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 개혁·개방 이뤄지면 北 주민은 흡수통일 요구할 것… 金正日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1980년대 말 東歐보다 높다』
안드레이 란코프
1963년 舊소련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北 김일성종합大 조선어문학과 졸업. 레닌그라드大 박사(한국사). 호주국립大 한국사 교수. 現 국민大 교양학부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등.
안드레이 란코프
1963년 舊소련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北 김일성종합大 조선어문학과 졸업. 레닌그라드大 박사(한국사). 호주국립大 한국사 교수. 現 국민大 교양학부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등.
『金正日, 核포기 가능성 전혀 없어』
2007년에 들어서자마자 신문들은 다투어 「金正日 이후」에 대한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에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朴寬用)과 고려大 북한연구소에서 「북한급변사태」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북한이 核실험을 강행하고 난 후 6者 회담에서 기고만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새해 들어 연일 금년 大選(대선)을 겨냥해 「反보수 대연합 구축」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金正日 이후」나 「북한급변사태」를 논하는 것은 왠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北核(북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가 더욱 유동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과연 올해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金正日은 核무기를 포기할까? 金正日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난 1월8일 북한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大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작년 10월 金正日은 核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 후 6者 회담이 열렸지만, 뚜렷한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金正日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기적으로 金正日 사망과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4년 제1차 北核위기 당시 북한은 미국 등 외부의 원조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네바 합의 타결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필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으로서는 분배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그것을 체제유지를 위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북한이 核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봅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現 미국 정부가 목표 달성을 위해 군사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본 金正日의 입장에서는 核 억지력을 가지는 것이 논리적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核보유국 북한」 택할 것』
―北核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북한문제에 대해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核보유국이 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核보유는 일본·대만·베트남 등의 核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들은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원치 않습니다. 중국은 남북한이 통일되고 통일한국이 미국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현재 말로만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중국에 이웃해 있는 단 하나뿐인 자칭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하는 것은 중국 국내정치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 영향 아래 들어간 통일한국」보다는 「核보유국 북한」을 택할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 北核문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을까요.
『한국과 일본에는 북한의 결정을 바꿀 수단이 없습니다. 북한은 경쟁하는 강대국들을 잘 다룰 수 있습니다. 舊소련 외교관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소련은 1970년대부터 북한을 싫어했지만 地政學的(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북한에 대한 원조를 계속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북한은 중국과 한국 간의 경쟁, 미국과 한국 간의 갈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金正日이 추가 核실험을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추가 核실험을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核실험으로 북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으니까요』
―金日成 死後(사후) 많은 북한전문가들은 金正日 정권이 早期(조기)에 무너질 것으로 보았지만, 金正日 체제는 건재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에는 「식량난, 배급체제의 붕괴 등에도 불구하고 金正日 체제는 튼튼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金正日 체제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건 누구도 모르는 문제입니다. 동독·루마니아·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아무도 그들 체제가 그렇게 붕괴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미래가 알고 싶으면 김일성종합大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라』
―갈브레이스 교수 등 미국의 석학들은 1980년대 초반 「소련 체제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고 평가했었죠.
『저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 자체는 좋게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소련 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회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 경제적인 잘못과 낙후성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나 외국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우리 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하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동요가 생기면 당국자들이 진압할 것이다」 라고 하셨죠. 저는 「탄압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알고 싶으면 김일성종합大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외부세계와 접할 수 있는 게 중요』
―외부와 비교가 가능해야 체제의 모순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북한과 舊소련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소련은 북한에 비하면 자유로운 사회였습니다. 소련에서는 미국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린 영화들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집이 우리나라 공산당 간부들의 집보다 낫다」,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고, 시민들은 재판소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소련 시절 외국 방송 청취는 가능했습니까.
『1980년대 중반 소련 성인의 25% 정도가 외국의 러시아語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런 방송들이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하더라도, 소련의 공식매체 이외의 매체를 통해 외부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외여행은 가능했습니까.
『많지는 않았지만 북한보다는 나았습니다. 동구권으로 여행이나 유학은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련의 생활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처럼 쇄국정책을 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련 체제가 얼마 못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럼 언제쯤 소련 체제가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1990년대 말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겠죠』
―蘇聯邦(소연방)이 완전해체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죠.
『「독립성이 강한 발틱3국이 蘇聯邦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일당독재의 붕괴, 시장경제의 도입 수준의 변화를 기대한 정도이지 蘇聯邦의 완전해체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북한의 개혁·개방 막고 있어』
―햇볕론자들은 「南과 北의 接點(접점)을 점점 넓혀 가다 보면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북한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에는 없었던 아주 위험한 도전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존재입니다.
북한 옆에 잘사는 同族(동족)의 나라 한국이 있다는 것은 북한에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는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그 때문에 金正日은 쉽게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중국에는 「또 하나의 중국」이 없습니다. 대만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작은 섬나라입니다. 베트남에는 「또 하나의 베트남」이 있었지만, 1975년 敗亡(패망)했습니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을 한다면, 지금까지처럼 주민들을 감시·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해외로 팩스를 보낼 수 없는 체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체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들은 잘 사는 한국에 대해 알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미국이 잘 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쉽게 미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51번째 州가 되겠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북한 사람들이 개혁·개방의 결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한국의 실정에 대해 알게 되면, 동독의 경우처럼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金正日은 판단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잘 경영하지는 못해도,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탁월한 전술가입니다. 그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그는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 엘리트층의 생각은 어떨까요.
『북한 엘리트들은 흡수통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 이후 중국이나 러시아·동구의 경우, 대기업 사장이 된 옛 공산당 간부들은 과거보다 수십, 수백 배의 특권과 수입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북한이 한국으로 흡수통일될 경우, 북한 노동당 간부들은 북한의 산업을 私有化(사유화)하면서 자신들의 소유로 전환시킨다 해도 한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생산시설은 기술역사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낙후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에서는 195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 학살이나 암살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과거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처럼 지금도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흡수통일이 될 경우, 단순히 특권을 상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벌을 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논리적 선택은 개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개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형선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북한 정권에 개혁의지가 없다」는 것이 곧 「북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北,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죽었다』
―변화가 있다는 얘기군요.
『예컨대 북한은 더 이상 스탈린주의 국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죽었습니다. 自然死(자연사)한 것입니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가 이미 죽었다고요.
『스탈린주의 체제는 감시와 밀고에 의해 지탱되는 체제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보상과 특혜가 따라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경제가 붕괴하면서 감시가 많이 약해지고, 사회통제를 위한 규칙들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북한의 하급 간부들 사이에서는 부정부패가 극심합니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계층조차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1970년대 말 소련의 젊은 엘리트(간부)들 만큼 체제에 대해 冷笑的(냉소적)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트들의 부정·부패와 체제에 대한 실망이 북한 체제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우선 장마당을 들 수 있습니다. 장마당은 「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化」를 의미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장마당을 통해 돈을 벌면서 意識(의식)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됐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배급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의 감시구조는 공장 등에서의 조직생활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장마당에 조직생활이 없는 것은 의식구조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입니다. 또 다른 변화의 요인은 「국경문제」입니다』
―국경문제요?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본 경험이 있는 북한 사람은 40만~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중국은 천국과 같은 곳인데, 중국에 나온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국을 통해 한국의 비디오테이프 등이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KBS 연속극 등을 보게 되는 북한 사람들은 100%는 아니라고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것은 믿지 못하겠죠.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서울 거리의 빌딩이나 한강의 다리들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이 흡수통일 요구할 것』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통일로 이어질까요.
『북한이 민주화·시장화된다고 해도 南과 北은 한동안 共存(공존)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흡수통일로 인한 부담을 짊어지기보다는, 북한과 장기간 공존하면서 북한을 조금씩 지원하는 대신, 휴가 때 東南亞로 여행을 가거나 5년에 한 번씩 車를 바꾸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북한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개혁·개방 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알고, 보위부를 지금처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을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들은 흡수통일만 되면 자신들이 순식간에 한국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나중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환상입니다만….
재미있는 것은 한국內의 親北(친북)세력들입니다. 그들은 한국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민중이 역사의 主體(주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북한에 대해 말할 때에는 주체는 곧 金日成-金正日 父子정권을 의미하는 것이고, 북한 민중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거 동구의 경우와 비교할 때,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1980년대 말 동구보다는 붕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金正日과 노동당 간부들은 개혁에 반대하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그런 시대착오적인 체제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 체제는 밑에서부터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美, 親中 괴뢰정부 용인 가능성』
―일부에서는 核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金正日 정권을 대신하는 「親中정권 등장-한반도 분단체제 유지를 용인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가능한 얘기입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核보유 그 자체보다, 核확산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은 북한에 親中정부가 들어서는 데 대해 말로는 반대하면서, 실제로는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중국과 명시적으로 그런 조약을 맺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 계속해서 그런 암시를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00년 전 「가쓰라-태프트 密約(밀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북한의 「체체전환」을 원해 왔습니다. 중국은 「분단 한국」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金正日 체제의 유지를 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분단을 위해 「金正日보다 효율적인 북한 정부」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親中정권이 들어선다면 어떤 성격의 정권이 될까요.
『金正日을 대신하는 親中 괴뢰정부가 들어설 경우 중국의 지원 아래 시장 개혁을 실시하고, 민중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1960~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당시 이 나라들의 정부는 모스크바의 허락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여기에 반대하면 소련군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그런 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金正日, 王朝체제 유지 포기했을 수도』
―金正日과 軍部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엇갈립니다. 金正日이 軍部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현재 북한 체제는 金正日과 軍部의 연립정권이라거나 더 나아가 軍部가 金正日보다 우위에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북한 권력 내부의 의사결정 체제에 대해서는 추정에 불과할 뿐, 누구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독자적인 정치집단으로서의 軍部가 북한에 존재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는 그런 의미에서의 軍部는 없었습니다. 先軍(선군)정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軍部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고요.
북한은 金王朝(김왕조)에 의한 절대군주국가입니다. 金正日이 물러나면 정당성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金正日과 무관한 지도자가 등장할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결국 북한 권력층은 金正日을 중심으로 단결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代案(대안)이 없어요』
―金日成은 60세를 전후한 시기에 30代의 金正日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반면에 金正日은 이미 65세인데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金正日이 王朝체제를 유지할 의지가 있었다면 5~10년 전에 후계자를 지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金正日은 그러한 체제가 오랫동안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金正日은 가족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金正日은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후계자가 됐다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처럼 정치적 격변에 휘말려 희생되기보다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맡겨 놓은 돈을 가지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지 모릅니다』
―란코프 교수의 조국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등장 이후, 과거 소련 시절과 같은 강대국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강대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많은 러시아人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나 東北亞 문제에 관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적극 외교를 할 수 있는 외교적 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있는 자원은 우크라이나나 중앙아시아 등 舊소연방 국가들, 유럽, 중국에 투입해야 합니다. 한반도는 러시아에 있어 地政學的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 러시아는 북한이 러시아에 진 債務(채무) 80억 달러를 탕감해 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 돈은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러시아는 생색만 낸 것이죠. 러시아의 對北외교 담당자들은 과거 소련과 북한 간의 外交史(외교사)를 잘 알고 있어서 북한에 실질적인 원조를 해줘도 돌려받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 간첩, 역사 흐름에 영향 못 끼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요.
『거의 없다고 봅니다. 현재 약화된 북한의 경제적 기반과 군대의 전투력으로는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대규모 주민봉기가 일어났을 경우,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습니다』
―북한이 한국內 親北세력을 이용해 大選에 영향을 미치고,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려 들 가능성은 없습니까.
『한국內에 북한 간첩들과 그들이 관리하는 단체들이 없지 않겠죠. 하지만 그 위험을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이웃나라에 간첩을 보내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자를 지원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늘 있어 온 일입니다.
과거 東獨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보기관을 갖고 있었고, 그 首長(수장)인 마르쿠스 볼프는 「20세기 간첩 천재」로까지 일컬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東獨 국가를 구원할 수 있었던가요?
중요한 것은 경제적·사회적 효율성입니다. 북한 간첩들이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르쿠스 볼프를 잊지 마세요』●
북한이 核실험을 강행하고 난 후 6者 회담에서 기고만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새해 들어 연일 금년 大選(대선)을 겨냥해 「反보수 대연합 구축」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金正日 이후」나 「북한급변사태」를 논하는 것은 왠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北核(북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가 더욱 유동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과연 올해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金正日은 核무기를 포기할까? 金正日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난 1월8일 북한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大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작년 10월 金正日은 核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 후 6者 회담이 열렸지만, 뚜렷한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金正日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기적으로 金正日 사망과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4년 제1차 北核위기 당시 북한은 미국 등 외부의 원조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네바 합의 타결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필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으로서는 분배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그것을 체제유지를 위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북한이 核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봅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現 미국 정부가 목표 달성을 위해 군사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본 金正日의 입장에서는 核 억지력을 가지는 것이 논리적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核보유국 북한」 택할 것』
―北核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북한문제에 대해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核보유국이 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核보유는 일본·대만·베트남 등의 核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들은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원치 않습니다. 중국은 남북한이 통일되고 통일한국이 미국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현재 말로만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중국에 이웃해 있는 단 하나뿐인 자칭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하는 것은 중국 국내정치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 영향 아래 들어간 통일한국」보다는 「核보유국 북한」을 택할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 北核문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을까요.
『한국과 일본에는 북한의 결정을 바꿀 수단이 없습니다. 북한은 경쟁하는 강대국들을 잘 다룰 수 있습니다. 舊소련 외교관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소련은 1970년대부터 북한을 싫어했지만 地政學的(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북한에 대한 원조를 계속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북한은 중국과 한국 간의 경쟁, 미국과 한국 간의 갈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金正日이 추가 核실험을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추가 核실험을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核실험으로 북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으니까요』
―金日成 死後(사후) 많은 북한전문가들은 金正日 정권이 早期(조기)에 무너질 것으로 보았지만, 金正日 체제는 건재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에는 「식량난, 배급체제의 붕괴 등에도 불구하고 金正日 체제는 튼튼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金正日 체제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건 누구도 모르는 문제입니다. 동독·루마니아·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아무도 그들 체제가 그렇게 붕괴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미래가 알고 싶으면 김일성종합大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라』

『저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 자체는 좋게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소련 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회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 경제적인 잘못과 낙후성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나 외국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우리 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하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동요가 생기면 당국자들이 진압할 것이다」 라고 하셨죠. 저는 「탄압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알고 싶으면 김일성종합大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외부세계와 접할 수 있는 게 중요』
―외부와 비교가 가능해야 체제의 모순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북한과 舊소련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소련은 북한에 비하면 자유로운 사회였습니다. 소련에서는 미국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린 영화들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집이 우리나라 공산당 간부들의 집보다 낫다」,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고, 시민들은 재판소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소련 시절 외국 방송 청취는 가능했습니까.
『1980년대 중반 소련 성인의 25% 정도가 외국의 러시아語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런 방송들이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하더라도, 소련의 공식매체 이외의 매체를 통해 외부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외여행은 가능했습니까.
『많지는 않았지만 북한보다는 나았습니다. 동구권으로 여행이나 유학은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련의 생활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처럼 쇄국정책을 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련 체제가 얼마 못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럼 언제쯤 소련 체제가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1990년대 말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겠죠』
―蘇聯邦(소연방)이 완전해체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죠.
『「독립성이 강한 발틱3국이 蘇聯邦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일당독재의 붕괴, 시장경제의 도입 수준의 변화를 기대한 정도이지 蘇聯邦의 완전해체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북한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에는 없었던 아주 위험한 도전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존재입니다.
북한 옆에 잘사는 同族(동족)의 나라 한국이 있다는 것은 북한에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는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그 때문에 金正日은 쉽게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중국에는 「또 하나의 중국」이 없습니다. 대만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작은 섬나라입니다. 베트남에는 「또 하나의 베트남」이 있었지만, 1975년 敗亡(패망)했습니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을 한다면, 지금까지처럼 주민들을 감시·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해외로 팩스를 보낼 수 없는 체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체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들은 잘 사는 한국에 대해 알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미국이 잘 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쉽게 미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51번째 州가 되겠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북한 사람들이 개혁·개방의 결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한국의 실정에 대해 알게 되면, 동독의 경우처럼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金正日은 판단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잘 경영하지는 못해도,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탁월한 전술가입니다. 그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그는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 엘리트층의 생각은 어떨까요.
『북한 엘리트들은 흡수통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 이후 중국이나 러시아·동구의 경우, 대기업 사장이 된 옛 공산당 간부들은 과거보다 수십, 수백 배의 특권과 수입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북한이 한국으로 흡수통일될 경우, 북한 노동당 간부들은 북한의 산업을 私有化(사유화)하면서 자신들의 소유로 전환시킨다 해도 한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생산시설은 기술역사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낙후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에서는 195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 학살이나 암살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과거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처럼 지금도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흡수통일이 될 경우, 단순히 특권을 상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벌을 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논리적 선택은 개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개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형선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북한 정권에 개혁의지가 없다」는 것이 곧 「북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北,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죽었다』

『예컨대 북한은 더 이상 스탈린주의 국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죽었습니다. 自然死(자연사)한 것입니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가 이미 죽었다고요.
『스탈린주의 체제는 감시와 밀고에 의해 지탱되는 체제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보상과 특혜가 따라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경제가 붕괴하면서 감시가 많이 약해지고, 사회통제를 위한 규칙들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북한의 하급 간부들 사이에서는 부정부패가 극심합니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계층조차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1970년대 말 소련의 젊은 엘리트(간부)들 만큼 체제에 대해 冷笑的(냉소적)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트들의 부정·부패와 체제에 대한 실망이 북한 체제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우선 장마당을 들 수 있습니다. 장마당은 「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化」를 의미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장마당을 통해 돈을 벌면서 意識(의식)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됐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배급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의 감시구조는 공장 등에서의 조직생활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장마당에 조직생활이 없는 것은 의식구조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입니다. 또 다른 변화의 요인은 「국경문제」입니다』
―국경문제요?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본 경험이 있는 북한 사람은 40만~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중국은 천국과 같은 곳인데, 중국에 나온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국을 통해 한국의 비디오테이프 등이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KBS 연속극 등을 보게 되는 북한 사람들은 100%는 아니라고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것은 믿지 못하겠죠.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서울 거리의 빌딩이나 한강의 다리들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통일로 이어질까요.
『북한이 민주화·시장화된다고 해도 南과 北은 한동안 共存(공존)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흡수통일로 인한 부담을 짊어지기보다는, 북한과 장기간 공존하면서 북한을 조금씩 지원하는 대신, 휴가 때 東南亞로 여행을 가거나 5년에 한 번씩 車를 바꾸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북한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개혁·개방 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알고, 보위부를 지금처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을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들은 흡수통일만 되면 자신들이 순식간에 한국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나중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환상입니다만….
재미있는 것은 한국內의 親北(친북)세력들입니다. 그들은 한국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민중이 역사의 主體(주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북한에 대해 말할 때에는 주체는 곧 金日成-金正日 父子정권을 의미하는 것이고, 북한 민중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거 동구의 경우와 비교할 때,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1980년대 말 동구보다는 붕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金正日과 노동당 간부들은 개혁에 반대하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그런 시대착오적인 체제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 체제는 밑에서부터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美, 親中 괴뢰정부 용인 가능성』
―일부에서는 核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金正日 정권을 대신하는 「親中정권 등장-한반도 분단체제 유지를 용인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가능한 얘기입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核보유 그 자체보다, 核확산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은 북한에 親中정부가 들어서는 데 대해 말로는 반대하면서, 실제로는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중국과 명시적으로 그런 조약을 맺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 계속해서 그런 암시를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00년 전 「가쓰라-태프트 密約(밀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북한의 「체체전환」을 원해 왔습니다. 중국은 「분단 한국」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金正日 체제의 유지를 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분단을 위해 「金正日보다 효율적인 북한 정부」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親中정권이 들어선다면 어떤 성격의 정권이 될까요.
『金正日을 대신하는 親中 괴뢰정부가 들어설 경우 중국의 지원 아래 시장 개혁을 실시하고, 민중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1960~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당시 이 나라들의 정부는 모스크바의 허락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여기에 반대하면 소련군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그런 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金正日, 王朝체제 유지 포기했을 수도』
―金正日과 軍部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엇갈립니다. 金正日이 軍部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현재 북한 체제는 金正日과 軍部의 연립정권이라거나 더 나아가 軍部가 金正日보다 우위에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북한 권력 내부의 의사결정 체제에 대해서는 추정에 불과할 뿐, 누구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독자적인 정치집단으로서의 軍部가 북한에 존재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는 그런 의미에서의 軍部는 없었습니다. 先軍(선군)정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軍部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고요.
북한은 金王朝(김왕조)에 의한 절대군주국가입니다. 金正日이 물러나면 정당성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金正日과 무관한 지도자가 등장할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결국 북한 권력층은 金正日을 중심으로 단결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代案(대안)이 없어요』
―金日成은 60세를 전후한 시기에 30代의 金正日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반면에 金正日은 이미 65세인데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金正日이 王朝체제를 유지할 의지가 있었다면 5~10년 전에 후계자를 지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金正日은 그러한 체제가 오랫동안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金正日은 가족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金正日은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후계자가 됐다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처럼 정치적 격변에 휘말려 희생되기보다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맡겨 놓은 돈을 가지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지 모릅니다』
―란코프 교수의 조국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등장 이후, 과거 소련 시절과 같은 강대국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강대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많은 러시아人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나 東北亞 문제에 관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적극 외교를 할 수 있는 외교적 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있는 자원은 우크라이나나 중앙아시아 등 舊소연방 국가들, 유럽, 중국에 투입해야 합니다. 한반도는 러시아에 있어 地政學的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 러시아는 북한이 러시아에 진 債務(채무) 80억 달러를 탕감해 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 돈은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러시아는 생색만 낸 것이죠. 러시아의 對北외교 담당자들은 과거 소련과 북한 간의 外交史(외교사)를 잘 알고 있어서 북한에 실질적인 원조를 해줘도 돌려받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 간첩, 역사 흐름에 영향 못 끼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요.
『거의 없다고 봅니다. 현재 약화된 북한의 경제적 기반과 군대의 전투력으로는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대규모 주민봉기가 일어났을 경우,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습니다』
―북한이 한국內 親北세력을 이용해 大選에 영향을 미치고,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려 들 가능성은 없습니까.
『한국內에 북한 간첩들과 그들이 관리하는 단체들이 없지 않겠죠. 하지만 그 위험을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이웃나라에 간첩을 보내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자를 지원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늘 있어 온 일입니다.
과거 東獨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보기관을 갖고 있었고, 그 首長(수장)인 마르쿠스 볼프는 「20세기 간첩 천재」로까지 일컬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東獨 국가를 구원할 수 있었던가요?
중요한 것은 경제적·사회적 효율성입니다. 북한 간첩들이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르쿠스 볼프를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