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4ㆍ27 재ㆍ보선 최대의 승자 孫鶴圭 대표의 미래 : 월간조선

손학규(孫鶴圭) 민주당 대표가 4·27 재·보선의 최대 수혜자라는 데 이견이 없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이라고 불리는 한나라당 텃밭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 광주(光州)에서 당선된 것에 비견할 만한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사지(死地)나 다름없었던 분당에서의 승리로 손학규 대표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이번 선거 승리로 손 대표는 ‘일거오득’(一擧五得)의 정치적 효과를 얻었다.

첫째, 그동안 손 대표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빨간 딱지를 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손 대표는 호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당선되었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적통(嫡統)이 아니라는 시비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호남과 수도권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이런 적통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야권 연대(連帶)의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適任者)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손 대표는 전남 순천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하지 않음으로써 민주노동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 냈고, 김해을(乙)에서는 국민참여당의 요구 조건을 전적(全的)으로 수용함으로써 파국으로 치닫던 후보 단일화 경선을 성사시켰다.

손 대표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앞을 내다보면서 자기 것을 희생하는 버림의 정치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부영(李富榮)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1987년 DJ-YS의 분열로 유보(留保)됐던 야권(野圈) 통합이 손학규를 통해 이뤄졌다”고 호평했다. 손학규를 중심으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 남북통일과 복지를 지향하는 세력이 하나로 뭉치면 내년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에서도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는 평가까지 얻었다.

유시민과의 경쟁에서 일단 우위

셋째, 당의 무게중심을 손 대표 쪽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힘을 비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정동영(鄭東泳)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非主流)의 파상(波狀) 공세를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분당을 선거에 손 대표 출마를 제일 먼저 언급한 쪽은 당내 비주류였다. 이런 제안에 대해 주류 쪽에서는 ‘손학규 흔들기’라고 비판했지만 손 대표는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을 내세우며 정면돌파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분당을 공천을 둘러싸고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를 미는 세력과 강재섭(姜在涉) 전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이전투구(泥田鬪狗)로 손 대표가 반사(反射)이익을 얻은 면도 있다. 하지만 손 대표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분당을에서 살아 돌아옴으로써 당분간 비주류의 공세를 무디게 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원내진출에 성공함으로써 그동안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에 쏠렸던 무게중심을 손 대표가 장악하는 부수(附隨) 효과도 챙기게 되었다. 더불어, 차기 원내대표도 손 대표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친손(親孫) 의원으로 교체할 수 있는 힘이 비축되었다.

넷째, 당내 486세력을 실질적으로 우군화(友軍化)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당내 보수(保守) 성향이 주를 이뤘던 친손 세력의 외연(外延)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 핵심에 이번 분당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일궈낸 이인영(李仁榮) 최고위원이 있다. 이 최고위원은 작년 대표경선에서 세대교체론의 바람을 타고 486세대의 통합후보로 출마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손 대표로서는 당내 친손 명단을 늘리는 큰 수확을 얻은 것이다.

다섯째, 국민참여당 유시민(柳時敏) 대표의 정치적 추락으로 야권 대권(大權)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해을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李鳳洙) 후보가 패배함으로써 당장 유시민 대표는 친노(親盧) 적통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유시민 대표 정치위상의 추락은 바로 야권의 대권경쟁 구도에서 지각(地殼) 변동을 가져왔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선거 후인 지난달 30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손 대표 지지율은 11.5%를 기록했다. 3월 조사의 3.1%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다. 반면 유시민 대표는 3월 조사에서는 10.6%였지만 7.1%로 하락했다. 야권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한 범(汎)민주단일후보로서의 적합도에서도 손 대표가 41.4%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손 대표를 오차범위로 추격하던 유시민 대표는 10.4%로 낮아졌다. 이런 조사결과는 손 대표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야권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中産層 표 얻을 수 있는 야권 주자

2007년 7월 민심대장정길에 오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탄광작업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분당을 재·보선 승리로 누리게 될 ‘손학규 효과’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지, 더 나아가 손 대표의 정치적 장래 가능성과 향후 손 대표가 넘어야 할 고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손 대표 개인 자질에 대한 스왓(SWOT) 분석이 필요하다.

<표>에서 보듯이, 손 대표의 가장 큰 장점(Strength)은 ‘표의 확장성’이다. 중도(中道)개혁 성향의 이미지와 경기도 지사 및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습득한 행정 경험과 능력이 큰 자산이다.

손 대표의 이런 특성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 수도권과 중산층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손 대표가 지금껏 아무도 해내지 못한 ‘수도권 중산층(中産層) 밀집지역인 분당을도 민주당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증명함으로써 대선 승부의 핵심인 중간계층을 포용할 수 있는 야권 지도자로 거듭 난 것은 큰 장점이다.

손 대표의 또 다른 장점은 민심 소통(疏通) 이미지이다. 손 대표는 지난 2006년 경기도 지사 퇴임 직후 자신의 인지도(認知度)를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100일 민심 대장정(大長征)’을 수행했다. 농촌에 가서 감자도 캐고 밭일도 보면서 서민들과 동고동락(同苦同樂)했다. 작년 말에는 한나라당의 예산 강행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민심 대장정을 이어 갔다.

물론 손 대표의 이런 행보는 초기를 빼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서민들의 애환(哀歡)을 들어 주고 아픔을 같이하는 과정에서 그의 인지도와 서민성(庶民性)을 높이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이런 행보는 다른 말로 권력을 잡아 보겠다는 권력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권을 바라보는 정치인에게는 큰 자산이다. 여기에 분당을 선거에서 신고한 재산이 1억8818만원으로 불법탈세(脫稅)나 체납(滯納)도 없어 ‘청빈’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고정 지지층 취약

한편, 손 대표가 갖게 될 기회(Opportunity)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정치적 추락과 정동영, 정세균(丁世均) 등 당내 기존 대주주(大株主)들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야권 대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회요인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앞서 손 대표가 야권연대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손 대표가 연합이든 통합이든 위상 제고(提高)로 형성된 정치력을 토대로 유연성 있게 야권연대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명분과 자격을 획득한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진보진영을 묶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손 대표의 최대 약점(Weakness)은 당내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나 유시민 대표처럼 견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이다. 작년 대표취임 이후 현재까지 손 대표의 지지도가 15%를 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아무리 지지도가 추락해도 20%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절대 고정층’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분당을 선거에서 손 대표가 승리한 것도 자신의 핵심 지지층 결집보다는 이명박(李明博) 정권 심판론과 야권연대에 의한 반사이익 때문이다. 실제로 《시사저널》과 동서리서치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손 대표에게 투표한 이유로 가장 많은 45.0%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손학규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는 26.8%에 불과했다.

문재인(文在寅)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야권의 4·27 재·보선 승리에 대해 “진보개혁 진영이 잘해서 얻은 승리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 정부에 실망한 민심(民心)의 이반(離反) 때문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손학규가 ‘노무현 정신’의 실천자?

작년 10월 6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에서 큰절을 하고있다.

손 대표의 또 다른 약점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비전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이사장도 “무엇보다 진보개혁 진영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 대안(代案)을 내놔야 한다”며 “진보개혁 진영이 다시 집권하면 국민 다수(多數)를 대변하고 약자를 보호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그동안 선명한 야당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민주당이 수권(受權)정당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라도 ‘손학규표(票)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친노세력 내 손학규 비토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약점이다. 손 대표는 최근 부쩍 ‘노무현 정신’을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은 추구해야 할 목표와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두 부분으로 분리된다. ‘특권과 차별이 없는 세상,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전자(前者)에 해당된다. 반면, ‘이당 저당 기웃거리며 보따리 장사 하지 마라. 지역을 팔지 마라. 유불리(有不利)를 따지지 마라’는 후자(後者)에 해당된다.

정통 친노세력들은 손 대표가 전자를 언급하는 데는 거부감이 없다. 다만 손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경포대 대통령’(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는 점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산이 없자 탈당(脫黨)해 민주당으로 들어온 것이 ‘노무현 정신’과 배치된다는 점이 친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광재(李光宰) 전 강원지사가 손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고 해도 그것은 친노세력의 일반적 기류와는 상당한 온도차이가 있다. 친노세력이 지금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손 대표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거나 침묵하고 있지만 문재인 이사장과 같이 정통 친노 인사가 깃발을 들면 반(反)손학규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正體性의 위기

손 대표를 위협(Threat)하는 최대 요인은 정치노선과 과거 언행(言行)과 연계된 ‘정체성(正體性)의 위기’이다.

최근 한(韓)·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손 대표의 행보가 좋은 사례이다. 손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한미 FTA를 찬성했지만, 지금은 소신을 접고 야권연대라는 정치공학적 이유로 진보진영의 눈치를 보고 있다. 손 대표는 최근 “‘자유무역협정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지금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성과 내기에 매몰돼 ‘나쁜 FTA’를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나쁜 FTA’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과거에 “유럽 좌파(左派)들의 복지정책이 예산낭비와 도덕적 해이를 낳았다”고 지적했는데 최근에는 무상(無償)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노선과 언행을 달리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체성 문제는 ‘정치인 손학규’의 진실성과 신뢰성에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결국 손 대표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진보를 자처하는 비주류도 “당의 정체성이 걸린 사안마다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야권통합의 동력을 훼손했다”고 손 대표를 비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손 대표가 그때그때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지만 따지는 ‘안테나 정치’를 하고 있는데, 이제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민주당 한 최고위원의 발언은 손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정곡으로 찌르는 것이다. 민주당은 작년 10·3 전당대회에서 그동안 금과옥조로 여겼던 중도개혁 노선을 폐기하고 ‘새로운 진보’를 당의 노선으로 채택했다. 이런 노선은 손 대표의 최대 장점인 중도포용 이미지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去來的 리더십’

지난 5월 4일 손학규 대표가 한·EU FTA 비준 반대 농성을 하고 있는 민노당-진보신당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손 대표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은 불안정하고 즉흥적인 정치행보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손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지금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13년 동안 온갖 혜택을 누렸던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몸담았던 당에 침을 뱉고 나올 정도로 치밀하지 못했고, 최측근조차 탈당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즉흥적이었으며 명분도 약했다.

손 대표는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변혁적(transformational) 리더십’보다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을 적당히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거래적(transactional) 리더십’의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최근 한-EU FTA 파문으로 손 대표의 ‘우왕좌왕하는 리더십’이 도마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리더십 때문에 ‘진보진영’의 반발을 불러왔고 FTA 찬반 양(兩)진영에서 모두 ‘기회주의’라는 비난도 받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요리저리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일관성에 바탕을 두는 소신 있는 리더십이다.

그밖에 손 대표는 아직까지 한나라당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 못했고, 민주당의 적통이 아니라는 것이 여전히 큰 위험요소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과거 이인제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만 하다가 결국 팽(烹)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6·2 지방선거 이후 유권자 투표행태는 야권에게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고, ‘중도의 야권 지지화(支持化)’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 선거의 결정적 변수인 40대 연령층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에게 유리한 이런 환경에서 손 대표가 자신의 장점과 기회만을 굳게 믿고 약점과 위협요인을 애써 외면하면 비단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의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손 대표의 행보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장점과 기회보다는 약점과 위협요인이 훨씬 더 강하다.

손 대표는 작금의 당내 입지 강화와 지지도 상승에 도취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반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이 손 대표에게 차기 대선주자로 바닥세의 위기를 벗어나 도약할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작년 10월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지지율이 15%까지 급상승했으나 두 달도 되지 않아 한자릿수로 추락했다. 정부 여당을 향한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만 하고 정책은 ‘좌향좌 우향우(左向左右向右)’로 갈지(之)자 행보를 하면서 포퓰리즘 정치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손 대표가 이런 실수를 계속 범한다면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손 대표는 매우 난감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당장 민주당 내 비주류가 생존전략으로 ‘진보 선명성’ 카드를 들고 정체성 시비를 걸고 있다. 민노당 등 야권연대 당사자들도 갈수록 민주당 정책을 좌클릭시키기 위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손 대표가 직면한 과제는 정치노선 확립, 통합과 혁신이다.

당장 진보강화냐 중도확대냐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진보진영과의 야권연대의 필요성과 절박성에 따른 고육책(苦肉策)으로 손 대표는 ‘선(先) 진보강화, 후(後) 중도확대’를 집권전략으로 삼은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야권연대의 틀을 유지하고, 총선승리 후에는 중도를 확대해 대권을 잡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최근 손 대표는 한미 FTA에 대해 “정부가 결코 재(再)협상해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 쪽 입장만 반영해 새로 고침으로써 국익(國益) 측면에서 손해가 더 커져 가고 있다”며 향후 국회의 비준안 처리에 동의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손 대표는 한미 FTA에 대한 과거 자신의 소신을 접고 분명하고 성급하게 좌클릭 노선을 택한 것이다.

박지원이 당대표가 되면…

애석하게도 손 대표의 이런 편의주의적 정치노선, 유연성 전략은 성공하기 힘들다. 정치노선이란 전략과 시간이 아니라 철학과 일관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총선 후에 정치노선을 진보에서 중도로 바꾼다면 이는 진보진영을 기만하는 것이 되고, 끝까지 진보강화 노선을 유지하면 중간계층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큰 시련을 맞이할 것이다.

정권을 탈환하려고 하는 야권후보가 중도를 버리고 좌클릭 또는 우클릭해서 승리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손 대표는 극좌(極左) 노선을 걸으며 만년야당(萬年野黨) 생활을 했던 영국의 노동당이 왜 토니 블레어를 통해 중도를 강화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채택해 정권을 탈환했는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민주당이 추구하려는 혁신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차기 민주당 대표로 누가 선임되느냐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고, 수위라도 하겠다”며 당권도전의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호남 대표-수도권 대선후보’라는 밑그림 속에서 나온 구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역주의에 기대어 호남 대표로 총선을 치르려고 하는 이런 구상은 혁신을 부르짖는 당내 세대교체 세력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과의 쇄신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필승전략을 채택해야 하는 상황이 어쩌면 그동안 전략적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박 전 원내대표와 갈등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4·27 재·보선 이후 손 대표 측은 “이제 야권의 대권주자는 손학규 외에 대안이 없다는 점이 입증된 만큼 박근혜-손학규의 확고한 양자 구도가 구축되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 참여당 대표의 선택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도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와 이번 김해을 선거에서 입증되었듯이 참여당 후보는 야권 후보단일화 게임에서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본선(本選)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유 대표 스스로도 김해 선거에서 패배한 지 닷새 만에 “내년 총선·대선 이후를 포함한 당 진로는 앞으로 당원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가 민주당과의 통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의 진로를 얘기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제기하는 ‘야권대통합론’ 수용 가능성을 열어 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양당은 “늦어도 9월 말까지는 새로운 진보 대통합 정당을 출범시키자”는 제안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뿌리가 같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최근에 민주당 의원 7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74%가 ‘진보정당과의 통합은 어렵다’고 응답한 반면, 국민참여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은 54.3%였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민주당 내에서 손학규 대표 체제가 공고화되고, 손 대표의 대선 경쟁력이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잘못된 행보로 지지율이 곤두박질하면 참여당과의 통합논의는 물거품이 되면서 대권구도가 또 다시 ‘박근혜-손학규-유시민’의 3자구도로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 더 나아가 ‘근혜 공주와 일곱 난쟁이’로 묘사되는 ‘박근혜 독주체제’가 다시 부상될 수도 있다.

박근혜의 고민

지난 4월 28일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유럽으로 출국하는 박근혜 대표.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숙제다.

이번 4·27 재·보선이 정치권에 던진 함의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분당을과 김해을에서 한나라당과 참여당이 패배했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 선거에서 텃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일반 국민들에게 ‘심판’보다 변화에 대한 목마름이 훨씬 강하다.

셋째, 민심을 외면한 채 변화의 도도한 물결을 거부하는 세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선거는 단판승부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이다. 오늘 져도 내일 이길 수 있고, 오늘 이겼어도 내일 질 수 있는 게 선거다. 내년도 총선, 대선 게임은 이제부터이다. 어느 정당이 ‘변화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이제 진보와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손학규식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손학규의 화려한 부상(浮上)과 원내대표 경선 이후 조성된 한나라당 내 권력지향의 변화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향후 대권행보와 직결되는 ‘연대, 구도, 쇄신’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작년 8월 MB와의 청와대 회동과 최근 MB의 유럽 특사(特使)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MB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고민은 향후 이 관계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거리를 둘 것이냐이다.

역대 정권에서 이회창(李會昌)과 이인제(李仁濟) 등 유력한 여당 대권 후보들이 현직 대통령과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예외 없이 실패했다.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이 안되게 막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MB 정서가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 확인된 상황에서 박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의 밀월(蜜月)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느냐이다. MB-박 두 사람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유지될 경우, ‘지지도 동반하락’의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박 전 대표도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면서 변화의 정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친이 주류의 몰락을 즐기기보다는 쇄신의 칼이 언제든 자신을 향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한나라당, 계파 해체해야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핵심 원인이었던 계파를 스스로 해체하는 용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자기 것을 버려야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들은 대권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왜 내가 대권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對) 국민 설득이 약하다. 이런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면 현재의 위상과 지지도는 화려하지만 끝나고 나면 허무하게 변화하는 한여름밤의 불꽃놀이처럼 될 수 있다. 여야 정당, 대권을 꿈꾸는 모든 정치인들의 마음속에 “변화의 시작은 철학이다”는 것을 가슴속 깊이 새기기를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