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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Our Memory 〈1〉 전남 낙월도에 ‘육영수 여사 추모비’가 있는 사연

1976년 육영수 여사 추모비 세우고 재작년부터 추모제 지내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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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새문안교회 집사가 육 여사에게 상낙월도 야학 학생들의 딱한 사연 전해
⊙ 육 여사, 상낙월도에 중학교 건립 약속·야학 학생들 청와대 초대한 날 문세광 흉탄에 서거
⊙ 박근혜 대통령, 모친 유지 따라 중학교 건축비·시멘트 600포대 지원
⊙ 낙월도 주민들, 육 여사 서거 2주기 맞아 새마을중 교사 앞에 추모비 건립
  전남 영광군 낙월면 상낙월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육 여사 추모비는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을 제외하면 전남 나주시 호혜원과 여수시 소록도 등 주로 나환자촌에 있다. 육 여사가 생전에 소외계층의 고충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크고 작은 지원을 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사회적 편견에 고통받던 나환자들을 보듬는 데 앞장섰다. 육 여사 서거 이후 나환자촌 주민들이 그녀를 기리는 비석을 세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나환자촌이 아닌 상낙월도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육 여사 추모비가 서 있는 것일까.
 
 
  ‘새우의 고장’ 영광군 낙월도
 
옛 새마을중학교 건물 앞에 있는 ‘육영수 여사 추모비’다. 상낙월도 주민들은 새마을중학교 건립을 약속한 육영수 여사를 기리기 위해 1976년 당시 2만원을 들여 이 비석을 세웠다. 사진=장충기
  상낙월도는 서울에서 300km 떨어진 영광군 영광읍에서 다시 차와 배를 번갈아 타고 2시간가량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낙도’다.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 선착장에서 낙월도로 가는 배를 탔다. 낙월도는 상·하낙월도로 나뉜다. 상·하낙월도는 30여 년 전 두 섬을 잇는 다리(총연장 400m)가 생긴 이후 하나의 섬이 됐다.
 
  향화도 선착장에서 낙월도로 가는 배는 ▲오전 7시30분 ▲오전 10시30분 ▲오후 1시30분 등 하루 세 편이다. 오전 10시30분 배를 탔다. 동승자는 총 7명이다. 뱃삯을 받는 사람에 따르면 낙월도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루에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전 며칠 동안의 탑승자 명단을 훑어보니 한 번에 8명이 승선한 건 꽤 많이 탄 축에 속했다. 배를 타고 1시간10분 동안 25km를 이동해 낙월도에 도착했다.
 
  낙월도는 ‘새우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만든 새우젓이 전국 새우젓 시세를 좌우할 때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 낙월도엔 무동력선인 새우잡이 배들이 즐비했다. ‘멍텅구리배’다. 멍텅구리배는 과거 “새우잡이 배에 팔려 갔다”고 말할 때의 그 배다. 이 배엔 엔진, 돛, 노가 없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목선이기 때문에 동력선이 바다로 끌고 나가면 몇 달이든 1년이든 닻을 내린 상태에서 조업만 해야 한다. 여러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1995년에 강제로 폐선시켰다. 1980년대 이후 인구 유출 등으로 쇠퇴하던 낙월도는 멍텅구리배 폐선 이후 활기를 잃었다.
 
  한때 5000여 명에 육박했던 낙월면민 수는 현재 628명에 불과하다. 낙월면의 중심인 상낙월도 주민도 255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하낙월도의 주민들은 남동 사면에 띠(길이 3.5km) 형태로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구릉지가 있고 그 뒤엔 절벽과 모래사장이다. 차를 타면 5분 만에 마을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하낙월도에 가서 정자에 쉬고 있던 주민에게 비석의 위치를 물었다.
 
  — 육영수 여사 추모비 있는 데가 어디예요.
 
  “쩌그 물탱크 시퍼런 놈 여러 개 있재? 거그서 쪼까 더 가면 하수 걸러서 나가는 디가 있당게. 그 옆에 가이당(계단)이 있어. 가이당으로 올라가면 거가 기여.”
 
  — 저기에 왜 추모비가 있는 거예요.
 
  “어디서 왔는가? 청와대에서 조사 나왔어?”
 
  — 그냥 궁금해서요.
 
  “비석 있는 데가 옛날 재건학교 자린디, 박정희 대통령 때 쩌짝에 거시기 해 줬재. 그때는 윗동네에 사람은 많은디, 중학교가 없은게 청와대에 편지 쓰고 그래 갖고, 세멘(시멘트)을 엄청 받아 지었재.”
 
  주민이 일러준 대로 갔다. 언덕 위에 오래된 콘크리트조 건물 한 동이 있었다. 학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작았다.
 
 
  “육영수 여사님, 높으신 은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남 영광군 낙월면 상낙월도엔 이곳 주민들이 1976년에 세운 ‘육영수 여사 추모비’가 있다.
  낙월도 주민들이 ‘재건학교’라고 부르는 학교의 정식 명칭은 ‘새마을중학교’다. 낙월면 상낙월리 산 450-1번지에 자리했던 새마을중학교는 현재 진입로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됐다. 사람 키보다 높은 잡풀과 유채를 문구용 칼로 베면서 올라갔다. 옛 새마을중학교 건물 초입에는 〈내 생명 조국을 위해〉란 비문이 적힌 높이 50cm가량의 비석이 있었다.
 
  폐교 안으로 들어섰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엔 곰팡이가 군데군데 번져 있었고, 천장은 주저앉아 있었다. 흉가와 다를 바 없었다. 실내를 돌아봤지만 이곳이 예전엔 학교였음을 짐작게 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창문을 넘어 실외로 나갔다. 〈높으신 은혜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낙월 새마을중학교 동창회’ 명의의 화환을 발견했다. 그 옆엔 최근에 세운 것처럼 깨끗한 화강암 재질의 〈국모 고 육영수님 추모비〉가 있었다.
 
  기단 앞쪽엔 〈당신의 높으신 꿈이 외로운 섬 기슭에 저 푸른 바다를 향해 나래를 펴고 있읍니다〉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우측면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불모의 고장, 이 먼 섬 가운데 학교를 세우시니 천만년 한이 돼 온 중학교에 못 가는 이 땅의 후예들이 다시는 없게 되었읍니다. 여기에 5천 면민의 뜻을 모아 영원히 기념키로 합니다. 1976년 8월 15일〉
 
  학교에서 내려와 면사무소에 가서 ‘새마을중학교’에 육 여사 추모비가 있는 까닭을 물었다. 낙월면사무소 직원은 “재건학교 일은 조웅현씨가 잘 안다”며 그의 집 위치를 알려줬다.
 
 
  학생들이 새우 끼워 판 돈으로 야학 운영
 
1976년에 문을 연 새마을중학교는 10년 후인 1985년 12월 폐교 이후 방치됐다.
  새마을중학교의 전신은 조웅현(79)씨가 1971년에 만든 야간학교다. 당시 34세였던 조씨는 낙월우체국장인 부친 밑에서 집배원 일을 했는데 주민이 많지 않아 배달할 우편물은 몇 통 되지 않았다. 남는 시간이 많았던 조씨는 섬에 중학교가 없어 국민학교 졸업 후 갯벌과 바다에서 일해야 했던 아이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열었다.
 
  “하낙월도엔 중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여긴 없었어. 거기 있어도 다리가 있어야 건너다닐 것 아니여? 여기서는 부잣집 아들 한두 놈만 영광이나 목포나 광주로 유학 가고, 나머지는 전부 배나 타고 뻘에 나가 일했단 말이여. 막 국민학교 졸업한 것들이 그렇게 시들어 가는 것이 불쌍해서 당시에 보건소로 쓰려고 지어 놓은 건물에다 주워 온 책걸상을 갖다 놓고 야간학교를 만들었지.”
 
  — 야학은 언제 만들었습니까.
 
  “그때가 1971년 11월 28일이여. 남녀 학생 38명을 받아서 시작했지.”
 
  — 그 야간학교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 없었당게. 그냥 ‘재건학교’라고 불렀어.”
 
  — 학생 연령대가 다양했겠는데요.
 
  “국민학교를 일찍 졸업한 놈은 나이를 많이 먹었지. 18살 먹은 주옥심이란 처녀도 있었고.”
 
옛 새마을중학교의 실내 모습이다. 천장은 주저앉았고, 벽면엔 곰팡이와 이끼가 피어 있다.
  — 뭘 가르쳤습니까.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지. 한문도 배우게 하고. ”
 
  — 학교는 무슨 돈으로 운영했습니까.
 
  “일본에 새우를 수출하는 상인이 섬에 왔어.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북새우(붉은새우의 방언)를 기다란 이쑤시개에 끼워 갖고 말려서 주면 한 개에 1원을 주겠다는 거여. 당시 교복 한 벌에 1200원이었으니까 1200개 끼우면 교복 하나 맞추는 거지. 그때부터 이놈의 것이 학교도 아니고 말이여. 학생들이 돈 벌려고 새우만 끼우는 거여. 최영균이란 학생은 어찌나 잘 끼우든가 하루에 800원을 벌어 버렸어. 그 돈으로 애들 명찰 달린 교복 사고, 운영도 하고 그랬지.”
 
  — 말이 학교지, 공부는 뒷전이었네요.
 
  “공부보다도 중학교에 다닌다는 그 자체가 중요했던 거여.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중학생이랍시고 교복 입고 가방 들고 활보하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중학교 뺏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하는 그 한을 풀어 주려고 했던 거여.”
 
 
  박근혜, 모친 추모비 건립 소식 듣고 감사 편지 보내
 
상낙월도 주민들은 1976년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시멘트로 새마을중학교 건물을 지었다. 사진=장충기
  — 야간학교가 새마을중학교로 바뀐 게 언제입니까.
 
  “1974년도인가? 서울 새문안교회 사람들이 섬에 와서 야간학교를 보고 갔어. 그 교회 집사가 육영수 여사 친구였어. 그 사람이 ‘영광 낙월도에 이런 학교가 있다’고 얘기한게 육 여사가 중학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학생들을 청와대로 데리고 오라고 했어. 1974년 8월 15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 육 여사가 문세광이 때문에 돌아가셔서 중학교 세우는 것도 흐지부지됐지.”
 
  — 그럼 새마을중학교는 누가 만들어 준 겁니까.
 
  “1976년도에 근혜 양한테 ‘육 여사가 생전에 중학교 건립을 약속했으니 어머니의 뜻을 이어 달라’고 편지를 두 번 보냈어. 얼마 있은게 도에서 전화가 왔어. 고건 지사가 지방장관 회의 때 청와대에 갔더니 ‘영광 낙월도에 이런 학교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는 거야. 그 뒤에 돈 200만원하고 시멘트 600포대를 내려보내서 그걸로 동네 사람들이 학교를 짓고, 목포교대 출신 3명을 데려다가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지. 아따, 시멘트 그놈은 청와대에서 준 거라고 아끼다가 다 쓰지도 못하고 버렸지.”
 
  — 왜 새마을중학교라고 명명했습니까.
 
  “교장인 내가 그때 새마을지도자였은게.”
 
  — 언제까지 교장을 했습니까.
 
  “폐교될 때까지 했지.”
 
  — 육 여사 추모비는 왜 세웠습니까.
 
  “이 갯벌에서 시들어 가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지어 주신다고 했잖아. 근혜 양이 모친이 약속한 걸 대신 해 줬으니까 육 여사를 기리기 위해서 만든 거지.”
 
  — 추모비가 너무 깨끗하던데, 최근에 급조한 것 아닙니까.
 
  “1976년도에 동네 유지들한테 2만원을 거둬서 세운 거여. 그때 추모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이 ‘고맙다’고 편지도 보냈어.”
 
  — 그 편지 갖고 있습니까.
 
  “편지 넣어 놨던 옷을 우리 마누라가 그냥 빨아 버려서 없어졌어. 내가 엄청 혼냈지.”
 
 
  영광군, 국비 6억 들여 ‘주민쉼터’ 만들 예정
 
새마을중학교 1회 졸업생들은 2014년부터 모교를 찾아 육영수 여사 추모 행사를 갖는다. 사진=장충기
  육 여사의 건립 약속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원에 따라 1976년 개교한 새마을중학교는 1985년 12월 문을 닫았다. 당시 낙월국민학교(현 염산초등학교 낙월분교) 2층에 ‘낙월중학교’가 신설됐기 때문이다. 폐교 후 새마을중학교 건물은 물론 육 여사 추모비는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새마을중학교 1회 졸업생 장충기(53)씨는 동창들과 함께 2014년부터 매해 한 차례 모교를 찾아 육 여사 추모제를 지낸다. 국립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장씨는 “졸업생들이 고향을 다 떠난 뒤 그동안 먹고살기 어려워 못 챙겼다”며 “지금이라도 육 여사께서 낙도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어 주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 행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광군은 국비 6억원을 받아 옛 새마을중학교 자리에 143m²(43평) 규모의 ‘주민쉼터’를 신축할 계획이다. 영광군 해양수산과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2012년부터 추진됐고 지난해 최종 계획이 확정됐다. 새마을중학교 부지가 사유지라서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올해 하반기에 착공할 예정이다.
 
  전 새마을중학교 교장 조웅현씨는 “낙도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학교를 세워 준 육영수 여사와 박근혜 대통령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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