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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이행웅 - 리틀록의 태권도 왕 李幸雄 ATA(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 회장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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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王
  「ATA(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미국태권도협회)」 회장 李幸雄(이행웅·63·태권도 9단). 그는 미국에서 제자들로부터 『그랜드 마스터(大사부님)』로, 일반인들로부터는 『태권도 王(왕)』으로 불린다.
 
  1962년 스물다섯 살의 한 청년이 道服(도복)과 英韓(영한)·韓英(한영)사전 한 권씩만을 들고 미국땅에 발을 디딘 이후 37년이 지난 현재 그가 이뤄낸 성취의 기록은 대단하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7개국 19개 支部(지부) 1천2백여개의 支館(지관), 사범 3천명, 유단자 2만명, 총 회원수 20만명, 연간 총 수입 1천만 달러(약 1백20억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태권도 師父(사부)…>
 
  李幸雄 회장의 성공사례는 한국인들에게 낯선 소식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 중반에 국내 스포츠신문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었고 1990년대에 와서는 국내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리틀록의 작은 거인(1994년 KBS)」, 「세계는 지금(1997년 KBS)」, 「아칸소 주청사에 태극기(1998년 SBS)」, 「성공시대(1999년 MBC)」, 「아메리칸 태권도(1999년 인천방송)」 등으로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올해 7월25일 MBC TV의 「성공시대』라는 프로를 통해 방영된 내용 속에는 지난 6월10일부터 4일간 아칸소州(주) 리틀록市(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ATA 세계태권도대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회기간 중 아칸소州廳舍(주청사)에 성조기와 함께 게양된 태극기, 2만5천여 관중으로 꽉 채워진 컨벤션 센터, 하얀 태권도복 차림의 미국인 남녀노소가 깍듯이 90도 절을 하고 다니는 장면들, 한국 태권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쌍절곤과 木棒(목봉) 등 동양 전통무기를 자유자재로 놀리는 미국인들, 종교단체의 예식에 버금갈 師範(사범) 임명식, 신경마비된 여성 장애인이 17년간의 수련 끝에 3단 승단 시험을 보면서 돌려차기로 松板(송판) 격파를 성공시키는 모습 등. ATA는 3박4일간의 이 행사로 아칸소州에 3백50만 달러의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리틀록의 할아버지
 
 
  李幸雄 회장이 창안한 태권도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길래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기자는 지난 9월14일부터 5일간 미국을 방문해 李幸雄 회장을 만나 보았다.
 
  ATA 본부가 있는 아칸소州 리틀록은 미국 중서부의 후미진 곳이다. 남북전쟁 때 미국 연방을 탈퇴해 남부 연합에 가입했던 아칸소는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흑인들을 중심으로 한 목화농장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17시간의 비행 끝에 리틀록의 ATA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기자를 맞이한 李幸雄 회장은 왜소한 키에 깡마른 인상이었지만 얼굴은 인자했다. 『1백65cm의 키에 58kg의 체중을 평생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는 그는 영락없는 시골 村老(촌로)였다. 李회장은 기자에게 『인터뷰는 나중에 하자』며 자신의 사무실과 협회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좁은 통로엔 30년간 ATA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사진과 기념패가 걸려 있었다. 거의 모든 사진 속엔 태권도복차림의 미국인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많은 액자들 가운데 하나가 기자의 시선을 한참 붙잡아 두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 松板(송판) 격파를 한 사진인데 사진 위에는 클린턴이 격파해 두 조각이 난 송판 두 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
 
  지원부서들은 차를 타고 5분쯤 가야 하는 주변 건물에 나뉘어져 있었다. 道服과 띠는 물론 책과 비디오테이프, 태권도靴(화), 가방, 배지, 티셔츠 등 각종 태권도 관련상품들이 가득 찬 창고가 인상적이었다. 태권도靴의 경우 한국의 尙武社(상무사) 제품이었고, 연습용 武器類(무기류)들은 미국 본토와 일본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었다. 기자가 안내받은 여러 건물 중 한 곳에선 미국인 주부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주문받은 도복에 주문者의 이름을 새겨 넣거나 ATA 로고를 재봉질하고 있었다. 李회장은 1백 種(종)이 넘는 이 상품판매로부터의 연간 순이익이 약 4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협회 상근 직원은 90명. 현재 신축중인 건물이 완공되면 「태권도 박물관」도 들어 서게 된다고 한다. 李幸雄 회장은 우리나라에 개인용 PC가 처음 소개될 무렵인 1980년에 이미 10만 달러 상당의 IBM 컴퓨터를 도입해 협회 운영을 전산화하기도 한 스포츠 전문 경영인이었다.
 
 
  사람을 키우는 게 경영 비결
 
 
  돈과 교육(태권도)과의 관계를 말하려면 왠지 부담스러움을 가져야 하는 우리 풍토와 달리 미국에서 뿌리내린 李회장은 『도장을 운영하는 사범도 잘 살아야 제자를 더 잘 교육시킬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미국 네브라스카州 오마하에 정착한 지 7년 만인 1969년에 李회장은 자신이 배출시킨 미국인 사범들이 미국 전역에 퍼져 도장을 운영하고 있어 이를 발판으로 미국태권도협회(ATA)를 구성했다. 1965년에 창설된 대한태권도협회보다 4년 후이지만, 國技院(1972년)과 세계태권도연맹(WTF·1973년)의 창설보다 앞섰다.
 
  지난 30년간 李회장의 ATA는 미국 내에서 가장 단결이 잘되는 무술단체로 武道界에 널리 알려져 있다. 경영과 조직관리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그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없으면 기술이 전수될 수 없다. 제자를 잘 키운다는 것보다 더 큰 사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제자를 키운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다. 정성들여 가르칠 것, 제자의 인생 선배로서 진로를 잘 개척해 줄 것, 제자가 사범이 되어 도장을 운영하게 되면 그가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 등.
 
  협회는 미국과 南美(남미)를 포함한 全세계 7개국에서 운영되는 ATA 소속 도장들로부터 심사비와 회비를 받는다. 그러나 심사비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받는 데 노하우가 있었다. 유급자 심사의 경우 도장을 운영하는 사범에게 권한을 주고 심사비 일체가 사범의 몫으로 돌아가게 했다. 유단자의 경우는 1단부터 3단까지 심사를 지부장들에게 일임했고 중앙협회는 4단 이상의 고단자 심사만 관여하는 방식이다.
 
  『아랫사람을 믿고 맡기면 실수는 하지만 실패는 하지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주어지니 더 열심히 가르치고 회원을 더 많이 늘리려 노력하거든요. 회원이 늘어나면 결국 저에게도 회비 수입이 늘겠지요. 이렇게 해서 모두가 잘 살게 되니 좋잖습니까』
 
  ATA는 미국 본토에만 1천1백여개의 도장을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격 있는 사범이 도장을 운영하려고 하면 ATA 본부는 해당지역의 시장조사에서부터 건물 구입과 시설 완비까지 해 주고 도장 운영이 흑자로 전환할 때까지 관리해 준다. 물론 비용을 받고서.
 
  태권도 도장에 나가는 사람들은 1주일에 3일씩 도장에 나와 운동을 하고 월회비를 1백 달러씩 낸다. 도장 한 개당 2백에서 많게는 3백여명이 몰리기도 하는데 1개 도장당 관장(운영자), 사범, 비서 등 세 명이 운영한다.
 
  ATA 소속 사범들이 도장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이는 평균 월수입은 제반 비용을 다 제하고도 7천 달러에서 1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이 규모는 미국에서 돈을 잘번다고 소문난 의사나 변호사들의 수입과 맞먹는 액수다. 한국 실정에서 학원이나 道場을 경영하며 의사나 변호사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면 놀랄 것이란 기자의 말에 李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장사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멋있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도장이나 학교에 보내면서 돈을 내는 부모들이 아깝지 않게 느끼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ATA 태권도는 세 살부터 여든 살까지 할 수 있는 태권도입니다』
 
 
  競技태권도와 道場태권도
 
 
  부모를 만족시키는 태권도 프로그램, 세 살부터 여든 살까지 태권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그동안 競技(경기)를 위한 태권도(경기 태권도)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李幸雄 회장의 태권도란 바로 「道場 태권도」로 한국의 「경기 태권도」와 궤가 다르다. 해방 이후 시작된 한국의 태권도도 처음엔 초라했지만 「도장 태권도」에서 출발했다. 태권도 인구가 늘면서 모태가 된 館(관)들이 난립하자 1965년에 崔泓熙(최홍희) 장군에 의해 대한태권도협회로 결속할 수 있었고 1970년대에 들어와 청와대 경호실장 보좌관이던 金雲龍(김운용)씨에 의해 창설된 세계태권도연맹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길을 걸었다. 全세계 5천만명의 태권도 인구(국기원 1999년 자료)를 양성한 한국의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武道로서는 일본의 柔道(유도)에 이은 두 번째.
 
  경기 위주의 태권도 발전은 무술의 근본인 人格(인격)원리를 무시한 채 메달 경쟁에만 집착해 선수를 위한 엘리트 스포츠로 변질되었다는 지적도 많다. 대한민국 남성 중 성장기와 군복무 시절을 거치며 태권도나 유도, 검도 혹은 합기도와 쿵푸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본다면 成人(성인)으로서 태권도의 잠재인구는 세계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경험에 따르면 성인으로서 갈 만한 도장은 찾기 힘들다.
 
  기자의 경우도 중학교 시절에 이미 공인받은 유단자이지만 高(고)단자가 될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 채 운동을 그만두어야 했다. 군 시절에는 태권도와 특공무술의 교관이 되어 옛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있었지만 제대 후에 찾아간 도장에선, 이미 어린이들의 미술학원과 겸업해야만 하는 젊은 사범의 안쓰러운 얼굴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종주국에서 「경기 태권도」를 개발시켜 세계를 제패하는 사이에 李幸雄 회장은 미국에서 「세 살부터 여든까지」 할 수 있는 「생활 태권도」를 개발해 성공시킨 것이다.
 
  『경기 태권도의 경우는 아무나 할 수 없어요. 날쌔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 중에서도 엘리트가 할 수밖에 없어요. 도장 태권도는 武道입니다. 武道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李幸雄 회장의 독특한 「도장 태권도」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신만의 태권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자리잡은 지 5년쯤 되었을 때 李幸雄의 제자들은 사범 자격을 획득해 도장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 李幸雄을 태권도 사범으로 초청했던 동업자 딕 리드와 함께 프랜차이즈 방식의 도장 확장을 꾀하던 이 무렵, 李幸雄은 難敵(난적)과 만났다. 제자들이 스승인 李幸雄씨에게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가르쳐 줄 내용을 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제자들로부터 한두 번 겪었던 일이고 그때마다 「계속 반복해서 수련하는 길밖에 없다」고 덮어두었던 문제가 집단화해서 터진 겁니다』
 
  태권도는 품새(型의 순우리말)와 겨루기로 구성된다. 품새가 이론이라면 겨루기는 實戰(실전)이다. 태권도는 8개 級(급)과 10개 段(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승급과 승단을 거치기 위해서는 한 개의 품새와 겨루기 및 격파(유단자의 경우) 시험을 거쳐야 한다. 李幸雄씨가 맞닥뜨려야 했던 문제는 품새를 포함한 프로그램에 있었다.
 
  『유급자용 팔괘 품새와 유단자용 품새에서 이들은 문제를 느낀 겁니다. 품새가 너무 간단해서 운동신경이 있는 친구들은 이틀이면 다 배워버립니다. 게다가 겨루기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발차기가 이론이라고 할 품새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어요. 특히 기존의 태권도는 경기 위주로 성장하다 보니 수련하는 과정에서 다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이 館員(관원) 수를 줄이는 장애가 되고 있었어요』
 
  李회장은 이 무렵부터 도장 운영과 사범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자세 등을 정리하는 한편 「도장 태권도」를 제대로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태권도 품새에서 典範(전범)을 찾을 수 없어 고생했다는 李회장은 각고의 노력 끝에 1972년 사범 지침서(ATA Instructor Kit)를 발간했다. 일종의 매뉴얼인 이 지침서에는 태권도의 교수법뿐 아니라 태권도 정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접목시켜 「목표설정 능력, 인내력, 명예, 정의, 예의, 성실, 용기, 자신감, 충성, 관용, 조화, 극기」 등 열두 가지로 구체화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ATA의 정신」이 됐다고 한다.
 
 
  松岩 태권도
 
 
  「사범 지침서」라는 매뉴얼로 잠재된 불만을 일시적으로 덮을 수 있었던 李회장은 1977년에 동업자였던 딕 리드와 결별하고 아칸소州 리틀록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6년 뒤인 1983년 8월13일 「松岩(송암) 태권도」라고 이름을 붙인 자신의 태권도를 산꼭대기에 올라가 3백여 제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松岩이란 아칸소 州木(주목)이 소나무라는 점과 主都(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서 딴 바위 岩(암)자를 합해 만든 이름이었다.
 
  그가 창안한 松岩 태권도는 다양한 발차기와 자세를 개발해 품새에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유급자와 유단자의 등급을 한 단계씩 더 추가해 9급에서 9단까지로 변형시키고 각 단계별 습득 목표를 다양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양무술에서 등장하는 모든 무기를 삽입시킨 품새도 창안했다. 심지어 조선시대의 포졸들이 들고 다니던 육모 방망이를 본뜬 「Bangmangi(방망이)」도 ATA의 유단자라면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다.
 
  기자는 가져간 도복을 입고 李幸雄 회장의 연구실로 들어갈 기회를 가졌다. 李회장이 창안한 송암 품새를 따라해 보니 기존의 품새와 무척 달랐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기자가 연구실을 나오다가 『국내 태권도 관계자들이 이 품새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李회장은 『20년 동안 당신이 처음이오』라며 웃었다.
 
 
  『재미있고 안전하고 교육이 되는 태권도』
 
 
  자신이 창안한 태권도로 성공한 李회장에게 「도장 태권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묻자 그는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하고, 둘째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셋째 인성교육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갖추어야 도장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992년 세계적인 유통회사 월마트의 창시자 샘 월튼이 사망하기 전까지 아칸소州에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을 안겨준 李회장의 ATA는 현재 州 수입원 랭킹 1위로 올라 있다.
 
  장사가 되는 이유를 그는 『미국인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덕분』이라고 경영자다운 말을 했다. 『미국인 소비자의 기호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미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人本主義(인본주의) 교육프로그램』이라면서 『장애자까지 가르칠 수 있는 태권도에 미국인들이 반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장애자까지 가르칠 수 있는 태권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범으로서 인간교육에 대한 독특한 신념이 있어야 될 것이다.
 
  ─가르치다 보면 화날 때도 많을 텐데요.
 
  『처음엔 나도 화가 났어요. 왼발을 내밀라고 했는데 자꾸 오른발을 내밀면 화가 나지요. 그런데 화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내 기준에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왼발을 내밀라고 했는데 오른발을 내미는 사람은 그걸 배우기 위해 도장에 나온 것이잖아요. 사범은 그걸 가르쳐 주고 버릇처럼 길들여 주는 사람입니다. 장애자는 장애자의 수준에서 생각해 보아야 교육이 가능해집니다』
 
  李회장에게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해 보았더니 『지능, 집중력 그리고 체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움직여야 두뇌도 발달합니다. 태권도를 하면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시켜야 하니 집중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요. 머리도 좋아지고 체력도 좋아지는 운동입니다』
 
  ─도장 태권도를 너무 강조하면 호신술로서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ATA 태권도는 남과 싸워 勝者(승자)가 되는 태권도가 아닙니다. 勝者의 자리는 단 한 명을 위해 있습니다. ATA 태권도는 자신과 싸워 이기는 强者(강자)로서의 태권도입니다. 모두 强者가 될 수 있다는 것이 ATA 태권도의 모토입니다. 강자가 자신을 보호할 호신술 하나 못 갖춘다면 말이 안되지요』
 
  ─태권도 사범을 우리 아이들은 「태권도 아저씨」로 부릅니다. 「태권도 도장」은 「학원」이나 「체육관」으로 바꿔 부르기도 하는데요.
 
  『사범은 교육자입니다. 부모가 바빠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키니 돈 벌어 나에게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을 맡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ATA 태권도 스쿨」 혹은 「블랙 벨트 아카데미」로 부릅니다』
 
 
  스승의 조건
 
 
  李幸雄 회장은 한국의 태권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경기로서의 성공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 냈기 때문에 칭찬해야 옳지요. 그런데 태권도를 業(업)으로 삼고 사는 사범들은 매일 버스를 운전해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까지 합니다. 왜 종주국에서는 사범들이 운동도 하고 운전기사 노릇도 하면서 「태권도 아저씨」로 천시받고, 미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도장까지 데려오는 겁니까』
 
  그렇다면 ATA 사범은 어떻게 배출될까. 초단이 되는 데 2년 반이 걸리는 ATA태권도 시스템은 초단에서 2단(1년 반), 3단(2년), 4단(3년), 5단(4년), 6단(5년)의 기간을 정해 두었다. 사범으로서 자격은 4단부터인데 4단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9년이 걸린다. 4단에서 5단이 되려면 기간뿐 아니라 제자가 5백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達人(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스터(Master)가 되려면 6단에 올라야 하는데 처음부터 시작하면 20년이 족히 걸린다. 6단이 되려면 태권도 실력을 검증하는 심사와 더불어 제자가 1천명 이상이 되어야 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 업적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지옥훈련이란 코스를 거치고 9일간의 단식을 통과해야 한다.
 
 
  리틀록 흑인 거리의 도장에서
 
 
  이런 제도를 만든 李회장은 『대중에게 권위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만든 장치』라고 설명했다.
 
  『제자가 1천명이 넘으려면 그만큼 제자들에게 자애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人性(인성)이 잘못된 사람에게 사범의 권한을 줄 수 없잖습니까』
 
  사범이 되기까지는 사관학교보다 힘든 코스를 제시해 사범의 자질을 높인 것이다. 李회장에게 『스승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보았다.
 
  『훌륭한 스승이란 겸손하고 솔직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제자의 질문에 화를 내는 것은 스승이 뭘 가르쳐야 할지 몰라서 난 화를 제자에게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제자의 질문에 안다, 모른다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제자의 인격을 존중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스승이 훌륭한 스승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범을 배출합니다』
 
  百問而不如一見(백문이불여일견). 기자는 도장을 구경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李회장은 제일 가까운 리틀록의 흑인 거리에 있는 한 도장을 안내해 주었다.
 
  아칸소州 리틀록은 유달리 흑인들이 많은 곳이다. 1977년 李회장이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그는 흑인 청소년들을 계도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리틀록 흑인 거리의 하나뿐인 교회에는 태권도 간판도 함께 걸려 있었다.
 
  흑인 사범 앤더슨(6단)은 李회장을 만나기 전부터 흑인 사회의 계몽을 위해 헌신하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가 李회장으로부터 태권도를 전수받아 이제는 마스터(6단)로 제자들을 키우고 있었다.
 
  눈동자와 이빨을 빼곤 모두 검은색인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도장에서 운동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앤더슨 사범이 이들 앞에 섰다.
 
  『굿 이브닝 서!』
 
  90도 절을 하며 인사를 한 아이들에게 앤더슨은 구령하듯 외쳤다.
 
  『너희들은 나쁜 돈에 손대겠는가?』
 
  『노, 서!(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속일 건가?』
 
  『노, 서!』
 
  『도둑질을 할 거냐?』
 
  『노, 서!』
 
  『마약을 할 거냐?』
 
  『노, 서!』
 
  앤더슨 사범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천천히 왔다갔다하면서 다음 문장들을 先唱(선창)했다.
 
  『나는 진지한 목표를 가진 진지한 사람이다!』
 
  이 구령에 모두 復唱(복창)한다. 앤더슨 사범의 선창과 아이들의 복창이 계속됐다.
 
  『내 운명은 내 손에 달린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일꾼(Worker)이다!』
 
  『나는 몸과 마음과 품성을 깨끗이 닦는다!』
 
  『왜냐하면 나는 진지한 사람이니까!』
 
  이들의 함성을 듣고 있으면서 기자는 「아하! 인성교육을 운동을 통해서도 이렇게 시킬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앤더슨 사범은 기자에게 ATA 태권도를 통해 흑인사회가 많이 밝아질 수 있었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조상 대대로 노예였던 이들에게는 누군가 희망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지요. 내가 그랜드 마스터 리(李회장)를 만나 그로부터 태권도를 배우게 된 것은 태권도가 갖고 있는 도덕심과 존경심, 규율, 그리고 목표추구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태권도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그들이 자라서 후세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면서 늙어버린 우리 모두를 돕겠지요. 언젠가는 우리가 늙고 그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때를 대비한다면 우리가 지금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주저앉아 버릴 것입니다』
 
  목표추구, 도덕심, 존경심…기자는 태권도 취재를 하러 왔는지 국민윤리 취재를 하러 왔는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재미있어서 진지한 표정
 
 
  기자는 9월17일부터 18일간 플로리다州 올랜도에서 열리는 ATA 심사 및 토너먼트 대회를 참관해 李회장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세계적인 휴양도시 플로리다州 지역은 李幸雄 회장의 동생인 李順鎬(60·ATA 부회장)씨가 李회장보다 늦게 渡美(도미)해 태권도로 터를 닦은 곳이다. 李부회장은 이곳에서 15년 전부터 ATA 심사 및 토너먼트를 개최해 왔다.
 
  이틀간 디즈니 월드 內(내) 월드 스포츠 센터에서 열리는 이 대회를 위해 미국 전역에서 참가한 선수들은 약 3천여명. 대회전날 北上(북상)한 허리케인 때문에 예상보다 약 1천여명이 덜 왔다고 한다.
 
  기자는 李順鎬 부회장의 안내로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ATA 태권도 시범단을 찾았다. 李부회장은 『네 살부터 최고 예순두 살까지 20여명으로 구성된 시범단 모두가 자원봉사자』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관중 앞에서 자신이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신들이 비용을 들여 참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養育(양육)」하다시피 해서 구성하는 시범단과 달랐다.
 
  올랜도 키스미 지역에 산재한 콘도미니엄 중 한 곳에 숙소를 정한 이들은 카펫이 깔린 큰 연회실에서 연습중이었다. 李총재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각양각색의 폼으로 연습하던 이들 중 리더격이 되는 미국인이 李부회장을 보더니 한국말로 『차렷!』 하고 구령을 붙였다. 갑자기 꼬마부터 義足(의족)을 댄 흑인 노인까지 모두가 李부회장을 보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경례!』
 
  『굿 애프터눈, 서!』
 
  李부회장의 말끝마다 이들은 손바닥을 편 차렷 자세로 돌아가 『예 서!』라고 대답했다. 군대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일사불란함을 연출하는 이들에게 강제성이나 압박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엔 너무나 즐거워서 오히려 진지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이날부터 기자가 체험한 것은 미국인으로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예절을 지키고 있었다는 점, 그들이 예절을 지킬수록 그들의 태권도 실력도 대단해져 간다는 점 등이었다. 그들 속에서 간단한 목례에 익숙해 있던 기자는 이미 한국인이 아니었고 오히려 파란 눈의 그들이 한국인이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태권도란 武道가 장애인에게 활짝 열려 있었고 가족에게도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가족 스포츠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三代가 태권도 도복 차림으로 대회에 참가한 가족들도 보였다.
 
  직업을 두 개 이상 갖고 있는 미국인들이 많은데 하워드 스튜어트(48·4단)씨의 경우는 통신회사 사장이면서 태권도 도장도 운영하고 있다. 부인인 미세스 하워드와 아들 데니스(32)도 유단자로 ATA 가족이다. 이들은 지난 4월 북한 방문에도 시범단으로 참가할 만큼 열성파였다. 하워드씨에게 『북한의 태권도와 ATA의 태권도는 어떻게 다른가』를 물었다.
 
  『북한의 태권도 기술이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훈련도 열심히 하는 것 같고. 하지만 우리 미국 태권도는 사범님에 대한 존경심을 무척 강조합니다. 그랜드 마스터 리(李회장)는 태권도를 스포츠라고 하지 않고 마셜 아트(武道·Martial Art)라고 가르칩니다. 태권도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교육」이란 단어에 힘주어 말하는 하워드씨의 양복 옷깃엔 별 두 개의 계급장이 달려 있다. 계급장은 초단부터 4단까지는 막대 표시이고, 5단부터는 장군급으로 5단은 별 하나, 6단은 별 둘, 7단은 별 셋, 8단은 별 넷이고, 大師父(대사부·그랜드 마스터)는 별 다섯 개이다.
 
  李幸雄 회장은 자신의 태권도에 계급을 붙인 이유를 『제자들로부터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심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계급에 대한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태권도
 
 
  이 제도는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민간인 신분에서 바라볼 때엔 「웬 병정놀이인가」 싶지만, 이들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존경과 추앙을 받는 「진짜 계급장」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방엔 자신을 가르쳐 준 사범을 모델로 한 포스터가 영웅처럼 벽에 장식되어 있다. 이 포스터는 물론 ATA에서 제작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날 오후 기자는 올랜도 지역의 ATA도장을 방문했다. 마침 유년부 교육시간이었다. 40여명의 아이들이 도복을 입거나 운동복 차림으로 사범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행동을 보며 흐믓해 하고 있었다. 사범이 한 여자 어린이에게 발차기를 시키는 중이었다.
 
  『세게 차 봐. 네가 세게 차는 걸 좋아한다는 걸 난 알지. 오케이. 기회가 왔어. 차!』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옆차기로 사범이 들고 있던 샌드백을 보기 좋게 찼다. 기자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왜 당신의 자녀를 ATA에 보내죠?』라고 물어보았다.
 
  『사범님(마스터)들이 아주 재미있게 가르치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다른 도장에 보냈는데 그쪽에서는 한 시간 동안 하나, 둘, 셋, 넷 구령만 외치면서 같은 동작만 반복해서 가르쳤어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이죠. 그땐 내 아이가 여기서 돈을 내고 그 동작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죠. ATA에서는 우리가 필요한 다른 것들도 많이 가르쳐 줘요. 참 좋아요』
 
  9월18일 토너먼트가 열리던 날, 기자는 월트 디즈니 월드 스포츠센터를 돌아다녔다. 이 토너먼트는 약 일년 전 미국 전역을 통해 공지되었고 사람들은 개인별로 자신의 휴가일정을 조정해 토너먼트 날짜와 맞췄다고 한다. 참가자 중 과반수 이상이 개별 참가였다. 이들이 입구에서 참가비를 내고 자신의 체중과 단(급)수를 말하면 안내자가 몇 시까지 몇 번 링에 가서 대기하라고 말한다. 혼자 세계챔피언이 되기 위해 도전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경기 운영 시스템이었다.
 
  국민의례가 시작되었다. 태권도복을 입은 미국인 여자가 약간 서툰 발음으로 우리의 애국가를 불렀다. 조용한 체육관에 울려퍼진 애국가는 감동적이었다. 다음엔 흑인 선수가 나오더니 미국 국가를 불렀다. 그는 재즈 창법을 사용해 變音(변음)을 가했는데 한 마디로 기막힌 창법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환호로서 국민의례가 끝난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우리가 만들지 못한 문화의 단면이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시범선수단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보인 시범은 검은 띠를 맨 장애자들이 보이는 격파 시범. 처음 실패하더라도 ATA는 세 번까지 허용한다는 「인간적인」 규칙이 있다. 이날 등장한 장애자들은 義足(의족)을 단 흑인 노인과 신경마비에 의한 척추장애자인 여자선수(매리 앤), 그리고 뇌질환을 앓아 머리털이 거의 없는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보기에도 안타까울 만큼 거동이 불편한 매리 앤은 도수 높은 안경까지 걸친 채, 그러나 활짝 웃으며 돌려차기로 송판을 박살냈다.
 
  장애자들의 시범은 정상인들에게 「노력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관중들을 감동시켰다. 이들은 이기려고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니라 삶을 건전하게 즐기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일사불란함을 목표로 완벽美를 추구해 온 우리의 태권도 시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었다.
 
 
  문화의 역류현상
 
 
  매리 앤은 기자에게 『피곤하고 힘들지만 정말 기뻐요. 처음에는 휠체어에만 앉아 팔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죠. 태권도를 통해 내가 이만큼 움직일 수 있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토너먼트가 시작되자 테이프를 마룻바닥에 붙여 그려 놓은 30여개의 링에서 제각기 게임을 진행했다. 대회장은 시끌벅적했지만 난장판 같은 모습은 그날 끝까지 발견할 수 없었다.
 
  도장 태권도에서는 발차기 동작에서의 정확성과 날카로움이 부족하리란 기자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敵意(적의)만 없을 뿐 특히 흑인선수들의 足技(족기) 동작은 가히 걸작이었다.
 
  겨루기가 끝나면 진 사람의 손이 먼저 올려지고 이긴 사람과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태권도는 이미 싸움의 도구에서 한 차원 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금발머리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검은 띠를 두르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리트니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오레곤州에서 비행기로 왔다고 했다. 스카티란 이름의 아버지에게 ATA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식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거요. 집에서 가정교육이 얼마나 힘드는지 말이오. 공손해라, 정직해라, 어른에게는 「서(sir)」라고 존대말을 해라…그런데 그게 됩디까?』
 
  스카티氏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ATA 도장을 보냈더니 애가 달라졌어요. 이렇게 좋은 교육이 또 어딨습니까』
 
  심판으로 참가한 찰스(52) 사범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 매개체가 태권도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는 것이죠. 성공하기까지 계속 발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가 되는 것이니까요』
 
  기자가 올랜도 태권도 대회를 통해 발견한 것은 미국 아이들이 일찍부터 싸움이 아닌 도전의 의미를 배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센터를 꽉 메운 열기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응원 나온 가족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운한 자식에게 위로의 포옹을 하기도 했지만 敵對感(적대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판의 판정에 시비를 거는 풍경도 없었다. 오후에 스포츠센터의 가장 높은 장소를 찾아 올라간 기자는 이 광경을 내려다보며 「20년 전 미국 사회는 무술로 단련된 동양인들을 두려워했는데 20년 뒤에는 동양인들이 저들의 무술을 겁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문화의 逆流(역류)를 목격한 소감이었다.
 
  ATA의 대중적인 인기는 회원 20만명에서 찾기보다는 남녀 구성 비율과 성인의 비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체 회원 중 성인이 40%인데 여성이 전체의 30%나 된다. 대한체육회나 國技院측 통계를 살펴보면 국내 1백50만 태권도 인구 중 성인이 35%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유단자와 유품자(미성년자에게는 段이 허용되지 않고 品으로 칭한다)의 구분에 의한 집계일 뿐이다.
 
  실제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들에게 『자기 건강을 위해 태권도를 하는 일반인들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오히려 『헬스를 하지 뭣하러 태권도를 하겠습니까』라며 5%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생활 체육으로서 태권도를 수련하는 성인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ATA 코리아
 
 
  李幸雄 회장의 ATA에 호감을 가진 한국 내 태권도 사범들은 많다. 약 1년 전부터 李회장의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ATA 코리아」가 한국에서 문을 열고 이미 3백70여개의 도장이 여기에 가입해 있다.
 
  「ATA 코리아」의 金鍾赫(김종혁·42) 이사는 『현재 국내의 태권도 도장은 국기원을 통해서만 段(단)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學位(학위)와 동등한 段 승인의 권한이 없는 미국태권도협회는 교육자격도 없고 段 승인의 자격도 없는 셈』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ATA 코리아」는 「Advisor to Taekwondo Academis」의 약자로 사용하며 회원들에게 도장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경영 노하우를 지원해 주는 차원에서만 활동하고 松岩태권도는 선택사양으로만 제시하고 있는데 아주 성공적이라고 한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의 태권도 천지 체육관 관장 柳在洪(유재홍·42)씨는 은혜학원, 은혜 어린이집을 동시에 운영하며 태권도를 가르치는 「태권도 아저씨」였다. 올랜도 태권도대회를 참관하러 온 그는 약 3개월 전에 「ATA 코리아」에 가입해 도장운영에 많은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입비 1백만원에 매월 11만원씩을 납부하면 敎案(교안)을 포함해 각종 프로그램의 노하우를 지원받는데 가장 큰 변화는 학부모들의 시각이 바뀌어 간다는 점이라고 했다.
 
  도장에서 실시되는 昇品(승품)심사 때는 어린이들이 직접 격파와 호신술 시범을 보이는데 학부모들의 70% 가까이가 참관할 만큼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國技院측에서 ATA의 이런 활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귀국한 뒤 세계태권도연맹 홍보실로 전화를 해 보았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간부는 『공식 입장은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연맹 산하에는 이미 각국 협회가 있는데 ATA는 李幸雄 회장의 독자적인 것이기에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죠. 그분이 미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한 데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부분은 그분의 개인 역량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태권도王의 꿈
 
 
  취재를 끝내고 올랜도에서 귀국준비를 하던 기자에게 李회장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15년간 한국에 내 태권도를 보급하려고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투자가 아닌 줄 알더군요. 초창기 미국에 올 때 저는 애국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먹고 살기 바빴으니까요. 이제 여유가 생기고 異民族(이민족)을 성장시키는 데 일조를 하다 보니 돌연 애국심이 생긴 겁니다. 한국에는 세계 제일의 「경기 태권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태권도」만으로는 대중과 괴리되어 풍요한 환경을 누리며 제자를 길러낼 사범들을 배출시킬 수가 없습니다.
 
  경기 태권도는 체력이 우선이지만 도장 태권도는 두뇌가 우선입니다. 경기 태권도가 하드웨어라면 도장 태권도는 소프트 웨어입니다. 한국인이 체력 좋은 서양인에게 힘으로 이기기는 힘듭니다. 대신 한국인은 두뇌가 좋습니다.
 
  내 소망은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이 도장 태권도로서 영원히 세계를 제패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개발한 태권도를 한국에서 후배들이 더 개발하고 대중화시켜 우리 후세들에게 넘겨 줄 큰 자산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에는 무궁무진한 이익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것을 잘 이용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30여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태권도가 성공해서 다시 한국으로 逆(역)수입되는 중이다. 우리가 이 無形(무형)의 자산을 강화시켜 다시 수출하는 날이 오면, 「태권도 王」 李幸雄의 꿈은 실현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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