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모스크바 통신 - 다차(Dacha)를 아십니까

『다차에서의 하룻밤이 러시아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鄭 昺 善 朝鮮日報 모스크바 특파원
  도시민 70%가 주말농장 소유
 
 
  러시아에서 다차(Dacha)를 빼고 日常(일상)을 논할 수 있을까.
 
  다차란 통나무로 지은 집과 텃밭이 딸린 주말 농장이다. 러시아인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이곳에서 2박3일 간 기거하며 농사를 짓고 휴식을 취한다.
 
  러시아 어느 도시든 도심을 잠깐만 벗어나면 다차가 줄지어 서 있다. 다차는 서방에서 보통 별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말 농장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도시에 사는 사람 가운데 70% 이상이 다차를 소유하고 있으니, 러시아의 단면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 5일 근무하는 러시아의 대도시들은 금요일 오후만 되면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는다. 다차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마음은 금요일 점심 때쯤이면 다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레닌 大路(대로) 등 모스크바 교외로 향하는 大路는 다차를 찾아가는 모스크비치(모스크바인)들의 차량으로 미어진다.
 
  러시아産 승용차인 지굴리에서 최고급 벤츠에 이르기까지…. 길은 막혀도 지굴리를 탄 모스크비치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주말 서울의 가족단위 나들이 차량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서울과 다른 것은 자가용마다 새로 산 각종 농기구와 가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달려 있거나, 차량 지붕 위에 목재와 작업도구 등이 잔뜩 실려 있다는 점이다.
 
  봄이 되면 각종 채소와 꽃의 씨앗, 텃밭에 심을 果實樹(과실수)를 준비해 가는 것이 기본이다. 가을 막바지에는 다차에서 수확한 감자와 과일을 싣고 도심의 집으로 돌아온다. 다차는 대개 대도시의 도심에서 100~200㎞ 안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수록 값은 떨어진다. 모스크바에서 다섯 시간쯤 떨어진 곳의 다차는 800루블(한화 10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러시아의 다차 문화는 19세기 帝政(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귀족들은 여름이면 별장에서 살며 파티를 즐겼다.
 
  러시아 정부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다차를 갖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에게 600㎡의 땅을 無償(무상)으로 분배하면서, 다차는 러시아인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게 됐다.
 
 
  제2의 家庭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블라디미르(63)·발렌티나(60) 부부는 주말이면 전혀 다른 일상을 시작한다. 그들은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승용차편으로 약 1시간쯤 거리에 있는 엘렉트로고르스크에 있는 다차로 향한다.
 
  이들은 출가한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맞벌이 부부. 정년 퇴직할 나이지만 개인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화학연구소에서 엔진 오일을 개발하고 있는 블라디미르씨는 박사요, 발렌티나씨는 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가구공장 경영을 맡고 있다.
 
  러시아에서 「인텔리겐챠」로 불리는 전형적인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주말 생활은 다차에서 이뤄진다. 직장의 日常에서 해방돼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 전원에서 만끽하는 자연과의 교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차에는 헤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출가한 아들 니콜라이(35) 부부와 딸 예카테리나(37) 부부도 자식들을 데리고 다차로 모인다. 이 모임에 기자도 참석했다.
 
  다차란 「제2의 가정」으로 부모와 자식들의 애정이 싹트는 곳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지난 한 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고민거리가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곤 한다. 歐美(구미) 사람들은 「부모들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러시아인들은 가족들의 일상에 대해 서로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들인 니콜라이 부부는 딸이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 우승한 일을 시작으로 한주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 빠짐없이 얘기했다. 블라디미르씨 부부는 자식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비디오에 찍힌 그림처럼 말해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습이었다.
 
  블라디미르씨는 『다차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일주일 동안 지낸 얘기를 하는 대화의 場(장)』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부부에게는 네 명의 손자·손녀가 있다. 이들에게 흙을 만지게 하고 채소 심는 것도 거들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친해지도록 가르친다. 손자들과 체스를 두고, 카드 놀이도 하고,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 주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다.
 
  할머니는 만두를 빚어 만들고, 닭고기 요리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
 
  러시아 어린이들은 주말에 다차 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차에 가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다차는 즐기는 공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일하는 공간이다.
 
  날이 새면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다가, 저녁이면 잔치 분위기로 바뀐다. 러시아어로 「바냐」로 불리는 사우나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한다. 러시아에는 우리와 같은 대중 목욕탕이 없다. 다들 다차에 사우나를 갖고 있다. 장작을 태워 사우나 온도를 조절한 뒤 가족들이 함께 사우나를 즐긴다.
 
  다차에서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저녁이면 집 마당의 식탁에 보드카와 소시지 그리고 「샤실릭」을 차린다. 샤실릭이란 장작을 태워 숯불을 만든 뒤, 여기에다 돼지고기, 쇠고기, 철갑상어를 꼬치에 꿰어 구워 먹는 것이다.
 
  해질 무렵 보드카와 곁들여 먹는 샤실릭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한 잔씩 마시다가 흥에 겨우면 음악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춘다. 그리고 달빛 아래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시간을 보낸다.
 
  다차는 야채와 과일 그리고 곡식을 생산하는 식량창고 역할도 했다. 러시아가 경제난에 시달리던 1990년대 초반 다차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시내 상점에는 살 물건이 부족해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러시아인들의 다차에는 곡식들과 과일, 통조림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다차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것은 감자와 오이다. 다차에서는 한 가족이 1년 정도 먹을 양의 감자와 오이가 나온다. 러시아인들은 주식을 다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남으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다차에도 貧益貧 富益富 현상
 
 
  러시아인들은 대통령에서부터 장관, 일반인까지 오이와 딸기 등을 재배하는 농사기술을 갖고 있다. 모두가 주말이면 다차에서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다차를 짓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다. 통나무 집을 지을 때 전문가를 불러 한두 달 만에 뚝딱 짓지 않는다. 가족들끼리 기초를 닦고,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하나씩 지어간다.
 
  블라디미르씨는 단층이었던 통나무집을 2층으로 만들고, 사우나를 만들기 위해 한참 작업중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매년 계획을 세워 돈을 모아 재료를 하나씩 장만해 천천히 짓는다. 올해 이 가족의 목표는 사우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올해 겨울에는 사우나를 한 뒤 알몸으로 눈밭에 뒹구는 러시아식 사우나를 할 수 있다는 설렘 속에 주말마다 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 2~3년 간 러시아 경제가 살아나면서 다차는 富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다. 경관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고급 다차가 들어서고 있다. 모스크바 근교에는 미화 500만 달러를 넘는 고급 다차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아주 고풍스런 분위기에 예전 귀족들이 살았음직한 영지에다 다차를 지어 판매하는 건축업자들도 등장했다. 이웃에 있는 다차를 10여 채씩 사들여 호화로운 다차를 짓는 게 유행이다. 러시아인 누구나 즐겼던 다차 문화에서도 貧益貧(빈익빈) 富益富(부익부)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24일 푸틴 대통령의 다차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러시아를 전혀 모르는 부시 대통령을 위한 푸틴 대통령의 각별한 배려였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을 텍사스의 부시 가족 농장으로 초청한 데 대한 답례이기도 했다. 「노보 아가로보」라는 다차에서 부시 대통령은 철갑상어 알, 러시아식 만두, 샤실릭을 맛보며 러시아 다차 문화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다차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특파원들에게 『푸틴 대통령의 일상 생활이 궁금했었는데 많은 것이 해소됐다』며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이해하게 된 하룻밤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