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勝源
⊙ 73세.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1968년 《대한일보》에 단편소설 《목선》을 발표하면서 등단. 《포구의 달》로 현대문학상,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해양문학상, 불교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등 수상.
⊙ 장편소설 《다산》 《원효》 《아제아제바라아제》 《피플 붓다》 등, 시집으로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 등, 수필집 《바닷가 학교》
《이 세상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등 다수.
李在恩
⊙ 숭실대 문예창작과 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 現 독서논술 NIE 지도사. 前 한국문인 편집장.
⊙ 저서: 《새로 사귄 애인》.
⊙ 73세.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1968년 《대한일보》에 단편소설 《목선》을 발표하면서 등단. 《포구의 달》로 현대문학상,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해양문학상, 불교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등 수상.
⊙ 장편소설 《다산》 《원효》 《아제아제바라아제》 《피플 붓다》 등, 시집으로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 등, 수필집 《바닷가 학교》
《이 세상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등 다수.
李在恩
⊙ 숭실대 문예창작과 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 現 독서논술 NIE 지도사. 前 한국문인 편집장.
⊙ 저서: 《새로 사귄 애인》.
한 권의 책을 읽고 마음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나요?
모든 통증은 신호를 보낸다. 그만 아프고 낫게 해달라고, 낫고 싶다고. 그럴 때마다 사람은 알약을 먹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 소설에도 구원이 있다. 소설가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전해오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알약보다 강한 처방전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이라면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이상문학상 작가를 만났다.
1988년 이상문학상은 두 작가 공동 수상으로 결론이 났다. 한승원 작가의 《해변의 길손》과 임철우 작가의 《붉은 방》이다. 당시 심사위원이 6명이었는데, 두 번을 투표했지만 개표 결과가 3:3이어서 유례없이 두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았다고 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민족적인 한과 시대적인 이념을 형상화한 글이라는 점이다. 그로부터 20년 넘게 흘렀어도 소설은 늙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 있다. 분단의 현실이나 이념 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 사이의 편애라는 것이다. 이 중 한승원 작가를 만나러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8월 6일 그가 터를 잡고 있는 장흥으로 떠났다.
한승원 작가의 고향 전남 장흥은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장흥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안양면 율산마을까지 택시를 탔다. 한승원 작가의 집필실 ‘해산토굴’로 가자고 하자 택시기사는 그분이 그렇게 유명하냐고 물었다. 해변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에는 종려나무가 심어져 있다. 약 8km를 달리는 동안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다.
해산은 작가 한승원의 호이고 토굴(土窟)은 조용히 글만 쓰며 수도하듯이 살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단층 빨간 기와집의 잔디 마당에는 작가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비석과 해산토굴은 멀리 남도 바다를 평생 떨어지지 않을 연인처럼 마주보고 있다. 바다는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있는데 떨어져 돌아앉은 것 같은 섬 하나가 물살에 돋보였다. 한낮의 햇살이 쏟아져 은빛이 된 바다에서는 작가의 이야기가 들려 왔다. 작가는 저 물 종이 위에 소설을 쓸 것이다. 저 바다를 다 채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고단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맑고 좋은 햇살 탓인지 섬 득량도는 엄마 앞에 앉아 있는 아이처럼 우쭐해 보인다. 마을의 생업이 논농사인 듯 해안가에는 푸릇푸릇한 벼가 신이 난 듯 성장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벼는 끓어대는 날씨에도 시원하고 선명한 초록색이다. 글농사를 짓고 사는 작가에게 그 논은 유혹일 것이다.
“사람의 살아가는 목표를 생각하며 써”
“계십니까?”
“어서 오세요. 더운데 먼길 오느라 고생했죠?”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문을 열어주는 작가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맑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다. 그의 육신은 세월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 정신과 마음만은 향기롭고 맑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선생이 내놓은 차를 마시며 그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봤다.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제12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는데 연예인으로 치자면 연말에 연기대상을 받은 거잖아요. 수상 통보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 작품이 어떤 점 때문에 수작으로 선정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이 작가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거예요. 작가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칭찬과 박수지요. 이 작가가 열심히 잘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죠. 작가는 자기의 작품으로 칭찬과 박수를 받는 거니까. 심사위원들은 제 소설이 가지고 있는 질긴 생명력과 실존에 칭찬을 해준 것으로 봅니다.”
―이 작품의 선정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해변의 길손》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맨 앞에 김형영의 시가 인용되어 있죠. 뭐라고 되어 있죠?
〈죽음아
내 너한테 가마.
세상을 걷다가 떨어진 신발
이젠 아주 벗어던지고
맨발로 맨발로
너한테 가마.〉-김형영의 〈나그네〉
이 시를 그 앞에다가 인용을 했는데 그 당시 몸이 아주 나빠 죽음을 생각할 무렵에 이 소설을 썼거든요. 이 소설을 쓰는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가, 그러한 실존을 생각하면서 쓴 거예요. 이 글은 형제간과 어버이의 사랑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자 사람의 어떤 살아가는 목표라고 할까 그것을 상징하고 있어요. 가령, 어떤 아이가 산에서 나무를 한 짐 지고 돌아와요. 그러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많이 해왔다 칭찬해 주지요. 그러면 그 아이는 기뻐하겠죠. 칭찬을 듣기 위해 힘든 일을 다시 하러 갈 테지요. 대개의 사람이 그래요. 아버지나 어머니의 칭찬 하나를 생각하면서 사는 마음이 밑에 깔려 있어요. 그게 좀 더 성장해서는 그와 비슷한 보람이나 어떤 환희를 느끼기 위해 사는 거거든요. 소설 속에 황두표라는 주인공은 평생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동생한테 뺏기면서 살았어요. 글의 마지막,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하는 장면은 부모의 사랑이 끝까지 자기를 외면하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광적인 어리광이죠.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그런 생명력과 한이 깔려 있어요. 소설의 앞 부분에 보면 황두표의 막내아들 부부가 바다에 나가고 없는데, 황두표가 혼자 마당을 거닐지요. 황두표가 기거하는 곳과 막내아들 부부가 사는 건넌방은 풍경부터가 다르지요. 황두표는 사라져가는 삶이라면 빨랫줄에 걸려 있는 며느리의 속옷이라든지 브래지어는 막내 부부가 새롭게 움터가는 모습이고. 대비가 잘 되어 있는 대목이에요. 이 작품에 상을 주게 된 게 그와 같은 실존, 그것을 밀도 짙게 잘 묘파했다고 해서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왕따는 인간의 악마성이 근본 원인
―《해변의 길손》은 성경의 카인과 아벨처럼 동생에 대한 형의 질투에서 빚어진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이런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따로 있나요.
“인간에게 소유욕이라고 하는 욕망, 그것은 사랑을 밑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황두표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지금도 그런 어머니 아버지가 세상에 있어요. 살아 있는 자식보다 떠나가고 없는 자식에 대한 집착도 그런 것이지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살아 있는 자식은 못 견뎌 하는 것이고요. 사랑이고 재산이고 누구든지 독차지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와 같은 것은 형제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확대될 수 있거든요. 지금도 우리는 분단시대를 살고 있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고 저쪽은 아직도 억압된 사회제도 속에서 살고 있어요. 《해변의 길손》은 동전의 안과 밖 같은 사랑과 미움, 빛과 그림자를 형상화시킨 것이지요.”
―문학의 영원한 소재가 되는 사랑, 그 뒷면에는 왕따와 편애(질투)가 있어요. 선생님의 최근 소설 《피플 붓다》도 왕따에 대해 다뤘는데 요즘 10대들의 학교폭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저도 초등학교 다닐 적에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 태어난 곳은 승용차로 40분 더 들어가는 곳이에요. 그 고향땅이 옛날에는 섬이었어요. 대개 섬마을은 농토가 작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곳에서 아버지가 김 양식도 하고 열 마지기 정도의 농사를 지었어요. 말하자면 가난한 마을에서도 제일 부자였던 거죠. 다른 사람들은 논 한 마지기 가지고 있거나 그나마도 없거나 한 살림인데, 우리 집은 거기에 비하면 부잣집이었어요. 그러니까 가난한 집 아이들이 나를 미워했어요. 당시가 광복 직후라 이데올로기 싸움도 막 일어나고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전부 다 남로당 편을 드는 분위기였어요. 그들은 우리 아버지를 부르주아라 하고, 자기들은 프롤레타리아라 했어요. 아버지를 반동분자라고 손가락질했지요. 마을 아이들은 저를 반동분자 아들이라고 따돌렸어요. 요즘으로 치면 왕따였죠. 굉장히 힘들게 살았어요.”
―사춘기 때였고 굉장히 괴로웠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많이 외로웠죠. 하지만 그 외로움이 자양분이 되어 작가가 되었는지 모르죠. 요즘 청소년들의 왕따 그것은 굉장히 심각하고 슬픈 문제거든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잔혹성입니다. 동물들도 왕따를 시킨다는 말이 있죠. 《피플 붓다》에도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자비롭고 너그러운 것 같지만 한편은 동물이나 다름없지요. 인간이 아주 잔인합니다. 어떤 마을에 만만한 과부가 하나 있어요. 그러면 그 동네에 거의 모든 남자가 그 과부와 한 번씩 자 본다는 거예요. 아이들도 몸이 불편한 아이를 보면 보호해 주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그 아이를 학대를 해요. 그런 아이한테 가방을 들게 하며 너도나도 왕따를 시키는 게 지금 우리 아이들의 현상이에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왕따를 이겨내는 그것도 하나의 생명력입니다. 제 소설 《피플 붓다》에서는 그 아이가 따돌림으로부터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교육이 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이 아니고 성적 위주의 교육입니다. 과외 학원이라든지 수능이라든지… 성적지상주의가 왕따 문화를 만들고 있어요. 왕따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더 심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일진’이라는 것이 일본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에 낙제를 한 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뒷동산으로 데리고 가서 모두가 한 번씩 때려 죽여놨어요. 바야흐로 세계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런 때에 공부를 안 해서 낙제를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시대에 따라서 왕따 문화가 달라지는 거죠. 그것을 어떻게 잘 교육시키느냐,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정서를 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가해 학생의 부모들도 마찬가지고 피해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의 삶과 늘 같이 엮여서 사는 그런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가해 학생들의 경우,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그 자체가 놀이처럼 즐거움이 되어버리니까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만한 아이 하나를 돌려가면서 때리고 즐기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의 악마성입니다. 건전한 다른 놀이, 다른 학업이 즐거운 놀이가 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당하는 아이들은 그것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생명력을 길러야 합니다.”
문학은 자연친화적이어야
―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글을 쓰면 더 나은가요.
“지금 한국의 문인들은 너무 서울에 집중돼 있어요. 문인들이 자기 고향이라든지 시골로 간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자연친화적이어야 합니다. 도시의 속도감 넘치는 문학이면 너무 건조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가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작품을 위해서나 문학풍토를 위해서나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친화, 그것은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우주에 끼치는 해악을 막는 일입니다. 인간만을 위한 삶은 자연을 죽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개는 고향이라는 것이 시골이니까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시골에 사는 것은, 문학적인 면에서 단점은 거의 없어요. 불편한 것은 도시 문화와 단절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죠. 그렇지만 요즘은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봐요. 또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해 있습니까? 시골살이의 단점은 없습니다.”
―편리하고 세련된 도시 문화를 끊고 돌아오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반대하지 않던가요.
“작가는 외로워야 해요. 외롭지 않으면 문학이 나올 수가 없지요. 도시에서 빠른 속도감으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서울에는 고급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 문화와 단절된다는 기분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극복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집사람의 반대는 없었어요.”
―‘달 긷는 집’이라는 문학학교는 장흥군에서 지어준 것으로 아는데, 지자체들이 귀향 문인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나요.
“장흥군에서 저에게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는 편이지요. 대우를 해주기보다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작가와 공생하는 것이죠. 바닷가 앞에 문학산책로도 만들어주고 시비 공원도 조성해 주었어요.”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겠는데요.
“한 포구에,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쓸 무렵에 드나들었던 카페가 있습니다. 그분 사후에, 그분이 앉아 있곤 했던 그 카페의 그 의자에는 <이것은 헤밍웨이가 앉곤 한 의자입니다>라는 표찰이 붙어 있답니다. 그 카페에는 지금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간다고 해요. 그래서 한 작가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산다고 하는 것은 그 고향 고유문화의 한복판에 와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만큼 귀한 존재이기도 하지요. 오래된 마을에 가면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그 정자나무처럼 작가는 그윽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한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산다는 것은 그 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질문은 어떤가요. 소설은 캐릭터인데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소설적인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김대중과 노무현이죠. 김대중의 삶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합니다.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사람이고 많은 역경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노무현도 그런 드라마틱한 역경을 가진 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화적인 인물이에요. 민주화의 열망이 대단했을 때, 그때를 저도 살았는데,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신화》 연작이 그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형상화하여 더 좋은 소설을 쓰게 될지 모르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소설적인 삶을 산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에는 관심이 있습니까.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분단국가잖아요. 그래서 차기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원활하게 만들면서 화해해 나가는 그런 대통령이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이 해왔던 남북관계를 부드럽고 원활하게 하지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 불만족스러워요. 앞으로 될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 경제협력도 하고, 그리하여 북한이 중국하고 더 가까워지지 않고 우리 남쪽하고 더 친해지도록 하는… 여야 상관없이 그런 소통을 해줄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문학인들의 정치 참여나 SNS를 통한 정치 개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여한다는 점은 이로운 점이 있죠. 특히 문학인들은 사람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꿈꾸기에 그런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좋다고 봐요. 이외수나 공지영 작가의 SNS 발언도 저는 크게 비판하고 싶지 않아요. 꽃들로 비유한다면, 세상에 장미꽃만 있으면 안 되니까요. 호박꽃도 있어야 하고 벚꽃, 진달래꽃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외수나 공지영 작가를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작가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약간 뜬금없지만, 생업을 위해 소설을 쓰나요.
“제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제 존재의 이유이자 의무예요. 반드시 먹고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니까 그래서 쓰는 거예요. 생명체로서의 욕구 그것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이것은 얼마나 팔릴까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세속에선 많이 팔린 소설이 유명하다고 치니까.
“소설을 써서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독자가 읽어줄 것인가, 안 읽어줄 것인가는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이건 다산 선생의 말인데, 공자와 맹자의 생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자저서전유구일인지지(君子著書傳唯求一人之知·군자가 책을 써서 전하는 것은 다만 그 책을 알아주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라고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기보다 어떤 한 사람이라도 내 작가적인 의도를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예요. 그것이 작가의 올바른 태도일 테고요.”
―요즘 학문에서는 융합이라는 것이 대세입니다. 문학의 융합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어느 범위까지가 바람직할까요.
“아까 제가 자연친화적이라고 말했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포함이 될 텐데 우리의 삶이 너무 편협하게 나눠져 있어요. 가령 장사꾼은 장사꾼의 삶을 사느라고, 컴퓨터 공학은 공학대로 인문학의 장점에 대해 도외시하는 거예요. 융합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융합하겠다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의 몸뚱이를 보면 정말로 자연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어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문과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죠. 자연과학적인 삶과 인문과학적인 삶의 융합이 인간의 삶을 한층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라든지, 서울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든지, 바닷가로 간다든지 하는 것은 참다운 문학을 위해서 아주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작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소설을 쓰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에게도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라고 권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의 융합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봐야 할까요.
“요즘 이 시대의 삶은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할 수 있는 극치까지 간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는 굉장히 잔인한 거예요.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듯이 큰 기업체가 작은 기업체를 전부 다 먹어버리는 그런 자본주의 논리에만 맡겨버리는 것은 굉장히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것을 막는 것이 정치입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 문학, 역사, 철학들이 따돌림받는 세상은 무섭습니다. 앞으로 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이 인문학을 숭상하는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소설가는 한심한 영혼”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책 한 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 보통 사람들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거잖아요.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누구라도 자기 개인이나 가족사 이야기만으로도 큰 소설 한 편은 쓸 수 있죠.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소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죠. 가령 여자들은 누구든지 장편소설 한 권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좋은 예입니다. 그 작가는 그 소설 한 편 쓰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해요. 그 여자 주인공 자체가 대단한 소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여자들의 삶이 더 소설적이란 건가요.
“여자는 자궁을 가지고 있어요. 자궁은 둥지이고, 우주이고 뿌리예요. 한 가정을 끌고 가는 여자는 그 가정의 우주이자 뿌리지요. 가령 서울 한복판에 시장이 있습니다. 그 시장에 모든 것이 모여듭니다. 그게 그 세상의 뿌리예요. 시장은 여자로 치면 자궁 같은 거죠. 한 여자가 한 시대를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것들, 그것을 이야기하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죠.”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매우 페미니즘적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노자가 얘기한 곡신(谷神)이란 말이 있습니다. <곡신은 현빈(玄牝)이고 현빈의 문은 천지근(天地根)이다.> 현빈은 그윽한 암컷을 말하고, 그윽한 암컷은 우주의 뿌리라는 말입니다. 우주를 만드는 뿌리는 자궁(谷神)이라고 말한 노자야말로 페미니스트죠.”
―시대가 부러워할 가족 작가(아들과 딸이 작가) 집안인데 가문의 영광 아닌가요.
“글쎄요. 제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이셨어요. 저는 그분의 영향으로 소설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전에 말한 우주의 뿌리처럼 한 아빠라는 소설가가 만들어놓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았을 터입니다. 나는 어부이면서 농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애들은 소설가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소설가를 정의하라고 하면.
“소설가는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 그러한 세상과 허공에 뿌리를 내려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죠. 현실적이고 상상적인 그 모든 세계에 뿌리를 내려 새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스키가 소설가를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이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고기를 사먹고 포도주를 사먹고 빵을 사먹는 것이 아니라 하얀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다가 빵이라고 쓰고 포도주라고 쓰고 종이라고 써서 그 종이를 먹는구나.> 그래서 한심한 영혼이라고 한 거죠. 현실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현실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 하고 있는 삶을 교정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설가이고 소설가의 역할이죠.”
―남을 교정해 주자면 타인을 바라보는 남다른 혜안을 길러야 하지 않나요.
“승려나 목회자가 도를 닦으며 살 듯, 소설가도 도 닦듯이 삶을 살아야 해요. 스님들이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듯이 소설가들도 탐욕을 버리고 그 탐욕에 젖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창녀처럼 사는 여자의 이야기라든지 바람둥이처럼 사는 남자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쓰는 거예요. 더 잘사는 삶,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소설가죠. 그러니까 한심한 영혼이지만 그 영혼이 꿈꾸는 세계가 아름답고 예쁘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 쓰고 싶은가요.
“예수도 쓰고 싶고 석가모니도 쓰고 싶고 그래요.”
―구도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가요.
“그렇죠. 헤르만헤세가 쓴 《싯다르타》도 구도자의 이야기예요. 제가 쓴다면 그보다 더 좋게 쓰고 싶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소설을 쓸 건가요.
“젊어서는 소설을 쓰는 일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줄 한 줄,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지금은 즐기면서 써요. 다시 태어나면 아마 더 잘 쓰는 소설가가 되겠죠.”(웃음)⊙
모든 통증은 신호를 보낸다. 그만 아프고 낫게 해달라고, 낫고 싶다고. 그럴 때마다 사람은 알약을 먹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 소설에도 구원이 있다. 소설가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전해오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알약보다 강한 처방전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이라면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이상문학상 작가를 만났다.
1988년 이상문학상은 두 작가 공동 수상으로 결론이 났다. 한승원 작가의 《해변의 길손》과 임철우 작가의 《붉은 방》이다. 당시 심사위원이 6명이었는데, 두 번을 투표했지만 개표 결과가 3:3이어서 유례없이 두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았다고 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민족적인 한과 시대적인 이념을 형상화한 글이라는 점이다. 그로부터 20년 넘게 흘렀어도 소설은 늙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 있다. 분단의 현실이나 이념 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 사이의 편애라는 것이다. 이 중 한승원 작가를 만나러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8월 6일 그가 터를 잡고 있는 장흥으로 떠났다.
한승원 작가의 고향 전남 장흥은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장흥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안양면 율산마을까지 택시를 탔다. 한승원 작가의 집필실 ‘해산토굴’로 가자고 하자 택시기사는 그분이 그렇게 유명하냐고 물었다. 해변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에는 종려나무가 심어져 있다. 약 8km를 달리는 동안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다.
해산은 작가 한승원의 호이고 토굴(土窟)은 조용히 글만 쓰며 수도하듯이 살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단층 빨간 기와집의 잔디 마당에는 작가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비석과 해산토굴은 멀리 남도 바다를 평생 떨어지지 않을 연인처럼 마주보고 있다. 바다는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있는데 떨어져 돌아앉은 것 같은 섬 하나가 물살에 돋보였다. 한낮의 햇살이 쏟아져 은빛이 된 바다에서는 작가의 이야기가 들려 왔다. 작가는 저 물 종이 위에 소설을 쓸 것이다. 저 바다를 다 채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고단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맑고 좋은 햇살 탓인지 섬 득량도는 엄마 앞에 앉아 있는 아이처럼 우쭐해 보인다. 마을의 생업이 논농사인 듯 해안가에는 푸릇푸릇한 벼가 신이 난 듯 성장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벼는 끓어대는 날씨에도 시원하고 선명한 초록색이다. 글농사를 짓고 사는 작가에게 그 논은 유혹일 것이다.
“사람의 살아가는 목표를 생각하며 써”
“계십니까?”
“어서 오세요. 더운데 먼길 오느라 고생했죠?”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문을 열어주는 작가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맑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다. 그의 육신은 세월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 정신과 마음만은 향기롭고 맑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선생이 내놓은 차를 마시며 그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봤다.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제12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는데 연예인으로 치자면 연말에 연기대상을 받은 거잖아요. 수상 통보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 작품이 어떤 점 때문에 수작으로 선정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이 작가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거예요. 작가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칭찬과 박수지요. 이 작가가 열심히 잘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죠. 작가는 자기의 작품으로 칭찬과 박수를 받는 거니까. 심사위원들은 제 소설이 가지고 있는 질긴 생명력과 실존에 칭찬을 해준 것으로 봅니다.”
―이 작품의 선정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해변의 길손》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맨 앞에 김형영의 시가 인용되어 있죠. 뭐라고 되어 있죠?
〈죽음아
내 너한테 가마.
세상을 걷다가 떨어진 신발
이젠 아주 벗어던지고
맨발로 맨발로
너한테 가마.〉-김형영의 〈나그네〉
이 시를 그 앞에다가 인용을 했는데 그 당시 몸이 아주 나빠 죽음을 생각할 무렵에 이 소설을 썼거든요. 이 소설을 쓰는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가, 그러한 실존을 생각하면서 쓴 거예요. 이 글은 형제간과 어버이의 사랑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자 사람의 어떤 살아가는 목표라고 할까 그것을 상징하고 있어요. 가령, 어떤 아이가 산에서 나무를 한 짐 지고 돌아와요. 그러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많이 해왔다 칭찬해 주지요. 그러면 그 아이는 기뻐하겠죠. 칭찬을 듣기 위해 힘든 일을 다시 하러 갈 테지요. 대개의 사람이 그래요. 아버지나 어머니의 칭찬 하나를 생각하면서 사는 마음이 밑에 깔려 있어요. 그게 좀 더 성장해서는 그와 비슷한 보람이나 어떤 환희를 느끼기 위해 사는 거거든요. 소설 속에 황두표라는 주인공은 평생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동생한테 뺏기면서 살았어요. 글의 마지막,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하는 장면은 부모의 사랑이 끝까지 자기를 외면하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광적인 어리광이죠.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그런 생명력과 한이 깔려 있어요. 소설의 앞 부분에 보면 황두표의 막내아들 부부가 바다에 나가고 없는데, 황두표가 혼자 마당을 거닐지요. 황두표가 기거하는 곳과 막내아들 부부가 사는 건넌방은 풍경부터가 다르지요. 황두표는 사라져가는 삶이라면 빨랫줄에 걸려 있는 며느리의 속옷이라든지 브래지어는 막내 부부가 새롭게 움터가는 모습이고. 대비가 잘 되어 있는 대목이에요. 이 작품에 상을 주게 된 게 그와 같은 실존, 그것을 밀도 짙게 잘 묘파했다고 해서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왕따는 인간의 악마성이 근본 원인
―《해변의 길손》은 성경의 카인과 아벨처럼 동생에 대한 형의 질투에서 빚어진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이런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따로 있나요.
“인간에게 소유욕이라고 하는 욕망, 그것은 사랑을 밑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황두표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지금도 그런 어머니 아버지가 세상에 있어요. 살아 있는 자식보다 떠나가고 없는 자식에 대한 집착도 그런 것이지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살아 있는 자식은 못 견뎌 하는 것이고요. 사랑이고 재산이고 누구든지 독차지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와 같은 것은 형제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확대될 수 있거든요. 지금도 우리는 분단시대를 살고 있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고 저쪽은 아직도 억압된 사회제도 속에서 살고 있어요. 《해변의 길손》은 동전의 안과 밖 같은 사랑과 미움, 빛과 그림자를 형상화시킨 것이지요.”
―문학의 영원한 소재가 되는 사랑, 그 뒷면에는 왕따와 편애(질투)가 있어요. 선생님의 최근 소설 《피플 붓다》도 왕따에 대해 다뤘는데 요즘 10대들의 학교폭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저도 초등학교 다닐 적에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 태어난 곳은 승용차로 40분 더 들어가는 곳이에요. 그 고향땅이 옛날에는 섬이었어요. 대개 섬마을은 농토가 작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곳에서 아버지가 김 양식도 하고 열 마지기 정도의 농사를 지었어요. 말하자면 가난한 마을에서도 제일 부자였던 거죠. 다른 사람들은 논 한 마지기 가지고 있거나 그나마도 없거나 한 살림인데, 우리 집은 거기에 비하면 부잣집이었어요. 그러니까 가난한 집 아이들이 나를 미워했어요. 당시가 광복 직후라 이데올로기 싸움도 막 일어나고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전부 다 남로당 편을 드는 분위기였어요. 그들은 우리 아버지를 부르주아라 하고, 자기들은 프롤레타리아라 했어요. 아버지를 반동분자라고 손가락질했지요. 마을 아이들은 저를 반동분자 아들이라고 따돌렸어요. 요즘으로 치면 왕따였죠. 굉장히 힘들게 살았어요.”
―사춘기 때였고 굉장히 괴로웠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많이 외로웠죠. 하지만 그 외로움이 자양분이 되어 작가가 되었는지 모르죠. 요즘 청소년들의 왕따 그것은 굉장히 심각하고 슬픈 문제거든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잔혹성입니다. 동물들도 왕따를 시킨다는 말이 있죠. 《피플 붓다》에도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자비롭고 너그러운 것 같지만 한편은 동물이나 다름없지요. 인간이 아주 잔인합니다. 어떤 마을에 만만한 과부가 하나 있어요. 그러면 그 동네에 거의 모든 남자가 그 과부와 한 번씩 자 본다는 거예요. 아이들도 몸이 불편한 아이를 보면 보호해 주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그 아이를 학대를 해요. 그런 아이한테 가방을 들게 하며 너도나도 왕따를 시키는 게 지금 우리 아이들의 현상이에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왕따를 이겨내는 그것도 하나의 생명력입니다. 제 소설 《피플 붓다》에서는 그 아이가 따돌림으로부터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교육이 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이 아니고 성적 위주의 교육입니다. 과외 학원이라든지 수능이라든지… 성적지상주의가 왕따 문화를 만들고 있어요. 왕따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더 심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일진’이라는 것이 일본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에 낙제를 한 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뒷동산으로 데리고 가서 모두가 한 번씩 때려 죽여놨어요. 바야흐로 세계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런 때에 공부를 안 해서 낙제를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시대에 따라서 왕따 문화가 달라지는 거죠. 그것을 어떻게 잘 교육시키느냐,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정서를 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가해 학생의 부모들도 마찬가지고 피해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의 삶과 늘 같이 엮여서 사는 그런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가해 학생들의 경우,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그 자체가 놀이처럼 즐거움이 되어버리니까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만한 아이 하나를 돌려가면서 때리고 즐기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의 악마성입니다. 건전한 다른 놀이, 다른 학업이 즐거운 놀이가 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당하는 아이들은 그것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생명력을 길러야 합니다.”
문학은 자연친화적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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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에서 지원해 준 문학학교 앞에 선 작가 한승원. |
“지금 한국의 문인들은 너무 서울에 집중돼 있어요. 문인들이 자기 고향이라든지 시골로 간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자연친화적이어야 합니다. 도시의 속도감 넘치는 문학이면 너무 건조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가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작품을 위해서나 문학풍토를 위해서나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친화, 그것은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우주에 끼치는 해악을 막는 일입니다. 인간만을 위한 삶은 자연을 죽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개는 고향이라는 것이 시골이니까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시골에 사는 것은, 문학적인 면에서 단점은 거의 없어요. 불편한 것은 도시 문화와 단절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죠. 그렇지만 요즘은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봐요. 또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해 있습니까? 시골살이의 단점은 없습니다.”
―편리하고 세련된 도시 문화를 끊고 돌아오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반대하지 않던가요.
“작가는 외로워야 해요. 외롭지 않으면 문학이 나올 수가 없지요. 도시에서 빠른 속도감으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서울에는 고급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 문화와 단절된다는 기분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극복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집사람의 반대는 없었어요.”
―‘달 긷는 집’이라는 문학학교는 장흥군에서 지어준 것으로 아는데, 지자체들이 귀향 문인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나요.
“장흥군에서 저에게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는 편이지요. 대우를 해주기보다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작가와 공생하는 것이죠. 바닷가 앞에 문학산책로도 만들어주고 시비 공원도 조성해 주었어요.”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겠는데요.
“한 포구에,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쓸 무렵에 드나들었던 카페가 있습니다. 그분 사후에, 그분이 앉아 있곤 했던 그 카페의 그 의자에는 <이것은 헤밍웨이가 앉곤 한 의자입니다>라는 표찰이 붙어 있답니다. 그 카페에는 지금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간다고 해요. 그래서 한 작가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산다고 하는 것은 그 고향 고유문화의 한복판에 와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만큼 귀한 존재이기도 하지요. 오래된 마을에 가면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그 정자나무처럼 작가는 그윽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한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산다는 것은 그 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질문은 어떤가요. 소설은 캐릭터인데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소설적인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김대중과 노무현이죠. 김대중의 삶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합니다.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사람이고 많은 역경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노무현도 그런 드라마틱한 역경을 가진 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화적인 인물이에요. 민주화의 열망이 대단했을 때, 그때를 저도 살았는데,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신화》 연작이 그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형상화하여 더 좋은 소설을 쓰게 될지 모르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분단국가잖아요. 그래서 차기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원활하게 만들면서 화해해 나가는 그런 대통령이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이 해왔던 남북관계를 부드럽고 원활하게 하지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 불만족스러워요. 앞으로 될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 경제협력도 하고, 그리하여 북한이 중국하고 더 가까워지지 않고 우리 남쪽하고 더 친해지도록 하는… 여야 상관없이 그런 소통을 해줄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문학인들의 정치 참여나 SNS를 통한 정치 개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여한다는 점은 이로운 점이 있죠. 특히 문학인들은 사람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꿈꾸기에 그런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좋다고 봐요. 이외수나 공지영 작가의 SNS 발언도 저는 크게 비판하고 싶지 않아요. 꽃들로 비유한다면, 세상에 장미꽃만 있으면 안 되니까요. 호박꽃도 있어야 하고 벚꽃, 진달래꽃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외수나 공지영 작가를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작가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약간 뜬금없지만, 생업을 위해 소설을 쓰나요.
“제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제 존재의 이유이자 의무예요. 반드시 먹고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니까 그래서 쓰는 거예요. 생명체로서의 욕구 그것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이것은 얼마나 팔릴까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세속에선 많이 팔린 소설이 유명하다고 치니까.
“소설을 써서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독자가 읽어줄 것인가, 안 읽어줄 것인가는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이건 다산 선생의 말인데, 공자와 맹자의 생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자저서전유구일인지지(君子著書傳唯求一人之知·군자가 책을 써서 전하는 것은 다만 그 책을 알아주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라고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기보다 어떤 한 사람이라도 내 작가적인 의도를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예요. 그것이 작가의 올바른 태도일 테고요.”
―요즘 학문에서는 융합이라는 것이 대세입니다. 문학의 융합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어느 범위까지가 바람직할까요.
“아까 제가 자연친화적이라고 말했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포함이 될 텐데 우리의 삶이 너무 편협하게 나눠져 있어요. 가령 장사꾼은 장사꾼의 삶을 사느라고, 컴퓨터 공학은 공학대로 인문학의 장점에 대해 도외시하는 거예요. 융합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융합하겠다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의 몸뚱이를 보면 정말로 자연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어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문과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죠. 자연과학적인 삶과 인문과학적인 삶의 융합이 인간의 삶을 한층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라든지, 서울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든지, 바닷가로 간다든지 하는 것은 참다운 문학을 위해서 아주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작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소설을 쓰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에게도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라고 권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의 융합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봐야 할까요.
“요즘 이 시대의 삶은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할 수 있는 극치까지 간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는 굉장히 잔인한 거예요.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듯이 큰 기업체가 작은 기업체를 전부 다 먹어버리는 그런 자본주의 논리에만 맡겨버리는 것은 굉장히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것을 막는 것이 정치입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 문학, 역사, 철학들이 따돌림받는 세상은 무섭습니다. 앞으로 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이 인문학을 숭상하는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소설가는 한심한 영혼”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책 한 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 보통 사람들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거잖아요.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누구라도 자기 개인이나 가족사 이야기만으로도 큰 소설 한 편은 쓸 수 있죠.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소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죠. 가령 여자들은 누구든지 장편소설 한 권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좋은 예입니다. 그 작가는 그 소설 한 편 쓰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해요. 그 여자 주인공 자체가 대단한 소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여자들의 삶이 더 소설적이란 건가요.
“여자는 자궁을 가지고 있어요. 자궁은 둥지이고, 우주이고 뿌리예요. 한 가정을 끌고 가는 여자는 그 가정의 우주이자 뿌리지요. 가령 서울 한복판에 시장이 있습니다. 그 시장에 모든 것이 모여듭니다. 그게 그 세상의 뿌리예요. 시장은 여자로 치면 자궁 같은 거죠. 한 여자가 한 시대를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것들, 그것을 이야기하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죠.”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매우 페미니즘적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노자가 얘기한 곡신(谷神)이란 말이 있습니다. <곡신은 현빈(玄牝)이고 현빈의 문은 천지근(天地根)이다.> 현빈은 그윽한 암컷을 말하고, 그윽한 암컷은 우주의 뿌리라는 말입니다. 우주를 만드는 뿌리는 자궁(谷神)이라고 말한 노자야말로 페미니스트죠.”
―시대가 부러워할 가족 작가(아들과 딸이 작가) 집안인데 가문의 영광 아닌가요.
“글쎄요. 제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이셨어요. 저는 그분의 영향으로 소설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전에 말한 우주의 뿌리처럼 한 아빠라는 소설가가 만들어놓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았을 터입니다. 나는 어부이면서 농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애들은 소설가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소설가를 정의하라고 하면.
“소설가는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 그러한 세상과 허공에 뿌리를 내려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죠. 현실적이고 상상적인 그 모든 세계에 뿌리를 내려 새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스키가 소설가를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이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고기를 사먹고 포도주를 사먹고 빵을 사먹는 것이 아니라 하얀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다가 빵이라고 쓰고 포도주라고 쓰고 종이라고 써서 그 종이를 먹는구나.> 그래서 한심한 영혼이라고 한 거죠. 현실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현실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 하고 있는 삶을 교정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설가이고 소설가의 역할이죠.”
―남을 교정해 주자면 타인을 바라보는 남다른 혜안을 길러야 하지 않나요.
“승려나 목회자가 도를 닦으며 살 듯, 소설가도 도 닦듯이 삶을 살아야 해요. 스님들이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듯이 소설가들도 탐욕을 버리고 그 탐욕에 젖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창녀처럼 사는 여자의 이야기라든지 바람둥이처럼 사는 남자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쓰는 거예요. 더 잘사는 삶,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소설가죠. 그러니까 한심한 영혼이지만 그 영혼이 꿈꾸는 세계가 아름답고 예쁘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 쓰고 싶은가요.
“예수도 쓰고 싶고 석가모니도 쓰고 싶고 그래요.”
―구도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가요.
“그렇죠. 헤르만헤세가 쓴 《싯다르타》도 구도자의 이야기예요. 제가 쓴다면 그보다 더 좋게 쓰고 싶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소설을 쓸 건가요.
“젊어서는 소설을 쓰는 일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줄 한 줄,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지금은 즐기면서 써요. 다시 태어나면 아마 더 잘 쓰는 소설가가 되겠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