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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고발] 金日成·先軍정치 찬양하는 全敎組「통일학교 자료집」

全敎組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主思派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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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利敵표현물로 判示한 북한의「현대조선역사」그대로 베껴

(金日成은) 드디어 1945년 8월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체부대에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는데…

抗日무장투쟁의 불길 속에서 참다운 主體型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라나고 혁명대오의 主體사상화가 실현됐다.

인민군대는 반격을 개시한 지 1개월 반 동안에 남반부 全 지역의 90% 이상에 달하는 넓은 지역과 남반부 총인구의 92% 이상을 해방시켰다.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先軍정치는 세계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다.

諸成鎬 중앙大 법대 교수·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장
1958년 서울 출생. 서울大 법대 졸업. 서울大 법학박사. 陸士 교관,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사회연구실장, 同 북한인권센터 소장 역임. 現 중앙大 법대 교수(국제법),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겸 대변인,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장. 저서 「북한 연방제안의 분석 및 평가」, 「남북한 특수관계론」, 「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 등.
主體사관으로 쓰여진 「현대조선역사」
  全敎組 부산지부 통일위원회가 2005년 10월 제작한 「통일학교 자료집」이 主體(주체)사관에 입각해 북한의 근·현대사를 기술한 「현대조선역사」 일부를 그대로 베껴 쓴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 全敎組 부산지부 교재에는 총 3편의 강의안(92쪽)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제1강 「日帝시대의 해방투쟁」(1~17쪽)과 제2강 「해방 이후 이북의 현대사」(18~75쪽)에서는 북한 당국의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김한길 著,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83)를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제3강은 「북미핵대결에서 드러난 이북의 새로운 사상은 무엇인가」(76~92쪽)이다.
 
  「현대조선역사」란 책자는 북한 역사학계의 시대구분법에 따라 192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근·현대사를 이른바 「主體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것으로, 머리말과 본문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현대 조선의 역사는 主體사상의 창시자인 金日成이 영도해 온 혁명투쟁의 역사』로서 『主體사상의 구현과정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역사인 것만큼 主體사상과 그에 의해 밝혀진 主體사관을 떠나서는 현대 조선 역사의 전반적 흐름을 똑바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통일학교 자료집」은 북한의 原典(원전)을 70페이지 이상 그대로 베낀 것으로 이같은 「親北(친북) 의식화」 교재(학습자료)가 국내에서 발견·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교육 자료(오른쪽)와 그 原典인 북한의「현대조선역사」.
 
  「金日成」에 관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삭제
 
  실정법상 反국가단체로 간주되는 북한의 原典을 베낀 교재를 만들 경우, 그 출처를 명기해 독자로 하여금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도록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자료집에는 그런 설명이 전혀 없다. 또한 金日成에 관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자료집의 記述(기술) 내용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혹은 여과 없이 수용하도록 유도하려는 編著者(편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全敎組 부산지부 통일위원회 측은 『교사들이 북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자료집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 통일부가 제작·배포하는 「북한이해」나 국내 유수학자들의 관련 연구서적을 숙독하면, 얼마든지 북한을 바로 알고 능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통일학교 자료집」의 제1강 「日帝시대의 해방투쟁」은 「현대조선역사」의 제1편(抗日혁명투쟁)을 발췌하여 동일하게 기술하고 있다. 「현대조선역사」의 「抗日혁명투쟁」 부분에서는 ▲金日成의 소위 「타도 제국주의동맹」 결성 ▲主體사상 창시 ▲조선인민혁명군 조직 ▲백두산 근거지 창설 ▲보천보 전투 ▲조선인민군의 抗日투쟁 활동상 등 북한이 날조하고 있는 金日成의 日帝시대 抗日투쟁을 미화·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8·15 광복을 主體的 혁명노선에 입각한 金日成의 抗日무장투쟁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李承晩·金九 등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은 완전히 배제한 채 빨치산 金日成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도하는 抗日혁명투쟁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기술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金日成에서 찾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8월1일 나라사랑어머니연합·자유기사단 등 保守단체 회원들이 서울 전교조 사무실 앞에서 전교조의 親北교육에 대해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金日成의 거짓 抗日 행적을 그대로 소개
 
  「통일학교 자료집」에서 「현대조선역사」의 「조선혁명군」에 관한 내용(52 ~53쪽) 중 그대로 베낀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金日成은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1930년 7월6일) 이롱헌 고유수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핵심들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 혁명적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다. 조선혁명군을 결성한 후 그 대오를 부단히 확대하면서 대원들의 정치사상적 및 군사적 자질을 빨리 높이도록 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실천적 경험을 쌓도록 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여러 소조들로 편성되어 각지에 파견되었다. 조선혁명군의 소조들은 만주의 장춘시와 금강관전투, 하얼빈시의 도리전투, 연길현 도목구전투를 비롯하여 사평가, 공주령, 노원, 안도, 돈화, 임강, 장백의 넓은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였다.
 
  ●당시 서울에서 발간되던 조선말 신문 朝鮮日報와 東亞日報는 조선혁명군 소조의 풍산군 파발리 경찰관 주재소에 대한 습격을 비롯하여 그 활동의 일단을 여러 호에 걸쳐 보도하였다(1938년 8월과 9월의 상기 신문을 참조).
 
  ●조선혁명군은 활동무대를 넓히면서 무장투쟁 준비를 적극 추진시켰다(2~3쪽)>
 
  ※( ) 안의 내용은 全敎組 통일교재에는 삭제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롱헌」이 원문에서는 「이롱현」으로 되어 있다.

 
  같은 자료집 5~6쪽에 서술된 「조선인민혁명군」에 관한 내용도 북한의 原典과 동일하다.
 
  여기서 「조선혁명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실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역사학계는 金日成이 조직했다는 조선혁명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은 날조된 것임을 밝혀냈다.
 
  첫째, 조선혁명군은 國民府(국민부) 산하 독립군 조직으로 金日成이 조직한 것이 아니다. 金日成은 1930년 4월 조선혁명군에서 탈퇴한 공산주의 계열의 대표격인 李種洛(이종락: 당시 조선혁명군 제9대장)이 길성 카륜과 고유수 지방에서 지휘하는 「국민부 탈퇴파 조선혁명군」(이종락은 국민부 탈퇴 후에도 계속 조선혁명군이란 명칭을 사용함)에 1930년 7월 초 參士(참사·하사관)로 입대하여 비적활동을 하다가 1931년 1월 同 조직이 괴멸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했다. 主體的으로 金日成이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지휘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날조된 역사들
 
  둘째, 金日成이 1934년 결성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 역시 조작이다. 당시 金日成은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하여 독자적인 抗日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만주 東滿(동만)지방의 中共 유격대(1933년 이 유격대는 중국공산당 東北인민혁명군으로 통합)에 입대하여 중국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던 시기이다.
 
  결국 全敎組 부산지부 통일위원회가 제작한 「통일학교 자료집」의 上記 내용은 북한이 날조한 북한 原典 「현대조선역사」의 조선혁명군과 조선인민혁명군 부분을 그대로 수용하여 主體의 역사관을 긍정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최후공격작전」에 관한 全敎組 부산지부 통일교재의 기술 역시 「현대조선역사」(159~161쪽)를 그대로 베껴 쓰고 있는데, 여기서는 아래 인용하는 바와 같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金日成과 그의 主體사상 부분만 삭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 공격작전
 
  (金日成은) 드디어 1945년 8월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체부대에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는 데 대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金日成의 主體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장기간의 가열찬 유격투쟁과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군정훈련을 통하여 불패의 혁명군대로 자라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최후공격전의 첫 순간부터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 대중적 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 적들이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고 떠들던 국경요새들은 아군의 드센 공격에 의하여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中略) 日帝의 식민지통치기구는 종국적으로 청산되고 최후 발악하던 日帝의 저항이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日帝는 패망하고 조선인민은 근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었다. (金日成이 조직영도한) 15성상에 걸친 조선인민의 영웅적인 抗日무장투쟁은 조국정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16~17쪽)>
 
  ※첫째 문장의 마지막 부분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原典에는 「전투명령을 내렸다」로 되어 있다.
  ※( ) 안의 내용은 원전에는 있으나 全敎組 통일교재에는 없는 부분이다.

 
 
 
金日成의 抗日투쟁 주장을 선전

 
  이어 「통일학교 자료집」은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意義(의의)」에 관해 기술하면서, 「현대조선역사」(165~168쪽)를 베끼고 있는데,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
 
  조선인민의 혁명투쟁발전에서 抗日무장투쟁은 참으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졌다. 그 역사적 의의는 첫째로, 이 투쟁이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민족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고 새 사회 건설의 넓은 길을 열어 놓았다는 데 있다. 抗日무장투쟁은 그 지도사상으로 보나 투쟁형태로 보나 가장 높은 단계의 민족해방투쟁이었다.
 
  抗日무장투쟁은 종래의 모든 투쟁과는 달리 노동계급의 혁명사상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主體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전개된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이었다. 抗日무장투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主體의 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 나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지게 되었으며 우리 혁명은) 올바른 지도사상과 지도이론, 과학적인 전략전술에 기초하여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抗日무장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가장 높은 형태인 무장투쟁을 주류로 하여 전개된 혁명전쟁으로서 우리 인민을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게 하였으며 인민대중을 새 조선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게 하였다.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둘째로, 이 투쟁의 행정 「과정」에서 조선혁명을 앞으로 힘차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主體的 역량이 튼튼히 꾸려졌다는 데 있다. 抗日무장투쟁의 불길 속에서 참다운 主體型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라나고 혁명대오의 主體사상화가 실현됨으로써 主體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떠메고 나갈 골간부대가 튼튼히 꾸려졌다. 그리고 이 행정에서 조선혁명에 대한 노동계급의 영도가 확고히 실현되고 노농동맹이 강화되었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이 하나의 역량으로 굳게 단합되었다.
 
  抗日무장투쟁을 통하여 마련된 이 主體的 혁명역량은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혁명을 더욱 힘 있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밑천으로 되었다(17쪽)>
 
  ※( ) 안의 내용은 原典에는 있으나 全敎組 통일교재에는 없는 부분이다.
 
  위 인용한 내용 중 「15星霜(성상·년)에 걸친 조선인민의 영웅적인 抗日무장투쟁은 조국 정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 올리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했다」는 記述이나, 「抗日무장투쟁을 통해 마련된 主體的 혁명 역량은 조국 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했고 조선혁명을 더욱 힘 있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밑천이 됐다」는 주장은 특별히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金日成 주도의 抗日혁명투쟁 주장을 「미화·정당화」하며, 多衆(다중)에 대해 널리 「선전」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광복회」의 실체
 
「재만한인 조국 광복회」를 창설한 全光.
  이 밖에 全敎組 통일교재 7쪽의 「조국광복회」 부분은 「현대조선역사」의 제4장 2절의 「조국광복회」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조국광복회는 金日成이 1936년 5월5일 金日成이 무송현 동강회의에서 그가 손수 작성했다는 조국광복회의 10대 강령, 창립선언, 규약을 발표하며 창설했다는 전국적 규모의 반일민족통일전선 조직을 가리킨다.
 
  북한은 이 조국광복회를 『조선인민의 역사에서 최초의 主體형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이며, 金日成의 유일적 영도를 통일전선운동에 철저히 구현한 강력한 지하혁명조직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조국광복회 결성으로 抗日무장투쟁 승리를 가져왔고 결국 조국해방을 앞당기게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조선로동당 역사」, 1979, 118~140쪽, 「력사사전」 2권, 1985, 299~301쪽, 「현대조선역사」, 1983, 제4장 2절 등).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주장은 날조된 것임이 이미 여러 자료들에 의해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조국광복회의 本 명칭은 「在滿韓人祖國光復會(재만한인조국광복회)」이며, 중국공산당이 抗日연합전선을 강력히 주장한 이른바 「8·1 선언」(1935년)을 한 이후 만주에서 抗日한인 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해 1936년 6월10일 중국공산당 동만주지방의 최고 한인당원인 全光(전광)에 의해 결성되었다.
 
  同 단체의 회장이었던 全光의 본명은 吳成崙(오성륜)으로 중국의 東北抗日連軍 제2군 제3師長(사장: 후에 제6師長)으로 金日成의 직속 상관이었다. 당시 全光은 조국광복회의 지부를 「○○○ 공작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조선內 접경지역에 결성했다.
 
  金日成은 全光의 지휘하에 「재만한인 조국광복회 장백현 공작위원회」에 간여했을 뿐이다. 따라서 金日成이 조국광복회를 손수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되어 각종 抗日투쟁을 주도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조작극인 것이다.
 
  특히 조선광복회는 韓人에 의해 자주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의지에 따라 全光이 조직했던 것이다. 결국 조국광복회는 북한이 만들어 낸 「金日成 抗日무장투쟁사」 중 대표적인 조작날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金日成의 강연 내용 그대로 소개

 
  「통일학교 자료집」의 제2강 「해방 이후 이북의 현대사」는 「현대조선역사」의 제2편(새조국 건설, 조국해방전쟁)과 제3편(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 부분을 발췌하여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현대조선역사」의 제2편은 ▲해방 이후 조선로동당 조직 ▲북한정권 수립 등 북한의 공산화 과정 ▲6·25 발발원인 및 전개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南北분단의 책임을 미국과 대한민국에 전가하고 金日成 정권을 한반도의 진정한 合法정부로 美化하는 동시에, 6·25를 「北侵(북침)」으로 시작된,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全敎組 통일교재의 「해방 직후 북한정세」에 관한 내용은 아래와 같은데, 이는 「현대조선역사」(170, 179~180쪽)를 그대로 베껴 쓴 것이다.
 
  <金日成은 1945년 8월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黨·국가 및 武力(무력) 건설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이북은 무엇보다 먼저 조선혁명을 승리로 확고히 영도할 수 있는 맑스-레닌주의당을 창건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인민정권을 세움으로써 혁명에서 기본문제인 주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나라와 인민을 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 인민무력을 건설해야 합니다. 당면한 이 3대과업은 해방된 조국에서 조선혁명을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혁명임무로 나서고 있습니다』
 
  (中略) 이어 1945년 10월10~13일에 평양에서 黨창립대회가 열렸다. 金日成은 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 黨건설과 黨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였다. 보고에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설案이 제기되고 黨의 조직노선과 정치노선이 천명되었다.
 
  보고에서 천명된 黨의 조직노선은 抗日혁명투사들을 핵심으로 하여 黨을 건설함으로써 黨의 조직적 골간을 튼튼히 꾸리며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 선진분자들을 黨대열에 적극 받아들여 우리 黨을 무산계급의 토대 위에 튼튼히 선 대중적 정당으로 만들며 우리 黨의 혁명사상, 主體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여 黨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 종파주의, 지방주의,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며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에 기초한 黨의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黨건설의 기본원칙으로 규정하였다.
 
  보고에서 천명된 黨의 정치노선은 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기본정치과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4大 당면과업을 밝혔다.
 
  첫째로,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각 정당과 각 파들을 망라하는 민주주의적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광범한 애국적 민주역량을 묶어세워 우리 민족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며 (中略) 넷째로, 이와 같은 모든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산당을 확대강화하며 사회단체들의 사업을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당의 정치노선에는 이와 함께 북조선을 부강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주의적 기치, 혁명적 민주기지로 만드는 데 대한 당의 정치과업이 천명되었다(18~20쪽)>
 
  위에서 보듯이 통일교재 가운데 광복 직후 북한 정세를 소개한 대목에서 「우리 黨(조선로동당)의 혁명사상, 主體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해 黨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라는 내용의 金日成 강연을 그대로 옮겨 主體사상을 여과 없이 묘사했다.
 
 
  南侵을 「인민군의 남조선 해방」으로 記述
 
  「통일학교 자료집」은 한국전쟁에 관해서 북한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옮기고 있다. 同 자료집의 내용은 「현대조선역사」(274~275쪽)의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똑같이 쓰고 있다.
 
  <金日成은 6월25일 黨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내각 비상회의를 소집하였다. 자기의 국가주권과 정규군을 가지게 된 지 오래지 않아 이북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적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실로 힘겨운 일이었으며 준엄한 시련이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金日成을 새로 조직된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金日成은 6월26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 장병들을 전쟁승리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방송연설을 하였다. 金日成은 방송연설에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투적 과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먼저 인민군장병들은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개혁의 성과들을 사수하며 남반부 동포들을 반동통치에서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정의의 투쟁에서 용감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中略) 金日成이 제시한 「모든 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전투적 구호 밑에 나라의 모든 사업이 戰時체제로 개편되었다. 黨중앙위원회는 6월27일 전체 黨조직들과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黨사업을 戰時환경에 맞게 개편하며 黨 안에서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고 모든 당원들이 군사지식을 습득하며, 어떤 조건에서도 당원답게 원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같은 날 戰時상태가 선포되고 7월 1일에는 戰時동원령이 실시되었다. 모든 권력은 군사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모든 것을 전쟁승리로 기동성 있게 조직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전시동원체계가 서게 되었다(35~36쪽)>
 
  특기할 것은 통일교재는 6·25전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美帝」라는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는 외에, 「6월28일에는 서울을 해방하였고」(36쪽), 「이렇듯 인민군대는 반격을 개시한 지 1개월 반 동안에 남반부 전 지역의 90% 이상에 달하는 넓은 지역과 남반부 총인구의 92% 이상을 해방하였다」(37쪽) 등의 표현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썼다는 점이다. 즉, 북한의 「남조선 해방론」과 「조국해방전쟁관」을 여과 없이 수용·지지·동조하고 있다.
 
  이 밖에 「통일학교 자료집」의 38~43쪽에 기술되어 있는 조선인민군의 전략적 후퇴와 反공격준비, 미군의 세균전, 양민학살 등의 내용은 모두 「현대조선역사」의 내용을 발췌하여 똑같이 수록한 것이다.
 
 
  법원, 「현대조선역사」는 利敵표현물
 
  한편, 「현대조선역사」의 제3편(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는 6·25 이후 1970년대까지의 기간 중 ▲북한의 경제복구 ▲사회개조 ▲金日成 지배체제 강화 ▲통일노선 ▲외교정책 등 제분야에 걸친 사회변화와 정책수행을 主體사상에 입각한 혁명노선의 승리로 美化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史는 시종일관 정부 타도를 위한 남한 인민들의 투쟁으로 일관되어 있는 양 왜곡하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를 反통일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全敎組 부산지부 「통일학교 자료집」의 44~75쪽에 기술된 내용은 이 북한 原典의 제3편을 발췌하여, 북한 역사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조선역사」는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다시피, 金日成의 主體사관에 입각해 서술했다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객관적인 시각을 상실한 親北 편향의 역사서적이라고 할 것이다. 또 金日成 일가의 우상화 선전을 위한 사실왜곡 및 날조의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자의 논리와 화법에 빠지다 보면,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긍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법원은 1991년 북한 原典 「현대조선역사」를 국가보안법상의 「利敵표현물」로 규정하였다(서울고등법원 「91고합 740 판결」 등).
 
  마지막으로 「통일학교 자료집」의 제3강 「北美핵대결에서 드러난 이북의 새로운 사상은 무엇인가(76~92쪽)」에서는 金正日의 先軍정치 및 先軍혁명 노선을 無비판적으로 수용·지지·동조·미화·정당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북한의 성명이나 논설, 국내외 기사, 親北인사인 한호석 미주통일학연구소장 등의 글을 전재하고 있다.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先軍정치는 세계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76~77쪽)>
 
  <1990년대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선군정치의 목적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곧 자주성의 완성이었습니다. (中略)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中略) 결국 한(조선)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여 자주성을 완성하게 됩니다. 고난의 행군은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완성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려는 민족사의 최고의 목적을 추구하였던 先軍정치의 행군이었습니다(91~92쪽)>
 
 
  교사들이 利敵 표현물 제작·반포
 
  이상과 같이 북한의 原典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베껴 작성한 全敎組 통일교재는 당연히 親北性 및 反국가성(특히 反국가단체의 주의·주장 및 對南 혁명노선의 선전적 측면)을 갖는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런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것은 국가보안법 제7조상의 利敵표현물 제작·頒布(반포)의 罪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일학교 자료집」의 위법성 여하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책자에 담겨 있는 「主體의 역사관」을 채택·수용한 교사들이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능력을 갖지 못한 초·중·고생들에게 교육할 경우,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全敎組 교사들의 현대사 교육에 대한 감시와 더불어 反국가사상 보유자의 退出(퇴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이것이 이념적 쏠림 현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작금의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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