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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기억전쟁

‘학살 가담 부역자’냐, ‘희생자’냐… 2기 진실화해위는 논쟁 중

“살해 가담 부역자를 희생자로 지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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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동 위원장, “‘무고한’ 희생자와 ‘살해 가담 부역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 표명 후 논란
⊙ 좌익에게 희생된 양민은 보상 못 받지만 軍警에 처형된 부역자는 국가배상받아
⊙ 1기 진화위, 좌익·암살대원·빨치산 등 부역자도 ‘군경 희생자’로 규정
⊙ 악질 부역자도 희생자로 인정받아 1인당 1억원씩 국가배상받아
⊙ “1기 진화위의 진실 규명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게 아니라 다수결에 근거”
⊙ “주도적·적극적으로 살인·방화 등에 가담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훼손한 자들을 희생자로 결정해서는 아니 될 것”(헌법재판소)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무고한 민간인들은 북한군·중공군·좌익 세력과 국군·경찰·우익 사이에 놓여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 31일 6·25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 희생을 비롯해 역사적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약칭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됐다. 과거사정리법을 바탕으로 그해 12월 1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이하 1기 진화위)가 출범했다. 진화위의 활동 범위는 ▲항일독립운동 ▲광복 이후 6·25전쟁 전후 불법적으로 벌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광복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벌어진 인권 침해 사건 ▲광복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대한민국 적대 세력에 의한 사건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이었다.
 
  1기 진화위는 사건 1만1175건을 신청받아 ▲진실 규명 8450건(전체 75.62%) ▲진실 규명 불능 528건(4.72%) ▲각하 1729건(15.47%) ▲이송 92건(0.87%) 등의 실적을 냈다. 접수 민원 중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집단 희생이 8206건으로 가장 많았고, 적대 세력에 대한 희생(1774건), 인권침해(768건), 항일독립운동(274건) 순이었다.
 
 
  좌편향 초대 위원장
 
진화위는 2022년 10월 선감학원 사건을 진실 규명 대상으로 선정했다. 선감학원 사건은 1946~1982년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연행 후 경기도가 운영하는 선감학원에 수용한 사건이다. 사진=뉴시스
  1기 진화위를 구성하는 위원 15명 중 8명은 당시 여권(청와대, 열린우리당 각 4명) 추천 인사였다. 나머지 7명은 대법원장(3명), 한나라당(3명), 민주당(1명)이 각각 추천했다. 1기 진화위 초대 위원장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의구현사제단) 송기인 신부가 임명됐다. 송기인 위원장은 2005년 《월간중앙》 5월호 인터뷰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가 먼저 손을 잡아야 한다.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가 (미국) 몰래라도 긴밀하게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신부는 ‘노무현의 정신적 지주’ ‘문재인의 멘토’라는 별칭이 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세례를 줬고 2022년 대선에서는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인 그는 2006·2007년 진화위 위원장 시절 급여 1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에 참여하는 등 건국·산업화에 앞장선 인물을 ‘친일 인사’로 규정하는 데 앞장서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백선엽 장군 등을 친일파로 규정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1979년 적발된 공안 사건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남민전은 재벌그룹 회장과 고위 공직자 등의 집을 골라 강도·절도를 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등을 탈취해 1995년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자생적 공산주의 지하조직이다.
 
  임 소장은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보상위)’를 통해 남민전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2017년 내란 선동으로 수감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등을 정치범·양심수라고 주장하며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임 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부친이 6·25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이 아님에도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처형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적 비극의 원인에는 친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무고한 희생자와 살해 부역자는 구분해야’
 
  1기 진화위는 2006년 4월 25일 첫 조사를 시작해 4년 2개월간 활동했다. 2010년 6월 30일 조사 활동을 마친 후 6개월 동안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 뒤 그해 12월 31일 해산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0년 6월 9일 여야는 과거사정리법을 개정해 같은 해 12월 10일 ‘2기 진화위’를 출범시켰다. 조사 기간은 최초 조사 개시 결정일로부터 3년이며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2기 진화위 첫 위원장(2020년 12월 10일~2022년 12월 9일)은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2기 진화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2022년 12월 10일 김광동 진화위 상임위원이 정근식 명예교수에 이어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광동 위원장은 6·25전쟁 당시 벌어진 우리 군경(軍警)에 의해 불법적으로 발생한 희생과 ‘대한민국에 적대 행위를 벌이다가 군경에 처형된 사례’는 구분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른바 ‘무고한’ 희생자와 악질 부역자는 다르다는 의미다.
 
  ‘부역자’는 1950년 6월 이후 인민군이 남한 지역을 점령하자 북한에 적극 협조하며 대한민국에 적대 행위를 한 자이다. 2기 진화위가 문제 삼는 부역자는 양민 학살을 저지르거나 폭동·반란에 가담한 이른바 ‘악질 부역자’를 말한다. 인민군·좌익 등의 위협에 소극적으로 동조 내지 협조한 이른바 ‘부역 혐의자’는 희생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
 
  진화위 관계자는 “인민군 치하에서 생존을 위해 단순 노무나 음식 제공 등을 한 것은 부역 행위라 볼 수 없다”며 “부역은 북한에 적극 동조해 양민을 학살하거나 대한민국에 적대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이들 희생자가 당시 어떤 활동을 했으며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왜, 어떻게 피해를 봤는지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시(戰時)에 침략 세력의 편에서 민간인 학살 등에 가담했던 부역자들이 군경에 의해 처분됐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자’로 인정받는다면 이는 과거사정리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은 전황(戰況)에 따라 크게 5차례 일어났다.
 
  첫 번째는 월북(越北)한 이들에게서 확보한 이른바 반동분자(지역 유지, 군경 가족 등) 명단을 바탕으로 점령지에서 북한군이 인민재판을 통해 벌인 학살이다.
 
  두 번째는 남침 후 우리 군경이 예비검속 차원에서 국민보도연맹에 속하거나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한 이들을 처형한 일이다.
 
  세 번째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인민군이 퇴각하며 벌인 양민 학살이다. 당시 북한은 지령을 통해 국군과 유엔군에 협조할 수 있는 인사들을 학살하라고 했다.
 
  네 번째는 인민군 퇴각 이후 토착 좌익 세력이 치안 공백기에 양민을 살육한 것이다. 군경의 보복이 두려웠던 좌익들은 인민군 퇴각 당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주로 학살했다.
 
  마지막은 국군과 경찰, 우익 세력이 치안을 회복한 후 약식 절차로 부역 혐의자를 처형한 것이다.
 
 
  〈신원기록심사보고〉
 
이옥남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뉴시스
  김광동 위원장을 비롯해 여당이 임명한 위원들은 전쟁 중 침략 세력 편에서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기록(문서 또는 진술)이 있는 이는 그 기록이 허위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立證)하지 못하면 희생자로 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2기 진화위는 희생자를 결정할 때 경찰 자료 등 공적 자료를 활용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자료가 1980년 작성된 〈신원기록심사보고〉다.
 
  〈신원기록심사보고〉는 1980년 9월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 지시로 약 한 달간 실시한 ‘신원기록일제정비’의 결과물이다. 신원기록문서 정비는 6·25전쟁 이후 작성된 각종 기록에 경미한 부역 혐의까지 포함돼 불이익을 받는 이들이 많아지자 이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화합을 목적으로 실시됐다.
 
  〈신원기록심사보고〉에 등장하는 심사기준표에 따르면, 신원은 갑종(8개 세부 기준), 을종(13개), 병종(9개)으로 구분됐다. 인민군에 적극 협조하거나 양민 학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는 갑종 ‘1-7(악질 부역 등에 가담 사살 또는 처형된 자)’에 속한다. 군경에 의해 처형됐으나 처형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부역 사실이 불확실한 자는 병종 ‘3-8’에 속한다. 1-7과 3-8을 합하면 군경에 의해 처형된 이들의 수를 추정할 수 있다. 1기 위원회는 〈신원기록심사보고〉에 등장하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희생자를 규명했다.
 
  2기 위원회가 〈신원기록심사보고〉를 포함한 당시 공적 기록을 바탕으로 무고한 양민이나 군경 등을 살해한 이른바 ‘살해 부역자’를 검증하겠다고 하자 진화위 야권 추천위원의 반발이 나왔다. 주된 논거는 ‘공권력을 남용한 주체인 경찰의 자료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찰 자료는 처형 사실을 규명하는 데는 활용할 수 있으나 부역 사실을 가리는 데는 활용될 수 없다’며 관련 기록을 취사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2기 진화위 이옥남(국민의힘 추천) 상임위원은 제1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1기 진화위에서도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제1소위는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과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등을 조사한다.
 
  이 상임위원은 “과거사정리법이 정한 진실 규명 대상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희생됐고’ ‘그 희생자가 (무고한) 민간인이어야 한다’”며 “2기 진화위는 양민 학살 등에 가담한 부역자가 무고한 희생자로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상임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진화위는 인민군이 남한 지역을 점령한 인공(人共) 치하에서 인민위원장을 지낸 이들도 적법 절차 없이 우리 군경에게 희생됐다면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폭넓게) 인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인민군에 동조해 자위대원·암살대원, 조선인민군 유격대, 빨치산 활동을 하며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이들까지 ‘민간인’으로 볼 순 없습니다. 이들은 군경 무고한 우리 양민을 향해 총칼을 든 사람들이잖아요. 진화위의 진실 규명 대상은 전쟁 당시 적법 절차 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이지 살해에 가담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러 처형된 사람까지 포함하는 것은 잘못됐다 생각합니다.”
 
 
  “당시 만든 자료는 기본적으로 신뢰해야”
 
〈신원기록심사보고〉에 첨부된 심사기준표. 2기 진화위는 경찰 자료 등을 바탕으로 부역자를 가려낸다는 입장이다. 사진=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부역자를 가릴 수 있는 사료(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신원기록심사보고〉 외에도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자료가 있습니다. 1기 진화위도 이들 자료를 참고했죠.”
 
  — 〈신원기록심사보고〉 등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두고 경찰이 작성한 자료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해자(군경)가 만든 자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공적인 자료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자료를 믿지 않으면 증언이나 진술을 참고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당시 경찰 자료가 가진 한계는 없습니까.
 
  “경찰 자료에도 물론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1기 진화위 때부터 우리는 기본적으로 경찰 자료 등 공적 자료를 바탕으로 희생자를 지정해왔어요. 희생자를 지정할 때는 경찰 자료를 활용하면서도, 살해 부역자를 확인하는 용도로는 경찰 자료를 쓸 수 없다? 한 자료를 두고 취사선택하겠다는 거잖아요. 처형 사실은 믿어도 처형 사유나 시기는 믿지 못하겠다는 건 자기모순 아닌가요. 당시 만든 공적 자료는 기본적으로 신뢰할 필요가 있어요.”
 
 
  “부역자 문제는 바로잡아야”
 
  — 일부에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을 감추고자 ‘부역자’ 검증을 들고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희생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입니다. 저희가 다루는 사건은 군경이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민간인을 상대로 과잉 대응해 벌어진 게 대부분입니다.”
 
  1기 진화위에서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상임위원(노무현 청와대 추천)으로 활동했다. 당시 김 교수는 6·25 당시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을 담당하는 제2소위원회(집단희생규명위원회)를 맡았다. 당시 제2소위원회가 담당했던 ‘서산·태안 부역 혐의 사건’은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이후 1·4후퇴(1951년)를 전후해 서산·태안 일대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을 다뤘다. 결과 보고서는 경찰 자료(서산경찰서 작성 〈경찰 연혁(1951~1986)〉 〈신원기록심사보고(1980)〉)를 바탕으로 희생자를 추정했다.
 
  기자는 9월 13일 김동춘 교수에게 이메일을 통해 ▲희생자 수를 규명할 때 사용한 경찰 자료인 〈신원기록심사보고〉에 대해 얼마나 신뢰했는지 ▲1기 위원회 활동 당시 가해자(부역자)와 희생자를 가려내지 못한 이유 ▲‘부역 혐의자’와 ‘무고한 희생자’를 명확히 가려내는 방법이 있다고 보는지 등을 문의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가해자가 희생자가 돼 보상받은 사례
 
2021년 6월 23일 국군포로를 지원하는 (사)물망초는 진화위 앞에서 미송환 국군포로 진상 규명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1기 진화위가 규명한 사건에는 부역자(가해자)가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규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피해’ 조사 과정에선 부역 활동을 해 가해자로 규명됐으나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발생한 희생자’로 규명돼 희생자로 결정된 사례다.
 
  1기 진화위에서 부역자가 희생자로 인정받아 국가배상을 받은 사례 일부를 소개한다. 평균 1인당 1억여원을 배상받았다. 현행법상 법원은 군경에 의한 희생만을 배상할 뿐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은 보상하지 않고 있다.
 
  박○○
  1922년생, 여순 사건 당시 면당지도책으로 활동 중 사살
  진화위 진실 규명 신청 희생자로 인정/ 서울중앙2011가합○○○○○○, 위자료 박○○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부모·자녀 800만원, 형제 400만원
 
  배○○
  1933년생, 6·25전쟁 당시 남로당 활동 중 사살
  진화위 진실규명 신청 희생자로 인정/ 서울중앙2011가합○○○○○○, 위자료 배○○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부모·자녀 800만원, 형제 400만원
 
  김○○
  1897년생, 6·25전쟁 당시 공비 활동 중 사살 추정
  진화위 진실규명 신청 희생자로 인정/ 서울중앙2011가합○○○○○○, 위자료 김○○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부모·자녀 800만원, 형제 400만원

 
  1기 진화위에 상임위원으로 참여했던 A씨는 9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기 진화위의 진실 규명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게 아니라 다수결에 근거했다”며 “당시 규명한 사건 중 상당수는 굉장히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1기는 위원 15명이 참여했습니다. 진화위는 합리적 의심도 (존중하지 않고) 다수결에 근거해 진실 여부를 가렸습니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전체 회의에서 여권 인사) 8명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7명은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칩시다. 과반에 가까운 7명이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다수결에 묻혀버렸습니다. 1기 진화위가 밝힌 진실 중 상당수는 ‘투표에 의거한 진실’입니다. 트루스 바이 팩트(truth by fact)가 아닌 트루스 바이 보트(vote)죠.”
 
 
  이권 카르텔 형성
 
  A씨는 “공적 자료보다는 희생자에게 유리한 지인·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희생자로 인정한 사례가 많았다”며 희생자에게 유리한 주장만 취사선택되거나 직접 목격이 아닌 간접 경험을 통한 ‘카더라’식 주장이 증언의 형식으로 진실 규명에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 2기 진화위가 살해 부역자를 가려낸다고 합니다.
 
  “살해 부역자가 희생자로 둔갑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살해 부역자를 확실하게 구분해낼 수 있다면 중요한 활동이라 할 수 있죠.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예로 들면, 거시적 관점에서 이 사건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맞죠. 하지만 미시적 관점으로는 당시 이 사건에 속했던 개개인의 행동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무고한 희생자뿐 아니라 (양민을 학살한) 부역자도 포함돼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 살해 부역자를 가려내기 위한 자료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료가 빈약하지만 현존하는 자료에서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가려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죠.”
 
  — 과거 경찰 자료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화위 활동할 때 6·25전쟁기 자료를 봤는데 그 수준에 감탄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굉장히 잘 만든 자료였어요.”
 

  — 살해 부역자를 구분하는 데 경찰 자료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충분하다, 충분치 않다’는 제가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증거가 명백하다면 밝혀내야 한다는 거죠.”
 
  — 부역자 가려내기가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보십니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진실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해야죠. 이 역시 진실 규명의 일부니까요.”
 
  진화위 사정에 밝은 B씨는 희생자 규명은 결국 배상, 돈과 연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진화위 결정을 통해 희생자로 인정받은 이들 중 일부는 법원 재심 청구를 통해 국가배상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른바 시국 사건에 등장하는 법무법인이 합세해 소송을 대리하는 등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악질 부역자 구분’을 두고 일부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 단체와 진화위 내부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진화위 내부에서는 ‘희생자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부역자를 가리는 것은 진화위의 활동 범위가 아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두고 B씨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 지나친 피해자 중심주의, 1기 진화위에 대한 자기 부정 등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내부 저항이 있다”고 말했다.
 
 
  살해 부역자가 희생자로 둔갑하면…
 
  살해 부역자가 희생자로 둔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적대 세력자에게 희생된 무고한 양민은 현행법상 배·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양민을 학살했음에도 국가 공권력에 희생됐다는 이유로 희생자로 인정받은 부역자는 국가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가해자만 국가배상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2기 진화위는 살해 부역자를 어떤 기준에 따라 규정할지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2001년 ‘제주4·3사건 특별법’ 위헌 제청 당시 헌법재판소는 위헌(違憲) 제청에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결정문에서는 “주도적·적극적으로 살인·방화 등에 가담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훼손한 자들을 희생자로 결정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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