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에 묻힌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는 ‘웨스트민스터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한다’고 말한 대로 이곳에 묻혔다.
8월은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榮辱)이 농축되어 있는 달이다. 한국인들은 8월에 나라가 망하는 치욕과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되는 감격을 맛보았다. 반만 년 민족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평등, 민주, 공화(共和)의 원리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웠다.
그러한 가치들은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지구 끝까지 ‘야소(耶蘇)’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며 ‘야만의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아득한 극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모험가와 지식인과 상인들이 가져온 박래품(舶來品)이었다.
그들이 이 나라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구한말(舊韓末) 제중원(濟衆院·현 세브란스병원)의 의료선교사이자 자신의 멘토요 친구인 올리버 애비슨 박사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면서 한 말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애비슨 박사는 그가 이 땅에 전한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오는 자유주의 사상의 상징으로써 본 대통령의 신실한 친구였으며, 또 본 대통령의 청년 시기에 기독적 민주주의의 새 사상을 호흡게 하였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이 땅에 자유·평등·민주·공화의 가치를 전파(傳播)한 개척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누운 이들은 모두 417위. 그중 145위가 선교사와 그 가족이다. 아펜젤러, 스크랜턴, 언더우드 등 대(代)를 이어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 외에도 독립운동의 후원자던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자 프란츠 에케르트, ‘고아의 아버지’ 소다 기이치, 장애인 교육의 개척자 로제타 홀, 크리스마스 실의 창안자 셔우드 홀 등이 이곳에 묻혀 있다. 서울 지하철 합정역에서 5분 거리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잘 가꾸어진 공원묘원이다.⊙
그러한 가치들은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지구 끝까지 ‘야소(耶蘇)’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며 ‘야만의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아득한 극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모험가와 지식인과 상인들이 가져온 박래품(舶來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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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사장을 지낸 배설(어니스트 베델·1872~1909)의 묘비. |
“애비슨 박사는 그가 이 땅에 전한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오는 자유주의 사상의 상징으로써 본 대통령의 신실한 친구였으며, 또 본 대통령의 청년 시기에 기독적 민주주의의 새 사상을 호흡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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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아펜젤러(1858~1902).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 설립자로 이승만의 스승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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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는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 음악가다. 일본 국가(國歌) 기미가요도 그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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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젤 벙커(1853~1932) 선교사는 한성감옥에 갇힌 이승만·이상재 등을 기독교로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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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쇼(1890~1967)와 그의 아들 해밀턴 쇼(1922~1950). 평양에서 태어난 아들 해밀턴 쇼(앞)는 6·25 때 서울 녹번동에서 전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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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 기이치(1867~1962)는 이승만의 YMCA 동료였다. 1000여 명의 고아들을 돌보아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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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교사 자녀들의 묘역. 그의 부모들이 조선으로 선교를 오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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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스 언더우드(1859~1916). 한국에 처음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로 새문안교회와 연세대를 설립했다. 이 집안 4대 7명이 양화진에 묻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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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나온 한글 성경. ‘명치’라는 일본 연호가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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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윌리엄 홀(1860~1894)의 왕진 가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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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홀의 아내 로제타 홀(1865~1951)이 남긴 두루마리 편지. 그녀는 남편과 딸을 한국에서 잃었지만 43년간 한국에서 선교했다. |