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佛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과 결별이 시를 낳아…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에 영향
⊙ ‘다리’는 과거와 현실을 잇는 매개물… 이희국 〈다리〉
⊙ ‘다리’는 과거와 현실을 잇는 매개물… 이희국 〈다리〉
-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높이는 173m이며 폭은 20m다. 19세기 말에 지어졌으며 1975년 프랑스의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됐다.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번역 황현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잡고 얼굴 오래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Le Pont Mirabeau
Guillaume Apollinaire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a´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e´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e´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e´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미라보 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G Apollinaire·1880~1918)가 1912년 2월에 발표했는데 5년 동안 연인관계였던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결별이 이 시를 낳았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물처럼’에서 보듯 시간의 덧없음과 사랑의 종말을 담고 있다.
마리 로랑생도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떠올리며 “버림받은 여자보다, 떠도는 여자보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라고 한탄한 일화가 지금도 회자된다.
아폴리네르의 시는 근엄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고백하듯 쉽게 시를 썼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이 빗발치던 참호 속에서도 시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넓은 (시의) 밑천을 타고났다”는 말이 나온다. 스스로도 “내 시 한 편 한 편은 내 생애 일어난 사건들의 기념”이라고 말했었다.
시인은 가난한 방랑자였다. 은행의 하급직원, 출판사 보조원,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하며 20세부터 25세까지 네덜란드, 독일(라인 강변) 등지를 떠돌았다. 그런 보헤미안 기질이 어떤 이론이나 유파(流派)에 귀속되지 않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그러다 피카소, 마티스 같은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받아 시에 입체파 미술을 결부시키려 했고 이후에는 초현실주의 유파로 빠져들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e)’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가 아폴리네르다.
1950년대 전후 한국 문단의 모더니스트 그룹을 이끌던 시인 박인환(朴寅煥·1926~1956) 하면 그가 종로에 문을 열었던 ‘마리서사’라는 서점이 떠오른다. ‘마리’라는 이름은 아폴리네르의 연인 ‘마리 로랑생’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리서사’는 갈 곳 없던 당대 시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는데 김광균, 김규동, 이봉구, 박영준, 김수영, 이시우, 설정식, 김기림 같은 모더니즘 유파의 문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월간조선》 2015년 4월호 ‘시인 박인환의 장남 세형씨 인터뷰’ 참조)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1956년작)은 〈미라보 다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미라보 다리〉에서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가 〈세월이 가면〉에서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으로 표현됐다.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세월이 가면〉 전문
아폴리네르와 한국의 모더니스트들
1956년 환도(還都) 후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서울 명동에서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에 샹송과 같은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1955년작)도 〈미라보 다리〉와 비슷한 시어가 등장한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가 그렇다.
사실 ‘목마’와 ‘숙녀’라는 유사성이 없는 두 단어가 한 편의 시로 창작된 예로 아폴리네르의 초현실주의와 상관이 깊다. 초현실주의 창작론 중에 절연(絶緣·depaysement)이란 표현 방식이 있다. 두 개의 떨어져 있는 현실을 접근시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접근시키는 현실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감동적 힘이 시적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앙드레 브르통이 1932년 펴낸 시집 《백발(白髮)의 권총》에서 ‘백발’과 ‘권총’의 관계가 그렇다. 1930년대부터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쓴 김기림(金起林·1908~?)은 〈바다와 나비〉(1939년작)에서 ‘바다’와 ‘나비’라는 낯선 두 개의 단어로 시를 썼는데 ‘나비’는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존재, ‘바다’는 냉혹한 현실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전문
‘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
다리는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다.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집에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몽파르나스로 가려면 그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폴리네르는 다리 아래 센(세느) 강을 보면서 연인 마리 로랑생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희국 시인의 〈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어느 겨울, 차를 몰고 영종대교를 지난다. 눈은 내려 거북이걸음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한 얼굴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 그의 손을 끌어주시던 스승이다.
〈다리〉는 가난한 제자를 격려해 주던 국어선생님이 시인에게 ‘인생의 다리’가 됐음을 고백한다. ‘목말까지 태워주셨던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는 감동적인 사연을 전한다. 그 스승의 사랑이 버팀목(다리)이 되어 날선 인생의 물살과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교권이 무너진 요즘, 스승의 날(5월 15일)에 어울리는 시다.⊙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
-〈다리〉 전문
기욤 아폴리네르(번역 황현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잡고 얼굴 오래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Le Pont Mirabeau
Guillaume Apolli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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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아폴리네르. |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a´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e´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e´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e´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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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
마리 로랑생도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떠올리며 “버림받은 여자보다, 떠도는 여자보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라고 한탄한 일화가 지금도 회자된다.
아폴리네르의 시는 근엄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고백하듯 쉽게 시를 썼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이 빗발치던 참호 속에서도 시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넓은 (시의) 밑천을 타고났다”는 말이 나온다. 스스로도 “내 시 한 편 한 편은 내 생애 일어난 사건들의 기념”이라고 말했었다.
시인은 가난한 방랑자였다. 은행의 하급직원, 출판사 보조원,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하며 20세부터 25세까지 네덜란드, 독일(라인 강변) 등지를 떠돌았다. 그런 보헤미안 기질이 어떤 이론이나 유파(流派)에 귀속되지 않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그러다 피카소, 마티스 같은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받아 시에 입체파 미술을 결부시키려 했고 이후에는 초현실주의 유파로 빠져들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e)’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가 아폴리네르다.
1950년대 전후 한국 문단의 모더니스트 그룹을 이끌던 시인 박인환(朴寅煥·1926~1956) 하면 그가 종로에 문을 열었던 ‘마리서사’라는 서점이 떠오른다. ‘마리’라는 이름은 아폴리네르의 연인 ‘마리 로랑생’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리서사’는 갈 곳 없던 당대 시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는데 김광균, 김규동, 이봉구, 박영준, 김수영, 이시우, 설정식, 김기림 같은 모더니즘 유파의 문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월간조선》 2015년 4월호 ‘시인 박인환의 장남 세형씨 인터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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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3가 2번지 파고다공원 근처에 자리했던 서점 마리서사. 시인 박인환이 소장하던 문화·예술 서적이 가득했다고 한다. |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세월이 가면〉 전문
아폴리네르와 한국의 모더니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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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의 국내 번역 시집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 |
사실 ‘목마’와 ‘숙녀’라는 유사성이 없는 두 단어가 한 편의 시로 창작된 예로 아폴리네르의 초현실주의와 상관이 깊다. 초현실주의 창작론 중에 절연(絶緣·depaysement)이란 표현 방식이 있다. 두 개의 떨어져 있는 현실을 접근시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접근시키는 현실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감동적 힘이 시적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앙드레 브르통이 1932년 펴낸 시집 《백발(白髮)의 권총》에서 ‘백발’과 ‘권총’의 관계가 그렇다. 1930년대부터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쓴 김기림(金起林·1908~?)은 〈바다와 나비〉(1939년작)에서 ‘바다’와 ‘나비’라는 낯선 두 개의 단어로 시를 썼는데 ‘나비’는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존재, ‘바다’는 냉혹한 현실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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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
이희국 시인의 〈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어느 겨울, 차를 몰고 영종대교를 지난다. 눈은 내려 거북이걸음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한 얼굴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 그의 손을 끌어주시던 스승이다.
〈다리〉는 가난한 제자를 격려해 주던 국어선생님이 시인에게 ‘인생의 다리’가 됐음을 고백한다. ‘목말까지 태워주셨던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는 감동적인 사연을 전한다. 그 스승의 사랑이 버팀목(다리)이 되어 날선 인생의 물살과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교권이 무너진 요즘, 스승의 날(5월 15일)에 어울리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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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시인의 시집 《다리》(시문학사, 2018). |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
-〈다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