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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탐구] 맛없는 國産 맥주의 비밀

‘안 마시면 어쩔래’ 배짱의 국내 맥주회사들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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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맥(麥)자의 맥주에 보리 적게 넣고, 생맥주엔 효모 없어
⊙ “국산 맥주 5, 6년 전보다 맛 떨어져…”(맥주업체 퇴직자)
⊙ “하이트를 포함한 모든 맥주의 맥아 함량은 제조 레시피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하이트 측)
⊙ 중소업체 대중주 시장진출은 맥주시장 볼륨 키울 좋은 기회
세계 맥주 전문점 와바.
  “국산 맥주는 왜 맛이 없지?”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출장을 갔다온 이라면 술좌석에서 으레 한 번씩 투정 부리듯 내던졌을 법한 말이다. 외국 물 좀 먹고 왔다고 괜히 폼 잡으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젠 누구나 잘 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중에도 “한국 맥주는 좀 밍밍하다”고 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을 테니 말이다. 이들 외국인 중에는 심지어 “한국에는 맥주가 한 종류밖에 없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오비와 하이트에서 나오는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모두 똑같이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왜 그럴까.
 
  세계 22개국 100여 개 브랜드의 맥주를 판매하는 세계 맥주 전문점 와바(WA BAR)의 이효복(李曉馥) 대표는 “국산 맥주는 모두 미국 스타일의 라거(Lager) 타입이라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마셔 본 외국인들로서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스타일의 맥주는 바디감(body感)이 드라이하고 탄산이 적당히 들어가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 대신 유럽 스타일 맥주의 특징인 쌉싸름하면서 묵직하고 향이 풍부한 맛은 없다고 한다.
 
 
  맥아 대신 값싼 부재료 많이 써
 
국내에 들어와 있는 세계 유명 맥주들. 수입맥주 시장은 꾸준히 신장하고 있다.
  국내 하우스 맥주 업체에 종사하는 브루마스터(Brew Master·맥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제조 공정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국산 맥주는 맛이 싱거운 것도 문제지만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출시돼 각자 입맛에 맞는 제품을 골라 즐길 수 있는데 한국은 일반 유통이 가능한 업체가 두 회사밖에 없는 데다 그나마 한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어 소비자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맥주 관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좀 더 구체적이다. 이들은 “국산 맥주의 맛이 밍밍하고 특별한 향이 없는 것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주원료인 맥아(麥芽·엿기름) 대신 옥수수, 쌀, 타피오카 등의 부재료를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맥주에 사용되는 맥아는 대부분 수입산으로 옥수수나 쌀에 비해 단가가 4~5배 정도 비싸다는 것이다.
 
  김태영(金泰榮)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과장은 “맥주의 기본은 맥아, 홉, 효모, 물”이라며 “이 네 가지 원료의 배합이 적절치 않으면 맥주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그의 보충 설명이다.
 
  “맥주는 발효주입니다.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당화제인 맥아를 충분히 사용해야 하죠. 맥아를 너무 조금 써서 발효가 안될 경우 효소제를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맥주 특유의 풍미가 없지요. 깊은 맛도 안 나고요.”
 
  그런가 하면 주류 관련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인사는 “국내 업체의 제조 공정에 문제가 있다”며 “맥주의 발상지는 유럽인데, 제조 기술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현지화 명목으로 많이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이 인사는 “현직에 있는 사람은 말하기 어려울 테니 과거 오비나 하이트에 근무했던 이들에게 확인해 보라”고 조언까지 해 주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양사 퇴직자 몇 명과 접촉,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이들은 모두 ‘증언’을 거절했다. “맥주 원료 문제나 제조 공정은 기업 기밀이라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퇴직 후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도 있었고, “향후 5년 동안 회사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함구한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퇴직했기 때문에 어렵다”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국산 맥주가 맛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요즘 맥주 맛은 5, 6년 전보다 더 못한 것 같다. 맛이 떨어져도 불만 없이 사 먹는 소비자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기자는 국산 맥주 맛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오비와 하이트 관계자를 제외한 다수의 맥주 관련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 Brewery·소규모 양조장) 설비업자, 브루마스터, 수입 맥주 전문 판매업자 등이다.
 
 
  독일, 법에 따라 맥아 100% 사용
 
하이트와 오비는 3조5000원의 국내 맥주 시장을 양분해 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 맥주제조 시설이라든가 기술은 어느 정도 평준화됐다. 맥주는 보통 담금-발효-저장-여과-병입의 공정으로 제조된다. 그런데도 맛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뭘까.
 
  우선 맥주의 기본 구성 물질인 맥아, 홉, 효모, 물의 질이 달라서다. 이들 기본 구성물 외에 부재료가 첨가된다면 그 종류와 양에 따라 맛은 더욱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외에 여과 기법이라든가 숙성 기간과 방법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가 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산 맥주가 외국 맥주, 특히 정통 유럽식 맥주와 맛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주재료인 맥아를 적게 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최근에 출시된 하이트의 맥스는 예외다. 맥스는 100% 맥아를 사용하고 있다.
 
  맥주 강국들은 맥아의 함량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맥주 역사가 500년이 넘은 독일은 16세기에 정한 맥주 순수령(純粹令)에 따라 맥아를 100% 사용하도록 의무화했고, 일본은 맥아 함량이 66.7% 이하일 경우 맥주라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으면 맥주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국산 맥주의 맥아 함유량이 10%, 15% 수준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맥아 함량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맥주 맛이 아니라 거의 물맛이 난다”며 “국산 맥주의 맛으로 보아 적어도 30% 이상은 함유돼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한다.
 
  제품별 맥아 비율에 대해 오비와 하이트 측에 문의했으나 양사가 모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오비 측은 “제품의 특성과 종류에 따라 맥아 비율은 70~90% 이상 사용하고 있다”고 뭉뚱그렸고, 하이트 측은 “하이트를 포함한 모든 맥주의 맥아 함량은 제조 레시피이므로 공개할 수 없으나 맥스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라고만 주장했다.
 
  결국 두 회사의 제품군 중 맥아 함량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두 개뿐이다. 그중 하나는 오비가 벨기에의 AB 인베브(Inbev)와 라이선스 기술 계약으로 출시하고 있는 밀 맥주 호가든이다. 오비가 라이선스 계약을 하기 전부터 국내에 수입됐던 이 맥주는 맥아와 밀의 비율이 50 대 50이다. AB 인베브는 호가든(Hoegaarden) 외에 버드와이저(Budweiser), 벡스(Becks), 스텔라 아루투아(Stella artois)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맥주 회사다.
 
  나머지 하나는 하이트가 출시할 때부터 자신있게 밝힌 100% 맥아 맥주 맥스다. 전문가들도 이 맥주의 맥아 함량이 100%인 것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시설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동안 왜 만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산 생맥주는 효모가 없다
 
세계 22개국 100여 개 브랜드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 세계맥주 전문점 와바의 이효복 대표.
  맥주 제조의 시작은 맥아를 분쇄해 식혜처럼 담그는 당화 과정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맥즙을 적당한 온도로 냉각시킨 다음 효모와 홉을 넣고 발효시킨다. 그리고 숙성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는 여과 작업 후 케그(keg·맥주 저장용 통)에 담는 것이 생맥주이고, 60℃ 온도의 물에 15분 동안 저온 살균해 판매 용기에 담는 것이 일반 맥주다. 일반 맥주의 경우 저온 살균 과정에서 효모가 모두 제거된다. 이것이 정통식 맥주의 제조 과정이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제조 공정은 이와 약간 다르다. 일본과 한국은 저온 살균 과정 대신 마이크로 필터링으로 생맥주용이건 일반 맥주용이건 한 번 더 여과를 한다. 이렇게 하면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효모가 모두 제거된다. 이 기술은 일본 맥주 회사가 먼저 도입해 ‘비열 처리로 신선도를 높인, 효소가 살아 있는 맥주’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한국 맥주 회사들은 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했다고 한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마이크로 필터를 거친 생맥주에는 과연 효모가 살아 있을까. 물론 이 우문(愚問)의 정답은 ‘살아있지 않다’이다. 그렇다면 생맥주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필터링으로 효모를 완벽하게 제거했다면 열처리한 맥주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비열처리 맥주는 열처리 맥주와 효과면에서 아무것도 다를 것 없는 그야말로 고도의 상술에서 나온 전략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아사히 맥주는 한국 시장을 겨냥해 색다른 CF 광고를 방영 중이다. 유리컵에 가득 따른 맥주를 마시면 링 모양의 거품이 컵 안에 3단계로 남는다는 내용이다. 이 광고는 한국 맥주는 거품이 없다는 사실을 은근히 건드리면서 상대적으로 아사히 맥주의 장점을 한껏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맥주의 꽃은 신선하고 부드러운 크림 타입의 거품이라는데, 국산 맥주는 왜 거품이 풍성하지 않을 뿐더러 빨리 사라질까.
 
  웨스틴조선호텔이 운영하는 하우스 맥주 오킴스브루이의 오진영(吳振榮) 브루마스터는 “마이크로 필터링 과정에 거품을 일으키는 고분자 단백질 같은 미세한 성분들이 여과돼서 그럴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맥주의 거품은 특유의 맛도 있지만 맥주가 햇빛이나 산소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맥주가 햇빛과 산소에 노출되면 산화가 쉽게 일어나 신선도가 떨어지거든요.”
 
  하이트 측은 “국내 소비자들의 경우 거품을 형성하는 물질을 여과하지 않으면 맥주가 혼탁하다고 클레임을 걸 확률이 높아 깨끗하게 제거하고 있다”고 했다. 오비 측은 “국내 대다수 맥주 소비자들은 거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는 잔을 돌리는 문화가 있어서 잔에 거품이 남으면 깨끗해 보이지 않고 받은 잔에 거품이 많으면 맥주 양이 적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산 맥주는 스타일이 하나
 
하우스맥주 설비 업체 (주)해미르의 김춘경 소장.
  “500 두 잔에 치킨 한 마리 주세요.”
 
  한국 소비자들은 생맥주 집에 가면 대개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한다. “오비 생맥주 주세요”라거나 “하이트 생맥주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자주 가는 생맥주 집이라도 그곳에서 파는 제품의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맛의 차이가 없어서다. 국산 맥주는 엄연히 브랜드가 다르고 제조 회사도 같지 않은데 왜 맛의 차이가 없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재료나 제조 공법이 아닌 맥주의 스타일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맥주에서 스타일은 한 집안의 뿌리이며 대를 이어 주는 가계(家系)와 같다. 한 집안에서 퍼져 나간 자손들은 생김새는 물론 성격이 유사한 것처럼 맥주도 스타일이 같으면 맛이나 향이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맥주는 발효 시 사용하는 효모에 따라 크게 에일(Ale) 스타일과 라거(Lager) 스타일로 나뉜다. 에일 스타일은 발효 중 표면으로 떠오르는 효모로, 18~21℃ 정도의 실내온도로 발효시키는 영국 전통식 맥주다. 위에 뜨는 효모로 발효된다고 해서 상면(上面)발효 맥주라 부르기도 한다. 이 스타일의 맥주는 발효 중에 발효조를 보면 표면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에일 스타일 맥주는 맛과 색이 진하고 거품이 많으며 과일 향이 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네스, 쉬에라 네바다, 호가든 등이 이 가계의 맥주다.
 
  라거 스타일은 발효 중 밑으로 가라앉는 효모로, 7~15℃의 저온으로 발효시키는 맥주를 말한다. 라거 스타일은 옥수수, 쌀 등의 부가물을 넣고 안 넣느냐에 따라 다시 미국식 라거와 영국식 라거로 나뉜다. 부가물을 넣는 미국식 라거는 맛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으나 깊은 맛이 없고, 순수 원료만으로 제조하는 유럽식 라거는 짙은 맥아 맛이 나고 홉 향이 난다.
 
  미국식 라거의 대표적 맥주는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Coors) 등이다. 전 세계 90%의 맥주가 이 유형에 속한다. 국산 오비와 하이트에서 생산하는 모든 맥주도 미국식 라거 스타일이다.
 
  유럽식 라거의 대표적 맥주로는 필스너 우르겔(Pilsner urguell), 뢰벤브로이 (L쮤wenbr쮙u), 에딩거(Erdinger) 등을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때 미국식 라거 스타일 맥주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영국식 에일 스타일 맥주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영국과 미국에서 에일 스타일 맥주를 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CAMRA(Campaign for Real Ale)라 불리는 이 운동 덕분에 에일 스타일 맥주들이 많이 살아났고, 소비자들은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맥주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중소업체 키워야 경쟁력 생겨
 
국내 하우스맥주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브루마스터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주)로젠브로이의 윤정훈 브루마스터다.
  현재 맥주 선진국들에서는 라거 스타일과 에일 스타일 맥주들이 골고루 출시되고 있다. 중소업체부터 대기업까지 맥주 회사들의 규모가 다양하고, 또 대형 맥주 회사라 해도 소수의 마니아가 찾는 에일 스타일 맥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두 회사는 오로지 미국식 라거 스타일 맥주만 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다른 회사 다른 브랜드의 맥주인데도 맥주 맛이 똑같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Micro Brewery·일명 하우스맥주)은 일반 유통을 할 수 없도록 묶어 놓은 주세법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 못지않게 세계적인 맥주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일본은 중소업체들도 맥주를 제조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상황.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넓어서 좋고,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발전할 수 있어서 좋은 구조라고 한다.
 
  소규모 양조장 설비 업체 (주)해미르의 소장이자 브루마스터인 김춘경(金春卿)씨는 “현행 주세법은 겉으로 보기엔 공평한 것 같지만 속을 보면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업체에 불리한 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저희 같은 중소업체가 일반 유통이 가능한 맥주 제조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500ml짜리 370만 병 분량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1850kL의 발효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정도의 설비를 갖추려면 수백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죠. 돈을 구해 설사 갖춘다 해도 그만큼의 분량을 시장에 팔 수 있는 유통망이 없으니 이건 대기업이 아니면 접근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세는 규모가 크건 작건 똑같이 원가 대비 72%가 부과되고 있어서 영세업자들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편입니다.”
 
  한국의 주세는 과세표준이 출고가격이 되는 종가세(終價稅)다. 때문에 대량생산을 하면 고정비 분산으로 출고가격이 낮아지나 소규모로 생산하게 되면 적은 생산량에 대하여 고정비를 배분해야 하므로 출고가격이 높아진다. 그런데다 재료는 물론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비와 직원들 월급까지 제조원가에 포함된다. 세금을 최대한 줄이려면 많이 제조해 많이 팔아야 하는 구조라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맥주를 만들 수 없다. 교묘한 시장접근 제한법이다. 이 과정에 맥주 제조회사들의 로비가 작용하지 않았나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국내에 하우스맥주 집이 생기고, 브루마스터라는 직업이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가 주세법을 완화해 소규모 맥주 제조 판매 허가를 내주면서다. 당시 정부는 하우스맥주 업체의 규모를 발효조 5~25kL 이하로 제한했고, 판매 영역을 동일법인 매장에 한하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일반유통은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예고 없이 갑자기 문을 열어 준 상황이라 주세법을 꼼꼼히 챙겨 보지 않은 채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많은 이들이 세금폭탄으로 나가떨어졌다. 한때 120여 개 업체가 난립했으나 지금은 50여 개 업체로 정리가 됐다고 한다.
 
  김씨는 “국내 맥주산업이 발전하려면 중소업체가 제조한 맥주도 일반유통할 수 있도록 법이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비와 화이트가 주세법의 보호막 속에 경쟁 없는 시장을 지배해 온 동안 중국과 일본은 치열한 경쟁 속에 관련 산업까지 성장하는 개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필요한 하우스맥주 제조 설비는 중국이 도맡아 제조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브루마스터 윤정훈(尹禎焄)씨는 “국내 업체는 경쟁 없는 시장에서 너무 오래 안주해 온 탓인지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 맥주 양조자 과정에 한국인 수강생 아예 없어
 
  윤씨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주립대에서 호텔 매니지먼트와 호텔 행정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에서 맥주 양조자 과정을 밟았다. 데이비스대 맥주 양조자 과정은 1~2년 코스로 발효공학에서부터 양조 설비 기술까지 맥주인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배운다. 맥주 업계에 정평이 나서 이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맥주 업체 직원들이 수없이 다녀간 곳이다.
 
  그는 재학 중 아사히, 칭다오, 타이거 등 아시아 유명 회사들 직원을 여럿 만났다. 하지만 한국 맥주 회사 직원은 그가 재학 중일 때는 물론 그 후에도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당시 그는 “한국 맥주 회사들은 직원 재교육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학교에 직원을 보낸 대부분의 맥주 업체는 오비나 하이트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앞서 가고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도 업계 동향을 체크하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등 시장을 리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 업체는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죠.”
 
  데이비스대 양조자 과정을 마친 후 윤씨는 영국 런던에 있는 맥주길드에서 양조사 시험(AME)에 합격했다. 이후 미국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맥주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행사는 전 세계 크고 작은 업체가 92종류, 6000여 브랜드를 출품하는 최대 맥주 경연대회. 그는 이 대회에서도 한국 업체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4월 시카고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는 미얀마의 맥주 회사가 금메달을 수상했다고 한다.
 
  “한국 업체들은 연구개발(R&D)보다 광고와 마케팅에만 신경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날 기자는 윤씨를 비롯해 국내 하우스맥주를 대표할 만한 업체들의 브루마스터 5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그중 한 브루마스터는 “지인이 현재 국내 맥주 업체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실제로 연구개발보다는 마케팅에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두 맥주 업체의 R&D 규모가 궁금했다.
 
  하이트 측은 현재 연구 인력이 20명이며, 연간 투자 금액은 21억8000만원이라고 밝혔다. 또한 재교육을 위해 독일과 덴마크 등지에 있는 전문 양조 교육기관에 정기적으로 직원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비 역시 미국과 유럽에 있는 맥주 전문 교육기관에 많은 인력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인베브가 전 세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200여 종의 제품생산 기술력과 노하우에 대한 기술공유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수입맥주 시장 신장세
 
  국내 맥주시장은 3조5000억원대. 이 중 수입맥주와 하우스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3%가 채 되지 않는다. 결코 작지 않은 이 시장을 오비와 하이트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하이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트의 지난해 매출은 1조175억원, 영업이익은 1825억원이다.
 
  두 회사의 대표 상품은 하이트와 카스다. 지난해 하이트와 카스는 각각 8509만 상자(1상자=500mL 20병)와 6347만 상자를 팔았다.
 
  최근 들어 국산 맥주 판매량은 줄고 있는 상황. 지난 7월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산 맥주 출고량은 2008년 201만6409kL에서 2009년 196만1568kL로 줄어들었다. 전년 동기 1분기 출고량도 2009년 43만2998kL에서 2010년 38만8775kL로 10.2% 감소했다.
 
  반면 수입맥주는 2005년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08년 4만2141kL에서 2009년 4만949kL로 잠시 주춤했으나 전년 동기 1분기에서는 3.5% 증가했다.
 
  국내 최대 세계맥주 전문점 와바의 이효복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 수입맥주 시장은 지속적으로 신장해 왔다”며 그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수입맥주의 판매 추이는 우리 국민의 해외 나들이 족적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수입 초창기에는 미국으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많이 간 까닭에 밀러가 많이 나갔고, 그 다음에는 멕시코의 코로나와 네덜란드의 하이네켄이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동남아 여행이 붐을 이뤘던 1990년대 초에는 필리핀의 산 미구엘이 잘 팔렸습니다. 지금은 유럽 맥주가 강세를 띠고 있고요.”
 
  와바는 직영점과 가맹점 포함, 전국에 30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이 매장에서 판매되는 맥주 순위를 종합 집계해 30위까지 매월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데, 최근 7개월 동안 1위는 호가든이었고, 2위는 와바둔켈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와바둔켈은 와바가 개발한 맥주다. 이효복 대표가 레서피를 작성해 독일의 유명 맥주회사에 제조 의뢰한 후 수입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설비를 장만해 직접 제조하고 싶었는데, 주세법상 쉽지 않은 일이어서 독일 업체에 의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맥주는 이 대표가 만든 브랜드지만 수입맥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반시장에도 유통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와바둔켈은 와바 매장 이외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에도 들어가는데, 맥주 부문 판매 4위를 달리고 있다. 덕분에 와바 전체 매출도 신장됐다. 와바는 2008년 전체 매출 1050억원에서 지난해 1155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목표액인 1300억원을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는 “하루빨리 주세법이 완화돼 유럽처럼 집에서도 맥주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럽 맥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다양하고 독특한 가양주 문화 덕분이라는 것이다.
 
 
  일본 맥주의 원동력
 
  지난 8월 12일 기획재정부는 대중주의 제조 기준을 낮추는 주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만난 브루마스터들은 “더도 말고 딱 일본처럼만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은 현재 연간 60kL를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이면 일반유통을 허락하고 있다. 이 같은 개방으로 일본에는 4대 메이저(기린, 아사히, 산토리, 삿포로) 외에도 전국 지역에 270개의 지역맥주사가 존재한다. 이들 지역맥주사는 계절에 따른 맥주를 출시할 정도로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맥주의 원동력은 이런 다양성에서 나온 것일 테다. 한편 이번 주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오비와 하이트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그들의 공식적인 설명은 그랬다.
 
  “우리는 중소업체 진출에 대해 맥주시장 볼륨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기존 양강 구도하에서는 상대적으로 레귤러 맥주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국내 제조 프리미엄 맥주에 대해 소비자들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만약 새롭게 진입한 중소업체들이 차별화된 다양한 맥주를 출시할 경우, 국내 제조 맥주에 대한 소비자 인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주세법이 바뀌어 하우스 맥주의 시판도 허용되면 오비와 하이트가 훨씬 덜 팔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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