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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최순실 스캔들

묘심화가 털어놓은 ‘나와 박근혜’

“박근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패배 직후 ‘여성 대통령’ 예언 빗나갔다며 연락 끊어”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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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근 멀리하라” 직언했다가…
⊙ 박근혜 의원, 2002년 책 《빙의》에 감명받고 자비정사 찾아와
⊙ 박지만 회장이 “제발 누나 대통령 되는 것 좀 막아달라”고 부탁
⊙ 최순실은 온 적 없고 정윤회는 늘 같이 방문, 정윤회와 3인방 정리하라고 조언
⊙ 박근혜, 묘심화에 “여(女)무학이 돼 달라”고 말해
⊙ ‘박근혜 굿’이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은 무형문화재 50호인 ‘영산재’
묘심화 주지는 2002년 저서 《빙의》를 계기로 박근혜 의원과 첫 만남을 가졌다.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자비정사(한국불교 법성종)의 묘심화 종정은 국내 불교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주지 스님이다. 2000년대 초반 베스트셀러였던 《빙의》의 저자이며 빙의(憑依)치료 및 퇴마(退魔) 여승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6년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을 펴내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5년여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과 친구처럼 지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자비정사를 자주 찾았고, 2002년 박근혜 의원이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의 각종 행사에 묘심화 주지가 함께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의원과 묘심화 주지는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천도재(薦度齋·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는 불교의 의식)를 지낸 바 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없다. 그 사연은 무엇일까.
 
 
  2002년 책 읽고 찾아와
 
묘심화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울 구기동의 자비정사.
  묘심화 주지는 “박 대통령과 연락한 지 10년이 넘었고, 내가 아는 대로만 이야기하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박근혜 대통령을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2002년 2월 눈발이 날리는 날이었어요. 제가 쓴 《빙의》라는 책이 2002년 1월에 나와 세간에 화제가 됐는데, 그 책을 보고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당시 재선 의원으로 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는데 불쑥 찾아와서 깜짝 놀랐죠.”
 
  책은 빙의와 퇴마에 대한 내용이다. ‘빙의’란 혼령이 몸에 내려와 자유의지를 조종하는 현상을 말한다. 억울하게 죽어서 죽은 자리 또는 살았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도는 영혼을 지박령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빙의는 이 지박령이 사람에게 붙어 생기는 현상이다. 빙의로 인해 살아 있는 사람이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또 다른 특이한 대목이 있다. 영혼 외에 가신(家神)과 명당(明堂)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청와대 터 기운을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주인이 돼야 말로가 좋고 태평성대가 된다는 것이다. 비명횡사한 부모와 여성 대통령, 두 가지 책의 주제가 박근혜 의원의 마음을 자극했던 것 같다. 물론 묘심화 주지가 책을 쓸 때 누군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 생각 못 한 방문이었을 텐데, 반가웠습니까.
 
  “저는 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부부를 존경했고 그분들은 제 꿈에도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그분들의 딸이 저를 찾아왔으니 솔직히 기뻤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순간 하얀 연꽃의 느낌과 함께 관세음보살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분이 첫인사를 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합장을 하며 ‘우리나라 모두가 평화롭게 잘살 수 있도록 큰일을 해달라’고 할 정도였지요.”
 
  ― 그 후로도 가끔 방문을 했다던데, 주로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선덕여왕의 기운이 보인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다, 꿈에 박 전 대통령 부부가 나와 이런 얘기를 했다’ 등등 박 의원이 좋아할 이야기를 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분과 저는 서로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관계였습니다. 부모를 잃고 외로웠던 마음을 토로할 때 들어주고 위로해 주곤 했지요.”
 
  ― 누구와 같이 왔나요.
 
  “늘 정윤회씨와 왔죠. 정씨가 비서실장이었으니까. 그런데 박 의원과 제가 단둘이 이야기할 때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밥도 따로 먹었고. 비선 실세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정말 정치인과 비서 관계로 보였습니다.”
 
  ― 최순실은 본 적 없습니까.
 
  “자비정사에는 한 번도 안 왔습니다.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은 한두 번 온 적이 있지만요. 지금 생각하니 제가 최순실씨에게 잘못 보여서 박 대통령이 저를 멀리한 게 아닐까요?”
 
 
  최태민·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못 꺼내
 
  묘심화 주지는 이후 박근혜 의원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에 동행하곤 한다. 조계사, 법주사 등 대형 사찰에 사람이 모였을 때 박근혜 의원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하는 현장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그는 박 의원이 큰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묘심화 주지는 200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산재(靈山齋)를 함께 지내며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49재의 종류 중 하나인 영산재는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으로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다. 영산재는 일반 천도재와 달리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소요되는 의식인데, 묘심화 주지는 이를 자비(自費)로 충당했다. 묘심화 주지는 이후로도 자비정사에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영정을 모시고 해마다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 아닙니까.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불교 신자였죠. 그런데 두 분(박정희·육영수) 모두 허무하게 돌아가신 후에 남들 다 지내는 49재도 못 지낸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내드리겠다고 했고 2002년 처음으로 영산재를 올렸죠. 박 의원이 거의 칭찬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부모님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다고도 했고요.”
 
  ― 당시 박근혜 의원을 여(女)미륵이라고 평가했지요.
 
  “그땐 정말 여미륵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제가 여미륵 얘기를 하면 박 의원은 기분이 좋은지 제게 여(女)무학이 돼 달라고 했습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무학대사를 말하는 것이지요. 대통령이 되시면 저는 청와대 근처에도 안 갈 거라고 했더니 ‘무학처럼 더 자주 오셔야 되는데요’라고 하더군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끔 유머를 섞어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 듣기 좋은 말 말고 싫은 소리는 한 적 없습니까.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고, 특히 정윤회와 3인방은 슬슬 멀리하셔야 한다고 했어요. 정치인에게 비선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정윤회와 안봉근 같은 사람을 편하다는 이유로 계속 옆에 두면 안 된다고,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된다고 했죠. 그때는 제 얘길 잘 들어줬어요.”
 
  ― 최태민과 최순실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 없습니까.
 
  “저는 예전부터 최태민씨를 만난 적 있는 큰스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점잖으신 큰스님이 ‘사기꾼’이라고 할 정도로 좋지 않은 행적이 많았고 저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었죠. 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최태민이나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역린(逆鱗)인 것 같았고 그 이름을 꺼내면 박 의원이 저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때만 해도 저는 박 의원에 대해 호감이 컸기 때문에 일부러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 그 와중에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2006)라는 책을 냈습니다.
 
  “내용이 칭찬 일색이라 지금 보면 조금 부끄럽긴 하죠.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갈 정치인이 되길 바랐던 제 희망을 담았던 것 같습니다.”
 
  ― 그 책을 쓰고 나서 스스로 박근혜 의원을 안 만나겠다고 얘기했죠.
 
  “이미 저는 무학대사가 돼 달라는 얘길 들었잖아요. 역사상 무학, 원효 등 승려들이 정치 참여를 한 바 있지만 지금은 종교인이 정치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대통령이 되면 저는 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계획이며 자비정사에 갈 때도 청와대를 피해서 갈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사이가 벌어진 이유
 
  ― 그런데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경선 탈락 후 딱 한 번 포럼에서 만났습니다. 화가 난 표정이었죠. ‘요즘은 대체 독자들에게 뭐라고 얘기하세요?’라고 따지듯 말하더군요.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제 예언이 틀렸다는 거죠.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이 온 적 없습니다.”
 
  ― 예언이 틀렸다고 화를 냈단 말입니까.
 
  “‘내가 대통령 된다더니 왜 안 됐느냐’ 이런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 후 박 의원은 물론 그 남매, 정윤회 등 주변 모든 사람이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 의원이 저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경선 탈락을 계기로 박 의원으로부터 저를 떼어내려고 그런 것 같은데, 저와 박 의원이 너무 가까우면 최순실씨가 자기 입지가 좁아질까 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읍참마속은커녕 주변인들에게 휘둘리는 박 의원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었고요.”
 
  ― 이후 박 대통령의 행보를 어떻게 봤습니까.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 기자가 최태민씨와 관련해 질문하자 ‘최태민을 욕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더군요. 실소가 터졌어요. 왜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 자비정사가 청와대와 가깝죠. ‘세월호 7시간’에 굿을 했다는 괴소문이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이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기가 막히죠. 박 대통령이 굿을 했다며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은 국가무형문화재 50호인 ‘영산재’입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2002년 특별히 박 전 대통령 부부의 극락왕생을 위해 지낸 것인데 우리 고유문화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갖다붙인 거예요.”
 
 
 
박지만 회장의 부탁

 
  묘심화 주지는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형제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EG 회장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는 “동생들이 작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근령, 지만 남매가 최태민과 최순실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까.
 
  “최태민씨 가족 얘기는 했지요. 박지만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피(형제)보다 진한 물(비선)도 있더라’는 얘길 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박지만 회장은 ‘우리 누나 대통령 만들지 마세요’라고 제게 계속 얘기했습니다. 옆에 간신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국정을 볼 수 없을 거라고요. 누나의 주변 사람들 때문에 자신들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요.”
 
  ― 그 외에 최태민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한 유력 언론사 사장도 그러더군요. ‘퇴마 전문가라면서 박근혜한테 붙어 있는 최태민 영(靈) 좀 떼어내지 뭐하고 있느냐’고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씨에게 영적으로 지배당했다는 소문을 믿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제 눈에 보였을 텐데 그건 아니었거든요. 최순실씨도 영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측근을 관리하지 못한 겁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 ‘측근을 살펴보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답은 없었습니다.”
 
  묘심화 주지는 “대통령으로 인해 보수 세력 전체가 위기에 몰리는 현상이 안타깝다”며 “잘못한 점은 밝혀내고 해결해야겠지만 대통령이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지 않도록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락은 끊겼지만 일말의 연민은 남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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