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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食家 피터 玄의 서울 洋食堂 순례記

프랑스 식당은 「더 시즌스」 「라미띠에」 「르 쌩떽스」, 이탈리아 식당은 「일 폰테」가 頂上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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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식당 순례
 
  좋은 레스토랑이란…
 
 
  서울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식당 이름을 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서울에는 사실 서양음식을 제대로 하는 레스토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 단골 레스토랑을 대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파리나 런던에서 좋은 레스토랑을 물으면 얘기가 다르다. 그쪽에는 일류 레스토랑들이 너무나 많아서 대답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시간, 계절, 그때 기분에 따라 또 함께 식사할 상대가 누군지, 또 단 둘인지 여럿인지에 따라 얼마든지 대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의 재료와 주방장의 창의력 그리고 서비스이다. 레스토랑 분위기가 아늑하고 다정한가도 따진다. 메뉴는 갖가지 요리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와인 리스트는 값과 다양한 종류를 갖추는 것이 요체다.
 
  좋은 레스토랑은 좋은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과도 같다. 좋은 식당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 시간과 돈을 잘 썼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모름지기 문명사회의 대도시라면 누구나 계절에 따라 하루 어느 때이든 자기 기분과 입맛에 따라 좋은 식당을 고르는 豪奢(호사)를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이 아무리 1200만 인구가 모인 국제적인 대도시라고 뽐내도 이렇다 할 서양식 레스토랑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특히 도쿄와 함께 2002년 월드컵을 치를 대도시라는 생각에 미치면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도쿄는 서울과 다르다. 자랑할 만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수두룩하다. 요리도 파리, 런던, 뉴욕에 있는 프랑스 식당들과 맞먹는 수준이다.
 
 
  프랑스 요리 大家가 감탄한 식당
 
 
  프랑스 요리가 서양 요리 중에서 최고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 일류 요리 전문가들과 美食家(미식가)들에게 인정받아오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가 아닌 런던, 뉴욕, 베를린과 같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최고급이라고 하는 일류 식당들은 거의 다 프랑스 음식과 와인을 판다. 프랑스 요리가 서양에서는 최고 요리라는 요지부동의 사실과 또 세계적으로 잘 먹히기 때문에 아시아에도 그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도쿄, 홍콩, 싱가포르가 바야흐로 글로벌리제이션 물결을 타고 프랑스 요리로 미식가들을 흥분시키기에 한창이다.
 
  서울은 지금 아주 느리게 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물론 현재 서울에 프랑스 레스토랑이 모자란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 10~20년 사이에 강남 지구에 소위 「프랑스 요리」를 판다는 값만 비싼 사이비 고급 레스토랑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일류 호텔마다 프랑스 레스토랑을 다 가지고 있다.
 
  헌데 이 많은 소위 「프랑스 레스토랑」 중 거의 모든 식당에서 진짜 프랑스 요리를 먹을 수 없으니 슬픈 일이다. 프랑스 요리의 맛과 멋에 능통하고 경험이 풍부해야 할 프랑스나 유럽 출신 주방장들조차도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또한 절대 다수의 한국인 주방장들은 프랑스 요리 만드는 기술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무엇보다도 진짜 프랑스 요리 맛을 식별할 수 있는 味覺(미각)과 요리의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맛과 창의성이야말로 좋은 프랑스 요리를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로운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한두 곳은 있다. 서울의 프랑스 料食(요식) 무대도 아주 삭막한 것은 아니다. 재주와 열의를 함께 가진 프랑스 요리 전문 한국인 주방장 몇 분 덕분에, 또 연일, 신동, 나라, 카브 드 뱅(Cave de Vin) 등 선구적인 포도주 수입상들 덕분에, 서울의 프랑스 음식 애호가들은 진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프랑스 요리 大家(대가) 조엘 로뷔숑이 친구 송미라의 초청으로 1박2일 동안 서울에 온 일이 있다. 세계의 식도락가들은 로뷔숑의 요리를 맛보기 위하여 권위 있는 미셸랑 관광 가이드북이 별 셋을 준 레스토랑 「자맹(Jamin)」에 몇 주일씩, 어떤 때는 몇 달 전에 예약하고 기다려야 할 정도다. 송미라 여사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주방장 손님을 駐韓 프랑스 대사와 함께 힐튼호텔 프랑스 식당 「더 시즌스」(전화 02-753-7788)에 초대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요리」로 유명한 이 프랑스 주방장은 서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한 끼의 저녁 식사를 「더 시즌스」에서 들고 나서 감탄한 것이다.
 
  『브라보! 이 식당 요리는 세계수준입니다. 저녁 요리 정말 잘 먹었습니다』
 
  프랑스 요리 大家로부터 이렇게 분에 넘치는 격찬을 받은 사람은 당시 38세의 박효남씨. 강원도 산간 벽지에서 태어나 자습으로 프랑스 요리를 배운 주방장이 어떻게 全세계의 내로라 하는 프랑스 요리사들이 누구나 꿈에 그리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빼어난 솜씨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요리사로서 朴주방장의 성공담은 마치 한국이 朴正熙 대통령 통치下에 가난한 농업사회로부터 주요 공업국가로 발전한 것과 같은 기적적인 이야기다.
 
 
  「라미띠에」의 서승호
 
 
  물론 한국에서 새로운 프랑스式 요리 전통을 만든 것은 朴주방장 한 사람의 공로라고만 할 수는 없다. 朴주방장이 시즌스 레스토랑을 세계 수준의 프랑스 고급 요리의 메카로 만들었다면 서울 압구정동 「라미띠에(L’amiti♥·전화 02-546-9621)」의 오너 주방장 서승호씨는 소규모의 아담한 비스트로(bistro·작은 술집 같은 음식점) 스타일의 단골 손님 위주 레스토랑을, 차려놓고 최신 프랑스 전통요리들을 세심하게 모아놓은 와인 리스트와 함께 선보이고 있다.
 
  서 주방장에게 요리는 마치 음악, 미술, 문학, 무용과 같은 창조적인 예술 작업처럼 하나의 길고도 긴 배움과 실험의 연속이다. 고도로 개성을 살린 그의 창조 과정은 그가 만들어 보여 주는 풍부하고 다양한 프랑스 요리의 향기와 계절의 감각을 잘 살리고 있다.
 
  서 주방장의 대표적인 세트 메뉴 중 프로포지시옹(Propositions des menus)이 있다. 입을 즐겁게 하는 前菜(전채)로서 버들송이와 전복(Ormeau Saut♥e), 사과 조림과 거위 간(Foie Gras de Canard et Pomme)이 있고 主食(주식)은 오리가슴살 요리(Margret de Canard)요, 後食(후식)에 초코 무스(Chocolat mousse)로 짜여졌다. 1인당 10만원짜리다.
 
  파리나 런던과 달리 서울에서는 펄펄 뛰는 생선과 어패류, 최고 품질의 肉類(육류)와 家禽類(가금류),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싱싱한 나물과 기타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다. 이런 여건에서 서 주방장이 그렇게 맛있는 진짜 프랑스 요리를 조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라미띠에의 와인 리스트는 이 집 세트 메뉴처럼 값비싼 종류를 모아 놓았다. 물론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및 알사스와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産 최고급 와인들이다. 1996년産 알사스 리슬링 「휴겔」(Alsace Riesling 「Hugel」)은 사과 香의 담백한 백포도주로서 한 병에 6만원을 받는다. 나파 밸리 최고의 赤포도주 중 하나인 로버트 몬다비 카베르네 소비뇽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1997년産은 한 병에 15만원. 같은 값을 받는 1994년産 샤토 린치 바주 (Ch♥teau Lynch Bages)는 삼나무와 꿀의 향기를 배합한 짙고 검은 밤나무 향기가 나는 赤포도주로서 와인 감정가들 사이에서는 전형적 포이야크(Pauillac) 포도주라고 불린다.
 
  라미띠에에서 저녁을 한 번 먹으려면 파리 같은 도시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갈 때처럼 보통 1주일 전, 적어도 며칠 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값이 그렇게 비싼데도 레스토랑은 거의 매일 밤 만원이다. 프랑스 음식과 와인 애호가 단골들이 많기 때문이다.
 
 
  파리의 향연…르 쌩떽스
 
 
  언젠가 나는 프랑스 친구에게 서울의 일류 호텔 프랑스 레스토랑 음식이 형편없다고 불평한 일이 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태원에 있는 「르 쌩떽스(Le Saint-Ex·전화 02-795-2465)」에 가보라고 권한다.
 
  『파리 어느 동네에 있는 비스트로와 똑 같습니다. 진짜 프랑스 음식을 드실 수 있어요』
 
  그 친구 말대로 「어린 왕자」의 저자 앙트완느 생텍쥐페리의 이름에서 따온 이 유쾌한 비스트로야말로 파리의 한 구석을 서울에 옮겨놓은 듯하다. 파리 左岸(좌안)의 보헤미안 스타일로 꾸민 르 쌩떽스는 벤저민 조아노라는 매력적인 프랑스인과 젊고 재주 있는 한국인 주방장이 운영하는데 식도락가들이 격식을 안 차린 家庭式(가정식) 프랑스 음식을 찾을 때 안성맞춤이다.
 
  내가 「르 쌩떽스」에 처음 갔을 때 40년 전 파리 망명 시절이 생각났다. 무엇보다도 파리라는 도시가 내게 주는 이미지는 언제나 내 집처럼 부담이 없고 조명이 부드러운 비스트로에 가면 비싸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친절한 서비스를 받아가며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나는 1년에 몇 차례 파리에 가는데 갈 때마다 생 제르맹 데 프레에 있는 내 단골 비스트로에서 저녁 약속을 한다. 생 브누아 街에 있는 르 프티 생 브누아가 내 단골인데 바로 길 건너에 영화 「戀人(연인)들」의 작가 마르그리트 듀라가 살던 집이 있다.
 
  몇 달 전 나는 르 쌩떽스에 갔다가 불현듯 헤밍웨이의 회고록 「움직이는 饗宴(A Moveable Feast)」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젊어서 파리에 한번 살아 본 행운아들은 한 평생 어디를 가도 파리와 함께 있게 된다. 파리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향연이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보지 않아도 이 친절한 비스트로 르 쌩떽스에 가면 서울에 앉아서 「움직이는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프랑스 비스트로 전통에 충실하게 한국인 주방장이 만드는 르 쌩떽스 음식은 허세를 부리지 않고도 맛이 좋아서 손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미각을 즐겁게 해준다. 이 비스트로의 메뉴는 복잡하지 않다. 전채요리는 고기, 생선 또는 야채, 빵 세 종류로 만든 테린느. 그 중 연어와 대구, 아티쇼 마요네즈 테린느는 상큼한 맛이 도는 애피타이저인데 뜻밖에도 7500원이라는 싼값이다. 플라 드 주르(Le Plat du Jour), 그날의 메인 코스는 그 날 들여놓은 재료에 따라 매일 다르다. 날마다 질 좋은 고기나 물 좋은 생선을 골라서 들여놓기 때문이다.
 
  내가 비스트로에 가서 먹는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 마늘 박은 양 넓적다리 (Gigot d’agneau), 바싹 구운 닭고기 (Poulet r♥ti), 또는 백포도주를 넣어 야채와 함께 익힌 송아지 고기(Blanquette de veau)들이다. 르 쌩떽스에서는 아직 나의 비스트로 메뉴를 하나도 試食(시식)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쇠고기와 감자를 요리하는 이 집 주방장의 유쾌한 솜씨를 보아서 그런 비스트로 메뉴를 틀림없이 잘 소화해 낼 것이다.
 
  이 집의 치즈 접시(Assiette de fromages)에는 좀 독하지만 맛좋은 염소 치즈와 그보다 약한 카망베르와 브리가 나온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 샐러드와 초콜레이트 무스, 크렘 카라멜, 과일 파이 등 디저트도 간단하면서도 모두 맛있다. 포도주를 제외한 음식값 2만3000원은 결코 비싸지 않다.
 
  르 쌩떽스 와인 리스트는 프랑스 각 지방 와인들 중에서 보통 값의 질 좋은 와인들을 다 모아 놓았다. 한국의 더운 여름날에는 고기를 먹을 때에도 적포도주는 너무 세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상큼하고 담백하면서도 강한 냄새를 없앨 정도로 독한 백포도주를 시킨다. 한 병에 3만원짜리 부르고뉴 백포도주 알리코테(Alicote)1998년産은 무더운 여름철 포도주로 안성맞춤이다.
 
  이 백포도주는 패블리(Faiveley) 포도밭에서 나온다. 부르고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이 포도밭 주인 프랑수아 패블리는 할리우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생겼는데 프랑스 고속 전철 테제베 열차의 차량 자동문을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한편 이 집에서 굳이 赤포도주를 마시려면 역시 같은 패블리 포도밭에서 만든 보졸래 빌라주(Beaujolais-Village) 1999년産을 얼음에 채워서 차게 하여 마시면 좋다. 한 병에 2만8000원밖에 안 한다. 한편 바에서는 프랑스에 있는 비스트로처럼 각종 食前(식전) 또는 食後酒(식후주)를 판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호주 식당
 
 
  내가 젊어서 파리에 살 때에는 많은 젊은 미녀들과 사랑에 빠졌었다. 그때 필요한 정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는 적포도주를 마시며 치즈와 샐러드를 곁들여 감자 튀김과 스테이크 고기를 많이 먹었다. 지금 늙은 나이에도 가끔 그렇게 단순한 스태미너 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1년에 몇 번씩 서울에 가면 나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호주 식당(오스트랄리안 그릴:02-559-7615)에 가서 스테이크와 프렌치 프라이로 그런 식욕을 채우곤 한다. 왜냐하면 이 식당에 가야 호주와 미국과 한국에서 나오는 최고급 쇠고기를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2만8500원 하는 갈비(Ribeye) 스테이크와, 3만4000원 하는 등심(T-bone) 스테이크는 매우 부드럽고 맛있다. 그래서 고기를 씹으면 입 속에서 그대로 녹아 버린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잊지 않고 주방장에게 미리 일러둔다. 고기를 반드시 덜 익힐 것(rare), 소스를 일체 치지 말 것, 그리고 삶은 야채 따위는 필요 없고 그저 프렌치 프라이(감자 튀김)만 달라는 주문이다.
 
  이 호주 식당이 한국에서는 호주産 와인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호주 와인이라고? 영국, 캐나다, 스칸디나비아 몇 나라를 제외하면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와인이다. 미국의 와인 大家 로버트 파커와 프랑스의 大家 미셸 베탄트는 호주 와인을 저급한 것이라고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병에 11만 5000원 하는 1998년産 피노 누아르 샐리티지(Pinot Noir - Salitage)는 프랑스나 캘리포니아産 피노 누아르 못지 않게 훌륭하다.
 
  끝없이 얽힌, 기막힌 짙은 향기와 붉은 과일과 붉은 고기 맛이야말로 스테이크와 프렌치 프라이에는 가장 이상적인 와인이다. 와인 리스트에는 2만5000원짜리 1999년産 카버네 소비뇽 시라즈(Cabernet Sauvignon Shiraz 「Sacred Hill」)에서부터 세계 와인 수집가들의 목록에 들어가는 한 병에 33만원 하는 1995년産 카버네 소비뇽 시라즈(Cabernet Sauvignon Shiraz 「Black Label」)까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교보빌딩 「라브리」
 
 
  교보빌딩 2층 「라브리(L’abri·전화 02-739-8830)」의 실내 장식은 프랑스 디자인의 고전과 현대가 調和(조화)를 이루며 섞여 있다. 이 집의 메뉴는 각종 프랑스 요리를 광범하게 나열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프랑스 유명한 역사적 인물 이름을 딴 네 가지 저녁 세트 메뉴가 있다. 나폴레옹, 조세핀,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그러나 정작 음식 맛은 실망스러웠다. 그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이 갖는 매력에 걸맞은 요리가 아니었다.
 
  라브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먹어 본 1인당 3만5000원짜리 비즈니스 런치의 前菜(전채) 마늘 버터 소스 달팽이 요리(Les escargots de bourgogne) 소스에 마늘이나 식용 산채 맛이 전혀 없었다. 메인 코스였던 디종式 닭요리(Le poulet dijonnaise) 역시 이 요리의 핵심인 디종 겨자 맛이 빠져 있었고 게다가 닭고기는 너무 구워서 잘 씹히지 않았다.
 
  그날 마신 8만5000원짜리 백포도주 1996년産 샤블리(Chablis)는 냉장시키지 않아서 미지근했다. 1993년産 샤토 라피트 로실드(Chateau Laffite Rothschild - Grand cru)가 한 병에 57만원, 1992년産 샤토 퐁테 카네(Chateau Pontet Canet - Grand cru)가 25만원이다.
 
  1992년과 1993년은 보르도 와인이 나쁜 해였다. 그렇다면 그 값은 너무 비싼 것이다. 라브리라는 레스토랑 이름은 불어에서 「안식처」라는 뜻이지만 레스토랑 라브리는 결코 食道樂(식도락)의 안식처가 못 된다.
 
  혹 독자들 중에는 내가 왜 음식의 질을 그렇게까지 따지고 드는가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이야말로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가 아닌가. 이를테면 프랑스에서는 요리는 단순히 쾌락의 원천이 아니라 다면적인 전문분야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미식가들, 작가, 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많은 글을 통하여 맛에 대하여 자기들의 이론을 발표하고 또 역사적, 사회학적, 생물학적 요소들을 집어넣어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가지 「맛의 철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진정한 「식탁의 학문」은 프랑스 요리를 위하여 몸바쳐 온 위대한 匠人(장인)들과 많은 영웅들, 심지어 순교자들과 더불어 발전해 왔다.
 
  서양의 많은 나라들 가운데서도 유독 프랑스 요리가 발달한 것은 프랑스에는 역사적으로 음식문화의 首都(수도)로 알려진 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이 이 도시에 모여 있다. 이 한 도시에서 세계에서 제일 좋은 요리 재료들을 구할 수 있고 가장 민감한 미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서는 자기들이 생산한 가장 좋은 햄, 소시지, 쇠고기, 닭고기, 치즈, 생선, 신선한 과일과 야채들을 모두 파리로 보내기 때문이다.
 
 
  자살도 하는 프랑스 주방장들의 스트레스
 
 
  프랑스에서 요리사는 대우를 받고 주방장은 존경의 대상이다. 위대한 정치가나 장군들처럼 주방장들에게 훈장을 수여하여 영예를 높여 준다. 유명한 주방장 이름이 붙은 길도 있고 호텔의 경우 주방장 월급이 호텔 지배인보다 많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프랑스 주방장들 중에는 과거의 전통적인 요리방법에만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맛을 찾아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요리 기술을 향상시키는 일에 일종의 의무감까지 가지는 분들이 있다. 시대적으로 나타나는 이 新요리야말로 프랑스 요리의 특징이요 또 그것이 프랑스 요리의 强點(강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개혁 마인드를 가진 주방장들은 「영웅」으로 추앙받는 한편 프랑스 料理界(요리계)에는 비평가들의 영향력이 대단하여 주방장들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주방장들 가운데 순교자도 나온다.
 
  가장 잘 알려진 순교자로 바텔이라는 17세기 주방장 일화가 유명하다. 바텔은 1671년 어느 큰 宴會(연회)를 준비하다가 주문한 생선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서 저녁 요리상을 완성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자살해 버린 것이다. 바텔의 행동은 프랑스 주방장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역사적인 例話(예화)라고 하겠다.
 
  오늘날 주방장들은 해마다 실시되는 미셸랑 가이드북의 암행평가 때문에 重壓感(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원들은 유명한 식당들에 손님을 가장하여 몰래 찾아와서 음식을 시켜먹고 평점을 매기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해마다 개정판이 나오는 미셸랑 가이드북에 실리는 별표의 個數(개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방장들은 자기 레스토랑의 별표 개수를 늘리거나 현상유지를 위해 개인적으로 빚을 지기도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다가 건강을 해치는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주방장들 중에는 바텔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느니보다 차라리 일찍 은퇴해버리는 이들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에 관한 이와 같은 집념은 최근 한 몇십 년 동안 영국과 미국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 영국과 미국에 프랑스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런던과 뉴욕 출판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음식이 섹스를 눌러버린 것이다. 요즘 음식에 관한 베스트셀러들을 소개하면 피터 메일의 「프랑스식 레슨(French Lessons)」, 앤소니 부르뎅의 「주방 秘訣(Kitchen Confidential)」, 루스 라이셸의 「사과로 달래 주세요(Conform Me With Apples)」들이 있다.
 
  식도락 잡지 편집장인 라이셸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우리 문화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그 옛날 청교도 전통에서 벗어나 이제는 음식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변한 것이다. 요리야말로 감각적이며 즐길 만한 일이며 사람들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서울 최고 주방장」 박효남
 
 
  뉴욕 대학의 마리온 네슬 교수는 『음식은 정치와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음식 연구는 세계를 제대로 보는 한가지 방법이며 그야말로 매력 있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음식과 섹스를 연관지어 한 말 중에 미국 인류학자 헬렌 해리스의 코멘트가 있다.
 
  『…먹는 것은 섹스처럼 고도의 쾌락을 촉발하고 즉시 만족을 준다…』
 
  서울에서 그런 식도락을 즐길 정도로 감각적인 쾌락을 제공할 능력 있는 주방장을 한 사람 꼽으라면 단연 힐튼호텔 레스토랑 「더 시즌스」의 박효남씨다. 더 시즌스야말로 서울 최고의 프랑스 레스토랑이다. 朴주방장이 프랑스 요리 기술을 다 마스터했다거나 그가 만드는 요리가 모두 완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朴주방장 자신이 잘 알다시피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다.
 
  매일 달라지는 「비즈니스 런치」 메뉴 (3만6000원) 와 「구르메 디너」 메뉴(5만9000~6만7000원)는 미셸랑 별 한 개나 두 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피타이저와 수프부터 메인 코스와 디저트까지 朴주방장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소스가 돋보인다.
 
  신선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아주 솜씨 있게 섞어서 만든 소스들은 손님들에게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 재료마다 원래의 香과 맛을 어떻게 조리했길래 그렇게 훌륭한 맛을 만들어내는지 나는 감탄할 때가 많다. 프랑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소스에 있다는 얘기다.
 
  만일 세트 메뉴 말고 알라카르테로 한 가지 요리를 주문하고 싶으면 바질香 풀과 깻잎으로 싼 자연산 소금을 뿌린 바다 농어(Natural Rock Salt Crusted Sea Bass in Sesame Leaves and Basil, 2인분에 6만8000원)를 주문해 보라. 有機 소금을 살짝 뿌린 바다 농어 한 마리를 통째로 즙이 나와 부드러워질 때까지 구워서 해초와 바질 향 풀에 받쳐서 나온다.
 
  여기서도 각 재료들이 다 없어서는 안될 부품들이다. 마치 실내악단을 구성하는 각 樂器(악기)들처럼. 이렇게 모인 재료들이 뛰어난 요리의 饗宴을 연출하는 것이다. 웨이터가 먼 바다 향기가 나는 구운 생선의 가시를 발라 줄 때 여기저기서 『브라보!』라는 탄성이 들리곤 한다.
 
  이렇게 환상적인 요리를 즐기기 위하여 나는 보통 과일 향이 나고 가스가 든 상세르(Sancerre) 백포도주로 1998년産 파스칼 졸리베(Pascal Jolivet, 한 병에 7만5000원)을 주문하고, 돈 생각 않고 좀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 복숭아 맛이 향기로운 푸이이 휘스(Puilly Fuisse) 백 포도주 중에서 1998년産 태블레(Taiveley, 한 병에 13만5000원)를 시켜본다.
 
  더 시즌스 레스토랑은 全세계 와인 생산지에서 골라 온 다양한 와인 리스트로 유명하다. 프랑스, 미국,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온 각종 와인들은 값도 한 병에 4만원짜리부터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가 프랑스의 샤토 로스실드와 합작하여 만든 오푸스 원(Opus One) 1997년産처럼 한 병에 47만원짜리까지 있다.
 
 
  주문한 요리 퇴짜놓기
 
 
  나는 더 시즌스가 문을 연 1980년대 초부터 이 식당 단골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는 프랑스 레스토랑은커녕 제대로 된 양식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던 때였다. 그러나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 제임스 스미스의 지도를 받고 있던 이 식당 주방 직원들은 내 느낌에 장래성이 있어 보였다.
 
  그 무렵 나는 주문한 요리가 나오면 대체로 마음에 안 들어서 여러 번 퇴짜를 놓아 주방으로 되돌려보냈다. 물론 무엇이 빠졌다든지 잘못되었다고 자세하게 일러주면서 요리를 다시 만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예컨대, 마르세유 지방 요리의 하나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라는 일종의 해물탕 요리에는 토마토와 올리브 기름과 그리고 사프론(saffron)이라는 香草(향초)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 해물탕에서 가장 중요한 사프론 맛이 늘 빠지는 것이다.
 
  나는 주방 사람들한테 사프론을 강조하기 위하여 옛날 알렉산더 대왕이 이 향초의 약효를 믿고 군사들에게 먹였다는 얘기, 또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섹스를 즐기기 위하여 허리를 유연하게 만들려고 사프론을 욕탕에 넣고 목욕했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물론 처음에 주방 사람들은 내가 음식을 퇴짜 놓으면서 잔소리까지 늘어놓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더 시즌스 레스토랑 요리의 質은 향상되었다. 朴주방장은 차츰 명성이 올라가면서 1996년 싱가포르 국제요리대회에서 5개 부문 金賞(금상)을 받았다. 나도 이 레스토랑의 단골로 대우를 받아 갈 때마다 언제든지 원하는 구석 자리를 내주었다.
 
  내가 지금 뉴욕과 프랑스를 오가며 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내 생일의 꿈은 서울로 날아가 朴 주방장의 훌륭한 프랑스 요리를 게오르그 리델이 만든 최고급 크리스털 잔에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부어 함께 즐기는 것이다. 와인 盞(잔)의 품질이 와인의 향기와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50년 동안 프랑스 요리와 와인을 사랑한 사람으로서 과연 터무니없는 바람일까?
 
 
  소금·후추 찾는 손님에겐 절대 음식 서브하지 않는 주방장
 
 
  뉴욕, 런던, 베를린, 파리와 같은 대도시 주요 박물관과 미술 갤러리에는 반드시 레스토랑이 있다. 서울도 이제 박물관 또는 미술관 레스토랑 문화를 따라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화랑 부속 「더 레스토란」(The Restaurant·전화 02-735-8441)의 양식은 대부분 프랑스 음식이고 일부 이탈리아 음식인데 수준급 요리를 제공한다.
 
  이 식당 프랑스식 요리 중에 앙디브와 치즈 살라드(Endive and blue cheese salad, 1만원)와 겨자 소스 양고기 소테(Sauted lamb with mustard sauce, 3만원)는 내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 식당에서 먹어 본 같은 메뉴보다 절대 못하지 않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식당의 음식과 와인보다는 분명히 더 낫다.
 
  과연 국제화랑 주인은 멀리 내다보고 젊고 재주 있는 주방장을 채용한 것이다. 이 주방장은 프랑스 요리 기술을 제대로 배웠을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이 개발한 개성 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4년 전 내가 처음 이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함께 식사하던 분에게 들었는데 이 주방장은 소금과 후추를 달라는 손님에게는 절대로 음식을 서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리의 간에 불만을 가진 손님에게는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가들처럼 그도 성질이 있고 손님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싫으면 가라』였다.
 
  더 레스토란의 와인 리스트에는 1996년産 샤토 레 트라베르스 메독(Chateau Les Traverses Medoc, 한 병에 7만5000원)이 있다. 블랙커랜트와 세다 향을 가진 감칠맛 나면서도 진하지 않은 赤포도주로 「벨베트 장갑 속의 쇠 주먹(the iron fist in the velvet glove)」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서 제일 비싼 것은 1993년産 샤토 무통 로실드(Chateau Mouton-Rothschild)와 역시 1993년産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로 둘 다 한 병에 48만원이란 가격이 붙어 있다.
 
  너무 비싸다구요? 분명히 평양의 金正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金正日은 작년 6월 金大中 대통령이 訪北했을 때 일행들에게 바로 이 샤토 라투르 赤포도주를 리델이 만든 세계 최고의 크리스털 잔에 담아 대접한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타락한 자본가가 아니라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의 하나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셈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15세기에 이미 요리문화 정착
 
 
  스파게티는 중국 음식에서 기원한 것인데 1295년 마르코 폴로가 24년 걸린 중국 여행을 마치고 베니스로 돌아올 때 배워 왔다는 얘기가 전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가보니 중국 여인들이 밀가루와 달걀과 물을 반죽하여 구멍 뚫린 철판에 눌러서 국수 가락을 뽑아내더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뽑은 국수를 끓는 물에 삶아먹더라는 것이다. 역사야 어떻든 이 이탈리아 국수 요리가 지금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全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런 유래를 믿는다면 이탈리아 밀가루반죽 음식 파스타를, 특히 스파게티를 아시아 사람들이 쉽게 좋아하게 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숫발이 가늘고 긴 스파게티 말고도 파스타에는 그 모양과 맛이 서로 다른 탈리아텔레(tagliatelle), 페투치네(fettucine), 감자로 만든 뇨치(gnochi), 토르텔리니(tortelini), 마카로니(macaroni), 고기를 채워 넣은 카넬로니(cannelloni)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방마다 수천 가지 다른 종류의 파스타가 발달한 것이다.
 
  파스타를 즐기는 사람들은 국수를 푹 삶지 않고 알 덴테(al dente), 즉 국숫발이 아직 꿋꿋하게 남아 있는 상태로 삶은 것을 좋아한다. 거기다가 버터 한 덩어리와 신선한 토마토 소스와 바질 香草를 곁들이고 파메산 치즈를 흩뿌리면 그만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보통 파스타를 오찬이나 만찬의 첫 코스로 먹는다. 그 다음에 생선이나 육류의 메인 코스가 나오고 치즈와 디저트로 입가심을 한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긴 요리의 역사를 가졌다. 고대 희랍과 에투리아 요리에다가 아랍과 스페인 요리의 영향까지 받아 풍부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주방장 마르티노 선생(Maestro Martino) 은 이탈리아 요리에 관한 귀중한 글을 남겼다.
 
  거기서 이탈리아 요리에서 파스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볼로냐의 소시지, 롬바르디의 쌀 요리, 베니스와 로마의 가재 요리, 피렌체의 야채와 볶음 요리 등을 격찬했다. 그가 남긴 중세 이탈리아의 세련된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보아 15세기 무렵에는 선진적인 이탈리아 요리 문화가 이미 정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요리 문화는 단연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 선진적이었다. 16세기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로렌조 디 메디치의 카트린느 공주(Catherine de Medici)가 1533년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시집오면서 프랑스 요리를 크게 발달시켰다는 얘기도 있지만,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의 요리 예술은 확실히 앞서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16세기 말쯤 오면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주방장들을 포함하여, 모두 피로의 기색을 보이며 만네리즘에 빠졌다. 아마 이 무렵부터 유럽 음식문화의 주도권은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옮겨온 듯 싶다. 프랑스 사람들이 19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그들의 고급 요리를 계속하여 발전시켜서 오늘날 全세계 일류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을 프랑스 요리로만 독점하게 되었다.
 
  만일 프랑스 요리가 계속 개발되어 세계 최고급 요리의 자리를 지켜간다면 과연 프랑스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을 국제적 문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로 보겠는가?
 
  이탈리아 요리는 비록 프랑스 고급 요리처럼 정상급 수준을 차지하지는 못했다하더라도 즐겁고 맛좋은 그러면서도 다양하고 값이 싸서 누구나 좋아하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음식문화를 개발하여 全 세계 구석구석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음식이 요즘 말로 가장 세계화된 아시아 음식이라면 이탈리아 음식은 가장 세계화된 서양음식이라고 하겠다.
 
  그런고로 오늘날 서울에 프랑스 레스토랑보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더 많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의 이탈리아 식당 대부분은 진짜 이탈리아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곳이다. 예컨대 스파게티를 너무 삶아서 죽처럼 풀어져서 맛이 없다. 토마토 소스만 하더라도 향기나 맛이 빠져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이탈리아인 주방장을 고용했다는 몇몇 일류호텔의 경우 이탈리아式으로 근사한 이름을 붙인 요리가 도저히 입에 댈 수 없는 잡동사니인 것이다. 요리 이름은 이탈리아 말이지만 맛은 아니다.
 
 
  「일 폰테」의 라자냐는 압권
 
 
  서울에 그래도 몇 안 되지만 진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다. 서울 힐튼호텔의 「일 폰테」(Il Ponte. 전화 02-753-7788)는 이탈리아 요리의 진짜 맛을 대표하는 메뉴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레스토랑의 애피타이저의 하나인 엷게 저민 쇠고기 카파치오(Carpaccio di manzo en rucola a parmigiano al limone)를 시켜보면 이 식당의 이탈리아人 주방장 프란체스코 브로카가 엷게 저민 쇠고기와 루콜라, 파메산 치즈, 그리고 레몬을 가지고 각각 그 독특한 맛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잘 살렸는가 이해가 갈 것이다.
 
  애피타이저 중에서 또 하나 시켜볼 만한 것은 나폴리식 해산물 수프(Zuppa di Pesce alla Napolitana). 이 생선 수프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전에 가본 나폴리의 絶景(절경)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일 폰테의 대표적인 메인 코스 송아지 정강이 찜(Ossobuco di Vitello)은 사프론 향의 쌀 요리와 함께 나오는데 밀라노 일류 레스토랑의 오소부코처럼 완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내 입맛에는 그만하면 만족스럽다. 이 레스토랑에 오면 국수를 알 덴테로 삶아서 국숫발이 살아 있고 신선한 소스 맛과 향기가 즐겁게 배어 나오기 때문에 나는 보통 파스타 요리를 메인 코스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파스타 중에서도 특히 라자냐(Lasagna)는 壓卷(압권)이다. 한 번 삶은 라자냐 반죽을 토마토 소스, 치즈, 간 쇠고기와 함께 다시 오븐에서 구워낸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느 분이 병으로 입맛이 떨어져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할 때 일 폰테의 라자냐만은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다.
 
  일 폰테의 와인 리스트에는 이탈리아 토스칸 지방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타입의 키앙티(Chianti)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오리지널 키앙티는 키앙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인데 타닌 性의 자극이 강한 赤포도주로 제비꽃 향과 甘草(감초) 맛이 약간 돈다. 이 식당 리스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키앙티 클라시코는 1996년産 빌라 안티노리 레제르바(Villa Antinori Reserva, 한 병에 6만2000원), 육류 메인 코스나 맛이 좋은 파스타를 들 때 주로 이것을 마셨다. 토스카나 赤포도주 중에서 1995년産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nello di Montalcino)는 감칠맛이 좋고 자극적이며 농축된 과일 향에 煙草(연초) 맛까지 곁들인 최고급품인데 한 병에 15만5000원이다.
 
  일 폰테는 이탈리아 말로 「架橋(가교)」라는 뜻이다. 일단 이 식도락의 다리를 건너가면 다양한 알라카르테 메뉴에서 개별 요리를 고를 수도 있고 독특하고 맛있는 세 코스(3만원), 다섯 코스(4만7000원) 세트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다.
 
 
  「제니」 박헌진 주방장의 탐구심
 
 
  「제니(Jenny, 전화 02-781-9662)」는 여의도 CCMM 빌딩 12층에 있는데 신라호텔 이탈리아 식당 「라 폰타나」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신라호텔의 라 폰타나 요리는 그 質이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그렇지 못하여 일정치 않은데 이상하게도 제니에서는 음식과 서비스가 언제나 한결같이 탁월하니 웬일인가? 내 추측에 이것은 오로지 제니 주방장 박헌진씨의 요리 재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세대학교 식품생물공학 석사요, 얼마 안 있어서 생활과학 조리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 朴주방장의 빛나는 학력은 요리에 대한 그의 탐구심을 돋보이게 한다.
 
  사실 朴주방장은 라 폰타나 이탈리아인 주방장들에게 두각을 보인 首제자로서 이스라엘에 모범연수생으로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워낙 타고난 재주에다 창의력이 뛰어나서 높은 수준의 요리를 만들어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제노바식 야채 수프(Minestrone alla Genovese)만 해도 이탈리아 전통 야채 수프처럼 신선한 바질 香과 토마토를 넣은 것인데 8000원 값어치는 충분하다. 마늘로 맛을 낸 왕새우 구이(Gamberi Reali con Aglio e Peperoncino)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요리라고 하겠다.
 
  구운 왕새우에 마늘과 매운 고추 소스를 치니까 꼭 중국 요리의 왕새우 구이와 맛이 같다. 값은 3만1000원. 이 레스토랑의 간판 디저트는 단 과일로 만드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푸딩 제니 티라미수(Tiramisu dello 「Jenny」). 이 디저트와 커피가 도합 8000원.
 
  이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도 값비싼 프랑스, 美 캘리포니아, 호주 와인들을 잘 골라 놓았다. 훌륭한 이탈리아 와인도 얼마든지 있는 이 식당에서 굳이 다른 나라 와인을 마실 필요가 있을까? 단 맛이 나지 않는 오르비에토 클라시코 세코(Orvieto Classico Secco) 중에서 1998년産 마르케시 안티노리(Marchesi Antinori, 한 병에 3만6000원)는 생선 코스와 오븐에 구운 버섯 라자냐(Nuovo Lasagne di Funghi)와 곁들이면 이상적이다.
 
  와인 리스트에는 그밖에 좋은 이탈리아 赤포도주를 많이 모아 놓았다. 키앙티 클라시코 레제르바 중에서 1997년産 바로네 리카솔리(Barone Ricasoli, 한 병에 6만9000원), 그리고 부루넬로 디 몬탈치노 중에서 1990년産 카스텔지오콘도(Castelgiocondo, 한 병에 39만원)는 와인 전문가들이 이탈리아 최고의 포도 豊作(풍작) 연도에 담근 와인으로 알아 주고 있다. 이 와인들의 우아한 감칠맛은 아주 부드러운 느낌으로 마치 육감적인 프렌치 키스의 뒷맛처럼 오래 여운을 남긴다.
 
  서울 힐튼호텔의 일 폰테가 인기가 좋아서 손님이 붐비고 식탁을 너무 좁게 놓아서 가끔 시끄러운 레스토랑이라면 제니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프라이비트 클럽 같은 분위기에다가 식탁도 여유 있게 떨어져서 놓였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별실도 있다. 식후에는 우아한 실내장식을 한 제니 부속 바(Bar)로 자리를 옮겨 시가를 피우며 食後酒나 와인을 마신다.
 
  꼭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지 않은 손님도 이용할 수 있는 이 와인 바에는 다양한 종류의 하바나 시가를 갖추었으며 세계 각 곳에서 생산된 고급 와인들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이 와인 바에 오면 런던에서 정계와 재계는 물론 기타 사회 저명 인사들이 서로 만나 사귀는 장소, 곧 영국 상류층 신사들의 클럽 바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洋食 배우기 노력
 
 
  서울에는 그밖에 주로 잘 사는 젊은이들이 잘 가는 이른바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꽤 많다. 그런 식당들은 대부분 사이비 이탈리아 風의 실내장식에다 음식값이 비싸기만 하고 음식의 質과 서비스는 말할 수 없이 나쁘다.
 
  헌데 잘 알려진 이탈리아 레스토랑 중에서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식당이 하나 있다.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길 건너 있는 「라 쿠치나(La Cucina)」라는 식당이다. 이 레스토랑의 훌륭한 요리와 우아한 실내장식, 그리고 뛰어난 서비스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이 식당에 假名(가명)으로 두 번씩이나 예약을 시도해 보았다. 불행하게도 두 번 다 실패했다. 언제나 만원이었기 때문에.
 
  善意(선의)의 친구 한 분이 내 얘길 듣고 자기 영향력을 행사하여 어느 날 저녁 자리를 하나 확보해 주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그날 나는 가지 않았다. 그 레스토랑에서 레스토랑 비평가라는 내 신분을 아는 것이 싫어서였다. 다음에 서울에 가면 나는 다시 한번 암행으로 그 식당에 가볼 생각이다.
 
  서울에는 왜 진짜 이탈리아 요리를 서브하는 레스토랑이 손꼽을 정도로 적을까? 일본 도쿄만 해도 진짜 이탈리아 식당이 그렇게 많은데. 이 한심한 상태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일본 사람들을 배우는 길이다.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洋食(양식)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는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의 유명 레스토랑들마다 웨이터나 주방 견습생으로 일하는 「일본인 연수생」들이 없는 곳이 없다. 말이 연수생이지 그들은 일본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인이거나 지배인 또는 주방장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보통 6개월 또는 1년쯤 해외에 나가 레스토랑 운영의 구석구석을 적당히가 아니고 완벽하게 배운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맛있는 서양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오늘날 한국 음식의 비참한 상태를 생각하게 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음식은 당연히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한국요리를 만드는 전문적인 주방장들은 물론 가정주부들까지도 맛을 내는 데 인공조미료를 너무 써서 한국 음식의 참 맛을 다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한국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앞으로 인공조미료 대신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고 創意(창의)와 혁신적인 정신을 발휘하여 한국 음식의 맛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대한 서양 주방장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시킨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또한 유럽의 경험 많은 주방장들이 요리 하나 하나를 예술적으로 만들어 내놓은 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한국이 앞서가는 세계 선진 대열의 一員(일원)이 되는 꿈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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