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에서 고기 한 번 못 굽고 새 옷 제대로 해 입은 적 없는 어른들(박정희-육영수)인데 …”
⊙ “박근혜 대통령, 최씨들(최태민-최순실)에게 걸려든 게 죄라면 죄 … 그게 탄핵사유인가”
⊙ JP의 ‘(육여사가) 굶는 산모 옆에서 수저소리 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 육여사, 큰딸 박근혜에 새 옷 대신 늘 본인 옷 줄여 입히고 본인도 동대문에서 천 끊어 직접 해 입어
⊙ 일하면서 (북한과)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라고 한 박정희 전 대통령 … 지금은 안보가 걱정
⊙ “박근혜 대통령, 최씨들(최태민-최순실)에게 걸려든 게 죄라면 죄 … 그게 탄핵사유인가”
⊙ JP의 ‘(육여사가) 굶는 산모 옆에서 수저소리 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 육여사, 큰딸 박근혜에 새 옷 대신 늘 본인 옷 줄여 입히고 본인도 동대문에서 천 끊어 직접 해 입어
⊙ 일하면서 (북한과)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라고 한 박정희 전 대통령 … 지금은 안보가 걱정
-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 부부가 국민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촛불민심도 매섭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사람, 국가안보가 불안한 사람, 부모 잃은 박 대통령에 막연한 연민을 가진 사람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경제발전과 육영수 여사의 국모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월간조선》은 육영수 여사의 최측근이었던 조카 홍정자 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홍 여사는 육영수 여사 언니(육인순)의 3녀이며 젖먹이 시절 육영수 여사가 데려다 직접 키운 조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종사촌언니다. 성년이 돼서는 육여사의 개인비서 격으로 일하다 육여사가 영부인이 된 후 청와대 제2부속실에 들어가 일했으며 육여사 서거 이후 청와대를 나왔다.
1976년 박목월 시인이 펴낸 육여사의 일대기 《육영수여사》는 홍정자 여사가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홍 여사는 “청와대부속실 수첩 등을 토대로 일대기 2편을 쓰려고 준비했었는데 박 시인이 돌아가시면서 자료가 소실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홍 여사의 남편은 유연상 전 영남대 이사다.
탄핵할 사유가 있나
— 육영수 여사를 오래 모셨는데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라니 심정이 좋지 않으시죠.
“뭐가 탄핵까지 할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여자가 옆에서 잡일 봐주고 시중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걸 남자들한테 맡길 수가 있나요. 그 사람(최순실)이 전횡한 건 법적으로 처벌하면 될 거 아니에요. 또 뭐 있죠. 나이 들어 힘드니 건강주사 맞고 그런 게 대통령직 물러나야 될 사유인가요. 힘드니까 약도 먹을 수 있죠. 방송이라는 게 밥먹은 것까지 갖고 떠들고 ….”
— 단순히 일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글쎄, 대통령이야 옆에서 잘 도와주겠다고 하니 놔둔 거죠. 어쨌든 왜 사람을 그렇게까지 몰고가는지 언론에 대해 화가 납니다. 다들 왜 그렇게 난리인지요.”
— 촛불이 민심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촛불? 전체 인구 중에 얼마나 나왔나요. 조직적으로 시위하는 걸 보면 기가 막혀요. 세월호 7시간도 난리라더군요. 대통령 스케줄을 왜 그렇게 자세하게 공개해야 됩니까. 대통령이 그때 배탈 났으면 배탈 났다고 바로 얘기했어야 되나요.”
— 지금 젊은 세대들은 육영수 여사를 책이나 사진으로만 본 세대입니다. 육여사는 어떤 분입니까.
“뭇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죠.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분이에요. 직접 아는 분 중 한 명도 흉보는 사람을 못 봤어요. 남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고, 혁명가의 가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분입니다. 매사에 백성을 섬길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분이었고요. 부잣집에 자식이 몇십 명씩 되는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육종관)가 특별히 창고 열쇠를 맡길 정도로 총명한 분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검소한 생활
— 육여사는 검소한 생활을 하셨죠.
“늘 국민을 섬기고 어렵게 대한 사람입니다. 국민 눈치 보느라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생각도 못했어요. 청와대에 고기 볶는 냄새가 난 적이 없어요. 허구헌날 나물반찬이었어요. 청와대 뒷산에서 풀 뜯어 오고 그랬죠. 국민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 좋은 음식을 먹겠냐고.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육여사는 원래 부잣집 딸이라 고기 못 먹는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청와대 들어오고 나서는 늘 뉴스에서 혁명이다 쿠데타다 하니까 육여사는 마음이 편해야 고기라도 먹지 … 라며 늘 풀반찬이었고, 그마저 맘 편히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소득이 얼마만 되면, 얼마만 되면 …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한 번은 데모하는 뉴스를 틀어 놓고 식사하시는데 제가 다 체할 것 같아 그냥 나왔어요.”
— 사람들은 육여사의 한복 자태가 유난히 고왔다고 기억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옷은 최순실 고영태가 만들었다는데 육여사의 옷은 누가 했나요.
“제가 했지요. 본인이 어디서 옷을 해 입는다고 소문 나면 사람들이 그리 몰려가거나 안 좋은 일 생길까 봐 안 된다며 청와대에서 직접 했어요. 뭐 새 옷이라고 만든 적은 별로 없지만요. 속치마 떨어지면 다시 박아 입고 그랬죠. 진료하러 오는 간호사들이 속치마 보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외국 갈 때는 새로 한복을 한 적도 더러 있는데 동대문시장 가서 제가 옷감을 끊어 왔어요. 그런데 육여사가 꼭 당부를 하셨죠. ‘시장에도 요즘 외제가 많다더라. 아무리 예뻐도 외제는 안 된다. 꼭 잘 보고 사라’라고요.”
— 천을 떠다 청와대에서 해 입었단 말입니까.
“그럼요. 어릴 때 부유하게 자라면서 보고 배워서 그런지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한복 지을 때 어떤 옷감을 사도 육여사가 입으면 그렇게 선이 곱고 우아할 수가 없어요. 근데 최순실이 박 대통령 옷 해 놓은 거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한복도 케케묵은 구식 한복 같은 걸 골라서 제대로 챙겨 입히지도 못하고 …. 영국 국빈방문했을 때 입은 한복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복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거예요.”
육여사 “섬기는 게 내 운명”
— 친정 식구들은 육여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부잣집 딸이 가난한 군인, 게다가 결혼경력까지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고생하는 걸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했죠. 혁명 일어나고 청와대 들어가서도 마음고생 많이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속상해하면 육여사가 늘 하시는 얘기가 있어요. ‘나는 누군가를 섬겨야 되는 사람인가 봐. 그게 운명인 거 같아’라고요. 어려서는 아버지 어머니 섬기고, 결혼해서는 남편 섬기고, 영부인 되고 나서는 국민 섬기는 게 자기 운명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요.”
— 육여사 집안이 옥천 부자였죠.
“원래 옥천 어디라도 가려면 육씨네 땅 안 밟으면 못 간다고 할 정도였어요. 육여사 자란 생가가 얼마나 컸다고요. 화장실에도 고려청자가 있을 정도로 부잣집이었는데 지금 가 보면 무슨 조그만 영화 세트장 같아요. 전직 대통령 부부 생가는 좀 보존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권 바뀌면서 예산은 계속 깎이고 줄어들고 하다 보니 그 집에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 친정조카인 홍 여사님을 각별히 예뻐하셨다고요.
“연년생 출산하는 언니(육인순) 힘들까 봐 젖먹이 조카(홍정자) 업고 와서 키운 사람이에요. 그때 나이가 열일곱이었는데 그 정도로 일찍부터 철이 들어 있었던 분이죠. 아이들을 예뻐하는 건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자매랑 사촌들도 어릴 때 이모(육영수)만 오면 좋아서 서로 그 옆에 가려고 난리였어요. 저한테 세일러복을 한 벌 지어 준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곱고 예쁜지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하곤 했죠. 안목이 보통이 아니니까요. 제가 2부속실 비서로 일할 땐 젊은 사람들이 국제적인 안목을 넓혀야 한다며 해외순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요. 한번은 저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나라에 외화(外貨)가 없어서 어렵다며 안타까워한 적도 있어요.”
— 조카를 비서로 쓰는 건 요즘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육여사는) 주변에 사람을 함부로 두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본인이 업어 키운 조카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곁에 뒀던 거죠. 쓸데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오는 것도 경계했어요. 말이 새면 안 된다고요.”
— 본인 외에 가깝게 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까.
“육여사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여교수, 방송인 뭐 그런 저명인사들도 있고 통역사도 늘 가까이 있었고요. 시간만 있으면 교수들을 초빙해 공부를 하고 그들이 가고 나면 복습하곤 했지요. 그런데 언행이 가볍거나 말이 많은 사람은 경계하세요. 그분은 박사학위 없고 외국어 못해도 교양이 있어서 통역이 어떻게 말하는지 다 눈치를 채는 분이에요. 통역사가 제대로 통역 못하거나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으면 ‘좀 근신하면서 책 좀 더 보고 오라’고 하기도 했죠. 여자가 교양이 있어야 하지만 밖에서 ‘설치면’ 안된다고 생각한 분이에요. 나이 30대에 그 정도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머니와 딸
—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과도 가까이 지내셨죠.
“딸인 박 대통령보다 제가 육여사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많지요. 전 어릴 때 육여사 무릎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후에 계속 모셨으니까요. 박 대통령은 외갓집에서 지낸 시절도 있고 기숙사도 가고 프랑스 유학도 가고 그랬죠. 그리고 제가 비서로 일하면서부터는 딸이 어려서 이해 못하는 일들을 제가 다 들어 드렸으니 육여사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보다 제가 더 아는 게 많을 거예요. 또 육여사가 영부인일 때 박 대통령은 어려서 어머니의 정치적인 고뇌를 잘 이해 못했을 겁니다.”
— 육여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였나요.
“정치적인 건 모르겠지만 육여사는 큰딸을 반듯하게 교육시키려 했습니다. 특히 새 옷을 거의 해 주지 않았어요. 박 대통령이 수석졸업할 때 ‘일등을 했는데도 새 옷 한 벌 못해 줘서 미안하구나’라고 얘기하시더군요. 항상 엄마 옷 줄여 입으라 해서 미안하다고요. 평소에 새 옷을 못해 주니 그럴 때라도 한번 해 주면 좋겠는데 마음이 안좋았던 거죠. 행사가 있거나 상을 받을 때도 본인이 입던 옷을 고쳐서 딸에게 입히곤 했어요. 소매만 조금 줄이면 되지 않겠니? 기장이 좀 길구나. 여기는 이렇게 고치자 라고 조근조근 말씀하셨죠.”
— 딸 입장에선 좀 서운할 수도 있었겠네요.
“본인이 그렇게 검소하게 사는데 딸에게 어떻게 했겠어요. 그래도 박 대통령은 ‘전 좋아요, 어머니’라고 말하곤 했어요. 제가 박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줬습니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도 너희 어머니는 평생 집이니 땅이니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한 분이다 라고요. 그렇게 부잣집에서 살다가 가난한 군인에게 시집 왔는데 한마디 불평 없이 남편 섬기고 내조한 사람이에요. 항상 국민 눈치 보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 일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부부싸움을 자주 봐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한심해서 원 …. 두 분이 싸우는 걸 본 사람이 있답니까. 육여사는 바른말은 해도 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 매일 남편 이불 펴 드리고 남편 앞에서 늘 갖춰 입고 맨발을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몸가짐에 조심하는 분이었어요. 남편 섬기기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사람이 또 없어요.”
— 육여사 서거 후 얼마 안 있다가 청와대에서 나오셨죠. 최태민 부녀를 본 적은 없습니까.
“볼 일 없었어요. 힘들어서 못 있겠다고 유학 떠났죠. 두 분 다 비명에 가시고 나니 이 나라가 싫어지더군요. 또 혼란을 틈타 김신조 같은 무리들이 설쳐대면 어쩌나 싶어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 전 총리 인터뷰는 새빨간 거짓말
그는 최근 《시사저널》 김종필 전 총리의 인터뷰를 읽고 격하게 분노했다.
— 김종필 전 총리가 주간지 인터뷰에서 육영수 여사에 대해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육여사가 이중인격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그분이 저보다 육여사를 잘 압니까? (JP는) 멀쩡하던 분이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 그때 사람들이 다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김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가 출산하고 쌀도 없어 굶고 있는데 육여사는 산모한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았고 그쪽에서는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때 살던 데가 어떤 덴데요. 제가 그 적산가옥 살면서 육여사 심부름했어요. (박영옥 여사는) 이웃에 산다지만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릴 거리가 아니에요. 무슨 달그락 소리가 들려요. 집에 부엌 같은 부엌도 없는 시절이에요. 그 시절 집에 쌀 쌓아 놓고 사는 사람 있었습니까.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굶기도 하고 다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어요. 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어찌 육여사 탓을 합니까. 육여사가 너무 현명해서 김종필씨가 감당이 안 됐을 거예요.”
그는 박 대통령 가족에 대해 개인적인 연민을 표하기도 했다.
— 박근령, 박지만씨도 잘 아시죠.
“사람들이 왜들 그 사람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허튼 짓 하는 사람들 아니고 제대로 교육 받아서 대통령 자녀로서 품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박근령씨는 수입이 없다 보니 정말 형편이 어려워요. 전직 대통령 딸이 전철 타고 다니는 게 안타까워 한마디 하면 남들 다 타는 전철인데 어떠냐고 태연해요. 심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사실 박 전 대통령 추앙하는 사람들 중 박근령씨 도와주겠다는 사람 없겠어요? 하지만 본인이 소박한 걸 좋아해요.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대요. 박 전 대통령 일가가 해먹은 게 뭐가 있냐고요. 정수장학회 그렇게 몇십 년간 털어도 뭐가 나옵니까. 육영재단이 뭐 돈 되는 재단인 줄 아세요? 흔들어 봤자 나올 게 없으니 그렇게 싸워댄 거죠. 그분들 재산이라곤 신당동 그 작은 집이 전부예요. ”
안보가 걱정
그는 1968년 1·21사태로 김신조가 청와대에 침입할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혼란에 빠진 청와대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 보수인사들은 지금 정국에서 안보를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당연하죠. 북한이 계속 파던 땅굴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간첩도 안 잡은 지 몇십 년 됐죠. 왜 안 잡죠? 어디에서 누가 간첩활동하는지 겁이 날 지경입니다. 6·25도 평화로운 주말에 갑자기 당한 일이잖아요. 어른(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과)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라고 하셨어요. 다른 일이 급해도 안보는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불안해요. 야당쪽 이북(북한)에 몇천억 원씩 갖다 준 사람들이 이제 와서 큰소리치고 떠드는 게 보기 싫어요.”
—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최순실이 해먹은 거 다 뺏고 처벌하면 될 거 아닙니까. 맨날 큰소리치던 남자들은 왜 정유라 하나 독일에서 못 끌어오나요. 끌어내고 죄를 묻고 받아 낼 것은 받아 내고 하면 되잖아요. 그럴 생각은 안 하고 왜 대통령만 욕하는지 ….”
—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게 아닌가요.
“도둑맞은 사람에게 왜 도둑맞았냐고 하는 거 같아요.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왜 비선이 있었냐고요? 여자가 심부름할 사람도 필요한 거 아닙니까. 아버지처럼 청와대에 친인척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다 보니 친구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나 보죠. 전 대통령이 휘말렸다고 생각합니다. 돕고 싶다는 사람을 뜯어말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열심히 하니까 옆에 둔 거지. 그렇게 전횡을 하고 돌아다닐 줄 알았겠어요?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비선이 있었다면 비선을 잘라내고 해결해야지 왜 탄핵을 합니까?”
— 여성이라 더 지나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의견은 어떻게 보십니까.
“맞아요. 남자들 극성에 시달리고 있는 거죠. 영국 여왕 보세요. 국민들이 다 존경하고 사랑하니까 빛이 나잖아요.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뭐 한다고 하면 왜들 그렇게 ….”
— 탄핵 후 여당도 보수도 갈 길을 잃은 듯한데요. 이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
“지금 야당에서 나서는 사람들 제대로 정치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문재인이니 안철수니 박지원이니 그런 말 할 자격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위한다며 돌아다니면 뭐해요.”⊙
《월간조선》은 육영수 여사의 최측근이었던 조카 홍정자 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홍 여사는 육영수 여사 언니(육인순)의 3녀이며 젖먹이 시절 육영수 여사가 데려다 직접 키운 조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종사촌언니다. 성년이 돼서는 육여사의 개인비서 격으로 일하다 육여사가 영부인이 된 후 청와대 제2부속실에 들어가 일했으며 육여사 서거 이후 청와대를 나왔다.
1976년 박목월 시인이 펴낸 육여사의 일대기 《육영수여사》는 홍정자 여사가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홍 여사는 “청와대부속실 수첩 등을 토대로 일대기 2편을 쓰려고 준비했었는데 박 시인이 돌아가시면서 자료가 소실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홍 여사의 남편은 유연상 전 영남대 이사다.
탄핵할 사유가 있나
— 육영수 여사를 오래 모셨는데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라니 심정이 좋지 않으시죠.
“뭐가 탄핵까지 할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여자가 옆에서 잡일 봐주고 시중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걸 남자들한테 맡길 수가 있나요. 그 사람(최순실)이 전횡한 건 법적으로 처벌하면 될 거 아니에요. 또 뭐 있죠. 나이 들어 힘드니 건강주사 맞고 그런 게 대통령직 물러나야 될 사유인가요. 힘드니까 약도 먹을 수 있죠. 방송이라는 게 밥먹은 것까지 갖고 떠들고 ….”
— 단순히 일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글쎄, 대통령이야 옆에서 잘 도와주겠다고 하니 놔둔 거죠. 어쨌든 왜 사람을 그렇게까지 몰고가는지 언론에 대해 화가 납니다. 다들 왜 그렇게 난리인지요.”
— 촛불이 민심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촛불? 전체 인구 중에 얼마나 나왔나요. 조직적으로 시위하는 걸 보면 기가 막혀요. 세월호 7시간도 난리라더군요. 대통령 스케줄을 왜 그렇게 자세하게 공개해야 됩니까. 대통령이 그때 배탈 났으면 배탈 났다고 바로 얘기했어야 되나요.”
— 지금 젊은 세대들은 육영수 여사를 책이나 사진으로만 본 세대입니다. 육여사는 어떤 분입니까.
“뭇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죠.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분이에요. 직접 아는 분 중 한 명도 흉보는 사람을 못 봤어요. 남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고, 혁명가의 가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분입니다. 매사에 백성을 섬길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분이었고요. 부잣집에 자식이 몇십 명씩 되는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육종관)가 특별히 창고 열쇠를 맡길 정도로 총명한 분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검소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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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는 1974년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했다. 국민장으로 치러진 육여사의 장례식. |
“늘 국민을 섬기고 어렵게 대한 사람입니다. 국민 눈치 보느라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생각도 못했어요. 청와대에 고기 볶는 냄새가 난 적이 없어요. 허구헌날 나물반찬이었어요. 청와대 뒷산에서 풀 뜯어 오고 그랬죠. 국민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 좋은 음식을 먹겠냐고.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육여사는 원래 부잣집 딸이라 고기 못 먹는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청와대 들어오고 나서는 늘 뉴스에서 혁명이다 쿠데타다 하니까 육여사는 마음이 편해야 고기라도 먹지 … 라며 늘 풀반찬이었고, 그마저 맘 편히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소득이 얼마만 되면, 얼마만 되면 …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한 번은 데모하는 뉴스를 틀어 놓고 식사하시는데 제가 다 체할 것 같아 그냥 나왔어요.”
— 사람들은 육여사의 한복 자태가 유난히 고왔다고 기억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옷은 최순실 고영태가 만들었다는데 육여사의 옷은 누가 했나요.
“제가 했지요. 본인이 어디서 옷을 해 입는다고 소문 나면 사람들이 그리 몰려가거나 안 좋은 일 생길까 봐 안 된다며 청와대에서 직접 했어요. 뭐 새 옷이라고 만든 적은 별로 없지만요. 속치마 떨어지면 다시 박아 입고 그랬죠. 진료하러 오는 간호사들이 속치마 보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외국 갈 때는 새로 한복을 한 적도 더러 있는데 동대문시장 가서 제가 옷감을 끊어 왔어요. 그런데 육여사가 꼭 당부를 하셨죠. ‘시장에도 요즘 외제가 많다더라. 아무리 예뻐도 외제는 안 된다. 꼭 잘 보고 사라’라고요.”
— 천을 떠다 청와대에서 해 입었단 말입니까.
“그럼요. 어릴 때 부유하게 자라면서 보고 배워서 그런지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한복 지을 때 어떤 옷감을 사도 육여사가 입으면 그렇게 선이 곱고 우아할 수가 없어요. 근데 최순실이 박 대통령 옷 해 놓은 거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한복도 케케묵은 구식 한복 같은 걸 골라서 제대로 챙겨 입히지도 못하고 …. 영국 국빈방문했을 때 입은 한복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복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거예요.”
육여사 “섬기는 게 내 운명”
— 친정 식구들은 육여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부잣집 딸이 가난한 군인, 게다가 결혼경력까지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고생하는 걸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했죠. 혁명 일어나고 청와대 들어가서도 마음고생 많이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속상해하면 육여사가 늘 하시는 얘기가 있어요. ‘나는 누군가를 섬겨야 되는 사람인가 봐. 그게 운명인 거 같아’라고요. 어려서는 아버지 어머니 섬기고, 결혼해서는 남편 섬기고, 영부인 되고 나서는 국민 섬기는 게 자기 운명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요.”
— 육여사 집안이 옥천 부자였죠.
“원래 옥천 어디라도 가려면 육씨네 땅 안 밟으면 못 간다고 할 정도였어요. 육여사 자란 생가가 얼마나 컸다고요. 화장실에도 고려청자가 있을 정도로 부잣집이었는데 지금 가 보면 무슨 조그만 영화 세트장 같아요. 전직 대통령 부부 생가는 좀 보존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권 바뀌면서 예산은 계속 깎이고 줄어들고 하다 보니 그 집에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 친정조카인 홍 여사님을 각별히 예뻐하셨다고요.
“연년생 출산하는 언니(육인순) 힘들까 봐 젖먹이 조카(홍정자) 업고 와서 키운 사람이에요. 그때 나이가 열일곱이었는데 그 정도로 일찍부터 철이 들어 있었던 분이죠. 아이들을 예뻐하는 건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자매랑 사촌들도 어릴 때 이모(육영수)만 오면 좋아서 서로 그 옆에 가려고 난리였어요. 저한테 세일러복을 한 벌 지어 준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곱고 예쁜지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하곤 했죠. 안목이 보통이 아니니까요. 제가 2부속실 비서로 일할 땐 젊은 사람들이 국제적인 안목을 넓혀야 한다며 해외순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요. 한번은 저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나라에 외화(外貨)가 없어서 어렵다며 안타까워한 적도 있어요.”
— 조카를 비서로 쓰는 건 요즘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육여사는) 주변에 사람을 함부로 두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본인이 업어 키운 조카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곁에 뒀던 거죠. 쓸데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오는 것도 경계했어요. 말이 새면 안 된다고요.”
— 본인 외에 가깝게 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까.
“육여사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여교수, 방송인 뭐 그런 저명인사들도 있고 통역사도 늘 가까이 있었고요. 시간만 있으면 교수들을 초빙해 공부를 하고 그들이 가고 나면 복습하곤 했지요. 그런데 언행이 가볍거나 말이 많은 사람은 경계하세요. 그분은 박사학위 없고 외국어 못해도 교양이 있어서 통역이 어떻게 말하는지 다 눈치를 채는 분이에요. 통역사가 제대로 통역 못하거나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으면 ‘좀 근신하면서 책 좀 더 보고 오라’고 하기도 했죠. 여자가 교양이 있어야 하지만 밖에서 ‘설치면’ 안된다고 생각한 분이에요. 나이 30대에 그 정도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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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의 단란한 한때. |
“딸인 박 대통령보다 제가 육여사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많지요. 전 어릴 때 육여사 무릎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후에 계속 모셨으니까요. 박 대통령은 외갓집에서 지낸 시절도 있고 기숙사도 가고 프랑스 유학도 가고 그랬죠. 그리고 제가 비서로 일하면서부터는 딸이 어려서 이해 못하는 일들을 제가 다 들어 드렸으니 육여사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보다 제가 더 아는 게 많을 거예요. 또 육여사가 영부인일 때 박 대통령은 어려서 어머니의 정치적인 고뇌를 잘 이해 못했을 겁니다.”
— 육여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였나요.
“정치적인 건 모르겠지만 육여사는 큰딸을 반듯하게 교육시키려 했습니다. 특히 새 옷을 거의 해 주지 않았어요. 박 대통령이 수석졸업할 때 ‘일등을 했는데도 새 옷 한 벌 못해 줘서 미안하구나’라고 얘기하시더군요. 항상 엄마 옷 줄여 입으라 해서 미안하다고요. 평소에 새 옷을 못해 주니 그럴 때라도 한번 해 주면 좋겠는데 마음이 안좋았던 거죠. 행사가 있거나 상을 받을 때도 본인이 입던 옷을 고쳐서 딸에게 입히곤 했어요. 소매만 조금 줄이면 되지 않겠니? 기장이 좀 길구나. 여기는 이렇게 고치자 라고 조근조근 말씀하셨죠.”
— 딸 입장에선 좀 서운할 수도 있었겠네요.
“본인이 그렇게 검소하게 사는데 딸에게 어떻게 했겠어요. 그래도 박 대통령은 ‘전 좋아요, 어머니’라고 말하곤 했어요. 제가 박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줬습니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도 너희 어머니는 평생 집이니 땅이니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한 분이다 라고요. 그렇게 부잣집에서 살다가 가난한 군인에게 시집 왔는데 한마디 불평 없이 남편 섬기고 내조한 사람이에요. 항상 국민 눈치 보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 일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부부싸움을 자주 봐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한심해서 원 …. 두 분이 싸우는 걸 본 사람이 있답니까. 육여사는 바른말은 해도 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 매일 남편 이불 펴 드리고 남편 앞에서 늘 갖춰 입고 맨발을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몸가짐에 조심하는 분이었어요. 남편 섬기기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사람이 또 없어요.”
— 육여사 서거 후 얼마 안 있다가 청와대에서 나오셨죠. 최태민 부녀를 본 적은 없습니까.
“볼 일 없었어요. 힘들어서 못 있겠다고 유학 떠났죠. 두 분 다 비명에 가시고 나니 이 나라가 싫어지더군요. 또 혼란을 틈타 김신조 같은 무리들이 설쳐대면 어쩌나 싶어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 전 총리 인터뷰는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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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2011년 복원됐다. |
— 김종필 전 총리가 주간지 인터뷰에서 육영수 여사에 대해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육여사가 이중인격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그분이 저보다 육여사를 잘 압니까? (JP는) 멀쩡하던 분이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 그때 사람들이 다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김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가 출산하고 쌀도 없어 굶고 있는데 육여사는 산모한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았고 그쪽에서는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때 살던 데가 어떤 덴데요. 제가 그 적산가옥 살면서 육여사 심부름했어요. (박영옥 여사는) 이웃에 산다지만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릴 거리가 아니에요. 무슨 달그락 소리가 들려요. 집에 부엌 같은 부엌도 없는 시절이에요. 그 시절 집에 쌀 쌓아 놓고 사는 사람 있었습니까.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굶기도 하고 다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어요. 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어찌 육여사 탓을 합니까. 육여사가 너무 현명해서 김종필씨가 감당이 안 됐을 거예요.”
그는 박 대통령 가족에 대해 개인적인 연민을 표하기도 했다.
— 박근령, 박지만씨도 잘 아시죠.
“사람들이 왜들 그 사람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허튼 짓 하는 사람들 아니고 제대로 교육 받아서 대통령 자녀로서 품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박근령씨는 수입이 없다 보니 정말 형편이 어려워요. 전직 대통령 딸이 전철 타고 다니는 게 안타까워 한마디 하면 남들 다 타는 전철인데 어떠냐고 태연해요. 심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사실 박 전 대통령 추앙하는 사람들 중 박근령씨 도와주겠다는 사람 없겠어요? 하지만 본인이 소박한 걸 좋아해요.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대요. 박 전 대통령 일가가 해먹은 게 뭐가 있냐고요. 정수장학회 그렇게 몇십 년간 털어도 뭐가 나옵니까. 육영재단이 뭐 돈 되는 재단인 줄 아세요? 흔들어 봤자 나올 게 없으니 그렇게 싸워댄 거죠. 그분들 재산이라곤 신당동 그 작은 집이 전부예요. ”
그는 1968년 1·21사태로 김신조가 청와대에 침입할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혼란에 빠진 청와대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 보수인사들은 지금 정국에서 안보를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당연하죠. 북한이 계속 파던 땅굴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간첩도 안 잡은 지 몇십 년 됐죠. 왜 안 잡죠? 어디에서 누가 간첩활동하는지 겁이 날 지경입니다. 6·25도 평화로운 주말에 갑자기 당한 일이잖아요. 어른(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과)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라고 하셨어요. 다른 일이 급해도 안보는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불안해요. 야당쪽 이북(북한)에 몇천억 원씩 갖다 준 사람들이 이제 와서 큰소리치고 떠드는 게 보기 싫어요.”
—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최순실이 해먹은 거 다 뺏고 처벌하면 될 거 아닙니까. 맨날 큰소리치던 남자들은 왜 정유라 하나 독일에서 못 끌어오나요. 끌어내고 죄를 묻고 받아 낼 것은 받아 내고 하면 되잖아요. 그럴 생각은 안 하고 왜 대통령만 욕하는지 ….”
—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게 아닌가요.
“도둑맞은 사람에게 왜 도둑맞았냐고 하는 거 같아요.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왜 비선이 있었냐고요? 여자가 심부름할 사람도 필요한 거 아닙니까. 아버지처럼 청와대에 친인척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다 보니 친구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나 보죠. 전 대통령이 휘말렸다고 생각합니다. 돕고 싶다는 사람을 뜯어말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열심히 하니까 옆에 둔 거지. 그렇게 전횡을 하고 돌아다닐 줄 알았겠어요?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비선이 있었다면 비선을 잘라내고 해결해야지 왜 탄핵을 합니까?”
— 여성이라 더 지나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의견은 어떻게 보십니까.
“맞아요. 남자들 극성에 시달리고 있는 거죠. 영국 여왕 보세요. 국민들이 다 존경하고 사랑하니까 빛이 나잖아요.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뭐 한다고 하면 왜들 그렇게 ….”
— 탄핵 후 여당도 보수도 갈 길을 잃은 듯한데요. 이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
“지금 야당에서 나서는 사람들 제대로 정치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문재인이니 안철수니 박지원이니 그런 말 할 자격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위한다며 돌아다니면 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