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의 석인들. 석인 혹은 돌사람은 한국의 미술적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풍요롭다.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 망부석은 한국의 산야(山野)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돌사람이다. 마을 어귀에서는 흔히 장승이나 벅수를 볼 수 있고 비각이나 비석 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돌로 만든 얼굴상(像)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것 같다.
웃는 동자석(童子石)이 때로 슬퍼 보인다. 근엄한 모습의 장승이 왠지 싱거운 이웃 아저씨 같다.
문관석(文官石) 앞에 서면 괜히 목례라도 하고 싶고, 망부석(望夫石) 같은 애절한 석인상 앞에 가면 발길이 절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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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석.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었다. 문관석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부터 우리나라 무덤 앞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왕릉이 아닌 고관이나 양반의 무덤 앞에도 문관석이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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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 불교나 무속에서 보살, 명왕, 산신 등을 모시는 어린아이 상이다. 무덤 앞의 동자석은 죽은 이를 모신다는 의미이다. |

수백, 수천 년의 긴 세월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표정이 돌과 나무, 도자기에 담겨 있다. 다양한 표정 속에 장인의 예술적 감수성과 시간의 흐름까지 만날 수 있는 곳이 ‘얼굴 박물관’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그냥 돌이지만 그 속에 영적(靈的)인 느낌이 ‘넘치지 않게’ 담겨 있다. 무속(巫俗)보다는 친근하다는 느낌이 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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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박물관의 내부 모습. 옛사람의 손길이 담긴 얼굴 표정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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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본떠서 만든 다양한 세계의 인형들. 흙을 빚어 만든 토우(土偶), 나무로 만든 목각인형, 짚과 풀 또는 헝겊으로 만든 인형 등 다양하다. 기능면에서는 망자의 부장품으로 무속적 신앙의 대상으로 또는 장난감으로 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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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 또는 가면은 다양하다. 예능탈은 마을이나 고을에 전승되는 탈춤이나 산대놀이(가면극)와 같이 전승돼왔다. 무속적 또는 제의적 성격의 탈도 있다. 소재 또한 나무, 종이, 박, 짚 등 다양하다. 외국의 탈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쓰였는데 추수감사나 다산, 기우제, 악령을 쫓는 의식 때 사용되었다. |
이곳은 경기도 광주 남종면에 위치한 얼굴 박물관. 김정옥(金正鈺) 관장이 반세기 동안 모은 1000점이 넘는 석인(石人), 목각인형을 비롯해 도자기와 유리 인형, 그리고 사람 얼굴을 본뜬 와당과 가면(탈)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중에서 석인(돌사람)이 가장 인상적인데 우리의 미술적 문화유산 중 가장 풍요로울 뿐 아니라 다양하다.
김정옥 관장은 “연극 공연을 하러 국내외를 자주 다니며 석인이나 도자기 같은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서양과 차별화된 한국 미(美)에 관심이 생겼다. 2003년 무렵 박물관을 개관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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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무속화. 종교화로의 상징성과 함께 부적과 같은 기능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무속화는 회화적 가치도 지닌다. 대담한 색채와 선, 그리고 독특한 상상이 빚어내는 구도는 현대미술과 상통하기까지 하다. 무속화 속 얼굴 표정은 희로애락을 초월한 듯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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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돌사람 앞에 선 김정옥. |
구체적으로는 석인(벅수,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 선비석, 민불 등)이 300여 점이고 목각인형(상여나 꼭두극 또는 불교미술)이 200여 점, 도자기나 테라코타 인형 50여 점, 한국과 중국의 와당 50여 점, 가면이나 탈 100여 점, 초상화나 무속 인물화 100여 점, 현대작가의 회화와 조각 100여 점, 그 밖에 민속품 100여 점 등에 이른다.
어쩌면 이곳에서 우리와 가장 닮은 얼굴, 가장 찾고 싶은 얼굴과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설렘이 발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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