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문열어
<워싱턴 D.C에 있는 홀로코스트(대량학살) 박물관에 가면 끔찍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홀로코스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곳을 방문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이 사이트는 지금도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는 잔인무도의 기념관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세계를 향한 증언자입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를 방문하시는 여러분들은 당장 金正日 체제에 의해 무도하게 자행되는 反인륜적 범죄를 멈추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취지를 밝히고 있는 영문 웹사이트 조선저널(www.chosunjournal. com). 이 사이트는 지난 2월 말 문을 열어 첫 한달 동안 기껏 100명 정도의 방문자를 맞았다. 그러나 석 달도 안 돼 방문자가 폭증(?), 수천 명이 다녀갔다. 얼마 전 미국 유력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의 온라인 뉴스사이트(opinionjournal.com)는 조선저널에 대해 좋은 일(good works)을 하는 추천 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성공 예감이다.
이 사이트는 북한 인권에 관한 각종 뉴스를 수집해 올려놓는가 하면, 체험자들의 증언록, 성명서, 인권활동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곳에는 진지하고 통찰력이 돋보이며 대단히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는 북한문제에 관한 토론장이 열려 있어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고 있기도 하다.
사이트를 만드는 주역은 세 명의 在美교포 청년들. 이들은 매일 같이 이메일을 써서 사이트 운영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이메일, 그리고 영어」는 아직 학생인 이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훌륭한 온라인 북한 인권 非정부기구(NGO)를 설립할 수 있게 해 준 밑거름이다. 그러니까 조선저널은 인터넷상에 구현된, 온라인 NGO인 셈이다. 그들은 거의 이메일로만 의사를 소통하고 있다.
주제는 「북한의 인권문제」로 한정된다. 북한 사람들의 인권 실현을 위해 「알리고, 환기시키고,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 이 사이트가 내세우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지난 4월26일부터 벌어지고 있는 토론의 주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에 무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토론은 자못 열띤데 워싱턴, 시애틀 등 미국의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호주, 독일, 일본, 중국 등 30여 개국의 논객들이 입장을 내놓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들 중 북한상황에 대해 문외한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북한에서 직접 지원활동을 했던 이들부터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까지 제각기 전문적 식견을 내놓고 있다. 「무상 원조의 목적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다. (제3국의) 탈북자보다 이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들은 너무도 절망적으로 굶주린 까닭에 감옥행이나 처형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을 것이므로 이들부터 도와야 한다」 「북한을 둘러싼 미국 외교정책의 논점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는 부시 행정부의 북한다루기 솜씨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왜 수단(Sudan)에서 노예들을 돈을 주고 구해내는(buying back) 국제기독교연대(CSI)와 같이 탈북자를 구해내는 NGO는 없는지?」 등 탈북자의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결부시키는 여러 견해도 눈에 띈다.
뭔가 고상한 일을 한다는 기쁨 느껴
이 사이트의 편집장 에드워드 김(Edward Kim)은 『정책 입안자들이 이들의 통찰력있는 견해를 읽고 참고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어느 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북적거리기 시작했지만 기실 이 사이트는 단 세 사람의 在美교포 청년들이 이끌어간다. 모두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매개로 만나 같이 활동하게 됐다고 한다. 편집장 에드워드 김(에디), 운영책임 제프 박(Jeff park), 그리고 자료수집책은 제이 리(Jay Lee).
제프와 제이는 이제 갓 스무 살의 동갑내기 친구다. 그밖에 컷이나 만화를 그려주는 다니엘 홍(Daniel Hong)과 기태 김(Ki Tae Kim)이 있지만, 다 합해도 다섯이 전부인데 그럼에도 이 사이트에 대한 그들의 각오는 만만치 않다.
편집장 에디는 캘리포니아의 포모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뉴욕대 로스쿨 대학원생이다. 사이트에 대한 그의 애정과 책임감은 가히 지대해서 매일 두 시간 이상을 이 일에 쏟는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그의 동생은 법대생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오기도 했다. 『로스쿨을 졸업하는 사람은 많지만 뭔가 고상한 일을 하면서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고 대답해 준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몹시 기쁘다고 말한다.
에디는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던 지난 2월 제프와 함께 근 1주일을 매일 열 시간씩 작업에 매달렸다. 사이트를 편집하고, 자료를 찾고,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일 등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북한인권에 관한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의, 잘 씌어진 기사들을 골라 자신들의 사이트에 초대한다고 말한다.
『잔인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할 것』
에디는 지난 2월 미국방위포럼(DFF)의 수잔 숄티 여사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일본 북한인권운동가 故 김영달씨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 일을 결심하게 됐다. 한국 출신인 자신이 북한의 인권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을 뒤져 보니 최악의 인권지대인 북한 인권을 다루는 사이트가 거의 없더라는 것.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한다.
『세계의 언론은 지금까지 북한이 너무 폐쇄된 사회이므로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침묵의 변으로 삼아왔죠. 하지만 더 이상 통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폐쇄 사회란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에디는 1970년대 부모가 이민오면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한인교회의 장로인 아버지와, 또 그의 어머니가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를 돕는 일에 열성이므로 그 자신도 핍박받는 북한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재작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천안의 봉서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 나름대로 통일에 대해서도 연구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별로 들어볼 수 없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다. 북한의 金日成 金正日 숭배에 인권문제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견해를 피력하는 그는 탈무드의 교훈대로 「잔인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할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폴러첸씨 같은 이들 덕분에 북한 인권 문제 점점 환기돼
북한 인권을 위해 같이 일해 보자는 에디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인 제프 박도 교회에서 탈북자 문제 등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재료공학과 2학년생인 그는 주로 사이트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맡는 등 에디의 작업을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
매일 평범한 방문자처럼 20분 정도 기사를 읽거나 토론방에 들르지만 사이트의 모양을 바꾼다거나 할 때는 하루에 네 시간은 족히 이 일에 매달린다.
북한 인권에 관한 기사를 찾아 에디에게 보내기도 한다. 요즘 제프는 사이트를 찾는 방문자가 많이 늘어 기분이 좋은데, 그 까닭에 대해서는 『노베르트 폴러첸씨(북한에서 추방된 뒤 서울에서 활동 중) 같은 분들 덕분에 요즘 들어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문제가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제프는 작년 친구 제이와 함께 우르바나(Urbana)선교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모퉁이돌 선교회」의 한 활동가를 만나 북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국의 정부 관리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언젠가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경지방으로 가봤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사이트의 토론방에 각 나라의 논객들이 올리는 글들은 제프가 보기에도 매우 통찰력 있어 보인다.
『저는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핵, 경제문제 등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보지요.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고문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부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이용하는 병원 상황도 정말 심각하다고 합니다. 굶주리는 북한사람들을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나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을 멈추게 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 단체와 네트워킹할 생각입니다』
젊은이의 맑은 눈
아직 만 스물이 못 된 제프 박은 기자와의 인터뷰가 쑥스러운지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기자도 아니고 아직 열 아홉 살일 뿐이랍니다. 북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죠. 언젠가는 북한에서 어떻게 하면 인권침해가 없어질지, 북한 정부는 정말 주민을 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됐으면 좋겠어요』
제프의 친구 제이 리는 버클리대학(UC.Berkeley)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역시 이민 2세인 그는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인터넷에서 영어로 된 북한 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아낸다.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은 기사를 찾는 데 보낸다고 한다.
사이트에 실을 만한 기사인지를 결정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뉴스의 가치를 판정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호하면 이메일로 에디와 제프에게 알려 상의한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독자로부터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부정하는 몇 통의 편지를 받고는 당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독자는 金正日 체제의 잔악상을 부인했고, 金正日이 미국에 대항해서 잘 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북한에 뭔가 긍정적인 면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했는데, 덕분에 그는 북한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의 활동에 소신을 갖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북한사람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투쟁을 하고 싶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을 돕는 일을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앞으로도 할 일이 아주 많거든요』
에디, 제프, 제이. 싱그럽도록 젊은 세 친구.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열심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맑은 눈빛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흩어져 있는 그들, 그리고 한국의 서울에 있는 기자가 마치 한 자리에 있는 듯 격조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즐거운 체험이다.
『동서독 통일에 TV가 기여했듯이, 남북한 통일의 1등 공신은 인터넷이 될 것이다』라는 어떤 저널리스트의 예언이 있기도 한데, 이 세 친구가 인터넷으로 벌이는 맨손의 투쟁을 보면서 새삼 그 얘기를 떠올린다. 그들이 언제나 머리를 맞댄 듯 「좋은 일」을 궁리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기자가 그들과 유쾌하게 소통한 이 이메일 인터뷰도 북한의 인권이든 남북한 통일에든 아주 조금이나마 기여한 듯이 저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이렇게 취지를 밝히고 있는 영문 웹사이트 조선저널(www.chosunjournal. com). 이 사이트는 지난 2월 말 문을 열어 첫 한달 동안 기껏 100명 정도의 방문자를 맞았다. 그러나 석 달도 안 돼 방문자가 폭증(?), 수천 명이 다녀갔다. 얼마 전 미국 유력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의 온라인 뉴스사이트(opinionjournal.com)는 조선저널에 대해 좋은 일(good works)을 하는 추천 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성공 예감이다.
이 사이트는 북한 인권에 관한 각종 뉴스를 수집해 올려놓는가 하면, 체험자들의 증언록, 성명서, 인권활동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곳에는 진지하고 통찰력이 돋보이며 대단히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는 북한문제에 관한 토론장이 열려 있어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고 있기도 하다.
사이트를 만드는 주역은 세 명의 在美교포 청년들. 이들은 매일 같이 이메일을 써서 사이트 운영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이메일, 그리고 영어」는 아직 학생인 이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훌륭한 온라인 북한 인권 非정부기구(NGO)를 설립할 수 있게 해 준 밑거름이다. 그러니까 조선저널은 인터넷상에 구현된, 온라인 NGO인 셈이다. 그들은 거의 이메일로만 의사를 소통하고 있다.
주제는 「북한의 인권문제」로 한정된다. 북한 사람들의 인권 실현을 위해 「알리고, 환기시키고,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 이 사이트가 내세우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지난 4월26일부터 벌어지고 있는 토론의 주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에 무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토론은 자못 열띤데 워싱턴, 시애틀 등 미국의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호주, 독일, 일본, 중국 등 30여 개국의 논객들이 입장을 내놓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들 중 북한상황에 대해 문외한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북한에서 직접 지원활동을 했던 이들부터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까지 제각기 전문적 식견을 내놓고 있다. 「무상 원조의 목적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다. (제3국의) 탈북자보다 이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들은 너무도 절망적으로 굶주린 까닭에 감옥행이나 처형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을 것이므로 이들부터 도와야 한다」 「북한을 둘러싼 미국 외교정책의 논점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는 부시 행정부의 북한다루기 솜씨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왜 수단(Sudan)에서 노예들을 돈을 주고 구해내는(buying back) 국제기독교연대(CSI)와 같이 탈북자를 구해내는 NGO는 없는지?」 등 탈북자의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결부시키는 여러 견해도 눈에 띈다.

이 사이트의 편집장 에드워드 김(Edward Kim)은 『정책 입안자들이 이들의 통찰력있는 견해를 읽고 참고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어느 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북적거리기 시작했지만 기실 이 사이트는 단 세 사람의 在美교포 청년들이 이끌어간다. 모두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매개로 만나 같이 활동하게 됐다고 한다. 편집장 에드워드 김(에디), 운영책임 제프 박(Jeff park), 그리고 자료수집책은 제이 리(Jay Lee).
제프와 제이는 이제 갓 스무 살의 동갑내기 친구다. 그밖에 컷이나 만화를 그려주는 다니엘 홍(Daniel Hong)과 기태 김(Ki Tae Kim)이 있지만, 다 합해도 다섯이 전부인데 그럼에도 이 사이트에 대한 그들의 각오는 만만치 않다.
편집장 에디는 캘리포니아의 포모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뉴욕대 로스쿨 대학원생이다. 사이트에 대한 그의 애정과 책임감은 가히 지대해서 매일 두 시간 이상을 이 일에 쏟는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그의 동생은 법대생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오기도 했다. 『로스쿨을 졸업하는 사람은 많지만 뭔가 고상한 일을 하면서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고 대답해 준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몹시 기쁘다고 말한다.
에디는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던 지난 2월 제프와 함께 근 1주일을 매일 열 시간씩 작업에 매달렸다. 사이트를 편집하고, 자료를 찾고,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일 등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북한인권에 관한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의, 잘 씌어진 기사들을 골라 자신들의 사이트에 초대한다고 말한다.

에디는 지난 2월 미국방위포럼(DFF)의 수잔 숄티 여사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일본 북한인권운동가 故 김영달씨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 일을 결심하게 됐다. 한국 출신인 자신이 북한의 인권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을 뒤져 보니 최악의 인권지대인 북한 인권을 다루는 사이트가 거의 없더라는 것.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한다.
『세계의 언론은 지금까지 북한이 너무 폐쇄된 사회이므로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침묵의 변으로 삼아왔죠. 하지만 더 이상 통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폐쇄 사회란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에디는 1970년대 부모가 이민오면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한인교회의 장로인 아버지와, 또 그의 어머니가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를 돕는 일에 열성이므로 그 자신도 핍박받는 북한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재작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천안의 봉서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 나름대로 통일에 대해서도 연구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별로 들어볼 수 없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다. 북한의 金日成 金正日 숭배에 인권문제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견해를 피력하는 그는 탈무드의 교훈대로 「잔인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할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북한 인권을 위해 같이 일해 보자는 에디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인 제프 박도 교회에서 탈북자 문제 등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재료공학과 2학년생인 그는 주로 사이트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맡는 등 에디의 작업을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
매일 평범한 방문자처럼 20분 정도 기사를 읽거나 토론방에 들르지만 사이트의 모양을 바꾼다거나 할 때는 하루에 네 시간은 족히 이 일에 매달린다.
북한 인권에 관한 기사를 찾아 에디에게 보내기도 한다. 요즘 제프는 사이트를 찾는 방문자가 많이 늘어 기분이 좋은데, 그 까닭에 대해서는 『노베르트 폴러첸씨(북한에서 추방된 뒤 서울에서 활동 중) 같은 분들 덕분에 요즘 들어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문제가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제프는 작년 친구 제이와 함께 우르바나(Urbana)선교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모퉁이돌 선교회」의 한 활동가를 만나 북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국의 정부 관리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언젠가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경지방으로 가봤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사이트의 토론방에 각 나라의 논객들이 올리는 글들은 제프가 보기에도 매우 통찰력 있어 보인다.
『저는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핵, 경제문제 등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보지요.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고문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부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이용하는 병원 상황도 정말 심각하다고 합니다. 굶주리는 북한사람들을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나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을 멈추게 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 단체와 네트워킹할 생각입니다』

아직 만 스물이 못 된 제프 박은 기자와의 인터뷰가 쑥스러운지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기자도 아니고 아직 열 아홉 살일 뿐이랍니다. 북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죠. 언젠가는 북한에서 어떻게 하면 인권침해가 없어질지, 북한 정부는 정말 주민을 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됐으면 좋겠어요』
제프의 친구 제이 리는 버클리대학(UC.Berkeley)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역시 이민 2세인 그는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인터넷에서 영어로 된 북한 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아낸다.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은 기사를 찾는 데 보낸다고 한다.
사이트에 실을 만한 기사인지를 결정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뉴스의 가치를 판정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호하면 이메일로 에디와 제프에게 알려 상의한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독자로부터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부정하는 몇 통의 편지를 받고는 당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독자는 金正日 체제의 잔악상을 부인했고, 金正日이 미국에 대항해서 잘 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북한에 뭔가 긍정적인 면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했는데, 덕분에 그는 북한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의 활동에 소신을 갖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북한사람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투쟁을 하고 싶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을 돕는 일을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앞으로도 할 일이 아주 많거든요』
에디, 제프, 제이. 싱그럽도록 젊은 세 친구.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열심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맑은 눈빛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흩어져 있는 그들, 그리고 한국의 서울에 있는 기자가 마치 한 자리에 있는 듯 격조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즐거운 체험이다.
『동서독 통일에 TV가 기여했듯이, 남북한 통일의 1등 공신은 인터넷이 될 것이다』라는 어떤 저널리스트의 예언이 있기도 한데, 이 세 친구가 인터넷으로 벌이는 맨손의 투쟁을 보면서 새삼 그 얘기를 떠올린다. 그들이 언제나 머리를 맞댄 듯 「좋은 일」을 궁리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기자가 그들과 유쾌하게 소통한 이 이메일 인터뷰도 북한의 인권이든 남북한 통일에든 아주 조금이나마 기여한 듯이 저도 모르게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