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檢·警·軍이 한 달 내내 쫓았는데 죽었다니 황당”(20대 대학생)
⊙ “침묵을 강요당한 낮은 계층이 기득권을 불신하는 현상”
⊙ “음모론자가 신뢰하는 사람 통해 간접 설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 “침묵을 강요당한 낮은 계층이 기득권을 불신하는 현상”
⊙ “음모론자가 신뢰하는 사람 통해 간접 설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 지난 2014년 7월 25일,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부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유병언이 밀항해 해외에 있다.’
요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병언 괴담’ 중 하나다.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은 지난 7월 25일,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100% 유병언”이라고 밝혔다. 국과수는 변사체의 DNA, 치아 분석 등을 통해 이 시신이 유병언 전(前) 세모그룹 회장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에 박범계(朴範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 감식에 입회한 경찰 관계자가 그 시신은 유병언이 절대 아니라고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박지원(朴智元)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과수 발표는 믿지만 그 시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과수 발표를 못 믿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박 의원이 근거로 내민 것은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 근처에 사는 주민의 녹취록이다. 박 의원이 근거로 동원한 주민 증언은 그 후 해당 주민이 증언 자체를 뒤집는 바람에 해프닝이 됐다.
국과수의 DNA·치아 분석 등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경찰 한 명·순천 주민의 말 등 ‘증언’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황당한 얘기지만 사회에서 이 같은 비과학을 믿는 현상이 보인다.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하자”(30대 직장인)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과수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7.7%, ‘국과수의 발표를 신뢰한다’는 24.3%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30대에서 ‘신뢰하지 못한다’가 77.8%, 20대(75.1%), 40대(72%) 순이었다. 50대의 경우 ‘신뢰한다’가 39.8%, 60대는 42.2%로 나타났다. 과학적 근거를 내민 국과수의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A와 B씨는 ‘국과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던 30대,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생애 세 번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A와 B씨는 고(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정동영(鄭東泳)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文在寅) 제18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각각 찍었다. 이들과의 대화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대들의 공통적인 얘기였다. 기자가 진행하는 형식으로 그대로 써본다.
A씨: 봐요, 벌써 또 쉬쉬하고 조용히 하잖아요. 의혹이 생기면 풀어줘야 하는데 조용한 걸 보니 수상하죠. 그 시체가 유병언이라는 말만 해놓고는 끝맺는 걸 보면 또 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B씨: 의아한 게 어디 한두 개예요? 시신이랑 유병언 키도 안 맞는다고 하지, 미국에 산다는 유병언 동생이 6개월 전에 죽었다는 얘기도 떠돌지,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걸 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진행: 시신에 대한 의혹이 많은데 공신력 있는 기관이 더 이상 이 얘기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뭔가 조작됐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가요?
A씨: 처음에는 시신이 부패해서 지문 확인이 안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지문으로 확인을 했다고 해요. 1차랑 2차랑 말이 다르죠. 시신의 키가 작은 것이 목뼈 3개가 빠져서라는데 그 목뼈는 주민이 가져가서 없어졌대요. 주민이 목뼈를 왜 가져가나요. 처음에는 시신의 목과 몸통이 분리된 상태에서 발견됐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타살이라고 생각했죠. 자살하면서 자기가 목 긋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나중에는 시신이 자연적으로 부패해서 목과 몸통이 분리됐다고 했잖아요. 대체 몇 번이나 말을 바꾼 건가요. 분명히 뭔가가 있으니까 자꾸 말을 바꿨다고 생각을 합니다.
B씨: 시신이 18일 만에 그렇게 부패할 수 있는 거예요? 내 상식하고는 도무지 맞지가 않아서 이상해요.
진행: 지문 확인 얘기가 1차와 2차가 다른 건 처음에는 부패가 덜한 왼손 지문을 채취했는데 안 나왔고, 이후 부패로 흐물흐물했던 피부가 건조되면서 오른쪽 손가락 지문을 채취해서 밝혀졌다고 했어요. 이 부분은 설명이 됐나요?
A씨: 부패가 덜 된 손보다 부패가 다 된 다음에 건조된 데서 지문이 잘 나오나요? 그런 얘기는 또 처음 들어보네요.
B씨: 그건 뭐 그럴 수 있나 보죠.
진행: 유병언과 키가 달랐던 건 목뼈 7개 중 3개가 빠진 상태에서 잰 결과이고, 동일한 시신을 대퇴골 길이를 통해 키를 산출한 결과는 유병언과 같았다고 발표했어요. 설명이 됐나요?
A씨: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그 산출법으로 키를 재서 유병언이랑 똑같다고 했으면 됐잖아요. 왜 목뼈가 빠진 상태의 키를 얘기했다가 나중에 또 다른 소리를 하느냐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꾸 유병언이랑 키가 안 맞는다고 의혹을 제기하니까 그제야 무슨 다른 기법으로 했다면서 키가 똑같다고 한 거잖아요. 정답을 갖다놓고 거기에 짜맞추기를 한 거죠.
B씨: 저도요. 그 키 재는 기법이 이번에 유병언 사태 때문에 처음 나온 게 아닐 거잖아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걸로 하지, 왜 답이 나온 다음에 역산으로 짜맞추기를 하나요. 뭔가가 있으니까 그런 거죠.
A씨: 다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이번에 애들(세월호 생존자들) 얘기 들어보세요. 애들이 해경이 왔는데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해경이 언론에 한 얘기를 보면 자기들은 할 만큼 했다잖아요. 아니 살아 돌아온 애들이 해경이 아무것도 안 했다고 증언하는데 해경은 할 만큼 했다고 하면 누구 말을 믿겠습니까.
B씨: 눈에 빤히 보이는 것부터 거짓말을 하는데 시신 두고 거짓말하는 건 얼마나 쉽겠어요.
“어떤 과학도 이들의 잘못된 믿음 깨기 어려워”
진행: 해경이 ‘할 만큼 했다’는 얘기가 학생들을 구하려 배에 올라타서 로프를 던졌다거나 창문을 깼다거나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만.
A씨: 할 만큼 했다는 거에 그런 거 다 포함된 거 아닌가요? 뭔가가 구리니까 그러는 게 해경이나 국과수나 똑같아요.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잖아요. 그 시신은 세월호 터지기 전부터 매실밭에 있었던 거라고요. 하긴 적어도 몇 달은 돼야 그렇게 부패하지, 며칠 만에 그렇게 되기야 하겠어요.
진행: 국과수는 시신이 부패한 후에 동물들이 훼손했을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럴 경우 18일 만에 빠르게 부패할 수 있다는 거죠.
A씨: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동물들이 시신을 훼손했다는 증거는요? 이빨 자국이나 그런 거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동네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어떤 식으로 훼손했는지 말이 없잖아요.
B씨: 아니 그런 걸 못 하면 외국의 다른 사례나, 시신이 비슷한 조건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그나마 납득이 갈 텐데 우리는 신뢰도 있는 기관이니까 우리 발표를 믿으라고 하면 우리가 무조건 믿어야 하나요?
진행: 만약 외국의 사례를 2~3개 얘기하면 여러분은 10개는 되어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기관이 와서 검증하면 시신이 유병언이라고 믿을 건가요?
B씨: 이쯤 되면 누가 나와서 얘기해도 못 믿을 것 같긴 해요.
A씨: 차라리 실험을 해요. 동물 살이나 사람 살이나 똑같을 거 아닙니까. 기후조건하고 똑같이 맞춰놓고, 이렇게 냄새 났을 때 동물이 오는지 안 오는지, 얼마나 훼손되는지 24시간 카메라로 촬영해 보자는 거예요.
B씨: 그거 좋네. 그래서 확인되면 그나마 지금보다는 더 믿을 거 같아요. 시체가 썩으면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마을 주민들이 못 맡을 정도인지 그런 것도 한 번 실험해 보고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확한, 보다 과학적인, 보다 공신력 있는 그 누구 또는 기관이 나서더라도 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상민(黃相旻)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케이스”라고 분석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겠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 시신은 유병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과학이 그 시신을 유병언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유병언일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들에게는 정부든, 국과수든, 검찰이든 전혀 공신력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병언 시신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은 시신의 형태를 시시콜콜히 밝힌 것조차 코미디라고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자세하게 얘기해 줬느냐’는 식의 사고다. 뭔가 조작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시콜콜히 밝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과수 발표보다 표창원 말 믿고 싶어져”(20대 대학생)
20대의 대학생 C씨 역시 국과수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세월호 사태 후에 유병언을 잡는다고 말하면서 못 잡은 시간이 정말 길었습니다. 찾는 과정을 보니까 답답했죠. 검찰하고 경찰이 공조를 하지 않는다고 하고, 금수원에 들어갔는데 이미 도주한 뒤였다고 하고요. 주변 검문하고, 차량 다 뒤집고,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심지어는 군까지 동원됐는데 사람 한 명을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참 황당했습니다. 동네 반상회를 할 정도로 한 나라가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사람 하나를 못 잡아요. 그런데 갑자기 찾았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것도 벌써 오래전에 죽은 시신이 사실은 유병언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쉽게 잡히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니, 여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과수 발표는 상당히 구체적인데요.
“그걸 구체적이라고 볼 수 있나요? 국과수가 발표한 것보다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는 의혹이 훨씬 많아요. 국과수 발표가 충분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인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의도적으로 안 믿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어떻게 해요. 믿어지지가 않는걸요. 검찰이나 경찰이나 국과수나 저한테는 다 비슷해요. 우유부단하고 무능하고, 뭐 하나 밝히는 데 수십 일이 걸리고, 그런 집단이에요. ‘시신이 유병언이구나’ 믿은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표창원이 유병언 맞다고 했을 때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말 때문에요?
“네. 정부와 만날 각을 세우는 표창원이 저 시신은 유병언이 맞다고 하니까 신뢰가 가더라고요. 솔직히 국과수보다는 표창원 얘기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이 대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점이 이번 국과수 결과를 못 받아들이는 계기로 보인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유병언 사건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범인을 빠르게 검거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타당하고 정확했다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을 겁니다. 국과수 조사에 불신하는 이유는 검거가 너무 더뎠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빠르게 흘러가면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자신들의 생각을 토대로 상황을 추론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유병언 검거가 늦어지면서 각자 자기 생각을 한 겁니다. ‘유병언이 밀항했다’ ‘서울의 한복판에 숨어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유병언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사실은 유병언이었다고 국과수가 밝힌 겁니다. 아무리 국과수라고 해도 그 발표가 사람들이 그간 쌓아온 추론과 너무 다르니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자신의 추론과 다르다고 객관적 데이터를 무시할 수 있나요.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진 거죠. 세월호 참사의 처리 과정을 보면서 검찰, 경찰, 정부 등 공공기관의 처신을 마땅찮아 하는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세월호 이전부터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였죠.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면 정부가 타당한 답을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답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여러 번 반복돼 이제는 과학까지 믿지 못하게 된 겁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것이 이번 국과수 조사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병언의 시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그간 정부가 보여준 행태에 대한 불신을 국과수로 투영시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의사들조차 안 믿는다”(30대 전문의)
이번 유병언 시신 확인은 서중석 국과수 원장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 원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고, 그만큼 이 사안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과수의 발표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국민의 반응은 ‘신뢰할 수 없다’였다.
서 원장은 지난 8월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대학 교수들까지 참여해 과학적으로 증명했는데 뭘 더 증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국과수가 분석한 것은 믿지 않고 주민 얘기나 비전문가들의 의혹 제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국과수를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보였다.
국과수의 발표는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또 이후에 이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했었다. 법의학자들은 대체로 국과수의 이번 조치는 타당했다는 편이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과학자로서 봤을 때 국과수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약물 분석 등 설명 역시 고등학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회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의우 건국대 법의학과 교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사건 현장에 출입통제선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도록 천막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랬다면 이번처럼 시신이 반듯하게 누웠다, 옷이 어떻게 됐다는 등 괴담을 만들어낼 빌미가 줄었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의 얘기와 달리 일반인들은 믿지 못한다. 30대 후반의 D씨는 “나를 포함해 주위 동료들 중에서 그 시신이 유병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D씨가 대학병원 교수를 지낸 전문의인지라 그의 반응이 새삼 놀라웠다. 그의 얘기다.
“국과수 얘기니까 믿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니까, 머리로는 믿자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겁니다. 국과수가 설마 사기야 쳤겠습니까?”
—과학으로 접근했는데 마음으로 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까.
“18일 만에 백골화됐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똑바로 누워 있는 점, 주위에 풀이 깎여 있는 점 뭐 어느 것 하나 이해가 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서 봤나요.
“시신 찾은 곳 사진은 인터넷에 다 떠 있잖아요. 사람이 죽을 때 옆으로 조금도 돌아눕지 않고 똑바로 누운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니까 더 믿기 어렵던데요.”
—18일 만에 시신이 부패할 수 있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일 수 있다 등등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다한 거 아닙니까?
“부패할 수 있다는 얘기는 반대로 뒤집어보면 부패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체온증 사망이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고요. DNA 분석을 한 것이야 맞겠지만, 의사 상식으로 봤을 때도 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가능성들을 전부 종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 믿기가 어렵죠.”
—이해 가지 않는 것과 현재 밝혀진 팩트는 다른데요.
“DNA 자체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하고 있습니까? 저는 국과수에서 조사한 DNA나 치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과수 역시 당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부에서 국과수에 조작을 시키지야 않았겠지만, 정부가 아예 처음부터 그려놓은 그림에 국과수가 이용됐을 수 있다는 거죠.”
“국과수 직원 중 일부 감금당해 있을 수도”
40대 초반의 치과의사 E씨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요즘은 점차 믿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씨 역시 종종 국과수나 경찰 등의 기관에서 과거 환자에 대한 치과 기록을 보내달라는 협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처음에 국과수가 발표를 했을 때는 ‘이 사람들이 누구를 바보로 아나’ 싶었습니다. 국과수에서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덮으려고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유병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의 한 실험에서는 시신이 보름 만에 완전히 부패했다고도 하고.”
—국과수의 발표보다는 주위 지인들의 얘기가 더 신빙성 있게 들리던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국과수는 어떤 조직의 논리로 인해 사안을 왜곡할 수 있지만, 지인들은 그럴 이유가 없잖습니까. 지인들이 어디서 글을 봤는데 맞을 수 있겠다는 얘기들을 하면 거기에 귀가 쫑긋하는 거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유병언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병언 전 회장을 진료했던 치과의사가 시신에서 치아 확인을 했는데요.
“사람들이 똑같은 치아를 가질 확률은 0%입니다. 유병언 치아 때문에 국과수 발표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의문이 듭니다. 치과의사가 정말 유병언을 치료한 의사가 맞습니까? 치과의사를 매수했거나 할 가능성은 혹시 없을까요?”
‘유병언 시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작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늘날 이 사회가 ‘괴담 천국’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광우병 괴담’ ‘FTA 괴담’ ‘천안함 괴담’에 이어 또 하나의 ‘괴담’이 늘어났다. 30대 직장인 A와 B씨는 시신을 떠나,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인 대균씨가 검거된 날짜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고 있다. 다시 그들의 대화다.
A씨: 유병언이 죽었다는 다음날 유대균을 잡은 것도 이상합니다. 빈집에서 가스랑 수도가 계속 사용돼 의심했다는데 그럼 그 전에 잡지 왜 하필 시신이 발견된 다음날 잡나요? 유병언 죽은 걸로 포장한 다음에 잡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 그 CCTV 봤거든요. 경찰이 유대균 체포하면서 땀 닦아주고, 그 경호원이라는 여자랑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요. 그 영상 보면 경찰이랑 유병언이 짰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게 아니라면 범인 잡으러 간 경찰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B씨: 입맞췄으니 그럴 수 있는 거지.
진행: 그 영상을 어디서 봤죠?
A씨: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서로 다 공유했어요. 그 영상(실제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는 ‘경찰 유대균 땀’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수많은 블로거가 이 동영상을 공유한 모습이 보인다)을 보면서 유병언 시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처음에 지문 확인 불가라더니 하고, 이빨 없다더니 금니 있다고 하고, 뭐 이건 말이 하도 바뀌니까.
진행: 그 부분은 충분히 국과수에서 설명을 한 것 같은데요.
A씨: 국과수 사람들이 짠 거죠.
진행: 국과수 직원 전원이 입을 맞췄다는 건가요?
A씨: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국과수도 조직인데, 원래 조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B씨: 국과수 직원 전원에게 엄청난 제안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협박이 있었을 수도 있죠.
A씨: 국과수 직원들이 전원 어디 있는지 기자님은 알아요? 지금 회사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국과수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금시켜 놨을 수도 있고, 이 나라는 그런 나라야.
“괴담의 근간은 국가에 대한 불신”
이들의 대화는 처음에는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에서 ‘국과수 직원 일부가 감금돼 있을 것’이라는 둥 흡사 영화 시나리오처럼 전개됐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사고 과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국과수를 못 믿는 데에는 괴담이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의 얘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 소문이 미담으로 확산되는 것이 20%라면, 나쁜 소문이 확산되는 것은 80%입니다. 기본적으로 부정적, 나쁜 것을 선호합니다.”
—왜 그런가요.
“부정적인 것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괴담의 생각 근저에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신에 기초한 시나리오가 그럴듯한 지식을 가진 사람의 입을 빌려서 만들어지고, 또 얘기가 구성되고 보태지면서 괴담이 됩니다.”
—실제로는 사실이 아닌 것들이죠.
“이들이 선택한 가설은 자기 성향에 맞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뽑아서 시나리오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게 빠르게 확산되면서 괴담이 돼서 사회에 퍼지는 겁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모든 사건에는 루머가 생깁니다. 똑 떨어지는 사건에서 루머가 생기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불확실하고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루머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거 정부에서 내놓은 발표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집히는 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루머에 대한 의존도는 커집니다.”
전문가들은 답답하다.
박의우 건국대 법의학과 교수는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때 ‘가짜 시체를 만들어낼 수 있나?’라고 반문했던 적이 있다. 중국에서 가짜 계란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유병언 시신이 가짜일 가능성은 0%인데 과학을 믿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국과수니, 과학이니, 검찰이니, 경찰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전문가가 주는 공신력이 없다.
20대 대학생은 “국과수 발표보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표창원이 유병언이 맞다고 하니 믿고 싶어졌다”고 했고, 40대 치과의사는 “국과수 발표는 못 믿었지만 지인으로부터 맞는 것 같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니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힘을 잃은 것은 IMF 이후로 보입니다. 기존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권위도 바뀝니다. 우리 사회에 IMF가 갑자기 왔을 때,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스스로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나빴는지,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입니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그들 스스로가 내려놓은 계기가 된 거죠. 이때부터 시작된 권위의 몰락이 계속 가속화됐습니다.”
“기득권의 권력 재생산 방식의 문제일 수도”
문제는 단순히 20~40대의 70% 이상이 국과수의 조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유병언 괴담’으로 인해 국가에 대한 신뢰가 또 한 번 타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30대 직장인 A와 B씨는 “국가가 유병언을 비호해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행: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면 지금 그는 어디에 있을까요?
B씨: 해외 도주했겠죠. 밀항을 했든, 보내줬던지요.
진행: 누가, 왜 보내주나요?
A씨: 정부에서 켕기는 게 많으니까 몰래 해외로 빼돌려준 것 아닐까요? 유병언이 살아서 입을 벌리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니까 숨기는 거겠죠. 그 사람이 돈이 그렇게 많다면서요. 그 돈으로 정치인들이며, 뒷돈 대주고 했을 테니까 그게 들통나면 나라가 더 힘들어질 테니까 유병언을 빼돌리지 않았겠어요?
B씨: 앞으로 다른 신분으로 잘살 거 같은데요.
진행: 주위에서도 그렇게 믿고 있나요?
A씨: 다 그렇게 생각하죠. 해외에 나가서 성형수술하고, 진짜 영화처럼 페이스오프해서 잘살 거라고요.
진행: 정부가 정말 그렇게 대대적인 조작을 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A씨: 이 정부는 국민을 가지고 노는 정부니까, 뭔들 못하겠나요.
‘유병언이 살아 있다’는 이들의 절대적 믿음은 사회에 괴담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국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왕조시대나 보수가 강한 시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쉬웠지만, IMF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개개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위성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얘기다.
“국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어떤 사안에 대해서 무조건적 믿음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무조건 믿으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나둘씩 하면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낮은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 거짓말일 거야’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드는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득권이 이런 방식으로 유지돼 왔는데, 이제는 그 기득권의 권력 재생산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냉소적입니다. 기득권이 만들어낸 불신의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과수 발표를 믿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했던 20~40대의 전원은 ‘개인적인 주관 때문에 과학을 믿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 중 누구도 국과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이 ‘혹시 내 안의 잘못은 아닐까’라고 반문하는 이는 없었다.
30대 직장인 A씨는 “만일 유병언 전 회장이 검찰에 잡혔더라면 사형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20년 형량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B씨는 “세월호에서 애들이 불쌍하게 죽어간 걸 생각하면 사형에 준하는 엄벌을 내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유병언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세월호 불법 증축을 지시한 혐의, 계열사로부터의 공금 횡령, 배임 등 모든 혐의가 인정된다고 할 때 내려지는 법적(法的) 형량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찌 보면 이들이 말하는 ‘심정적 형량’에 턱없이 모자란 형량이 내려질 수 있다. 이들에게 ‘만일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가령 5~10년의 형이 내려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들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돈이 많으니까 뒤 봐주는 사람이 법원에 압력을 가해서 형량을 줄여줬겠지요.”
“음모론 생길 시간 주지 않도록 신속 대처해야”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는 “루머의 확산은 어느 때나 있을 수 있지만, 루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루머에 귀기울이는 사회일수록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그들이 루머에 혹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좇는 사람들의 문제라기보다 루머에 기대도록 이 사회에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루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까요.
“과학의 결과보다 루머에 기대하는 심리는 인간관계와 똑같습니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 신뢰는 한순간에 깨지지만, 그 신뢰를 깨버린 사람이 다음번에 잘했다고 해서 곧장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앞으로 어떤 불분명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건이 생기면 정부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하고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 반복되면 점차 불신의 사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한 번 깨진 신뢰를 원상회복하는 데 굉장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얘기다.
“이들에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가장 단기간에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신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사실이 맞다고 인정토록 하는 겁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지만, 이들이 신뢰하는 그 누군가가 ‘맞다’고 말해서 이들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가 회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는 ‘대처의 신속성’을 강조했다.
“사회에 만연한 음모론, 괴담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빠른 대처를 해야 합니다. 보안상 밝힐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궁금증을 최대한 빨리 풀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의 간극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병언 괴담’ 중 하나다.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은 지난 7월 25일,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100% 유병언”이라고 밝혔다. 국과수는 변사체의 DNA, 치아 분석 등을 통해 이 시신이 유병언 전(前) 세모그룹 회장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에 박범계(朴範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 감식에 입회한 경찰 관계자가 그 시신은 유병언이 절대 아니라고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박지원(朴智元)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과수 발표는 믿지만 그 시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과수 발표를 못 믿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박 의원이 근거로 내민 것은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 근처에 사는 주민의 녹취록이다. 박 의원이 근거로 동원한 주민 증언은 그 후 해당 주민이 증언 자체를 뒤집는 바람에 해프닝이 됐다.
국과수의 DNA·치아 분석 등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경찰 한 명·순천 주민의 말 등 ‘증언’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황당한 얘기지만 사회에서 이 같은 비과학을 믿는 현상이 보인다.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하자”(30대 직장인)
 |
| 경기 안성 금수원 인근 국도에서 경찰이 차량 탑승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
A와 B씨는 ‘국과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던 30대,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생애 세 번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A와 B씨는 고(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정동영(鄭東泳)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文在寅) 제18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각각 찍었다. 이들과의 대화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대들의 공통적인 얘기였다. 기자가 진행하는 형식으로 그대로 써본다.
A씨: 봐요, 벌써 또 쉬쉬하고 조용히 하잖아요. 의혹이 생기면 풀어줘야 하는데 조용한 걸 보니 수상하죠. 그 시체가 유병언이라는 말만 해놓고는 끝맺는 걸 보면 또 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B씨: 의아한 게 어디 한두 개예요? 시신이랑 유병언 키도 안 맞는다고 하지, 미국에 산다는 유병언 동생이 6개월 전에 죽었다는 얘기도 떠돌지,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걸 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진행: 시신에 대한 의혹이 많은데 공신력 있는 기관이 더 이상 이 얘기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뭔가 조작됐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가요?
A씨: 처음에는 시신이 부패해서 지문 확인이 안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지문으로 확인을 했다고 해요. 1차랑 2차랑 말이 다르죠. 시신의 키가 작은 것이 목뼈 3개가 빠져서라는데 그 목뼈는 주민이 가져가서 없어졌대요. 주민이 목뼈를 왜 가져가나요. 처음에는 시신의 목과 몸통이 분리된 상태에서 발견됐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타살이라고 생각했죠. 자살하면서 자기가 목 긋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나중에는 시신이 자연적으로 부패해서 목과 몸통이 분리됐다고 했잖아요. 대체 몇 번이나 말을 바꾼 건가요. 분명히 뭔가가 있으니까 자꾸 말을 바꿨다고 생각을 합니다.
B씨: 시신이 18일 만에 그렇게 부패할 수 있는 거예요? 내 상식하고는 도무지 맞지가 않아서 이상해요.
진행: 지문 확인 얘기가 1차와 2차가 다른 건 처음에는 부패가 덜한 왼손 지문을 채취했는데 안 나왔고, 이후 부패로 흐물흐물했던 피부가 건조되면서 오른쪽 손가락 지문을 채취해서 밝혀졌다고 했어요. 이 부분은 설명이 됐나요?
A씨: 부패가 덜 된 손보다 부패가 다 된 다음에 건조된 데서 지문이 잘 나오나요? 그런 얘기는 또 처음 들어보네요.
B씨: 그건 뭐 그럴 수 있나 보죠.
진행: 유병언과 키가 달랐던 건 목뼈 7개 중 3개가 빠진 상태에서 잰 결과이고, 동일한 시신을 대퇴골 길이를 통해 키를 산출한 결과는 유병언과 같았다고 발표했어요. 설명이 됐나요?
A씨: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그 산출법으로 키를 재서 유병언이랑 똑같다고 했으면 됐잖아요. 왜 목뼈가 빠진 상태의 키를 얘기했다가 나중에 또 다른 소리를 하느냐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꾸 유병언이랑 키가 안 맞는다고 의혹을 제기하니까 그제야 무슨 다른 기법으로 했다면서 키가 똑같다고 한 거잖아요. 정답을 갖다놓고 거기에 짜맞추기를 한 거죠.
B씨: 저도요. 그 키 재는 기법이 이번에 유병언 사태 때문에 처음 나온 게 아닐 거잖아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걸로 하지, 왜 답이 나온 다음에 역산으로 짜맞추기를 하나요. 뭔가가 있으니까 그런 거죠.
A씨: 다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이번에 애들(세월호 생존자들) 얘기 들어보세요. 애들이 해경이 왔는데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해경이 언론에 한 얘기를 보면 자기들은 할 만큼 했다잖아요. 아니 살아 돌아온 애들이 해경이 아무것도 안 했다고 증언하는데 해경은 할 만큼 했다고 하면 누구 말을 믿겠습니까.
B씨: 눈에 빤히 보이는 것부터 거짓말을 하는데 시신 두고 거짓말하는 건 얼마나 쉽겠어요.
“어떤 과학도 이들의 잘못된 믿음 깨기 어려워”
 |
|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A씨: 할 만큼 했다는 거에 그런 거 다 포함된 거 아닌가요? 뭔가가 구리니까 그러는 게 해경이나 국과수나 똑같아요.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잖아요. 그 시신은 세월호 터지기 전부터 매실밭에 있었던 거라고요. 하긴 적어도 몇 달은 돼야 그렇게 부패하지, 며칠 만에 그렇게 되기야 하겠어요.
진행: 국과수는 시신이 부패한 후에 동물들이 훼손했을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럴 경우 18일 만에 빠르게 부패할 수 있다는 거죠.
A씨: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동물들이 시신을 훼손했다는 증거는요? 이빨 자국이나 그런 거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동네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어떤 식으로 훼손했는지 말이 없잖아요.
B씨: 아니 그런 걸 못 하면 외국의 다른 사례나, 시신이 비슷한 조건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그나마 납득이 갈 텐데 우리는 신뢰도 있는 기관이니까 우리 발표를 믿으라고 하면 우리가 무조건 믿어야 하나요?
진행: 만약 외국의 사례를 2~3개 얘기하면 여러분은 10개는 되어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기관이 와서 검증하면 시신이 유병언이라고 믿을 건가요?
B씨: 이쯤 되면 누가 나와서 얘기해도 못 믿을 것 같긴 해요.
A씨: 차라리 실험을 해요. 동물 살이나 사람 살이나 똑같을 거 아닙니까. 기후조건하고 똑같이 맞춰놓고, 이렇게 냄새 났을 때 동물이 오는지 안 오는지, 얼마나 훼손되는지 24시간 카메라로 촬영해 보자는 거예요.
B씨: 그거 좋네. 그래서 확인되면 그나마 지금보다는 더 믿을 거 같아요. 시체가 썩으면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마을 주민들이 못 맡을 정도인지 그런 것도 한 번 실험해 보고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확한, 보다 과학적인, 보다 공신력 있는 그 누구 또는 기관이 나서더라도 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상민(黃相旻)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케이스”라고 분석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겠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 시신은 유병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과학이 그 시신을 유병언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유병언일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들에게는 정부든, 국과수든, 검찰이든 전혀 공신력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병언 시신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은 시신의 형태를 시시콜콜히 밝힌 것조차 코미디라고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자세하게 얘기해 줬느냐’는 식의 사고다. 뭔가 조작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시콜콜히 밝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과수 발표보다 표창원 말 믿고 싶어져”(20대 대학생)
 |
| 전남 여수해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밀항에 대비해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모습. |
“세월호 사태 후에 유병언을 잡는다고 말하면서 못 잡은 시간이 정말 길었습니다. 찾는 과정을 보니까 답답했죠. 검찰하고 경찰이 공조를 하지 않는다고 하고, 금수원에 들어갔는데 이미 도주한 뒤였다고 하고요. 주변 검문하고, 차량 다 뒤집고,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심지어는 군까지 동원됐는데 사람 한 명을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참 황당했습니다. 동네 반상회를 할 정도로 한 나라가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사람 하나를 못 잡아요. 그런데 갑자기 찾았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것도 벌써 오래전에 죽은 시신이 사실은 유병언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쉽게 잡히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니, 여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과수 발표는 상당히 구체적인데요.
“그걸 구체적이라고 볼 수 있나요? 국과수가 발표한 것보다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는 의혹이 훨씬 많아요. 국과수 발표가 충분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인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의도적으로 안 믿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어떻게 해요. 믿어지지가 않는걸요. 검찰이나 경찰이나 국과수나 저한테는 다 비슷해요. 우유부단하고 무능하고, 뭐 하나 밝히는 데 수십 일이 걸리고, 그런 집단이에요. ‘시신이 유병언이구나’ 믿은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표창원이 유병언 맞다고 했을 때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말 때문에요?
“네. 정부와 만날 각을 세우는 표창원이 저 시신은 유병언이 맞다고 하니까 신뢰가 가더라고요. 솔직히 국과수보다는 표창원 얘기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이 대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점이 이번 국과수 결과를 못 받아들이는 계기로 보인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유병언 사건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범인을 빠르게 검거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타당하고 정확했다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을 겁니다. 국과수 조사에 불신하는 이유는 검거가 너무 더뎠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빠르게 흘러가면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자신들의 생각을 토대로 상황을 추론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유병언 검거가 늦어지면서 각자 자기 생각을 한 겁니다. ‘유병언이 밀항했다’ ‘서울의 한복판에 숨어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유병언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사실은 유병언이었다고 국과수가 밝힌 겁니다. 아무리 국과수라고 해도 그 발표가 사람들이 그간 쌓아온 추론과 너무 다르니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자신의 추론과 다르다고 객관적 데이터를 무시할 수 있나요.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진 거죠. 세월호 참사의 처리 과정을 보면서 검찰, 경찰, 정부 등 공공기관의 처신을 마땅찮아 하는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세월호 이전부터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였죠.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면 정부가 타당한 답을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답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여러 번 반복돼 이제는 과학까지 믿지 못하게 된 겁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것이 이번 국과수 조사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병언의 시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그간 정부가 보여준 행태에 대한 불신을 국과수로 투영시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의사들조차 안 믿는다”(30대 전문의)
 |
|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 |
서 원장은 지난 8월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대학 교수들까지 참여해 과학적으로 증명했는데 뭘 더 증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국과수가 분석한 것은 믿지 않고 주민 얘기나 비전문가들의 의혹 제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국과수를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보였다.
국과수의 발표는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또 이후에 이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했었다. 법의학자들은 대체로 국과수의 이번 조치는 타당했다는 편이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과학자로서 봤을 때 국과수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약물 분석 등 설명 역시 고등학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회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의우 건국대 법의학과 교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사건 현장에 출입통제선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도록 천막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랬다면 이번처럼 시신이 반듯하게 누웠다, 옷이 어떻게 됐다는 등 괴담을 만들어낼 빌미가 줄었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의 얘기와 달리 일반인들은 믿지 못한다. 30대 후반의 D씨는 “나를 포함해 주위 동료들 중에서 그 시신이 유병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D씨가 대학병원 교수를 지낸 전문의인지라 그의 반응이 새삼 놀라웠다. 그의 얘기다.
“국과수 얘기니까 믿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니까, 머리로는 믿자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겁니다. 국과수가 설마 사기야 쳤겠습니까?”
 |
| 박의우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과 교수. |
“18일 만에 백골화됐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똑바로 누워 있는 점, 주위에 풀이 깎여 있는 점 뭐 어느 것 하나 이해가 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서 봤나요.
“시신 찾은 곳 사진은 인터넷에 다 떠 있잖아요. 사람이 죽을 때 옆으로 조금도 돌아눕지 않고 똑바로 누운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니까 더 믿기 어렵던데요.”
—18일 만에 시신이 부패할 수 있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일 수 있다 등등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다한 거 아닙니까?
“부패할 수 있다는 얘기는 반대로 뒤집어보면 부패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체온증 사망이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고요. DNA 분석을 한 것이야 맞겠지만, 의사 상식으로 봤을 때도 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가능성들을 전부 종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 믿기가 어렵죠.”
—이해 가지 않는 것과 현재 밝혀진 팩트는 다른데요.
“DNA 자체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하고 있습니까? 저는 국과수에서 조사한 DNA나 치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과수 역시 당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부에서 국과수에 조작을 시키지야 않았겠지만, 정부가 아예 처음부터 그려놓은 그림에 국과수가 이용됐을 수 있다는 거죠.”
“국과수 직원 중 일부 감금당해 있을 수도”
 |
| 2008년 한 방송사의 과장보도에서 비롯된 광우병사태는 석 달 이상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
“처음에 국과수가 발표를 했을 때는 ‘이 사람들이 누구를 바보로 아나’ 싶었습니다. 국과수에서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덮으려고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유병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의 한 실험에서는 시신이 보름 만에 완전히 부패했다고도 하고.”
—국과수의 발표보다는 주위 지인들의 얘기가 더 신빙성 있게 들리던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국과수는 어떤 조직의 논리로 인해 사안을 왜곡할 수 있지만, 지인들은 그럴 이유가 없잖습니까. 지인들이 어디서 글을 봤는데 맞을 수 있겠다는 얘기들을 하면 거기에 귀가 쫑긋하는 거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유병언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병언 전 회장을 진료했던 치과의사가 시신에서 치아 확인을 했는데요.
“사람들이 똑같은 치아를 가질 확률은 0%입니다. 유병언 치아 때문에 국과수 발표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의문이 듭니다. 치과의사가 정말 유병언을 치료한 의사가 맞습니까? 치과의사를 매수했거나 할 가능성은 혹시 없을까요?”
‘유병언 시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작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늘날 이 사회가 ‘괴담 천국’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광우병 괴담’ ‘FTA 괴담’ ‘천안함 괴담’에 이어 또 하나의 ‘괴담’이 늘어났다. 30대 직장인 A와 B씨는 시신을 떠나,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인 대균씨가 검거된 날짜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고 있다. 다시 그들의 대화다.
A씨: 유병언이 죽었다는 다음날 유대균을 잡은 것도 이상합니다. 빈집에서 가스랑 수도가 계속 사용돼 의심했다는데 그럼 그 전에 잡지 왜 하필 시신이 발견된 다음날 잡나요? 유병언 죽은 걸로 포장한 다음에 잡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 그 CCTV 봤거든요. 경찰이 유대균 체포하면서 땀 닦아주고, 그 경호원이라는 여자랑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요. 그 영상 보면 경찰이랑 유병언이 짰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게 아니라면 범인 잡으러 간 경찰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B씨: 입맞췄으니 그럴 수 있는 거지.
진행: 그 영상을 어디서 봤죠?
A씨: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서로 다 공유했어요. 그 영상(실제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는 ‘경찰 유대균 땀’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수많은 블로거가 이 동영상을 공유한 모습이 보인다)을 보면서 유병언 시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처음에 지문 확인 불가라더니 하고, 이빨 없다더니 금니 있다고 하고, 뭐 이건 말이 하도 바뀌니까.
진행: 그 부분은 충분히 국과수에서 설명을 한 것 같은데요.
A씨: 국과수 사람들이 짠 거죠.
진행: 국과수 직원 전원이 입을 맞췄다는 건가요?
A씨: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국과수도 조직인데, 원래 조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B씨: 국과수 직원 전원에게 엄청난 제안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협박이 있었을 수도 있죠.
A씨: 국과수 직원들이 전원 어디 있는지 기자님은 알아요? 지금 회사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국과수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금시켜 놨을 수도 있고, 이 나라는 그런 나라야.
“괴담의 근간은 국가에 대한 불신”
 |
| 국제조사단의 진상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부 세력은 천안함 괴담을 계속 퍼뜨렸다. 2010년 8월 15일 ‘광복 65년 천안함 진실규명, 한반도 평화실현 8·15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천안함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국과수를 못 믿는 데에는 괴담이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의 얘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 소문이 미담으로 확산되는 것이 20%라면, 나쁜 소문이 확산되는 것은 80%입니다. 기본적으로 부정적, 나쁜 것을 선호합니다.”
—왜 그런가요.
“부정적인 것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괴담의 생각 근저에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신에 기초한 시나리오가 그럴듯한 지식을 가진 사람의 입을 빌려서 만들어지고, 또 얘기가 구성되고 보태지면서 괴담이 됩니다.”
—실제로는 사실이 아닌 것들이죠.
“이들이 선택한 가설은 자기 성향에 맞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뽑아서 시나리오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게 빠르게 확산되면서 괴담이 돼서 사회에 퍼지는 겁니다.”
 |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모든 사건에는 루머가 생깁니다. 똑 떨어지는 사건에서 루머가 생기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불확실하고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루머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거 정부에서 내놓은 발표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집히는 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루머에 대한 의존도는 커집니다.”
전문가들은 답답하다.
박의우 건국대 법의학과 교수는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때 ‘가짜 시체를 만들어낼 수 있나?’라고 반문했던 적이 있다. 중국에서 가짜 계란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유병언 시신이 가짜일 가능성은 0%인데 과학을 믿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국과수니, 과학이니, 검찰이니, 경찰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전문가가 주는 공신력이 없다.
20대 대학생은 “국과수 발표보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표창원이 유병언이 맞다고 하니 믿고 싶어졌다”고 했고, 40대 치과의사는 “국과수 발표는 못 믿었지만 지인으로부터 맞는 것 같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니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힘을 잃은 것은 IMF 이후로 보입니다. 기존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권위도 바뀝니다. 우리 사회에 IMF가 갑자기 왔을 때,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스스로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나빴는지,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입니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그들 스스로가 내려놓은 계기가 된 거죠. 이때부터 시작된 권위의 몰락이 계속 가속화됐습니다.”
“기득권의 권력 재생산 방식의 문제일 수도”
 |
| 1997년 12월3일 임창렬 부총리 등이 IMF구제금융신청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IMF사태는 우리 사회 전문가들의 권위가 실추되는 계기가 됐다. |
진행: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면 지금 그는 어디에 있을까요?
B씨: 해외 도주했겠죠. 밀항을 했든, 보내줬던지요.
진행: 누가, 왜 보내주나요?
A씨: 정부에서 켕기는 게 많으니까 몰래 해외로 빼돌려준 것 아닐까요? 유병언이 살아서 입을 벌리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니까 숨기는 거겠죠. 그 사람이 돈이 그렇게 많다면서요. 그 돈으로 정치인들이며, 뒷돈 대주고 했을 테니까 그게 들통나면 나라가 더 힘들어질 테니까 유병언을 빼돌리지 않았겠어요?
B씨: 앞으로 다른 신분으로 잘살 거 같은데요.
진행: 주위에서도 그렇게 믿고 있나요?
A씨: 다 그렇게 생각하죠. 해외에 나가서 성형수술하고, 진짜 영화처럼 페이스오프해서 잘살 거라고요.
진행: 정부가 정말 그렇게 대대적인 조작을 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A씨: 이 정부는 국민을 가지고 노는 정부니까, 뭔들 못하겠나요.
‘유병언이 살아 있다’는 이들의 절대적 믿음은 사회에 괴담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국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왕조시대나 보수가 강한 시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쉬웠지만, IMF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개개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위성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얘기다.
“국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어떤 사안에 대해서 무조건적 믿음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무조건 믿으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나둘씩 하면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낮은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 거짓말일 거야’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드는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득권이 이런 방식으로 유지돼 왔는데, 이제는 그 기득권의 권력 재생산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냉소적입니다. 기득권이 만들어낸 불신의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과수 발표를 믿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했던 20~40대의 전원은 ‘개인적인 주관 때문에 과학을 믿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 중 누구도 국과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이 ‘혹시 내 안의 잘못은 아닐까’라고 반문하는 이는 없었다.
30대 직장인 A씨는 “만일 유병언 전 회장이 검찰에 잡혔더라면 사형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20년 형량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B씨는 “세월호에서 애들이 불쌍하게 죽어간 걸 생각하면 사형에 준하는 엄벌을 내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유병언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세월호 불법 증축을 지시한 혐의, 계열사로부터의 공금 횡령, 배임 등 모든 혐의가 인정된다고 할 때 내려지는 법적(法的) 형량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찌 보면 이들이 말하는 ‘심정적 형량’에 턱없이 모자란 형량이 내려질 수 있다. 이들에게 ‘만일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가령 5~10년의 형이 내려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들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돈이 많으니까 뒤 봐주는 사람이 법원에 압력을 가해서 형량을 줄여줬겠지요.”
“음모론 생길 시간 주지 않도록 신속 대처해야”
 |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교수. |
전우영 충남대 교수는 “루머의 확산은 어느 때나 있을 수 있지만, 루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루머에 귀기울이는 사회일수록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그들이 루머에 혹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좇는 사람들의 문제라기보다 루머에 기대도록 이 사회에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루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까요.
“과학의 결과보다 루머에 기대하는 심리는 인간관계와 똑같습니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 신뢰는 한순간에 깨지지만, 그 신뢰를 깨버린 사람이 다음번에 잘했다고 해서 곧장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앞으로 어떤 불분명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건이 생기면 정부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하고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 반복되면 점차 불신의 사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한 번 깨진 신뢰를 원상회복하는 데 굉장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얘기다.
“이들에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가장 단기간에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신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사실이 맞다고 인정토록 하는 겁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지만, 이들이 신뢰하는 그 누군가가 ‘맞다’고 말해서 이들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가 회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는 ‘대처의 신속성’을 강조했다.
“사회에 만연한 음모론, 괴담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빠른 대처를 해야 합니다. 보안상 밝힐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궁금증을 최대한 빨리 풀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의 간극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