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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姜碩熙를 생각하는 音樂的 산책

現代音樂을 듣는 즐거움

이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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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음악을 들으며 오락성 이상의 더 깊은 체험을 찾는다.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우리에게는 아직도 음악적 체험의 미개지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체험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뇌세포의 집단 속에, 지혜의 탑을 쌓듯이 새로운 행복의 질, 생활의 질을 발견하게 된다

姜碩熙와의 서울 縱走
  1999년 6월 어느 날, 오래간만에 姜碩熙(강석희·65) 교수가 아니라, 작곡가 강석희와 한나절 남짓을 같이 지냈다. 그를 안 것이 30년이 넘었는데, 나도 바쁘고, 그는 항상 나보다도 더 바쁜 것 같아, 좀처럼 한가히 자리를 같이하는 일이 없었다.
 
  가끔 전화로 이야기를 할 정도이고(나는 꼭 일이 없어도 전화를 하는 일이 있지만, 그는 꼭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한다) 1년에 몇번을 내가 서울대학 근처에 가서 간단한 점심과 차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그는 곧잘 서울대학 아래 신림동 쪽에 맛이 있는 음식점이 많다고 나를 유인한다. 그의 식성은 사치스럽기보다는 늘 수수한 편이다.
 
  몇달 만에 잠깐씩 만나 그렇게 점심을 먹고, 간혹 서울대 음대 교수휴게실까지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총총히 돌아온다.
 
  그런 우리가 그날은 둘이 작정을 하고 오전 10시에 서울의 강북에서 만나, 종로구 사간동에서 구기동을 거쳐 강남구 청담동까지를 縱走(종주)했다.
 
  樹話 金煥基(수화 김환기)의 「김환기 25주기 추모전」(5.4∼7.4)을 함께 본 것이다.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 구기동의 환기미술관, 강남구 청담동의 圓(원)화랑에서 각각 특색 있는 김환기 추모전이 열렸다. 환기미술관에서는 「白磁頌(백자송)」이라는 제목으로 조선백자(특히 항아리)를 주제로 한 그림들과 실제의 백자, 미술관 소장인 피카소의 드로잉, 국내외 젊은 작가의 작품들, 갤러리현대에서는 1970년 「한국일보 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怡山 金珖燮의 시의 제목, 뉴욕에서 제작. 그것은 金煥基 작품세계의 도달점의 시작이었다)를 비롯해 각 시대의 특성을 지닌 작품들을 고루 추려서 전시했다. 원화랑에는 鄭基鎔(정기용) 사장의 형안과 오랜 수집가로서의 관록을 느끼게 하는, 대폭의 유화에서, 소품, 과슈, 드로잉에 이르는, 많지는 않지만 알찬 작품들이 공개되었다.
 
 
  樹話 김환기의 미술세계
 
 
  김환기 25주기 추모전을 같이 보자고 「유인」한 것은 나였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진작부터 樹話를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현대 작가」라고 말했었다.
 
  내가 1993년에 낸 新作(신작)시집 「나비야 청산 간다」(도서출판 삶과꿈)에 수화에 대한 두 편의 시가 있다.
 
  <그는 지금도 붓으로/점을 찍는다/어느 별과 별 사이를/가면서/점을 찍는다/가장 민족적이며/가장 세계적인/별과 별들 사이에서/점을 찍는다/선을 긋는다」 (「화가 金煥基」 전문)
 
  <화가가 태어난 전라도 신안군/기좌도(箕佐島)의 등불/화가가 살던 서울/성북동 일대의 등불/저무도록 11년간 그림을 그린/뉴욕의 허드슨 강가나/맨하탄의 모든 등불들, 그리고/이 세상을 떠난 1974년부터는 별들의/어느 하늘을 별들 같은/오색의 등불로 산다//무수한 색점(色點)들로/깜박이면서 간다>(「金煥基 그림의 色點」 전문)
 
  비슷한 내용을 산문으로 쓴 경우도 있었다.
 
  <수화 김환기(1913∼1974)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화가이다. 첫째로 그는 한국적인 것,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이해하며 사랑한 화가였다. 둘째로 그는 그런 한국적인 것의 가치를 자신의 방법에 따라 충분히 세계적인 것으로 창조해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들을 흔히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민족적인 것의 내면보다는 외형에 안이하게 집착하면서 그것을 가장 민족적인 것, 나아가서는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며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있는 민족적인 것이나 세계적인 것에 오히려 집착하지 말고 거기서 보다 더 자유롭게 떠나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김환기는 그처럼 자유롭게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는 의미에서 가장 민족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두드러진 일을 한 현대의 화가였던 것이다>
 
  <김환기가 뉴욕의 화실에서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피에르 쿠르티옹이 「청색의 소용돌이요, 입자들의 교향악」이라고도 말한), 무한히 반복되며 찍어지는 동양적인 필촉감의 점들과 그어지는 선, 그것은 모든 현상(萬象)이 하나의 유전인자 같은 최소한의 단위나, 궁극의 원리(동양의 性理學의 경우 道, 또는 理氣)로 환원된 것 같은 점과 혹은 선들이다. 그것을 그림이 그려가는 「광대한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생명의 전율」이며, 그 생명은 「물과 불이 형제와도 같고 땅과 하늘이 양극의 힘으로 혼합되어 있던 때인 태초의 시간에 최초로 형성된 깊은 곳에서 감지한 생명」(장 자크 레베크)이라고, 莊子(장자)의 혼돈과 같은 말을 한 유럽 사람도 있다.
 
  나는 간혹, 수화 김환기의 별처럼 많은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행위가, 별이 가득 찬 어느 우주공간을 끝도 없이 유영하면서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전에 수화는 말했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지금도 아직 유효한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이상 「김환기 선생 탄생 80주년 기념전/영원의 노래」 1993, 환기미술관 작품집)
 
  수화의 그림은 1930년대의 東京(동경)시대의 구성적인 추상회화에서, 몇번의 발전적인 변모를 거치며, 산, 달(해), 구름, 새, 항아리, 나무, 사슴(십장생) 등의 매우 한국적인 정서를 수화적으로 해석 표현한 반추상적이며 구성적인 작품들을 거쳐, 말년인 뉴욕시대의 끝도 없이 찍어가는 점과 선의 세계로 도달해간다. 그것은 별이나, 우주원리의 최소단위로서의 점과 그 운행원리로서의 선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리고, 서양인들이 「청색의 소용돌이, 입자들의 교향악」, 혹은 「광대한 파동으로서의 생명의 전율」이라고도 비유한, 그 끝없이 반복되는 점과 선의 세계에서, 김환기는 한국적인 것을 거치면서, 아주 한국적인 것을 떠났다는 생각을 나는 했다.
 
  각 시대의 작품이 비교적 고루 전시된 「김환기 25주기 추모전」에는 한국인인 화가 김환기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가장 세계적인 것을 향하며, 어떻게 변모하고 탈피해 갔느냐 하는 전모를 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姜碩熙에게 그 세 개의 전시회를 같이 보자고 한 이유였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무용이든, 그저 한국적인 것에 매임으로써, 그림과 음악과 춤은 간데없고 껍데기(形骸) 같은 한국적인 것만 남는 경우가 있다. 결국 한국적이라는 것 자체가 몰가치한, 사이비 한국적인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가끔 그런 말들을 했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보며 姜碩熙는 나의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았다.
 
  『굳이 한국적이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아. 김환기의 것이면 되지』
 
  그것은, 姜碩熙가 작곡가이고 사람인 것처럼, 김환기는 사람이고 화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새삼스럽게 한국인임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 수도 있으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수화의 미술세계가 한국적인 것을 거치며, 다시 거기서 떠남으로써의 도달인데 비해, 姜碩熙의 음악은 이미 한국적인 것을 떠난 곳이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천 字의 메시지
 
 
  1970년 2월 초, 姜碩熙는, 그해 3월15일(9월13일까지)에 일본 大阪(오사카)에서 개막되는 「EXPO 70」 한국관에서 울리기로 한 에밀레종(聖德大王神鐘)소리의 녹음작업을 맡았다면서, 경주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1·4 후퇴 때 두어 번 통과한 일이 있었지만, 둘 다 경주는 초행이었다. 석굴암 대불도 불국사도 석가탑도 다보탑도 처음 보았다. 얼마간 퇴락은 했지만, 보수·복원을 하기 전의 불국사의 백운교, 청운교, 연화교, 칠보교, 자하문의 건축의 옛격이 매우 높고 그윽했다. 그때만 해도 불국사 근처의 아무 음식점에서나 나오는 법주의 맛이 퍽 순수하고도 진했다.
 
  당시 에밀레종은 경주시내 동부동, 옛날 경주박물관 한옥 본관 옆, 작은 목조한옥인 종각 안에 있었다. 위대할 만큼 종이 종각 안에 꽉차 보였다.
 
  이틀밤(2월7~8일)이 걸린 녹음작업은 잡음을 피해 통금시간인 밤 12시 이후부터 했다. 관장(朴日薰) 이하, 박물관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협력을 했다. 경주의 심야에 녹음을 위한 에밀레 종소리가 연거푸 은은히 울렸다.
 
  그때 녹음된 에밀레종소리는 「평화의 종」으로서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6개월 동안, 30초마다 한 번씩 계속 「EXPO 70」의 현장에서 울렸다.
 
  「EXPO 70」 한국관의 설계와 종합계획은 건축가 金壽根(김수근)의 공간사가 담당했었는데, 1970년 3월 초의 어느 노는 날 낮, 실무자(건축가 趙英武)에게서 전화가 왔다.
 
  「EXPO 70」에서 내보낼 한국관의 메시지를 2천 자 정도로 내일 오전까지 써달라는 것이었다. 「인류의 진보와 조화」, 「보다 더 깊은 이해와 우정」이 테마라고 했다. 그날 밤까지 「여기 울리는 평화의 종은…」이라는 한국말 메시지를 썼다(다음 全文. 漢字는 원문대로 살리고, 당시의 慣行語이던 「李朝」는 각각 「朝鮮」으로 바꾸었다).
 
  <여기 울리는 平和의 鐘은…
 
  太古 때부터, 찬연한 태양의 고운 아침이 열리는 동쪽을 찾아 밝은 빛을 지향하며 평화를 본능처럼 사랑하여 온 한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곳에 전개된다. 그것은 항상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바라보며 「보다 더 깊은 이해와 우정」을 은은히 알리는 「平和의 鐘」 소리에서 시작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모든 형상을 아우른 소리는 소리를 초월한 소리가 되어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아득한 천지간의 소리를 1천2백년 전(西紀 770년)의 한국인들은 하나의 종에 부어 담았다. 그(新羅) 시대에 산은 아름답고 물은 맑았다. 밝은 해 달이 빛나는 푸른 하늘과 고운 구름 사이에는 龍이 날고 鳳凰이 춤을 추었다. 新羅의 首都(지금 慶州)에서는 숯불만을 피워 煤煙을 방지하였다. 평화와 영광에 찬 시대의 지혜와 신앙과 정성과 노력의 結晶으로서 종(명칭 「聖德大王神鐘」)은 이루어졌고 이제 鐘은 「平和의 鐘」 소리를 울린다.
 
  鐘을 만든 사람들은 이 鐘소리가 龍의 울음 같다고 하였다. 하늘의 끝에서, 땅의 밑에까지 통하며, 마귀를 굴복시키고 물고기와 龍을 救濟하며, 위엄은 해뜨는 골짜기에 떨치고, 멀리 북쪽 끝에 높은 봉우리에까지 맑게 울리며 듣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韓國의 美는 「멋」이라는 특유한 말로 표현되는 「알맞음」에 있다. 자연과 인간과의 「알맞은 調和」, 「멋」의 「알맞음」은 천착하면, 秒針의 울림과 梅花의 開花, 微粒子의 생성 같은 微分的인 시간이나 운동과 宇宙운행의 포괄적인 시간이나 행동성이 일치되는 조화의 알맞음이다.
 
  무지개빛 색동의 靜中動의 춤사위는 흐르는 구름 출렁거리는 물에 조화한다. 가장 치열한 戰場에서의 血鬪를 자연의 움직임, 무용의 動作에 일치시킨 古人도 있다. 翡色의 이름을 갖는 高麗靑瓷(11∼13세기)의 빛깔은 비갠 하늘 빛과, 소박한 朝鮮白磁(15∼19세기)의 白色은 온갖 色 이전의 상태와 조화하며, 달의 형태(「달항아리」라는 俗稱도 있다) 같은 白磁항아리의 圓은 모든 현존자의 圓, 완전한 인생으로서의 圓에서 출발하고 또 그곳에 귀착한다. 佛國寺의 지붕의 선은 하늘의 선을 향하고 그 축대는 大地에 뿌리를 내렸다. 그 뜰의 多寶, 釋迦의 두 石塔과 달빛은 어느 밤중에 꽃과 이슬처럼 하나가 된다. 大慈大悲의 圓融한 化身인 石窟庵本尊大佛의 얼굴에는 달빛이 용해하여 돌이 달인 듯 달이 돌인 듯 된다. 金銅彌勒半跏思惟像은 大慈大悲의 사상이 굳은 金屬의 조형 속에 준절한 정제의 미를 갖춘다.
 
  朝鮮시대의 이름없는 匠人들은 自然 그대로의 나무를 깎아 단순화한 자연의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생활공예품을 제작하였다.
 
  「알맞음」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지혜는 736년 전(1234년, 구텐베르크 活字는 1450년)에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15세기(1443년)에는 東北亞지방 유일의 표음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였다. 그 글은 15분이면 깨칠 수 있으며 온갖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28자(현재 24자만 씀)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지나간 반세기는 고난으로 가득찼고 제2차대전 후에도 東西對立의 한 極點의 폭발에 의한 유례없는 혹독한 戰亂을 겪었으며 지금도 國土分斷의 쓰라린 현실을 안고 있다.
 
  그러나 갖은 苦難을 무릅쓰고 은근한 끈기의 정신은 되살아나며, 이제 생기에 찬 工業立國과 경제건설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한국인들의 가지가지 모습은 「평화와 번영을 함께 누리는 국제사회 건설에 기여하려는 한국 국민의 희원」(大統領 메시지 중)을 실현하는 것과 일치된다.
 
 
  한국의 미래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全人類의 미래와 합일한다. 「미래의 배」의 항로는 암흑의 함정을 극복한 저편에서 다양하게 빛난다. 행복의 수단으로서의 기계가 國家機能中樞에서 개인의 주택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한다. 개인은 또 자연을 향하는 개방된 창조적 공간을 마음껏 누리며, 자연과 일치한다. 「멋」처럼 「알맞게」 조화되는 인간과 기계의 재배분을 이룬다.
 
 
  모든 인간은 인간교환의 무용장에서 하나로 어울려 춤을 춘다. 춤의 몸짓은 해와 달, 하늘과 별과, 산과 강물이나 나무들, 일체의 자연의 움직임과 하나이며, 온갖 인간의 몸짓과 몸짓은 하나가 된다.
 
  은은한 평화의 종소리는 슬기로운 가슴마다 영원한 영원한 여운이 되어 울린다>
 
  이 한국말 메시지는 일본어(金素雲)와, 영어(張翼 神父)로 번역, 3개 국어가 함께 은종이(銀紙)에 레이아웃·인쇄되어, 종소리가 울리는 현장에서 관람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의표를 찌른다」는 표현
 
 
  1999년 9월7일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 초연된 姜碩熙 작곡 「피아노 협주곡」은 그날 밤의 하이라이트였다. 드뷔시(「牧神의 午後」), 미요(「지붕 위의 소」), 라벨(「스페인 랩소디」)이 함께 연주되었는데, 姜碩熙의 「피아노 협주곡」은 선명하고 신선했다. 바로 현대(동시대)적인 음악의 신선감이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가 주최한 「페스티벌 프레상스」를 위해 위촉되어 1998년 2월7일, 파리에서 세계 초연되었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부르노 페랑디스, 피아노는 백건우, 라디오 프랑스 관현악단의 협연이었다. 나는 그 연주의 CD를 몇번 들었다.
 
  같은 지휘자, 같은 독주자가 출연하며 「백건우 초청 서울시교향악단 연주회」라는 선전적인 타이틀이 붙은 그 한국 초연은, 생연주를 듣는 현장감을 한껏 충족시켜 주었다.
 
  詩(시)나 음악(작곡, 연주)이나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驚異(경이)」 또는 意外性(의외성)이 있다. 누구나 평소에 막연히 생각하는 듯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혹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詩나 음악의 표현이 우리들에게 일깨워준다.
 
  좀더 적극적으로 「의표를 찌른다」고도 말한다. 그날 밤 姜碩熙의 「피아노 협주곡」은 거듭, 듣는 사람의 의표를 찔렀다. 곡 자체가 그렇고 연주도 그랬다.
 
  현장에 넘치는 음악적 에너지, 안개나 구름의 물방울에서 도도한 파도에 이르는, 혹은 모래에서 바윗덩어리, 산악에 이르는, 융합되는 音의 덩어리와 개별화하며 분산하는 音의 요소들, 그 가락들(타악기, 관악기, 현들)의 고요한 흐름과 폭발하는 소용돌이들이 거듭 의표를 찔렀다.
 
  특히 그날 밤의 實演(실연)을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은 소리들의 견고한 조직력이었다. 혹은 섬세하고, 혹은 폭력적인 소리들의 엇갈림과 어울림, 다르고 같으며, 대립적이고 조화적인 소리들의 견고한 밀착력이었다. 무한히 조여지는 소리와 소리들의 결합과 離反(이반)의 그물눈(網目)들은 견고하게 조여지고 응집되면서 자유롭게 이반한다. 충만한 에너지가 그것을 이끌며 그것을 밀고 나간다.
 
  백건우의 의표를 찌르는 피아노의 적확한 高音이 그 음악의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손이 아니라 차라리 칼이었다. 해머로 건반을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돌조차도 베일 듯이 내리치는 예민한 칼날의 섬광이었다. 그렇게 내리쳐지는 칼날 끝에서 의표를 찌르는 피아노 소리가 탄생한다. 그것은 죽이는 칼(殺人刀)이 아니라 살리는 칼(活人劍)의 소리이다.
 
  姜碩熙는 그의 이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멜로디보다 강렬하고 빠른 리듬이 전체를 리드하는 농악의 리듬 패턴」(굿거리장단의 리듬도 또한 같다)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을 창조하는 「사용」이지 전통을 죽이는 재현이 아니다. 리듬의 결집과 散開(산개)와도 같은 그 피아노 협주곡에서 우리는 농악이 아닌, 거듭 의표를 찌르는 姜碩熙의 새로운 소리들을 만나는 것이다.
 
  「혁명 때와 같은 생활이 격동하는 때조차, 일체가 변화하는 것처럼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옛것들이 保守(보수)되며, 그것이 새로운 것과 결부되어 새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게오르그 한스 가다머)라는 말이 있는데, 姜碩熙의 경우, 농악의 리듬 패턴의 사용은, 그 패턴을 사용하며 거기서 떠나 발휘되는 새로운 힘이 오직 중요한 것이다. 옛것에 머물지 않고 옛것을 떠나서 시작하는 것이다.
 
 
  李信雨의 소리
 
 
  1999년 봄, 李信雨(이신우·서울대 음대 교수) 작곡의 「PSALM(詩篇) 20」(1994/96, 98년 개작, 오케스트라)을 CD로 들으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옛것들이 보수되며 미묘하게 새로운 것과 결부되어 발휘되는 힘」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처음에(제1악장) 심발의 가격(加擊)으로 시작되는 몇 소절의 멜로디와 리듬이, 제금, 징, 꽹과리 등의 금속타악기가 신이 들린 듯 울리는 굿거리 장단처럼 들린다. 타악기의 금속성이 도중에서 관현의 소리와 만나기도 하고, 같은 주제가 오케스트라와, 드럼의 웅장한 반복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소음처럼 엇갈리는 소리들 사이로 민감한 소리의 조각들이 짧고 묘하게 교감하고 대응하기도 한다. 나긋나긋한 짧은 관의 지속음이 문득 나타나다가, 다시 처음의 주제가 더 짧은 호흡으로 斷續(단속)된다.
 
  2악장은 작은 북소리에 유도되듯 관악기들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섬세한 멜로디의 제2주제가 나타나, 오케스트라로 증폭되고 반복과 변용을 거듭하다가, 다시 심발의 제1주제가 끼여들며 두 개의 주제가 자꾸 변화하고 교차되며 클라이맥스를 향한다. 때때로 소리의 폭이 변화하는 여운들이 끌고 또 끌다가, 문득 고조되고 다시 간절하게 잦아든다. 「야훼여! 우리 임금에게 승리를 주소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도우소서」(시편 20편의 끝절, 공동번역).
 
  나는 처음에 울리는 그 가락을 조선의 굿거리 장단처럼 들었는데, 사실은 이스라엘의 옛 음악의 멜로디라고 한다. BC 1000년 전후에, 예루살렘에 그런 민속음악이 한창 왕성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나, 그것은 가장 이스라엘적인, 곧 가장 민족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조선의 가장 민족적인 굿거리 장단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런 것을 인간의 핏줄의 박동과도 같은 소리의 장단의 보편적인 공통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시편 20장」은 곤경(환난의 날)에서 그들(對敵者)을 이기고자, 지휘자를 위해, 하느님께 빌며 찬양하는 다윗의 찬가이다(다윗은 BC 1000년에 유대의 왕, BC 964년에는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 되었다). 그 끝 부분에는 「(그들은) 혹은 兵車(병거)와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옛 번역)라는 말이 있다. 이 부분을 신·구교의 「공동번역」에서는 「누구는 병거를 믿고 누구는 기마를 믿지만, 우리만은 우리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믿사옵니다. 이 사람들은 휘청거려 쓰러지겠지만 우리는 꿋꿋이 선 채 넘어지지 않사옵니다」라고 했다. 이것을 더 현대적으로 「혹은 탱크 혹은 미사일을 의지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습니다. 저들은 넘어지고 엎드러지며 우리는 일어나 똑바로 섭니다」라고 번안할 수도 있다.
 
  시편 20편의 첫머리는 「야훼께 비옵니다」(공동번역)로 시작된다. 조선 굿판의 굿거리의 첫 장단은 우선 『아하 우리 대감』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리며, 계속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빌듯이 강약, 강약 등의 끈질긴 리듬이 계속된다. 기독교의 야훼 하나님이 유일신인데 비해, 무속은 多神的(다신적)이다. 옥황상제에서 터줏대감, 부엌의 신, 문간의 신, 관운장, 최영, 임경업 장군 등, 수많은 신들이 있는 것이다.
 
  「PSALM(詩篇) 20」의 첫 심발소리는(제1주제), 邪祈福(벽사기복)의 「아하 우리 대감이 아니시리」라는 조선의 굿거리 장단처럼도 들리는 아주 민족적인 소리이다. 그것이 야훼 하나님의, 더 보편적인 소리로 상승하며, 간혹 담대하게 증폭되고, 다시 온유하고 섬세한 절제와, 다양한 변용을 거듭하며, 바람에 흔들리고 폭풍도 부는 들판의 풀잎이나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들처럼 노래하며 祈願(기원)한다. 그렇게, 간절하고 온유하고, 고조되는 듯 절제되는 현대적인 기원의 찬가가 이루어진다.
 
  李信雨의 20대 초반의 작품인 「아날로지」(1991, 독주 오보와 작은 앙상블을 위한, 7분 49초)는 이 작곡가의 미묘하게 섬세한 재능을 일찍부터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PSALM 20」은 그보다는 더 대범하고 대담한 요소가 투입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민족적인 소리에 깃들이면서, 세계적인 것으로, 깃을 떠나 산야와 꽃밭을 날아다니는 벌이나 나비처럼, 변용되며 환골탈태해서 새롭게 태어난다. 옛것들이 보수되며 새것과 결부되어 미묘한 새로운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李信雨의 「Pot’ae-p’yong(保太平) in 1997」(1996/7, 약 10분)은, 姜碩熙의 「달하」가 현대의 「수재천」인 것처럼, 「현대(1997년)의 보태평」이다. 종묘제례악의 보태평지악은 지극히 문화적인(後代의 王이 先代의 王들의 文治를 기리는) 음악이다. 「보태평」은 음악에 통달한 세종대왕이 53세(보통나이, 세종 31년) 때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연례악이었는데 나중 세조 때부터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조선의 아악을 살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위해, 조사를 하러온 일본의 한 음악학자는 보태평의 奠弊熙文(전폐희문)을 듣고 천상에 오르는 것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ASKO앙상블이 연주하는 李信雨의 「오늘의 보태평」은 拍(박)의 일격으로 시작되며 바순의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절묘한, 평화로운 멜로디가 생성되어, 고비와 굽이를 흘러예듯 주제를 이끌며 발전해간다. 앙상블의 감싸는 듯한 소리들이 들어오며 간간이 숨을 끊었다가(休止), 때로는 절규처럼 날카롭게, 그리고 마냥 부드럽게 엇갈리며 풀려나간다. 「보태평지악」 11곡의 에센스를 추출해서 다시 釀成(양성)해낸 것도 같다.
 
  조선초의 「保太平」을 재현(대개 劣惡化)한 유사품이 아니다. 보태평, 옛 예악의 정신이 오늘의, 李信雨의 소리로써 인간의 더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새로운 것으로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1997년, 지금, 우리들의 동시대의 보태평이다. 그 아름답고 그윽하고 평화스러운 소리들 사이에, 문득, 문득, 맺고 끊는 「박」이 쳐울려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뜻밖에, 그러나 즐겁게 귀보다도 등덜미까지를 때린다. 그것은 옛것들의 지층을 뚫고 나오는, 생기에 찬 새로운 소리이다.
 
  나는 간혹 예수나 석가의 당시의 말들도 소중하지만, 만일 예수나 석가가, 새로운 정보들이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다면 어떤 말들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李信雨의 「1997년의 보태평」을 들으며, 세종의 음악적 재질이 1997년에 20대로 환생했다면 이런 「보태평」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석가나 예수 이후의 현대까지의 유사종교의 제창자들의 희극성은, 그 이후의 새로운 정보가 거듭 축적된 시대에, 어리석게도 훨씬 더 그들만 못한 말들을 한다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陳銀淑의 「상티카 에카틸라」
 
 
  陳銀淑(진은숙, 현재 독일에서 활발한 작곡활동) 작곡의 「상티카 에카틸라」(1993/94, 개작, 15분 정도)를 처음 들은 것은(CD) 1997년 말이었다. 그것은 산스크리트어로 「재앙을 물리치는 화음」(祭禮적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첫 부분에서는, 조선의 굿판의 『아하 우리대감이 아니시리』의 굿거리 장단(民俗樂)과는 차원이 다른 현의 집단 같은 소리가 발현된다. 인도의 심오한 옛 사상인 우파니샤드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더 본질적인 인간 공통의 邪祈福(벽사기복)의 소리를 응집시켜 놓은 듯한 소리를 느끼게 한다. 굿거리 장단이 더 원시적이며 본능적이며 민족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더욱 논리적이며 철학적이며 글로벌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곡(CD)을 들은 느낌을 쓴 일이 있는데, 그것은, 현의 집단의 소리들이 경고하는 듯한 소리의 다발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소리가 때로는 작게 때로는 더 크게 끈질기도록 반복된다. 모든 재앙을 엄하게 야단치며 집요하게 몰아내는 듯한 그 소리의 다발 사이를, 또한 모든 재앙을 달래며 씻는 듯한, 때로는 가냘픈, 때로는 굵다란 관과 현의 울림들이 치밀하게 구성되며 굽이를 돌고 고비를 넘기듯 흐른다. 그런 소리의 패턴이 종묘제례악(保太平의 「熙文」 등)의 반복되는 소리의 패턴처럼, 자꾸 변화하며 반복된다.
 
  재앙을 향한 참을성 있는 집요한 加擊(가격), 엄한 다스림과, 다시 그것을 너그럽고도 상냥하게 달래는 듯한 패턴이 변화하며 반복되는 것이다. 우레처럼 굵은 엄한 소리와, 맑고 높고 깊이 씻어주는 소리가 교차되고 반복되는 사이에 재앙은 물리쳐지기보다도, 물소리가 물로 돌아가듯, 용해하고 氣化(기화)하며, 잦아드는 천둥처럼 꺼진다. 신라의 萬波息笛(만파식적)은 전쟁(敵兵), 전염병, 장마, 폭풍 등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가물 때는 단비를 부르기도 했었다.
 
 
  슬기의 탑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는 것(벽사기복)은 결국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인간은 당연히 행복을 추구하는데, 인간세상에는 항상 재앙(환난, 곤경)이 따라다닌다. 환난의 원인제공자인 저들(詩篇 20편의 번역에 따라, 저희:누구:이 사람들:對敵者:그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옛날의 그들은 병거를 믿고 기마를 믿었지만, 현대의 그들은 「혹은 탱크 혹은 미사일」을 믿으며 의지하고 자랑한다.
 
  인간이 원인제공자인 재앙의 궁극의 모습은 전쟁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궁극의 악이다. 또한 다름 아닌 어리석음(愚行)이다. 탱크를 믿고 미사일을 자랑하는 전쟁은 인간의 어리석음의 한 궁극의 행위인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궁극의 슬기(知慧·叡智)가 될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어느 대중 가수들의 공연 도중에 무대가 무너져 가수들이 다쳤는데, 그 충격으로 열렬한 소녀 팬들 수백명이 까무러쳤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 여학생은 어떤 오빠(가수)가 다쳤대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대중가요를 오락으로 즐기는 것은 좋다. 그것을 열렬히 좋아하거나 열광하는 것도 또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가수들이 다쳤다고 수백명이 까무러치거나 더욱 자살을 한다는 것은 「병거나 기마나 탱크나 미사일을 믿는」 것 이상으로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것은 우선 교육의 문제이다. 특히 대중사회의 문화적인 분위기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동 크레메르가 한 음악잡지의 인터뷰에서 『물론 음악에는 「오락」이라는 요소』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우리가 콘서트를 하는 것은, 청중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과 함께, 더 깊은 체험을 경험하는 일』이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얼마 전 「새 천년 슬기의 탑」이라는 칸타타를 위한(삶과꿈 싱어즈 위촉, 진규영 작곡) 詩를 썼다. 새 천년을 인류가 사는 삶과 꿈의 원천은 돈보다도 힘보다도 더 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을 탱크보다도 미사일보다도 「하느님의 이름(그것을 알고자 하는 슬기)」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슬기, 기술력의 결집된 표현으로써 아주 가늘고 아주 높은 슬기(지혜)의 탑을 세운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탑은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앞으로 천년간 슬기의 성장, 기술력의 발전에 따라 높이를 두고두고, 가늘게 더 가늘게 높여간다. 탑의 소재의 그만한 절대의 단단함(硬度)과 나긋나긋함(軟度)이 요구된다.
 
 
  근원적 씨로의 환원
 
 
  그후 한 첨단 과학자의 「知的(지적)인 탐색」 「지적인 탑」이라는 말을 발견했다. 『과학이란 지적인 탐색을 하는 것이고, 인류의 지혜를 늘리며 새로운 메시지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적인 탑을 만드는 데 참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저널리즘에서 강조해주었으면 한다』고도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러나』 하고 그는 다시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저널리즘이 지금 필사적으로 쫓아다니는 것은 경제, 스포츠, 범죄다. 이런 가치관의 치우침은, 아이들에게 꿈을 지닐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경제는 파탄돼도 음악이나 과학을 死守하는 러시아 등에서는, 문화를 지키는 의지를 느낀다』
 
  행복─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다.
 
  「안락과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긴 적은 한번도 없다. 그와 같은 윤리상의 원칙을 나는 돼지우리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음악으로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돼지우리의 이상」을 추구하는 「윤리상의 원칙」이 아니다. 탱크나 미사일, 돈을 믿는 일도 아니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知的인(혹은 하느님의 이름을 믿는 지혜의) 탑」을 쌓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탱크나 미사일을 믿다가 넘어지고 엎드러지는 것」이 아니다. 知的인 탐색, 지혜의 탑처럼, 우리가 서로 더 깊은 체험을 경험하며 생각하고 「꿋꿋이 일어나 똑바로 서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중음악을 좋아하더라도 까무러치거나 자살을 할 것까지는 없다는 상식부터 일깨우며 똑바로 서는 일이다.
 
  1999년 8월 하순, 진은숙의 최근작인 「앙상블과 전자음악을 위한 『Xi』」(1997/98. 99. 2.24 파리 초연)를 들었다. 「Xi」가 뭔지도 모르고 우선 우송돼온 CD를 들으며 문득,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음악들의 요소를 걸러서 製鍊(제련)하면 혹시 이런 음악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온 편지에 요령 있는 「설명」이 있었다.
 
  「제목인 『씨』가 말해주듯이 음악을 원초적인 가장 작은 단위 『씨』에서 시작해 그 안에서 점점 소리가 생성되고 변용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음에서 음이 생성되고 그 음이 다시 소음으로 돌아가고, 음악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다양한 단위의 씨들이 연결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한, 저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쓴 작품입니다」
 
  내가, 1년 전쯤부터 생각하고 가끔 시도를 하다가 만 시의 작업(詩作)이 있다. 시는 말로 쓰는 것인데, 말의 근원적 시초인 言語素(언어소)와 같은 상태를 생각해 본 것이다. 가령 꽃(까치라도 좋다)이라는 한국말은 「플라워」(영어), 「블루머」(독일), 「하나」(일본), 「플레르」(프랑스), 「화(花)」(중국)… 세계의 언어의 수만큼 다른 말소리(音聲言語)가 있다. 그처럼 각각 다른 말소리의 근원에, 꽃에 대해서 느끼는 사람의 원초적인 느낌이 바로 소리로 직결되는 공통되는 소리, 言語素와도 같은 소리(음성언어)를 찾아(표현해)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의 시도처럼 「꽃」이라는 표현대상을 세계의 모든 말들을 똑같이 병렬(혹은 交織)함으로써 反詩(반시)적인 詩를 조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차별적인 말들의 병렬이 아니라, 차별화 이전의 말의 근원적인 시초를 생각해본 것이다.
 
  하지만, 詩에서의 그런 작업은 논리적으로 실현될 수가 없다. 말(언어)은 차별화로써 시작(발생)되는 것인데(그래서 「꽃」은 꽃이고 「까치」는 까치다), 말의 차별화 이전의 詩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말의 생성 이전의 말이(꽃도 까치도) 아닌 상태를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지개벽·혼돈·새벽바람
 
 
  「새 천년 슬기의 탑」이라는 칸타타를 위한 詩에서는, 하나의 무리수처럼 「이 시에서 낱말과 글귀들은 글월 속에 있으면서 각각 더 독립성을 『소리로써』 주장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시의 끝을 「나 라 라 라 라 라. 아 아 아 아 아 아」로 마무리했다. 거기서 「나」나 「라」나 「아」 소리는 말의 차별화(발생) 이전의 소리(音素)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꽃이 될 수도 까치가 될 수도 있고, 「슬기」의 소리가 될 수도 있으며, 또한 「폭력」이나 「우행(愚行)」의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말의 원초적인 발생 이전의 상태의 對極에 있는, 발생된 말의 궁극의 가치가 완성을 향해 한마디로 집중되며 다시 언어소처럼 환원된 상태의 말소리가 인도의 「옴(om:唵:聖音)」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치적인 것이 한마디로 응결되어 완성된 말이다. 그러나 아주 주관적인 그 말소리는, 객관적으로는 역시 하나의 관념적인 기호에 그치고 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진은숙의 「씨」를 들으며, 내가 상상한 언어소 같은 것을 「씨」라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이 아닌, 소리로써 만들어지는 음악에서는 더 근원적인 씨로의 환원과 생성의 세계의 실현이 시보다는 훨씬 더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말의 차별화와 소리의 차별화는 그만큼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예부터의 巫歌(무가)에는 『하늘은 子時(자시:子正 전후 한시간, 제1의 시간)에 열리고, 땅은 丑時(축시:밤 1∼3시, 제2의 시간)에 열린다』는 말(天開於子 地闢於丑)이 있다. 우리는 하나의 작은 씨앗의 싹틈을, 천지나 우주개벽으로까지 유추해가며 생각할 수 있다.
 
  진은숙의 「씨」는 천지개벽의 혼돈의 새벽 바람과도 같은 소음(전자음과 앙상블)으로 시작된다. 그 혼돈 속을 빠끔히 씨앗에서 갓 트이는 여린 싹 같은 현의 가는 소리들이 자아올려지듯 생성되고 느닷없는 강한 소리들이 돌출하기도 한다. 음악이 이어지는 동안(약 23분), 엇갈리며 어울리는 전자음과 현이나 관, 타악기들의 다양한 소리를 통해, 나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온갖 환경(땅의, 물의, 불의, 하늘의), 온갖 차원의 씨와 씨앗들의 싹틈, 생성, 곧, 작고 큰 개벽들을 체험하는 것과도 같았다.
 
  혹은 장-자크 레베크가 말한, 김환기 그림의 「광대한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생명의 전율」 「물과 불이 형제와도 같고 땅과 하늘이 양극의 힘으로 혼합되어 있던 때인 태초의 시간에 최초로 형성된 깊은 곳에서 감지한 생명」의 다른 형태를 느낄 수도 있다.
 
  나는 간간이 좋은 음악(서양의 클래식, 현대음악, 조선의 正樂, 좋은 민요들)을 통해, 오락성과 더불어 오락 이상의 더 깊은 체험을 찾으며, 또한 느끼며 경험한다. 블레즈의 「주인 없는 망치」를 들으며 망치의 자유 같은 것을 생각했었다. 그것은 고삐 풀린 송아지의 迷走(미주)가 아니다. 망치가 자주적으로 돌아다니며 어떤 것들과 만나고 부딪치며(聲樂도 포함)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각각 자기 자신의 여러 가지 체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현대음악에서는, 지금까지의 그런 음악적 체험과는 다른, 동시대적인, 혹은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체험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이 현대음악을 듣는 즐거움이다. 마치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땅(領域), 새로운 경지를 만나며 체험하는 것과도 같다.
 
 
  새로운 땅을 만나는 체험
 
 
  나는 새로운 음악들을 들으며 가끔,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음악적 체험의 미개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뇌세포는 生後 40주에서 5조7천2백억개까지 늘어났다가, 생후 1년쯤부터 줄기 시작해, 12세 무렵에 3조5천4백억개 정도로 안정된다고 한다. 그 엄청난 뇌세포의 수는 뇌의 과학을 떠나서, 그만큼 무한할 정도로 미개지(새로운 가능성)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시대, 혹은 미래지향적인 새롭고 깊은 음악적 체험을 가능하게 할 미개의 영토는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감각, 정서) 속에, 뇌세포의 집단 속에, 지혜의 탑을 쌓듯이, 미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갈 만한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거기서 쌓아지는 지혜의 탑은 바로, 「돼지우리의 이상」이라는 윤리상의 원칙과는 다른 행복의 질, 생활의 질로 이어진다.
 
  만일, 대중가요의 공연현장에서 까무러친 소녀들과 같은 知的(지적) 레벨이, 장차 대통령 선거의 유권자층을 형성할 때를 상상한다면, 누구나 당선되는 대통령의 얼굴이 무서워질는지도 모른다. 대중민주주의의 장래가 더욱 암담해지고 마는 것이다. 오락만이 아닌, 오락 이상의 음악보다는, 더 경제, 스포츠, 범죄만을 죽어라하고 쫓아다니는 저널리즘이, 생각할수록 또한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되어지는 「열악한 여론의 권위」가 신흥종교처럼 대중을 지배하는 사회가 정말로 두려워지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철학자 마이켈 폴라니는, 그런 「사이비 권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은 결국, 멸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姜碩熙 교수가 곧 65세의 정년(2000년 봄)을 맞이한다고 한다. 진은숙은 서울대에서의 姜교수의 취임 초기(1982년 5월)의 제자이고, 이신우(30대 초)는 진은숙의 서울대 8년 후배이다. 姜碩熙와 陳銀淑, 李信雨의 여러 작품들(각각 국제적인 위촉작품, 작곡 콩쿠르의 우승작 등이 많다)을 들으며(혹은 다른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과 비교해가며), 나는 종종 옛날 사람이 말한 醍味(제호미)와도 같은 음악의 재미를 느낀다. 현대음악을 듣는 재미와 즐거움인 것이다.
 
  특히 18년간, 서울대 음대 교수를 해온 姜碩熙에게는, 달리도 좋은 제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姜碩熙 교수를 생각할 때는 자주 진은숙, 이신우 교수의 이름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서, 굳이 그들의 음악적 특성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일이 있다.
 
  한국에서, 작곡가 姜碩熙는 현대음악의 독특한 하나의 기반을 다지고 길을 닦아가며 자신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그의 작품에 대한 신통치 않은 평은, 대개 신통치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진은숙과 이신우는, 그가 닦아놓은 길의 어떤 상당한 일정한 지점이 바로 출발점이 되었다. 姜碩熙에게는 별로 없었던 그만한 입지적인 혜택을, 두 여류 작곡가는 만났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姜碩熙는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건축적인 결집력을, 陳銀淑은 유연하고 강인한 강철선이나 금속 파이프의 엄격하고 치밀하고 뛰어난 조각작품 같은 첨단성을 느끼게 한다. 李信雨의 경우는 식물적인 섬유질의 섬세하고 미묘한 부드러움을 느끼게도 한다. 때로는 그런 材質(재질)들의, 가늘고 가볍게 「움직이는 조각(모빌)」 같은 묘미를 느끼게도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의 임의적인 비유일 뿐이다.
 
  그들은 각각 그들 자신의, 그만한 견고한 구조력, 강하고 엄격한 치밀성, 섬세하고 미묘한 부드러움을 그 독자적인 체질대로, 각각 그 자신의 세계 안에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각각 그 자신의 독자적인 지혜의 탑의 작업을 하며, 해가는 것이다.
 
  이것은 음악적 이론의 전개가 아니라, 다만 현대음악을 듣는 즐거움으로서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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