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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단골집 ①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믿음’ 하나로 ‘情’을 주고 받는 남대문시장

글·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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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
⊙ 55세. 연세대 식생활학과 졸.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석사.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수료.
⊙ 사회개발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여론전문위원, 디인포메이션대표, 국민통합21 대변인,
    청주대 정치사회학부 겸임교수, 위키트리 부회장,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現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 저서 《소셜로 정치하라》.
  똑소리 나게 일 잘하는 여성이 집안 살림도 야무지게 잘 꾸린다. 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되면서 집안 살림도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 더 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살림을 잘한다는 것’은 ‘멋지게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대변인을 지낸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똑소리 나는 살림꾼이다.
 
  94세의 시어머니를 비롯해 남편과 딸, 네 식구가 함께 살면서 사회생활과 집안일을 야무지게 해내는 그녀의 노하우는 ‘심플 앤드 패스트(Simple and Fast)’. 필요한 것만 사고 시간은 최대한 단축한다. 그중 하나가 ‘재래시장에서 단골집 만들기’다. 그녀는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남대문 시장에서 산다. 토요일마다 장을 보는데 길어야 한 시간. 편리한 백화점과 마트를 두고도 재래시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골 상인들과의 ‘믿음’ 때문이다.
 
과일 시장에 들러 토마토를 사는 김행 원장. 단골손님을 알아보는 주인장은 “토마토는 많이 두면 물러 맛이 없으니 오늘 천도복숭아나 가져가”라며 한 봉지 공짜로 챙겨 준다. 단골집의 묘미는 덤으로 오가는 정이 아닐까.
  “우선 질이 좋습니다.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 정확하게 얘기해 줍니다. 또 제철 먹을거리들이에요. 특별히 좋은 생선이나 과일이 들어오면 전화도 해 줘요. 백화점에서 채소나 과일, 생선들을 사는 주부들 보면 ‘겁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절대로 냉장고를 꽉 채우지 않는다.
 
  “전업주부보다 일하는 여성이 부엌살림을 못한다는 것은 편견이에요. 오히려 일로 바쁜 여성은 냉장고에서 재료를 빠르게 꺼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냉장고 정리를 잘하게 되죠. 냉장고 재고조사가 철저해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훤하지요. 냉장고건 냉동고건 절반 정도만 채웁니다. 딱 1주일 정도 먹을 분량이지요. 그러면 음식물쓰레기도 최대한 줄이게 돼요.”
 
  말하자면 오래 넣어 두고 먹는 음식보다 바로바로 요리해 먹는 음식재료를 넣어 둔다는 것이다. 대신 장을 볼 때 양이 많은 것보다 4식구에 맞춰 양은 적게 품질은 최고로 식재료를 선택한다. ‘음식은 손맛이 아니라 재료 맛’이라는 것이 그녀의 철학.
 
20년 동안 제철 활어를 실어 나른 임영자(70)씨의 서울상회(02-778-2793). 여름 보양식으로 좋은 민어 두 마리를 얼음에서 꺼내 보이면서 “아가미가 붉고 탱탱하면서도 눈알이 살아있는 민어가 좋은 민어”라며 생선 고르기 팁도 잊지 않는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토요일마다 남대문 시장을 돌며 장을 보는 것이 벌써 5년째다. 이전 광화문 인근에 살 때는 옥인시장을 주로 갔다. 중구 회현동으로 이사 온 이후 남대문 시장에 단골집을 개척한 것이다.
 
  시장 볼 때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수산물시장. 남대문 수입상가 바로 옆이다. 빼곡히 들어선 30여 개의 점포에는 바닷장어나 완도산 전복, 광어, 낙지, 대합 등 생물에서 냉동 참치까지 없는 게 없다.
 
  “여기가 제 단골집이에요.”
 
김행 원장이 즐겨 찾는 남대문 시장의 삼양상회(02-753-3525).
  그녀가 신이 나서 달려간 곳은 박만순(60)씨가 운영하는 ‘삼양상회’다. 평상 하나를 놓고 벌인 좌판에는 대합과 낙지, 오징어, 소라, 해삼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이 그득하다. 김 원장은 “지난번 손님 상에 낙지 연포탕을 끓여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며 “모두 사장님의 코치 덕분”이라고 활짝 웃는다. 28년째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박만순씨는 김 원장의 친정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한다. 낙지 한 마리 팔면서도 요리법을 세세하게 코치한다. 예를 들면 “낙지나 생선류는 팔팔 끓는 물에 넣어야 해. 그래야 비린내가 나지 않지. 반대로 조개류는 찬물에 넣고 서서히 끓여야 입을 벌려”라는 식이다. 덤으로 한 움큼 파를 넣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덤은 공짜. “단골집은 이래서 좋아”라는 김 원장 옆에서 박씨는 뭐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고 까만 봉지에 주섬주섬 담기 바쁘다.
 
  삼양상회의 바로 앞은 김 원장이 추석선물용으로 애용하는 완도산 전복을 파는 ‘남대문 전복집’이다. 꿈틀대는 전복을 바로 포장해서 당일 배송한다.
 
  “보통 한 박스에 1.5~2kg 정도의 전복을 넣어 선물하는데 가격이 10만원이 채 안 돼요. 백화점에 비하면 1/4 가격이지. 게다가 이것 봐, 싱싱하게 살아 있잖아요.”
 


질 좋은 완도산 전복을 값싸게 파는 남대문 전복집(02-755-2811). 김행 원장은 추석 때 지인들 선물용으로 이곳 전복을 주로 이용한다.
  수산물 시장의 상인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난 뒤 찾은 곳은 같은 건물 3층의 꽃시장이다. 남대문 꽃시장은 1960년대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꽃 도매시장이다. 정식 명칭은 남대문 대도 꽃도매상가. 과거 줄을 서서 들어갈 만큼 번성했던 곳이 90년대 초에 양재동 꽃시장이 생기면서 점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상가에는 생화를 파는 점포 90곳과 조화를 파는 점포 40곳 등이 들어서 있다. 새벽 3시에 문을 열고 월・화・수・목은 오후 3시, 금・토는 오후 4시까지 영업한다. 공휴일에는 오전에만 영업하고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그녀가 남대문 시장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 꽃도매상가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시장에 갈 때마다 꼭 이곳도 들른다. 요즘엔 절화보다는 분화를 주로 산다. 대충 분 하나에 2000원. 분 다섯 개를 사면 가을까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동안 바빠서 집에 꽃이 없은 적이 있었는데, 둔감한 남편도 그걸 알아채고는 ‘요즘 집에 꽃이 안 보인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훨씬 싸니까 꽃도 사게 되는 여유가 생긴 거지요. 돈 없으면 외상으로 줍니다. 제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요. 서로 믿으니까요”라며 말이 끊어질 줄 모른다. 이럴 때 보니 보통의 수다스러운 주부들과 똑같다.
 
30년 동안 냉동 참치와 메로, 마그로 등을 판매해 온 박인철(57) 사장의 유참치(02-757-4170). 김행 원장이 집으로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자신 있게 내놓는 메뉴 중 하나가 메로 된장구이다. 가격은 메로 1kg에 2만원 선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꼭 보고 가는 노점상 할머니. 이분께는 주로 마늘이나 고추 같은 것을 산다. 무거워서 양파같이 무게 나가는 채소는 갖다 놓지 못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김 원장을 보곤 하소연을 시작한다. 요즘 노점 단속이 심해 예전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김 원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저 자기 얘기를 들어 주는 맘씨 좋은 주부로만 안다.
 
  “시장에는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시장에 가면 가격이 안 적혀 있어 자꾸 물어보게 되는데, 말을 붙이면서 대화가 되고 그러다 보면 사람 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어요. 전 절대로 물건값은 깎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질 좋고 가격이 싸니까요. 채소를 1000원이나 2000원어치씩 사는데 뭘 깎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있어 ‘단골집’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호쾌하게 ‘믿음’이라 답한다. “믿음 하나로 정을 주고받는 곳, 그곳이 바로 단골집이죠.”⊙
 
남대문 꽃시장을 주름잡는 ‘꽃할매’ 삼인방. 모두 이곳에서 꽃을 판 지 40년이 넘는 터줏대감들이다.

연녹색의 옷을 입고 나타난 김행 원장이 이날 고른 꽃은 4500원의 수입고추와 2500원의 흰색 프록스 한 단이다. 주인장은 물에 넣으면 2주일 동안 시들지 않는다며 귀띔한다.

집을 꽃으로 장식하기를 즐기는 김행 원장이 즐겨 찾는 서울장미(02-775-6999). 미니장미 1단에 3000원, 소국 1단에 2000원 선이다.

야채를 사러 가는 길, 재래시장 장보기의 묘미는 오며 가며 맛보는 간식거리다. 성인 주먹 하나 크기의 왕만두는 남대문의 대표 간식 중 하나다. 5개에 2000원.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길거리 상인. 신선한 야채를 깔끔하게 봉지에 포장해 파는 할머니는 오전 9시부터 나와 남대문 시장 노점에서 한낮 장사를 하고 오후 4시면 인근 지하상가로 장소를 옮겨 오후 장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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