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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대한 외국인'이 말하는 부산세계박람회

인도인 ‘부싼’ 사람, 로이 알록 명예교수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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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만의 개성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역동성”


“잠재력은 아직도 해나갈 숙제가 많다는 뜻이다. 부산은 제1의 도시가 아니기에 슬로 앤 스테디(slow and steady·느리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하게 접근해야 한다. 단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잠재력이다.”

 

10만 번째의 귀화 한국인인 부산외대 로이 알록 쿠마르(68·부산다문화국제학교 원장) 명예교수는 누가 뭐래도 ‘부싼’ 사람이다. 대학교수로 부산에 처음 정착한 해가 1989년이지만 도시 부산을 그만큼 깊이 이해하고 체감하려 노력한 외국인, 아니 ‘부싼인’이 또 있을까. 인도 네루대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델리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그는 네루대 대학원 한국어과를 다니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로이 알록 교수는 2015년부터 부산시 글로벌 도시재단(구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부산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또 부산시 국제협력분과위원회,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등 다양한 부산의 국제 관련 기관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부산을 한국을 대표하는 2대 도시가 아니라 ‘도시국가’ 부산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부산론(論)을 들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최근 인도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인도 젊은이들에게 부산을 어떻게 소개할까 궁금하다.

“눈, 코, 입을 즐겁게 해주는 아주 아름답고 매력적인 공간, 오감(五感)을 만족시킬 수 있는 도시가 부산이라 말한다.”

 

― 부산에 대한 극찬으로 들린다.

“부산을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슬로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 속도를 줄여 이곳저곳을 다양하게 볼 기회를 준다. 왜냐하면 부산역 인근 북항 재개발이 때로 지루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왔다. 그런데 이곳을 2030부산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하니 놀랍고 반갑다. 무엇보다 이후 부산의 변신이 기대된다.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부산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 2016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월드컵 유치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제안했었다. 월드컵도 큰 이벤트이긴 하지만 2030부산세계박람회는 또 다르다. 국제도시로서 부산의 성장과 장기적인 도시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그 무렵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인도 친구들과 대화하며 세계박람회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세계박람회(2021년 10월~이듬해 3월)가 열렸고 지금 두바이는 세계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 직접 경험한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간략하게 말해달라.

“1989년 처음 부산에 왔을 때는 제조업 수출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선 사람이 양복과 넥타이를 맨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면, 부산에서는 당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거리마다 컨테이너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당시엔 무섭기도 생소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운전할 수 있다면 세상 어디에서도 운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급함 때문에 옛것을 보존하기보다 개발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땐 손을 내밀면 바다였고 다른 손을 내밀면 바다에 닿을 것만 같았다. 용두산공원에 올라가면 부산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산과 바다를 보려면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 사이로 볼 수 있다. 부산 곳곳에 위치한 문화마을들, 그리고 천혜의 자연이 있는 부산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란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다양한 색채를 지닌 도시는 세계 어디를 가도 많지 않다. 독보적인 색깔을 가진 부산은 정체(停滯)되지 않는 도시이자 새로움을 주는 공간이다.”

 

“준비하는 과정보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이후가 더 중요”

 

― 부산의 날씨에선 어떤 매력을 느끼나.

“고향 인도와 비교할 때 부산의 갑작스러운 계절 변화는 매력적이다. 물론 부산은 살인적인 추위나 살인적인 더위도 없다. 살다 보면 무척 고마운 부분이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이나 부산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단도직입적으로 부산의 매력은 무언가. 어디를 인도 벗들에게 추천하고 싶나.

“예전에 만났던 어느 대사 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선 주부로서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부산에 오니 시인이 되었고 화가가 되었다’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바닷길을 걷든, 산에 가든 노래를 흥얼거리는 부산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마 부산의 자연이 우리 안의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것 같다. 나는 영도의 갈맷길 걷기를 좋아한다. 영도의 선착장 앞은 항상 분주한 것이 뭔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영도의 일출과 석양은 꼭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 아름다운 풍광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부산은 1988년 하계올림픽 요트경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월드컵, 2005년 APEC 정상회담,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개최하면서 도시 브랜드가 한층 높아졌다.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부산시장에게 어떤 변화를 주문하고 싶나.

“국제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그 이후를 팔로 업(follow up)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행사의 성공 여부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후 어떤 ‘물결’을 계속 일으켜 나가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유익하고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보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이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쉽게 간과되는 포인트다.”

 

― 좋은 말씀이다. 부산이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개성을 가졌으면 좋겠나. 그 개성을 드러낼 부산만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부산을 ‘도시’나 ‘항구’로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사람의 취향은 한국이나 해외나 다양하다. 편협한 한 가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제각각 부산에 와서 ‘그들이 좋아하는 부산’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아닌 다원적인 경험을 제시하고 찾을 수 있는 공간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다른 도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부산을 찾고 있다. 부산 곳곳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커피를 마신다.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취향을 가진 인구를 불러온다. 사실, 항구는 선박과 함께 외국의 문화가 머무르는 곳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산만의 개성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역동성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부산은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부산시민들의 개방성 정도를 어떻게 보나.

“외국인이 많다는 것을 나도 느낀다. 항구도시 부산이 국제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인구 구성의 개방성이 한 몫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내가 어딜 가도 사람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내게 출신지를 묻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 개방적으로 변해 타인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 듯하다. ‘개방성’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도시 발전은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인구 구성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잠재력이 더욱 중요하다. 잠재력과 비전을 지닌 전문 인력이 풍부해야 한다. 부족할 경우 필요한 인력자원을 외부에서 충원할 수 있는 개방성이 더 필요하다.”

 

로이 알록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인도는 사용되는 언어 수가 1652개에 이른다. 이 중에서 인구의 3분의 2가 사용하는 언어는 무려 100개나 된다. 방송매체(24개 언어, 146개 지역방언), 신문(34개 언어), 문학작품(80개 언어) 등에서 다양한 언어가 통용된다. 그러나 언어의 수만큼이나 다양성과 타 언어권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것이 인도의 상상력과 경쟁력의 원천이다.”

  

“부산 친구들은 All weather friend”

 

로이 알록 교수는 “글로벌 도시가 되려면 옛것을 보존하면서 역사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도시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과거의 지혜를 바탕으로,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과거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모두 끌어안았을 정도로 포용력이 크고 남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받아들여 다양성이 살아 있는 글로벌 도시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부산이 ‘차별과 배제의 다문화’에서 ‘통합의 다문화’로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1990년대 부산에는 외국인 CEO와 호텔 지배인, 선박회사 오너도 많았다. 하지만 2000년 무렵에 모두 부산을 떠났다. 부산은 이들에게 자녀교육 문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 오는 외국인들은 근로자, 교사, 교수, 유학생 등 다양하다. 그들이 부산을 보는 시각도 각각 다양하다. 차별과 배제를 느끼는 강도도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들 부산 사람들이 ‘솔직하다’라고 표현을 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겉치레가 적은 것이고 다른 면에서는 글로벌화가 덜된 것일 수도 있다. 친구가 되면 부산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친구 역할을 하는, ‘올 웨더 프랜드(All weather friend·전천후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부산의 잠재력을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잠재력은 아직도 해나갈 숙제가 많다는 뜻이다. 부산은 제1의 도시가 아니기에 슬로 앤 스테디(slow and steady·느리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하게 접근해야 한다. 단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잠재력이다.”

 

― 부산의 먹거리는 어떤가.

 “스트리트 푸드(street food)에 대한 부산의 실험은 한국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다. 물떡, 씨앗호떡, 동래파전, 밀면, 국밥 등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먹거리가 요즘 디지털 세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부산 공무원들을 접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그들의 생각, 적극성, 전문성, 친절도, 문제해결 능력 등에 대해 말해달라.

“국제행사를 많이 접하면서 더 세련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가야 할 길은 멀다. 특히 다언어 사용 그리고 비교문화적 이해에 있어서 더 배워야 한다.”

 

― 부산 대학들의 인문학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부산이 인문학 도시로 발전하려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

“대학의 인문학 수준은 말하기 어렵지만 부산에는 많은 예술인이 있다. 인문학 도시는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 부흥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는 것이다. 조급한 결과를 바라는 것보다 씨앗을 뿌리고 기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정은 자연히 얻게 되는 것이지 갈구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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