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청은 싸게, 더 싸게… 설계價의 50% 밑으로도 떨어져
⊙ 10년 현장 용접공 J씨 “示方書 지키는 곳 소수에 불과”
⊙ 인치당 1만원, “더 빨리, 더 많이 때워야”… 작업반장 曰 “2년만 버티게 때우라”
⊙ 하청업체 소장·난방공사 감독관의 부정한 교분, ‘날림공사의 악순환’
⊙ “난방공사 감독관은 甲中甲”, 인부당 50만원씩 갹출 명절 ‘떡값’ 건네는 게 관행
⊙ 10년 현장 용접공 J씨 “示方書 지키는 곳 소수에 불과”
⊙ 인치당 1만원, “더 빨리, 더 많이 때워야”… 작업반장 曰 “2년만 버티게 때우라”
⊙ 하청업체 소장·난방공사 감독관의 부정한 교분, ‘날림공사의 악순환’
⊙ “난방공사 감독관은 甲中甲”, 인부당 50만원씩 갹출 명절 ‘떡값’ 건네는 게 관행
-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 현장. 100도가 넘는 물줄기가 15m 높이로 치솟았다. 작업자들이 전날 파열된 열수관을 복구하는 모습. 사진=연합
우리나라 국토를 인체에 비유했을 때, ‘혈관’에 해당하는 게 있다. 바로 ‘열수송관’이다. 온수와 난방을 위해 필요한 관(管)인데, 땅속에 마치 핏줄처럼 들어차 있다. 사람 사는 데라면 다 깔려 있다. 그 속에는 펄펄 끓는 물이 항시 흐르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땅속 관이 실핏줄 터지듯 터져버린다면?
도로 한복판, 펄펄 끓는 물이 넘치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9시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근처 도로 한복판에서 펄펄 끓는 물이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일대 3만m²가 침수됐고, 연신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는 시야를 가렸다. 교통이 통제되면서 큰 혼잡이 일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약 30명의 시민이 다쳤고, 그중 송모(68)씨는 전신화상으로 결국 사망했다. 열수송관 파열로 빚어진 참변이었다.
사고 직후 지역난방공사 측은 그 원인으로 ‘노후화된 배관’을 꼽았다. 1991년 매설한 건데, 27년 지나 낡아서 터졌다는 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조금 달랐다. 사고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1월 15일, 국과수는 파열 원인이 ‘용접 불량’이라고 발표했다. 국과수는 “1991년 최초 배관 공사 시 열 배관 조각 부위가 용접 불량 상태로 배관에 접합돼 있던 상태에서, 장기간에 걸친 내부 변동압력 등에 의해 열 배관 조각이 분리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여론은 ‘일개 용접공의 불찰’로 모이는 듯했다.
“설계價 50%로 공사하는데 용접 불량 나올 수밖에”
국과수 발표 이후, 지역난방공사에서 10년간 용접 일을 한 J씨를 만났다. 그는 “인명사고 때문에 크게 이슈화돼서 그렇지, 온수관 파열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면서 “백석역 사고 이후에도 보도되지 않은 사고가 몇 건 더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한 해 알게 모르게 수십, 수백 건이 터지는 데에는 지역난방공사의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고 했다.
“하청에 하청, 거기서 또 재하청, 또 하청을 줘서 결국 설계가의 40~50%로 공사를 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용접공의 경우 원래 보수를 일당으로 받아야 하는데, 1인치(2.5cm)당 1만원으로 받는다. 소위 ‘물량 준다’고 한다. 이 와중에 심지어 다른 인부와 가격 경쟁을 붙인다. 최대한 빨리, 많이 때워야 먹고사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불법하도급으로 일한 건데, 나 같은 사람이 10년간 전국 지역난방 용접을 다 다닌 거다.”
하도급 규정은 ‘건설산업기본법’ 등을 따른다. 공사 종류에 따라 하청 허용 여부가 다른데, 하청을 주는 경우 낙찰률은 보통 80% 수준을 지킨다. 물론 이 또한 공사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전자계약’ 페이지에 올라온 입찰공고 등에 따르면 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관 공사는 하청이 허용된다. 공식적으로 ‘지역난방공사(원청) → 시공업체(1차 하청) → 공사업체(2차 하청)’ 순이며, 이때 지역난방공사 각 지사의 ‘감독관’이 공사를 감독하고, 시공업체 ‘소장’이 공사업체 공사를 지휘하게 된다.
하지만 J씨에 따르면 실제 현장은 이렇지 않았다.
“A사(社)가 10억원에 공사를 땄다고 치자. A사 사장에게 일명 ‘뻐꾸기’라는 사람이 “이거 7억원에 해줄 테니까 넘겨라” 한다. 그럼 넘길 테고, 뻐꾸기가 인부들을 ‘싼값’에 모은다. 7억원보다 더 싸게. 그래야 본인도 남겨 먹으니까. 공사가가 50% 밑으로까지 떨어지는 이유다. 서류상 계약업체는 A사로 돼 있지만, 실제 공사는 제삼자가 하는 셈이다. A사 사장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남길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심지어 뻐꾸기한테 A사의 ‘소장’ 명함까지 파준다.”
현장에선 어떤 일이?
“2년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최저가’의 인부들이 모이는 공사판. J씨에게 들은 현장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전국의 지역난방 열배관 공사는 거의 다 다녀봤는데, 제대로 하는 곳(직영)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날림으로 공사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배관을 깔려면 땅을 판다. 배관 크기마다 다른데, 800A(mm) 사이즈 배관 두 개 기준, 시방서(示方書)대로라면 최소 3m 이상(폭)을 파야 한다. 근데 90% 이상이 2m50cm만 판다. 왜? 얕게 파야 포클레인 작업비와 다시 메우는 과정에서 모래값을 아끼니까. 게다가 파낸 흙의 처리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좁게 파면, 용접공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어정쩡한 자세로 때울 수밖에 없다.”
정석대로라면 ‘흙막이’도 설치해야 한다. 파낸 흙이 쓰러지는 것을 막는 장치다. 토사 붕괴로 인명사고가 나는 것도 이 흙막이가 부실해서다.
“거의 안 해준다. 흙막이 없냐고 하면 ‘그냥 빨리 들어가서 작업하고 나오라’고 한다. 이후 예열·보온 작업까지 끝내고 나면 땅을 다시 메운다. 이때 다짐 작업을 잘 해야 한다. 좋은 모래와 자갈을 넣고 아스팔트 포장을 꼼꼼히 잘 해야 하는데, 거기서도 남겨 먹는다. 그러다 보니 싱크홀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보통 3일 기준 공사를 하루 만에 다 끝낸다. 자연히 야간작업이 많아지는데, 작업등 등 야간작업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갖춰주지 않는다. 하청업체 계약이 보통 1~2년인데, 그래서 ‘오야지(작업반장)’들은 ‘2년만 버티게 때우라’고 말한다.”
J씨는 시방서 기준을 찬찬히 설명하며 “규격대로 공사하면 용접 부위는 절대 터질 수 없다. 100년이 지나도 안 터진다”고 했다.
J씨의 주장과 유사한 얘기는 또 다른 관계자 P씨로부터도 들을 수 있었다. P씨는 지난해까지 지역난방공사의 유지보수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유지보수 점검조가 열감지 센서가 달린 레이저 건으로 (파열) 의심 지역의 온도를 재고 다닌다”면서 “땅에서 스팀이 나온다는 건 이미 터졌다는 건데,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석역 파열의 근본적 원인이 하도급 부조리 때문인 건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용접뿐만 아니라, 지역난방에서 가장 중요한 ‘보온·예열’ 공사하는 사람들도 다 그런 식으로 물량을 받아 일한다. 27년 전 용접공을 찾아내 책임을 물을 거라 하는데, 그걸 ‘찾아야’ 한다는 게 곧 관리부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3청, 4청까지 얼마나 후려쳤으면 인부가 누군지도 모르겠냐.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그런다. 그 상황에서 27년이나 버티게 때웠으면 상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방공사 감독관과 하청업체 소장은 어떤 사이?
날림공사. 이는 비단 하청업체의 잘못일까. J씨는 “지역난방 지사 감독들이 다 알면서도 묵과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J씨는 ‘뻐꾸기’인 K 밑에서 10년간 일했다. 현재 지역난방 경남 ○○지사, 충북 □□지사, 경기 △△지사까지 세 군데에 시공업체 M사가 들어가 있는데, K는 이곳의 ‘소장’ 명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J씨에 따르면 K소장은 세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감사 때만 자리를 지킨다. J씨는 “지난해 말 K가 ○○지사, △△지사에 이어 □□지사도 따냈으니, 자기 밑에서 계속 용접하고 싶으면 잘 보이라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센터장에 따르면, 동일한 업체가 여러 지사의 공사를 딸 순 있지만, 한 소장이 여러 지사를 관할할 수는 없다. 지사마다 1명의 소장이 상주하며 공사를 지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특히 경남, 충북, 경기도는 쉽게 왕래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동시에 이름을 올려선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K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J씨는 이에 “난방공사 감독관들이 이를 묵과하는 과정에서 향응 제공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K가 어느 날 ○○횟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난방공사 감독관들과 골프를 치고 술을 한잔하고 있더라. 나더러 계산만 하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10년간 만원 단위 밥값에서부터, 술값, 노래방, 심지어 해외 골프 접대까지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다. 이번엔 P씨의 말이다.
“명절 때면 감독관들에게 갖다 바쳐야 하니까 현금을 들고 오라고 한다. 큰돈은 아니다. 40만~50만원. 그렇게 용접공, 보온팀, 장비, 포클레인, 덤프트럭, 타워크레인 인부들에게 갹출해 목돈을 만든 다음, ‘떡값’으로 건넨다. 이렇게 날림공사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거다.”
P씨는 “지역난방 감독관은 갑 중의 갑이다. 감독 밑에 일명 ‘새끼 감독’이라고 있는데, 그 사람만 현장에 나와도 인부들은 완전히 90도로 인사한다. 공사 현장 안팎에서 그들 말은 곧 법으로 통한다”고 덧붙였다.
공사판에서는 보편화된 일… 컨소시엄으로 가야
뿌리 깊이 박힌 하도급 비리.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조원철 센터장은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의 원인이 사실은 하도급 문제에서 비롯된 것에 동의한다”면서 “공사현장에서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게 이뤄져 현장 사람들은 아마 당연한 일로 치부할 것”이라고 했다.
조 센터장은 “그뿐만 아니라 현장 리베이트도 보편화돼 있다. 예를 들어 ‘포클레인 일일대금을 100만원에 해줄 테니 20만원은 내게 달라’는 식”이라고 했다.
“향응 제공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다음에 공사를 주니까. 어마어마한 먹이사슬인 셈이다. 이게 다 발주시스템 때문이다. 흔히 ‘위험의 외주화’라고 한다. 100을 줘야 하는데, 50만 주고 1분이 걸리는 걸 30초 만에 하라고 하면 공사가 제대로 되겠느냐. 그래서 컨소시엄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입찰할 때부터 용접은 누구, 보온은 누구, 장비는 누구, 이런 식으로 팀을 완전히 꾸려서 들어가는 거다. 그럼 가격 다운이 될 수 없고, 정상가에 탄탄한 시공이 가능하다.”
그는 이어 “하도급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다면 난방공사 측은 하청업체 잘못으로 몰아가겠지만, 난방공사는 공사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백석역 사고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김성환 일산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은 “난방공사 직원 6명, 점검 담당 외주업체 직원 3명을 입건한 상태인데, 앞으로 추가 입건자가 나올 수 있다”면서 “아직 피의자 조사 단계로 검찰 송치를 안 한 상태라 수사 결과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불법하도급 정황은 포착하지 못했냐’고 물었다. 김 과장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 초동조치와 관리미흡 문제이기 때문에 입건한 사람들은 ‘점검업체’에 불과하다”면서 “K소장의 불법하도급 사례라면 직접 시공을 담당한 업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중대한 사안인 만큼 그 부분도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지역난방공사, 묵묵부답으로 일관
한편 지난해 9월, 감사원은 이미 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관 관리 문제를 짚어냈다. 열수송관 위험도를 측정하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관리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역난방공사 측은 온수관 전수조사계획을 포함한 ‘온수관 종합안전관리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지난 2월 7일 지역난방공사 관계자에게 대책 마련의 진행상황을 물었다. 공사 관계자는 “거의 대부분 완료된 상태지만 아직 내용 공개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27년 전 용접업체와 당시 사후 관리(비파괴검사) 진행 여부, 열수송관 공사의 하도급 규정, 불법하도급 관리 방침, 백석역 사고의 원인이 하도급 비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한 공식 입장도 요청했다.
공사 관계자는 “질문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해 보내면 각 담당 부서에 전달해 취합해 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약속한 날짜가 되자 “모두 답변이 곤란하다”는 대답만 돌려줬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는 “백석역 사고가 불법 재하청에서 비롯됐다는 데에 대해서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면서 “그러므로 불법 재하청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도로 한복판, 펄펄 끓는 물이 넘치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9시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근처 도로 한복판에서 펄펄 끓는 물이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일대 3만m²가 침수됐고, 연신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는 시야를 가렸다. 교통이 통제되면서 큰 혼잡이 일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약 30명의 시민이 다쳤고, 그중 송모(68)씨는 전신화상으로 결국 사망했다. 열수송관 파열로 빚어진 참변이었다.
사고 직후 지역난방공사 측은 그 원인으로 ‘노후화된 배관’을 꼽았다. 1991년 매설한 건데, 27년 지나 낡아서 터졌다는 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조금 달랐다. 사고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1월 15일, 국과수는 파열 원인이 ‘용접 불량’이라고 발표했다. 국과수는 “1991년 최초 배관 공사 시 열 배관 조각 부위가 용접 불량 상태로 배관에 접합돼 있던 상태에서, 장기간에 걸친 내부 변동압력 등에 의해 열 배관 조각이 분리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여론은 ‘일개 용접공의 불찰’로 모이는 듯했다.
“설계價 50%로 공사하는데 용접 불량 나올 수밖에”
국과수 발표 이후, 지역난방공사에서 10년간 용접 일을 한 J씨를 만났다. 그는 “인명사고 때문에 크게 이슈화돼서 그렇지, 온수관 파열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면서 “백석역 사고 이후에도 보도되지 않은 사고가 몇 건 더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한 해 알게 모르게 수십, 수백 건이 터지는 데에는 지역난방공사의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고 했다.
“하청에 하청, 거기서 또 재하청, 또 하청을 줘서 결국 설계가의 40~50%로 공사를 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용접공의 경우 원래 보수를 일당으로 받아야 하는데, 1인치(2.5cm)당 1만원으로 받는다. 소위 ‘물량 준다’고 한다. 이 와중에 심지어 다른 인부와 가격 경쟁을 붙인다. 최대한 빨리, 많이 때워야 먹고사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불법하도급으로 일한 건데, 나 같은 사람이 10년간 전국 지역난방 용접을 다 다닌 거다.”
하도급 규정은 ‘건설산업기본법’ 등을 따른다. 공사 종류에 따라 하청 허용 여부가 다른데, 하청을 주는 경우 낙찰률은 보통 80% 수준을 지킨다. 물론 이 또한 공사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전자계약’ 페이지에 올라온 입찰공고 등에 따르면 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관 공사는 하청이 허용된다. 공식적으로 ‘지역난방공사(원청) → 시공업체(1차 하청) → 공사업체(2차 하청)’ 순이며, 이때 지역난방공사 각 지사의 ‘감독관’이 공사를 감독하고, 시공업체 ‘소장’이 공사업체 공사를 지휘하게 된다.
하지만 J씨에 따르면 실제 현장은 이렇지 않았다.
“A사(社)가 10억원에 공사를 땄다고 치자. A사 사장에게 일명 ‘뻐꾸기’라는 사람이 “이거 7억원에 해줄 테니까 넘겨라” 한다. 그럼 넘길 테고, 뻐꾸기가 인부들을 ‘싼값’에 모은다. 7억원보다 더 싸게. 그래야 본인도 남겨 먹으니까. 공사가가 50% 밑으로까지 떨어지는 이유다. 서류상 계약업체는 A사로 돼 있지만, 실제 공사는 제삼자가 하는 셈이다. A사 사장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남길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심지어 뻐꾸기한테 A사의 ‘소장’ 명함까지 파준다.”
현장에선 어떤 일이?
“2년만 버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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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이 백석역 사고 관련 유가족과 피해시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
“배관을 깔려면 땅을 판다. 배관 크기마다 다른데, 800A(mm) 사이즈 배관 두 개 기준, 시방서(示方書)대로라면 최소 3m 이상(폭)을 파야 한다. 근데 90% 이상이 2m50cm만 판다. 왜? 얕게 파야 포클레인 작업비와 다시 메우는 과정에서 모래값을 아끼니까. 게다가 파낸 흙의 처리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좁게 파면, 용접공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어정쩡한 자세로 때울 수밖에 없다.”
정석대로라면 ‘흙막이’도 설치해야 한다. 파낸 흙이 쓰러지는 것을 막는 장치다. 토사 붕괴로 인명사고가 나는 것도 이 흙막이가 부실해서다.
“거의 안 해준다. 흙막이 없냐고 하면 ‘그냥 빨리 들어가서 작업하고 나오라’고 한다. 이후 예열·보온 작업까지 끝내고 나면 땅을 다시 메운다. 이때 다짐 작업을 잘 해야 한다. 좋은 모래와 자갈을 넣고 아스팔트 포장을 꼼꼼히 잘 해야 하는데, 거기서도 남겨 먹는다. 그러다 보니 싱크홀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보통 3일 기준 공사를 하루 만에 다 끝낸다. 자연히 야간작업이 많아지는데, 작업등 등 야간작업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갖춰주지 않는다. 하청업체 계약이 보통 1~2년인데, 그래서 ‘오야지(작업반장)’들은 ‘2년만 버티게 때우라’고 말한다.”
J씨는 시방서 기준을 찬찬히 설명하며 “규격대로 공사하면 용접 부위는 절대 터질 수 없다. 100년이 지나도 안 터진다”고 했다.
J씨의 주장과 유사한 얘기는 또 다른 관계자 P씨로부터도 들을 수 있었다. P씨는 지난해까지 지역난방공사의 유지보수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유지보수 점검조가 열감지 센서가 달린 레이저 건으로 (파열) 의심 지역의 온도를 재고 다닌다”면서 “땅에서 스팀이 나온다는 건 이미 터졌다는 건데,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석역 파열의 근본적 원인이 하도급 부조리 때문인 건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용접뿐만 아니라, 지역난방에서 가장 중요한 ‘보온·예열’ 공사하는 사람들도 다 그런 식으로 물량을 받아 일한다. 27년 전 용접공을 찾아내 책임을 물을 거라 하는데, 그걸 ‘찾아야’ 한다는 게 곧 관리부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3청, 4청까지 얼마나 후려쳤으면 인부가 누군지도 모르겠냐.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그런다. 그 상황에서 27년이나 버티게 때웠으면 상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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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는 하청업체 K소장에게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골프 접대 시 J씨와 K소장이 찍은 사진이다. |
J씨는 ‘뻐꾸기’인 K 밑에서 10년간 일했다. 현재 지역난방 경남 ○○지사, 충북 □□지사, 경기 △△지사까지 세 군데에 시공업체 M사가 들어가 있는데, K는 이곳의 ‘소장’ 명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J씨에 따르면 K소장은 세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감사 때만 자리를 지킨다. J씨는 “지난해 말 K가 ○○지사, △△지사에 이어 □□지사도 따냈으니, 자기 밑에서 계속 용접하고 싶으면 잘 보이라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센터장에 따르면, 동일한 업체가 여러 지사의 공사를 딸 순 있지만, 한 소장이 여러 지사를 관할할 수는 없다. 지사마다 1명의 소장이 상주하며 공사를 지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특히 경남, 충북, 경기도는 쉽게 왕래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동시에 이름을 올려선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K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J씨는 이에 “난방공사 감독관들이 이를 묵과하는 과정에서 향응 제공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K가 어느 날 ○○횟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난방공사 감독관들과 골프를 치고 술을 한잔하고 있더라. 나더러 계산만 하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10년간 만원 단위 밥값에서부터, 술값, 노래방, 심지어 해외 골프 접대까지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다. 이번엔 P씨의 말이다.
“명절 때면 감독관들에게 갖다 바쳐야 하니까 현금을 들고 오라고 한다. 큰돈은 아니다. 40만~50만원. 그렇게 용접공, 보온팀, 장비, 포클레인, 덤프트럭, 타워크레인 인부들에게 갹출해 목돈을 만든 다음, ‘떡값’으로 건넨다. 이렇게 날림공사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거다.”
P씨는 “지역난방 감독관은 갑 중의 갑이다. 감독 밑에 일명 ‘새끼 감독’이라고 있는데, 그 사람만 현장에 나와도 인부들은 완전히 90도로 인사한다. 공사 현장 안팎에서 그들 말은 곧 법으로 통한다”고 덧붙였다.
공사판에서는 보편화된 일… 컨소시엄으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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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는 K소장에게 불려나가 골프비와 밥값을 계산해야 했다. 이따금씩 그 자리엔 난방공사 감독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K소장이 (접대하러) 오라고 보낸 주소지와 결제 문자메시지. |
조 센터장은 “그뿐만 아니라 현장 리베이트도 보편화돼 있다. 예를 들어 ‘포클레인 일일대금을 100만원에 해줄 테니 20만원은 내게 달라’는 식”이라고 했다.
“향응 제공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다음에 공사를 주니까. 어마어마한 먹이사슬인 셈이다. 이게 다 발주시스템 때문이다. 흔히 ‘위험의 외주화’라고 한다. 100을 줘야 하는데, 50만 주고 1분이 걸리는 걸 30초 만에 하라고 하면 공사가 제대로 되겠느냐. 그래서 컨소시엄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입찰할 때부터 용접은 누구, 보온은 누구, 장비는 누구, 이런 식으로 팀을 완전히 꾸려서 들어가는 거다. 그럼 가격 다운이 될 수 없고, 정상가에 탄탄한 시공이 가능하다.”
그는 이어 “하도급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다면 난방공사 측은 하청업체 잘못으로 몰아가겠지만, 난방공사는 공사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백석역 사고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김성환 일산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은 “난방공사 직원 6명, 점검 담당 외주업체 직원 3명을 입건한 상태인데, 앞으로 추가 입건자가 나올 수 있다”면서 “아직 피의자 조사 단계로 검찰 송치를 안 한 상태라 수사 결과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불법하도급 정황은 포착하지 못했냐’고 물었다. 김 과장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 초동조치와 관리미흡 문제이기 때문에 입건한 사람들은 ‘점검업체’에 불과하다”면서 “K소장의 불법하도급 사례라면 직접 시공을 담당한 업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중대한 사안인 만큼 그 부분도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9월, 감사원은 이미 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관 관리 문제를 짚어냈다. 열수송관 위험도를 측정하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관리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역난방공사 측은 온수관 전수조사계획을 포함한 ‘온수관 종합안전관리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지난 2월 7일 지역난방공사 관계자에게 대책 마련의 진행상황을 물었다. 공사 관계자는 “거의 대부분 완료된 상태지만 아직 내용 공개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27년 전 용접업체와 당시 사후 관리(비파괴검사) 진행 여부, 열수송관 공사의 하도급 규정, 불법하도급 관리 방침, 백석역 사고의 원인이 하도급 비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한 공식 입장도 요청했다.
공사 관계자는 “질문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해 보내면 각 담당 부서에 전달해 취합해 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약속한 날짜가 되자 “모두 답변이 곤란하다”는 대답만 돌려줬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는 “백석역 사고가 불법 재하청에서 비롯됐다는 데에 대해서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면서 “그러므로 불법 재하청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