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3개 배터리 메이커들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GM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의 배터리 단독 공급자로 결정돼
- LG화학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를 지난 2002년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익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 대회’에 참가시켰다.
“오바마 정부의 전기자동차 개발계획이 미국 자동차 시장을 아시아 업체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최근 CNN의 보도내용이다. CNN은 한 펀드 매니저의 입을 빌려 “전기자동차의 핵심기술 중 하나가 배터리 기술인데 이 분야는 한국, 일본, 중국이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며 “미국은 중동의 석유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의 배터리 업체에 종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 GM이 세계 최초로 양산할 전기자동차에 LG화학의 배터리를 채택하기로 한 것을 빗댄 말이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의 梁聖鎭(양성진) 선임연구원은 이런 평을 내놓았다.
“전기자동차는 기후와 공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국 정부와 자동차 메이커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동안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배터리 기술 문제 때문이었죠. 그런데 LG화학이 GM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게 됐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첫 단추를 한국 기업이 꿰었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의미가 있어요.”
전 세계 13개 배터리 메이커와 치열한 경합
지난 1월 13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자동차쇼 2009’에서 릭 왜고너 GM 회장과 金磐石(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가 2010년 量産(양산)할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Chevrolet Volt)’에 LG화학의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채택됐다고 발표했다.
2007년 3월 GM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개발업체 선정을 위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미국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13개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같은 해 6월 독일의 컨티넨탈社(사)와 한국의 LG화학이 최종 후보자로 선정됐다. 컨티넨탈은 세계 4위의 자동차부품 메이커. 1년여에 걸쳐 두 회사가 피를 말리는 경합을 벌인 결과 2008년 10월 LG화학이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이 사실이 이날 공식 발표된 것이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1년 동안 두 회사가 총력을 기울여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면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배터리 관련 기술력은 물론 컨티넨탈과 우리가 각각 GM 직원들과 팀을 짜서 일을 하도록 한 후 어떤 식으로 일할 수 있을지 팀워크까지 체크하더군요. GM이 최종 파트너를 결정하기까지 비용을 수백만 달러 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활을 걸고 매달린 결과 GM과 전기자동차 생산파트너가 되는 데 성공한 겁니다.”
GM은 시보레 볼트 외에 캐딜락 등 중대형 자동차 모델에도 전기자동차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GM의 파트너로서 GM이 개발하는 각종 모델의 전기자동차 생산 및 배터리 장착에 관여하게 된다. LG화학은 최근 GM이 우수 관련업체에 주는 ‘GM 우수공급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은 배터리
전기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다. 그러니까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에 국산 배터리가 장착된다는 뜻은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한국의 기술로 굴러간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LG화학이 미국 디트로이트에 연구법인인 CPI(Compact Power Inc.)를 설립,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지난 2000년 10월이니, 8년여 만에 결실을 얻은 셈이다.
시보레 볼트는 세계 최초로 市販(시판)되는 전기자동차다.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HEV: Hybrid Electric Vehicle)와 전기자동차(EREV 또는 EV: 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등 친환경 자동차가 관련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는 ‘시보레 볼트’가 세계 최초다.
전기자동차는 기존의 가솔린 엔진과 배터리 두 가지가 주행 수단이던 기존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달리 순수하게 배터리의 힘으로 달린다. 즉 배터리 기술이 상용화의 핵심이고, 배터리의 성능이 곧 자동차의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첫 양산형 전기자동차에 어느 업체의 배터리가 적용될 것인가는 전 세계 자동차업계 및 배터리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금까지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자동차에 탑재될 만큼 안전성을 확보했느냐 하는 점이 의문시돼 왔다. 도요타나 혼다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도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의 안전성을 이유로 전기자동차 양산을 미루고 있었다. 배터리의 성능이나 용량도 문제였다. 한 번 주행을 위해 수 시간을 충전하는 데 허비해야 한다면 과연 전기자동차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개발비용 때문에 일반자동차보다 비싼 가격도 문제였다.
GM은 LG화학의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수년에 걸쳐 평가한 결과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판단, 양산을 결정했다. LG화학은 2010년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6년간 GM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단독 공급한다.
2010년 선보일 시보레 볼트는 한 번 전기를 충전하면 최대 64㎞(40마일)를 주행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는 차량 내에 발전기가 있어 주행을 하면서 전기를 생산하여 배터리에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충전으로 최대 70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릭 왜고너 GM 회장은 “전기자동차는 GM의 미래를 결정할 중차대한 프로젝트”라고 그동안 수차례 언급했다. GM 외에도 포드, 도요타 등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자동차 양산을 시도했지만 결국 GM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전세계 유일의 화학기반 배터리 메이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이번 GM에 전기자동차 배터리 단독 공급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GM에 배터리 공급은 LG화학 60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업입니다. 그 결과를 정확한 수치로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큽니다. 물론 매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전기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인데요. GM과 LG화학은 어떻게 역할분담을 하게 됩니까?
“배터리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셀과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은 LG화학이 개발과 양산을 담당하고, 배터리 팩 생산과 이 배터리가 자동차에 적용되는 시스템 개발은 GM과 LG화학이 공동 수행하고 있습니다. BMS란 배터리의 상태를 최적의 조건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배터리 시스템을 자동관리함과 동시에 배터리 교체시기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배터리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배터리 및 자동차 운영체계를 LG화학이 담당하는 셈이죠.”
―LG화학은 배터리산업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데, 어떻게 최첨단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단독 공급자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까.
“중요한 이유는 우리 회사가 전 세계 배터리 메이커 중 유일하게 화학에 기반을 둔 회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배터리 메이커들과는 달리 차별화한 소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각종 배터리 구성물질 개발에 유리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 신뢰도 면에서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전기자동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안전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LG화학은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했습니까.
“경쟁사들은 코발트계 양극재(리튬의 공급원으로, 전지 내에 전기에너지를 저장 및 방출할 수 있게 하는 주원료― 편집자 주)를 사용하는데 비해 우리는 안전성이 뛰어난 망간계 양극재를 사용했습니다. 또 우리가 특허를 낸 안전성 강화 분리막을 사용해 셀 자체의 안전성을 확보했어요. 이밖에 캔(can) 형태가 아닌 파우치(pouch) 형태를 도입, 표면적을 넓혀 폭발 위험을 줄이고 열 발산이 쉽도록 하는 등 기술개발 초기부터 안전성 확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배터리 가격과 수명은 어떻게 됩니까.
“시보레 볼트 차량의 판매가가 확정되지 않아서 배터리 가격을 말씀 드릴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배터리의 수명은 차량 수명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기자동차는 기존 가솔린 차량에 비해 얼마나 경제적입니까.
“유가를 L당 633원으로 계산하자면(미국 내 가격 적용―편집자 주), 일반 가솔린 차량의 경우 1km 주행에 52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전기자동차는 1km 주행에 17원이면 충분합니다. 배터리 방전 이후에도 21km를 더 달릴 수 있어 일반차량과의 연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봐야죠.”
국내 화학업계의 선두주자인 LG화학은 현재 노트북과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소형전지와 로봇, 전기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중대형 전지(2차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사업의 매출 규모는 회사 전체 매출의 5% 미만이지만, 이익 규모는 전체의 10%가 넘는다. 배터리 분야가 타 사업 분야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배터리 사업 매출도 2007년 6485억원에서 2008년 81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성장했다.
咸在慶(함재경) LG화학 전지·휴대폰사업담당 상무는 “우리 회사는 배터리 분야는 사업 개시 10여 년 만에 드디어 회사의 핵심사업이자 미래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면서 “올해 배터리 사업 부문에서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터리 도전 10년 만의 성과
석유화학업체였던 LG화학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 전량 의존하고 있던 2차전지 국산화에 도전했다. 이 회사가 국내 최초로 소형 2차전지 양산에 성공한 것은 1999년. 그러나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니다. 함 상무의 설명.
“석유화학과 건축자재 등이 주력사업이었던 우리 회사가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품질 문제를 지적받기도 했고, 당시 세계적으로 2차전지가 공급과잉 상태여서 경영에 심각한 압박을 받기도 했어요.”
1999년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지만 경영성과는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배터리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2000년부터 시작된 IT 열풍이었다. 노트북과 휴대폰 등 관련산업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2차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업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은 2007년 상반기까지 적자 상태를 면치 못했다. 연구개발비와 초기 투자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하반기에야 겨우 흑자구조로 들어섰고, 지난해에는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모토롤라에 납품을 시작했으며 HP, 델 등 글로벌 노트북 업체와도 장기공급 계약을 맺었다.
LG화학은 2000년 10월에는 전기자동차형 중대형 전지에 대한 연구개발을 위해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국 디트로이트에 중대형 전지 연구법인인 CPI를 설립했다. 이 CPI를 통해 LG화학은 GM에 전기자동차 배터리 단독 공급 계약을 따낸 것이다.
LG화학은 CPI를 설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동차형 중대형 전지 연구개발에 돌입했다. 2002년 7월과 2003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익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에서 LG화학의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8월에는 미 에너지성(DOE, Department of Energy)과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의 컨소시엄인 USABC(US Advanced Battery Consortium)로부터 460만 달러 규모의 중대형 전지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현재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량은 국내 2300만 셀(배터리 단위), 해외 500만 셀 등 총 2800만 셀로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오는 2013년까지 소형 전지에 7000억원, 중대형 전지에 1조원 등 1조70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전지메이커로의 성장 계획을 세우고 있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산요 등에 비하면 후발주자다. 일본 업체들은 1990년대 초부터 하이브리드 차량(HEV)용 배터리에 도전하여 니켈수소 배터리를 개발했다. 현재도 하이브리드 차량용 니켈수소 배터리는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LG화학이 내놓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니켈수소 배터리에 비해 50% 이상 높은 출력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따라서 좀더 가볍고 콤팩트한 구조로 배터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가격은 니켈수소 배터리보다 5~15% 정도 비싼 편이지만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춰지면 가격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함 상무는 설명했다.
GM과 제휴로 세계 최초의 상용 전기자동차 생산에 참여하게 된 LG화학은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생산에도 최초로 참여하게 된다. 2009년 7월 국내 최초로 양산될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아반떼’에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기로 결정됐기 때문.
함 상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및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2012년 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LG화학은 기존 배터리 생산라인이 위치한 충북 오창 테크노파크에 2010년 상반기까지 GM 배터리 양산채비를 갖출 예정이다.
국내 기업, 미국 전기자동차 시장 선점
LG화학 측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번 독점공급 결정이 업계 전반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궁금했다. LG경제연구원 양성진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배터리 메이커와 자동차 메이커들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에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전기자동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 것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봐도 됩니까.
“아직 전기자동차 시장이 형성된 것이 아니어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능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업체들이 함께 경쟁해서 1위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죠.”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공급으로 미국이 전기자동차 주도권을 아시아에 뺏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자동차 대국인 미국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기술이 뒤떨어지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10여 년 전부터 전기자동차 관련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동차용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고, A123 같은 배터리업체도 자동차용 대형 배터리를 생산합니다. 이미 미국의 몇몇 州(주)에서는 근거리용 전기자동차(NEV : Neighborhood Electric Vehicle)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도 전기자동차 관련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어서 기술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LG화학 외에도 일본의 산요나 파나소닉, 우리나라의 SDI 같은 기업도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요.”
―그런 업체들을 제치고 LG화학이 이번 공급권을 따낸 거군요.
“배터리 사업은 일본 회사들이 먼저 시작했고 여러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일본 업체들이 자금난과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국내 업체들에 유리한 점이 있었지요.”
선발 美·日 기업을 추월한 이유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의문점이 여전히 제기됩니다. 국내에서 노트북의 배터리 폭발사고도 있었고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의 안전성은 개선이 되고 있습니까.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가장 큰 과제는 배터리의 안전성입니다. 용량 등 성능은 계속 개선되고 있지만, 솔직히 상용화돼서 몇 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GM 역시 수년에 걸쳐 안전성 테스트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 黃常圭(황상규) 박사는 “미국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력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국내 기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은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황 박사와의 대화 내용.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GM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GM은 지금까지 수차례 전기자동차 양산을 시도해 왔다가 석유업체의 로비 등에 밀려 포기했어요. 그런데 경제위기와 미국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전 세계가 ‘친환경 녹색성장’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GM도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기 위해 전기자동차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사업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방향과 맞물려 큰 성장을 하리라 봅니다. 모든 산업은 초기시장 선점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공급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거죠. 단순히 국내 기업이 미국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일본과 미국 배터리 업체들을 제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실 LG화학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일본과 미국 업체들은 10년 이상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전기자동차 양산이 계속 미뤄졌고, 이 와중에 그동안 기술을 축적한 LG화학이 깃발을 꽂은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기술이 세계 정상이란 사실이 밝혀졌는데,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먼저 전기자동차를 생산할 순 없었을까요.
“아직 제도적인 문제가 복잡합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관련법 때문에 양산이 늦어졌으니까요. 한국도 미국처럼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빠른 시일 내에 양산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변화의 바람, ‘스피드 경영’
이번에 LG화학이 GM과의 합작 건으로 주목을 받게 됐지만, LG화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7월 김반석 부회장이 CEO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당시 高油價(고유가)와 환율하락, 중국의 추격 등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침체기였다.
김 부회장은 취임 직후 “남보다 먼저(Early), 빨리(Fast), 제때(On Time), 실시간(Real Time)에 자주 행동하자”면서 스피드 경영을 선포했다. 김 부회장은 “최근 배터리 사업이 오랜 부진을 털고 큰 성과를 내놓은 것은 스피드 경영의 성과”라고 自評(자평)했다. 다음은 김 부회장과의 대화다.
―스피드 경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E(역량)=M(자원)×C(속도)²이라는 공식입니다. 속도가 두 배가 되면 역량은 네 배로 급증하고, 반대로 속도가 2분의 1이 되면 역량은 4분의 1로 약화된다는 거죠. 제가 취임할 때만 해도 LG화학은 몇 년 동안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스피드 경영을 내세운 겁니다.”
―최근 같은 경기침체기에 스피드 경영을 강조한다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지만 반드시 스피디한 것이 絶對善(절대선)이 될 수 없는 것이 경영현장 아닌가요.
“스피드 경영은 외부 여건이 악화될 때일수록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비용절감과 고객만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남보다 먼저 가격을 낮춰 제품을 싸게 생산하고, 고객에게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빨리 제공한다는 거죠.”
스피드 경영 덕인지 LG화학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14조4878억원으로 전년 대비 34.2%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7.2% 증가한 1조4296억원에 달했다. 2008년 국내에서 영업이익 1조원이 넘는 기업은 6곳(SK에너지, LG화학,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대우조선해양, LG전자)에 불과했다. 이른바 ‘1조원 클럽’에 처음으로 가입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3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스피드 경영이 모든 사업부문과 임직원 개개인의 마음 속에 스며들면서 위기에 강한 체질을 만든 덕분”이라고 말했다.⊙
▣ 친환경 자동차의 과거·현재·미래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이 심화되면서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석유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여러 메이커에서 다양한 친환경 차량들을 선보였지만 궁극적인 친환경 자동차는 배터리만으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다. 현재는 100% 전기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는 상용화되지 않았으며, 전기자동차로 가는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시판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솔린 엔진과 배터리를 동시에 장착, 가솔린과 전기 양쪽 모두를 주행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다. 2000년 말 선보인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하이브리드 자동차이며, 현재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판매, 전 세계 7200만대의 자동차 중 하이브리드카는 약 70만대로 0.9%를 차지하고 있다. 환경규제와 석유고갈 우려 등으로 향후 관련시장 규모가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자동차는 충전용 배터리를 장착, 주행 초기에는 미리 충전한 배터리로 주행하며, 주행하는 동안 자동 충전된 전력으로 계속 주행할 수 있다. 2010년 GM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모두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배터리가 필요한데,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일본업체(파나소닉EV에너지, AESC, 산요)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한발 늦은 2000년대에 들어 LG화학과 SDI 등이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95% 이상이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니켈수소 배터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사용된 배터리로, 안정적이지만 방전이 잘되며 중량이 무거운 단점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용량이 크고 무게가 가볍지만 불안정해 폭발 우려가 있는 것이 단점.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유동성이 있어 어떤 모양으로도 쉽게 제조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성이 커 초경량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리튬이온·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니켈수소 배터리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이 단점이었지만, 양산이 시작되면서 가격이 점차 내려가고 있다. 관련업계는 2015년 이후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CNN의 보도내용이다. CNN은 한 펀드 매니저의 입을 빌려 “전기자동차의 핵심기술 중 하나가 배터리 기술인데 이 분야는 한국, 일본, 중국이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며 “미국은 중동의 석유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의 배터리 업체에 종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 GM이 세계 최초로 양산할 전기자동차에 LG화학의 배터리를 채택하기로 한 것을 빗댄 말이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의 梁聖鎭(양성진) 선임연구원은 이런 평을 내놓았다.
“전기자동차는 기후와 공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국 정부와 자동차 메이커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동안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배터리 기술 문제 때문이었죠. 그런데 LG화학이 GM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게 됐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첫 단추를 한국 기업이 꿰었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의미가 있어요.”
전 세계 13개 배터리 메이커와 치열한 경합
지난 1월 13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자동차쇼 2009’에서 릭 왜고너 GM 회장과 金磐石(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가 2010년 量産(양산)할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Chevrolet Volt)’에 LG화학의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채택됐다고 발표했다.
2007년 3월 GM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개발업체 선정을 위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미국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13개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같은 해 6월 독일의 컨티넨탈社(사)와 한국의 LG화학이 최종 후보자로 선정됐다. 컨티넨탈은 세계 4위의 자동차부품 메이커. 1년여에 걸쳐 두 회사가 피를 말리는 경합을 벌인 결과 2008년 10월 LG화학이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이 사실이 이날 공식 발표된 것이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1년 동안 두 회사가 총력을 기울여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면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배터리 관련 기술력은 물론 컨티넨탈과 우리가 각각 GM 직원들과 팀을 짜서 일을 하도록 한 후 어떤 식으로 일할 수 있을지 팀워크까지 체크하더군요. GM이 최종 파트너를 결정하기까지 비용을 수백만 달러 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활을 걸고 매달린 결과 GM과 전기자동차 생산파트너가 되는 데 성공한 겁니다.”
GM은 시보레 볼트 외에 캐딜락 등 중대형 자동차 모델에도 전기자동차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GM의 파트너로서 GM이 개발하는 각종 모델의 전기자동차 생산 및 배터리 장착에 관여하게 된다. LG화학은 최근 GM이 우수 관련업체에 주는 ‘GM 우수공급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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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전기자동차인 ‘시보레 볼트’의 내부 구조도. |
전기자동차의 핵심은 배터리
전기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다. 그러니까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에 국산 배터리가 장착된다는 뜻은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한국의 기술로 굴러간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LG화학이 미국 디트로이트에 연구법인인 CPI(Compact Power Inc.)를 설립,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지난 2000년 10월이니, 8년여 만에 결실을 얻은 셈이다.
시보레 볼트는 세계 최초로 市販(시판)되는 전기자동차다.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HEV: Hybrid Electric Vehicle)와 전기자동차(EREV 또는 EV: 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등 친환경 자동차가 관련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는 ‘시보레 볼트’가 세계 최초다.
전기자동차는 기존의 가솔린 엔진과 배터리 두 가지가 주행 수단이던 기존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달리 순수하게 배터리의 힘으로 달린다. 즉 배터리 기술이 상용화의 핵심이고, 배터리의 성능이 곧 자동차의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첫 양산형 전기자동차에 어느 업체의 배터리가 적용될 것인가는 전 세계 자동차업계 및 배터리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금까지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자동차에 탑재될 만큼 안전성을 확보했느냐 하는 점이 의문시돼 왔다. 도요타나 혼다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도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의 안전성을 이유로 전기자동차 양산을 미루고 있었다. 배터리의 성능이나 용량도 문제였다. 한 번 주행을 위해 수 시간을 충전하는 데 허비해야 한다면 과연 전기자동차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개발비용 때문에 일반자동차보다 비싼 가격도 문제였다.
GM은 LG화학의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수년에 걸쳐 평가한 결과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판단, 양산을 결정했다. LG화학은 2010년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6년간 GM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단독 공급한다.
2010년 선보일 시보레 볼트는 한 번 전기를 충전하면 최대 64㎞(40마일)를 주행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는 차량 내에 발전기가 있어 주행을 하면서 전기를 생산하여 배터리에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충전으로 최대 70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릭 왜고너 GM 회장은 “전기자동차는 GM의 미래를 결정할 중차대한 프로젝트”라고 그동안 수차례 언급했다. GM 외에도 포드, 도요타 등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자동차 양산을 시도했지만 결국 GM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전세계 유일의 화학기반 배터리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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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화학 金磐石 부회장은 “세계 최초 상용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LG화학 60여 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
“이번 GM에 배터리 공급은 LG화학 60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업입니다. 그 결과를 정확한 수치로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큽니다. 물론 매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전기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인데요. GM과 LG화학은 어떻게 역할분담을 하게 됩니까?
“배터리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셀과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은 LG화학이 개발과 양산을 담당하고, 배터리 팩 생산과 이 배터리가 자동차에 적용되는 시스템 개발은 GM과 LG화학이 공동 수행하고 있습니다. BMS란 배터리의 상태를 최적의 조건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배터리 시스템을 자동관리함과 동시에 배터리 교체시기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배터리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배터리 및 자동차 운영체계를 LG화학이 담당하는 셈이죠.”
―LG화학은 배터리산업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데, 어떻게 최첨단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단독 공급자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까.
“중요한 이유는 우리 회사가 전 세계 배터리 메이커 중 유일하게 화학에 기반을 둔 회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배터리 메이커들과는 달리 차별화한 소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각종 배터리 구성물질 개발에 유리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 신뢰도 면에서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전기자동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안전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LG화학은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했습니까.
“경쟁사들은 코발트계 양극재(리튬의 공급원으로, 전지 내에 전기에너지를 저장 및 방출할 수 있게 하는 주원료― 편집자 주)를 사용하는데 비해 우리는 안전성이 뛰어난 망간계 양극재를 사용했습니다. 또 우리가 특허를 낸 안전성 강화 분리막을 사용해 셀 자체의 안전성을 확보했어요. 이밖에 캔(can) 형태가 아닌 파우치(pouch) 형태를 도입, 표면적을 넓혀 폭발 위험을 줄이고 열 발산이 쉽도록 하는 등 기술개발 초기부터 안전성 확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배터리 가격과 수명은 어떻게 됩니까.
“시보레 볼트 차량의 판매가가 확정되지 않아서 배터리 가격을 말씀 드릴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배터리의 수명은 차량 수명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기자동차는 기존 가솔린 차량에 비해 얼마나 경제적입니까.
“유가를 L당 633원으로 계산하자면(미국 내 가격 적용―편집자 주), 일반 가솔린 차량의 경우 1km 주행에 52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전기자동차는 1km 주행에 17원이면 충분합니다. 배터리 방전 이후에도 21km를 더 달릴 수 있어 일반차량과의 연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봐야죠.”
국내 화학업계의 선두주자인 LG화학은 현재 노트북과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소형전지와 로봇, 전기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중대형 전지(2차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사업의 매출 규모는 회사 전체 매출의 5% 미만이지만, 이익 규모는 전체의 10%가 넘는다. 배터리 분야가 타 사업 분야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배터리 사업 매출도 2007년 6485억원에서 2008년 81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성장했다.
咸在慶(함재경) LG화학 전지·휴대폰사업담당 상무는 “우리 회사는 배터리 분야는 사업 개시 10여 년 만에 드디어 회사의 핵심사업이자 미래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면서 “올해 배터리 사업 부문에서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터리 도전 10년 만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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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보레 볼트에 장착될 LG화학의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
“석유화학과 건축자재 등이 주력사업이었던 우리 회사가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품질 문제를 지적받기도 했고, 당시 세계적으로 2차전지가 공급과잉 상태여서 경영에 심각한 압박을 받기도 했어요.”
1999년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지만 경영성과는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배터리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2000년부터 시작된 IT 열풍이었다. 노트북과 휴대폰 등 관련산업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2차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업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은 2007년 상반기까지 적자 상태를 면치 못했다. 연구개발비와 초기 투자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하반기에야 겨우 흑자구조로 들어섰고, 지난해에는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모토롤라에 납품을 시작했으며 HP, 델 등 글로벌 노트북 업체와도 장기공급 계약을 맺었다.
LG화학은 2000년 10월에는 전기자동차형 중대형 전지에 대한 연구개발을 위해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국 디트로이트에 중대형 전지 연구법인인 CPI를 설립했다. 이 CPI를 통해 LG화학은 GM에 전기자동차 배터리 단독 공급 계약을 따낸 것이다.
LG화학은 CPI를 설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동차형 중대형 전지 연구개발에 돌입했다. 2002년 7월과 2003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익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에서 LG화학의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8월에는 미 에너지성(DOE, Department of Energy)과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의 컨소시엄인 USABC(US Advanced Battery Consortium)로부터 460만 달러 규모의 중대형 전지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현재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량은 국내 2300만 셀(배터리 단위), 해외 500만 셀 등 총 2800만 셀로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오는 2013년까지 소형 전지에 7000억원, 중대형 전지에 1조원 등 1조70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전지메이커로의 성장 계획을 세우고 있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산요 등에 비하면 후발주자다. 일본 업체들은 1990년대 초부터 하이브리드 차량(HEV)용 배터리에 도전하여 니켈수소 배터리를 개발했다. 현재도 하이브리드 차량용 니켈수소 배터리는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LG화학이 내놓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니켈수소 배터리에 비해 50% 이상 높은 출력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따라서 좀더 가볍고 콤팩트한 구조로 배터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가격은 니켈수소 배터리보다 5~15% 정도 비싼 편이지만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춰지면 가격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함 상무는 설명했다.
GM과 제휴로 세계 최초의 상용 전기자동차 생산에 참여하게 된 LG화학은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생산에도 최초로 참여하게 된다. 2009년 7월 국내 최초로 양산될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아반떼’에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기로 결정됐기 때문.
함 상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및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2012년 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LG화학은 기존 배터리 생산라인이 위치한 충북 오창 테크노파크에 2010년 상반기까지 GM 배터리 양산채비를 갖출 예정이다.
국내 기업, 미국 전기자동차 시장 선점
LG화학 측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번 독점공급 결정이 업계 전반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궁금했다. LG경제연구원 양성진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배터리 메이커와 자동차 메이커들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에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전기자동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 것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봐도 됩니까.
“아직 전기자동차 시장이 형성된 것이 아니어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능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업체들이 함께 경쟁해서 1위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죠.”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공급으로 미국이 전기자동차 주도권을 아시아에 뺏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자동차 대국인 미국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기술이 뒤떨어지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10여 년 전부터 전기자동차 관련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동차용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고, A123 같은 배터리업체도 자동차용 대형 배터리를 생산합니다. 이미 미국의 몇몇 州(주)에서는 근거리용 전기자동차(NEV : Neighborhood Electric Vehicle)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도 전기자동차 관련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어서 기술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LG화학 외에도 일본의 산요나 파나소닉, 우리나라의 SDI 같은 기업도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요.”
―그런 업체들을 제치고 LG화학이 이번 공급권을 따낸 거군요.
“배터리 사업은 일본 회사들이 먼저 시작했고 여러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일본 업체들이 자금난과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국내 업체들에 유리한 점이 있었지요.”
선발 美·日 기업을 추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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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자동차쇼에 출품된‘시보레 볼트’앞에서 김 부회장(왼쪽)과 GM 릭 왜고너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가장 큰 과제는 배터리의 안전성입니다. 용량 등 성능은 계속 개선되고 있지만, 솔직히 상용화돼서 몇 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GM 역시 수년에 걸쳐 안전성 테스트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 黃常圭(황상규) 박사는 “미국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력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국내 기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은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황 박사와의 대화 내용.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GM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GM은 지금까지 수차례 전기자동차 양산을 시도해 왔다가 석유업체의 로비 등에 밀려 포기했어요. 그런데 경제위기와 미국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전 세계가 ‘친환경 녹색성장’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GM도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기 위해 전기자동차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사업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방향과 맞물려 큰 성장을 하리라 봅니다. 모든 산업은 초기시장 선점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공급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거죠. 단순히 국내 기업이 미국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일본과 미국 배터리 업체들을 제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실 LG화학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일본과 미국 업체들은 10년 이상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전기자동차 양산이 계속 미뤄졌고, 이 와중에 그동안 기술을 축적한 LG화학이 깃발을 꽂은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기술이 세계 정상이란 사실이 밝혀졌는데,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먼저 전기자동차를 생산할 순 없었을까요.
“아직 제도적인 문제가 복잡합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관련법 때문에 양산이 늦어졌으니까요. 한국도 미국처럼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빠른 시일 내에 양산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변화의 바람, ‘스피드 경영’
이번에 LG화학이 GM과의 합작 건으로 주목을 받게 됐지만, LG화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7월 김반석 부회장이 CEO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당시 高油價(고유가)와 환율하락, 중국의 추격 등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침체기였다.
김 부회장은 취임 직후 “남보다 먼저(Early), 빨리(Fast), 제때(On Time), 실시간(Real Time)에 자주 행동하자”면서 스피드 경영을 선포했다. 김 부회장은 “최근 배터리 사업이 오랜 부진을 털고 큰 성과를 내놓은 것은 스피드 경영의 성과”라고 自評(자평)했다. 다음은 김 부회장과의 대화다.
―스피드 경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E(역량)=M(자원)×C(속도)²이라는 공식입니다. 속도가 두 배가 되면 역량은 네 배로 급증하고, 반대로 속도가 2분의 1이 되면 역량은 4분의 1로 약화된다는 거죠. 제가 취임할 때만 해도 LG화학은 몇 년 동안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스피드 경영을 내세운 겁니다.”
―최근 같은 경기침체기에 스피드 경영을 강조한다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지만 반드시 스피디한 것이 絶對善(절대선)이 될 수 없는 것이 경영현장 아닌가요.
“스피드 경영은 외부 여건이 악화될 때일수록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비용절감과 고객만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남보다 먼저 가격을 낮춰 제품을 싸게 생산하고, 고객에게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빨리 제공한다는 거죠.”
스피드 경영 덕인지 LG화학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14조4878억원으로 전년 대비 34.2%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7.2% 증가한 1조4296억원에 달했다. 2008년 국내에서 영업이익 1조원이 넘는 기업은 6곳(SK에너지, LG화학,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대우조선해양, LG전자)에 불과했다. 이른바 ‘1조원 클럽’에 처음으로 가입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3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스피드 경영이 모든 사업부문과 임직원 개개인의 마음 속에 스며들면서 위기에 강한 체질을 만든 덕분”이라고 말했다.⊙
▣ 친환경 자동차의 과거·현재·미래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이 심화되면서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석유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여러 메이커에서 다양한 친환경 차량들을 선보였지만 궁극적인 친환경 자동차는 배터리만으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다. 현재는 100% 전기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는 상용화되지 않았으며, 전기자동차로 가는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시판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솔린 엔진과 배터리를 동시에 장착, 가솔린과 전기 양쪽 모두를 주행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다. 2000년 말 선보인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하이브리드 자동차이며, 현재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판매, 전 세계 7200만대의 자동차 중 하이브리드카는 약 70만대로 0.9%를 차지하고 있다. 환경규제와 석유고갈 우려 등으로 향후 관련시장 규모가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자동차는 충전용 배터리를 장착, 주행 초기에는 미리 충전한 배터리로 주행하며, 주행하는 동안 자동 충전된 전력으로 계속 주행할 수 있다. 2010년 GM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모두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배터리가 필요한데,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일본업체(파나소닉EV에너지, AESC, 산요)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한발 늦은 2000년대에 들어 LG화학과 SDI 등이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95% 이상이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니켈수소 배터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사용된 배터리로, 안정적이지만 방전이 잘되며 중량이 무거운 단점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용량이 크고 무게가 가볍지만 불안정해 폭발 우려가 있는 것이 단점.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유동성이 있어 어떤 모양으로도 쉽게 제조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성이 커 초경량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리튬이온·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니켈수소 배터리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이 단점이었지만, 양산이 시작되면서 가격이 점차 내려가고 있다. 관련업계는 2015년 이후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가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