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연쇄살인범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살인자들
⊙ 유영철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자신의 상처에 예민한 이기주의자
⊙ 강호순은 死體에 은밀히 자신만의 기호 남겨
⊙ “살인 충동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徐美愛 추리소설가
⊙ 1965년 경북 풍기 출생.
⊙ 1994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추리소설 당선.
⊙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 계간 <미스터리> 편집위원 역임. KBS 드라마 <반가운 살인자>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추리특급> 집필.
⊙ 저서: <세기말의 동화>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최근 유영철·강호순 등의 살인사건을
다룬 <인형의 정원> 출간.
⊙ 유영철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자신의 상처에 예민한 이기주의자
⊙ 강호순은 死體에 은밀히 자신만의 기호 남겨
⊙ “살인 충동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徐美愛 추리소설가
⊙ 1965년 경북 풍기 출생.
⊙ 1994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추리소설 당선.
⊙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 계간 <미스터리> 편집위원 역임. KBS 드라마 <반가운 살인자>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추리특급> 집필.
⊙ 저서: <세기말의 동화>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최근 유영철·강호순 등의 살인사건을
다룬 <인형의 정원> 출간.
- 유영철은 피해여성이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굴과 몸을 칼로 그어댈 정도로 잔인했다.
2006년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았을 때 형사와 인사를 나눈 뒤 들은 첫마디는 “유영철은 우리가 잡은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였다. 유영철 사건에 대해 물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형사는 그 이야기부터 시작했을까?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은 이제껏 한국경찰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살인자,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봤음직한 연쇄살인범의 등장이었다. 그 사건으로 깊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경찰은 그 뒤 계속된 언론의 취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해 여름 유영철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는 뉴스 속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과거 지존파나 막가파 등 몇몇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들이 있었지만 유영철의 범죄 행각은 그동안의 사건들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체 발굴에 참가했던 마포경찰서 이모 형사는 야산 여기저기 묻혀 있는 손바닥만 한 시체 조각들이 수십 개가 넘는 것을 보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고 했다. 그 양도 엄청났지만 단순히 시체를 절단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잘린 머리나 몸에 얼마나 많이 칼을 그어댔는지 얼굴을 알아보기는커녕 사람의 얼굴인지조차 분간이 안될 지경이었다. 악마도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현장을 찾아온 유가족들은 이렇게 유영철의 칼날에 찢긴 시신으로 가족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현장에 있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 직원들도 토막 난 시체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야 했다. 전문가의 눈에 들어온 시신들은 살인이 반복되면서 유영철이 얼마나 시체를 처리하는 데 능숙해졌는지 느끼게 했다.
그의 말대로 체포되지 않았다면 100명이라도 죽였을 것이다. 시체를 처리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심정적인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이미 살인 기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영철 사건은 한 개인의 엽기적인 만행의 수준을 넘어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희귀하고 범죄학적인 연구 가치를 지닌 사건이었다. 미국 FBI가 관심을 보이며 사건 파일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 등장한 범죄 관련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영철 이상의 연쇄살인범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했다. ‘한 번 학습된 경험은 더 강도 높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범죄 전문가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유영철과 정남규 이후 또 다른 유형의 연쇄살인범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연쇄살인의 유형
2007년 5월 13일 안산시 상록구 한 야산에서 벌목 작업을 하던 인부가 암매장된 시체를 발견한다. 이 야산은 안산과 화성 사이 지방도로 근처 야산으로, 주변은 근처 양계장에서 버린 닭이나 생활쓰레기 투기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시체는 발가벗겨진 채 목에 검은색 스타킹이 감겨 있었고, 흙이 걷힌 곳은 동물에 의해 훼손된 상태였다.
현장을 조사한 경찰은 피해자의 소지품 및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범인이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시체가 연쇄살인의 피해자 중 하나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그로부터 2년 뒤 2009년 1월 24일 한 남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처음에는 단순 강도사건으로 범인을 추궁하던 경찰은 그가 지난 몇 년에 걸쳐 경기도 서남부에서 부녀자 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강호순이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강호순은 유영철의 뒤를 이어 한국범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또 다른 유형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 및 부유층에 대한 불만과 개인적인 분노로 무차별적으로 희생자를 골라 살인을 저지르던 유영철과 달리 강호순은 개인적인 쾌락, 즉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쾌락형 연쇄살인범이었다.
연쇄살인은 동기별로 망상(visionary)형, 사명감(mission-oriented)형, 권력(power-control)형, 쾌락(hedonistic)형으로 구별된다.
망상형 연쇄살인범은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자로서, 환청이나 환각에 따라 살인을 반복하는 자를 말한다. 머릿속에서 악마가 누구를 죽이라고 지시를 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고의 혼란, 지각의 혼란, 정서의 혼란 등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유형이다.
사명감형은 자신을 절대 권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자로 생각한다. 이들은 사회악을 직접 제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희생자를 물색한다. 하지만 희생자는 대부분 매춘 여성이나 병약한 노인, 사회악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시민이다. 부유층에 대한 불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지존파나 유영철의 초기 사건들이 이에 속한다.
권력형은 자신이 절대자가 되어 희생자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살인범들이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며, 그들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절대적 힘을 확인한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은 피해자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하찮은 대상으로 취급하며, 그들의 목숨을 좌우하는 것으로 우월감을 충족한다.
유영철과 강호순의 닮은 점
쾌락형은 욕망형과 자극추구형으로 세분화되는데, 살인 과정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을 취하기 위해 살인을 반복하는 유형이다. 피해자를 유인하고 가학 행위를 하는 데서 오는 극도의 흥분이 이들을 자극한다. 유영철의 후기 사건들, 그리고 강호순의 사건이 이 유형이다.
이 유형의 살인자들은 性的(성적) 동기가 계기가 되고 사건을 저지른 뒤 死體(사체)를 훼손하거나 불을 지르기도 한다.
유영철과 강호순은 성적인 동기, 범행을 위한 치밀한 준비 과정, 완벽한 사후 처리가 닮아있다.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희생자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출장 마사지사를 퇴짜 놓고 새 아가씨를 부른 유영철, 혼자 밤거리에 있거나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여자를 노린 강호순. 이 둘은 모두 신중하게 희생자를 고르고 민첩하게 자신의 방, 혹은 자동차로 끌고 들어갔다.
유영철은 ‘아담한 키에 마른 체구의 미인’을 선호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피해자들이 이혼한 아내를 닮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지극히 실용적인 면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는 경찰에서 “뚱뚱한 여자는 무거워서 죽인 뒤 옮기기도 힘들고, 키가 큰 여자는 목을 잘라내도 좁은 욕실에 똑바로 누이고 시체 절단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서 아담하고 마른 여자를 택했다”고 진술했다.
연쇄살인범이 사체를 처리하는 수법은 그가 선호하는 피해자의 유형, 살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그만의 독특한 범행방식의 일부인데, 유영철이 사체를 버리기 위해 몇 시간을 욕실에서 보냈다면 강호순은 피해자들의 옷을 벗겼다.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신원을 확인할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강호순은 자신의 피해자들에게 똑같은 표지를 남겼다. 모두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한 후 목에 스타킹을 그대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피해자들이 모두 자신의 범행에 의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타킹이라는 표지로 남긴 것이다.
FBI 행동분석팀 범죄분석관인 존 더글러스는 <성적 상인(性的 商人)>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어떤 연쇄살인범은 살인 행위 자체가 아니라 ‘시체를 제대로 절단하고 아무 탈 없이 처리했을 때’ 가장 큰 쾌감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범행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강호순이 모든 피해자의 목에 스타킹을 남겨두었던 심리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지가 아니었을까.
극도로 잔인했던 유영철
유영철과 강호순, 둘 모두 사이코패스(反사회적 성격장애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는 善(선)과 惡(악)을 구분할 줄 알고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도 명확하게 아는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인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른다는 점, 양심이 결여된 상태이며 극도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사고, 상황에 대한 과장된 영웅 심리, 극적인 효과까지 둘의 범행 방식은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유영철은 피해여성이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굴과 몸을 칼로 그어댈 정도로 잔인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둔감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아픔에도 극도로 과민하게 반응했다. 경찰이 그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입안에 면봉을 넣었을 때 입 속 상처를 건드려 면봉에 약간의 피가 묻어나온 것을 보고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낸 일화는 그의 극단적 이기심을 잘 보여준다.
시체를 절단하는 몇 시간 동안 ‘콜럼버스 1492’의 영화음악을 틀어놓은 것은 자신이 벌이는 일에 대한 연극적 효과를 생각한 것으로, 마치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식이라도 되는 듯 스스로 과장된 연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대망상이 언론사 카메라를 향해 “부유층은 각성하고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게 하고, 오직 자신의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진과 게임을 하듯 자신이 가진 정보를 하나씩 흘리며 그 상황에서도 상대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유영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이 자신을 위해 언제든 말을 바꾸는 등 거짓말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계속됐다. 경찰에게 이문동 사건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가 검찰에 가서는 범행을 부인하고 재수사를 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경찰과 같은 권력에 대한 조롱과 자신의 말에 허둥대는 경찰의 모습은 그의 우월감을 충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과대망상이 경찰의 심문을 통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는 경찰에게 적대감을 보이며 극렬하게 반응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며 완성시킨 자신만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체 훼손에 오랜 시간 공들여
전문가들은 유영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저지른 범행의 현장과 흔적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준비한 둔기로 단호하게 머리를 가격하는 행위는 그가 가진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며, 시체 훼손 행위는 피해 여성들에 대한 혐오와 자극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초기 유영철의 범행은 주로 피해자의 집에 침입하여 이루어졌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살해하고 현장을 빠져나오던 그의 살해방법은 피해자 유형이 부유층에서 윤락여성으로 바뀌면서 달라진다.
자신의 집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여 집안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피해자들과 성관계를 나누거나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목소리를 녹음해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또 살해 후 시체를 그대로 두고 나오던 방식에서 후에는 시체를 훼손하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보통 토막살인의 경우는 피해자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라기보다 범행을 은폐하고 시체의 이동과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유영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시체를 발굴했던 경찰의 입에서 혹시 생체실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할 만큼 희생자들은 조각조각 잘려 있었고,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한 경찰은 양념이 잘 배도록 고기를 저밀 때처럼 피해자의 시신이 손상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거녀였던 김모씨와 同名異人(동명이인)이던 피해자의 경우 더 극심하게 훼손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시체 처리를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난도질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검찰 조사에서 ‘5명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체를 모두 믹서에 갈아버렸기 때문’이라는 진술을 해서 한동안 유영철의 오피스텔 주변을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믹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유영철의 자백과 상관없이 검찰은 21명에 대한 살해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변화되는 그의 범행 방식을 살인의 진화 단계로 분석했다. 살인이 거듭될수록 범행 기술이 발전해 몇 시간 걸리던 절단 작업이 한 시간 전후로 줄어들었다. 시체처리가 점점 능숙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정신 역시 극도의 몰입으로 범행에 심취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문가들이 주목한 것은 구애 단계, 즉 피해자를 유인하여 자신에게 신뢰감을 느끼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유영철이 보인 행동들이다. 그는 잠시 후 살해할 피해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남자친구는 있는지, 고향은 어딘지 하는 일상적인 질문들을 했다.
강호순은 쾌락을 위해 살인 저질러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구애 단계에서 피해자들과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그 시간 동안 지닌 깊은 신뢰감을 배신할 때 의미 있는 흥분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영철 역시 그런 구애 단계의 하나로 여성들과 대화를 시도했는데, 어떤 여성은 4시간도 넘게 대화를 하다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경우가 있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스스로 잡은 여성을 놓아주었을까?
토니야 레이맨이라는 신체언어 전문가는 <신체언어의 힘>이라는 저서에서 진심을 전하거나 숨기려는 모든 신체언어 신호는 우리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살인사건이나 폭력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윤락여성 중에도 범인에게 잡혀 있다가 살아나오는 경우가 있다. 뉴욕 매춘 여성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남자들을 무시하거나 직업적인 관계로 대할 경우 남성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유영철이 가지는 분노가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과 자신을 떠난 여성에 대한 배신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유영철에게 동정적이거나 진심으로 대했던 여성들은 그의 분노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동안 살인 행각을 멈추었던 시기가 새로운 여성과 동거를 하던 시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어떤 여성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강호순은 유영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 충격의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강호순 역시 사이코패스의 기질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피해자에 대한 공감 결여,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 영웅주의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기나 범행 과정, 피해자는 유영철과 차이점이 보인다. 그는 사회 및 부유층에 대한 불만이나 개인적 좌절과 분노로 인해 사람을 무차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쾌락형 연쇄살인범이다. 즉 개인적인 쾌락을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고 범행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연쇄살인범이다.
철저히 증거 인멸 시도
그는 2006년부터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지만 그 행적이 발각된 것은 3년이 지난 뒤였다. 단 한 번도 잡힐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진술할 만큼 그는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으며,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뒷수습을 했다.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망에 오르기까지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범행을 완벽히 감추고 살았다. 최초 5건의 실종 사건의 경우 목격자도 없었고, 사건 현장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였던 3명과 달리 뒤에 실종된 두 명은 평범한 가정주부와 대학생이었다. 수원과 군포, 노래방 도우미와 평범한 주부, 여대생이라는 피해자들의 지리적, 직업적, 연령대의 차이는 이들 실종사건이 한 명의 살인마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연쇄살인이라는 낌새를 차릴 수 없게 했다.
2008년 11월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고 옆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진 김모씨의 실종신고를 받고서야 경찰은 이전의 실종 사건과 유사성 분석에 들어갔다. 경기도 서남부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과의 연관성으로는 우선 초겨울, 초저녁 시간대에 버스정류장에서 피해자들이 실종됐다는 점, 단시간 내에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된 점 등 시간, 장소, 상황적인 몇 가지 사실만 일치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범인의 윤곽을 찾을 수 없었다.
강호순의 꼬리가 잡힌 것은 김모씨 실종사건이 있은 지 한 달 뒤 실종된 대학생 안모씨의 수사가 진척을 보이면서부터다. 김모씨와 마찬가지로 안모씨 역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실종됐는데, 실종 당일 안산의 한 농협에서 가발과 마스크를 쓴 남자가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간 것이 CCTV에 찍혔다.
경찰은 부녀자 납치강도 사건에 무게를 두었지만, 지난 3년 동안 발생했던 서남부권 부녀자 실종사건 수사 자료와 대조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 결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점, 인적이 드문 버스정류장에서 피해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의 휴대폰 배터리가 단시간에 분리됐다는 점 등이 이전 사건과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경찰은 실종 장소와 용의자의 모습이 CCTV에 찍힌 안산 농협 사이의 용의자 예상 동선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동선을 통과한 약 7000여 대의 차량 소유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강호순이라는 인물이 수면에 떠올랐다.
피해자 실종 당일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는 점, CCTV의 용의자와 닮은 점 등으로 강호순의 주거지와 농장,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되자 심리적 압박을 느낀 강호순이 자신의 차량에 불을 지른다. 수상함을 느낀 경찰이 그를 체포해 그동안의 통화 내역, CCTV, 주변인의 진술 등으로 범행 일체가 밝혀졌다.
처음에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증거를 가져오라고 큰소리쳤다. 이 정도의 증거물 가지고는 자신의 범행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던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피해자의 돈에 손 대지 않았던 강호순이 안모양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고, 변장한 복장으로 은행에 들어가 CCTV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경찰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불태운 자동차에서 실종된 김모씨의 DNA가 발견됐다는 말에 그는 바로 무너져 그동안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백한 내용을 토대로 암매장돼 있던 시체 발굴이 시작됐다.
그가 최초 범행이라고 자백한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암매장된 피해자의 시체 처리 방식과 소지품 처리 등이 지나치게 깔끔하고 치밀한 점에 의문을 가졌다. 보통 첫 범행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해도 미숙한 점이 있기 마련인데, CCTV가 있는 곳은 피해 다니고, 목격자가 없는 피해자를 골라 살해하는 등 이전에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 사망 사건의 의문
경찰이 그런 의문을 갖게 된 또 하나의 단서는 강호순의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원인불명의 화재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강호순은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숨진 화재사건이 나기 보름 전인 2005년 10월 중순, 부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사 직원을 찾아가 부인 명의의 재해보험을 들고 싶다며 적당한 보험 상품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보험사 직원은 “이미 부인이 종신보험을 든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 가입이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강호순은 계속 재해보험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했다.
강호순은 대신 본인의 재해보험을 들라는 직원의 말을 거절했고, 아들 이름의 재해보험 가입도 거절했다. 그는 다른 보험사를 찾아가 부인 이름으로 재해보험에 가입했으며 그 액수는 4억8000만원에 달했다. 3년 동안의 동거 기간에도 하지 않았던 혼인신고도 그때 했다. 그리고 보름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부인과 장모가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집에서 나온 강호순이 다른 화재 피해자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 의아했다고 한다.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해 급하게 뛰쳐나오지만 집안에 남은 가족이 있다면 초조해 하거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는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이 미심쩍어 경찰과 보험사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에 가능성을 두고 6개월의 내사를 벌였다 이미 1999년부터 수상쩍은 화재 사건으로 두 번이나 보험금을 탄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을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결국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강호순에게 4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는 그 돈으로 점포와 에쿠스 승용차를 샀다.
강호순은 7월 2일 2차 공판에서 다른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시인하고 사형 구형을 받았지만 이 화재사건에 대해서는 범행을 부인했다.
강호순의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가 성행위를 통해 얻는 만족감보다는 피해자를 복종시키고, 제압하고, 살해·매장하는 과정을 통해 쾌감을 느껴 살인을 반복한다고 분석했다. 특이한 점은 그는 농번기를 제외한 겨울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살인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여성들이 쉽게 그의 차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호감형으로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라는 것 이외에 겨울의 초저녁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캘린더 살인마
강호순은 외로움을 타기 쉬운 연말연시 추운 겨울철에 피해자가 자동차에 쉽게 동승할 수 있는 환경에서 희생자를 골랐다. 노래방 도우미들이 퇴근할 시간인 심야 새벽시간을 이용하기도 하고 시골의 외진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피해자를 노린 것도 그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최초의 범행이 성공하자 자신감을 가진 그는 반복적으로 범행을 시도하면서 점점 ‘살인’이라는 행위에 몰두하여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그러는 동안 점점 수법이 진화하여 자신감을 증대시켰다. 겨울 동안 한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또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농장에서 개를 키우며 평범한 생활을 해나갔다. 추리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캘린더 살인마(일정한 시기가 오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였던 것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경찰을 사칭하고 다니며 돈을 뜯어내고 반복적으로 살인을 한 유영철에 비해 강호순은 이웃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으며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속일 만큼 완벽한 거짓말을 하며 대인관계를 이어나갔지만 보다 밀착된 인간관계에서는 오랜 기간을 유지하지 못했다.
짧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곧 이혼하는 것을 반복하고, 여성들과의 관계도 감정 없는 관계이거나, 우연히 만나 하룻밤 즐기는 관계 등 문란했다.
그는 유영철 등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심리적 냉각기 등의 특징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철저히 준비됐을 때 살인을 저지르는 등 감정 없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죽음이 그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만약 그가 저지른 것이라면 바로 이 점이 유영철과 그를 구별하게 하는 가장 큰 특징이 될 것이다.
유영철은 “그토록 미워했던 전 부인을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강호순은 표면적으로는 화재로 죽은 부인에 대해 애도했지만 부인이 남긴 보험금으로 새 자동차를 사고 그 자동차로 새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시작했다.
강호순은 지루하거나 오랜 인간관계에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다. 부인이 죽기 보름 전 거액의 재해보험에 가입한 점, 그가 자백한 첫 번째 범행이 이미 유사 경험으로 학습된 듯 깔끔하고 정교한 점 등을 염두에 둔다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여죄 가능성이 보인다.
인간의 원초적 살인 본능
유영철과 강호순의 존재는 우리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전문 용어를 익숙한 단어로 만들었다. 인터넷에는 사이코패스를 진단할 수 있다는 심리테스트가 돌아다니고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사의 양과 보도의 횟수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왜 ‘연쇄살인’이라는 말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관심을 보이며 좀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사건 기사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영화나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했다. 유명한 연쇄살인범들의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미술관에 걸리고, 연쇄살인범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기록한 책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연쇄살인범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경매에 나오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줄리언 홉스 감독의 1999년 작 ‘콜렉터스’(collectors)가 대표적이다.
1960년대 이후 다른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록음악에도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롤링 스톤스나 워렌 제본은 물론이고 비틀스도 ‘맥스웰의 은도끼’라는 노래에서 살인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의상을 수집하듯이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물품을 경매로 구입하는 사람이 생기고, 범행 현장을 돌아보는 관광 투어도 있다.
영화 ‘사이코’의 모델이 된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의 묘비를 훔친 절도범에 대해 앤디 카한이라는 비평가는 “수집가에 따라서는 게인의 소유물이 어떤 면에서 렘브란트의 작품과도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연예인에게 팬레터를 쓰듯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열성팬이 생기기도 했다.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문화는 미국만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강호순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바로 포털 사이트에 강호순 팬 카페가 생겨 충격을 주었다.
연쇄살인에 관한 한 독보적일 만큼 방대한 연구와 자료를 가진 미국에서는 어째서 평범한 시민들이 연쇄살인범에 흥미를 갖는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인이라는 행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살인 행위가 아무리 낯설고, 믿을 수 없고,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살인에 대한 충동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
살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연쇄살인범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괴물’의 그림자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은 이제껏 한국경찰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살인자,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봤음직한 연쇄살인범의 등장이었다. 그 사건으로 깊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경찰은 그 뒤 계속된 언론의 취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해 여름 유영철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는 뉴스 속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과거 지존파나 막가파 등 몇몇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들이 있었지만 유영철의 범죄 행각은 그동안의 사건들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체 발굴에 참가했던 마포경찰서 이모 형사는 야산 여기저기 묻혀 있는 손바닥만 한 시체 조각들이 수십 개가 넘는 것을 보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고 했다. 그 양도 엄청났지만 단순히 시체를 절단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잘린 머리나 몸에 얼마나 많이 칼을 그어댔는지 얼굴을 알아보기는커녕 사람의 얼굴인지조차 분간이 안될 지경이었다. 악마도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현장을 찾아온 유가족들은 이렇게 유영철의 칼날에 찢긴 시신으로 가족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현장에 있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 직원들도 토막 난 시체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야 했다. 전문가의 눈에 들어온 시신들은 살인이 반복되면서 유영철이 얼마나 시체를 처리하는 데 능숙해졌는지 느끼게 했다.
그의 말대로 체포되지 않았다면 100명이라도 죽였을 것이다. 시체를 처리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심정적인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이미 살인 기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영철 사건은 한 개인의 엽기적인 만행의 수준을 넘어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희귀하고 범죄학적인 연구 가치를 지닌 사건이었다. 미국 FBI가 관심을 보이며 사건 파일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 등장한 범죄 관련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영철 이상의 연쇄살인범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했다. ‘한 번 학습된 경험은 더 강도 높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범죄 전문가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유영철과 정남규 이후 또 다른 유형의 연쇄살인범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연쇄살인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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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8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뒤편 야산에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현장을 조사한 경찰은 피해자의 소지품 및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범인이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시체가 연쇄살인의 피해자 중 하나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그로부터 2년 뒤 2009년 1월 24일 한 남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처음에는 단순 강도사건으로 범인을 추궁하던 경찰은 그가 지난 몇 년에 걸쳐 경기도 서남부에서 부녀자 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강호순이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강호순은 유영철의 뒤를 이어 한국범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또 다른 유형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 및 부유층에 대한 불만과 개인적인 분노로 무차별적으로 희생자를 골라 살인을 저지르던 유영철과 달리 강호순은 개인적인 쾌락, 즉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쾌락형 연쇄살인범이었다.
연쇄살인은 동기별로 망상(visionary)형, 사명감(mission-oriented)형, 권력(power-control)형, 쾌락(hedonistic)형으로 구별된다.
망상형 연쇄살인범은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자로서, 환청이나 환각에 따라 살인을 반복하는 자를 말한다. 머릿속에서 악마가 누구를 죽이라고 지시를 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고의 혼란, 지각의 혼란, 정서의 혼란 등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유형이다.
사명감형은 자신을 절대 권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자로 생각한다. 이들은 사회악을 직접 제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희생자를 물색한다. 하지만 희생자는 대부분 매춘 여성이나 병약한 노인, 사회악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시민이다. 부유층에 대한 불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지존파나 유영철의 초기 사건들이 이에 속한다.
권력형은 자신이 절대자가 되어 희생자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살인범들이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며, 그들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절대적 힘을 확인한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은 피해자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하찮은 대상으로 취급하며, 그들의 목숨을 좌우하는 것으로 우월감을 충족한다.
유영철과 강호순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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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범죄영화CD와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갖고 있었다. |
이 유형의 살인자들은 性的(성적) 동기가 계기가 되고 사건을 저지른 뒤 死體(사체)를 훼손하거나 불을 지르기도 한다.
유영철과 강호순은 성적인 동기, 범행을 위한 치밀한 준비 과정, 완벽한 사후 처리가 닮아있다.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희생자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출장 마사지사를 퇴짜 놓고 새 아가씨를 부른 유영철, 혼자 밤거리에 있거나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여자를 노린 강호순. 이 둘은 모두 신중하게 희생자를 고르고 민첩하게 자신의 방, 혹은 자동차로 끌고 들어갔다.
유영철은 ‘아담한 키에 마른 체구의 미인’을 선호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피해자들이 이혼한 아내를 닮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지극히 실용적인 면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는 경찰에서 “뚱뚱한 여자는 무거워서 죽인 뒤 옮기기도 힘들고, 키가 큰 여자는 목을 잘라내도 좁은 욕실에 똑바로 누이고 시체 절단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서 아담하고 마른 여자를 택했다”고 진술했다.
연쇄살인범이 사체를 처리하는 수법은 그가 선호하는 피해자의 유형, 살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그만의 독특한 범행방식의 일부인데, 유영철이 사체를 버리기 위해 몇 시간을 욕실에서 보냈다면 강호순은 피해자들의 옷을 벗겼다.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신원을 확인할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강호순은 자신의 피해자들에게 똑같은 표지를 남겼다. 모두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한 후 목에 스타킹을 그대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피해자들이 모두 자신의 범행에 의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타킹이라는 표지로 남긴 것이다.
FBI 행동분석팀 범죄분석관인 존 더글러스는 <성적 상인(性的 商人)>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어떤 연쇄살인범은 살인 행위 자체가 아니라 ‘시체를 제대로 절단하고 아무 탈 없이 처리했을 때’ 가장 큰 쾌감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범행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강호순이 모든 피해자의 목에 스타킹을 남겨두었던 심리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지가 아니었을까.
극도로 잔인했던 유영철
유영철과 강호순, 둘 모두 사이코패스(反사회적 성격장애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는 善(선)과 惡(악)을 구분할 줄 알고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도 명확하게 아는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인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른다는 점, 양심이 결여된 상태이며 극도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사고, 상황에 대한 과장된 영웅 심리, 극적인 효과까지 둘의 범행 방식은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유영철은 피해여성이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굴과 몸을 칼로 그어댈 정도로 잔인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둔감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아픔에도 극도로 과민하게 반응했다. 경찰이 그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입안에 면봉을 넣었을 때 입 속 상처를 건드려 면봉에 약간의 피가 묻어나온 것을 보고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낸 일화는 그의 극단적 이기심을 잘 보여준다.
시체를 절단하는 몇 시간 동안 ‘콜럼버스 1492’의 영화음악을 틀어놓은 것은 자신이 벌이는 일에 대한 연극적 효과를 생각한 것으로, 마치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식이라도 되는 듯 스스로 과장된 연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대망상이 언론사 카메라를 향해 “부유층은 각성하고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게 하고, 오직 자신의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진과 게임을 하듯 자신이 가진 정보를 하나씩 흘리며 그 상황에서도 상대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유영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이 자신을 위해 언제든 말을 바꾸는 등 거짓말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계속됐다. 경찰에게 이문동 사건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가 검찰에 가서는 범행을 부인하고 재수사를 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경찰과 같은 권력에 대한 조롱과 자신의 말에 허둥대는 경찰의 모습은 그의 우월감을 충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과대망상이 경찰의 심문을 통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는 경찰에게 적대감을 보이며 극렬하게 반응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며 완성시킨 자신만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체 훼손에 오랜 시간 공들여
전문가들은 유영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저지른 범행의 현장과 흔적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준비한 둔기로 단호하게 머리를 가격하는 행위는 그가 가진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며, 시체 훼손 행위는 피해 여성들에 대한 혐오와 자극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초기 유영철의 범행은 주로 피해자의 집에 침입하여 이루어졌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살해하고 현장을 빠져나오던 그의 살해방법은 피해자 유형이 부유층에서 윤락여성으로 바뀌면서 달라진다.
자신의 집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여 집안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피해자들과 성관계를 나누거나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목소리를 녹음해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또 살해 후 시체를 그대로 두고 나오던 방식에서 후에는 시체를 훼손하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보통 토막살인의 경우는 피해자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라기보다 범행을 은폐하고 시체의 이동과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유영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시체를 발굴했던 경찰의 입에서 혹시 생체실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할 만큼 희생자들은 조각조각 잘려 있었고,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한 경찰은 양념이 잘 배도록 고기를 저밀 때처럼 피해자의 시신이 손상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거녀였던 김모씨와 同名異人(동명이인)이던 피해자의 경우 더 극심하게 훼손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시체 처리를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난도질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검찰 조사에서 ‘5명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체를 모두 믹서에 갈아버렸기 때문’이라는 진술을 해서 한동안 유영철의 오피스텔 주변을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믹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유영철의 자백과 상관없이 검찰은 21명에 대한 살해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변화되는 그의 범행 방식을 살인의 진화 단계로 분석했다. 살인이 거듭될수록 범행 기술이 발전해 몇 시간 걸리던 절단 작업이 한 시간 전후로 줄어들었다. 시체처리가 점점 능숙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정신 역시 극도의 몰입으로 범행에 심취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문가들이 주목한 것은 구애 단계, 즉 피해자를 유인하여 자신에게 신뢰감을 느끼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유영철이 보인 행동들이다. 그는 잠시 후 살해할 피해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남자친구는 있는지, 고향은 어딘지 하는 일상적인 질문들을 했다.
강호순은 쾌락을 위해 살인 저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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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중국동포 김모씨의 시신 발굴 작업 현장에서 암매장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
유영철 역시 그런 구애 단계의 하나로 여성들과 대화를 시도했는데, 어떤 여성은 4시간도 넘게 대화를 하다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경우가 있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스스로 잡은 여성을 놓아주었을까?
토니야 레이맨이라는 신체언어 전문가는 <신체언어의 힘>이라는 저서에서 진심을 전하거나 숨기려는 모든 신체언어 신호는 우리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살인사건이나 폭력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윤락여성 중에도 범인에게 잡혀 있다가 살아나오는 경우가 있다. 뉴욕 매춘 여성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남자들을 무시하거나 직업적인 관계로 대할 경우 남성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유영철이 가지는 분노가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과 자신을 떠난 여성에 대한 배신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유영철에게 동정적이거나 진심으로 대했던 여성들은 그의 분노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동안 살인 행각을 멈추었던 시기가 새로운 여성과 동거를 하던 시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어떤 여성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강호순은 유영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 충격의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강호순 역시 사이코패스의 기질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피해자에 대한 공감 결여,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 영웅주의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기나 범행 과정, 피해자는 유영철과 차이점이 보인다. 그는 사회 및 부유층에 대한 불만이나 개인적 좌절과 분노로 인해 사람을 무차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쾌락형 연쇄살인범이다. 즉 개인적인 쾌락을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고 범행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연쇄살인범이다.
철저히 증거 인멸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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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순이 2004년 이전부터 넷째 부인과 개와 닭을 키우면서 살았던 안산시 팔곡1동 야산 중턱의 개 사육장. |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망에 오르기까지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범행을 완벽히 감추고 살았다. 최초 5건의 실종 사건의 경우 목격자도 없었고, 사건 현장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였던 3명과 달리 뒤에 실종된 두 명은 평범한 가정주부와 대학생이었다. 수원과 군포, 노래방 도우미와 평범한 주부, 여대생이라는 피해자들의 지리적, 직업적, 연령대의 차이는 이들 실종사건이 한 명의 살인마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연쇄살인이라는 낌새를 차릴 수 없게 했다.
2008년 11월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고 옆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진 김모씨의 실종신고를 받고서야 경찰은 이전의 실종 사건과 유사성 분석에 들어갔다. 경기도 서남부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과의 연관성으로는 우선 초겨울, 초저녁 시간대에 버스정류장에서 피해자들이 실종됐다는 점, 단시간 내에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된 점 등 시간, 장소, 상황적인 몇 가지 사실만 일치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범인의 윤곽을 찾을 수 없었다.
강호순의 꼬리가 잡힌 것은 김모씨 실종사건이 있은 지 한 달 뒤 실종된 대학생 안모씨의 수사가 진척을 보이면서부터다. 김모씨와 마찬가지로 안모씨 역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실종됐는데, 실종 당일 안산의 한 농협에서 가발과 마스크를 쓴 남자가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간 것이 CCTV에 찍혔다.
경찰은 부녀자 납치강도 사건에 무게를 두었지만, 지난 3년 동안 발생했던 서남부권 부녀자 실종사건 수사 자료와 대조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 결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점, 인적이 드문 버스정류장에서 피해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의 휴대폰 배터리가 단시간에 분리됐다는 점 등이 이전 사건과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경찰은 실종 장소와 용의자의 모습이 CCTV에 찍힌 안산 농협 사이의 용의자 예상 동선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동선을 통과한 약 7000여 대의 차량 소유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강호순이라는 인물이 수면에 떠올랐다.
피해자 실종 당일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는 점, CCTV의 용의자와 닮은 점 등으로 강호순의 주거지와 농장,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되자 심리적 압박을 느낀 강호순이 자신의 차량에 불을 지른다. 수상함을 느낀 경찰이 그를 체포해 그동안의 통화 내역, CCTV, 주변인의 진술 등으로 범행 일체가 밝혀졌다.
처음에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증거를 가져오라고 큰소리쳤다. 이 정도의 증거물 가지고는 자신의 범행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던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피해자의 돈에 손 대지 않았던 강호순이 안모양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고, 변장한 복장으로 은행에 들어가 CCTV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경찰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불태운 자동차에서 실종된 김모씨의 DNA가 발견됐다는 말에 그는 바로 무너져 그동안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백한 내용을 토대로 암매장돼 있던 시체 발굴이 시작됐다.
그가 최초 범행이라고 자백한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암매장된 피해자의 시체 처리 방식과 소지품 처리 등이 지나치게 깔끔하고 치밀한 점에 의문을 가졌다. 보통 첫 범행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해도 미숙한 점이 있기 마련인데, CCTV가 있는 곳은 피해 다니고, 목격자가 없는 피해자를 골라 살해하는 등 이전에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 사망 사건의 의문
경찰이 그런 의문을 갖게 된 또 하나의 단서는 강호순의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원인불명의 화재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강호순은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숨진 화재사건이 나기 보름 전인 2005년 10월 중순, 부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사 직원을 찾아가 부인 명의의 재해보험을 들고 싶다며 적당한 보험 상품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보험사 직원은 “이미 부인이 종신보험을 든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 가입이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강호순은 계속 재해보험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했다.
강호순은 대신 본인의 재해보험을 들라는 직원의 말을 거절했고, 아들 이름의 재해보험 가입도 거절했다. 그는 다른 보험사를 찾아가 부인 이름으로 재해보험에 가입했으며 그 액수는 4억8000만원에 달했다. 3년 동안의 동거 기간에도 하지 않았던 혼인신고도 그때 했다. 그리고 보름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부인과 장모가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집에서 나온 강호순이 다른 화재 피해자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 의아했다고 한다.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해 급하게 뛰쳐나오지만 집안에 남은 가족이 있다면 초조해 하거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는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이 미심쩍어 경찰과 보험사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에 가능성을 두고 6개월의 내사를 벌였다 이미 1999년부터 수상쩍은 화재 사건으로 두 번이나 보험금을 탄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을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결국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강호순에게 4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는 그 돈으로 점포와 에쿠스 승용차를 샀다.
강호순은 7월 2일 2차 공판에서 다른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시인하고 사형 구형을 받았지만 이 화재사건에 대해서는 범행을 부인했다.
강호순의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가 성행위를 통해 얻는 만족감보다는 피해자를 복종시키고, 제압하고, 살해·매장하는 과정을 통해 쾌감을 느껴 살인을 반복한다고 분석했다. 특이한 점은 그는 농번기를 제외한 겨울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살인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여성들이 쉽게 그의 차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호감형으로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라는 것 이외에 겨울의 초저녁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캘린더 살인마
강호순은 외로움을 타기 쉬운 연말연시 추운 겨울철에 피해자가 자동차에 쉽게 동승할 수 있는 환경에서 희생자를 골랐다. 노래방 도우미들이 퇴근할 시간인 심야 새벽시간을 이용하기도 하고 시골의 외진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피해자를 노린 것도 그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최초의 범행이 성공하자 자신감을 가진 그는 반복적으로 범행을 시도하면서 점점 ‘살인’이라는 행위에 몰두하여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그러는 동안 점점 수법이 진화하여 자신감을 증대시켰다. 겨울 동안 한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또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농장에서 개를 키우며 평범한 생활을 해나갔다. 추리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캘린더 살인마(일정한 시기가 오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였던 것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경찰을 사칭하고 다니며 돈을 뜯어내고 반복적으로 살인을 한 유영철에 비해 강호순은 이웃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으며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속일 만큼 완벽한 거짓말을 하며 대인관계를 이어나갔지만 보다 밀착된 인간관계에서는 오랜 기간을 유지하지 못했다.
짧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곧 이혼하는 것을 반복하고, 여성들과의 관계도 감정 없는 관계이거나, 우연히 만나 하룻밤 즐기는 관계 등 문란했다.
그는 유영철 등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심리적 냉각기 등의 특징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철저히 준비됐을 때 살인을 저지르는 등 감정 없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죽음이 그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만약 그가 저지른 것이라면 바로 이 점이 유영철과 그를 구별하게 하는 가장 큰 특징이 될 것이다.
유영철은 “그토록 미워했던 전 부인을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강호순은 표면적으로는 화재로 죽은 부인에 대해 애도했지만 부인이 남긴 보험금으로 새 자동차를 사고 그 자동차로 새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시작했다.
강호순은 지루하거나 오랜 인간관계에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다. 부인이 죽기 보름 전 거액의 재해보험에 가입한 점, 그가 자백한 첫 번째 범행이 이미 유사 경험으로 학습된 듯 깔끔하고 정교한 점 등을 염두에 둔다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여죄 가능성이 보인다.
인간의 원초적 살인 본능
유영철과 강호순의 존재는 우리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전문 용어를 익숙한 단어로 만들었다. 인터넷에는 사이코패스를 진단할 수 있다는 심리테스트가 돌아다니고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사의 양과 보도의 횟수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왜 ‘연쇄살인’이라는 말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관심을 보이며 좀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사건 기사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영화나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했다. 유명한 연쇄살인범들의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미술관에 걸리고, 연쇄살인범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기록한 책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연쇄살인범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경매에 나오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줄리언 홉스 감독의 1999년 작 ‘콜렉터스’(collectors)가 대표적이다.
1960년대 이후 다른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록음악에도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롤링 스톤스나 워렌 제본은 물론이고 비틀스도 ‘맥스웰의 은도끼’라는 노래에서 살인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의상을 수집하듯이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물품을 경매로 구입하는 사람이 생기고, 범행 현장을 돌아보는 관광 투어도 있다.
영화 ‘사이코’의 모델이 된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의 묘비를 훔친 절도범에 대해 앤디 카한이라는 비평가는 “수집가에 따라서는 게인의 소유물이 어떤 면에서 렘브란트의 작품과도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연예인에게 팬레터를 쓰듯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열성팬이 생기기도 했다.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문화는 미국만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강호순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바로 포털 사이트에 강호순 팬 카페가 생겨 충격을 주었다.
연쇄살인에 관한 한 독보적일 만큼 방대한 연구와 자료를 가진 미국에서는 어째서 평범한 시민들이 연쇄살인범에 흥미를 갖는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인이라는 행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살인 행위가 아무리 낯설고, 믿을 수 없고,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살인에 대한 충동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
살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연쇄살인범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괴물’의 그림자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