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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자유 민주 공화라는 新문명의 전파자들이 잠든 곳

글·사진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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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묻힌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는 ‘웨스트민스터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한다’고 말한 대로 이곳에 묻혔다.
  8월은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榮辱)이 농축되어 있는 달이다. 한국인들은 8월에 나라가 망하는 치욕과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되는 감격을 맛보았다. 반만 년 민족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평등, 민주, 공화(共和)의 원리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웠다.
 
  그러한 가치들은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지구 끝까지 ‘야소(耶蘇)’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며 ‘야만의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아득한 극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모험가와 지식인과 상인들이 가져온 박래품(舶來品)이었다.
 
《대한매일신보》 사장을 지낸 배설(어니스트 베델·1872~1909)의 묘비.
  그들이 이 나라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구한말(舊韓末) 제중원(濟衆院·현 세브란스병원)의 의료선교사이자 자신의 멘토요 친구인 올리버 애비슨 박사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면서 한 말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애비슨 박사는 그가 이 땅에 전한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오는 자유주의 사상의 상징으로써 본 대통령의 신실한 친구였으며, 또 본 대통령의 청년 시기에 기독적 민주주의의 새 사상을 호흡게 하였다.”
 
헨리 아펜젤러(1858~1902).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 설립자로 이승만의 스승이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이 땅에 자유·평등·민주·공화의 가치를 전파(傳播)한 개척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누운 이들은 모두 417위. 그중 145위가 선교사와 그 가족이다. 아펜젤러, 스크랜턴, 언더우드 등 대(代)를 이어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 외에도 독립운동의 후원자던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자 프란츠 에케르트, ‘고아의 아버지’ 소다 기이치, 장애인 교육의 개척자 로제타 홀, 크리스마스 실의 창안자 셔우드 홀 등이 이곳에 묻혀 있다. 서울 지하철 합정역에서 5분 거리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잘 가꾸어진 공원묘원이다.⊙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는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 음악가다. 일본 국가(國歌) 기미가요도 그의 작품이다.

달젤 벙커(1853~1932) 선교사는 한성감옥에 갇힌 이승만·이상재 등을 기독교로 이끌었다.

윌리엄 쇼(1890~1967)와 그의 아들 해밀턴 쇼(1922~1950). 평양에서 태어난 아들 해밀턴 쇼(앞)는 6·25 때 서울 녹번동에서 전사했다.

소다 기이치(1867~1962)는 이승만의 YMCA 동료였다. 1000여 명의 고아들을 돌보아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교사 자녀들의 묘역. 그의 부모들이 조선으로 선교를 오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레이스 언더우드(1859~1916). 한국에 처음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로 새문안교회와 연세대를 설립했다. 이 집안 4대 7명이 양화진에 묻혀 있다.

1911년에 나온 한글 성경. ‘명치’라는 일본 연호가 적혀 있다.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윌리엄 홀(1860~1894)의 왕진 가방.

윌리엄 홀의 아내 로제타 홀(1865~1951)이 남긴 두루마리 편지. 그녀는 남편과 딸을 한국에서 잃었지만 43년간 한국에서 선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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