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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죽은 고영희를 대신한 金正日의 네 번째 여자 정일선의 정체

브라질 위조 여권으로 美·日 여행

우종창    wooj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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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正日-정일선 소생 김한솔은 아홉 살, 마카오 내셔널 스쿨 재학
● 마카오 별장 확인… 두 채 사이에 연결통로
위조여권 사용
  북한의 최고 권력자 金正日은 올해 예순두 살로 후계자를 염두에 둘 나이다. 金正日은 최근에 사랑하는 여자 高英姬(고영희·51)를 여의었다. 고영희는 金正日의 네 여자 중 한 명이지만 사망 전까지 20여년간 평양 창광산 관저에서 金正日과 동거해 本妻와 다름없다.
 
  오랜 기간 肝질환에 시달려 왔고, 1990년대 초반에는 乳腺(유선)에 종양이 발견돼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았던 고영희는 지난 6월 말 프랑스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에 따른 행정절차를 마친 후 고영희 사체는 이목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棺(관) 속에 숨겨져 평양으로 운구돼 지난 8월 평양에서 金正日 가족과 측근들만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을 치렀다.
 
  고영희 사망 후 金正日의 「現妻」로 화려하게 등장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정일선. 『金正日의 여자는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외에 한 명이 더 있다』는 黃長燁(황장엽) 前 비서의 증언과 미국 정보기관의 오랜 추적으로 정일선의 존재는 알려져 왔으나, 나이 등 신상자료는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金正日이 정일선을 위해 사 준 별장이 체코의 프라하, 스위스의 베른, 마카오 등지에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일선이 1997년 브라질 거주 한국 교민으로 위장해 프라하 주재 미국 대사관에 미국 비자를 신청하여 미국·일본 등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일선과 함께 미국 비자를 신청한 북한인은 3명이었고, 이들 중 한 명은 정일선의 경호원 박용무였다. 박용무는 金正日 비서실 소속이다. 이들은 돈을 주고 산 브라질 교민의 여권에 자신들의 사진을 붙이는 방식으로 여권을 위조했다.
 
  1999년 1월 초, 정일선은 북한 외교관 신분의 여권을 소지하고 어린 사내아이 한 명을 데리고 마카오에 입국한 적이 있다. 경호원·의사·요리사로 추정되는 북한인 3명이 그녀와 동행했다. 마카오 경찰이 입수한 정일선 여권에 따르면, 그녀는 「장길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1975년 8월15일 생으로 되어 있었다. 정일선의 나이를 40代 중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미국 정보기관은 정일선이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이름과 나이를 허위 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학일에 모습을 드러낸 김한솔
 
   정일선과 동행한 사내아이 이름은 「김한솔」인데, 미국 정보기관과 마카오 경찰은 이 애가 金正日 소생으로 믿고 있다. 김한솔은 올해 아홉 살이며, 마카오 내셔널 스쿨에 재학 중이다. 마카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월 초 개학식에 김한솔의 모습은 보였으나 정일선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美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일선은 金正日 곁에서 고영희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 동안 金正日 전속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氏에 따르면 고영희는 4년 전 金正日과 식사하던 중 쥐고 있던 숟가락을 힘없이 떨어뜨릴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영희가 프랑스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것이 1994년이고 그 이듬해 김한솔이 출생한 것으로 미뤄 정일선에 대한 金正日의 애정 행각은 고영희가 건강을 잃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는 작년 3월 마카오로 출장을 가서 마카오 거점의 對南 공작기관 조광무역을 취재하던 중(2003년 4월호 月刊朝鮮 기사 참조) 정일선의 별장을 찾아냈다. 별장은 마카오 본토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콜로완 섬에 있었다. 南태평양과 면해 있는 이 별장은 중국과 홍콩·마카오 갑부들이 거주하는 고급 빌라 지역으로, 습기가 많고 무더운 마카오 시내와 달리 매우 쾌적했다.
 
  입구에는 경비초소와 차량 차단막이 설치돼 있었으며, 곤봉과 총(권총인지 가스총인지는 불명)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빌라 한 채 가격이 홍콩 달러로 최하 400만 달러(한국 돈 6억원)인데, 정일선은 두 채의 빌라를 갖고 있었다. 한 채는 정일선의 숙소이고, 다른 한 채는 경호원 숙소라고 마카오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두 채의 빌라는 주변의 다른 빌라와 달리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 빌라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연결해 놓았는데, 정일선과 그 아들의 경호를 위한 것이라고 마카오 경찰은 추정했다.
 
  정일선이 사는 빌라는 1층은 車庫, 2층과 3층은 가정집이었다. 빌라를 사러 온 사람처럼 위장하고 들어간 기자가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 정일선이 사는 빌라 쪽을 향해 사진을 찍자, 어디서 감시하고 있었는지 바로 경비원이 달려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라고 경고했다.
 
  기자와 경비원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그때까지 열려 있던 정일선 거주 빌라의 차고 문이 갑자기 닫혀 버렸다. 바깥에서 벌어진 수상한 낌새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듯했다.
 
  고영희 사망과 함께 등장한 정일선으로 인해 金正日 후계 구도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金正日의 나이 어린 자식들을 대신해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金正日의 매제 張成澤(장성택)이 金正日의 직접 지시에 의해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성혜림의 소생 김정남과 고영희의 두 아들 김정철-김정운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정일선의 소생 김한솔이 끼어들어 네 아들의 각축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후계 구도와 관련, 일본 정부는 최근 흥미로운 정보 하나를 입수했다. 金正日이 지난 8월 초 일본 조총련 간부에게 거액의 다이아몬드 몇 개를 주면서 『이 돈으로 내 아들 김정철을 일본에서 생활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對北 정보부서의 한 관계자는 『똑같은 내용의 정보를 우리도 입수해 진위 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몸이 허약하고 非정치적 성향이어서 일찍이 후계구도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진 고영희의 큰아들 김정철의 거취에 대해서까지 金正日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권력투쟁이 사람을 죽일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金正日의 첫 여자는 영화배우 출신 成蕙琳(성혜림)이다. 성혜림은 경남 창녕의 만석꾼 집안인 成有慶의 딸로 6·25 전쟁 전에 부모를 따라 越北해 북한의 유명 영화배우가 되었다. 북한의 對南 테러 전문부서인 사회문화부 소속의 한 공작원은 金正日과 성혜림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모의 영화배우 성혜림은 1960년대 후반 북한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성혜림은 越北 작가 이기영의 장남과 혼인한 유부녀였는데, 유부녀 성혜림과 金正日의 밀회를 주선한 사람이 「할머니 공작원」으로 널리 알려진 정경희 대외연락부 부장이다. 정경희는 영화狂인 金正日을 성혜림이 권총 사격하는 촬영장으로 안내하는 등 의도적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功을 인정받아 정경희는 오랜 기간 대외연락부 부장을 지낼 수 있었다』
 
  金正日의 관저(85호 관저)에 살았던 성혜림은 1971년 金正男을 낳았다. 신경쇠약 증세가 있었던 성혜림은 金正日이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를 총애하자 더욱 증세가 악화돼 1974년부터 병 치료를 이유로 모스크바에 나가 살았다.
 
  성혜림은 언니 성혜랑이 딸 이남옥을 데리고 1996년 모스크바를 탈출, 서방으로 망명할 때 스위스까지 따라 나갔으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모스크바로 되돌아갔다. 탈출한 이남옥은 영국인 컴퓨터 전문가와 결혼, 어머니 성혜랑을 모시고 영국에서 살고 있으며, 성혜림은 작년 7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해외를 떠돌고 있는 金正日의 長男 김정남
 
  성혜림의 소생 金正男은 올해 서른세 살로 장남이 권력을 승계하는 유교적 전통이 지켜질 경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작은 키에 비만한 체형의 김정남은 말이 아주 빠르고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버지 金正日을 빼다 박았다. 金正日처럼 총을 잘 다루고 사격술도 뛰어나며,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金正日이라고 한다.
 
  김정남은 19세가 되던 1980년부터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영어·프랑스語·러시아語·일어·중국어를 할 줄 알며 취미는 사냥·사격·여행이라고 한다. 김정남과 가까운 한 在美교포는 『김정남은 미국·일본 등 서방 세계를 거리낌없이 돌아다녔다. 1997년에는 조총련 산하의 젊은 상공인 한 사람과 같이 제주도에 들어와 여미지 식물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고 말했으나 물론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 교포에 따르면 김정남은 중국·일본·싱가포르에 이메일 도메인을 등록해 놓을 정도로 인터넷에 아주 능숙하며,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 검색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全세계에 김정남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이 5~6명쯤 되는데, 이 교포도 그중의 한 명이라고 했다.
 
  후계자 수업을 받은 김정남은 북한에서 「작은 金正日」로 불렸으며, 김정남 주변 인물들은 「새끼 비서실」로 통했다. 金正日의 비서실이 북한을 좌우하는 권력의 핵심인 데 비추어 김정남과 그의 주변 세력 역시 무시 못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모 성혜랑씨 일가가 1996년 서방으로 탈출한 뒤 김정남의 입지는 매우 위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金正日이 아들 김정남에게 『나에게만 충실하면 일없다』는 말로 달래주었다고 한다.
 
  김정남이 金正日의 눈 밖에 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년 전, 일본 공항에서 여권 위조·불법입국 혐의로 체포되면서였다. 그 후 김정남은 중국,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를 맴돌며 북한에 거의 들어가지 않고 있다. 김정남의 거주지는 金正日이 구입한 해외 별장이다. 스위스에 있는 별장은 제네바 교외 레만 호숫가에 있는데 대지 2500평에 건평이 500평쯤 되는 단독주택이며, 중국의 별장은 北京 공항 근처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고급 빌라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이 나라 대통령의 사위가 제공하는 별장에서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김정남의 위상에 대해 『그가 최근에 국가보위부內 2인자가 되었다는 말과 노동당 비서에 취임했다는 說이 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배제되었다는 게 우리의 관측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계구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金正日 신상에 변동이 생기면 올해 스물 셋인 김정철과 스물하나인 김정운보다 나이가 많은 김정남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제주도는 金正日의 처가 동네
 
  月刊朝鮮은 조선인민군 출판사가 2002년 8월에 발간한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에 끝없이 충직한 충신 중의 충신이다」는 강연 자료를 입수, 북한에서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月刊朝鮮 2003년 3월호 보도).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고영희 소생인 김정철·김정운이 성혜림 소생인 김정남을 제치고 金正日의 후계자로 浮上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영희는 金正日의 세 번째 여자다. 그녀는 성혜림이 평양을 떠난 1974년 이후 金正日의 실질적인 처가 되었다. 金正日의 두 번째 여자는 함경북도 안전국에서 전화 교환수로 일하다 중앙당 조직국으로 자리를 옮긴 김영숙(54)이다. 金正日과 김영숙 사이에는 아들이 없고 「설송」이라는 딸이 하나 있다.
 
  고영희는 1953년 생으로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 高太文의 딸이다. 제주도는 金正日에게 있어서 처가 동네가 되는 셈이다. 金正日이 한국을 答訪할 경우, 그 장소로 제주도가 거론되는 것은 이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高太文은 유도 8단으로 일본에서 이름을 날렸고, 이북 출신의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과 친했다고 한다. 高太文은 역도산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 金日成 앞에서 유도 시범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高太文은 1960년대 초, 全 가족과 함께 北送船(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갔다. 고영희 일가의 일본內 최종 거주지는 오사카市이다.
 
  고영희의 부친 高太文은 제주 高氏 족보에 이름이 남아 있다. 제주 高氏 중앙종친회에 따르면 高太文은 제주 高氏 13개派 중 하나인 영곡공派 33세손이고, 高太文의 4대조는 제주시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족보에는 高太文의 아들 勝行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이 아들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주도 현지에 내려가 보니 高太文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경면 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高太文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부친의 호적도 없었다. 고산리 이장 高祥厚씨는 『영곡공파 후손들이 지금도 고산리에 많이 살고 있으나 高太文 일가는 일제시대 때 전부 고산리를 떠난 것 같다』며 『작년에 국가정보원과 경찰에서도 高太文 가족을 찾기 위해 온 적이 있으나 헛걸음했다』고 말했다.
 
  제주 高氏 중앙종친회 관계자는 『高太文에게는 高太彦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이 동생이 일본 오사카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으며 중앙종친회와 연락이 닿는다』고 말했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有力視

 
  고영희는 1981년에 첫 소생 金正哲을, 1983년에는 둘째 아들 김정운을 낳았다. 金正哲과 김정운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김정철은 베른 국제학교 재학 중 일본 매스컴의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다.
 
  김정철과 김정운은 방학 때마다 金正日이 보낸 특별 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 이들이 평양에 갈 때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 이철이 동행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金正日의 자식들에 대해 정통한 한 소식통은 『김정철은 키가 크고 후리후리하며 미국 프로 농구 팬이다. 金正日은 김정철을 위해 전국 도처의 초대소에 농구장을 지어 주었고, 평양 신암체육관이라고 불리는 북한 간부 전용 체육관을 개조하여 「농구관」으로 개축하기도 했다.
 
  김정철의 영향으로 金正日 역시 농구에 관심이 많다. 김정철이 약골로 잔병치레가 많은 데 비해 동생 김정운은 머리가 뛰어나며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 金正日은 김정철보다는 김정운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對北전문가는 『만일 金正日이 고영희 소생에서 자신의 후계자를 택한다면 김정운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金正日의 소생 가운데 장남인 김정남과 그의 배다른 동생 김정철-김정운 간에는 이미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며 하나의 예를 들었다.
 
  『2002년 6월경, 김정철-김정운 형제가 김정남을 제거하기 위해 중국 폭력조직을 고용했다. 김정남이 거주하는 北京의 빌라는 경계가 삼엄해 이들은 김정남이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김정남은 빌라 부근의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다 습격을 받았으나 김정남의 경호원들이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겼다』
 
 
 
 고영희 여동생 부부는 미국에서 망명생활
 
   김정철-김정운 형제를 스위스에서 뒷바라지한 사람은 고영희의 여동생 고영숙(46)이다. 고영숙은 고영희보다 다섯 살 아래다. 고영숙은 남편 朴모와 함께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외교관 신분으로 스위스에 거주했다. 외교관 여권에 기재된 고영숙의 가명은 「정일선」이었다. 정일선이란 가명은 金正日의 현재 동거녀 이름과 같다.
 
  고영숙 부부는 1998년 5월 미국에 망명하여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月刊朝鮮 2003년 9월호 기사 참조). 金正日의 처제인 고영숙 부부는 망명 후 미국 정보기관에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고영숙 부부로부터 金正日이 뉴욕과 런던의 주식시장 및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뉴욕 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동결해 버렸다고 한다.
 
  고영숙은 망명 동기에 대해 『金正日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것이 많아 그 때문에 살해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金正日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氏는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고영희의 여동생 부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金正日-고영희 부부와 자주 식사를 하고 놀았다. 고영숙 아들은 고영희의 둘째 아들 김정운과 친해 농구도 함께 하곤 했다. 내가 1996년에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였다가 1998년 6월에 돌아가니 고영희 여동생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지모토 겐지氏에 따르면 金正日은 제주도 출신의 北送 재일교포 고영희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한다.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金正日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영희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여성이라는 것이 후지모토 겐지氏의 평가다. 고영희 여동생이 비록 미국으로 탈출했지만 고영희에 대한 金正日의 사랑과 신뢰에는 금이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망명 직전 고영숙 부부는 일본 오사카에서 음식점을 하는 작은아버지 高太彦씨와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정남과 가까운 한 在美교포는 『1997년경 일본에 온 고영숙 부부와 그 일행 네 명을 高太彦씨 가게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불고기와 한식을 취급하는 대형 요리집이었는데 70세 가량의 高太彦씨는 건강이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1994년 7월 金日成 急死 후 金正日이 위기에 몰렸던 것은 확실하다. 金正日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氏에 따르면 이즈음 金正日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곁에 권총을 두고 잤다고 한다. 이를 보고 고영희가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며 치워 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위기감 속에서 金正日의 처형 성혜랑 일가가 1996년 북한을 탈출했고, 1997년에는 黃長燁씨가 김덕홍씨와 함께 탈북했다. 1998년에는 金正日의 처제 고영숙 일가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북한 고위층의 탈북 행렬은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끝이 났다.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은 결과적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던 金正日 체제를 회생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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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7-12-18) 찬성 : 17   반대 : 20
저게 무슨 호화빌라 미국의 비벌리힐즈 상류층 고급주택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규모도 작고 검소해보이더구먼 그리고 성혜림이 미모의 여배우라고 칭하는데 월간좇선아!!!! 자꾸 김정일의 여자들보고 미모타령할래 정신차렷!!!! 그러고싶음 대한민국의 미녀여배우들에 대해서 실컷 기사써라!!!! 물론 가난한 북한주민들의 입장에서야 초호화판 생활이겠지만....!!!!
  박혜연    (2017-12-18) 찬성 : 6   반대 : 9
정일선이 누꼬 성혜림이나 고영희는 들어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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