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연쇄 폭탄테러 발생時 영국의 TV와 라디오 방송 등 언론들은 영국 정보기관과 경찰을 질타하지 않았다. 섣부른 원인분석도 삼갔다.
閔丙敦
1935년 서울 출생. 휘문高·陸士·陸大·국방대학원 졸업. 육사 전임 강사, 고려大 강사(독어독문학).
사단장, 육군정보참모부장, 특전사령관, 陸士 교장 역임.
閔丙敦
1935년 서울 출생. 휘문高·陸士·陸大·국방대학원 졸업. 육사 전임 강사, 고려大 강사(독어독문학).
사단장, 육군정보참모부장, 특전사령관, 陸士 교장 역임.
국민들은 불안하다
- 전방 軍부대 총기난사 사건 사망자들의 분향소가 설치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은 28사단 희생자 동료병사들.
지난 6월20일, TV를 통해 전방 부대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전방 GP에 근무하는 한 일등병이 6월19일 02시30분경 내무반에서 잠자던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후 소총을 난사하고, 또 조금 떨어진 곳의 체력단련장과 상황실에 찾아가 소대장도 사살했다는 보도였다.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하나님 맙소사, 이런 참사가 일어나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죽은 이들의 불행, 그 유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최전방 敵의 코앞에서 장병들이 어떻게 근무하기에, 또 그 지휘관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말인가.
국민은 불안하다,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자식을 軍에 보낸 부모와 머지않아 자식을 입대시킬 부모, 그리고 입대할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안해할까.
방송을 들으면 불안하고 軍에 대해 불만스러운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 연이어 속보들이 귓전을 때린다. 때로는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신문보도들이 쏟아져 나온다. 네티즌들의 의견표출도 뜨겁다. 군대를 코너에 몰아넣고 뭇매를 때린다. 軍이 「동네북」이 된 것이다.
그 인접 사단 지역에서 북한軍 병사 한 명이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우리 軍 GP 경계선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남하한 후 나흘 동안이나 마을에서 은신하다가 6월17일 철원군 대마리 주민의 눈에 띄어 軍부대에 인계된 일과, 그 지역에서 지난해 10월26일 누군가가 철책선을 절단하고 월북한 사건, 그리고 심지어 지난 5월18일 서해 대청도에서 정박 중이던 3t짜리 해군 특수작전용 고속단정 한 척 분실사건까지 열거하며 軍을 질타한다.
언론보도가 軍에 대한 불신 증폭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생동」한다. 평소 軍을 들여다보아 軍을 상당히 알고 있는 국방부 출입기자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다른 일을 맡아 하던 기자들까지 모아 (특별)취재팀을 만들어 그 부대와 그 부대 주둔 지역 및 피해자 시신이 안치된 軍병원에 급파하고, 이른바 군사평론가들(이 나라에 언제부터 「군사평론가」가 그리도 많았는지)과 그 GP에서 軍 복무를 마치고 제대해 나간 예비역들까지 찾아내 인터뷰 등 취재활동을 맹렬히 전개한다.
그런데 방송을 들으면 보도내용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한다. 특히 사건내용 설명에서 극히 중요한 범행동기 부분이 그러했다. 그런데다 또 줄줄이 의혹들을 제기한다. 자연히 국민의 불안과 軍에 대한 불신이 급속히 증폭되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軍과 국민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언론보도에 軍을 아끼고 국방안보를 염려하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고, 언론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특히 이 사건보다 약 보름 후에 발생한 런던 연쇄 폭탄테러에 관한 영국 언론(특히 TV와 라디오)의 보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런던이 제30회 올림픽대회 개최지로 확정되었다는 뉴스로 축제 분위기에 들뜬 런던에서 아침 출근시간대에 네 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이 테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공습 이후 최악의 쇼크라 하고 그래서 제2의 「9ㆍ11테러」라고도 한다. 50명 이상이 죽고 700여 명이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언론은 정보기관과 對테러 경찰을 질타하지 않았다. 출근길 교통정보 등 시민 생활편익을 고려한 안내방송을 계속하며 시민들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분노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선진국 언론이 어떠한 것인지, 선진시민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시범으로 보여 주었다.
세열 수류탄과 경량화 수류탄의 차이도 모르니
그런데 지난번 GP 참사의 경우 언론이 혹은 언론을 통하여 제기한 의혹 또는 문제들은 10여 가지나 된다.
예를 들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그 많은 내무반 동료들을 모두 죽이려 했겠느냐, 언어폭력은 없었다던데』라든지 『25명이 잠자던 내무반에서 수류탄이 폭발했고 소총까지 난사했는데 어떻게 사망자가 6명뿐이고 고막 터진 병사가 없는가』 등….
이러한 의혹 내지 문제들은 결국 기자들과 유족들이 살아남은 GP 요원들과 만나서 직접 대화함으로써 대부분 해소되었다. 그 의혹은 軍이 무엇인가 숨기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오해 내지는 유족들과 기자들의 군대 실정에 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 같았는데….
수류탄 위력만 해도, 유족(특히 남자들)이나 기자들이 전에 군대생활할 때 사용했거나 보았던 수류탄(K 400 세열수류탄)과 현재 軍에서 사용하는 경량화 수류탄(K 413)의 차이를 잘 알고 있지 못한 데 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경량화 수류탄」은 그전의 세열수류탄과 같은 작약(comp.B)이 그 내부에 채워져 있지만, 무게가 260g으로 전의 세열 수류탄(450g)의 약 반 조금 더 되는 정도이고 살상 반경은 10m 미만이다.
작고 가벼워서 더 멀리 던질 수 있고, 깨알 같은 파편 약 1100개가 飛散(비산)한다. 나란히 누워 자는 사람들 사이의 옆구리에 맞고 떨어졌다면 그 양쪽 사람이 폭발력과 파편의 대부분을 흡수해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막아 주었을 것이다.
김동민 일병의 범행동기를 보면 지난 6월20일 새벽 6시경, 한 TV 방송은 김일병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려 오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으나, 그 후 사전에 결심하고 저지른 범행으로 말을 바꾸었다. 방송국이 왜 말을 바꾸었을까. 그것은 軍 당국의 발표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軍 당국은 왜 그렇게 말을 바꾸었을까, 언론과 국민의 오해를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은 그 지휘보고 계통, 즉 예하부대로부터 그렇게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휘계통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끝에 가서 참사의 현장 GP가 나온다.
그러면 GP는 왜 그런 말 바꾸기를 했을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밤중에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자다가 꽝하고 수류탄이 터졌고 자동소총 연발사격을 받았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敵의 공격을 받았다는 생각과 본능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상황보고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떠올랐을 것이다. 그것도 극도의 공포 속에서.
병사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약손」이 없다
상황보고는 신속ㆍ정확해야 한다. 이는 사건ㆍ사고를 인지한 기자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신속ㆍ정확하게 정보를 전파(전달)해야 할 언론의 사명이나 그렇게 상황보고해야 할 단위부대 지휘관자의 임무는 똑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신속하게 보고(보도)하려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정확하게 보고하려면 신속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신속과 정확의 양립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軍에서는 최초 보고의 신속성을 강조하면서 차후 보고에서의 정정도 허용한다. 정확을 기하려고 때늦게 보고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拙速(졸속)」이란 어휘는 사회일반의 통념상 부정적 의미가 강하지만 군사작전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졸속을 강조한 병법의 대가 孫子(손자)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언론도 이번 범행동기를 보도함에 어쩔 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軍부대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軍의 발표에서 「범행동기」의 설명이 최초의 것과 달랐던 점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음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군대도 거대한 사회의 한 부분이고 그 구성원(군인)들은 모두가 사회에서 들어온 「민간인 출신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현상들은 그 빈도가 낮거나 규모가 작기는 해도 軍에서도 있는 일이다. 범죄도 그 발생률이 사회보다 훨씬 낮기는 해도 역시 있는 일이다.
요즈음은 일반 사회 핵가족의 외아들로, 풍요로운 고독 속에서 컴퓨터와 친구하며 자기중심적(ego-centric)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軍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규율과 임무의 강조하에 내 방도 따로 갖지 못하고 낯선 이들과 내무반이라는 큰방을 함께 쓰면서 매일매일 시간계획에 따라 먹고 근무하며 훈련하고 함께 자야 하는, 환경의 급변도 스스로 소화해 내야만 하는 병영생활이 되었다.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병영생활에서 누군가의 「권위 있고 친절한」 손길이 이 「아이」에게 필요하다. 바로 그 「약손」이 직업군인 부사관인데 金泳三 정부 때 무려 2만여 명의 부사관 자리를 줄여 부사관이 절실히 필요한 말단부대에 부사관이 거의 없어 분대장을 같은 또래인 兵(병장)이 하고 있다.
그래서 무형 전투력의 조성과 전투력의 발휘가 치명적으로 어렵게 되었고, 병영생활과 야전에서 兵들의 구심적 리더가 사실상 없는, 다시 말해서 하부조직(구조)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군대가 바로 우리 국군이다. 특히 조직의 하부구조가 강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이번 GP 참사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보면 바로 허약한 하부구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부사관 수를 다시 증가시키고 하부구조를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비무장지대의 특성
비무장지대(DMZ)는 사단장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군단장 관할 지역이다. 누구도 허락 없이는 출입이 안 되는 지역이다. 그곳은 초소(GP)장의 판단과 지휘로 생활하고 근무하며, 부대훈련과 검열(감사)로부터도 자유로운 곳이다.
이번 참사로 GP장이 사망하여 신임 GP장이 상황을 수습하며 보고했음이 틀림없다. 경험이 일천한 초급간부인 그에게 너무 많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비무장지대 GP 간격은 약 1~2km 정도로 남북이 모두 비슷하다. GP와 GP 사이는 병력배치 없이 지뢰가 매설되어 있지만 그 지뢰들의 위치가 기록이 없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지뢰지대가 많다. 이러한 GP 간격을 통하여 남북으로 오고 가는 일은 위험하지만 가능하다. 운 좋게 지뢰만 밟지 않는다면.
지상 휴전선(군사분계선)의 길이는 248km(155마일), 즉 대략 25만m이고 지상군 병력으로 경계해야 할 해안 경계선은 휴전선의 약 6배, 그러므로 지상 휴전선 및 해안 경계선의 길이는 모두 약 1750km이다. 이 경계선에 10m 간격으로 야간 경계 병력을 2명 복초로 해서 1회 배치하는데 35만 명, 하룻밤 4교대로 경계하면 140만 명의 육군 경계 병력이 소요된다.
여기에 한국 방어계획의 필수병력으로 현 국군 병력을 합하면 약 210만 명 규모의 상비군 병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한 병력유지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답은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전방 지상 방어배치는 잘 알려진 「作計 5027 한국 방어계획」에 따른 것이다. 제목 그대로 경계가 아닌 방어계획이다. 그래서 전방 육군부대들은 방어를 위하여 「종심 배치」돼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방어배치이다. 북한도 또한 마찬가지로 종심 배치했다.
그러므로 지금 전방에 비무장지대를 통하여 오고 가는 간첩이나 비정규전 부대요원들을 발견하고 잡는 일은 전방 육군부대들의 임무가 아니다. 「作計 5027」에 간첩 잡으라는 임무는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지상(비무장지대)으로 침투해 오거나 돌아가는 간첩(공작원 등)을 잡으라고 한다면 부대배치는 현 방어배치에서 경계(對침투작전)배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방어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그러한 일렬횡대식 배치에서 敵의 전면공격(全面戰)을 당하면 6ㆍ25 때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던 것보다 더 빨리 서울을 빼앗기고 나라는 망할 것이다. 같은 부대에 (종심)방어배치와 對간첩작전(일렬횡대식) 배치는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다.
진지하고 신중한 분석·보도 있어야
그러함에도 언론은 간첩이나 어떤 인원이 비무장지대를 통하여 오거나 가면 그 지역 방어부대 지휘관을 문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송이나 기사를 크게 내보내 전방부대 지휘관들을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번 GP 참사를 계기로 또다시 전방 어느 사단 지역에서의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 월북사건과 지난 6월 같은 지역에서의 북한軍 병사 1명 월남 사건을 재론하였다.
결국 전방 제5사단장이 7월5일부로, 그리고 해당 지역 연대장·대대장·중대장·소대장이 6월20일부로 해임되었으며, 이번 GP 참사가 있었던 사단의 연대장과 수색중대장도 지난 6월24일 해임되고 말았다.
언론의 진지한 상황분석과 더욱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도 국민과 軍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 써 줘야 할 것이다.●
하나님 맙소사, 이런 참사가 일어나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죽은 이들의 불행, 그 유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최전방 敵의 코앞에서 장병들이 어떻게 근무하기에, 또 그 지휘관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말인가.
국민은 불안하다,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자식을 軍에 보낸 부모와 머지않아 자식을 입대시킬 부모, 그리고 입대할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안해할까.
방송을 들으면 불안하고 軍에 대해 불만스러운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 연이어 속보들이 귓전을 때린다. 때로는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신문보도들이 쏟아져 나온다. 네티즌들의 의견표출도 뜨겁다. 군대를 코너에 몰아넣고 뭇매를 때린다. 軍이 「동네북」이 된 것이다.
그 인접 사단 지역에서 북한軍 병사 한 명이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우리 軍 GP 경계선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남하한 후 나흘 동안이나 마을에서 은신하다가 6월17일 철원군 대마리 주민의 눈에 띄어 軍부대에 인계된 일과, 그 지역에서 지난해 10월26일 누군가가 철책선을 절단하고 월북한 사건, 그리고 심지어 지난 5월18일 서해 대청도에서 정박 중이던 3t짜리 해군 특수작전용 고속단정 한 척 분실사건까지 열거하며 軍을 질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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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GP 총기사고와 관련, 윤광웅 국방장관이 對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
그런데 방송을 들으면 보도내용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한다. 특히 사건내용 설명에서 극히 중요한 범행동기 부분이 그러했다. 그런데다 또 줄줄이 의혹들을 제기한다. 자연히 국민의 불안과 軍에 대한 불신이 급속히 증폭되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軍과 국민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언론보도에 軍을 아끼고 국방안보를 염려하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고, 언론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특히 이 사건보다 약 보름 후에 발생한 런던 연쇄 폭탄테러에 관한 영국 언론(특히 TV와 라디오)의 보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런던이 제30회 올림픽대회 개최지로 확정되었다는 뉴스로 축제 분위기에 들뜬 런던에서 아침 출근시간대에 네 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이 테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공습 이후 최악의 쇼크라 하고 그래서 제2의 「9ㆍ11테러」라고도 한다. 50명 이상이 죽고 700여 명이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언론은 정보기관과 對테러 경찰을 질타하지 않았다. 출근길 교통정보 등 시민 생활편익을 고려한 안내방송을 계속하며 시민들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분노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선진국 언론이 어떠한 것인지, 선진시민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시범으로 보여 주었다.

그런데 지난번 GP 참사의 경우 언론이 혹은 언론을 통하여 제기한 의혹 또는 문제들은 10여 가지나 된다.
예를 들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그 많은 내무반 동료들을 모두 죽이려 했겠느냐, 언어폭력은 없었다던데』라든지 『25명이 잠자던 내무반에서 수류탄이 폭발했고 소총까지 난사했는데 어떻게 사망자가 6명뿐이고 고막 터진 병사가 없는가』 등….
이러한 의혹 내지 문제들은 결국 기자들과 유족들이 살아남은 GP 요원들과 만나서 직접 대화함으로써 대부분 해소되었다. 그 의혹은 軍이 무엇인가 숨기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오해 내지는 유족들과 기자들의 군대 실정에 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 같았는데….
수류탄 위력만 해도, 유족(특히 남자들)이나 기자들이 전에 군대생활할 때 사용했거나 보았던 수류탄(K 400 세열수류탄)과 현재 軍에서 사용하는 경량화 수류탄(K 413)의 차이를 잘 알고 있지 못한 데 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경량화 수류탄」은 그전의 세열수류탄과 같은 작약(comp.B)이 그 내부에 채워져 있지만, 무게가 260g으로 전의 세열 수류탄(450g)의 약 반 조금 더 되는 정도이고 살상 반경은 10m 미만이다.
작고 가벼워서 더 멀리 던질 수 있고, 깨알 같은 파편 약 1100개가 飛散(비산)한다. 나란히 누워 자는 사람들 사이의 옆구리에 맞고 떨어졌다면 그 양쪽 사람이 폭발력과 파편의 대부분을 흡수해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막아 주었을 것이다.
김동민 일병의 범행동기를 보면 지난 6월20일 새벽 6시경, 한 TV 방송은 김일병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려 오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으나, 그 후 사전에 결심하고 저지른 범행으로 말을 바꾸었다. 방송국이 왜 말을 바꾸었을까. 그것은 軍 당국의 발표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軍 당국은 왜 그렇게 말을 바꾸었을까, 언론과 국민의 오해를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은 그 지휘보고 계통, 즉 예하부대로부터 그렇게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휘계통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끝에 가서 참사의 현장 GP가 나온다.
그러면 GP는 왜 그런 말 바꾸기를 했을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밤중에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자다가 꽝하고 수류탄이 터졌고 자동소총 연발사격을 받았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敵의 공격을 받았다는 생각과 본능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상황보고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떠올랐을 것이다. 그것도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상황보고는 신속ㆍ정확해야 한다. 이는 사건ㆍ사고를 인지한 기자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신속ㆍ정확하게 정보를 전파(전달)해야 할 언론의 사명이나 그렇게 상황보고해야 할 단위부대 지휘관자의 임무는 똑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신속하게 보고(보도)하려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정확하게 보고하려면 신속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신속과 정확의 양립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軍에서는 최초 보고의 신속성을 강조하면서 차후 보고에서의 정정도 허용한다. 정확을 기하려고 때늦게 보고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拙速(졸속)」이란 어휘는 사회일반의 통념상 부정적 의미가 강하지만 군사작전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졸속을 강조한 병법의 대가 孫子(손자)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언론도 이번 범행동기를 보도함에 어쩔 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軍부대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軍의 발표에서 「범행동기」의 설명이 최초의 것과 달랐던 점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음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군대도 거대한 사회의 한 부분이고 그 구성원(군인)들은 모두가 사회에서 들어온 「민간인 출신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현상들은 그 빈도가 낮거나 규모가 작기는 해도 軍에서도 있는 일이다. 범죄도 그 발생률이 사회보다 훨씬 낮기는 해도 역시 있는 일이다.
요즈음은 일반 사회 핵가족의 외아들로, 풍요로운 고독 속에서 컴퓨터와 친구하며 자기중심적(ego-centric)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軍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규율과 임무의 강조하에 내 방도 따로 갖지 못하고 낯선 이들과 내무반이라는 큰방을 함께 쓰면서 매일매일 시간계획에 따라 먹고 근무하며 훈련하고 함께 자야 하는, 환경의 급변도 스스로 소화해 내야만 하는 병영생활이 되었다.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병영생활에서 누군가의 「권위 있고 친절한」 손길이 이 「아이」에게 필요하다. 바로 그 「약손」이 직업군인 부사관인데 金泳三 정부 때 무려 2만여 명의 부사관 자리를 줄여 부사관이 절실히 필요한 말단부대에 부사관이 거의 없어 분대장을 같은 또래인 兵(병장)이 하고 있다.
그래서 무형 전투력의 조성과 전투력의 발휘가 치명적으로 어렵게 되었고, 병영생활과 야전에서 兵들의 구심적 리더가 사실상 없는, 다시 말해서 하부조직(구조)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군대가 바로 우리 국군이다. 특히 조직의 하부구조가 강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이번 GP 참사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보면 바로 허약한 하부구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부사관 수를 다시 증가시키고 하부구조를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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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 |
이번 참사로 GP장이 사망하여 신임 GP장이 상황을 수습하며 보고했음이 틀림없다. 경험이 일천한 초급간부인 그에게 너무 많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비무장지대 GP 간격은 약 1~2km 정도로 남북이 모두 비슷하다. GP와 GP 사이는 병력배치 없이 지뢰가 매설되어 있지만 그 지뢰들의 위치가 기록이 없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지뢰지대가 많다. 이러한 GP 간격을 통하여 남북으로 오고 가는 일은 위험하지만 가능하다. 운 좋게 지뢰만 밟지 않는다면.
지상 휴전선(군사분계선)의 길이는 248km(155마일), 즉 대략 25만m이고 지상군 병력으로 경계해야 할 해안 경계선은 휴전선의 약 6배, 그러므로 지상 휴전선 및 해안 경계선의 길이는 모두 약 1750km이다. 이 경계선에 10m 간격으로 야간 경계 병력을 2명 복초로 해서 1회 배치하는데 35만 명, 하룻밤 4교대로 경계하면 140만 명의 육군 경계 병력이 소요된다.
여기에 한국 방어계획의 필수병력으로 현 국군 병력을 합하면 약 210만 명 규모의 상비군 병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한 병력유지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답은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전방 지상 방어배치는 잘 알려진 「作計 5027 한국 방어계획」에 따른 것이다. 제목 그대로 경계가 아닌 방어계획이다. 그래서 전방 육군부대들은 방어를 위하여 「종심 배치」돼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방어배치이다. 북한도 또한 마찬가지로 종심 배치했다.
그러므로 지금 전방에 비무장지대를 통하여 오고 가는 간첩이나 비정규전 부대요원들을 발견하고 잡는 일은 전방 육군부대들의 임무가 아니다. 「作計 5027」에 간첩 잡으라는 임무는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지상(비무장지대)으로 침투해 오거나 돌아가는 간첩(공작원 등)을 잡으라고 한다면 부대배치는 현 방어배치에서 경계(對침투작전)배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방어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그러한 일렬횡대식 배치에서 敵의 전면공격(全面戰)을 당하면 6ㆍ25 때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던 것보다 더 빨리 서울을 빼앗기고 나라는 망할 것이다. 같은 부대에 (종심)방어배치와 對간첩작전(일렬횡대식) 배치는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언론은 간첩이나 어떤 인원이 비무장지대를 통하여 오거나 가면 그 지역 방어부대 지휘관을 문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송이나 기사를 크게 내보내 전방부대 지휘관들을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번 GP 참사를 계기로 또다시 전방 어느 사단 지역에서의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 월북사건과 지난 6월 같은 지역에서의 북한軍 병사 1명 월남 사건을 재론하였다.
결국 전방 제5사단장이 7월5일부로, 그리고 해당 지역 연대장·대대장·중대장·소대장이 6월20일부로 해임되었으며, 이번 GP 참사가 있었던 사단의 연대장과 수색중대장도 지난 6월24일 해임되고 말았다.
언론의 진지한 상황분석과 더욱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도 국민과 軍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 써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