魂에다 나라의 제복 입힌 것이 국민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역사가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에릭 홉스봄이 近代史의 규명에 있어서 「국민」(nation)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를 강조해 보이고자 核전쟁을 등장시키는 기이한 가정법을 쓰고 있다. 北의 金正日이 核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지라, 한번 들어 본다.
『核전쟁 후의 어느 날, 한 우주공간에 사는 역사가가 그의 銀河(은하)의 센서가 감지한 아득히 먼 곳의 작은 카타스트로피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금은 폐허로 변한 혹성에 내려 선 것을 가정해 보자. 완성된 核 병기는 인간은 살상해도 재물은 별로 파괴치 않도록 기술을 쓰니까, 지구상에는 도서관이나 공문서 보관소가 남아 있어서, 우주인은 거기 가서 조사하게 될 것이다. 조금 뒤져 본 다음, 이 관찰자는 지구라는 혹성의 과거 2세기간의 인류 역사가 「네이션」(국민)이란 말과 거기서 파생하는 어휘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내셔날리즘의 역사와 현재』浜林正夫 등 譯·日本 大月書店)
비근하게는 보통 사람들이 「이것은 내 나라다」,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실감할 수 있으면 거기는 이미 「국민」이 생겨나 있다.
「국민」이란 개인이 주체가 되어 형성된 정치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평등하게, 차별 없이 파악된 국가 구성원이 「국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를 지킬 자는 「국민」말고는 없다. 그래서 국가를 위한 자기 희생이야 말로 「국민」 제일의 의무인 것이다. 「국민」이 된다는 것은 조국애의 실천자임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이같은 의미의 「국민」은 근대 이후에 창출된 것임을,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는 독립전쟁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국민」이 생겨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생겨날 때의 「국민」은 神聖(신성)함과 혁명성을 갖는 임팩트 강한 말이었다. 프랑스 혁명기, 국민위병 순찰대의 誰何(수하) 구호가 『그대는 「국민」인가』였다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은 민족의 자립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해서 등장한 것이다. 단일의 민족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하나뿐인 국민국가에서 그 전형을 보게 된다.
프랑스나 미국에 처음 「국민」이 등장했을 때, 그 나라들은 단일민족도 아니고 단일언어도 아니었다.
우리 한국은 일제 식민지였을 때도 민족과 언어는 하나였다. 서양 기준으로는 이 예외적인 현상이 서양의 발명품인「국민」을 안이하게 쉽게 알도록 만들었다. 즉, 나라만 있으면 「국민」은 절로 생겨나는 줄 알게 하였다.
루소는 「魂에다가 나라의 제복을 입힌 것이 국민」이라 했지만, 이 제복은 군복이므로 「국민」의 제일의 의무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된다. 이같은 「국민」을 의도적으로 창출하려는 사상 및 열망이 바로 「내셔널리즘」이다.
헌법에서 主權在民을 아무리 못 박아 놓아도 식민지에서 갓 해방된 우리나라에 「국민」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짊어질 요원으로서의 「국민」(네이션)이 창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간단히 얘기하면 「국가」는 1940년대 말에 李承晩(이승만)이 만들었지만, 「국민」은 40여 년이 소요되어, 산업화가 달성되고 민주화가 궤도에 오른 80년대 말에서야 모양을 갖추었다고(성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민주화가 고비를 넘기면서 한국은 겨우 근대를 통과한 것이다.
나라의 위기를 스스로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내셔널리즘에 혈통의 고집이 접합되면 민족주의자라 하는 것이 더 맞다. 내셔널리즘은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할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정치원리(어네스트 겔너)라고도 하는데, 연구자들이 좋아하는 민족주의의 가장 간명한 정의로 통한다.
이 경우,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케 하는 역사적·사회적 요인으로 들어지는 것이 산업화이다. 산업화가 요구하는 분업의 구조와 보편교육이 근대적 현상인 「네이션」(민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근대적 조국의 실체는 산업화로 이룩되고 그 주인인 「국민」은 민주화로 앉을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국민국가(nation state) 속에 제자리를 차지한 「시민」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국민」에의 귀속에 집중해 놓았다면, 「국민을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기」까지 하려는 내면화된 지향이 보통 사람에게 생겨났다면, 거기 「국민」이 있는 것이다.
민주혁명의 사도인 루소가 「사회 계약론」에서 「모든 사람은 필요하다면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언한 이후, 「국민」이란, 국가를 위해 함께 죽는 자의 공동체인 동시에, 적을 함께 죽이는 자들의 공동체인지라, 「국민국가」란 이중의 의미로 「죽음의 공동체」(酒井直樹)라고도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국민」출현의 객관 조건을 완비해 낸 대한민국에 「국민」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대한민국에는 「국민」이 없는 것 같다함은, 대한민국을 근본에서 부정하려는 敵方(적방)이 국제질서를 파괴하여서 우리는 갖지 않은 궁극의 절대 병기인 核을 만들면서 전쟁공갈을 치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 사람들은 덤덤하고 태평하고, 이 사태를 보는 자세가 「소 닭 쳐다보듯」 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나라 같으면, 이웃의 핵무장 진행이 알려지면 서둘러 핵을 갖자든지, 방사성 낙진이 대량 발생하기 전에 초기 공장상태에서 기습파괴를 하자든지, 난리를 치고 이도 저도 못 하면 벌벌 떨기라도 할 텐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사 태평하기만 하다. 떠는 사람은 더욱 없다. 오히려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에서 걱정을 하고 근심이 태산 같다는 보도가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은 최소한도 「죽음의 공동체」 같은 것은 아니다. 국가의 위기를 스스로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일어서는 것이 자기는 아닌 남의 일로만 느껴지는 국민은 「국민 미달」이다.
金正日의 핵을 자기 일로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에 「국민」이 없다는 얘기다.
노예의식의 잔재 極限까지 불태워야
대한민국에 「국민」이 空洞化되어 있는 이유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는 우리 역사가 우리 사람들의 뼈 속 깊이 남긴 노예의식이고, 또 하나는 시류를 타고 우리 국민을 잠식한 좌파 의식이다. 「국민」이란 사상과는 모순관계에 있는 「계급」발상이 상당 부분 「국민」을 잠식한 것으로 보인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의하면, 목숨을 건 상호투쟁에서, 목숨을 구걸하여 노동을 바치기로 한 쪽이 노예가 된다. 노동을 바치는 한 안전문제는 노예가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17세기 초반의 정묘·병자호란 이래, 우리는 나라의 안전문제를 큰 힘에 기대기만 하고 스스로는 고심할 필요가 없는 긴 역사 속에 있었다. 나라의 안전문제를 가지고 국민 스스로가 긴장하지 않는 버릇이 역사를 통해 국민들의 태도에 배어 났다.
6·25 전쟁만 해도, 1次대전을 계기로 모든 전쟁은 국민 전원이 전쟁수행 태세에 편입되는 총력전 시대로 접어들어 있었지만, 軍은 몰라도 국민들은 그 중요한 역사체험의 계기에서, 나라의 준비가 없기도 했지만, 조국 방위전쟁에 거리를 둔 산하를 헤매는 피난 대중일 뿐이었다.
국군이 있고 나서, 병역의무는 청년과 그 가족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 것인가. 그것은 「국민」으로서 완성되는 명예의 기회이기보다는, 피하고 싶기만 한 끝없는 重荷(중하)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것이 아닌가. 국제시합에 우승한 운동선수에게 병역의무 면제를 상으로 주는 행위는, 오랜 기간 패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온 열등 민족에게나 있을 법한, 변형된 노예의식의 잔존물이라 할 것이다.
민족국가란 혼이 뛰노는 마당을 공유하는 祭禮(제례)공동체이면서, 영광과 悔悟(회오)의 추억을 공유하는 방위공동체이기도 하다.
대양의 창파를 헤치고, 풍찬 노숙으로 대륙을 헤맨 父祖(부조)의 선각이 세운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낸 선배들이 바친 간난과 신산과 피땀과 고뇌를 상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딛고 선 민족국가의 「국민」 자리에 우리는 바로 서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의식의 심층에 남긴 노예의식 잔재의 극한까지도 불태울 것을 요구한다. 오늘 우리가 「국민국가」가 「죽음의 공동체」임을 자각할 수 있으면 「삶의 공동체」는 문을 열 것이다.
좌파의식 - 계급문제
공산주의의 원조, 칼 마르크스가 1848년의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는 조국을 갖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했을 때의 「조국」이란 18세기 이래 유럽에 퍼지고 있던 「국민국가」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챔피언이 노동자인 만큼, 「계급」을 「국민」에 대치시켜 놓은 「공산당 선언」은 反내셔널리즘 사상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마르크스를 원조로 하는 좌파사상이 번지면 「국민국가」인 대한민국 속에 「국민」이 설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에는 TV 화면에도 좌파적 언동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한국에서 스스로를 좌파 혹은 좌익이라고 드러내어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물으면 자기는 우파라고 얘기하는 인사라도 얘기하다 보면 우파로서의 의식내용을 가진 경우에 부딪히기는 어렵다.
분명한 우파 의식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그가 폭력에 의해 스스로의 사상을 실천하려 들지 않을지라도, 극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을 본다. 얼굴 없는 좌파와 의식 없는 우파가 함께 극소수의 「의식 우파」를 몰아 붙이면서 얼크러져 있는 것이 21세기 초두 한국사회의 사상풍경이라 할 것이다. 역사는 의식이 움직인다. 다수의 의식 있는 좌파 쪽으로 사회가 기우는 것을 당분간 막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을 짚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얼굴 없는 좌파를 알아보자면 언동을 보고 가늠할 수밖에 없다. 가령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번에 은행 인수 문제를 놓고 당해 노조 및 그 상부 노조의 대표와 함께 3者 대면을 하여 방침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때 어떤 결론을 냈는지, 취임 후 어떻게 그 결론을 실행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당선자가 마음속에 3者 대면의 논의 결과만으로 정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계급독재의 발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어떤 경우에도 기업 이해의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표의 의사만으로 전체 사회의 뭔가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발상의 원천에는 공산주의의 원조인 마르크스가 있다. 그는 「근대공업에 의해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는 일체의 착취를 없이하고 인류를 최종적으로 해방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했던 것 아닌가.
金正日의 핵 공갈
오늘날 한국의 좌파는 역시 공산주의의 원론 정도는 졸업하고 親北(정권)으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조 때 明나라는 망했는데 조선이 小中華라고 버틴 주자학자들 생각이 난다. 한국의 좌파들은 그 출발이 좀더 양심적이고, 인간주의적이고, 좀더 윤리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같은 初心(초심)이 위대한 例證者(예증자)요 반면 교사이기도 한 역사 앞에 눈감아도 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金正日의 손에 핵을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주권적 의지 관철의 수단으로 정치병기가 되고만 핵이 金正日의 손에 남게 되어, 겁 많은 한국의 우파를 상대로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 민족 앞에 도대체 어떤 전망이 열리겠는가.
세계가 金正日 손에 핵을 남겨 놓고 있을 것 같은가. 1985년 제네바에서 미국의 레이건, 소련의 고르바초프 두 頂上이 만나 『핵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합의했다』를 발표했다. 당시 美·蘇는 각각 2만 내지 3만 발의 핵탄, TNT로 환산하면 200억t 내지 300억t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 頂上의 합의가 핵시대에 轉機를 가져왔고, 이후 핵은 줄여 가는 쪽으로 세계질서의 큰 틀이 잡혔다.
그러나 오늘날도 세계질서의 기본은 핵질서 위에 구축되어 있다. 金正日이 국민을 굶겨 가면서까지 핵을 만들었다고 하여, 北核이 동북아에 일으킬 연쇄반응과 이로 인한 세계평화 질서의 교란을 세계와 미국이 묵인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고구려 제3대 大武神王 때에 漢의 요동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군략 회의에서는 출성하여 정면대결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재상 乙豆智(을두지)가 가로채었다. 『小敵이 강하게 나오면 大敵의 사로잡힘이 됩니다』(小敵之强, 大敵之擒)라면서, 성문을 닫고 장기 농성에 들어가기를 권했다. 을두지의 안이 채택되었는데, 고구려는 위기를 넘겼다.(三國史記. 고구려본기. 大武神王11년)
아시아의 3류 민족으로 전락할 것인가
을두지의 「小敵之强, 大敵之擒」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이로써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손자병법이 전해져 있었음을 알겠는데, 반도에 우리 민족이 살아 남게 되는 지혜의 하나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金正日이 지금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하고 있는 짓을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唐(당)나라에 대응하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金正日 핵 도박의 결말은 수많은 동족의 살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통 큰 金正日이 이런 일로 눈 하나 깜짝 않겠지만, 그 저쪽에서 기다리는 것은 金正日 체제의 멸망일 뿐이다.
金正日의 핵을 「민족의 재산」이라 하는 철부지들에게 두 가지를 더 지적해 두겠다. 金正日의 핵은 민족의 재산이기 전에 反민족적이다.
해방 직후 좌익들은 연합국의 신탁통치안에 찬성하여 외세에다 민족의 운명을 맡기려 들더니, 한반도 최대의 좌익모험주의 金正日은 세계 핵질서를 건드려서 열강의 간섭을 오늘 한반도 위로 불러들이고 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따라, 金日成이 내건 「민족해방 인민민주혁명 노선」을 누군가가 들먹이겠지만, 한국이 「미제」의 식민지라고? 사회과학을 바로 알아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할 것이다.
韓美동맹, 그건 위대한 경세가 李承晩이 거의 獨力으로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울타리였다. 한국이 「미제」에 착취당한 것이 아니라, 이 울타리로 인해 대한민국은 남북 7000만을 먹여 살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번영구조를 한반도 위에 구축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金正日의 핵이 反민족적인 또 하나의 측면은 한국의 시장경제와 그 경쟁력이 金正日의 핵 도박 과정에서 그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핵 도박으로 군사긴장이 높아지면 어떤 외자가 이 땅에 남아 있겠나. 우리 경제가 IMF 관리의 면역주사를 맞은 것은 아니다.
21세기 우리 민족의 큰 진로의 하나는 대륙의 시장 쪽에 있어 보이는데, 거기서의 경쟁상대는 세계 최강의 미국, 일본, EU(유럽연합)이다. 대륙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에 21세기 우리 민족의 進運이 달려 있다. 金正日이 핵을 손털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주저앉을 것이고, 민족사상 드물게 맞이한 이 호기는 무산될 것이고, 우리는 아시아의 3류 민족으로 전락할 것이다.
金正日의 핵보다 더한 反민족주의가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核전쟁 후의 어느 날, 한 우주공간에 사는 역사가가 그의 銀河(은하)의 센서가 감지한 아득히 먼 곳의 작은 카타스트로피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금은 폐허로 변한 혹성에 내려 선 것을 가정해 보자. 완성된 核 병기는 인간은 살상해도 재물은 별로 파괴치 않도록 기술을 쓰니까, 지구상에는 도서관이나 공문서 보관소가 남아 있어서, 우주인은 거기 가서 조사하게 될 것이다. 조금 뒤져 본 다음, 이 관찰자는 지구라는 혹성의 과거 2세기간의 인류 역사가 「네이션」(국민)이란 말과 거기서 파생하는 어휘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내셔날리즘의 역사와 현재』浜林正夫 등 譯·日本 大月書店)
비근하게는 보통 사람들이 「이것은 내 나라다」,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실감할 수 있으면 거기는 이미 「국민」이 생겨나 있다.
「국민」이란 개인이 주체가 되어 형성된 정치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평등하게, 차별 없이 파악된 국가 구성원이 「국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를 지킬 자는 「국민」말고는 없다. 그래서 국가를 위한 자기 희생이야 말로 「국민」 제일의 의무인 것이다. 「국민」이 된다는 것은 조국애의 실천자임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이같은 의미의 「국민」은 근대 이후에 창출된 것임을,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는 독립전쟁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국민」이 생겨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생겨날 때의 「국민」은 神聖(신성)함과 혁명성을 갖는 임팩트 강한 말이었다. 프랑스 혁명기, 국민위병 순찰대의 誰何(수하) 구호가 『그대는 「국민」인가』였다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은 민족의 자립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해서 등장한 것이다. 단일의 민족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하나뿐인 국민국가에서 그 전형을 보게 된다.
프랑스나 미국에 처음 「국민」이 등장했을 때, 그 나라들은 단일민족도 아니고 단일언어도 아니었다.
우리 한국은 일제 식민지였을 때도 민족과 언어는 하나였다. 서양 기준으로는 이 예외적인 현상이 서양의 발명품인「국민」을 안이하게 쉽게 알도록 만들었다. 즉, 나라만 있으면 「국민」은 절로 생겨나는 줄 알게 하였다.
루소는 「魂에다가 나라의 제복을 입힌 것이 국민」이라 했지만, 이 제복은 군복이므로 「국민」의 제일의 의무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된다. 이같은 「국민」을 의도적으로 창출하려는 사상 및 열망이 바로 「내셔널리즘」이다.
헌법에서 主權在民을 아무리 못 박아 놓아도 식민지에서 갓 해방된 우리나라에 「국민」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짊어질 요원으로서의 「국민」(네이션)이 창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간단히 얘기하면 「국가」는 1940년대 말에 李承晩(이승만)이 만들었지만, 「국민」은 40여 년이 소요되어, 산업화가 달성되고 민주화가 궤도에 오른 80년대 말에서야 모양을 갖추었다고(성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민주화가 고비를 넘기면서 한국은 겨우 근대를 통과한 것이다.

내셔널리즘에 혈통의 고집이 접합되면 민족주의자라 하는 것이 더 맞다. 내셔널리즘은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할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정치원리(어네스트 겔너)라고도 하는데, 연구자들이 좋아하는 민족주의의 가장 간명한 정의로 통한다.
이 경우,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케 하는 역사적·사회적 요인으로 들어지는 것이 산업화이다. 산업화가 요구하는 분업의 구조와 보편교육이 근대적 현상인 「네이션」(민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근대적 조국의 실체는 산업화로 이룩되고 그 주인인 「국민」은 민주화로 앉을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국민국가(nation state) 속에 제자리를 차지한 「시민」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국민」에의 귀속에 집중해 놓았다면, 「국민을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기」까지 하려는 내면화된 지향이 보통 사람에게 생겨났다면, 거기 「국민」이 있는 것이다.
민주혁명의 사도인 루소가 「사회 계약론」에서 「모든 사람은 필요하다면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언한 이후, 「국민」이란, 국가를 위해 함께 죽는 자의 공동체인 동시에, 적을 함께 죽이는 자들의 공동체인지라, 「국민국가」란 이중의 의미로 「죽음의 공동체」(酒井直樹)라고도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국민」출현의 객관 조건을 완비해 낸 대한민국에 「국민」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대한민국에는 「국민」이 없는 것 같다함은, 대한민국을 근본에서 부정하려는 敵方(적방)이 국제질서를 파괴하여서 우리는 갖지 않은 궁극의 절대 병기인 核을 만들면서 전쟁공갈을 치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 사람들은 덤덤하고 태평하고, 이 사태를 보는 자세가 「소 닭 쳐다보듯」 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나라 같으면, 이웃의 핵무장 진행이 알려지면 서둘러 핵을 갖자든지, 방사성 낙진이 대량 발생하기 전에 초기 공장상태에서 기습파괴를 하자든지, 난리를 치고 이도 저도 못 하면 벌벌 떨기라도 할 텐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사 태평하기만 하다. 떠는 사람은 더욱 없다. 오히려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에서 걱정을 하고 근심이 태산 같다는 보도가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은 최소한도 「죽음의 공동체」 같은 것은 아니다. 국가의 위기를 스스로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일어서는 것이 자기는 아닌 남의 일로만 느껴지는 국민은 「국민 미달」이다.
金正日의 핵을 자기 일로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에 「국민」이 없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에 「국민」이 空洞化되어 있는 이유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는 우리 역사가 우리 사람들의 뼈 속 깊이 남긴 노예의식이고, 또 하나는 시류를 타고 우리 국민을 잠식한 좌파 의식이다. 「국민」이란 사상과는 모순관계에 있는 「계급」발상이 상당 부분 「국민」을 잠식한 것으로 보인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의하면, 목숨을 건 상호투쟁에서, 목숨을 구걸하여 노동을 바치기로 한 쪽이 노예가 된다. 노동을 바치는 한 안전문제는 노예가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17세기 초반의 정묘·병자호란 이래, 우리는 나라의 안전문제를 큰 힘에 기대기만 하고 스스로는 고심할 필요가 없는 긴 역사 속에 있었다. 나라의 안전문제를 가지고 국민 스스로가 긴장하지 않는 버릇이 역사를 통해 국민들의 태도에 배어 났다.
6·25 전쟁만 해도, 1次대전을 계기로 모든 전쟁은 국민 전원이 전쟁수행 태세에 편입되는 총력전 시대로 접어들어 있었지만, 軍은 몰라도 국민들은 그 중요한 역사체험의 계기에서, 나라의 준비가 없기도 했지만, 조국 방위전쟁에 거리를 둔 산하를 헤매는 피난 대중일 뿐이었다.
국군이 있고 나서, 병역의무는 청년과 그 가족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 것인가. 그것은 「국민」으로서 완성되는 명예의 기회이기보다는, 피하고 싶기만 한 끝없는 重荷(중하)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것이 아닌가. 국제시합에 우승한 운동선수에게 병역의무 면제를 상으로 주는 행위는, 오랜 기간 패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온 열등 민족에게나 있을 법한, 변형된 노예의식의 잔존물이라 할 것이다.
민족국가란 혼이 뛰노는 마당을 공유하는 祭禮(제례)공동체이면서, 영광과 悔悟(회오)의 추억을 공유하는 방위공동체이기도 하다.
대양의 창파를 헤치고, 풍찬 노숙으로 대륙을 헤맨 父祖(부조)의 선각이 세운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낸 선배들이 바친 간난과 신산과 피땀과 고뇌를 상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딛고 선 민족국가의 「국민」 자리에 우리는 바로 서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의식의 심층에 남긴 노예의식 잔재의 극한까지도 불태울 것을 요구한다. 오늘 우리가 「국민국가」가 「죽음의 공동체」임을 자각할 수 있으면 「삶의 공동체」는 문을 열 것이다.

공산주의의 원조, 칼 마르크스가 1848년의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는 조국을 갖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했을 때의 「조국」이란 18세기 이래 유럽에 퍼지고 있던 「국민국가」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챔피언이 노동자인 만큼, 「계급」을 「국민」에 대치시켜 놓은 「공산당 선언」은 反내셔널리즘 사상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마르크스를 원조로 하는 좌파사상이 번지면 「국민국가」인 대한민국 속에 「국민」이 설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에는 TV 화면에도 좌파적 언동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한국에서 스스로를 좌파 혹은 좌익이라고 드러내어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물으면 자기는 우파라고 얘기하는 인사라도 얘기하다 보면 우파로서의 의식내용을 가진 경우에 부딪히기는 어렵다.
분명한 우파 의식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그가 폭력에 의해 스스로의 사상을 실천하려 들지 않을지라도, 극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을 본다. 얼굴 없는 좌파와 의식 없는 우파가 함께 극소수의 「의식 우파」를 몰아 붙이면서 얼크러져 있는 것이 21세기 초두 한국사회의 사상풍경이라 할 것이다. 역사는 의식이 움직인다. 다수의 의식 있는 좌파 쪽으로 사회가 기우는 것을 당분간 막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을 짚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얼굴 없는 좌파를 알아보자면 언동을 보고 가늠할 수밖에 없다. 가령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번에 은행 인수 문제를 놓고 당해 노조 및 그 상부 노조의 대표와 함께 3者 대면을 하여 방침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때 어떤 결론을 냈는지, 취임 후 어떻게 그 결론을 실행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당선자가 마음속에 3者 대면의 논의 결과만으로 정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계급독재의 발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어떤 경우에도 기업 이해의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표의 의사만으로 전체 사회의 뭔가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발상의 원천에는 공산주의의 원조인 마르크스가 있다. 그는 「근대공업에 의해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는 일체의 착취를 없이하고 인류를 최종적으로 해방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했던 것 아닌가.

오늘날 한국의 좌파는 역시 공산주의의 원론 정도는 졸업하고 親北(정권)으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조 때 明나라는 망했는데 조선이 小中華라고 버틴 주자학자들 생각이 난다. 한국의 좌파들은 그 출발이 좀더 양심적이고, 인간주의적이고, 좀더 윤리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같은 初心(초심)이 위대한 例證者(예증자)요 반면 교사이기도 한 역사 앞에 눈감아도 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金正日의 손에 핵을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주권적 의지 관철의 수단으로 정치병기가 되고만 핵이 金正日의 손에 남게 되어, 겁 많은 한국의 우파를 상대로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 민족 앞에 도대체 어떤 전망이 열리겠는가.
세계가 金正日 손에 핵을 남겨 놓고 있을 것 같은가. 1985년 제네바에서 미국의 레이건, 소련의 고르바초프 두 頂上이 만나 『핵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합의했다』를 발표했다. 당시 美·蘇는 각각 2만 내지 3만 발의 핵탄, TNT로 환산하면 200억t 내지 300억t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 頂上의 합의가 핵시대에 轉機를 가져왔고, 이후 핵은 줄여 가는 쪽으로 세계질서의 큰 틀이 잡혔다.
그러나 오늘날도 세계질서의 기본은 핵질서 위에 구축되어 있다. 金正日이 국민을 굶겨 가면서까지 핵을 만들었다고 하여, 北核이 동북아에 일으킬 연쇄반응과 이로 인한 세계평화 질서의 교란을 세계와 미국이 묵인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고구려 제3대 大武神王 때에 漢의 요동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군략 회의에서는 출성하여 정면대결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재상 乙豆智(을두지)가 가로채었다. 『小敵이 강하게 나오면 大敵의 사로잡힘이 됩니다』(小敵之强, 大敵之擒)라면서, 성문을 닫고 장기 농성에 들어가기를 권했다. 을두지의 안이 채택되었는데, 고구려는 위기를 넘겼다.(三國史記. 고구려본기. 大武神王11년)

을두지의 「小敵之强, 大敵之擒」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이로써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손자병법이 전해져 있었음을 알겠는데, 반도에 우리 민족이 살아 남게 되는 지혜의 하나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金正日이 지금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하고 있는 짓을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唐(당)나라에 대응하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金正日 핵 도박의 결말은 수많은 동족의 살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통 큰 金正日이 이런 일로 눈 하나 깜짝 않겠지만, 그 저쪽에서 기다리는 것은 金正日 체제의 멸망일 뿐이다.
金正日의 핵을 「민족의 재산」이라 하는 철부지들에게 두 가지를 더 지적해 두겠다. 金正日의 핵은 민족의 재산이기 전에 反민족적이다.
해방 직후 좌익들은 연합국의 신탁통치안에 찬성하여 외세에다 민족의 운명을 맡기려 들더니, 한반도 최대의 좌익모험주의 金正日은 세계 핵질서를 건드려서 열강의 간섭을 오늘 한반도 위로 불러들이고 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따라, 金日成이 내건 「민족해방 인민민주혁명 노선」을 누군가가 들먹이겠지만, 한국이 「미제」의 식민지라고? 사회과학을 바로 알아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할 것이다.
韓美동맹, 그건 위대한 경세가 李承晩이 거의 獨力으로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울타리였다. 한국이 「미제」에 착취당한 것이 아니라, 이 울타리로 인해 대한민국은 남북 7000만을 먹여 살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번영구조를 한반도 위에 구축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金正日의 핵이 反민족적인 또 하나의 측면은 한국의 시장경제와 그 경쟁력이 金正日의 핵 도박 과정에서 그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핵 도박으로 군사긴장이 높아지면 어떤 외자가 이 땅에 남아 있겠나. 우리 경제가 IMF 관리의 면역주사를 맞은 것은 아니다.
21세기 우리 민족의 큰 진로의 하나는 대륙의 시장 쪽에 있어 보이는데, 거기서의 경쟁상대는 세계 최강의 미국, 일본, EU(유럽연합)이다. 대륙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에 21세기 우리 민족의 進運이 달려 있다. 金正日이 핵을 손털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주저앉을 것이고, 민족사상 드물게 맞이한 이 호기는 무산될 것이고, 우리는 아시아의 3류 민족으로 전락할 것이다.
金正日의 핵보다 더한 反민족주의가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