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새로운미래'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낙연 지역구 출마론'에 대해 "동지들이 충정으로 저에게 출마를 요구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총리는 21일, 전라북도의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소위 '제3지대 빅텐트'를 주장하는 이들이 '이낙연 지역구 출마론'을 제기하고 나선 데 대해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며 "정치인이 국민 앞에 한 얘기를 쉽게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총리에게 '지역구 출마'를 얘기하는 이들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미래대연합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인 이원욱·조응천·김종민 의원 등이다. 개혁신당의 이 대표는 이 전 총리에게 '이재명 지역구(인천광역시 계양구 을)' 또는 호남 지역 출마를 권했다. 미래대연합 측은 구체적으로 '광주 출마'를 종용한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논리는 '신당 바람몰이'다. '이낙연'이란 지역 기반 정치인, 한때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를 앞세워 호남 민심을 파고들겠다는 것인데, 이낙연 전 총리는 이를 받아들이 여지가 별로 없다. 그가 비록 "동지들이 충정으로 저에게 출마를 요구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와 동시에 "주의 깊게 듣고 있다 정도로 말씀드리겠다"고 일축한 걸 보면 그렇다. 

거듭 말하지만, 이낙연 전 총리는 '호남' 출신이면서도 해당 지역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호남에서 국회의원을 네 번, 전남지사를 한 번이나 했는데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때 초대 국무총리를 하면서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고, 그 와중에 '유력 대선주자'가 됐지만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확보했던 호남 민심이 그에게 옮겨가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에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광주와 전남에서조차 근소한 차이로 지금의 이재명 대표를 이겼다. 

현재 이낙연 전 총리를 비롯한 탈당파들이 '이재명당'이란 식으로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남 지지세를 꺾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전국 유권자 약 1000명에 물어본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호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표본이 1000명이라면,  그 중 호남(광주, 전남, 전북) 지역 표본은 인구 비례에 따라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이 100명 중 10명만 이전과 지지 정당을 달리 말할 경우,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경우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전주 대비 10% 폭락'이란 결과가 나온다. 즉,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특정 지역의 민심을 분석하려 할 경우 '과다대표'에서 비롯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20일~21일, 광주광역시 거주 성인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26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그리고 전남 거주 성인남녀 8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하 동일)에 따르면, '이재명당'에 대한 지지세는 견고하다. 이낙연 전 총리 등 소위 더불어민주당 탈당파가 파고들 틈이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전 총리에게 '호남 출마'를 요구하는 것은 그에게 '정치적 자결'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을 정치권 생활을 25년째인 이 전 총리가 모를 리 없다. 그가 '총선 불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한 것도 이와 같은 우려 때문일수도 있다. 만일 그가 '동지'들 또는 '이준석'의 요구에 응해 '호남 출마' 또는 '인천 계양 을' 출마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선되면 이낙연 전 총리는 '정치적 재기'를 할 수 있다. 호남에서 출마해 당선된다면, 현재 더불어민주당 친명계가 내세우는 '수박'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는 비교할 바가 안 되지만,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김대중'의 후계자가 자신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정통 민주당'을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이재명 지역구'인 '인천 계양 을'에서 당선된다면, 그는 사실상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 생명을 끊을 수 있다. 국회의원직을 잃은 이 대표는 '거대야당'이란 '방탄복'을 벗고, 혈혈단신으로 자신과 관련한 숱한 법정 공방과 '사법 리스크'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잃은, 또 이준석 개혁신당 표현에 따르면 '이재명에게 피해를 본' 이낙연 전 총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이를 고려하면, 주위 권유에 떠밀려 미미한 가능성을 믿고 이 전 총리가 호남 또는 '인천 계양 을'에 나가는 건, 승률이 낮은 '도박'에 '올인'하는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