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 政 哲 (株)서울예술 전무이사·前 서울신문 기자
제2의 全盛期 맞은 한국영화
한때 우리나라 영화사 사장들은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 업자의 「봉」이나 다름없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미국이나 홍콩 업자가 달라는 대로 줘야 外畵를 수입할 수 있었다. 영화 시장이 개방된 후 우리 영화는 그나마 설 자리를 거의 잃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물 밀 듯 몰려오는 할리우드 영화 앞에 백기를 치켜들 입장이었던 그 당시를 기억하는 영화인은 많다.
그러나 지금 한국영화계는 「제2의 全盛期」를 구가하고 있다.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 선을 넘겼다는 사실은 우리 영화가 自生力을 넘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강감독은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아진 것은 우리 영화계가 지난 10년 동안 노하우를 축적하며 숙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온데다, 창조적인 분야를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투자, 배급을 맡아 再起에 성공한 아이엠픽처스의 최완 사장은 우리 영화계 현황을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한국영화의 부흥기는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三星, 大宇 등 자본이 들어오면서 (영화)개발비에 신경 안 쓰고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영화에만 전력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KTB엔터테인먼트 하성근 이사는 『(영화)시장의 성장속도가 가파르고 극장의 주차불편, 레저 공간 부족 등의 구매 장애 요인이 멀티플렉스로 인해 해소되고 있어 영화산업은 더욱 활황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았다.
투자전문가들은 우리 영화의 「대박」 행진이 이어져 관객수 1000만명의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충무로에 3000억원의 영화자본이 몰려 『제작비가 없어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라는 말도 들린다. 한편 지난해 말까지 영화 「쉬리」의 일본, 프랑스, 홍콩, 태국, 스페인 등 15개 지역 수출액이 500만 달러를 기록, 우리 영화의 브랜드 파워까지 입증했다.
邦畵 시장점유율 50%대 육박
2001년이 우리 영화사상 최대 흥행을 기록한 해였음은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표1>. 지난해 전국의 극장을 찾은 관람객은 총 8229만9521명이었고, 극장수입은 4938억원이었다. 이는 2000년의 총 관객 6462만732명보다 27.4%, 극장수입 3460억원보다 42.7% 증가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주)아이엠픽처스가 조사한 「2001년 영화산업(극장 중심) 규모 예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52편에 총 관객은 4071만9990명이었다. 外畵는 213편에 총 관객 4157만9531명이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9.5%에 달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한 것은 영화 「친구」의 흥행 성공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친구」를 제작한 영화사 씨네라인2(대표 석명홍)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전국 흥행기록은 820만명이다. 극장에서 배급사 코리아픽처스(대표 김동주)로 보낸 부금은 212억원이었다. 이 영화의 일본 판권은 210만 달러에 팔렸고 여기에 TV, 비디오 등 판권을 합치면 총 25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가 부산에 미친 경제적 派生效果(파생효과)는 178억원에 달한다. 부산市 정책개발실이 2001년 이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 및 기타 영상물이 미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것을 보면 「친구」는 극장의 상영수입만 55억8000만원을 올렸고, 생산효과 122억원을 발생시켰으며 고용효과는 127.7명으로 나타났다.
「친구」에 이어 신은경 주연의 「조폭마누라」(455만명), 「달마야 놀자」(346만명), 「두사부일체」(330만명)가 계속 대박을 터뜨리자 조폭류 영화가 主流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많은 영화인들은 그보다 이들 영화가 관객 폭을 넓혀 준 공로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표2>.
「엽기적인 그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진주만」을 가볍게 무너뜨리고 2001년 전국 흥행 2위를 기록한 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국 흥행 스코어는 484만1500명. 「아마겟돈」, 「더록」을 연출한 할리우드 거장 마이클 베이가 만든 「진주만」은 관객 동원 226만1100명에 그쳤다.
1억4500만 달러를 쏟아 부어 만든 블록버스터가 제작비 22억원(마케팅 비용 포함)을 들여 만든 「엽기적인 그녀」에게 무참하게 패한 것이다. 영화인회 이춘연 이사장(씨네2000 대표)은 『이러한 경이적인 흥행 이변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의 속담을 증명해 준 쾌거』라면서 『우리 영화를 호황기에 접어들게 만드는 데 「친구」가 일조한 걸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外畵 수입하면 손해 본다』
우리 영화인들이 국산 영화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쉬리」가 외국영화를 제치고 흥행 1위를 차지한 이후였다. 길벗영화사 김길남 대표는 『「쉬리」의 관객동원 620만명 기록은 우리도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변화가 왔다』면서 『그로 인해 충무로에선 비싼 달러를 주고 外畵를 수입, 상영해 봤자 손해 본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객의 主流를 이루는 젊은 세대가 할리우드 영화에 점점 食傷(식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한국영화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이 한국영화 발전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나온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유길촌)의 연구보고서 「한국영화 산업구조 분석」도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이 15%였던 1993년을 바닥으로 해 그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 왔고 「쉬리」로부터 超興行 영화들의 대행진이 「JSA 공동경비구역」, 「친구」 등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自生力을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만큼 성공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친구」로 신화의 주인공이 된 곽경택 감독. 그는 「친구」 시나리오를 움켜쥐고 수없이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아마 내 시나리오를 받아보지 않은 영화사가 없을 겁니다.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으니…』
그는 두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실패의 악몽은 그를 괴롭혔다. 미국 유학파인 그가 뒤늦게 깨달은 건 관객이 원하는 걸 외면했다는 데 있었다.
『뉴욕에서 공부한 나는 (내 영화를) 국내 관객이 아닌, 내가 공부한 곳의 사람에게 보여 줄 작품을 만들었어요. 나의 前作인 「억수탕」, 「닥터K」를 재미교포나 미국인이 보았다면 아마 재미있다고 했을 겁니다』
영화 소재를 잘못 선택하여 관객이 원하지 않은 걸 보여 주었다는 그의 얘기는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다.
강우석 감독을 만났더니 곽경택 감독 놓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으나 흥행에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 거절한 것 같다』며 『흥행에 성공할 시나리오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고 제작자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한국영화가 잘 되고 있는 원인에 대해 강감독은 『재미있는 영화가 많이 나와 그런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요즘은 관객이 부담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을 다뤄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質的으로 떨어지는 작품들이 계속 히트하면서 우리 영화가 하향평준화되는 거 아닌가 염려도 되죠. 한국영화 붐이 거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강감독은 『말초적 자극만 주는 영화가 양산되다 보면 한국영화가 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팬들을 다시 外畵로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김길남 길벗영화사 대표는 『한국 평균 관객의 모든 것, 즉 영화 대중의 얼굴이 뭔지를 알고 기획해야 한다. 그들은 20代 초반의 젊은 층이고 캐주얼과 맥주를 좋아하는데다 코미디 장르를 가장 선호하는 영상소비 세대다. 이런 영화 注力軍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흥행의 확률을 점칠 수 있고 일부 작품은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기획사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시각의 차이를 가진 젊은 감독들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데다, 배우들이 그전처럼 겹치기 출연하지 않고 한 작품에 몰두해 연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영화는 삶의 반영이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를 누린 이유는 그것이 「삶의 동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다가서기에 너무 다른 삶이다』면서 『지금은 우리 사회와 삶을 반영하는 「우리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최민식씨는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아직 우리 영화의 경쟁력은 약한 편』이라면서 『한국영화가 성공의 문턱에 조금 다가섰다고 보는데 그건 「스크린 쿼터 수호천사」가 우리 문화 지키기 운동에 한몫을 담당해 준 영향이 크다』고 했다.
씨네라인 석명홍 대표는 『우리 영화가 과거보다 재미있어졌다는 것은 시나리오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자료 「한국영화 도전과 성공전략」은 『한국영화의 善戰은 다른 업종과 비교하여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 후 『우리 영화가 높은 성공 확률을 기록한 결과 벤처캐피털이 「가장 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료는 한국영화의 다섯 가지 성공요인으로 ▲스크린 쿼터 수호 싸움을 계기로 실력 경쟁을 시작 ▲제작·투자·유통·마케팅社의 協業 노력에 사회 인프라 지원이 가세 ▲창의적 人材가 몰리는 젊은 산업으로서 매력을 발휘 ▲엽기·組暴(조폭) 등 대중성 코드를 정확하게 간파 ▲멀티플렉스(複合상영관)와 인터넷 효과가 융합되어 히트작을 넘어 대박 행진을 계속 이뤄 놓은 것 등을 들었다.
『생존의 절박감과 경쟁 압력이 反轉(반전)을 연출하여 한국영화가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었고,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히트 영화를 만들어 살아남아 보려 한 것이 연속으로 적중했다』는 분석과 『시장의 대형화에 힘입어 한국영화 대작들은 개봉 첫주의 물량공세 효과로 1차 성공을 거둔 다음, 이후 경험마케팅(인터넷 홍보와 입소문)에 힘입어 대박을 실현시켰다』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2001년 현재 영화관련 업체수는 2136개
영화는 美學的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문화(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하나로 간주된다. 영화의 발달 배경을 살펴봐도 산업적인 특성과 뗄 수 없는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영화산업은 21세기의 대표적인 성장산업 및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격찬받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거대한 가치창출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1차적인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산업은 영화 제작에서 나아가 유통·보급·수출·수입 등과 관련된 제반 사업 활동을 가리킨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1년 12월 현재 영화제작사는 918개, 수입업체는 390개, 상영업체(극장)는 560개, 배급업체는 268개로 영화업에 종사하는 업체數는 총 2136개에 이른다. 2000년 말 영화 관련 업체數가 1787개였던 것에 비하면 17% 가량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제작업과 상영업체의 증가는 눈에 띄게 늘어 2000년 말보다 제작업은 203개 업체가, 상영업은 84개社가 각각 늘었다.
반면에 2001년 제작된 영화는 모두 51편으로 오히려 2000년의 56편보다 줄어들었다. 이는 신고만 하고 휴업상태인 영화제작사가 적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실제 영화 제작을 기획중인 영화사는 150여 社도 안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산업구조분석」은 우리 영화의 달라진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이전까지의 보따리 장사 수준을 넘어 산업화의 초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제작과 유통이 나름대로 자본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영화제작에 투여된 자본이 실제 영화의 유통과정을 통해 회수되어 다시 다른 영화에 투자되는 식으로 자본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배급업에서 메이저 출현뿐 아니라, 제작사 중에서도 메이저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즉 안정적인 투자재원을 확보하고 여러 편의 영화를 안정적으로 일정한 수준 이상 제작하는 제작사들이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영화계가 확실하게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치는 급격한 영화계의 구조적 변동은 각종 자본과 인력의 변화,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배급, 유통환경의 변화,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化 등으로 요약될 수 있고 점차 우리 영화가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에 들어설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純제작비 100억원대의 영화 나온다
급격한 구조적 변화의 바람은 1988년 한국영화 시장의 개방에서부터 일어났다. 그해 3월 할리우드 배급사 UIP의 첫 直配(직배)영화 「위험한 정사」가 서울 신촌의 신영극장에서 상영되자 국내 영화인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1990년 11월 UIP가 서울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을 상영, 서울 지역에서만 9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直配영화사들은 한국시장에서 안정적 기반을 이룩했다. 이후 1993년까지 5개의 直配社가 등록, 미국영화는 한국영화 시장을 장악했다.
1993년 한국영화는 63편이 제작되었지만 외국영화는 347편이 수입되었다. 1996년에는 405편의 외화가 수입되어 외화수입 최다 기록을 세웠다. 외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제일 높았던 해는 1993년으로 무려 84.1%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상승세를 보여 1999년에는 39.7%, 2000년에는 32.6%를 점했다(서울 관객 기준)<표3>.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진출한 것은 1992년 신씨네 기획의 영화 「결혼 이야기」에 三星이 비디오 판권 구입 형식으로 6억원을 투자한 것이 시초였다. 이들 대기업 자본은 1997년 IMF 위기와 더불어 영화산업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무렵 창업투자회사가 영화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198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영화는 법률상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었다. 1993년 정부가 발표한 신경제 5개년 계획 중 산업 발전 전략부문에서 영상산업을 제조업 관련 지식 서비스 산업으로 명시했다. 1995년 3월 통상산업부는 영상산업이 제조업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했다.
이런 정책 변화로 창업투자회사의 영화산업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금융자본의 유입은 「충무로에 돈이 넘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생겨났다. 거대 자본의 유치로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대형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무사」(50억원), 「화산고」(70억원), 「2009 로스트 메모리즈」(60억원) 등 大作이 쏟아졌다. 현재 제작 중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순제작비 100억원대로 국내 영화사상 최대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멀티플렉스는 파이 키운 일등 공신
영화관람 환경도 괄목할 정도로 달라졌다. 2001년 말 현재 전국의 스크린數는 818개로 2000년 720개보다 13%(98개)가 늘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의 스크린數는 감소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3년 사이에 전국의 스크린數는 44.9%(223개)가 증가했다. 이는 1998년 이후 멀티플렉스의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멀티플렉스란 10개 안팎의 스크린을 한 건물 안에 두고 2000개 정도의 좌석을 보유한 複合상영관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CGV, 메가박스, 롯데 등 3大 멀티플렉스 체인의 2000년 전국 관객점유율은 36%나 된다.
전국극장연합회 이영하 전무는 『멀티플렉스가 한국영화 시장의 파이를 키운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複合상영관의 등장은 한국영화 소비행태를 單打性(단타성) 소비에 그치는 「구경」에서 연인과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는 여가로 바꾸어 놓았다. 쾌적한 멀티플렉스의 관람환경이 20代 중심의 영화관람층을 30∼50代로 확대했고, 가족 단위 관객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영화진흥委의 조사(1999년 12월)에 의하면 영화관람 빈도가 높은 관객일수록 영화를 볼 때 영화관 시설을 제일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委의 조사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우리나라의 스크린當 인구수는 6만5932명으로 프랑스의 1만2454명, 미국의 7369명 등과 비교해 볼 때 월등히 높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9년 「한국 영화산업의 돌파구는 없는가」에서 우리 영화의 발전방향 중 하나로 멀티플렉스의 증가를 꼽으면서 『스크린 하나가 증가할 때마다 한국영화는 9323명, 외국영화는 1만2167명의 관객이 증가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전국의 映像관련 학과는 55개
젊은 영상 세대는 영화를 「재미·꿈·감동이 있는 콘텐츠 공장」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末 국내 영화계에 영파워들이 입성, 순수(예술)와 대중성(돈)을 동시에 추구하고 영화산업의 활기를 고조시키면서 우리 영화 성공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창의를 요구하는 영화산업에 외국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두뇌들이 참여함으로써 충무로는 새로운 피를 수혈받으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映像관련 학과는 4년제 35개, 3년제 5개, 2년제 15개(씨네21 전국 영상관련학과 입시정보) 등 총 55개이다.
특히 産學연구기관으로 독특한 위상을 확보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은 우리 영화계의 중추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1984년 3월 영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설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교육기간은 24개월(2년 4학기 과정)이다.
2001년 제16기까지 총 227명이 졸업했는데 졸업생 90% 이상이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김의석(1기) 등 29명이 감독으로 데뷔했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4기) 감독은 아카데미 출신 유일의 여성 감독이다.
박종원(1기) 등 열 명은 교수 및 평론가로, 박현철(3기) 등 네 명은 촬영기사, 이승철(6기)은 녹음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4월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제」를 주최한다.
영상시나리오작가협회가 운영중인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짊어질 젊은 작가를 육성, 배출함으로써 스크린과 TV 등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은 1992년 영화진흥공사 등의 후원을 받아 개설되었다. 기초반·전문반·연구반·창작반 등 4개 교육과정이 있고 교육기간은 6개월이다.
강우석·강제규 감독, 「모래시계」의 김종학 PD 등이 교수진으로 있다. 그동안 「조폭마누라」의 김문성(9기 연구반) 등 29명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애니메이션예술아카데미는 1999년 3월 설립되었다. 첨단 영상시설과 애니메이션 제작시설, 편이시설 등이 설치되어 전문적 애니메이션의 학습이 가능하다. 정원은 12명, 교육기간은 2년(4학기)이다. 현재 유진희(「바리공주」 기획PD) 등 1기 졸업생 열 명이 현업에서 활동 중이다.●
▣세계 각국의 영화 산업
2000년 미국영화 제작편수는 762편
1999년 1월 미국의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誌는 『영화 「타이타닉」이 세계 입장권 판매와 비디오, 사운드 트랙 판매 및 NBC TV에 대한 방영권 판매 등을 합쳐 총 3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타이타닉」은 파라마운트와 20세기 폭스 합작으로 2억8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버라이어티誌가 집계, 발표한 총 32억 달러에 각국의 TV 방영료, 소설화했을 경우의 로열티 혹은 판매수익(직접 판매의 경우), DVD 수익 등은 빠져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 1편으로 현대車 150만 대를 수출해야 얻는 이익을 단번에 벌어들였다. 세계 영화시장의 80여%를 장악해 영화계의 골리앗과 같은 존재로 비유되는 할리우드는 지난해 미국 안에서 극장 흥행수입 80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사인 AC 닐슨/EDI 조사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2001년 흥행수입이 81억3000만∼83억1500만 달러(추정치)로 집계되었다(2000년은 76억6000만 달러). 동원 관객수는 14억4000만명 이상(2000년 13억9000만명)으로 추정되었다.
흥행수입 2억 달러 이상의 영화는 「슈렉」, 「미이라2」, 「혹성탈출」, 「몬스터주식회사」, 「해리포터」 등 다섯 편이다. 2000년 미국內 스크린 수는 단독상영관 2368개를 포함, 총 7421개였다. 제작된 영화(실제 등급을 받은 작품)는 762편, 극장 개봉된 영화는 478편이었다.
映振委의 「미국 영화산업 통계와 흥행분석」을 보면 지난 10년 간 미국영화의 흥행매출 증가율이 6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관람객 역시 1980년 이후 10억 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 지난 10년 간 25%가 늘어났다. 2000년 극장관람료가 평균 5달러 3센트로 1999년 5달러에 비해 6%가 인상된 것도 흥행수입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한다.
세계 영화산업은 할리우드, 유럽, 일본을 「3大 영화시장」으로 꼽는다. 할리우드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영화시장 지배 전략에 의해 각국의 自國 영화 점유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01 세계 각국의 영화산업」(영화진흥委가 버라이어티 등 각국 자료를 인용 조사)을 보면 自國 영화 시장점유율은 중국 50%, 홍콩 42%, 프랑스 41%, 덴마크·체코·일본 30%, 스웨덴 26%, 스페인 19%, 영국(공동제작 포함)·독일·이탈리아 18%, 노르웨이 1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간 관객수(2001년)는 프랑스 1억8500만명, 영국 1억5200만명, 스페인 1억4000만명, 일본 1억3500만명이다.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폴란드는 1000만~2000만명 수준이다. 중국의 연간 관객수(1999년)는 5억7000만명에 영화시장 규모는 추정치 20억 위엔(한화 3200억원) 정도이다. 극영화 제작편수(2000년)는 91편에 흥행수입 9억6000만 위엔(한화 1530억원).
1994년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홍콩은 1999년에 단 90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전성기인 1992년의 제작편수는 290편이었다. 홍콩의 영화관객수(1999년)는 2200만명이고, 2000년의 흥행수입은 1억1700만 달러에 극장은 190개였다.
한국 영화시장의 6∼7배 규모인 일본은 메이저 3社(쇼치쿠, 도호, 도에이)말고도 독립프로덕션의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여기에 미디어 믹스(TV 방송국이나 출판사가 영화제작에 참여)라는 특이한 제작지원이 있다. NHK를 통한 제작지원과 가도카와 출판사의 제작참여를 말하는데 가도카와는 일본영화의 大作 붐을 선도한 회사다. 1999년 일본에서 제작된 총 270편의 영화 중 독립프로덕션이 제작한 영화는 140편이었다.
일본의 영화관數는 1961년 절정기 7457관에서 매년 격감해 1989년에는 1912관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시네마 멀티플렉스 붐이 일어나 1999년 스크린數는 2221개로 증가했다.
영화 제작편수 1위는 인도
인도는 1971년 이후 제작편수 세계 1위의 영화제작 大國이다. 인구 10억에 19개 언어, 방언을 사용하는 인도는 연간 700∼900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일명 「볼리우드(Bollywood)」라는 인도 영화시장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태반이 본전도 건지기 힘든 장사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indokorea.net의 「볼리우드 들여다보기」 참고).
인도의 극장數는 1만3000여 개. 제작편수를 보면 1985년 912편, 1990년 948편, 1992년 836편, 1995년 795편, 1999년 744편이었다. 인도판 블록버스터 제작비는 3000만 루피(한화 8억3000만원), 일반 오락물의 제작비는 50만 루피(한화 1300만원). 대부분 상영시간 세 시간짜리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데 극장시설은 천차만별이다. 델리 등 대도시에는 멀티플렉스가 등장했지만 TV와 비디오 범람으로 흥행은 저조한 편이다.
한편 세계 각국은 自國 영화 보호를 위해 스크린 쿼터·稅制 혜택 등 다양한 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영화사 사장들은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 업자의 「봉」이나 다름없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미국이나 홍콩 업자가 달라는 대로 줘야 外畵를 수입할 수 있었다. 영화 시장이 개방된 후 우리 영화는 그나마 설 자리를 거의 잃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물 밀 듯 몰려오는 할리우드 영화 앞에 백기를 치켜들 입장이었던 그 당시를 기억하는 영화인은 많다.
그러나 지금 한국영화계는 「제2의 全盛期」를 구가하고 있다.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 선을 넘겼다는 사실은 우리 영화가 自生力을 넘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강감독은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아진 것은 우리 영화계가 지난 10년 동안 노하우를 축적하며 숙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온데다, 창조적인 분야를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투자, 배급을 맡아 再起에 성공한 아이엠픽처스의 최완 사장은 우리 영화계 현황을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한국영화의 부흥기는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三星, 大宇 등 자본이 들어오면서 (영화)개발비에 신경 안 쓰고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영화에만 전력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KTB엔터테인먼트 하성근 이사는 『(영화)시장의 성장속도가 가파르고 극장의 주차불편, 레저 공간 부족 등의 구매 장애 요인이 멀티플렉스로 인해 해소되고 있어 영화산업은 더욱 활황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았다.
투자전문가들은 우리 영화의 「대박」 행진이 이어져 관객수 1000만명의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충무로에 3000억원의 영화자본이 몰려 『제작비가 없어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라는 말도 들린다. 한편 지난해 말까지 영화 「쉬리」의 일본, 프랑스, 홍콩, 태국, 스페인 등 15개 지역 수출액이 500만 달러를 기록, 우리 영화의 브랜드 파워까지 입증했다.
邦畵 시장점유율 50%대 육박
2001년이 우리 영화사상 최대 흥행을 기록한 해였음은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표1>. 지난해 전국의 극장을 찾은 관람객은 총 8229만9521명이었고, 극장수입은 4938억원이었다. 이는 2000년의 총 관객 6462만732명보다 27.4%, 극장수입 3460억원보다 42.7% 증가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주)아이엠픽처스가 조사한 「2001년 영화산업(극장 중심) 규모 예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52편에 총 관객은 4071만9990명이었다. 外畵는 213편에 총 관객 4157만9531명이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9.5%에 달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한 것은 영화 「친구」의 흥행 성공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친구」를 제작한 영화사 씨네라인2(대표 석명홍)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전국 흥행기록은 820만명이다. 극장에서 배급사 코리아픽처스(대표 김동주)로 보낸 부금은 212억원이었다. 이 영화의 일본 판권은 210만 달러에 팔렸고 여기에 TV, 비디오 등 판권을 합치면 총 25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가 부산에 미친 경제적 派生效果(파생효과)는 178억원에 달한다. 부산市 정책개발실이 2001년 이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 및 기타 영상물이 미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것을 보면 「친구」는 극장의 상영수입만 55억8000만원을 올렸고, 생산효과 122억원을 발생시켰으며 고용효과는 127.7명으로 나타났다.
「친구」에 이어 신은경 주연의 「조폭마누라」(455만명), 「달마야 놀자」(346만명), 「두사부일체」(330만명)가 계속 대박을 터뜨리자 조폭류 영화가 主流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많은 영화인들은 그보다 이들 영화가 관객 폭을 넓혀 준 공로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표2>.
「엽기적인 그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진주만」을 가볍게 무너뜨리고 2001년 전국 흥행 2위를 기록한 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국 흥행 스코어는 484만1500명. 「아마겟돈」, 「더록」을 연출한 할리우드 거장 마이클 베이가 만든 「진주만」은 관객 동원 226만1100명에 그쳤다.
1억4500만 달러를 쏟아 부어 만든 블록버스터가 제작비 22억원(마케팅 비용 포함)을 들여 만든 「엽기적인 그녀」에게 무참하게 패한 것이다. 영화인회 이춘연 이사장(씨네2000 대표)은 『이러한 경이적인 흥행 이변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의 속담을 증명해 준 쾌거』라면서 『우리 영화를 호황기에 접어들게 만드는 데 「친구」가 일조한 걸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外畵 수입하면 손해 본다』
우리 영화인들이 국산 영화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쉬리」가 외국영화를 제치고 흥행 1위를 차지한 이후였다. 길벗영화사 김길남 대표는 『「쉬리」의 관객동원 620만명 기록은 우리도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변화가 왔다』면서 『그로 인해 충무로에선 비싼 달러를 주고 外畵를 수입, 상영해 봤자 손해 본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객의 主流를 이루는 젊은 세대가 할리우드 영화에 점점 食傷(식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한국영화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이 한국영화 발전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나온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유길촌)의 연구보고서 「한국영화 산업구조 분석」도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이 15%였던 1993년을 바닥으로 해 그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 왔고 「쉬리」로부터 超興行 영화들의 대행진이 「JSA 공동경비구역」, 「친구」 등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自生力을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만큼 성공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친구」로 신화의 주인공이 된 곽경택 감독. 그는 「친구」 시나리오를 움켜쥐고 수없이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아마 내 시나리오를 받아보지 않은 영화사가 없을 겁니다.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으니…』
그는 두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실패의 악몽은 그를 괴롭혔다. 미국 유학파인 그가 뒤늦게 깨달은 건 관객이 원하는 걸 외면했다는 데 있었다.
『뉴욕에서 공부한 나는 (내 영화를) 국내 관객이 아닌, 내가 공부한 곳의 사람에게 보여 줄 작품을 만들었어요. 나의 前作인 「억수탕」, 「닥터K」를 재미교포나 미국인이 보았다면 아마 재미있다고 했을 겁니다』
영화 소재를 잘못 선택하여 관객이 원하지 않은 걸 보여 주었다는 그의 얘기는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다.
강우석 감독을 만났더니 곽경택 감독 놓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으나 흥행에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 거절한 것 같다』며 『흥행에 성공할 시나리오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고 제작자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한국영화가 잘 되고 있는 원인에 대해 강감독은 『재미있는 영화가 많이 나와 그런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요즘은 관객이 부담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을 다뤄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質的으로 떨어지는 작품들이 계속 히트하면서 우리 영화가 하향평준화되는 거 아닌가 염려도 되죠. 한국영화 붐이 거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강감독은 『말초적 자극만 주는 영화가 양산되다 보면 한국영화가 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팬들을 다시 外畵로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김길남 길벗영화사 대표는 『한국 평균 관객의 모든 것, 즉 영화 대중의 얼굴이 뭔지를 알고 기획해야 한다. 그들은 20代 초반의 젊은 층이고 캐주얼과 맥주를 좋아하는데다 코미디 장르를 가장 선호하는 영상소비 세대다. 이런 영화 注力軍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흥행의 확률을 점칠 수 있고 일부 작품은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기획사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시각의 차이를 가진 젊은 감독들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데다, 배우들이 그전처럼 겹치기 출연하지 않고 한 작품에 몰두해 연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영화는 삶의 반영이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를 누린 이유는 그것이 「삶의 동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다가서기에 너무 다른 삶이다』면서 『지금은 우리 사회와 삶을 반영하는 「우리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최민식씨는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아직 우리 영화의 경쟁력은 약한 편』이라면서 『한국영화가 성공의 문턱에 조금 다가섰다고 보는데 그건 「스크린 쿼터 수호천사」가 우리 문화 지키기 운동에 한몫을 담당해 준 영향이 크다』고 했다.
씨네라인 석명홍 대표는 『우리 영화가 과거보다 재미있어졌다는 것은 시나리오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자료 「한국영화 도전과 성공전략」은 『한국영화의 善戰은 다른 업종과 비교하여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 후 『우리 영화가 높은 성공 확률을 기록한 결과 벤처캐피털이 「가장 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료는 한국영화의 다섯 가지 성공요인으로 ▲스크린 쿼터 수호 싸움을 계기로 실력 경쟁을 시작 ▲제작·투자·유통·마케팅社의 協業 노력에 사회 인프라 지원이 가세 ▲창의적 人材가 몰리는 젊은 산업으로서 매력을 발휘 ▲엽기·組暴(조폭) 등 대중성 코드를 정확하게 간파 ▲멀티플렉스(複合상영관)와 인터넷 효과가 융합되어 히트작을 넘어 대박 행진을 계속 이뤄 놓은 것 등을 들었다.
『생존의 절박감과 경쟁 압력이 反轉(반전)을 연출하여 한국영화가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었고, 어차피 죽게 되었으니 히트 영화를 만들어 살아남아 보려 한 것이 연속으로 적중했다』는 분석과 『시장의 대형화에 힘입어 한국영화 대작들은 개봉 첫주의 물량공세 효과로 1차 성공을 거둔 다음, 이후 경험마케팅(인터넷 홍보와 입소문)에 힘입어 대박을 실현시켰다』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2001년 현재 영화관련 업체수는 2136개
영화는 美學的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문화(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하나로 간주된다. 영화의 발달 배경을 살펴봐도 산업적인 특성과 뗄 수 없는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영화산업은 21세기의 대표적인 성장산업 및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격찬받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거대한 가치창출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1차적인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산업은 영화 제작에서 나아가 유통·보급·수출·수입 등과 관련된 제반 사업 활동을 가리킨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1년 12월 현재 영화제작사는 918개, 수입업체는 390개, 상영업체(극장)는 560개, 배급업체는 268개로 영화업에 종사하는 업체數는 총 2136개에 이른다. 2000년 말 영화 관련 업체數가 1787개였던 것에 비하면 17% 가량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제작업과 상영업체의 증가는 눈에 띄게 늘어 2000년 말보다 제작업은 203개 업체가, 상영업은 84개社가 각각 늘었다.
반면에 2001년 제작된 영화는 모두 51편으로 오히려 2000년의 56편보다 줄어들었다. 이는 신고만 하고 휴업상태인 영화제작사가 적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실제 영화 제작을 기획중인 영화사는 150여 社도 안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산업구조분석」은 우리 영화의 달라진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이전까지의 보따리 장사 수준을 넘어 산업화의 초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제작과 유통이 나름대로 자본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영화제작에 투여된 자본이 실제 영화의 유통과정을 통해 회수되어 다시 다른 영화에 투자되는 식으로 자본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배급업에서 메이저 출현뿐 아니라, 제작사 중에서도 메이저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즉 안정적인 투자재원을 확보하고 여러 편의 영화를 안정적으로 일정한 수준 이상 제작하는 제작사들이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영화계가 확실하게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치는 급격한 영화계의 구조적 변동은 각종 자본과 인력의 변화,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배급, 유통환경의 변화,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化 등으로 요약될 수 있고 점차 우리 영화가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에 들어설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純제작비 100억원대의 영화 나온다
급격한 구조적 변화의 바람은 1988년 한국영화 시장의 개방에서부터 일어났다. 그해 3월 할리우드 배급사 UIP의 첫 直配(직배)영화 「위험한 정사」가 서울 신촌의 신영극장에서 상영되자 국내 영화인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1990년 11월 UIP가 서울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을 상영, 서울 지역에서만 9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直配영화사들은 한국시장에서 안정적 기반을 이룩했다. 이후 1993년까지 5개의 直配社가 등록, 미국영화는 한국영화 시장을 장악했다.
1993년 한국영화는 63편이 제작되었지만 외국영화는 347편이 수입되었다. 1996년에는 405편의 외화가 수입되어 외화수입 최다 기록을 세웠다. 외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제일 높았던 해는 1993년으로 무려 84.1%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상승세를 보여 1999년에는 39.7%, 2000년에는 32.6%를 점했다(서울 관객 기준)<표3>.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진출한 것은 1992년 신씨네 기획의 영화 「결혼 이야기」에 三星이 비디오 판권 구입 형식으로 6억원을 투자한 것이 시초였다. 이들 대기업 자본은 1997년 IMF 위기와 더불어 영화산업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무렵 창업투자회사가 영화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198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영화는 법률상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었다. 1993년 정부가 발표한 신경제 5개년 계획 중 산업 발전 전략부문에서 영상산업을 제조업 관련 지식 서비스 산업으로 명시했다. 1995년 3월 통상산업부는 영상산업이 제조업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했다.
이런 정책 변화로 창업투자회사의 영화산업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금융자본의 유입은 「충무로에 돈이 넘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생겨났다. 거대 자본의 유치로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대형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무사」(50억원), 「화산고」(70억원), 「2009 로스트 메모리즈」(60억원) 등 大作이 쏟아졌다. 현재 제작 중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순제작비 100억원대로 국내 영화사상 최대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멀티플렉스는 파이 키운 일등 공신
영화관람 환경도 괄목할 정도로 달라졌다. 2001년 말 현재 전국의 스크린數는 818개로 2000년 720개보다 13%(98개)가 늘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의 스크린數는 감소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3년 사이에 전국의 스크린數는 44.9%(223개)가 증가했다. 이는 1998년 이후 멀티플렉스의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멀티플렉스란 10개 안팎의 스크린을 한 건물 안에 두고 2000개 정도의 좌석을 보유한 複合상영관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CGV, 메가박스, 롯데 등 3大 멀티플렉스 체인의 2000년 전국 관객점유율은 36%나 된다.
전국극장연합회 이영하 전무는 『멀티플렉스가 한국영화 시장의 파이를 키운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複合상영관의 등장은 한국영화 소비행태를 單打性(단타성) 소비에 그치는 「구경」에서 연인과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는 여가로 바꾸어 놓았다. 쾌적한 멀티플렉스의 관람환경이 20代 중심의 영화관람층을 30∼50代로 확대했고, 가족 단위 관객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영화진흥委의 조사(1999년 12월)에 의하면 영화관람 빈도가 높은 관객일수록 영화를 볼 때 영화관 시설을 제일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委의 조사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우리나라의 스크린當 인구수는 6만5932명으로 프랑스의 1만2454명, 미국의 7369명 등과 비교해 볼 때 월등히 높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9년 「한국 영화산업의 돌파구는 없는가」에서 우리 영화의 발전방향 중 하나로 멀티플렉스의 증가를 꼽으면서 『스크린 하나가 증가할 때마다 한국영화는 9323명, 외국영화는 1만2167명의 관객이 증가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전국의 映像관련 학과는 55개
젊은 영상 세대는 영화를 「재미·꿈·감동이 있는 콘텐츠 공장」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末 국내 영화계에 영파워들이 입성, 순수(예술)와 대중성(돈)을 동시에 추구하고 영화산업의 활기를 고조시키면서 우리 영화 성공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창의를 요구하는 영화산업에 외국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두뇌들이 참여함으로써 충무로는 새로운 피를 수혈받으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映像관련 학과는 4년제 35개, 3년제 5개, 2년제 15개(씨네21 전국 영상관련학과 입시정보) 등 총 55개이다.
특히 産學연구기관으로 독특한 위상을 확보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은 우리 영화계의 중추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1984년 3월 영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설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교육기간은 24개월(2년 4학기 과정)이다.
2001년 제16기까지 총 227명이 졸업했는데 졸업생 90% 이상이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김의석(1기) 등 29명이 감독으로 데뷔했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4기) 감독은 아카데미 출신 유일의 여성 감독이다.
박종원(1기) 등 열 명은 교수 및 평론가로, 박현철(3기) 등 네 명은 촬영기사, 이승철(6기)은 녹음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4월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제」를 주최한다.
영상시나리오작가협회가 운영중인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짊어질 젊은 작가를 육성, 배출함으로써 스크린과 TV 등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은 1992년 영화진흥공사 등의 후원을 받아 개설되었다. 기초반·전문반·연구반·창작반 등 4개 교육과정이 있고 교육기간은 6개월이다.
강우석·강제규 감독, 「모래시계」의 김종학 PD 등이 교수진으로 있다. 그동안 「조폭마누라」의 김문성(9기 연구반) 등 29명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애니메이션예술아카데미는 1999년 3월 설립되었다. 첨단 영상시설과 애니메이션 제작시설, 편이시설 등이 설치되어 전문적 애니메이션의 학습이 가능하다. 정원은 12명, 교육기간은 2년(4학기)이다. 현재 유진희(「바리공주」 기획PD) 등 1기 졸업생 열 명이 현업에서 활동 중이다.●
▣세계 각국의 영화 산업
2000년 미국영화 제작편수는 762편
1999년 1월 미국의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誌는 『영화 「타이타닉」이 세계 입장권 판매와 비디오, 사운드 트랙 판매 및 NBC TV에 대한 방영권 판매 등을 합쳐 총 3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타이타닉」은 파라마운트와 20세기 폭스 합작으로 2억8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버라이어티誌가 집계, 발표한 총 32억 달러에 각국의 TV 방영료, 소설화했을 경우의 로열티 혹은 판매수익(직접 판매의 경우), DVD 수익 등은 빠져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 1편으로 현대車 150만 대를 수출해야 얻는 이익을 단번에 벌어들였다. 세계 영화시장의 80여%를 장악해 영화계의 골리앗과 같은 존재로 비유되는 할리우드는 지난해 미국 안에서 극장 흥행수입 80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사인 AC 닐슨/EDI 조사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2001년 흥행수입이 81억3000만∼83억1500만 달러(추정치)로 집계되었다(2000년은 76억6000만 달러). 동원 관객수는 14억4000만명 이상(2000년 13억9000만명)으로 추정되었다.
흥행수입 2억 달러 이상의 영화는 「슈렉」, 「미이라2」, 「혹성탈출」, 「몬스터주식회사」, 「해리포터」 등 다섯 편이다. 2000년 미국內 스크린 수는 단독상영관 2368개를 포함, 총 7421개였다. 제작된 영화(실제 등급을 받은 작품)는 762편, 극장 개봉된 영화는 478편이었다.
映振委의 「미국 영화산업 통계와 흥행분석」을 보면 지난 10년 간 미국영화의 흥행매출 증가율이 6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관람객 역시 1980년 이후 10억 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 지난 10년 간 25%가 늘어났다. 2000년 극장관람료가 평균 5달러 3센트로 1999년 5달러에 비해 6%가 인상된 것도 흥행수입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한다.
세계 영화산업은 할리우드, 유럽, 일본을 「3大 영화시장」으로 꼽는다. 할리우드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영화시장 지배 전략에 의해 각국의 自國 영화 점유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01 세계 각국의 영화산업」(영화진흥委가 버라이어티 등 각국 자료를 인용 조사)을 보면 自國 영화 시장점유율은 중국 50%, 홍콩 42%, 프랑스 41%, 덴마크·체코·일본 30%, 스웨덴 26%, 스페인 19%, 영국(공동제작 포함)·독일·이탈리아 18%, 노르웨이 1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간 관객수(2001년)는 프랑스 1억8500만명, 영국 1억5200만명, 스페인 1억4000만명, 일본 1억3500만명이다.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폴란드는 1000만~2000만명 수준이다. 중국의 연간 관객수(1999년)는 5억7000만명에 영화시장 규모는 추정치 20억 위엔(한화 3200억원) 정도이다. 극영화 제작편수(2000년)는 91편에 흥행수입 9억6000만 위엔(한화 1530억원).
1994년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홍콩은 1999년에 단 90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전성기인 1992년의 제작편수는 290편이었다. 홍콩의 영화관객수(1999년)는 2200만명이고, 2000년의 흥행수입은 1억1700만 달러에 극장은 190개였다.
한국 영화시장의 6∼7배 규모인 일본은 메이저 3社(쇼치쿠, 도호, 도에이)말고도 독립프로덕션의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여기에 미디어 믹스(TV 방송국이나 출판사가 영화제작에 참여)라는 특이한 제작지원이 있다. NHK를 통한 제작지원과 가도카와 출판사의 제작참여를 말하는데 가도카와는 일본영화의 大作 붐을 선도한 회사다. 1999년 일본에서 제작된 총 270편의 영화 중 독립프로덕션이 제작한 영화는 140편이었다.
일본의 영화관數는 1961년 절정기 7457관에서 매년 격감해 1989년에는 1912관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시네마 멀티플렉스 붐이 일어나 1999년 스크린數는 2221개로 증가했다.
영화 제작편수 1위는 인도
인도는 1971년 이후 제작편수 세계 1위의 영화제작 大國이다. 인구 10억에 19개 언어, 방언을 사용하는 인도는 연간 700∼900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일명 「볼리우드(Bollywood)」라는 인도 영화시장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태반이 본전도 건지기 힘든 장사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indokorea.net의 「볼리우드 들여다보기」 참고).
인도의 극장數는 1만3000여 개. 제작편수를 보면 1985년 912편, 1990년 948편, 1992년 836편, 1995년 795편, 1999년 744편이었다. 인도판 블록버스터 제작비는 3000만 루피(한화 8억3000만원), 일반 오락물의 제작비는 50만 루피(한화 1300만원). 대부분 상영시간 세 시간짜리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데 극장시설은 천차만별이다. 델리 등 대도시에는 멀티플렉스가 등장했지만 TV와 비디오 범람으로 흥행은 저조한 편이다.
한편 세계 각국은 自國 영화 보호를 위해 스크린 쿼터·稅制 혜택 등 다양한 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