠수함 선진국에도 인력을 파견해 기술을 분석하고 역량을 키웠습니다.”
— 특수선 설계, 계약, 건조, 진수까지 일련의 기간이 얼마나 소요됩니까.
“함정의 크기, 탑재 장비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순히 수상함과 잠수함을 구분해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수주한 최신예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잠수함 3번함은 계약 후 약 90개월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선도함은 설계 기간이 추가돼 후속함보다 기간이 늘어납니다.”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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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에 위치한 한화오션 R&D센터에 있는 국내 유일 음향수조. 이곳에서 최첨단 잠수함 기술을 연구 개발 한다. 사진=한화오션 |
“약 400명입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채용할 계획입니다.”
— 2011년에는 잠수함 기술 이전국으로는 최초로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독일과 경쟁해 이겼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모델은 기존 209급을 한화오션 연구개발진이 대폭 개량해 수정 설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도산 안창호급 독자 개발에도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 폴란드에서는 3000t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폴란드 요구 조건을 충족하나요.
“대부분 충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디젤잠수함으로는 세계 최장 잠항 기록이 있습니다.”
— 수출 계약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상용화, 보편화된 기술과 최첨단 핵심 기술을 구분해 협상 과정에서부터 협의하기 때문입니다. 계약 단계에서 양국의 상호 이익과 기술 보안을 동시에 고려해 기술 보호 대상을 정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등의 잠수함 수주 경쟁에서 가장 강한 경쟁자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입니다. 폴란드는 무장 체계와 금융 지원 패키지를 잘 마련한 업체를, 캐나다는 절충교역 이행 계획을 잘 준비한 업체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실사단이 지난해 거제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한화오션의 건조 역량과 잠수함 성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우리 해군의 30년 무사고 운용 노하우가 반영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폴란드, 캐나다뿐 아니라 서방 선진 해군도 경쟁력 있는 잠수함으로 인정합니다.”
— 한화오션뿐 아니라 국내 방산 업체와의 벨류체인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궁금합니다.
“70여 국내 기자재 업체를 비롯해 전문 협력 업체 100여 곳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1척을 건조하면 국내 기자재 업체에 4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집행되는 경제 유발 효과가 있습니다.”
— 특수선 건조 이외에도 창정비 분야(MRO)에서 한화오션이 거둔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
“잠수함 창정비 25척, 성능 개량 6척을 했습니다. 수상함 분야에서는 한국형 구축함(KDX-I, 3200t급) 3척의 성능을 개량했습니다.”
— 앞으로는 무인잠수함도 등장할 듯합니다.
“한화오션은 2022년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해군 함정설계기술처와 함께 전투용 UUV(무인잠수정) 개념 설계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초대형급 무인잠수정에 적용할 다목적 모듈형 무인잠수정용 에너지원 과제를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개발 중입니다. 한화오션은 대한민국의 ‘Navy Sea GHOST’ 목표에 맞춰 해상 유무인 복합체계의 전력화를 위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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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 두 번째)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 세 번째)에게 한화오션이 독자 개발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회사 규모도 3~8배가량 커져 있을 겁니다. 글로벌 안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첨단 기술과 함께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해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에도 진출할 것입니다. ‘초격차 방산’ 솔루션을 확보하고 해외 함정 사업을 선도하는 방산 ‘최강자’로 자리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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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9일 한화오션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현지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폴란드 해군 잠수함 현대화 사업인 ‘오르카 사업’ 수주를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서 만든 잠수함을 세계 방산 시장에 내놓기 위해 지난해 해외사업단을 신설했다. 2023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 참석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에게 한화오션이 독자 개발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직접 설명하며 그 우수성을 자랑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정부의 수출 금융 지원과 여러 산업체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 K-방산 수출의 다음 주자는 잠수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