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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탄핵 이후’에도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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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 이르면 2월 말 3월 중에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이 서두르고 있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빤히 보입니다.
 
  현직 지검장이 “절차에 대한 존중이나 심적 여유가 없는 헌재 재판관의 태도는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 지검장은 “지금 헌재는 이제는 적법절차와 방어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라면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답을 국민에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지금 헌재는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헌법재판관들을 믿어라’라는 식의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국민들이 믿으려면 먼저 헌법재판관들 개개인이 ‘헌법의 수호자’다운 믿음을 줘야 하고, 헌재가 심리 과정에서 공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헌재, 숙의를 통해 국민 통합의 길 열어야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를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대통령이 됐음에도 지난 2년 반 동안 그 시간을 허송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지금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복수”라고 말했는데, 지금 윤 대통령에게 딱 들어맞는 얘기입니다. 특히 경제가 극히 어렵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계엄령 선포로 대한민국호(號)가 선장 없이 표류하는 상황을 만든 데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재판소의 졸속 심판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헌법이 탄핵 제도를 마련해 놓은 것은 ‘보통의 파면 절차에 의한 파면이 곤란하거나 검찰 기관에 의한 소추(訴追)가 사실상 곤란한 대통령·국무위원·법관 등’과 관련된 갈등을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심판이라는 헌법의 틀 안에서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棄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론(國論)을 극도로 분열시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 억울함이 남지 않고,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절차적 정당성을 제대로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탄핵이 인용(認容)될 경우에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도 이런 일을 저지르면 파면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처럼 법조인들마저 낯 뜨거워 할 만큼 허접한 결정문은 쓰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충분히 숙의(熟議)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갈가리 찢겨진 국민들의 마음을 봉합하고 국민 통합의 길을 여는 역할을 헌재가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헌재는 이미 방향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판관들의 이념적 편향성이 작용했다거나,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명(汚名)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그 후에는 조기(早期)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겠지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이 곧 정상적인 헌정(憲政) 질서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노재봉 전 총리의 말씀처럼, ‘체제 탄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미 야당이나 좌파 세력은 ‘내란 세력 척결’이니 ‘사회대개혁’이니 하는 말들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을 위헌(違憲) 정당으로 몰아 해산시키고(이미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을 문 닫게 하고, 자기들에게 거슬리는 언론을 없애버리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위에서 ‘사회대개혁’이라는 명분의 체제 전환, 즉 ‘혁명’이 진행될 것입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이미 그런 전조(前兆)가 보입니다. 언필칭 ‘민주화의 성지(聖地)’라는 광주(光州) 시장은 “내란에 동조하고 선전·선동을 일삼는 반(反)헌법, 반민주주의 집회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탄핵 반대 집회를 불허(不許)했습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5·18광장 거기가 어디라고 거기 와서 (탄핵 반대 집회를) 하겠다는 거냐”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민주당 법률위원장이라는 국회의원은 “집회의 자유를 부정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장소를 안내해 주면 어떨까”라며 ‘광주광역시 남구 도동길 160’, 즉 쓰레기매립장을 추천했습니다. 탄핵 반대 세력을 ‘쓰레기’에 비유한 셈입니다. 그 국회의원은 재치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말을 접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쓰레기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정치적 반대자를 비(非)인격체로 대하기 시작할 때, 그건 단순한 비유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 앤터니 비버는 《러시아 내전》에서 “레닌이 부르주아를 ‘이’ ‘벼룩’ ‘해충’ ‘기생충’이라고 부르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 것은 계급 학살을 주장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습니다. 스탈린 시절 밭 한 뙈기라도 가진 농민들을 ‘돼지’라고 지칭했을 때, 나치가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지칭했을 때,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바퀴벌레’라고 불렀을 때,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을 돼지에게 던져주라’고 했을 때도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2030 세대)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켜야 한다”고 한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의 말도 그런 의미에서 심상치 않습니다.
 
  ‘인간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인간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키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스탈린이나 나치가 운영했던 강제수용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를 ‘특별독재대상구역’이라고 하죠. 그러고 보니 1980년대 주사파(主思派)들은 “통일이 되더라도 요덕수용소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나는 내란 세력이 아니니까’ ‘나는 극우 세력이 아니니까’ ‘나는 그저 먹고살기 바쁜 평범한 소시민이니까’ 괜찮을 거라고요?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음에 그들이 노조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등장을 지지했지만, 그 실체(實體)를 깨닫고 난 후에 반나치 운동을 벌이다가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글입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희망에는 실망이라는 무서운 위험이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 내려질 경우, ‘아스팔트 투사’들의 사자후(獅子吼)와 윤 대통령 지지 여론이 반등하는 데 고무되어 영하의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어왔던 분들이 낙담하고 절망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어왔고 노구(老軀)를 이끌고 거리에 나가 태극기를 흔드는 분들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말라비틀어지고 고립되게 내버려둘 수도 없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막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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