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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 정가 소식] 保守의 칼을 높이 쳐든 女戰士들

진보·左派는 미국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이상돈    sdlee5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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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자들은 항상 미국을 적대시한다. 이들은 반역자거나 바보 천치들이다』(앤 코울터)
보수 논객들의 약진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이념 대립이 심해지자 특정한 관점에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필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論客(논객)」이라고 부르는데, 이 호칭은 어느 정도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兩非兩是論(양비양시론)이나 펴는 기회주의자들에 비하면 이런 사람들이 정직하고 진솔하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진실에 근거해 있고, 논리적이며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미국 정치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保守(보수)논객들의 약진이다. 「폭스뉴스」의 빌 오라일리, 「라디오 정치 토크쇼의 황제」인 러시 림보,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폭스뉴스」에 출연하고 있는 숀 해니티 등이 대표적인 保守논객이다. 원로급으로는 「내셔널 리뷰」誌(지)를 창간한 윌리엄 버클리 2세, 「이글 포럼」의 대표인 필리스 슐라플라이, 「신디케이트」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을 들 수 있다.
 
  미국 保守진영의 특이한 현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여성 논객들의 활약이다. 필리스 슐라플라이 외에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앤 코울터,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는 로라 잉그레이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保守의 칼을 높이 든 「女戰士(여전사)」인 셈이다.
 
 
  여섯 아이의 어머니 필리스 슐라플라이
 
男女同權 헌법수정案에 반대한 保守 원로
필리스 슐라플라이.
  필리스 슐라플라이는 윌리엄 버클리 2세와 더불어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 이념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24년 미주리州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 대공황이 닥친 탓으로 어렵게 성장했다. 아버지가 실직하자 어머니가 도서관 사서와 교사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슐라플라이는 군수공장에 다니면서 세인트루이스에 소재한 워싱턴 대학을 다녔다.
 
  全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그녀는 3년 만에 19세 나이로 대학을 졸업했고, 이듬해에는 하버드에 진학해서 1년 만에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슐리플라이는 로스쿨을 가고 싶었지만 당시 하버드 로스쿨은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
 
  변호사인 남편을 만난 뒤 여섯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슐라플라이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슐라플라이는 1962년에 「반향이 아닌 선택」이란 책을 펴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수백만 권이 팔렸는데, 1964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보수주의 철학을 뒷받침했다.
 
  1970년대 들어 여성단체가 주도한 男女同權(남녀동권) 헌법수정案이 의회를 통과하자 슐라플라이는 이에 반대하는 전국적 운동을 벌였다. 슐라플라이는 『男女同權 헌법수정안이 확정되면 여성을 보호하는 법제가 사라질 것이고,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고 가정이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슐라플라이는 『미국 여성이 압박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女權단체의 주장을 「세기의 사기」라고 불렀다. 슐라플라이의 반대운동에 힘입어서 男女同權 헌법수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이글 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이끌어 오고 있으며, 左派(좌파)운동을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썼다.
 
  女權주의자들이 『슐라플라이가 법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자, 슐라플라이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 로스쿨에 입학해 1978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1993년에 사망한 남편과 44년간 偕老(해로)했으며, 여섯 자녀를 두었다. 다섯째인 앤드루는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는데, 최근에 左편향된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대항하기 위해서 「컨서바피디아」(conservapedia.com)를 창설했다.
 
 
  레이건 保守혁명의 증인, 페기 누넌
 
레이건의 스피치 라이터
페기 누넌.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은 레이건 대통령과 41代 부시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를 지냈다. 그녀의 문체는 무척 유려하고 상큼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하고 감탄할 정도다.
 
  195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누넌은 뉴저지에 위치한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을 졸업하고, CBS 방송에서 뉴스 대본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1984~1988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40주년 기념 연설과 「스페이스 셔틀 챌런지」號(호) 폭발사고 연설은 페기 누넌이 기초한 것이다.
 
  1988년 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조지 부시 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내 입술을 읽으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라고 한 연설문 또한 누넌이 작성한 것이었다(부시는 이 유명한 약속을 어기고 「부유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도입해서 1992년 선거에서 패배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자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좀더 친절하고 점잖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 구절 역시 누넌의 작품이다.
 
페기 누넌 저서「배역이 왕이었을 때」,「힐러리를 반대한다」.
  백악관을 떠난 누넌은 책을 여러 권 썼다. 1990년에 나온 「혁명에서 내가 본 것들」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쓴 保守혁명에 대한 회고록인데,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8년에는 「단순하게 말하기」란 자기 표현법에 관한 책을 냈다.
 
  2000년 초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의원으로 출마하려고 하자 누넌은 「힐러리를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역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서 누넌은 『스스로 이룩한 것이 없으며 각종 비리를 일으킨 힐러리는 公的(공적)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넌은 2001년 레이건 대통령의 일대기인 「배역이 왕이었을 때」를 펴냈다. 레이건의 생애와 인간미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이 책은 한 편의 敍事詩(서사시)와 같다. 2003년에는 9·11 테러를 보고 느낀 참담한 심정을 그린 「심장, 십자가 그리고 국기」를, 2005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는 「요한 바오로 大帝(대제)」를 펴냈다. 가톨릭 신자인 누넌은 1985년 한 변호사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1989년 이혼했다.
 
 
  「쓸모 있는 바보들」의 저자 모나 채런
 
美 진보의 반역적 행태 폭로
모나 채런.
  국내에 번역·출판된 「쓸모 있는 바보들」의 저자 모나 채런은 컬럼비아 대학의 바너드 칼리지와 조지 워싱턴 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호사 업무보다는 정치평론가를 희망한 채런은 「내셔널 리뷰」誌에서 편집을 담당하다 1984년 백악관에 들어가서 홍보실에 일했다. 1987년부터는 「신디케이트」 칼럼니스트로 활약했고, 1988년부터 시작된 CNN의 주말 정치 토크쇼인 「캐피탈 갱」의 고정 패널리스트로 널리 알려졌다.
 
  채런은 2003년 진보左派가 조국인 미국을 얼마나 헐뜯고 적국을 이롭게 했나를 폭로한 「쓸모 있는 바보들」을 출간해서 좋은 평을 얻었다. 2004년에는 진보左派가 추진한 국내 정책이 어떻게 미국을 망가뜨렸나를 파헤친 「좋은 일 하는 자들」을 펴냈다. 유대인인 채런은 변호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으며, 유대인이 공화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모나 채런의 저서「쓸모 있는 바보들」.
  변호사이며 정치평론가인 바버라 올슨은 9·11 테러 당시 국방부에 추락한 아메리칸 항공 77편에 타고 있다가 희생당했다. 그녀는 원래 전날 LA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9월11일이 남편인 테드 올슨 법무차관의 생일이어서 출발을 하루 늦춘 탓에 희생되고 말았다. 올슨은 『비행기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빨리 하강하고 있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 주고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1955년생인 올슨의 원래 이름은 바버라 케이 브래처였다. 텍사스州 휴스턴에서 태어난 그녀는 휴스턴에 위치한 세인트 토머스 대학을 졸업했다. 1989년에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카르도조 로스쿨을 졸업해서 변호사가 된 올슨은 법무부에서 검사로 잠시 일했고,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한 의회 특별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올슨은 힐러리가 대단히 사악하고 간교한 인간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자신의 조사 경험을 토대로 「後患(후환)」(Hell To Pay: 힐러리가 자신을 거역하는 사람은 『지옥 같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이란 제목의 책을 1999년에 펴냈다.
 
 
 
힐러리의 사악함을 공격한 바버라 올슨

 
클린턴 부부의 협잡 고발
바버라 올슨.
  9·11 테러로 사망할 당시 올슨은 두 번째 책 「최후의 날」의 출간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 이 책은 클린턴과 힐러리가 임기 마지막 순간에 테러범, 경찰관 살해범, 거물 사기꾼 등에게서 정치헌금을 받고 사면해 주고, 백악관의 가구를 무단으로 반출해 나가는 등 불법적이고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고 고발한 것이었다. 올슨이 사망하자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앞 다투어 주문하는 바람에 책이 나오기도 전에 아마존 베스트 셀러 1위를 몇 주 동안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가톨릭 신자인 올슨은 1996년 이혼 경력이 있는 저명한 헌법 변호사 테드 올슨과 결혼했으나 둘 사이에 자식은 두지 않았다. 다정했던 이 부부는 워싱턴 근교 북부 버지니아의 저택에 공화당 정치인과 보수주의 동료들을 자주 초대해서 파티를 열었다. 올슨의 모교인 카르도조 로스쿨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했고, 保守 법률가의 모임인 「연방주의자협회」는 그녀를 기리는 기념 강연을 매년 열고 있다.
 
바버라 올슨의 저서「후환」,「최후의 날」.
 
  「保守의 디바」 앤 코울터
 
美 진보를「반역자들」이라고 공격
앤 코울터.
  국내에도 번역된 「중상모략」 등 「뉴욕타임스」 1위를 달린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출간한 저술가이며 정치평론가인 앤 코울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保守 여전사이다. 「타임誌」는 2005년 4월25일자 커버 스토리에서 그녀를 「保守의 디바」라고 소개했다.
 
  코울터는 1961년에 뉴욕市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적이며 종교적인 변호사였다. 코울터는 코넬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 로스쿨에 진학해서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코넬의 진보 성향을 못마땅하게 여긴 그녀는 「코넬 리뷰」라는 保守성향의 학내 간행물을 창간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미시간 대학 로스쿨 재학 시에는 保守 법률가 모임인 「연방주의자협회」의 미시간 지부를 창설하는 일에 간여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서기를 지낸 후 잠시 로펌에서 일했다. 1995년 들어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석을 차지하게 되자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일했고, 保守성향의 공익 로펌에 가담해서 클린턴을 상대로 한 性희롱 소송을 다루었다.
 
  케이블 뉴스를 시작한 「MSNBC」가 코울터를 정치평론가로 고용함에 따라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98년 첫 저서인 「중죄와 경죄」를 펴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코울터는 클린턴은 탄핵을 당하기에 충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002년에는 「뉴욕 타임스」 등 진보 언론의 여론 조작을 파헤친 책 「중상모략」을 펴냈다. 保守성향의 책은 전혀 소개하지 않는 「뉴욕 타임스」는 코울터의 책을 북 섹션에 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울터의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연속 7주 동안 올라서 뉴욕 타임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2003년에는 진보세력을 아예 반역자 집단이라고 몰아 세운 「반역」을 펴냈는데, 역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4년에는 자신의 칼럼을 모은 「진보파에게 어떻게 말할까」를 냈고, 2006년에는 진보파의 反(반)종교 성향을 비난한 「無神(무신)」을 펴냈다.
 
  코울터는 사람들에 의해 膾炙(회자)되는 자극적인 名句(명구)를 많이 남겼다. 9·11 테러가 나자 「우리는 그들의 나라에 침입해서 지도자들을 죽이고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미국을 적대시한다. 이들은 반역자이거나 바보 천치들이다」고 쏘아 붙였다. 保守派들은 코울터의 이런 표현에 대해 속 시원하게 느끼지만 진보주의자들에게 코울터는 「公敵(공적) 1호」인 셈이다.
 
  진보세력은 코울터의 책에서 잘못되거나 왜곡된 부분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코울터의 표현이 과도한 면이 있기 때문에 윌리엄 버클리 2세 같은 保守 원로들은 다소 걱정스러운 충고를 했다. 하지만 표현이 과도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코울터가 제기한 문제점은 용기 있고 정확한 것이어서, 저명한 법률가인 리처드 포스너 연방항소법원 판사는 코울터를 「대단한 公的 지식인」이라고 지칭했다.
 
  코울터의 부모는 가톨릭 신자이나 코울터 자신은 개신교인이다. 독신인 그녀는 책과 강연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맨해튼에 자리 잡은 고급 콘도미니엄에 살고 있고, 플로리다 팜비치에 집이 있다.
 
 
 
대학의 左편향 바로잡은 로라 잉그레이엄

 
힐러리의 위선 파헤치는 토크쇼의 여왕
로라 잉그레이엄의 저서「힐러리 트랩」과「권력을 국민에게」.
  로라 잉그레이엄은 라디오 정치 토크쇼의 保守 여왕이다. 그녀가 진행하는 토크쇼는 300개 이상의 지역 방송국을 통해 미국 전역과 해외 주둔 미군에 들려지고 있다. 1964년에 코네티컷의 중산층에서 태어난 잉그레이엄은 다트머스 대학을 1985년에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당시 창간된 지 얼마되지 않은 「다트머스 리뷰」의 편집을 담당했다. 「다트머스 리뷰」는 左편향된 학내 신문 「다트머스」에 대항하기 위해 保守성향의 학생들이 만든 학내 신문이었다.
 
  잉그레이엄은 음악 수업을 빙자해서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하는 한 엉터리 정년보장 교수를 비난하는 글을 「다트머스 리뷰」에 써서 결국 그 교수가 대학을 떠나게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스피치 라이터 일을 잠시 했으며, 프린스턴 대학 동문들이 左편향된 프린스턴 대학을 바로잡기 위해 창간한 「프로스펙트」의 편집 일을 보았다.
 
  버지니아 대학 로스쿨에 진학한 잉그레이엄은 우수한 성적으로 1991년에 졸업해서 변호사가 됐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연방대법원의 토머스 클러렌스 대법관과 제2항소법원 랠프 윈터 판사의 서기로 일했고, 워싱턴 DC의 유명한 로펌에 취직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잉그레이엄은 保守 서클에서 활동했고,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1995년 「새로운 젊은 保守주의자들」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으면서 잉그레이엄을 표지에 등장시켰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잉그레이엄은 MSNBS의 케이블 TV에서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했다.
 
  자신의 天職(천직)이 변호사가 아님을 깨달은 잉그레이엄은 2001년 「로라 잉그레이엄 쇼」를 시작했고, 대성공을 거두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잉그레이엄은 「폭스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썼다.
 
  2000년에 나온 첫 번째 책 「힐러리 트랩」은 힐러리가 내세우는 주장이 한결같이 오류와 가식으로 가득찬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2003년에는 할리우드와 정계, 그리고 미디어 엘리트의 左편향을 비판한 「닥치고 노래하라」를 펴냈고, 2007년 가을에는 의회·관료·법원·공립학교 등이 부당하게 갖고 있는 권력을 국민들이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권력을 국민에게」를 출간했다. 세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女戰士들의 공통점
 
이라크를 방문한 로라 잉그레이엄.
  잉그레이엄의 부모는 개신교인이었고, 그녀도 어릴 때는 교회에 나갔으나 점차 교회 나가기를 중단했다. 1999년 잉그레이엄은 암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神(신)의 존재를 다시 느끼게 되었고, 2003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됐다.
 
  2005년 오른쪽 유방에서 진행된 유방암이 발견되어 두 차례에 걸쳐 큰 수술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잉그레이엄은 암과 싸움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신앙적으로 더욱 강해졌다고 2007년에 나온 책에 썼다. 잉그레이엄은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에 한 사업가와 약혼했으나 암 수술을 받은 후에 파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2006년 초에는 이라크를 방문, 현지에서 라디오 쇼를 진행해서 좋은 평을 얻었다.
 
  필리스 슐라플라이, 페기 누넌, 모나 채런, 바버라 올슨, 앤 코울터, 그리고 로라 잉그레이엄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종교적이고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자신들도 종교적이다. 슐라플라이, 누넌, 올슨, 그리고 잉그레이엄은 가톨릭 신자이고 코울터는 개신교인이며, 채런은 유대교인이다.
 
  이들은 레이건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클린턴과 힐러리를 경멸하는 점에서 같이 하고 있다. 슐라플라이는 레이건과 함께 골드워터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고, 1950년대에 태어난 누넌과 채런은 레이건의 백악관에서 일했다. 이들은 모두 「레이건주의자」다.
 
  페기 누넌을 제외한 모두가 변호사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슐라플라이는 뒤늦게 워싱턴 대학 로스쿨을 다녀서 변호사가 됐다. 채런과 올슨은 조지 워싱턴 대학 로스쿨과 카르도조 로스쿨을 나왔다. 1960년대생인 코울터와 잉그레이엄은 학부는 명문인 코넬과 다트머스를, 그리고 로스쿨은 미시간과 버지니아를 각각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한국의 保守 여전사는 어디에?
 
  코울터와 잉그레이엄은 학부 재학 시 左편향된 학교 분위기에 분개해서 保守성향의 학내 신문을 발간할 정도로 젊었을 때부터 행동하는 소신파였다. 코울터와 잉그레이엄은 명문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해서 연방항소법원 판사와 연방대법관의 서기를 지냈다. 이들은 많은 보수가 보장되는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가시밭길 같은 左派와의 싸움에 나선 것이다. 우리가 교훈으로 새겨야 할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리한 칼럼으로 이름이 높았던 田麗玉(전여옥) 의원의 뒤를 이을 만한 여성 保守논객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계에 진출한 田麗玉 의원이 남긴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保守진영의 「女戰士 不在(부재)」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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