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정치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가 '아우'라 불렀던 북한내부 혁명조직 조직원에게 보내는 편지

나의 아우이자, 혁명동지에게...제발 살아만 있기를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편집자 주: 《월간조선》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를 통해 북한 내부에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 대표 외에 박근혜 정권 외교 안보 핵심관계자들도 북한 김씨 3대 왕조 체제에 대한 조직적 내부 반발이 존재한다고 증언했다. 도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과 2년여간 연락을 주고받은 혁명조직원 김성일씨의 생사를 알 수 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도 대표와 연락해온 혁명조직원 김성일씨는 2016년 김정은 제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발각됐다. 처형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잔혹통치를 이어오고 있는 김정은이 그를 가만 놔뒀을 리 없다. 인터뷰 후 김씨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 도 대표는 《월간조선》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왔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아우님,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까. 역사 앞에 죄인이 된 듯 한 기분으로 지내오면서 더 이상 아우님과 북한내부 혁명조직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처음 아우님과의 일들을 언론을 통해 소상히 밝혔습니다.
 
물론 아우님도 흔쾌히 동의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생사를 알 길 없는 아우님과 남겨진 가족들의 근황으로 제 마음은 가위에 눌린 듯 천근만근의 압박감으로 하루하루를 뒤척이며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는 북녘동포들을 대신하여 피눈물로 투쟁하는 자유통일의 대장정에, 배부른 돼지마냥, 온실속의 화초마냥, 우물 안의 개구리마냥 벌써 사라졌어야할 공산전체주의망상에 사로잡힌 세력들에게, 신성한 국가권력마저 빼앗긴 채 ‘대한민국판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면서 눈물의 펜을 듭니다.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반디 선생이, 자신의 소설집 ‘고발’의 서문에서,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이라고 쓴 내용을 읽으며, 피눈물에 뼈로 적은 글이 어떤 심정의 글이었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바로 지금의 나의 심정과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저려 옵니다.
 
아우님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통탄스런 두 가지의 사죄입니다. 모두가 아우님과 굳게 나눴던 혁명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내용들이기에, 한없이 부끄러운 나의 민낯이기도 하면서도 아직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합니다.
 
우선 하나는, 김정은 세습왕조를 끝장내고 자유통일혁명을 완수하자는 아우님과의 악속을 아직까지는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입니다.  한반도의 자유혁명은 커녕 오히려 혁명의 핵심지원기지였던 대한민국을 적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은, 역사에 큰 죄를 지은 것이기에 변명의 여지조차 없으며 참으로 비통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나에게 아우님과 같은 용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비겁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애처롭기 그지없는 슬픈 자화상일 뿐입니다. 
 
두 번째 아우님의 하나뿐인 혈육을 서울에서 키우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이미 아우님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면 반드시 그 복수의 시간은 남아있겠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로 정치범수용소에서라도 살아 있다면, 해방된 자유조선의 전사들과 함께 수용소문을 개방할 때 제일 먼저 그 아이를 찾겠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누군가 네 앞에 나타나서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약속된 이 말을 묻고서 무조건 따라가라고 가르치겠다고 했었죠. 아우님과 나의 첫 암호문이었습니다.

‘줄면 줄었지 마르지는 않는다…….’
 
살아생전 김정일이가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의 북한주민들이 굶어서 죽어나가 길거리에 시체들이 넘쳐날 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일선 기관원들의 전언을 접수한 핵심권력층이 김정일에게 직접 건의를 했다고 했었죠. 
 
“지도자 동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다간 우리 주민 모두가 죽어나가겠습니다. 2호 창고문(전쟁대비 군 비상식량창고)이라도 열어야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때 김정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가뭄으로 잠시 물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결코 마르지는 않습니다”며, 태연히 산해진미의 호화성찬을 즐겼다지요.

죽어가는 백성들을 두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분노하면서, 이런 사악한 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며 우리의 암호문을 그렇게 정했었습니다. 그런 김정일의 아들이 대를 이어 지금도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게 말입니다.
 
아우님. 나의 조카 이름 중에 ‘0’자 하나가 있다고 했지요

이 모든 것이 보안의 문제라 이름 하나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지만, 정말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엿한 대한민국의 아들로 성장시켜 통일된 그날 아우님께 선보이려 했었는데 말입니다. 너무나 머리가 좋아 전국의 수재로 이름이 나서 세상어디에 내놓아도 제 살 것은 찾아 갈 테니, 성인이 될 때 까지만 보살펴주면 자기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아우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지옥의 고문실에서 대면했을 아우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아니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상상할 수조차 없을 모진 고문들을 견뎌내면서 어쩔 수 없이 촬영했어야할 카메라 앞에서 ‘도희윤 이라는 놈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우님의 심정은 백번, 천 번, 만번이라도 이해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 말투 속에서 부족한 나를 배려하려는 아우님의 모습이 너무 고마웠고 그저 동영상만 쳐다보며 슬퍼해야했던 나를 더욱 작게 만들었지요.
 
아우님.  대한민국 서울의 자유로 라는 이름의 도로를 끝까지 달려 가다보면 도착하는 임진각이라는 곳의 망배단을 보면서, 그곳에서 수많은 행사들을 하면서도 이산(離散)이라는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곤 했지만, 대한민국 부산이 고향인 나로서는 그것이 직접적인 아픔은 아니었기에 남다른 감회는 없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망배단의 아픔이 나의 직접적인 이산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아우님이 보고플 때 그곳을 찾겠지만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지긋지긋한 휴전선 너머 소리 없이 죽어간 혁명 전사들을 위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노래가 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소리 높여 부르며 찾아가겠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아우님. 그리고 0아. 살아만 있어주세요. 부디 살아만 있어 주세요…….
 
글=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입력 : 2019.06.09

조회 : 7190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최우석 ‘참참참’

woosuk@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