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을 우량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파산 직전의 불량기업은 아니었다
⊙ 김형오 공관위는 보수 기득권층이면서 ‘강남좌파’처럼 보수진영에 비판적·적대적인 ‘와인바 보수주의자’
⊙ 와인바 보수주의자는 엘리트주의, 좌파적 경제·사회 정책 추구 측면에서 강남좌파와 유사
⊙ 와인바 보수주의자가 주장하는 ‘左클릭·중도확장론’은 허구
⊙ 민노총의 특권 등 공격하면서 먹고사는 문제 代案 제시해야
김장수
1967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국 뉴욕주립대 정치학 박사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론조사팀장,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미래통합당 경기광주을(乙) 당협위원장 역임
⊙ 김형오 공관위는 보수 기득권층이면서 ‘강남좌파’처럼 보수진영에 비판적·적대적인 ‘와인바 보수주의자’
⊙ 와인바 보수주의자는 엘리트주의, 좌파적 경제·사회 정책 추구 측면에서 강남좌파와 유사
⊙ 와인바 보수주의자가 주장하는 ‘左클릭·중도확장론’은 허구
⊙ 민노총의 특권 등 공격하면서 먹고사는 문제 代案 제시해야
김장수
1967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국 뉴욕주립대 정치학 박사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론조사팀장,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미래통합당 경기광주을(乙) 당협위원장 역임
- 2020년 1월 23일 황교안 대표는 김형오 위원장 등 공천관리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진=조선DB
선거 승패를 예측하기 힘든 두 나라가 있다.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45% 정도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상황에서 부동층(浮動層) 10%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경쟁한다. 양당(兩黨) 모두 성공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결국 2~3% 이내에서 승패(勝敗)가 결정된다. 한국의 경우 승패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같아 보이지만, 그 이유는 정반대다. 경쟁하는 보수와 진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못 해도 너무 못 하기 때문에, 즉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못 하기 때문에 선거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다.
탈원전(脫原電)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밀어붙이는 문재인(文在寅) 정부에 빗대어 “개인이 자살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한 국가가 자살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는 외국 석학의 비아냥이 유행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화신 조국(曺國) 지키기에 올인한 민주당을 심판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도 확산되어 있었다.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은 이렇듯 궁색한 처지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한 것이다.
복수 血戰
보수 대(對) 진보 간 진영대결 관점에서 보면, 2007년 제17대 대선(大選)에서 65대 35로 압승한 보수진영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당시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후보는 그보다 5년 전 노무현(盧武鉉) 당선의 일등공신이던 2030 젊은 유권자에서도 상당한 차이로 승리하였다. 그로 인한 지나친 자신감이 오만으로 이어진다. 대선에서 압승한 친이계(親李系)에 의한 친박계(親朴系) 공천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2008년 공천 파동의 피해자던 친박계가 2012년 총선(總選)과 대선 승리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2016년 총선에서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친박계의 주도하에 당내 잠재적 경쟁세력을 배제한 ‘진박(眞朴)’ 공천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집권 여당이 122석에 그친 극심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이 형성된다. 2016년 총선 패배로 형성된 여소야대 국면과 보수 분열이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다.
보수 분열의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탄핵 이후에도 친박과 비박(非朴) 간의 극심한 계파 갈등이 멈추지 않고 결국 탄핵 찬성파의 탈당(脫黨)과 2017년 대선 패배로 이어진다.
지난 4·15 총선 또한 명목상 보수 대통합을 이뤘지만, 공천 과정에서 보수 분열과 복수혈전은 그대로였다. 4년 전 진박 공천의 피해자가 이번에는 가해자로 배역을 바꾸어 등장한다. 복수혈전이 펼쳐지는 속편은 전편보다 더 극적이고 잔인한 법이다. 복수혈전의 주역으로 나선 김형오(金炯旿) 공천관리위원회는 탄핵찬성-탈당파들의 전면배치를 위해 그간 자유한국당을 지켜온, 그들 입장에서는 당에 잔류해온 보수 ‘적폐세력’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한다. 공관위 스스로 공표한 ‘이기는 공천’ ‘혁신공천’이라는 원칙과 당헌·당규가 규정한 공천 배제의 기준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보수진영의 대의(大義)에 복무하는 공적(公的) 활동이 아니라 사적(私的)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천(私薦),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한 계파공천이라는 김형오 공관위의 막장 드라마는 보수 텃밭으로 불리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강남 3구와 영남을 주무대로 펼쳐지지만,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합지역, 수도권 전략지역에는 기존 자유한국당 후보들을 공천 배제한 후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김형오-김세연 키즈들을 점령군처럼 전략공천한다.
공천 파동으로 핵심 지지층부터 흔들려
미래통합당에는 매달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 있다. 수도권의 경우, 지역구 한 곳당 평균 1000명의 책임당원이 있다. 조국 반대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하루 최대 인원이 50만명을 넘었다. 이를 전국 253개 지역구로 나누면, 지역구당 평균 대략 2000명이다. 최소한 지역구당 평균 2000~3000명의 핵심 지지자가 있다는 의미다.
김형오 공관위의 자유한국당 출신 당협위원장에 대한 대학살과 낙하산 공천으로 가장 먼저 흔들린 세력이 이 2000~3000명에 달하는 핵심·열성 지지자들이었다. 지역구를 관리하던 기존 지역후보들에게 경선 기회도 보장하지 않은 불공정 공천에 대한 분노와 지역 연고와 활동이 전무한 낙하산 후보들에 대한 불만으로 핵심 지지자들부터 흔들렸다. “경선을 거치지 않은 전략공천과 지역 연고 없는 낙하산 공천은 당원과 지역구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소위 중도층 유권자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보수진영은 이번 총선이 대한민국을 몰락으로 이끌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선거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르는 중차대한 선거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중차대한 선거가 다시 계파공천, 사심공천 논란으로 얼룩졌다. 그것도 그동안 나름 합리적 개혁보수 이미지를 유지해온, 그래서 이번에는 계파공천이라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김형오 공관위가 주도하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선거 직전까지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핵심조직은 제대로 복원되지 않았고, 이탈한 중도층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탄핵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 코로나19로 인한 랠리(rally round the flag) 효과, 선거 막판에 터진 민경욱 등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 등의 막말 파동 등 다양한 요인이 참패 원인으로 거론된다. 잘못된 진단에서 올바른 처방전을 기대할 수 없다. 참패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되는 이유다.
원래 질 선거였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는 탄핵 이후 한국 정치의 상수(常數)였다. 상수도 감안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이로 돌리는 것은 정확한 원인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괜찮았는데 올해 성적이 나빠졌을 시 원래 기초 실력이 좋지 않았다는 일반론적인 설명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해에는 괜찮았고 올해 나빠졌다면 이에 영향을 준 변수를 찾는 것이 원인을 찾아가는 올바른 자세다.
공천 파동의 책임이 있는 공관위 핵심 멤버, 특히 김세연은 자신들에 대해 제기되는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지, “원래 패배할 선거였다”고 주장한다. 비호감이 높아 원래 크게 질 선거였는데, 자신들의 ‘개혁’ 공천으로 그나마 선방(善防)한 것이고, 이후 개혁 공천의 취지를 퇴색시킨 황교안(黃敎安) 전 대표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 후보 등의 막말 파동으로 참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처럼 애초부터 패배할 선거였는가? 아니다. 총선은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즉 기본적으로는 여당에 대한 심판선거다. 따라서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이 총선 승패를 예측하는 근사치를 제공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80%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이 2019년 3월부터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지난해 9월의 조국사태 이후 총선이 두어 달 남짓 남은 지난 2월까지 부정 평가가 앞서고 있었다. 하나 2월 넷째 주부터 이 견고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후 이 흐름은 더 심해져 4월 2주 차의 경우 긍정과 부정 비율이 12.1%까지 벌어지고 이 분위기에서 총선이 치러진 것이다. 만약 긍정과 부정 비율이 오차 범위 이내이던 3월 2주 차, 또는 공천 파동이 본격화되기 이전, 부정비율이 앞서던 2월 4주 차에 총선이 실시되었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미래통합당의 공천 파동이 미친 자멸적(自滅的) 결과에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황교안 전 대표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의 막말 파동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진 이후에 발생했다.
역대 최악의 공천 파동
지난 2월 말부터 미래통합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공천 파동이 연일 지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이 속설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2016년 총선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당대표던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親文) 세력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단일대오를 형성한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한두 곳을 제외하곤 공천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형식적으로는 보수 대통합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최악의 공천 파동이 발생하고 이것이 총선 참패로 직결됐다.
4·15 공천 파동은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M&A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자유한국당을 우량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파산 직전의 불량기업은 아니었다. 공천 파동이 있기 전까지 대통령 지지율 그래프가 이를 보여주는데, 정당 지지율 그래프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또한 최악의 공천 파동을 겪고도 얻은 전국 득표율 평균 42.5%가 이를 증명한다. 기업사냥꾼들은 연일 자유한국당의 약점만 드러내며 이대로 두면 회생하지 못할 불량기업이라며 무자비한 수술칼을 들이댔다. 이들의 칼날이 향한 곳은 탄핵 이후 어려운 시기에 당과 지역을 지킨 사람들이다.
보수진영의 텃밭이라 하는 강남 3구와 영남 지역에 소위 ‘듣보잡’들이 내리 꽂혔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의 비속어인데, 잡놈은 아닐지라도 지역에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을 위해 헌신한 노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전국적 지명도가 있지도 않은 ‘듣도 보도 못한’ 후보들이 강남과 영남 지역에 전략공천이 되었다. 당연히 공관위원들과의 사적 관계에 따른 공천이라는 사천 논란이 이어졌다.
탄핵에 찬성하여 탈당한 바른미래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 소속 전·현직 의원, 보수통합 과정에서 합류한 제3지대 인사 대부분이 텃밭이나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공천된 반면 탄핵 이후 당을 지킨 자유한국당 출신 당협위원장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반문(反文)투쟁에 앞장선 그룹 대부분이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강남과 영남 지역의 현역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현역의원도 이럴 정도인데, 원외(院外) 당협위원장의 공천 배제는 다반사였다. 물론 일부는 구제되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 내용과 질이다.
지역별로 선거판세의 유불리가 있다. 정치지형이라고도 한다. “자기 세력을 공천하여도 당선이 어렵거나, 자기 세력 중 출마할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만 당을 지켜온 자유한국당 출신들이 살아남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선(競選) 없이 자기 사람 심기’가 난무하였다.
청년 정치인의 싹을 자른 ‘청년벨트’ 전략공천
원칙 없는 돌려 막기 공천은 이번 ‘막장 공천’의 백미(白眉) 중 하나다. 항간에 ‘돌려 막기 3인방’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안상수·정우택·이종구 의원이 이 경우에 속한다. 영남 지역에서는 초·재선 의원들도 혁신 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공천 배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돌려 막기 3인방은 모두 3선 이상의 중진이고, 70세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자신의 지역구도 아닌 지역구에 경쟁력 있다는 명분으로 공천장을 쥐었지만 모두 역대 가장 큰 격차로 참패한다.
원칙 없는 돌려 막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초갑 당협위원장이었던 전옥현은 수십 년 전에 떠난 대전 서구을에서 경선을 치러 패배하고, 송파에서 활동하던 박종진은 인천 서구을에 공천된다. 영등포의 강명구를 동대문에서 경선에 부치는 등 이런 돌려 막기 공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 중 가장 최악의 사례가 소위 ‘퓨처메이커(future maker)’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청년벨트 전략공천이다.
취약한 청년 유권자를 공략하고 당의 세대교체를 위해서 청년 정치인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하에, 이미 김병준(金秉準) 비상대책위원장 시기에 수도권 10여 곳에 청년 당협위원장을 선정하였다. 김형오 공관위도 청년 정치인을 육성한다는 명목하에 11곳에 이르는 청년벨트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김형오 공관위의 본질인 계파 공천, 사심 공천의 연장선에 불과하였다. 김병준 비대위 시절에 임명되어 1년 넘게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위원장들도 김형오 공관위의 공천학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청년벨트라는 명목하에 남양주을에 전략공천된 김용식은 원래 노원병의 당협위원장이었다. 이 지역에 이준석 최고위원을 전략공천하기 위해 김용식을 빼내면서 남양주을 공천 파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강동의 윤희석 위원장은 이수희 전략공천에 밀려 배제되었고, 송파에서 1년 넘게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해온 김성용은 김근식 전략공천의 희생양이 되었다. 안양의 김승 위원장은 연고가 없는 시흥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10여 명의 자유한국당 출신 청년 당협위원장 중 공천장을 쥔 분당의 김민수와 김포의 박진호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청년벨트라는 명분하에 다른 지역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청년벨트의 공천장을 받은 청년들은 바른미래당이나 국민의당 등에서 활동하다가 합류한 인사들이었다.
청년벨트로 지정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기존 후보들은 모두 공천에서 배제된다. 남양주을의 경우 3선 시장 출신의 이석우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청년벨트로 지정된 지역 대부분이 기존 후보의 무소속 출마라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역 출신 후보들・핵심 당원들과 적대적 구도가 형성되면서 내려간 청년 후보들이 이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세력을 전략공천하기 위해 기존의 청년 당협위원장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김형오 공관위가 임시방편으로 내걸은 청년벨트는 결국 1년여 넘게 준비해오던 청년 정치의 싹을 자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강남좌파’와 ‘와인바 보수주의자’
김형오 공관위의 주축 멤버와 이들이 전략공천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적지 않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보와 보수 양 진영 간 대결구도가 더욱 선명해졌다.
김형오 공관위는 보수진영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진영 간 대결구도에서 양비론적(兩非論的) 태도를 취하는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실제 이들의 비판의 칼날은 진보진영과 문재인 정부보다는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을 향한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 생명력을 잃은 좀비 정당이므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김세연 의원의 저주에 가까운 막말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또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의 최상류층에 속하거나, 보수정치 기득권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득권층이라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강남좌파 집단과 사회·경제적 기반 면에서 유사하다. ‘강남좌파’는 기득권을 향유하지만 좌파적 언사를 구사하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인사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와인바 보수주의자’는 보수진영에 속한 기득권층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강남좌파와 마찬가지로 보수진영에 비판적·적대적인 보수인사들로 규정된다. 이들은 또한 양비론적 공리공담(空理空談)을 즐기면서 일반 보수 유권자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들과 강남좌파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이 더 주의를 요하는 공통점이다. 강남좌파와 마찬가지로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민주화, 최저임금 인상, 더 나아가 기본소득까지 좌파적 세계관과 가치를 구현한 정책대안(代案)들을 지지한다. 강남좌파는 현 체제의 기득권 향유 세력이라는 점에서 앞에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좌파의 세계관과 비전, 정책 노선에 충실한 집단이다. 이 점에서 강남좌파는 좌파의 이념·문화적 전위(前衛)이자 이를 확산시키는 선전·선동대 역할에 충실한 좌파의 골간이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와인바 보수주의자이다. 이들은 보수진영에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보는 역사관이나 세계관, 선호하는 비전과 정책 노선에서 우파진영보다는 좌파진영에 더 가깝다. 좌파적 세계관과 노선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자신은 우파진영에 속한 이중적 존재, 이것이 ‘와인바 보수’의 자기 정체성(正體性)이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진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실상 이들은 자신을 보수라고 분류하는 것도 마뜩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앞에 꼭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이려 한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또는 ‘중도적’ 보수라고. 이 모든 수식어는 보수는 개혁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전제하는 것이고, 이들은 앞에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실상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싶은 것이다.
‘左클릭’은 실패한 전략
보수정당과 유권자에 적대적이고, 좌파적 정책 대안을 지지하는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소위 중도확장론이다. 유권자 구성상 보수와 진보가 각각 35% 정도를 점하는 나라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30% 에 달하는 소위 ‘유동층(流動層)’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주장이다.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달리하는 유동층이 이념지형상의 중도유권자인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들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지 방법론과 관련되어 있다.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은 소위 ‘좌(左)클릭’ 전략을 내세운다. 즉 진보진영 정책 중 인기 있는 정책을 우리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신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선거 연구에서는 오래전 실패로 판명되어 폐기된 전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짝퉁’으로는 절대로 진품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웃의 자장면 전문식당이 잘된다고 이제까지 대표상품으로 짬뽕을 내세우던 식당이 우리도 이제부터 자장면 판다고 해서 전문식당처럼 잘되겠는가? 이와 동일한 이치다.
유권자는 지금 내세우는 정책의 액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주장하는 정당과 후보의 진정성(sincerity) 측면을 보고 선택한다. 일관성(coherence)이라고도 하는데, 이제까지 무상(無償)급식을 반대하던 정당이 선거에 불리해 보이니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다 해도 지지하지 않는다.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좌클릭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진품, 즉 보수의 가치를 반영한, 보수만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성과 일관성 양 측면에서 보수 가치와 부합하는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중에서 중도유권자도 지지하는 정책을 찾아내어 이를 선거의 핵심 어젠다로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중도확장 전략이다.
사실 우리나라 좌파진영과 와인바 보수주의자들만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다. OECD, IMF 등 국제기구는 물론 세계적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로 경제적 양극화(兩極化)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지적하는 재벌체제가 아니라 이중적 노동시장, 즉 양극화된 노동시장에 있다고 보고 있다.
保守의 가능성은 아직 있다

위 표는 역대 선거에서 진보진영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연령대별로 얻은 득표율을 정리한 것이다. 재건을 모색하는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
첫째, 나쁜 소식이다. 이대로 가면 보수진영의 선거 참패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타 군소(群小)정당이 얻은 표가 대략 10% 내외이므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합계는 90% 정도다. 90%에서 민주당 표를 빼면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 득표율이 나오는데, 20~40에서는 20~30%를 넘지 못한다. 이미 50대까지 49대 41로 밀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2030에서의 절대적 약세(弱勢)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후 선거에서도 패배가 자명하다.
둘째는 좋은 뉴스인데, 청년층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젊은 시절의 진보진영 지지를 그대로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오른쪽 현재의 40대는 20년 전에는 20대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20년 전 30대였던 지금의 50대의 진보진영 지지율은 20% 가까이 감소하였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은 지금의 20대가 그들의 10년 또는 20년 선배와 달리 진보진영 지지율이 압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 2030 젊은 세대에서 지지율이 낮은지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당을 해체하자는 패배주의와 청산주의가 해법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20대 청년들이 그들의 선배세대와 달리 진보진영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이유, 그들의 선배세대 또한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전의 일방적인 진보진영 지지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정책이 청년과 미래세대의 부담과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自覺)이다. 지금의 50대, 즉 왕년의 청년세대 또한 이 점에 대한 인식, 즉 문재인 정부의 좌파정책은 우리 자식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깨달음에 기인한다.
‘좌파 특권 해체’ 내세워야
강력한 경제, 국제 경쟁력, 작은 정부, 조세 감면, 재정 건전성 등 보수의 핵심가치가 자식세대를 걱정하는 50대는 물론 그들의 자식세대인 20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부합하여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여기다. 유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이승만(李承晩)의 복권(復權)이나 박근혜 탄핵은 이들에게는 우리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력을 다투는 저들만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가 풀린 다음의 부차적(副次的)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여러분이 취직이 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상층 정규직 시장에 속한 민노총의 특권만을 공고하게 하는 이중적 노동시장이 원인이고, 민노총의 특권만을 챙기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존속하는 한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될 수 없고, 공공부문의 특권을 유지하는 한 자영업자이거나 현재 전업주부, 또는 실업(失業) 상태인 당신의 노후(老後)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알려나가야 한다.
민노총의 특권 해체를 통한 공정한 경제, 공정한 일자리 보장, 공공부문 축소 및 특권 해체라는 보수 정통 가치에 기반한 노동시장과 공공부문 혁신방안이 보수 정당의 대표 상품이 되어야 한다. 민노총에 대한 반감,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공공부문 축소에 대한 공감대 확산 등 이 모든 것이 여론조사에서는 오래전부터 확인되고 있다.
요약하면, 보수의 가치와 정책 대안을 버리고 좌파진영에 투항하는 좌클릭을 주장하는 와인바 보수주의는 절대로 보수 재건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보수 가치에 충실하면서 이를 현재 대한민국에 ‘실재(實在)하는’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대한민국 위기 극복의 유일한 해법이다. 그 과정에서 그간의 정책 개발, 홍보와 소통 과정에 문제가 되었던 방식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상대 진영에 대한 콤플렉스와 패배주의에 젖은 청산주의자들이 역사의 승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탈원전(脫原電)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밀어붙이는 문재인(文在寅) 정부에 빗대어 “개인이 자살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한 국가가 자살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는 외국 석학의 비아냥이 유행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화신 조국(曺國) 지키기에 올인한 민주당을 심판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도 확산되어 있었다.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은 이렇듯 궁색한 처지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한 것이다.
복수 血戰
보수 대(對) 진보 간 진영대결 관점에서 보면, 2007년 제17대 대선(大選)에서 65대 35로 압승한 보수진영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당시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후보는 그보다 5년 전 노무현(盧武鉉) 당선의 일등공신이던 2030 젊은 유권자에서도 상당한 차이로 승리하였다. 그로 인한 지나친 자신감이 오만으로 이어진다. 대선에서 압승한 친이계(親李系)에 의한 친박계(親朴系) 공천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2008년 공천 파동의 피해자던 친박계가 2012년 총선(總選)과 대선 승리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2016년 총선에서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친박계의 주도하에 당내 잠재적 경쟁세력을 배제한 ‘진박(眞朴)’ 공천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집권 여당이 122석에 그친 극심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이 형성된다. 2016년 총선 패배로 형성된 여소야대 국면과 보수 분열이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다.
보수 분열의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탄핵 이후에도 친박과 비박(非朴) 간의 극심한 계파 갈등이 멈추지 않고 결국 탄핵 찬성파의 탈당(脫黨)과 2017년 대선 패배로 이어진다.
지난 4·15 총선 또한 명목상 보수 대통합을 이뤘지만, 공천 과정에서 보수 분열과 복수혈전은 그대로였다. 4년 전 진박 공천의 피해자가 이번에는 가해자로 배역을 바꾸어 등장한다. 복수혈전이 펼쳐지는 속편은 전편보다 더 극적이고 잔인한 법이다. 복수혈전의 주역으로 나선 김형오(金炯旿) 공천관리위원회는 탄핵찬성-탈당파들의 전면배치를 위해 그간 자유한국당을 지켜온, 그들 입장에서는 당에 잔류해온 보수 ‘적폐세력’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한다. 공관위 스스로 공표한 ‘이기는 공천’ ‘혁신공천’이라는 원칙과 당헌·당규가 규정한 공천 배제의 기준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보수진영의 대의(大義)에 복무하는 공적(公的) 활동이 아니라 사적(私的)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천(私薦),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한 계파공천이라는 김형오 공관위의 막장 드라마는 보수 텃밭으로 불리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강남 3구와 영남을 주무대로 펼쳐지지만,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합지역, 수도권 전략지역에는 기존 자유한국당 후보들을 공천 배제한 후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김형오-김세연 키즈들을 점령군처럼 전략공천한다.
공천 파동으로 핵심 지지층부터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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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일 조국 반대 광화문 집회에 모인 시민들. 미래통합당은 이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사진=조선DB |
김형오 공관위의 자유한국당 출신 당협위원장에 대한 대학살과 낙하산 공천으로 가장 먼저 흔들린 세력이 이 2000~3000명에 달하는 핵심·열성 지지자들이었다. 지역구를 관리하던 기존 지역후보들에게 경선 기회도 보장하지 않은 불공정 공천에 대한 분노와 지역 연고와 활동이 전무한 낙하산 후보들에 대한 불만으로 핵심 지지자들부터 흔들렸다. “경선을 거치지 않은 전략공천과 지역 연고 없는 낙하산 공천은 당원과 지역구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소위 중도층 유권자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보수진영은 이번 총선이 대한민국을 몰락으로 이끌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선거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르는 중차대한 선거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중차대한 선거가 다시 계파공천, 사심공천 논란으로 얼룩졌다. 그것도 그동안 나름 합리적 개혁보수 이미지를 유지해온, 그래서 이번에는 계파공천이라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김형오 공관위가 주도하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선거 직전까지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핵심조직은 제대로 복원되지 않았고, 이탈한 중도층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탄핵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 코로나19로 인한 랠리(rally round the flag) 효과, 선거 막판에 터진 민경욱 등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 등의 막말 파동 등 다양한 요인이 참패 원인으로 거론된다. 잘못된 진단에서 올바른 처방전을 기대할 수 없다. 참패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되는 이유다.
원래 질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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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의원. |
공천 파동의 책임이 있는 공관위 핵심 멤버, 특히 김세연은 자신들에 대해 제기되는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지, “원래 패배할 선거였다”고 주장한다. 비호감이 높아 원래 크게 질 선거였는데, 자신들의 ‘개혁’ 공천으로 그나마 선방(善防)한 것이고, 이후 개혁 공천의 취지를 퇴색시킨 황교안(黃敎安) 전 대표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 후보 등의 막말 파동으로 참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처럼 애초부터 패배할 선거였는가? 아니다. 총선은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즉 기본적으로는 여당에 대한 심판선거다. 따라서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이 총선 승패를 예측하는 근사치를 제공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80%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이 2019년 3월부터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지난해 9월의 조국사태 이후 총선이 두어 달 남짓 남은 지난 2월까지 부정 평가가 앞서고 있었다. 하나 2월 넷째 주부터 이 견고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후 이 흐름은 더 심해져 4월 2주 차의 경우 긍정과 부정 비율이 12.1%까지 벌어지고 이 분위기에서 총선이 치러진 것이다. 만약 긍정과 부정 비율이 오차 범위 이내이던 3월 2주 차, 또는 공천 파동이 본격화되기 이전, 부정비율이 앞서던 2월 4주 차에 총선이 실시되었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미래통합당의 공천 파동이 미친 자멸적(自滅的) 결과에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황교안 전 대표의 공천 번복과 차명진의 막말 파동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진 이후에 발생했다.
지난 2월 말부터 미래통합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공천 파동이 연일 지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이 속설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2016년 총선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당대표던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親文) 세력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단일대오를 형성한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한두 곳을 제외하곤 공천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형식적으로는 보수 대통합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최악의 공천 파동이 발생하고 이것이 총선 참패로 직결됐다.
4·15 공천 파동은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M&A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자유한국당을 우량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파산 직전의 불량기업은 아니었다. 공천 파동이 있기 전까지 대통령 지지율 그래프가 이를 보여주는데, 정당 지지율 그래프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또한 최악의 공천 파동을 겪고도 얻은 전국 득표율 평균 42.5%가 이를 증명한다. 기업사냥꾼들은 연일 자유한국당의 약점만 드러내며 이대로 두면 회생하지 못할 불량기업이라며 무자비한 수술칼을 들이댔다. 이들의 칼날이 향한 곳은 탄핵 이후 어려운 시기에 당과 지역을 지킨 사람들이다.
보수진영의 텃밭이라 하는 강남 3구와 영남 지역에 소위 ‘듣보잡’들이 내리 꽂혔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의 비속어인데, 잡놈은 아닐지라도 지역에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을 위해 헌신한 노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전국적 지명도가 있지도 않은 ‘듣도 보도 못한’ 후보들이 강남과 영남 지역에 전략공천이 되었다. 당연히 공관위원들과의 사적 관계에 따른 공천이라는 사천 논란이 이어졌다.
탄핵에 찬성하여 탈당한 바른미래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 소속 전·현직 의원, 보수통합 과정에서 합류한 제3지대 인사 대부분이 텃밭이나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공천된 반면 탄핵 이후 당을 지킨 자유한국당 출신 당협위원장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반문(反文)투쟁에 앞장선 그룹 대부분이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강남과 영남 지역의 현역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현역의원도 이럴 정도인데, 원외(院外) 당협위원장의 공천 배제는 다반사였다. 물론 일부는 구제되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 내용과 질이다.
지역별로 선거판세의 유불리가 있다. 정치지형이라고도 한다. “자기 세력을 공천하여도 당선이 어렵거나, 자기 세력 중 출마할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만 당을 지켜온 자유한국당 출신들이 살아남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선(競選) 없이 자기 사람 심기’가 난무하였다.
청년 정치인의 싹을 자른 ‘청년벨트’ 전략공천
원칙 없는 돌려 막기 공천은 이번 ‘막장 공천’의 백미(白眉) 중 하나다. 항간에 ‘돌려 막기 3인방’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안상수·정우택·이종구 의원이 이 경우에 속한다. 영남 지역에서는 초·재선 의원들도 혁신 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공천 배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돌려 막기 3인방은 모두 3선 이상의 중진이고, 70세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자신의 지역구도 아닌 지역구에 경쟁력 있다는 명분으로 공천장을 쥐었지만 모두 역대 가장 큰 격차로 참패한다.
원칙 없는 돌려 막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초갑 당협위원장이었던 전옥현은 수십 년 전에 떠난 대전 서구을에서 경선을 치러 패배하고, 송파에서 활동하던 박종진은 인천 서구을에 공천된다. 영등포의 강명구를 동대문에서 경선에 부치는 등 이런 돌려 막기 공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 중 가장 최악의 사례가 소위 ‘퓨처메이커(future maker)’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청년벨트 전략공천이다.
취약한 청년 유권자를 공략하고 당의 세대교체를 위해서 청년 정치인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하에, 이미 김병준(金秉準) 비상대책위원장 시기에 수도권 10여 곳에 청년 당협위원장을 선정하였다. 김형오 공관위도 청년 정치인을 육성한다는 명목하에 11곳에 이르는 청년벨트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김형오 공관위의 본질인 계파 공천, 사심 공천의 연장선에 불과하였다. 김병준 비대위 시절에 임명되어 1년 넘게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위원장들도 김형오 공관위의 공천학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청년벨트라는 명목하에 남양주을에 전략공천된 김용식은 원래 노원병의 당협위원장이었다. 이 지역에 이준석 최고위원을 전략공천하기 위해 김용식을 빼내면서 남양주을 공천 파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강동의 윤희석 위원장은 이수희 전략공천에 밀려 배제되었고, 송파에서 1년 넘게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해온 김성용은 김근식 전략공천의 희생양이 되었다. 안양의 김승 위원장은 연고가 없는 시흥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10여 명의 자유한국당 출신 청년 당협위원장 중 공천장을 쥔 분당의 김민수와 김포의 박진호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청년벨트라는 명분하에 다른 지역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청년벨트의 공천장을 받은 청년들은 바른미래당이나 국민의당 등에서 활동하다가 합류한 인사들이었다.
청년벨트로 지정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기존 후보들은 모두 공천에서 배제된다. 남양주을의 경우 3선 시장 출신의 이석우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청년벨트로 지정된 지역 대부분이 기존 후보의 무소속 출마라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역 출신 후보들・핵심 당원들과 적대적 구도가 형성되면서 내려간 청년 후보들이 이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세력을 전략공천하기 위해 기존의 청년 당협위원장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김형오 공관위가 임시방편으로 내걸은 청년벨트는 결국 1년여 넘게 준비해오던 청년 정치의 싹을 자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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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9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회의.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들의 본질은 ‘와인바 보수주의자’였다. 사진=조선DB |
김형오 공관위는 보수진영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진영 간 대결구도에서 양비론적(兩非論的) 태도를 취하는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실제 이들의 비판의 칼날은 진보진영과 문재인 정부보다는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을 향한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 생명력을 잃은 좀비 정당이므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김세연 의원의 저주에 가까운 막말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또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의 최상류층에 속하거나, 보수정치 기득권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득권층이라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강남좌파 집단과 사회·경제적 기반 면에서 유사하다. ‘강남좌파’는 기득권을 향유하지만 좌파적 언사를 구사하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인사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와인바 보수주의자’는 보수진영에 속한 기득권층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강남좌파와 마찬가지로 보수진영에 비판적·적대적인 보수인사들로 규정된다. 이들은 또한 양비론적 공리공담(空理空談)을 즐기면서 일반 보수 유권자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들과 강남좌파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이 더 주의를 요하는 공통점이다. 강남좌파와 마찬가지로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민주화, 최저임금 인상, 더 나아가 기본소득까지 좌파적 세계관과 가치를 구현한 정책대안(代案)들을 지지한다. 강남좌파는 현 체제의 기득권 향유 세력이라는 점에서 앞에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좌파의 세계관과 비전, 정책 노선에 충실한 집단이다. 이 점에서 강남좌파는 좌파의 이념·문화적 전위(前衛)이자 이를 확산시키는 선전·선동대 역할에 충실한 좌파의 골간이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와인바 보수주의자이다. 이들은 보수진영에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보는 역사관이나 세계관, 선호하는 비전과 정책 노선에서 우파진영보다는 좌파진영에 더 가깝다. 좌파적 세계관과 노선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자신은 우파진영에 속한 이중적 존재, 이것이 ‘와인바 보수’의 자기 정체성(正體性)이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진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실상 이들은 자신을 보수라고 분류하는 것도 마뜩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앞에 꼭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이려 한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또는 ‘중도적’ 보수라고. 이 모든 수식어는 보수는 개혁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전제하는 것이고, 이들은 앞에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실상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싶은 것이다.
‘左클릭’은 실패한 전략
보수정당과 유권자에 적대적이고, 좌파적 정책 대안을 지지하는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소위 중도확장론이다. 유권자 구성상 보수와 진보가 각각 35% 정도를 점하는 나라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30% 에 달하는 소위 ‘유동층(流動層)’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주장이다.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달리하는 유동층이 이념지형상의 중도유권자인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들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지 방법론과 관련되어 있다. 와인바 보수주의자들은 소위 ‘좌(左)클릭’ 전략을 내세운다. 즉 진보진영 정책 중 인기 있는 정책을 우리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신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선거 연구에서는 오래전 실패로 판명되어 폐기된 전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짝퉁’으로는 절대로 진품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웃의 자장면 전문식당이 잘된다고 이제까지 대표상품으로 짬뽕을 내세우던 식당이 우리도 이제부터 자장면 판다고 해서 전문식당처럼 잘되겠는가? 이와 동일한 이치다.
유권자는 지금 내세우는 정책의 액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주장하는 정당과 후보의 진정성(sincerity) 측면을 보고 선택한다. 일관성(coherence)이라고도 하는데, 이제까지 무상(無償)급식을 반대하던 정당이 선거에 불리해 보이니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다 해도 지지하지 않는다.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좌클릭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진품, 즉 보수의 가치를 반영한, 보수만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성과 일관성 양 측면에서 보수 가치와 부합하는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중에서 중도유권자도 지지하는 정책을 찾아내어 이를 선거의 핵심 어젠다로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중도확장 전략이다.
사실 우리나라 좌파진영과 와인바 보수주의자들만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다. OECD, IMF 등 국제기구는 물론 세계적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로 경제적 양극화(兩極化)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지적하는 재벌체제가 아니라 이중적 노동시장, 즉 양극화된 노동시장에 있다고 보고 있다.
保守의 가능성은 아직 있다

위 표는 역대 선거에서 진보진영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연령대별로 얻은 득표율을 정리한 것이다. 재건을 모색하는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
첫째, 나쁜 소식이다. 이대로 가면 보수진영의 선거 참패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타 군소(群小)정당이 얻은 표가 대략 10% 내외이므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합계는 90% 정도다. 90%에서 민주당 표를 빼면 보수진영과 미래통합당 득표율이 나오는데, 20~40에서는 20~30%를 넘지 못한다. 이미 50대까지 49대 41로 밀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2030에서의 절대적 약세(弱勢)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후 선거에서도 패배가 자명하다.
둘째는 좋은 뉴스인데, 청년층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젊은 시절의 진보진영 지지를 그대로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오른쪽 현재의 40대는 20년 전에는 20대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20년 전 30대였던 지금의 50대의 진보진영 지지율은 20% 가까이 감소하였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은 지금의 20대가 그들의 10년 또는 20년 선배와 달리 진보진영 지지율이 압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 2030 젊은 세대에서 지지율이 낮은지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당을 해체하자는 패배주의와 청산주의가 해법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20대 청년들이 그들의 선배세대와 달리 진보진영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이유, 그들의 선배세대 또한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전의 일방적인 진보진영 지지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정책이 청년과 미래세대의 부담과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自覺)이다. 지금의 50대, 즉 왕년의 청년세대 또한 이 점에 대한 인식, 즉 문재인 정부의 좌파정책은 우리 자식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깨달음에 기인한다.
‘좌파 특권 해체’ 내세워야
강력한 경제, 국제 경쟁력, 작은 정부, 조세 감면, 재정 건전성 등 보수의 핵심가치가 자식세대를 걱정하는 50대는 물론 그들의 자식세대인 20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부합하여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여기다. 유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이승만(李承晩)의 복권(復權)이나 박근혜 탄핵은 이들에게는 우리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력을 다투는 저들만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가 풀린 다음의 부차적(副次的)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여러분이 취직이 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상층 정규직 시장에 속한 민노총의 특권만을 공고하게 하는 이중적 노동시장이 원인이고, 민노총의 특권만을 챙기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존속하는 한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될 수 없고, 공공부문의 특권을 유지하는 한 자영업자이거나 현재 전업주부, 또는 실업(失業) 상태인 당신의 노후(老後)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알려나가야 한다.
민노총의 특권 해체를 통한 공정한 경제, 공정한 일자리 보장, 공공부문 축소 및 특권 해체라는 보수 정통 가치에 기반한 노동시장과 공공부문 혁신방안이 보수 정당의 대표 상품이 되어야 한다. 민노총에 대한 반감,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공공부문 축소에 대한 공감대 확산 등 이 모든 것이 여론조사에서는 오래전부터 확인되고 있다.
요약하면, 보수의 가치와 정책 대안을 버리고 좌파진영에 투항하는 좌클릭을 주장하는 와인바 보수주의는 절대로 보수 재건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보수 가치에 충실하면서 이를 현재 대한민국에 ‘실재(實在)하는’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대한민국 위기 극복의 유일한 해법이다. 그 과정에서 그간의 정책 개발, 홍보와 소통 과정에 문제가 되었던 방식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상대 진영에 대한 콤플렉스와 패배주의에 젖은 청산주의자들이 역사의 승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도 늘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