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출판기념회 개최 의원 101명 전원에게 참석자수ㆍ축하금 공개요청… 응답은 2명
⊙ 정치자금법 피하는 ‘남는 장사’… 親朴, 多選, ‘알짜 상임위’는 3大 흥행보증수표
⊙ 평균비용 3000만원, 수입은 1억~2억원… ‘적자’ 난다면 “한 번 더 출판”
취재지원 = 張在軫月刊朝鮮 인턴기자
⊙ 정치자금법 피하는 ‘남는 장사’… 親朴, 多選, ‘알짜 상임위’는 3大 흥행보증수표
⊙ 평균비용 3000만원, 수입은 1억~2억원… ‘적자’ 난다면 “한 번 더 출판”
취재지원 = 張在軫月刊朝鮮 인턴기자
2011년 11월 28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입구부터 도로까지 줄이 길게 이어졌다. 행사장 입구에선 한 국회의원 내외가 방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박(親朴) 성향의 이 중진의원은 자신의 책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든 지지자 수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로비도 상황이 비슷했다. ‘돈 봉투’와 ‘책 봉투’를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빼곡히 차려진 모금함과 방명록 앞으로 봉투 든 사람들은 또 줄을 섰다. 명목상 ‘책 판매대금’이지만, 이를 책값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대놓고 “‘축하금’, ‘후원금’은 어디 넣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봉투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지역구 단체에서 온 한 인사는 30만원을 넣었다고 했고,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한 교수는 20만원을 넣었다고 했다. 두툼한 봉투 너덧 개를 가져온 한 남자는 신분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끝까지 피하며 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액수와 상관없이 받아간 책은 단 한 권이었다.
약 550석 규모의 행사장은 당연히 만석(滿席)이었고, 홀 뒤편 공간까지 만원(滿員)이었다. 많은 사람이 인사만 하고 돌아간 것을 감안하면 2000명 이상이 온 것으로 추산된다. 양쪽 벽은 모두 주요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보낸 화환으로 가득했다. 급하게 보냈는지 의원 이름이 잘못 적힌 화환도 보였다.
마술쇼와 사물놀이패 공연이 이어졌고, 30분 후 정식 행사가 시작됐다. 사회는 여당 대변인 출신의 동료 국회의원이 맡았다. 내ㆍ외빈 소개와 축사가 30분 넘게 진행됐고, 한 의원은 “이번 출판기념회 제목은”이라며 책 제목을 설명했다. “‘출판을 위한 기념회’가 아니라 ‘기념회를 위한 출판’”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은 것은 행사가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였다.
행사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가 등장하자 중단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축사를 하던 한 중진의원은 곧바로 “박근혜 대표께서 도착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연단을 비워줬다. 무대 위로 올라간 박 전 대표는 짧은 축사를 마치고 내려왔지만, 취재진과 방문객의 모든 시선은 계속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책 이야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풍경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2011년에만 129회 개최
국회의원이 ‘작가’로 변신하는 계절이다. 여당은 해체 위기에 야당은 난투극이 벌어지지만, ‘그들만의 기념회’는 주야장천이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의 망을 교묘하게 비켜가기 때문에 ‘비공식 후원’을 마음 놓고 받을 수 있다. 금액 한도, 모금액수, 개최횟수에 제한도 없고, 선관위에 모금내역을 신고할 필요도 없다. “세(勢) 과시와 총알(정치자금) 장전”, 이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정치인들이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여는 가장 주된 목적이다.
《월간조선》이 2011년 한 해 동안 현직 국회의원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12월 14일까지 총 129회가 열렸으며 이 중 과반인 73회가 11월과 12월에 몰렸다.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판 ‘수금’이 과열되고 있다.
개최 의원 수는 총 120명이며, 이 중 9명은 2011년에만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당별로 분류하면 한나라당이 58명, 민주당 46명, 자유선진당 6명, 미래희망연대 5명, 민주노동당 3명, 창조한국당 1명, 무소속 1명 순이다. 한나라당 의원 중 34%와 민주당 의원 중 53%가 개최한 셈이다. 비교섭단체의 경우 자유선진당 38%, 미래희망연대 62%, 민주노동당 60%, 창조한국당 50%로 집계돼 의석 수가 적은 당일수록 개최 의원 수가 많았다.
129건 중 89건이 의원회관이나 헌정기념관 등 국회 내부 시설을 이용했으며, 40건은 학교, 호텔, 극장, 강당 등 지역구 시설에서 열렸다. 모든 통계는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된 행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 행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늘 것으로 보인다. 18대 국회 회기로 기간을 확대하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당대표를 지낸 의원의 한 비서관은 “출판기념회의 핵심은 결국 돈”이라며 “‘판매대금’으로 포장된 축하금의 액수와 구체적 행방은 각 의원실에서도 최소 인원만 아는 극비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한 의원이 4억원을 모았다”, “장관을 지낸 중진의원은 7억원을 거뒀다”, “한 야당 의원은 지역구 학생까지 동원해 세를 과시했다” 등 정체불명의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모금 총액을 공개한 의원은 극히 드물다.
출판기념회의 대략적 ‘흥행기준’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비밀이다. 초ㆍ재선의 경우 평균 1억~1억5000만원 정도를 거두면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다. 3선 이상 중진의원은 평균 2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벌어야 한단다. 다선(多選) 의원 중 주요 부처 장관 출신이거나 국토해양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등 ‘알짜배기’ 상임위원회 소속일 경우 추정 액수가 훨씬 늘어난다. ‘주요 친박계 인사’란 타이틀까지 달리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출판기념회의 수입이 국회 내 권력구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
수입은 천차만별이지만, 비용은 큰 차이가 없다. 제작 및 인쇄, 대필작가 섭외, 행사비용 등을 모두 합쳐 3000만원 정도다. 웬만해선 적자가 나지 않아 “잘하면 대박, 못해도 본전”이란 말도 생겨났다. 혹여 적자가 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역구에서 한 번 더 열거나, 다음 해에 새로운 책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올까. 출판기념회의 ‘물주’는 지역구 산하 단체 인사 및 기업가, 상임위 피감기관 및 공기업, 기성 정치인 ‘줄’을 잡으려는 출마희망자 등이다. 일부는 대놓고 후원금을 ‘상납’할 수 있는 로비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 수차례의 출판기념회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A 과장은 두 시간 터울로 개최된 출판기념회 세 군데를 돌고선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기관장급쯤 되면 나름 여윳돈이 있을 테니 돈 때문에 심각하진 않겠죠. 그런데 저희 같은 직원 입장에선 매일같이 이어지는 출판기념회 때문에 수백만 원이 나갑니다. 따로 지원이 없으니 개인 돈을 쏟아부어야죠. 일단 상임위 의원들 전원은 기본으로 챙겨야 하고,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야 하는 의원도 ‘보험’ 차원에서 꼭 찾아갑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정부기관 인사나 관계사 임원들까지 포함하면 연간 수십 건은 물론 많으면 100건까지 갑니다.”
A 과장은 축하금 비용에 대해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만~30만원을 꼬박꼬박 낸다고 했다. 이는 순수하게 직원 개인 차원의 금액이며, 관련 업체나 기관 차원에선 수백만 원 단위의 고액 축하금도 자주 오간다고 했다.
상임위 관련 기관 또는 기업체의 경우 따로 연락을 할 필요도 없다. 포스터 크게 만들어서 의원회관 곳곳에 붙여놓으면 국회를 오가는 피감기관 인사들이 ‘알아서 보고’ 찾아온다고 한다. A 과장은 “임원 비서들이 매일 아침 챙겨야 할 일정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추가된 것도 이미 오랜 일”이라며 “수십 건의 출판기념회가 한 번에 몰린 2011년 연말은 웬만한 경조사보다 출판기념회 건수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원 본인도 안 보는 책 허다”
여당 최고위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B씨는 “(책에 쓴) 종이 값이 아깝다”며 “대한민국 정계에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편법적인 모금 행위가 일어나는 이상, 피감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선 편법으로 자금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보통 백만 단위로 ‘책값’을 내는데,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겠나”고 반문했다. 출판기념회의 기형적 모금행위가 오히려 관련 기관의 비자금 조성을 독촉하는 꼴이 됐다. B씨의 설명이다.
“모양새는 결혼식 축의금 비슷한데, 규모는 조금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분명 책 판매대금인데 영수증 받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완전한 현금 장사니 세금도 의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법을 바꿔야 이를 단속할 수 있는데, 여야 막론하고 국회의원 대다수가 ‘공범’인데 누가 총대를 메겠습니까. 밖에선 아무리 ‘정당정치의 최대위기’라고 떠들지만, 출판기념회 가보면 그냥 잔치 분위기예요.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고 싶다면, 첫째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가보고, 둘째 ‘한국에서 가장 비싼 책’을 한 번 읽어보면 됩니다. 책 낸 본인도 안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누가 제대로 보겠습니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며칠 동안 앉아 집필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다수 의원이 대필작가를 통해 책을 쓰는데, 대여섯 차례 인터뷰 후에 곧바로 원고 초안이 나온다. 급하게 책을 낼 경우, 두세 차례 면담 후 바로 완성본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 초선의원 보좌관 C씨는 “대필작가라도 써서 제대로 된 책이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머리말 몇 쪽 쓰고 정책질의자료와 언론인터뷰 스크랩으로 지면을 때우려면 책은 왜 만드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올바른 뜻을 가지고 평소 관심을 뒀던 분야에 대해 수준 높은 책을 내는 의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죠. 출판기념회를 하려면 일단 책을 내야 하니까, 대충 몇 쪽 만들어놓고 표지를 열심히 꾸미죠. 다수의 ‘꼼수’ 때문에 선의로 책을 낸 소수 의원이 오히려 큰 피해를 보는 셈이죠.”

101명 설문에 2명 답변
국회사무처가 최근 의원들의 책 제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꿈’, ‘희망’, ‘함께’, ‘동행’ 등이 제목용 ‘단골 단어’다. C씨는 “일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단어가 ‘뻔한 제목용’”이라며 “의원 자신의 꿈(2012년 당선)을 위해 동행(지지)하라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월간조선》은 2011년 12월 8일까지 출판기념회를 실시한 의원 102명에게 ▲참석인원 수 ▲축하금 합계 ▲축하금 활용내역 등을 묻는 질문서를 보냈다. 대부분 의원실을 직접 방문해 전달했으며, 일부 부재 중이었던 의원의 경우 공식 이메일로 발송했다. 질의서엔 답변받을 이메일 주소와 팩스번호를 기재했고, 답변 여부 및 내용을 《월간조선》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의원실에 직원이 부재한 데다 이메일 용량까지 초과된 최구식(崔球植) 의원을 제외하면, 질문서를 접수한 의원은 총 101명이다.
101명 중 답변을 보낸 의원은 단 2명이었다. 한나라당 1명과 민주당 1명으로, 한나라당 의원은 “수천만 원을 받아 책값으로 쓰고 조금 모자랐다”고 밝혔고, 민주당 의원은 상세하게 축하금 합계와 행사 비용 등을 밝혔지만, 설문 후 한 차례 더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질의서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의원실 비서진의 반응도 비슷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이 곤란할 수도 있겠다”란 반응이 가장 많았다.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 부분만 공개하라”고 했지만,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의원실도 있었다. 최경환(崔炅煥) 의원실 직원은 질의서를 본 후 “이걸 무슨 수로 답변하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이석현(李錫玄) 의원실 직원은 “답변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설문지 자체를 못 받겠다”고 했다. “일단 질의서를 받은 후 내용을 보고 답변 여부를 결정해도 된다”고 하자 “이런 걸 왜 취재하느냐”고 물었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니 취재한다”고 답하니 “이런 건 국민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며 끝내 거절했다. 강기갑(姜基甲) 의원실 직원은 질문내용과 상관없이 “조선(일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를 감시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출판기념회를 감사하거나 관련 내용을 보고받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103조 5항)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후보자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것과, 행사참석자에 대한 다과 제공 등 의례적 행위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실제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면질의를 보면 다수의 정치인과 출판사에서 출판기념회 관련 질의를 했지만, 답변은 대부분 “공직선거법상 서적 출판이나 판매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통상적 범위의 다과 외 음식물과 서적을 무료 또는 싼값으로 제공하는 것은 위반” 등으로 비슷하다.
정치자금법 개정해 전액 공개해야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관련법이 출판기념회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 집행기관에서 이를 두고 제재를 할 수 없다”며 “선관위 내부에서도 해당 문제는 이미 인식하고 있지만, 먼저 나설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편법 정치자금 조달 창구로 변질한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스스로 나서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선의로’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 정치인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법망을 피해 빠르고 편하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장사’를 누가 포기할 수 있을까. 당선 후 출판기념회를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한 의원의 말이다.
“출판기념회 축하금 전액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책의 수준과 진정성을 떠나 일단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의원은 쉽게 나서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출판 경험이 없는 의원이 총대를 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동료의원들을 공격하면서까지 밀어붙여야 하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큰 딜레마예요.”
극단의 대립으로 치닫는 여야가 출판기념회 앞에선 이상하게 단합된 자세를 보인다.⊙
로비도 상황이 비슷했다. ‘돈 봉투’와 ‘책 봉투’를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빼곡히 차려진 모금함과 방명록 앞으로 봉투 든 사람들은 또 줄을 섰다. 명목상 ‘책 판매대금’이지만, 이를 책값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대놓고 “‘축하금’, ‘후원금’은 어디 넣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봉투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지역구 단체에서 온 한 인사는 30만원을 넣었다고 했고,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한 교수는 20만원을 넣었다고 했다. 두툼한 봉투 너덧 개를 가져온 한 남자는 신분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끝까지 피하며 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액수와 상관없이 받아간 책은 단 한 권이었다.
약 550석 규모의 행사장은 당연히 만석(滿席)이었고, 홀 뒤편 공간까지 만원(滿員)이었다. 많은 사람이 인사만 하고 돌아간 것을 감안하면 2000명 이상이 온 것으로 추산된다. 양쪽 벽은 모두 주요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보낸 화환으로 가득했다. 급하게 보냈는지 의원 이름이 잘못 적힌 화환도 보였다.
마술쇼와 사물놀이패 공연이 이어졌고, 30분 후 정식 행사가 시작됐다. 사회는 여당 대변인 출신의 동료 국회의원이 맡았다. 내ㆍ외빈 소개와 축사가 30분 넘게 진행됐고, 한 의원은 “이번 출판기념회 제목은”이라며 책 제목을 설명했다. “‘출판을 위한 기념회’가 아니라 ‘기념회를 위한 출판’”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은 것은 행사가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였다.
행사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가 등장하자 중단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축사를 하던 한 중진의원은 곧바로 “박근혜 대표께서 도착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연단을 비워줬다. 무대 위로 올라간 박 전 대표는 짧은 축사를 마치고 내려왔지만, 취재진과 방문객의 모든 시선은 계속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책 이야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풍경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2011년에만 129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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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금을 내고 방명록을 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중진의원의 출판기념회 행사장 로비. |
《월간조선》이 2011년 한 해 동안 현직 국회의원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12월 14일까지 총 129회가 열렸으며 이 중 과반인 73회가 11월과 12월에 몰렸다.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판 ‘수금’이 과열되고 있다.
개최 의원 수는 총 120명이며, 이 중 9명은 2011년에만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당별로 분류하면 한나라당이 58명, 민주당 46명, 자유선진당 6명, 미래희망연대 5명, 민주노동당 3명, 창조한국당 1명, 무소속 1명 순이다. 한나라당 의원 중 34%와 민주당 의원 중 53%가 개최한 셈이다. 비교섭단체의 경우 자유선진당 38%, 미래희망연대 62%, 민주노동당 60%, 창조한국당 50%로 집계돼 의석 수가 적은 당일수록 개최 의원 수가 많았다.
129건 중 89건이 의원회관이나 헌정기념관 등 국회 내부 시설을 이용했으며, 40건은 학교, 호텔, 극장, 강당 등 지역구 시설에서 열렸다. 모든 통계는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된 행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 행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늘 것으로 보인다. 18대 국회 회기로 기간을 확대하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당대표를 지낸 의원의 한 비서관은 “출판기념회의 핵심은 결국 돈”이라며 “‘판매대금’으로 포장된 축하금의 액수와 구체적 행방은 각 의원실에서도 최소 인원만 아는 극비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한 의원이 4억원을 모았다”, “장관을 지낸 중진의원은 7억원을 거뒀다”, “한 야당 의원은 지역구 학생까지 동원해 세를 과시했다” 등 정체불명의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모금 총액을 공개한 의원은 극히 드물다.
출판기념회의 대략적 ‘흥행기준’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비밀이다. 초ㆍ재선의 경우 평균 1억~1억5000만원 정도를 거두면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다. 3선 이상 중진의원은 평균 2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벌어야 한단다. 다선(多選) 의원 중 주요 부처 장관 출신이거나 국토해양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등 ‘알짜배기’ 상임위원회 소속일 경우 추정 액수가 훨씬 늘어난다. ‘주요 친박계 인사’란 타이틀까지 달리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출판기념회의 수입이 국회 내 권력구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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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포스터로 도배된 의원회관 벽. |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
수입은 천차만별이지만, 비용은 큰 차이가 없다. 제작 및 인쇄, 대필작가 섭외, 행사비용 등을 모두 합쳐 3000만원 정도다. 웬만해선 적자가 나지 않아 “잘하면 대박, 못해도 본전”이란 말도 생겨났다. 혹여 적자가 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역구에서 한 번 더 열거나, 다음 해에 새로운 책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올까. 출판기념회의 ‘물주’는 지역구 산하 단체 인사 및 기업가, 상임위 피감기관 및 공기업, 기성 정치인 ‘줄’을 잡으려는 출마희망자 등이다. 일부는 대놓고 후원금을 ‘상납’할 수 있는 로비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 수차례의 출판기념회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A 과장은 두 시간 터울로 개최된 출판기념회 세 군데를 돌고선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기관장급쯤 되면 나름 여윳돈이 있을 테니 돈 때문에 심각하진 않겠죠. 그런데 저희 같은 직원 입장에선 매일같이 이어지는 출판기념회 때문에 수백만 원이 나갑니다. 따로 지원이 없으니 개인 돈을 쏟아부어야죠. 일단 상임위 의원들 전원은 기본으로 챙겨야 하고,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야 하는 의원도 ‘보험’ 차원에서 꼭 찾아갑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정부기관 인사나 관계사 임원들까지 포함하면 연간 수십 건은 물론 많으면 100건까지 갑니다.”
A 과장은 축하금 비용에 대해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만~30만원을 꼬박꼬박 낸다고 했다. 이는 순수하게 직원 개인 차원의 금액이며, 관련 업체나 기관 차원에선 수백만 원 단위의 고액 축하금도 자주 오간다고 했다.
상임위 관련 기관 또는 기업체의 경우 따로 연락을 할 필요도 없다. 포스터 크게 만들어서 의원회관 곳곳에 붙여놓으면 국회를 오가는 피감기관 인사들이 ‘알아서 보고’ 찾아온다고 한다. A 과장은 “임원 비서들이 매일 아침 챙겨야 할 일정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추가된 것도 이미 오랜 일”이라며 “수십 건의 출판기념회가 한 번에 몰린 2011년 연말은 웬만한 경조사보다 출판기념회 건수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원 본인도 안 보는 책 허다”
여당 최고위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B씨는 “(책에 쓴) 종이 값이 아깝다”며 “대한민국 정계에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편법적인 모금 행위가 일어나는 이상, 피감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선 편법으로 자금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보통 백만 단위로 ‘책값’을 내는데,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겠나”고 반문했다. 출판기념회의 기형적 모금행위가 오히려 관련 기관의 비자금 조성을 독촉하는 꼴이 됐다. B씨의 설명이다.
“모양새는 결혼식 축의금 비슷한데, 규모는 조금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분명 책 판매대금인데 영수증 받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완전한 현금 장사니 세금도 의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법을 바꿔야 이를 단속할 수 있는데, 여야 막론하고 국회의원 대다수가 ‘공범’인데 누가 총대를 메겠습니까. 밖에선 아무리 ‘정당정치의 최대위기’라고 떠들지만, 출판기념회 가보면 그냥 잔치 분위기예요.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고 싶다면, 첫째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가보고, 둘째 ‘한국에서 가장 비싼 책’을 한 번 읽어보면 됩니다. 책 낸 본인도 안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누가 제대로 보겠습니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며칠 동안 앉아 집필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다수 의원이 대필작가를 통해 책을 쓰는데, 대여섯 차례 인터뷰 후에 곧바로 원고 초안이 나온다. 급하게 책을 낼 경우, 두세 차례 면담 후 바로 완성본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 초선의원 보좌관 C씨는 “대필작가라도 써서 제대로 된 책이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머리말 몇 쪽 쓰고 정책질의자료와 언론인터뷰 스크랩으로 지면을 때우려면 책은 왜 만드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올바른 뜻을 가지고 평소 관심을 뒀던 분야에 대해 수준 높은 책을 내는 의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죠. 출판기념회를 하려면 일단 책을 내야 하니까, 대충 몇 쪽 만들어놓고 표지를 열심히 꾸미죠. 다수의 ‘꼼수’ 때문에 선의로 책을 낸 소수 의원이 오히려 큰 피해를 보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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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출판기념회 행사장에 붙은 무료증정ㆍ할인 불가 안내장. 방문객 대부분은 책값의 10~100배 정도를 내고 책을 받아간다. |
《월간조선》은 2011년 12월 8일까지 출판기념회를 실시한 의원 102명에게 ▲참석인원 수 ▲축하금 합계 ▲축하금 활용내역 등을 묻는 질문서를 보냈다. 대부분 의원실을 직접 방문해 전달했으며, 일부 부재 중이었던 의원의 경우 공식 이메일로 발송했다. 질의서엔 답변받을 이메일 주소와 팩스번호를 기재했고, 답변 여부 및 내용을 《월간조선》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의원실에 직원이 부재한 데다 이메일 용량까지 초과된 최구식(崔球植) 의원을 제외하면, 질문서를 접수한 의원은 총 101명이다.
101명 중 답변을 보낸 의원은 단 2명이었다. 한나라당 1명과 민주당 1명으로, 한나라당 의원은 “수천만 원을 받아 책값으로 쓰고 조금 모자랐다”고 밝혔고, 민주당 의원은 상세하게 축하금 합계와 행사 비용 등을 밝혔지만, 설문 후 한 차례 더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질의서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의원실 비서진의 반응도 비슷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이 곤란할 수도 있겠다”란 반응이 가장 많았다.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 부분만 공개하라”고 했지만,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의원실도 있었다. 최경환(崔炅煥) 의원실 직원은 질의서를 본 후 “이걸 무슨 수로 답변하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이석현(李錫玄) 의원실 직원은 “답변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설문지 자체를 못 받겠다”고 했다. “일단 질의서를 받은 후 내용을 보고 답변 여부를 결정해도 된다”고 하자 “이런 걸 왜 취재하느냐”고 물었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니 취재한다”고 답하니 “이런 건 국민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며 끝내 거절했다. 강기갑(姜基甲) 의원실 직원은 질문내용과 상관없이 “조선(일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를 감시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출판기념회를 감사하거나 관련 내용을 보고받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103조 5항)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후보자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것과, 행사참석자에 대한 다과 제공 등 의례적 행위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실제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면질의를 보면 다수의 정치인과 출판사에서 출판기념회 관련 질의를 했지만, 답변은 대부분 “공직선거법상 서적 출판이나 판매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통상적 범위의 다과 외 음식물과 서적을 무료 또는 싼값으로 제공하는 것은 위반” 등으로 비슷하다.
정치자금법 개정해 전액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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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 행사장에 늘어선 화환들. 최근 출판기념회 ‘대박’의 3대 요소는 ‘친박’, ‘다선’, ‘알짜 상임위’다. |
편법 정치자금 조달 창구로 변질한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스스로 나서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선의로’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 정치인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법망을 피해 빠르고 편하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장사’를 누가 포기할 수 있을까. 당선 후 출판기념회를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한 의원의 말이다.
“출판기념회 축하금 전액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책의 수준과 진정성을 떠나 일단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의원은 쉽게 나서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출판 경험이 없는 의원이 총대를 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동료의원들을 공격하면서까지 밀어붙여야 하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큰 딜레마예요.”
극단의 대립으로 치닫는 여야가 출판기념회 앞에선 이상하게 단합된 자세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