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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제2부속실에서 육영수 여사 모셨던 조카 홍정자의 격정토로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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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고기 한 번 못 굽고 새 옷 제대로 해 입은 적 없는 어른들(박정희-육영수)인데 …”
⊙ “박근혜 대통령, 최씨들(최태민-최순실)에게 걸려든 게 죄라면 죄 … 그게 탄핵사유인가”
⊙ JP의 ‘(육여사가) 굶는 산모 옆에서 수저소리 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 육여사, 큰딸 박근혜에 새 옷 대신 늘 본인 옷 줄여 입히고 본인도 동대문에서 천 끊어 직접 해 입어
⊙ 일하면서 (북한과)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라고 한 박정희 전 대통령 … 지금은 안보가 걱정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 부부가 국민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촛불민심도 매섭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사람, 국가안보가 불안한 사람, 부모 잃은 박 대통령에 막연한 연민을 가진 사람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경제발전과 육영수 여사의 국모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월간조선》은 육영수 여사의 최측근이었던 조카 홍정자 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홍 여사는 육영수 여사 언니(육인순)의 3녀이며 젖먹이 시절 육영수 여사가 데려다 직접 키운 조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종사촌언니다. 성년이 돼서는 육여사의 개인비서 격으로 일하다 육여사가 영부인이 된 후 청와대 제2부속실에 들어가 일했으며 육여사 서거 이후 청와대를 나왔다.
 
  1976년 박목월 시인이 펴낸 육여사의 일대기 《육영수여사》는 홍정자 여사가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홍 여사는 “청와대부속실 수첩 등을 토대로 일대기 2편을 쓰려고 준비했었는데 박 시인이 돌아가시면서 자료가 소실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홍 여사의 남편은 유연상 전 영남대 이사다.
 
 
  탄핵할 사유가 있나
 
  — 육영수 여사를 오래 모셨는데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라니 심정이 좋지 않으시죠.
 
  “뭐가 탄핵까지 할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여자가 옆에서 잡일 봐주고 시중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걸 남자들한테 맡길 수가 있나요. 그 사람(최순실)이 전횡한 건 법적으로 처벌하면 될 거 아니에요. 또 뭐 있죠. 나이 들어 힘드니 건강주사 맞고 그런 게 대통령직 물러나야 될 사유인가요. 힘드니까 약도 먹을 수 있죠. 방송이라는 게 밥먹은 것까지 갖고 떠들고 ….”
 
  — 단순히 일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글쎄, 대통령이야 옆에서 잘 도와주겠다고 하니 놔둔 거죠. 어쨌든 왜 사람을 그렇게까지 몰고가는지 언론에 대해 화가 납니다. 다들 왜 그렇게 난리인지요.”
 
  — 촛불이 민심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촛불? 전체 인구 중에 얼마나 나왔나요. 조직적으로 시위하는 걸 보면 기가 막혀요. 세월호 7시간도 난리라더군요. 대통령 스케줄을 왜 그렇게 자세하게 공개해야 됩니까. 대통령이 그때 배탈 났으면 배탈 났다고 바로 얘기했어야 되나요.”
 
  — 지금 젊은 세대들은 육영수 여사를 책이나 사진으로만 본 세대입니다. 육여사는 어떤 분입니까.
 
  “뭇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죠.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분이에요. 직접 아는 분 중 한 명도 흉보는 사람을 못 봤어요. 남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고, 혁명가의 가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분입니다. 매사에 백성을 섬길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분이었고요. 부잣집에 자식이 몇십 명씩 되는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육종관)가 특별히 창고 열쇠를 맡길 정도로 총명한 분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검소한 생활
 
육영수 여사는 1974년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했다. 국민장으로 치러진 육여사의 장례식.
  — 육여사는 검소한 생활을 하셨죠.
 
  “늘 국민을 섬기고 어렵게 대한 사람입니다. 국민 눈치 보느라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생각도 못했어요. 청와대에 고기 볶는 냄새가 난 적이 없어요. 허구헌날 나물반찬이었어요. 청와대 뒷산에서 풀 뜯어 오고 그랬죠. 국민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 좋은 음식을 먹겠냐고.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육여사는 원래 부잣집 딸이라 고기 못 먹는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청와대 들어오고 나서는 늘 뉴스에서 혁명이다 쿠데타다 하니까 육여사는 마음이 편해야 고기라도 먹지 … 라며 늘 풀반찬이었고, 그마저 맘 편히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소득이 얼마만 되면, 얼마만 되면 …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한 번은 데모하는 뉴스를 틀어 놓고 식사하시는데 제가 다 체할 것 같아 그냥 나왔어요.”
 
  — 사람들은 육여사의 한복 자태가 유난히 고왔다고 기억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옷은 최순실 고영태가 만들었다는데 육여사의 옷은 누가 했나요.
 
  “제가 했지요. 본인이 어디서 옷을 해 입는다고 소문 나면 사람들이 그리 몰려가거나 안 좋은 일 생길까 봐 안 된다며 청와대에서 직접 했어요. 뭐 새 옷이라고 만든 적은 별로 없지만요. 속치마 떨어지면 다시 박아 입고 그랬죠. 진료하러 오는 간호사들이 속치마 보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외국 갈 때는 새로 한복을 한 적도 더러 있는데 동대문시장 가서 제가 옷감을 끊어 왔어요. 그런데 육여사가 꼭 당부를 하셨죠. ‘시장에도 요즘 외제가 많다더라. 아무리 예뻐도 외제는 안 된다. 꼭 잘 보고 사라’라고요.”
 
  — 천을 떠다 청와대에서 해 입었단 말입니까.
 
  “그럼요. 어릴 때 부유하게 자라면서 보고 배워서 그런지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한복 지을 때 어떤 옷감을 사도 육여사가 입으면 그렇게 선이 곱고 우아할 수가 없어요. 근데 최순실이 박 대통령 옷 해 놓은 거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한복도 케케묵은 구식 한복 같은 걸 골라서 제대로 챙겨 입히지도 못하고 …. 영국 국빈방문했을 때 입은 한복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복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거예요.”
 
 
  육여사 “섬기는 게 내 운명”
 
  — 친정 식구들은 육여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부잣집 딸이 가난한 군인, 게다가 결혼경력까지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고생하는 걸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했죠. 혁명 일어나고 청와대 들어가서도 마음고생 많이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속상해하면 육여사가 늘 하시는 얘기가 있어요. ‘나는 누군가를 섬겨야 되는 사람인가 봐. 그게 운명인 거 같아’라고요. 어려서는 아버지 어머니 섬기고, 결혼해서는 남편 섬기고, 영부인 되고 나서는 국민 섬기는 게 자기 운명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요.”
 
  — 육여사 집안이 옥천 부자였죠.
 
  “원래 옥천 어디라도 가려면 육씨네 땅 안 밟으면 못 간다고 할 정도였어요. 육여사 자란 생가가 얼마나 컸다고요. 화장실에도 고려청자가 있을 정도로 부잣집이었는데 지금 가 보면 무슨 조그만 영화 세트장 같아요. 전직 대통령 부부 생가는 좀 보존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권 바뀌면서 예산은 계속 깎이고 줄어들고 하다 보니 그 집에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 친정조카인 홍 여사님을 각별히 예뻐하셨다고요.
 
  “연년생 출산하는 언니(육인순) 힘들까 봐 젖먹이 조카(홍정자) 업고 와서 키운 사람이에요. 그때 나이가 열일곱이었는데 그 정도로 일찍부터 철이 들어 있었던 분이죠. 아이들을 예뻐하는 건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자매랑 사촌들도 어릴 때 이모(육영수)만 오면 좋아서 서로 그 옆에 가려고 난리였어요. 저한테 세일러복을 한 벌 지어 준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곱고 예쁜지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하곤 했죠. 안목이 보통이 아니니까요. 제가 2부속실 비서로 일할 땐 젊은 사람들이 국제적인 안목을 넓혀야 한다며 해외순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요. 한번은 저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나라에 외화(外貨)가 없어서 어렵다며 안타까워한 적도 있어요.”
 
  — 조카를 비서로 쓰는 건 요즘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육여사는) 주변에 사람을 함부로 두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본인이 업어 키운 조카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곁에 뒀던 거죠. 쓸데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오는 것도 경계했어요. 말이 새면 안 된다고요.”
 
  — 본인 외에 가깝게 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까.
 
  “육여사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여교수, 방송인 뭐 그런 저명인사들도 있고 통역사도 늘 가까이 있었고요. 시간만 있으면 교수들을 초빙해 공부를 하고 그들이 가고 나면 복습하곤 했지요. 그런데 언행이 가볍거나 말이 많은 사람은 경계하세요. 그분은 박사학위 없고 외국어 못해도 교양이 있어서 통역이 어떻게 말하는지 다 눈치를 채는 분이에요. 통역사가 제대로 통역 못하거나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으면 ‘좀 근신하면서 책 좀 더 보고 오라’고 하기도 했죠. 여자가 교양이 있어야 하지만 밖에서 ‘설치면’ 안된다고 생각한 분이에요. 나이 30대에 그 정도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머니와 딸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의 단란한 한때.
  —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과도 가까이 지내셨죠.
 
  “딸인 박 대통령보다 제가 육여사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많지요. 전 어릴 때 육여사 무릎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후에 계속 모셨으니까요. 박 대통령은 외갓집에서 지낸 시절도 있고 기숙사도 가고 프랑스 유학도 가고 그랬죠. 그리고 제가 비서로 일하면서부터는 딸이 어려서 이해 못하는 일들을 제가 다 들어 드렸으니 육여사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보다 제가 더 아는 게 많을 거예요. 또 육여사가 영부인일 때 박 대통령은 어려서 어머니의 정치적인 고뇌를 잘 이해 못했을 겁니다.”
 
  — 육여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였나요.
 
  “정치적인 건 모르겠지만 육여사는 큰딸을 반듯하게 교육시키려 했습니다. 특히 새 옷을 거의 해 주지 않았어요. 박 대통령이 수석졸업할 때 ‘일등을 했는데도 새 옷 한 벌 못해 줘서 미안하구나’라고 얘기하시더군요. 항상 엄마 옷 줄여 입으라 해서 미안하다고요. 평소에 새 옷을 못해 주니 그럴 때라도 한번 해 주면 좋겠는데 마음이 안좋았던 거죠. 행사가 있거나 상을 받을 때도 본인이 입던 옷을 고쳐서 딸에게 입히곤 했어요. 소매만 조금 줄이면 되지 않겠니? 기장이 좀 길구나. 여기는 이렇게 고치자 라고 조근조근 말씀하셨죠.”
 
  — 딸 입장에선 좀 서운할 수도 있었겠네요.
 
  “본인이 그렇게 검소하게 사는데 딸에게 어떻게 했겠어요. 그래도 박 대통령은 ‘전 좋아요, 어머니’라고 말하곤 했어요. 제가 박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줬습니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도 너희 어머니는 평생 집이니 땅이니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한 분이다 라고요. 그렇게 부잣집에서 살다가 가난한 군인에게 시집 왔는데 한마디 불평 없이 남편 섬기고 내조한 사람이에요. 항상 국민 눈치 보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 일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부부싸움을 자주 봐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한심해서 원 …. 두 분이 싸우는 걸 본 사람이 있답니까. 육여사는 바른말은 해도 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 매일 남편 이불 펴 드리고 남편 앞에서 늘 갖춰 입고 맨발을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몸가짐에 조심하는 분이었어요. 남편 섬기기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사람이 또 없어요.”
 
  — 육여사 서거 후 얼마 안 있다가 청와대에서 나오셨죠. 최태민 부녀를 본 적은 없습니까.
 
  “볼 일 없었어요. 힘들어서 못 있겠다고 유학 떠났죠. 두 분 다 비명에 가시고 나니 이 나라가 싫어지더군요. 또 혼란을 틈타 김신조 같은 무리들이 설쳐대면 어쩌나 싶어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 전 총리 인터뷰는 새빨간 거짓말
 
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2011년 복원됐다.
  그는 최근 《시사저널》 김종필 전 총리의 인터뷰를 읽고 격하게 분노했다.
 
  — 김종필 전 총리가 주간지 인터뷰에서 육영수 여사에 대해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육여사가 이중인격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그분이 저보다 육여사를 잘 압니까? (JP는) 멀쩡하던 분이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 그때 사람들이 다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김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가 출산하고 쌀도 없어 굶고 있는데 육여사는 산모한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았고 그쪽에서는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때 살던 데가 어떤 덴데요. 제가 그 적산가옥 살면서 육여사 심부름했어요. (박영옥 여사는) 이웃에 산다지만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릴 거리가 아니에요. 무슨 달그락 소리가 들려요. 집에 부엌 같은 부엌도 없는 시절이에요. 그 시절 집에 쌀 쌓아 놓고 사는 사람 있었습니까.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굶기도 하고 다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어요. 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어찌 육여사 탓을 합니까. 육여사가 너무 현명해서 김종필씨가 감당이 안 됐을 거예요.”
 
  그는 박 대통령 가족에 대해 개인적인 연민을 표하기도 했다.
 
  — 박근령, 박지만씨도 잘 아시죠.
 
  “사람들이 왜들 그 사람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허튼 짓 하는 사람들 아니고 제대로 교육 받아서 대통령 자녀로서 품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박근령씨는 수입이 없다 보니 정말 형편이 어려워요. 전직 대통령 딸이 전철 타고 다니는 게 안타까워 한마디 하면 남들 다 타는 전철인데 어떠냐고 태연해요. 심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사실 박 전 대통령 추앙하는 사람들 중 박근령씨 도와주겠다는 사람 없겠어요? 하지만 본인이 소박한 걸 좋아해요.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대요. 박 전 대통령 일가가 해먹은 게 뭐가 있냐고요. 정수장학회 그렇게 몇십 년간 털어도 뭐가 나옵니까. 육영재단이 뭐 돈 되는 재단인 줄 아세요? 흔들어 봤자 나올 게 없으니 그렇게 싸워댄 거죠. 그분들 재산이라곤 신당동 그 작은 집이 전부예요. ”
 
 
 
안보가 걱정

 
  그는 1968년 1·21사태로 김신조가 청와대에 침입할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혼란에 빠진 청와대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 보수인사들은 지금 정국에서 안보를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당연하죠. 북한이 계속 파던 땅굴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간첩도 안 잡은 지 몇십 년 됐죠. 왜 안 잡죠? 어디에서 누가 간첩활동하는지 겁이 날 지경입니다. 6·25도 평화로운 주말에 갑자기 당한 일이잖아요. 어른(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과)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라고 하셨어요. 다른 일이 급해도 안보는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불안해요. 야당쪽 이북(북한)에 몇천억 원씩 갖다 준 사람들이 이제 와서 큰소리치고 떠드는 게 보기 싫어요.”
 
  —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최순실이 해먹은 거 다 뺏고 처벌하면 될 거 아닙니까. 맨날 큰소리치던 남자들은 왜 정유라 하나 독일에서 못 끌어오나요. 끌어내고 죄를 묻고 받아 낼 것은 받아 내고 하면 되잖아요. 그럴 생각은 안 하고 왜 대통령만 욕하는지 ….”
 
  —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게 아닌가요.
 
  “도둑맞은 사람에게 왜 도둑맞았냐고 하는 거 같아요.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왜 비선이 있었냐고요? 여자가 심부름할 사람도 필요한 거 아닙니까. 아버지처럼 청와대에 친인척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다 보니 친구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나 보죠. 전 대통령이 휘말렸다고 생각합니다. 돕고 싶다는 사람을 뜯어말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열심히 하니까 옆에 둔 거지. 그렇게 전횡을 하고 돌아다닐 줄 알았겠어요?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비선이 있었다면 비선을 잘라내고 해결해야지 왜 탄핵을 합니까?”
 
  — 여성이라 더 지나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의견은 어떻게 보십니까.
 
  “맞아요. 남자들 극성에 시달리고 있는 거죠. 영국 여왕 보세요. 국민들이 다 존경하고 사랑하니까 빛이 나잖아요.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뭐 한다고 하면 왜들 그렇게 ….”
 
  — 탄핵 후 여당도 보수도 갈 길을 잃은 듯한데요. 이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
 
  “지금 야당에서 나서는 사람들 제대로 정치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문재인이니 안철수니 박지원이니 그런 말 할 자격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위한다며 돌아다니면 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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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4-13) 찬성 : 105   반대 : 135
이는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육영수의 조카말대로 식사때 제공된 음식들이 고기가 아닌 채소반찬이 위주였다고하니 가난한사람들이야 고기못먹는건 당연한일이겠지만 부자집에서 고기없이 채소반찬으로 때운다는건 이상하다고 생각할수밖에....!!!!
  박혜연    (2018-03-29) 찬성 : 28   반대 : 1
육영수가 생전에 입었던 옷들 사진으로 봤지만 양장을 입었어도 사치스럽지않았다는걸 볼수있다!!! 물론 당시에는 나라가 가난했던것도 한몫했지!!!! 그러나 지금은 연예인이든 정, 재계 부인들이든 옷들이 너무 사치스럽더라!!!! 북한의 지도자인 뚱돼지 정으니의 마누라 리설주가 입은옷들 여기기준으로 보더라도 나이드신 사모님들이 입을법한 옷들이다!!!!
  박혜연    (2018-03-12) 찬성 : 30   반대 : 62
육영수가 부자집딸로 자랐지만 옷차림들을 보면 호화사치와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알수있다!!! 근데 애국보수 대통령이었던 503번 칠푸니 닭그네여사는 정작에 최순실이 만들어준 말도안되는옷을 입고 나왔으니 그야말로 순시리의 꼭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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