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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단체 작심 비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전문(全文)

“30년 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 당할 만큼 당했다”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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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구 남구 죽평찻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고 정대협과 더불어시민당 비례의원인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에게 이용당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사진=조선DB)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후 2시 대구시 남구 대봉동 한 찻집에서다. 이 자리에서 이 할머니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를 비판했다.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면서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에 대해서는 더욱 날선 비판을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씨가 와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윤씨는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놈이 버느냐”고 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 당시 이 할머니의 발언 전문이다. 다소 매끄럽지 않지만 최대한 그대로 싣는다.

“30년 간 미국 110번 다녀왔지만 돌아온 건
 
“제가 1992년도부터 윤미향씨에게 (피해사실을) 신고했고 오늘날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 지을 때는 (방송인) 박경림 하고 강의도 했고요. 정신대대책위원회 사무실 가서 박물관 짓는다는 말도 했고. 그때 제가 한 얘기는 “(나를) 대표라고 하지마라. 부끄럽다”였는데, 그래도 대표 대우는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 거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박물관이 세워질 무렵 제가 미국을 노상 다녔습니다. 120일 결의안 통과시키려고 워싱턴에 다녔는데 아무도, 돈 한 푼 보태준 사람 없습니다. 제가 1992년도부터 비행기를 110번을 탔습니다. 그 미국에 사는 교포 여러분들이 십시일반으로 할 적에 너무 그분들에게 고마웠고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결의안 통과시키면 얼마나 장합니까. 이런 걸 할머니가 그렇게 하고 왔으면 환영이라도 해 주든 지요. 그런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기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입니다. 정신대라는 건 공장 갔다 온 할머니입니다. 공장 갔다 온 할머니라면서 위안부까지 판 거 아닙니까. 위안부 활동하고 했는데 지금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이 이걸 구분하겠습니까? 이건 정신대 공장 갔다 온 할머니도 아니고 위안부도 아니고요. 이걸 왜 확실히 못합니까. 이걸 확실히 구분했다면 일본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확실히 구분안하니 일본도 우왕좌왕하는 거죠. 이런 것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 윤미향만 알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이 일본에서 들어오는 걸 윤미향(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만 알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2015년 한·일 협정 때입니다. 10억 엔이 일본서 들어오는데 윤미향 대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외교통상부도 죄가 있습니다. 피해자들한테도 알려야죠. 제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텐데, 그 (단체)대표들한테만 얘기하고 저는 몰랐습니다.
 
28일 공개할 때 저 서울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정신대 대책협의회 쉼터라는 곳에서 그걸 공개할 적에 외교통상부 장관 윤병세 아니고 차장이라던가? 그분이 쉼터에 왔습니다. 제가 멱살 쥘라 그랬습니다. 자기들은 알고 있었을 거 아닙니까. 28일 전에 들어왔을 거 아닙니까. 10억 엔 들어온 거 몰랐습니다. 제가 나눔의 집에도 자주 갔습니다. 거기에 윤OO이라는 저와 동갑인 할머니가 있는데, 아침에 제가 식사하려 들어가니까 “너 여기 좀 와봐라”합니다. 10억 엔 들어오고 한참 됐을 때입니다. 나한테 “나는 암이 두 군데다. 폐암, 자궁암. 나는 그 10억 엔 에서 1억 원을 받아야 된다. 아들 줘야 된다”하면서 웁디다. “그래, 그럼 써라”하니까 자기는 못 쓰겠대요. 그때도 나눔의 집 소장은 이 얘기를 안 해 줬습니다. 저는 돈이 10억 엔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들이 자기 정신 가지고 받은 거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신없는 할머니들 이용해서 받았다고 한 거예요. 들어온다는 걸 알아야 말이지요. 들어온다는 거 알았다면 전 그거 돌려보냈을 겁니다. 그걸 속였습니다. 이런 상태입니다. 소소한건 참 얘기 안한 것도 많습니다. 특히 데모할 때 말입니다. 학생들이 멀리서 올 거 아닙니까. 그 십시일반 돈을 꼬박꼬박 받습니다. 그걸 받아서 좀 보태서 점심이라도 학생들한테 먹이든지 하지, 저는 그 생각에 수요일 날(수요집회) 가면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속고, 또 속고 살면서도, 제가 다니면서는 그래도 ‘여성인권운동가’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안 한 대신에 듣고 겪고 당한 걸로…. 이게 제 철학이었습니다. 제가 대구대 홍덕률 총장님 교육감 나왔을 당시, 그해 5월 30일에 명예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보고 듣고 했던, 이게 바로 산 철학 박사라는 걸 느꼈습니다. 2018년인지, 2019년인지 모르겠습니다. 11월 23일에 전 세계 50개국에서 ‘우먼(woman)’ 뭐를 선출했습니다. 2000명 명단 중에 대한민국에서는 이용수가 들어갔어요. 이게 다큐멘터리로 나온답니다. 독일, 베트남, 프랑스 감독이랑 한국 감독하고요. 이거 자랑스러운 일 아닙니까. 한 번도 보도 안 됐습니다. 얼마나 장합니까. 제가 배우지도 못하고 무식한 사람인데….”

“문제 해결하기 전에 윤미향은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30년 전에 내 신고를 윤미향이가 받았습니다. 30년을 윤미향과 해 오고 있는데, 이런 거 해결해야 될 거 아닙니까. 왜 해결 안합니까. 해결도 안하고 국회의원인지 장관인지 그런 건, 거기 간 윤미향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대 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해결하자고 했던 윤미향이가 그 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5월 7일) 아침에 전화 왔었어요. “할머니 이거 해결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해서 내가 “나는 국회의원 윤미향은 모른다. 정대협 윤미향만 안다. 왜 정신대가 위안부를 하느냐”면서 따졌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사장(이나영 신임 이사장) 됐다고 전화가 왔어요. 난 당신 같은 사람 모른다고 했어요. 이거 제가 잘못한 겁니까? 해결하려고 했으면 해 놓고 가야지요. 자기 사욕 차리려고 위안부 문제 해결 안 한 다음에, 어디 엄한데 가서는 “지금해결하려고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 해서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합니다. 국회의원 못합니다.

저를 보고 고맙게도 ‘여성운동가’가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고,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윤미향이라는 사람은 저한테 “할머니는 살아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왜 뭐 때문에 그 할머니만 챙기냐”고 물었더니요. 죽은 할머니가 그 뿐인가? 살아 있을 때 해주는 게 인간이지, 죽었을 때 뭘 해줘, 그 따위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쨌든 이런 문제 해결 한다고 해놓고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해결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전 윤미향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 신경 안씁니다. 모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해 온 사람이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요 집회 학생들 보면 가장 마음 아파…단체는 애들 푼돈까지 받아”
 
“저는 제일 가슴 아픈 게 수요일 뙤약볕에 있으면서도 (학생들이) 부모님한테 푼푼이 받은 돈 그걸 가지고 내놓습디다. 저는 제일 가슴 아픈 게 그겁니다. 그거 제가 보고 “이걸 받아야 되나”한 적이 있는데, 단체 사람들은 그걸 좋은 듯이 받습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요일에 학생들 나와서 집회하면 이거 공부 안 됩니다. 제 생각입니다. 제 각오입니다.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렵니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데모를 마치고 일본, 한국 간 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제가 사죄 배상은 적어서 백년이고 천년이고 가도 사죄배상을 받아야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 이제 기력이 없습니다. 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시작은 김학순 할머니가 했지요. 마지막은 예, 당당한 피해자, 가미가제 피해자 이용수가 마지막을 할 겁니다. 피해자 당당한 특공대 피해자 가미가제 피해자 이용수가 마지막을 할 겁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입니다. 이용수가 정신대냐 위안부냐? 당당히 위안부로 나와서 싸움하면서, 왜 정신대에 속해 있느냐. 이런 얘기 누차 듣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또한 서울에도 그랬습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 정신대 협의회입니다. 위안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서 제가 그렇게 미국으로 일본으로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해도, 이 정신대 시민모임에는 내가 혼자 못가잖아요. 사람 데리고 가야하는데, 제가 어떻게든 구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제 각오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역사관, 그 사람 다 해먹고 나갔어요. 비도 새고요. 데모를 이제 끝내고 교육장을 지을 겁니다. 당당한 교육을 시켜서, 올바른 역사교육 시켜서 양국 간에 이사람들이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선 교육관을 짓고 확장시키는 참다운 교육, 올바른 교육을 시킬 겁니다. 이 사람들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데모는 안하렵니다.
 
왜 데모를 해서 귀한 사람들을 왜 고생시킵니까. 공부해야죠. 공부 할 시간 하고, 해야 됩니다. 데모해서 돈 걷어서 뭘 합니까. 하나도 쓴 거 없습니다. 그런 돈 걷지 말고 교육장 와서 푼푼이 내고, 교수도 선생님도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로 초빙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구에 역사관을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데모는 안합니다.”
 
“일본, 한국은 이웃… 젊은이들은 서로 교류해야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서로 함께 활발하게 지내야합니다. 역사 문제는 그렇게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닙니까? 그래야합니다. 양국 간 젊은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사죄배상은 옳은 역사를 아는 그 사람들이 해결할 몫이죠. 저는 그런 각오를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합니다. 이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정신대 대책협의회 대표였던 윤미향씨가 와서 해결해야합니다. 국회의원 안 됩니다. 이 문제 해결해야합니다. 제가 틀렸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대화를 해야 문제가 풀립니다.
 
제가 무식하지만 백번생각해도 그렇게 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김학순이 시작했고 이용수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윤미향씨가 같이 문제 해결하려고 온다면 같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안 됩니다. 이 문제 해결 전엔 안 됩니다.”

“내 생일 축하금까지 거둬 가고, 잘못된 증언 실린 책 팔아”
 
작심 발언을 이어 나가던 이용수 할머니는 이때부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제가 무척 서러웠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누구는 떼돈을 받아먹고…. 제가 호텔에서 생일을 했는데, 그때 모인 축하금을 정신대와 함께 하는 할머니 시민 모임의 역사관 관장, 사무국장, 대표라는 사람이 동티모르에 천만 원 갖다 준답니다. 할머니한테 써야지요! 내가 해서 거둔 돈인데. 내 생일에 모인 돈인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한답니까? 그래도 가만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당하지 않을 겁니다. 당할 기력도 없습니다.
 
제가 거울보고 얘기합니다. 용수야 너 참 장하다. 제가 많이 당한 거 아닙니까. 30년 당하면 많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말 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카메라 앞에 내가 하소연합니다.
 
1993년부터 책이 나왔어요.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그걸 6500원에 팔더라고요. 거기 나온 증언은 잘못돼 있어요. 내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왜 파냐고.
 
여러분 되풀이 하지만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이제는 기력이 없어서 그래도 내가 오늘 약을 몇 종류나 먹고, 안 쓰러지려고요. 내가 쓰러지면 누가 알아줍니까. 이런 억울함 분함 누가 알아줍니까. 모릅니다. 내가 여자 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이리 설움 받아야 합니까. 왜 이리 인정받지 못합니까. 당당한 피해자 위안부인데, 왜 정신대로 팔려야 합니까. 뚜렷한 증거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울어야합니까. 내 신세가,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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