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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보수진영 최대의 敵은 制度보수 속에 둥지를 튼 左向기회주의자들이다

허문도    asadalm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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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역사와 국민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수호하라고 쥐어준 칼을 휘두를 생각이 없는 것일까. 李會昌 후보가 지난 大選 때 좌파 정권 등장의 위험을 경고하지 않은 것은 범죄행위라 할 만 하다

許 文 道
1940년 경남 고성 출생. 서울大 농대 졸업. 日 도쿄大 박사과정 수료. 조선일보 도쿄특파원ㆍ외신부 차장. 駐日 대사관 공보관, 문화공보부 차관, 대통령 정무1수석비서관, 통일원 장관 역임.
이념대결 전선에서 철수한 制度보수
  『만약 제군들이 정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할 용의가 없다면, 만약 제군들이 배와 가슴팍을 진흙 바닥에 깔고 기는 것이 싫다면, 제군들은 혁명가가 아니라 단지 공론가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이것을 제안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렇게 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혁명을 열강의 간섭戰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對독일 단독강화를 결단하자, 트로츠키 등 당 간부들의 강경한 반대 앞에 뱉은 말이다.
 
  盧武鉉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親美 쪽으로 君子豹變(군자표변)의 태도를 보이자, 주로 지지자들로부터 「눈치 보고」, 「아양떨고」, 「反민족적 행위」, 「치욕적 굴욕외교」 등의 말을 들었다는데, 이들을 향해 盧대통령은 위에 든 레닌의 말을 들려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볼셰비키 혁명이든지, 선거혁명이든지 혁명에 성공한 자들은 하나같이 고도의 전술적 유연성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임을, 盧대통령의 對美 적응에 한숨 돌리는 한국의 制度(제도)보수는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YS와 DJ가 다툰 1992년 大選 때부터 운동권으로부터 선거혁명이란 말이 나와 있었다. 「盧武鉉 대통령이 386 운동권을 청와대와 권력의 핵심에 배치」(조선일보 時論, 김석준)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초에 번지기 시작한 말인 「운동권」은 무슨 스포츠클럽 같은 게 아니고 원래 「혁명운동권」의 약어였다. 운동권을 통과하면서 젊은이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敎義에 통달하여, 위장취업 등의 실천으로 혁명가의 길로 나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敎義대로라면 대중을 향해 혁명을 지도하는 혁명당이 지하에 남았을 것이다.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복지사회가 진행되고, 東西냉전이 종식되고, 세월에 풍화되면서, 운동권은 생활인으로 많이 퇴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에 인민민주주의(PD)다, 민족해방(NL)이다 하는 말이 돌아다닌 것을 보면 北의 金日成이 1970년대에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을 내걸었던 것을 상기할 때에, 운동권이 지하나 공중 어디에선가 북한 정권과 접점이 생겨나 있는 것 같다.
 
  한국의 制度보수는 냉전 종식과 함께 결론도 없이 이념대결의 전선에서 철수했다. 東西냉전 종식으로 운동권의 전술공간이 일거에 오히려 확장됐다.
 
 
 
 의도된 난맥, 계획된 수순
 
  운동권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은 혁명교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국가의 4大 권력장치로 「교육」과 「선전」과 「군대」와 「감옥」을 든다. 그들은 주로 교육과 선전(매스컴) 쪽으로 地步(지보)를 넓힌 것 같다. 지하에 혁명당이 남았다면, 자본주의 몰락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지금쯤은 버렸겠지만,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독재 권력장악의 목표는 견지하고 있을 것이다. 연방제 통일로 가는 불가결한 중간단계이기 때문이다. 지하당이 운동권 출신을 챙기지 않을 것이라 본다면 어리석을 것이다.
 
  운동권에서 생활인으로 퇴화한 자들이나, 운동권 출신에 의해 교양받은, 그러나 혁명가는 될 수 없는 대중들에게 어떤 성향이 남았을까. 親北과 親프롤레타리아(노동자)가 아니겠는가. 親北이므로 동시에 反美다. 이들을 지지기반의 핵심으로 하는 정권은 좌파정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핵심에 운동권이 포진한 盧武鉉 정권이 처음부터 親노동자를 공언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10월 혁명(1917)을 전후한 정치 지도에서 레닌은 다음 몇 가지를 얘기하고 있다.
 
  『노동자가 새 정부(2월혁명 후의 부르주아 정권)를 지지할 게 아니고, 새 정부가 노동자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농민은 혁명에서 득을 많이 보았지만, 농민에게 원조를 주고 있는 것은… 그건 우리가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당시 러시아는 8할이 농민)
 
  『볼셰비키당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목표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합법성은 물론, 입헌적으로 표명된 다수자 의견(즉, 국회의결)까지도 구속받을 것 없다』
 
  『프롤레타리아는 먼저 부르주아를 타도하여 국가권력을 탈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 착취자(자본주)의 부담으로, 혁명적 방식으로 근로자의 경제적 요구를 만족시켜 줌으로써, 대다수 근로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도구로 이 국가권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레닌을 보고 요즘 한국신문들이 외쳐 대듯이, 「法治를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든지, 「정부가 지지기반을 돈으로 매수한다」며 비난한다든지, 「정부가 원칙 없이 너무 노조에 굴복한다」 라는 등으로 을러대 봐야 씨가 먹히겠는가.
 
  100여 일이 지난 盧武鉉 국정 오늘의 도달점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두산중공업 철도 노사분규, 화물연대 파업, 전교조 NEIS 문제, 한총련문제 등을 통과하면서 국정혼란이라는 소리가 떴다. 신문들이 다투어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人治는 곤란하다, 리더십 미달이다, 권위를 세우라, 시스템으로 일하라, 코드 따지지 말라, 원칙을 관철하라, 조정·총괄 기능이 모자란다 등. 그러나 이 모든 지적들이 수용되고 소화·집행되었다 해도 사태는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
 
  문제는 더 깊고 원천적인 데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이 자유 민주 자본주의, 즉 「오른쪽」 이데올로기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나라이다. 여기에 갑자기 「왼쪽」 오리엔테이션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권이 등장하게 되니, 국가의 손발인 정부관료들과 주인인 국민들의 정체성 감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 정체성 위기를 맞이하고 만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새 정권 등장과 함께 일어난 국가정체성의 위기이다. 개인의 경우에도 정체성에 위기가 오면 자기 定義(정의)에 지장을 초래하고(자기가 무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는 것), 방향 감각에 不調가 일어나고, 시간 전망을 상실하고, 활기가 사라지고 능동적 긴장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으로 진단되어 있다.
 
  나라 일은 종국적이고 구체적으로는 관료들이 한다. 한국 관료들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전문화되고 시스템화되어 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오른쪽 이데올로기를 핵심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위에서 입 닫고 자리만 지켜 줘도 80점 수준으로 국가를 경영해 내게 되어 있다.
 
  새 정권 등장과 함께 이 관료들에게 정체성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정체성 혼란이 일어나면, 구체적으로 감독당하지 않는 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리로 가야 할지, 저리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게 하는 심리적 주박에 걸려 든다. 끝내는 창의와 열정이 사라져 버린다.
 
  국가 정체성이란 한 국가의 고유성을 두고서 그 지속성과 불변성(일관성)에 대해서 갖는 주관적 감이다. 그러므로 정체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단시일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他者가 밖으로부터 뜯어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닌에게도 혁명 다음 단계로 혁명보다는 훨씬 어렵다고 스스로 느낀 경제건설의 과제를 앞에 하여, 舊제정 러시아가 남긴 관료들의 정체성 혼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관료의 억제수단으로 노동조합을 이용하려 들었다. 레닌은 勞組를 「국가권력의 저수지」라면서 정부기관에 대한 대중의 직접통제를 조직하는 전면에 세우고자 했다. 레닌은 『노동조합은 학교이고, 특히 공산주의의 학교다』라고 했다.
 
  신문보도(5월22일, 조선데스크)를 보니, 3년여 간의 준비를 거쳐 민주노총, 전국농민연합, 전국빈민연합 등 43개 단체가 아울러진 거대조직 「전국민중연대」가 지난 5월 출범했다 한다.
 
 
 
 보수의 사명과 역할을 못 한 한나라당
 
  이쯤 해서 국가의 세금으로 활동하는 制度보수 최대의 임무가 혼란과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키는(保守하는) 일임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保守란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무엇인가를 지키려는 자세와 실천이 보수다. 한국의 경우 이념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지만, 그 이념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1950년대와 1960년대와는 다르다. 지금은 이같은 이념에 의해, 민족국가가 산업화·민주화를 성취해 냄으로써 이룩한 결과물을 지키는(보수하는) 것이 보수다. 즉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울타리(韓美동맹)를 지키는 것이 보수다.
 
  制度보수가 스스로의 사명과 光輝(광휘)로운 실적을 딛고서 공적 프라이드에 눈뜨지 못하고, 보수를 깨려는 敵方이, 혹은 스스로의 몸체 안에 스며든 게릴라가 구사하는 「수구」라는 선전공세에 주눅이 든다면, 그리하여 敵方이 제공한 「수구」 잣대로 制度보수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 수밖에 달리 궁리가 없다면, 그런 사람들은 장사나 할 것이지, 국민 위한다는 公事한답시고 制度보수 속에 몸 둘 일은 아니다.
 
  한 달여 전에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할 것을 마음먹고 있는 한 인사와 만났다. 앉자마자 그는 요즘 20~30代가 선거인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크며, 그들이 또 어떻게 좌경화되어 있는지를 열기 있게 늘어 놓았다.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을 위해서라도 「왼쪽」을 배려하면서 「왼쪽」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얘기로 들렸다.
 
  필자는 작년 大選에서의 패인이 한나라당이 보수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있다는 얘기를 하려 했으나 귀 기울이려 들지 않았다.
 
  영국의 보수당은 대처 여사가 당수가 되던 1970년대 중반, 왼쪽으로 노동당 쪽으로 한없이 傾斜(경사)하여 그 색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에 다다라 있었다. 보수당을 보수의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그는 여론에 영합한 것이 아니라 여론과 당을 지도했다. 수상이 된 대처는 훗날 新자유주의로 이름 붙인 노선으로 망해 가던 영국을 중흥시켰고, 20세기 최장의 집권기록을 세웠다.
 
  대처 수상의 회고록엔 소녀 시절을 회상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나기 3~4년 前의 시점에 있은 총선에서 당시의 보수당 볼드윈 수상이 국민의 평화여론을 의식하여,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히틀러 재무장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도 않고, 군비증강을 이슈화하지 않은 것을 비판해 놓고 있다.
 
  작년 大選에서 李會昌 후보와 한나라당은 대항후보가 스스로 좌파성을 명백히 해 보이는데도 좌파정권 등장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정면에서 경고하지 않았다. 좌파정권 등장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국민의 생활에 끼칠 파란을 생각하면, 李會昌 후보가 위험을 경고하지 않은 부작위는 범죄행위라 할 만하다. 그와 그의 당은 왼쪽을 쳐다보는 左向(좌향) 기회주의 속에 허우적거렸다.
 
 
 
 
기회주의는 최대의 敵이다

 
  大選 운동 기간에 촛불시위가 빈발하고 있었다. 李會昌 후보는 TV에 나와 부시 美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하라 하고 불행을 당한 여중생 집을 찾아갔다. 이같은 그의 左向기회주의 퍼포먼스가 결국은 상대진영이 일으키려는 反美무드 조성에 일조를 하고, 일조를 한 정도만큼 표는 상대한테 갈 것이라는 너무도 간단한 계산을 그와 한나라당은 정말 몰랐을까.
 
  좌파정권 등장의 위험을 경고하지 않음으로써, 안이하기만 하고 주인의식이 박약한 다수 보수 중산층의 잠을 깨우는 데 한나라당은 실패했고, 결과는 패퇴였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黨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는 문제를 두고서 패인분석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黨대표 경선에 나온 6명이 모두 하나같이 左右를 함께 거느리겠다고 하고, 자기가 어떻게 좌파의 팻말이 되어 버린 개혁에 가까운 보수인가를 나타내 보려는 레토릭을 동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속절없는 左向기회주의다.
 
  한 후보는 보수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한다고 했다. 자기실천에 관한 반성이 빠져 있고, 좌파의 몸단속을 선망하고, 무엇보다 의회內 다수당이면서 오늘날 金正日의 核공갈로 귀착되어 있는 햇볕정책을 견제·저지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서 무슨 보수의 반성이라 하는가. 반성하는 보수로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左向기회주의라 할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시즘 혁명운동 내부에서 산견되는 기회주의를 최대의 亂賊(난적)시하고 배신자로 낙인 찍었다. 무릇 모든 조직사회에서 창의와 열정으로 일하려는 자들이 만나는 敵은 내부에 있고,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기회주의자가 바로 그들이다. 레닌도 같은 어려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날 한국 보수진영內의 최대의 난적은 制度보수 속에 둥지를 튼 左向기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역사와 국민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수호하라고 쥐어 준 칼을 휘두를 생각이 없는 것일까. 정체성 위기가 일으킨 파란으로 잠을 깬 중산층들이 분노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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