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펀트 워크’ 훈련을 하고 있는 F–4E 팬텀 전투기.
1969년부터 55년 동안 도깨비가 내는 듯한 굉음을 내뿜으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킨 전투기 F–4 팬텀(Phantom)이 오는 6월 퇴역한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가 개발한 팬텀은 1961년 실전 배치됐다. 베트남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려 1970년대까지 당대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됐다. 1981년까지 총 5200여 대가 생산된 ‘베스트셀러’다. 냉전 시기 한국, 독일, 일본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수출됐다. 한국은 월남전 파병의 대가로 일본보다도 먼저 팬텀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1975년 월남 패망 후 국민이 모금한 방위성금으로 마련한 팬텀기에는 ‘방위성금헌납기’라는 표식이 선명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북한 공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미그기를 배치한 덕분에 우리 공군보다 전력이 앞섰다. 하지만 팬텀이 도입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그기 킬러’라는 별칭을 가진 팬텀은 1983년 2월 25일 서해 연평도 상공을 통해 미그(Mig)–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북한 공군 대위를 안전하게 수원비행장으로 착륙시키기도 했다.
F–4 팬텀은 다른 전투기들과는 달리 크고 무거운 외형을 띠고 있다.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F–5, F–15K, F–16, F–35A 등)와는 다른, 하체가 단단해 보이는 동체가 어린 시절 기자에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개의 엔진을 단 덕분에 출력도 좋아 폭장량(爆裝量)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단순히 ‘전투기’가 아니라 ‘전폭기(戰爆機)’로 불리기도 했다. 나란히 배치된 두 엔진을 전투기 뒤에서 바라보면 마치 귀신(도깨비)처럼 보인다고 해 ‘팬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학창 시절 매일 아침 F–15K가 두 개의 엔진에서 내뿜는 굉음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F–15K가 내는 소리가 단단하고 현대적이었다면 F–4는 고전적이고 중후했다.
21년 전인 2003년 10월 1일 국군의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공항에서 국군의날 기념식을 마친 우리 군 장병이 동대문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거쳐 서대문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그 뒤로는 우리 군의 첨단 무기가 등장했다. 교보문고 앞에서 한창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 남청색을 띤 미사일 하나가 눈앞을 지나갔다. 우리 군이 김정일을 타격하기 위해 도입한 팝아이(Popeye) 공대지미사일이었다. 당시 우리 군은 “100km 밖에서 평양 김정일 집무실을 타격할 수 있다”고 이 미사일을 한창 선전했었다.
팬텀은 지난 4월 18일 이 팝아이 미사일을 마지막으로 쏘았다. 이제는 팬텀의 뒤를 이어 F–15K가 우리 하늘을 지키고 있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가 개발한 팬텀은 1961년 실전 배치됐다. 베트남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려 1970년대까지 당대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됐다. 1981년까지 총 5200여 대가 생산된 ‘베스트셀러’다. 냉전 시기 한국, 독일, 일본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수출됐다. 한국은 월남전 파병의 대가로 일본보다도 먼저 팬텀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1975년 월남 패망 후 국민이 모금한 방위성금으로 마련한 팬텀기에는 ‘방위성금헌납기’라는 표식이 선명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북한 공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미그기를 배치한 덕분에 우리 공군보다 전력이 앞섰다. 하지만 팬텀이 도입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그기 킬러’라는 별칭을 가진 팬텀은 1983년 2월 25일 서해 연평도 상공을 통해 미그(Mig)–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북한 공군 대위를 안전하게 수원비행장으로 착륙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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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공군 수원기지에서 2024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연습과 연계해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실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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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F–4E 팬텀 전투기가 전국을 순회하며 고별 비행을 했다. 팬텀이 부산 거가도 일대를 비행하고 있는 모습. |
두 개의 엔진을 단 덕분에 출력도 좋아 폭장량(爆裝量)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단순히 ‘전투기’가 아니라 ‘전폭기(戰爆機)’로 불리기도 했다. 나란히 배치된 두 엔진을 전투기 뒤에서 바라보면 마치 귀신(도깨비)처럼 보인다고 해 ‘팬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학창 시절 매일 아침 F–15K가 두 개의 엔진에서 내뿜는 굉음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F–15K가 내는 소리가 단단하고 현대적이었다면 F–4는 고전적이고 중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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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필승편대의 비행 모습.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이 모금한 방위성금으로 도입한 F–4D 편대에 ‘필승편대’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기수에는 ‘방위성금헌납기’라는 흰 글자가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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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25일 공군 F–4E 전투기가 서해 연평도 상공을 통해 미그(Mig)–19기(왼쪽)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북한 공군 대위를 안전하게 유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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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D 팬텀 1차 도입 당시 모습. 팬텀 6대가 태평양 상공에서 미 공군 KC–135 공중급유기의 공중급유를 받고 주일 미 공군 오키나와 기지를 경유해 1969년 8월 29일 대구기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F–4D 팬텀을 도입한 것은 우리 공군이 아시아 최초였다. |
팬텀은 지난 4월 18일 이 팝아이 미사일을 마지막으로 쏘았다. 이제는 팬텀의 뒤를 이어 F–15K가 우리 하늘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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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F–4E 팬텀 전투기가 공대지미사일 AGM-142 팝아이(Popeye)를 발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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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E 팬텀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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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E 팬텀 전투기가 화력시범 훈련에서 항공탄을 투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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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이 KF–21과 함께 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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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22일 건군 50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앞두고 성남비행장에서 열린 리허설에서 공군 F–4 팬텀기 편대가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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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E 팬텀 전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