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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특집] 21세기는 철도 전성시대 (9) ‘철도차량산업의 주춧돌’ 부품업체들의 현주소

“세계는 철도전쟁 中, 국가의 지원 없인 생존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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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시장은 해외기업 부품 원천봉쇄, 중국은 70%, 미국은 60% 내수제품 의무화
⊙ 대외인지도 취약, 해외 수출 전동차의 핵심부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
⊙ 핵심부품 국산화 기업 늘었지만, 국내 시행청은 해외제품을 지정하기도
⊙ “철도산업이 우리의 미래, 포기하지 않겠다”

張世璡 자유기고가〈sec1984@hanmail.net〉
성주 M.I의 본사공장 작업장. 무궁화 객차의 사이드 프레임 모듈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타는 지하철의 차량 한 輛(량) 값은 10억원을 호가한다. 보통 10량이 한 편성이니 대도시 직장인들은 100억원대 차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 서민들의 ‘최고가의 차를 타고 다닌다’는 자조적인 농담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그럼 이 전철 차량은 누가 만들까?
 
  서울 지하철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전동차는 철도차량 완성차업체인 현대로템이 생산한 것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다. 또 전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90~95%는 한국 부품회사들이 만든 제품이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나라 철도산업 기술력이 제법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현대로템이 외국에서 受注(수주)해 수출하는 대부분의 철도차량에서 한국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에 불과하며, 제어시스템이나 제동장치 등 핵심부품은 외국제품을 대부분 사용한다. 해외 수주차량에 따라 국내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국내제품이 수출 차량에서 고정적으로 차지하는 부분은 構體(구체)라 불리는 차체나 차체 내장재, 내부를 장식하는 艤裝品(의장품)류 정도가 고작이다.
 
  근래 들어 정부는 철도산업에 대한 각종 육성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과거 정권에서 철도산업은 늘 뒷전이었다. 철길을 만들기보다는 도로를 닦는 것에 집중한 결과 철도산업의 규모가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제 강점기에 만든 철도 총연장이 현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구간별 복선화나 고속철도를 놓기는 했지만 새로운 구간을 신설했다기보다는 기존의 구간을 보완한 성격이 짙다. 일부 구간은 폐쇄된 곳도 있다. 광복 후 새로 늘어난 철도의 길이는 총연장 500km의 지하철 구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급 부품회사 全無
 
  워낙 시장 자체가 작다 보니 철도산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부품업체들이 자체 기술력 확보보다는 외국 기술과 제품을 도입하여 철도차량부품을 제작, 납품하는 형식으로 생존해 왔다.
 
  철도시장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대표적인 多品種(다품종) 少量(소량)생산 산업인 철도부품산업은 채산성이 현저히 악화됐다. 이런 구조는 우수인력을 확보하거나 기술개발 투자의 여력이 없는 악순환을 낳았다. 대기업은 외면해 왔고, 영세 업체들은 신기술을 개발할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철도차량 부품산업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개간도 하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 풍성한 수확물을 바라는 심보가 아닐까?
 
  현재 철도부품업체는 우진산전, 유진기공, 현대중공업 등 250여 개의 관련업체가 있다. 그러나 철도차량 부문 매출액이 60% 이상 차지하는 업체는 불과 50개에 불과하며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메이저급 전문업체는 全無(전무)한 실정이다.
 
  몇몇 업체가 세계 철도시장에 겨우 명함을 내밀었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철도부품업체들의 규모는 영세한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국내 최대의 철도차량 완성차업체인 현대로템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이다.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완성차업체인 현대로템의 내자구매팀 박성부 부장은 “우리와 상시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은 70여 업체 정도이고, 단발성 거래를 포함하면 250여 업체가 된다”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사업)가 25개인데 프로젝트마다 거래하는 품목이 다르고 같은 제품이라도 사양이 달라 업체마다 현대로템의 품질관리 직원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철도산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업체들이 있다. 전체 매출의 절대치를 철도부품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고, 10% 정도에 머무는 업체도 있다. 매출액이 10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도 있고, 50억원을 겨우 넘긴 업체도 있다. 이들은 철도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고, 애정을 가지고 오늘도 공장을 돌리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한국 철도차량 부품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회사 소개는 가나다 순)
 

  가본실업
 
  “전동차 실내부품은 모두 우리 회사 것”
 
  ⊙ 대표이사: 李忠烈
  ⊙ 창립연도: 1992년
  ⊙ 소재: 경남 마산시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 업종: 기관차 및 철도차량부품 제조, 철도차량용 시험설비
  ⊙ 종업원수: 57명
  ⊙ 2008년 매출: 68억원

 
25년 철도차량 부품 생산 외길을 걸어온 가본실업 이충렬 사장(왼쪽).
  加本實業(가본실업)은 인천에서 기계 밸브류를 수입해 팔면서 철도부품 제조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당시 철도차량 부문을 가지고 있던 대우중공업과 거래를 시작했고, 국산화 제품 개발에 뛰어들어 오늘에 이르렀다.
 
  가본실업이 납품하는 제품은 선반, 손잡이, 지지대, 팔걸이 등 차량 내부 의장품들이다. 서울지하철 5~8호선에 사용된 스테인리스 의자도 가본실업 제품이다. 1998년에는 ISO(국제표준화기구) 9002 인증을 받았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하면서 전동차 실내설비 제품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실내부품에 대하여 각종 不燃(불연)소재를 적용하고 안락한 실내환경 개선을 위해 외관 형상 및 표면처리와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강화했다.
 
  가본실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전동차 실내부품들로 기술집약적인 제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실내에 배치되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실용성이 중요한 제품군이다. 전동차를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기술 제품보다 실내부품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지난해 6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던 가본실업은 올해 목표를 120억원으로 100% 올려 잡았다. 주 거래처인 현대로템에 일감이 밀려들면서 동반호황을 맞았기 때문. 부품수출도 호조를 맞고 있다. 대원광업과 합작 생산하고 있는 스테인리스 의자 400량분(25억원 상당)을 세계 최고의 철도회사인 봄바르디에와 납품계약을 체결했고, 긴키(近畿)일본철도가 진행중인 두바이전동차 프로젝트에도 2년 전부터 14억원 상당의 납품을 하고 있다.
 
  가본실업의 제품들은 디자인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어 많은 철도 프로젝트에 채택되고 있다. 현대로템의 많은 프로젝트에서도 가본실업의 제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아 그리스 아테네의 전동차 선반, 칸막이, 손잡이, 창문 등은 가본실업의 주 생산제품이 대부분 사용됐다.
 
  특히 선반의 경우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SEPTA, 서울지하철 2~4호선 전동차와 경부선, 호남·전라 고속철에 사용됐다. 칸막이도 인도, 홍콩 전동차 외에 국내의 분당선 전동차 등 20여 개 철도 프로젝트에 사용됐다. 손잡이나 연료탱크, 점프플러그, 세면기, 냉각탱크 등도 다수의 프로젝트에 채택됐다.
 
  이런 성장의 저변에는 李忠烈(이충렬)사장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해외 유명 메이커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해외출장 길에 항공기 좌석을 다 뜯어 보고, 좌석에 부착된 개인용 탁자를 떼어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설립 절실

 
가본실업은 최근 1만1570㎡(3500평)의 새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다양한 철도차량 부품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기술개발을 위한 별도의 연구인력이 없어 이 사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직접 제작하는 일까지 맡았다. 해외의 유수한 철도차량 전시회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이 사장은 “연구소 설립을 위해 연구인력을 알아보고 있는데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연구소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본실업은 현대로템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2006년 인천 남동공단에 있던 회사를 현대로템과 10분 거리에 있는 마산 자유무역지역으로 옮겼다. 지난 4월에는 1만1570㎡(3500평) 부지를 가진 공장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다양한 철도부품 생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생산하지 않았던 새로운 부품들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사장의 설명이다.
 
  “철도차량 산업은 전망이 밝다고 봅니다. 완성차업체가 모든 부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철도차량부품 회사들은 모듈화(중간조립 형태)가 해법입니다. 우리 회사도 모듈화를 통해 제품의 다양화와 전문화를 기할 생각입니다. 부품 협력업체들이 모듈화한 부품을 납품해야 완성차업체는 최종 납기일을 맞출 수 있고, 차량의 부가가치도 높아집니다.”
 
  길이가 긴 전동차 부품을 생산할 때 부품을 일정 단위로 조각 조각 제작해서 차량 제작업체에 납품하는 것을 블록 방식이라고 한다. 반면 최종 차량제작 회사가 빠르게 차량을 조립할 수 있게 부품회사에서 블록 단위의 부품들을 중간조립 단계까지 만든 것을 모듈화라고 한다. 이 사장은 애로사항도 털어놓았다.
 
  “우리 제품은 수작업이 많아 인건비나 관리비 부담이 큽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경력 30년이 넘는 숙련공이 많고 이직률이 낮아 품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최근 20명 정도 직원을 채용하려 하는데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철도 프로젝트마다 차종이 달라 같은 기능이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철도부품회사들의 애로사항이다. 같은 제품이 없어 작업과정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주 M.I
 
 
“철도차량 외형은 우리가 만든다”

 
  ⊙ 대표이사: 李雲鏞
  ⊙ 창립연도: 1986년
  ⊙ 소재: 인천광역시 남동공단 내
  ⊙ 업종: 철도부품, 엔진, 굴착기, 지게차 부품
  ⊙ 종업원수: 116명
  ⊙ 2008년 매출: 173억원

 
  올해로 설립 23주년을 맞은 성주 M.I는 인천 남동공단에 사이드 프레임(철도차량의 옆면)을 제작하는 본사의 제1공장과 같은 공단 내에 지게차와 굴착기 부품을 만드는 제2공장을 가지고 있다. 실링 프레임(전동차의 천장 부분)과 공기청정기인 에어 닥트를 생산하는 제3공장은 대전에 있다. 대전 공장의 올해 매출목표는 50억원가량이다.
 
  성주 M.I는 1990년 대우중공업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철도부품회사의 길을 걸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작품은 344량의 대만 전동차 사이드 프레임과 에어컨 프레임 공급이었다. 국내에서는 1995년 철도청의 무궁화 객차에 사이드 프레임 일부를 공급하면서 이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쌓았다. 올해는 신분당선 72량, 3호선 전동차 172량, 해외에는 미국 SEPTA 전동차 120량, 필리핀 전동차 12량, 터키 이스탄불 전동차 40량에 사이드 프레임과 천장 부분의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은 최근 일감이 줄어 단축조업을 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지만 성주 M.I 공장은 남동공단의 맥빠진 분위기와는 달리 활기가 넘쳤다. 최근 납기일을 맞추느라 24시간 가동해야 할 정도로 일감이 넘치고 있다. 직원들의 표정에도 노동의 고단함보다는 일하는 기쁨이 묻어 났다. 李雲鏞(이운용) 사장의 표정도 밝았다.
 
  “지난해 사이드 프레임 생산실적이 50억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그 두 배인 100억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2~3년은 일감이 확보돼 있어 요즘 일할 맛이 납니다. 사실 철도차량 산업은 수주 물량에 따라 매출 진폭이 큰데 당분간은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 같아요.”
 
  성주 M.I는 하루 전동차 1.5량 분량의 사이드 프레임을 생산한다. 전동차 옆면 차체를 모듈화해서 생산하기 때문에 부가가치도 높다. 전동차 옆면 제작을 모듈화한 데는 고도의 금형 기술력이 뒤따라야 한다. 금형에 관한 한 어떤 기술자보다 자신이 있다는 이 사장은 금형제작을 직접 하는 엔지니어 겸 경영자다.
 
 
  일본 기술보다 앞서
 
성주 M.I의 이운용 사장. 금형전문가인 이 사장은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현장작업을 한다.
  “전동차 제작에는 구체(전동차의 외관)를 만드는 일이 핵심입니다. 스테인리스와 마일드 스틸(연강) 등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 차종이든 우리 기술이면 모두 만들 수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제품보다 우수한 차체를 만들고 있어요. 철도 선진국이라는 일본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어요.”
 
  최근 필리핀 전동차의 일본인 품질감독관이 성주 M.I가 사이드 프레임의 견고성을 위해 보강작업을 한 것을 보고 “일본에서 40년간 전동차를 검사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보지 못했다”며 성주의 기술력을 인정했다고 한다.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회사가 바로 우리 파트너인 현대로템입니다. 우리 공장에 있는 로봇용접기 가격이 11억원, 설치비만 3억원입니다. 이 모든 지원을 현대로템에서 해 주었어요. 수주 차종이 변할 때마다 현대로템에서 우리 직원들의 용접교육을 해 주어 기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현대로템의 품질관리팀이 이틀 간격으로 방문해 품질을 체크해 주기 때문에 제품하자 발생률도 거의 없습니다.”
 
  이운용 사장은 그동안 임금체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매년 이익금에 대한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성주 M.I에는 정년퇴직이 없다. 본인이 퇴직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무조건 함께 간다는 것이 이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이 사장은 1986년 회사 창립 때부터 토요일 격주 휴무제를 실시했고, 다른 회사보다 한발 앞서 주 5일 근무제를 채택했다. 이 때문에 생산직 직원들의 이직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이 사장은 전철을 탈 때마다 전철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거 우리가 만든 거야”라며 자랑한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철도부품 부문에 투자를 더욱 늘리고 생산성과 기술력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진기공산업
 
  한국형 고속전철 제동시스템 개발
 
  ⊙ 대표이사: 김정자
  ⊙ 창립연도: 1972년
  ⊙ 소재: 경기 안산시 단원구
  ⊙ 업종: 철도차량, 산업용콤프레샤, 전기장비 등
  ⊙ 종업원수: 211명
  ⊙ 2008년 매출: 670억원

 
경기도 안산에 있는 유진기공산업 본사.
  유진기공산업은 1980년 철도차량 공기제동장치 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철도부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1985년에는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됐고, 1988년에는 산업포장(대통령상)을 받았다. 1990년 최첨단 제어방식인 VVVF(가변전압 가변주파수 시스템) 전동차 제동장치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1996년엔 정부 지정 한국형 고속전철 제동시스템 개발업체로 선정됐다. 1998년에는 표준전동차 제동시스템 공급업체, 1999년엔 한국 표준 경전철 제동시스템 주관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대표적인 철도 제동장치 업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진은 제동시스템뿐 아니라 철도의 다양한 핵심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유진의 생산품목을 보면 제동제어시스템 개별 제품과 모듈화, 도어엔진, 구동기어, 활주방지시스템, 전두연결기, 중간연결기, 전력선과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매개체인 판토그래프(전동차 윗부분에 달린 장치) 등이다.
 
  유진은 전체 매출의 80%가 철도사업부에서 발생할 정도로 철도 전문기업이다. 서울지하철 2~5호선, 7~8호선을 비롯해 대구지하철, 광주지하철, 대전지하철, 부산지하철 1~3호선과 철도공사의 각종 기관차에 유진의 제품이 장착될 정도로 국내시장을 석권했다.
 
  金焄圭(김훈규) 부사장은 “유진의 철도부품은 일본, 유럽, 남미에 수출되고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는 한국 제품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 알스톰社(사) 주도로 우리나라 고속철사업(KTX)이 시작됐을 때는 참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KTX-Ⅱ 사업자가 현대로템으로 선정되면서 제동시스템 전량을 납품하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KTX-II 제동시스템 납품
 
유진기공이 개발한 KTX-Ⅱ 고속전철의 제동장치.
  현재 세계적인 제동시스템 메이커는 독일 크노르, 미국 와브텍, 일본의 미쓰비시-나브테스코, 프랑스 훼브레다. 그들에 비하면 유진의 규모나 기술력은 몇 단계 뒤져 있다. 그러나 2006년 KTX-Ⅱ인 호남·전라 고속전철 100량에 제동시스템과 판토그래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세계 유수의 철도회사인 독일 지멘스, 프랑스 알스톰, 캐나다 봄바르디에 등에서 견적서를 보내라는 요청이 오고 있다. KTX-Ⅱ 고속철엔 제동시스템이 공급되어 懸車(현차) 시험 중이다.
 
  유진은 독자적인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노크하고 있지만 현대로템 의존도가 매출의 65%를 차지한다. 2006년 브라질 센트럴 전동차 제동시스템에 유진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수출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세계시장 공략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김훈규 부사장은 시장전망을 낙관했다.
 
  “차량부품업체협회 회원사가 70여 개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철도산업 근간은 취약합니다. 시장이 협소해 산업규모도 작았죠. 그러나 주요 선진국들은 철도와 전철망 확대를 국가의 주요 사업으로 채택하고 있고, 아시아 시장도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수요가 많아져 세계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철도산업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동시스템 판매만으로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철도차량 메이커들은 1년 연구투자비로 1000억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대형 메이커들에 비하면 유진의 현실은 초라하지만,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전체 직원 211명 중 연구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23%(48명)나 된다. 김 부사장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1979년까지는 다른 나라 제품들을 카피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독자적인 기술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연구분야에 집중투자해 왔기 때문에 현재 우수한 연구진을 갖추게 됐습니다. 하지만 애써 기른 연구원들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대기업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연구원들이 1인 3역을 해야 하고, 연구분야나 노하우도 대단하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눈독을 들입니다. 그런 우수한 연구원들이 빠져나갈 때는 가슴이 아프죠.”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영입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철도산업은 능력 있는 엔지니어 확보가 생존의 관건이지만 입맛에 맞는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올해 매출이 40% 이상 성장한 중견기업이 전문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철도차량 부품산업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하이록코리아
 
  산업용 밸브, 철도차량 제동장치 전문 생산
 
  ⊙ 대표이사: 文永勳 회장
  ⊙ 창립연도: 1977년 협동금속으로 창업
  ⊙ 소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 업종: 산업용 밸브 및 피팅, 제동장치 모듈
  ⊙ 종업원수: 370명
  ⊙ 2008년 매출: 1062억원

 
회사의 주력제품인 산업용 밸브를 설명하는 하이록코리아 문영훈 회장.

  코스닥에 상장된 중견기업인 하이록코리아의 주력은 철도차량부품 분야가 아니라 산업용 밸브와 피팅(밸브 사이를 잇는 관 이음새)이다. 이 분야에선 30개국에 85개 대리점을 운영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선급협회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 해외의 주요 선박과 자동차 업체의 납품 승인을 받았고, 한국전력의 원자력 발전소용 제품 제조승인까지 취득한 국내 최고수준의 회사다.
 
  그러나 220억 달러 규모인 세계 산업용 밸브 시장에서 하이록코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밖에 되지 않는다. 80%는 미국의 스웨이지록과 파거하니핀社(사)가 차지하고 있다. 하이록코리아의 당면과제는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하이록코리아가 피팅과 밸브부품을 공급하는 분야는 造船(조선), 플랜트, 석유화학, 방위산업 등이며,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곳은 조선분야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이 주 거래처이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이 넘은 하이록코리아에서 철도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인 5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철도부품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피팅, 밸브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동장치 모듈 공급물량이 증가한 때문이다. 올해 80억원 정도의 철도부품 관련 매출을 기대하지만 이 비중은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록코리아가 철도부품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1978년 현대에 피팅을 납품하면서다. 1999년에는 홍콩 전동차에서 하이록코리아의 튜브 피팅을 처음 적용했다. 2003년에는 현대로템이 수주한 아테네 전동차에 제동장치 모듈을 개발 공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동장치 모듈 공급사업을 전개했다.
 
 
  철도차량 분야 매출 매년 두 배씩 늘어
 
부산시 사하구 신평에 있는 하이록코리아.
  하이록코리아의 그동안의 사업실적을 보면 인천공항철도 전동차와 각종 국내 전동차, 테헤란 전동차, 아일랜드 전동차, 캐나다 무인전동차 등 50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터키 전동차, 인도 델리 3기 전동차, 미국 SEPTA 전동차, KTX-Ⅱ, 김해 경량전철 등에도 현대로템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하이록코리아 文永勳(문영훈) 회장은 “창업 때부터 기술개발을 강조했다”며 “밸브와 피팅류 등 단품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가 전동차 제동장치 모듈을 개발한 것도 기술개발에 충실해 온 결과”라고 말했다.
 
  “창업 초기에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어요. 지금 모두 어렵다고 말하지만 기업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은 당연한 것입니다. 긴장감을 가지고 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록코리아는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1250억원으로 잡았다. 1분기 매출신장 속도로 보면 목표달성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문 회장은 “철도차량부품 분야는 매출액이 두 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77세의 고령임에도 청년 같은 정열을 가진 문 회장은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시스템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외국의 큰 회사들과 거래를 해 왔기 때문에 국제수준에 맞는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또 社內(사내)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컨설팅업체를 통해 직원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기업활동을 해오면서 직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회사를 강한 체질로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터기술
 
  철도차량시스템 국산화의 주역
 
  ⊙ 대표이사: 김동운
  ⊙ 설립연도: 1997년
  ⊙ 소재: 서울 구로구 우림 e-Biz센터
  ⊙ 주요사업: 철도차량시스템 신호장치, 열차제어장치
  ⊙ 종업원수: 112명
  ⊙ 2008년 매출: 95억원

 
  한터기술은 1997년 전동차량 제어장비 산업자원부의 TBI(기술창업보육사업)에 선정돼 변변한 사무집기 하나 없이 창업했다. 하지만 2009년 현재 매출 100억원 이상을 바라보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2003년엔 産資部(산자부)의 자기부상열차 개발 참여기업으로 선정됐고, 2004년엔 현대로템의 우수 협력업체로 지정됐다. 2007년엔 모토로라와 사업 협약을 체결하며 철도신호 부문에 각종 기자재를 공급하고 있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한터기술의 강점은 R&D(연구개발) 부문이다. 한터기술은 경력 30~40년이 넘는 철도신호 기술사 4명을 비롯해 공학박사 2명, 석사 12명과 학사 출신 연구원 20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연구진이 주축이 돼 거둔 성과는 국내 열차제어시스템 국산화 및 상업운전 성공, 자기부상열차 신호시스템 개발, 국내 최초 유럽표준 신호시스템 개발, 도시철도 표준화 사업 차상신호시스템 장치 공급, 서울 메트로의 철도용 통합영상 및 데이터 전송장치 개발 등 화려하다.
 
  통신시스템의 세계적 강자인 모토로라는 한터기술의 기술력을 인정해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모토로라와 협력을 바탕으로 인천신공항철도, 부산 지하철 3~4호선, 브라질 지하철, 서울지하철 9호선 등에 통신 제품을 공급했으며, 인도시장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도시스템은 크게 열차의 충돌방지와 안전운행을 유도하는 신호부문, 냉난방을 비롯한 차량의 전원을 통합제어하는 제어부문, 통신부문으로 분류한다. 이 세 분야에서 한터기술은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터기술 김순호 부사장은 “1997년부터 철도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어 2004년 광주지하철에 신호와 제어부문 시스템을 납품했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지원이 큰 힘 돼”
 
한터기술의 김순호 부사장. 철도차량시스템의 기술을 국산화한 한터기술은 외국시장 공략을 준비중이다.
  그 이전에는 기술은 있었지만 전동차량 공급실적이 없어 납품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1999년 서울지하철 6호선에 한터기술의 신호와 제어시스템이 채택돼 시험가동을 했고, 2002년까지 3년간 시험운행을 한 끝에 광주지하철과 공급계약을 맺었다.
 
  취재 과정에서 철도산업은 진입장벽이 어느 산업보다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에 대해 김 부사장은 “국내시장만 겨냥해서는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렵다”며 “결국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국내에서도 채택되지 않는 기술이 해외에서 인정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해외 철도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이미 검증된 해외제품을 사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 제품이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신호나 제어부문은 안전과 직결되다 보니 해외로 진출하기가 더욱 힘들다”고 호소했다.
 
  김 부사장은 우리나라의 철도산업 환경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정부의 지원이 대기업 위주로 편중되면서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또 부처 간 정책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관료들의 근시안적 태도 때문에 체계적인 철도산업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김 부사장은 “결국 우리나라 철도부품산업 발전의 짐을 현대로템이 지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현대로템의 지원이 없었다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토종기술로 세계철도를 움직여 보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철도산업은 제2의 조선산업으로 분류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산업입니다. 국내시장에서는 철도시스템을 채택하는 방법이 너무 복잡해 해외시장을 먼저 공략할 생각입니다. 5년 후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의 뛰어난 IT 기술과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 차체 제조기술이 만나면 한국의 철도차량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흥일기업
 
  전동차 출입문, 언더 프레임 전문기업
 
  ⊙ 대표이사: 윤한생 회장
  ⊙ 설립연도: 1979년
  ⊙ 소재: 경남 김해시 안동
  ⊙ 주요사업: AI 내외장재, 구체 제관품, 도어류
  ⊙ 종업원수: 300명
  ⊙ 2008년 매출: 650억원

 
  1979년 설립한 흥일기업은 공작기계와 방위산업 부문에서 역량을 키운 후 철도차량 부품사업에 뛰어들었다. 흥일산업이 현대로템에 공급하는 철도부품과 언더 프레임(전동차 하부 차체) 모듈 매출은 380억원가량으로 전체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언더 프레임과 함께 흥일기업의 주력부품은 전동차 문이다. 전철 출입문은 5~6년 전만 해도 100% 수입을 하던 품목이다. 흥일기업 林鳳彩(임봉채) 부사장은 “6년 전 상당액의 기술이전료를 주고 해외의 한 업체로부터 전동차 도어 핵심기술을 이전받았다”며 “당시 출입문 한 세트 수입가가 1000만원가량이었는데, 현재 우리는 400만원에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산화로 인한 효과는 가격적인 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외국제품의 경우는 애프터서비스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전동차 도어가 고장 날 경우 제작사의 인력파견에 시간적 제약이 있을 뿐 아니라 비용지출도 크다. 하지만 흥일기업의 전동차 도어를 채택한 경우 즉시 A/S가 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전동차의 경우 대부분은 흥일기업의 도어를 채택하고 있다.
 
  흥일의 도어시스템 중 모터는 수입품을 사용하고 있다. 임 부사장은 “이미 2년 전 자체 기술로 모터를 개발하여 시험운행까지 마쳤지만 관련부처가 채택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도어의 경우 수출 전동차에는 국산품을 납품하지 못합니다. 외국 바이어들이 외국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완성차업체인 현대로템 입장에서는 국내제품을 쓸 경우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지만, 국산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채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브라질 살바도르 전동차가 우리가 만든 도어를 채택했습니다. 앞으로 수출 가능성이 큰 아이템이라고 봅니다.”
 
 
  수주가의 3~4%가 검사비로 나가
 
테스트 중인 전동차 도어 앞에 선 흥일기업의 임봉채 부사장.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는 철도차량 부품업체에 작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철도안전법이 제정되면서 과거에 비해 철도차량부품에 대한 검사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임 부사장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몇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지만 검사비용과 기간이 고무줄 늘어나듯 하면서 열악한 철도부품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양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屋上屋(옥상옥)이죠. 검사비용도 비용이지만 검사를 의뢰하면 결과를 받기까지 대기시간이 너무 깁니다. 이미 2000량 이상에 적용해 운행중이던 도어도 처음부터 다시 일일이 검사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중소기업에는 너무 큰 압박입니다. 受注價(수주가)의 3~4%가 검사비용으로 지출됩니다. 좀 탄력적인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철도산업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산화에 성공했는데도 국내에서 국산부품을 사용하지 않는 정부 관계자들의 보수적인 시각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기술지원도 하고 국산화에 성공하면 적극 채택해서 기업을 키워야죠. 전문기업의 특수 아이템은 보호하고 육성해 주었으면 합니다. 업계의 과당경쟁도 문제입니다.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해 동종사업에 뛰어든 후 시장가격을 교란하는 좋지 않은 관행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철도차량 부품산업의 세계화를 위하여
 
  철도차량과 부품업체들의 연합체인 사단법인 철도차량공업협회(이하 KOTIS) 자료에 따르면 철도차량부품은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산업이다. 2008년 기준으로 보면 수출이 1억4022만 달러였던 데 반해 수입액은 1억5494만 달러로 15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적자폭이 7600만 달러나 됐다.
 
  철도차량과 부품을 포함한 세계시장 규모는 350억 달러로 추산된다. 여기에서 국내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고속철 기술을 가진 나라의 위상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세계적 수준의 IT와 반도체, 자동차와 선박 제조기술을 가진 한국이 유독 철도산업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KOTIS 이동수 사무국장은 “철도 선진국들은 철저한 자국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지원 아래 거대자본과 첨단기술로 해외시장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며 “이들 나라는 정부와 기업이 공조해 비관세 장벽과 입찰방식, 자격 등을 규제하여 자국의 철도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산업은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것이다.
 
  철도 선진국들이 自國(자국)의 철도부품회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둔 자물쇠는 매우 튼튼하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자격기준을 까다롭게 해 유럽 외의 국가들에는 철도차량 관련사업에 참여할 입찰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EU의 기술과 환경규정은 특히 엄격하다.
 
  중국은 정부가 시장과 가격을 통제할 뿐 아니라, 철도차량의 70% 이상을 자국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일본시장은 외국회사들의 진입 자체가 원천봉쇄돼 있다. 民(민)과 官(관)이 연합해 카르텔을 형성하고는 외국업체가 진출하지 못하도록 수의계약으로 제작사를 선정한다.
 
  미국은 일본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부품의 60%를 미국산으로 사용해야 하는 규정을 정해 놓았고, 완성차의 경우 미국 내 공장에서 조립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한국만 무방비로 시장개방
 
  이에 반해 한국시장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곳간의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외국의 메이저 철도회사들이 한국의 철도 프로젝트에 입찰하는 경우 특별한 제한규정이 없다. 또 프로젝트 수주 시 자국 부품에 대한 사용권장 규정도 없다. 한 술 더 떠 외국제품을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취재 도중 만났던 익명의 철도산업 관련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국내 기업들이 철도차량의 핵심부품을 국산화하고 있으나 시행청(발주처인 KORAIL, 각 지역 도시철도운영처, 경전철을 시행하는 지자체-편집자 주)은 부품채택 절차를 지나치게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처음부터 부품의 해외도입을 조건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힘들여서 국산화해 제품을 생산해도 시행청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개발비만 날리게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안 써 주는 제품을 외국에서 사용할 리가 있겠습니까.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가 자동차나 조선, 철강, 반도체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철도부품산업을 외면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취재결과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철도산업의 발전이 더딘 이유는 철도부품산업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부족이 큰 원인이지만, 열악한 국내 산업기반도 한몫을 했다.
 
  현대로템 국내영업 담당 장현교 이사는 “철도부품 기업들이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 철도산업의 미래는 어둡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 부품사들이 몰락하면 완성차업체인 로템은 결국 고가의 외국제품들을 수입해서 완성차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대안이 없으면 부르는 게 값이죠. 1만원짜리 부품을 10만원에 사다 ‘울며 겨자 먹기’로 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채산성도 악화될 뿐 아니라 국제경쟁력에서도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메이저 부품회사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장 이사는 철도부품산업 육성이 왜 시급한가를 다음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국내 부품산업 무너지면 외국 업체들이 바가지 씌워
 
  과거 전동차의 바퀴에 해당하는 ‘휠 엑스’는 우리나라의 한 중소기업이 대량생산을 하던 품목이다. 그러나 채산성이 없어 경쟁력을 상실한 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국내에서는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없게 됐다. 결국 현대로템은 동유럽에 위치한 업체에서 과거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수입해다가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 제품이 올해 초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발생했다. 수주물량의 납기일을 앞두고 바퀴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결국 현대로템의 해외영업팀 임원이 생산회사를 찾아가 사정을 해 겨우 물량을 확보하는 소동을 벌였다.
 
  장 이사는 “당시 해외 현지공장을 찾아가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두 배나 인상된 가격을 주고 간신히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싼 가격을 주고도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일이 비단 이번 한 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품구입에 지출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완성차업체가 해외 부품회사에 끌려 다니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결국 한국철도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중소 부품사들의 경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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